역동(力動)하는 제국 (1)
1660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미연방제국의 인구가 1천5백만을 돌파했다.
지속적으로 노예들이 유입되고 있는 것도 있었지만 출산장려 정책으로 인해 한 가정이 평균적으로 아이를 7명에서 8명씩 낳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덕분에 제국의 인구 분포는 유소년층이 가장 두터웠고, 노인이 적었다. 넘치는 아이들 때문에 학교는 터져나갔고 끊임없이 새로운 학교가 지어졌다.
자유민들의 비중도 대폭 늘어났다. 1650년 36%였던 자유민 비중은 10년이 지난 지금 84%까지 증가해 비로소 시민 국가라고 불릴 수준까지 도달했다.
줄어든 노예와 늘어난 자유민들, 그리고 끊임 없이 고용되는 관료와 임관하는 군인들 때문에 제국은 세금을 도입했다.
재산세와 소득세 둘 다 징수하였는데 비교적 감추기 쉬운 소득세를 거짓 신고 하는 자들이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물론 재산세라고 모두 양심적으로 납부 하는 것은 아니었다. 최대한 현금으로 자산을 보유하며 한 푼이라도 세금을 덜 내려하는 시도가 빈번한 게 사실이었다.
이에 국세청장 윌이엄은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대책 마련에 고심이었다.
'탈세하는 자들을 반드시 잡아야 한다!'
세금을 도입한 지 몇 년 되지 않았기에 국민들의 의식을 확실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세금을 내도 그만, 내지 않아도 그만 인 것으로 인식하게 만든다면 앞으로 최소 백년간 제국은 납세자와의 전쟁을 피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게 쉽지 만은 않았다. 모든 국민을 세무조사 하기에는 비용과 노동력이 너무 많이 필요했고, 그렇다고 소수의 인원만 선별해서 하자니 부정이 개입될 여지가 크고 효율이 떨어졌다.
-똑똑
"들어오시오"
윌이엄의 집무실을 두드린 것은 큰아들 월스였다. 그는 대학을 졸업 하고 아버지를 따라 관료가 될 것이라는 주위의 기대와 달리 자신만의 아이디어로 창업을 했다.
신문
고대 로마부터 악타 푸블리카(Acta Publica)라 불리우며 관보적 성격을 가진 신문은 세상에 존재해 왔고, 동양에서도 한나라·당나라 시대부터 중앙과 지방의 군신 사이의 의사소통수단으로 저보(邸報)라는 형태의 신문이 존재했다.
17세기 유럽에는 이런 신문이 흔했는데 건흥이 통째로 옮겼던 베네치아에서는 주단위로 화제 거리를 모아서 판매하는 주보가 있었다. 그 주보를 인쇄하던 건물 역시 현재 서울의 베니스 지구에 존재하며 여러가지 책을 인쇄하고 있었다.
월스는 그런 신문을 만들어 배급하는 신문사를 창업했다.
이름하여 제국주보였다. 매주마다 미연방제국의 다양한 소식들을 모아 편집해 인쇄하여 판매하였는데 사업을 시작 한지 3년이 지난 지금 인쇄소 3곳을 추가로 인수할 만큼 번창하고 있었다.
"아버지 이번 주 신문 가져다 드리러 왔습니다"
"바쁠텐데 왜 항상 직접 오느냐. 이리와서 차라도 한잔 하고 가라"
"하하.. 공짜가 아닌 거 아시지 않습니까?"
"아서라 이놈아. 이번주에는 특별한 소식이라고 할 것도 없다"
월스가 윌이엄을 방문한 것은 신문에 실을 만한 정보를 얻기 위함이었다. 제국 정치의 중앙에 위치한 아버지는 일반 국민들이 얻을 수 없는 여러가지 고급정보들을 알고 있었다.
그 중에 국민들에게 알려져도 상관이 없거나, 어차피 알려질 것이거나 홍보가 필요한 정보들을 윌이엄은 월스에게 넘기곤 했다.
"호오.. 뉴턴이 또 폐하께 상을 받았구나"
"대단한 녀석입니다. 이번에도 상금을 두둑하게 챙긴 것 같습니다"
월스가 가져온 신문을 펼쳐본 윌이엄은 첫 페이지에 대문짝만하게 실려있는 뉴턴의 기사를 읽었다.
뉴턴! 드디어 발전기를 만들다!
[황제 폐하의 과제가 내려온 것도 어언 10년! 그 동안 무수히 많은 과제들이 해결되며 상금은 주인을 찾아갔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던 발전기 과제를 제국의 두뇌! 뉴턴이 해결하였다. 뉴턴은 서울대학교 실험동에서 직접 발전기를 .....]
"발전기 가동을 눈으로 확인 했느냐?"
"예. 저는 언론인 자격으로 초청 받아 다녀왔습니다"
"소감은?"
"벼락의 힘이 인간의 손안에 들어온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월스는 뉴턴의 발전기가 전기를 만들어 내는 모습을 떠올렸다. 역할을 알 수 없는 여러개의 금속 사이에서 터져 나오는 스파크를 보는 순간 뉴턴이 세계 최고의 과학자라고 다시 한번 느꼈다.
"어제 뉴턴이 오랜만에 집에 들렀습니다. 어머니께서 맛있는 음식을 잔뜩 해주셨지요"
"제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학자와 식사를 할 기회를 놓쳤군... 보통 바빠야 말이지.."
"요 근래에 집에 거의 못 들어가신다고 들었습니다"
월스는 결혼을 하여 독립을 했기에 윌이엄과 다른 집에 살고 있었다. 뉴턴은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국가에서 제공한 최고급 저택으로 이사하여 혼자 살고 있었다.
그래도 종종 어린 시절 자신을 길러준 윌이엄과 그의 아내가 살고 있는 집으로 놀러오는 뉴턴이었다.
"하아... 세금 때문에 머리가 터질 지경이다"
"징수하는 문제 때문이십니까?"
"징수도 징수지만... 탈세하는 놈들 때문에 골치야"
"작정하고 세금을 안내는 자들을 찾아내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이거 잡아야 되는데... 잡으려고 하니 시간과 비용, 인력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
월스에게 고민을 털어 놓던 윌이엄의 눈에 제국주보의 한 페이지가 들어왔다. 그곳에는 신문에 후원을 해준 스폰서들의 이름이 적혀져 있었다.
제국주보 주간 후원자 명단
제국은행 피셜록 5만4천원
복강자기 석형지 2만 3천원
과학자 뉴턴 2만 2천원
금액이 큰 사람부터 적은 사람들까지 이름이 빼곡히 적혀있었고 그들이 후원한 액수가 정확하게 기입되어 있었다.
"이거다!"
후원 명단을 보는 순간 윌이엄은 크게 소리쳤다. 그의 머릿속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발전한 인쇄술을 이용해 탈세를 감시할 방법이었다.
* * *
"세금 납부 상위 명단을 작성해 신문처럼 뿌린다?"
"그렇습니다"
윌이엄은 신문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탈세를 잡을 계획을 세워 건흥을 찾았다.
"탈세는 고소득층이 더 문제입니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소득을 축소 신고하여 탈세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일일이 조사하려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게 되어있습니다."
"지역 사회에서 서로 감시하게 하는 것이군?"
"그렇습니다. 지역에서 누가 돈을 많이 버는지 서로 서로 다 짐작하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막상 세금은 적게 낸다? 그럼 분명 신고가 들어오게 되어있습니다"
"일단 찔러나 보자 하고 무분별하게 신고를 하게 되면 결국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지 않나?"
"그래서 조사 결과 탈세가 발견되면 신고자에게 포상금을 지급하고, 탈세가 발견되지 않으면 그와 반대로 일정한 벌금을 지불하게 할 생각입니다"
"확실하지 않으면 걸지 마라는 것이군"
"그렇습니다"
윌이엄의 아이디어를 들은 건흥은 현대의 스웨덴이 떠올랐다. 스웨덴이 이런 방식으로 탈세를 막았는데 누가 돈을 얼마만큼 버는지 모두 기록된 자료를 대중에게 공개하는 방식이었다.
이 방법은 개인정보 보호에 심각한 침해가 발생하지만, 탈세를 막는 효과는 엄청났다.
[이 사람이 이거 밖에 안 번다고? 그럼 그 비싼 외제차와 요트는 어떻게 산 거지?]
실제로 스웨덴에서는 이러한 방식으로 상호감시가 이뤄졌었고 이 제도 덕분에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문화가 생겨나기도 했다.
자료가 나오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주변인들의 소득과 재산을 볼 수 밖에 없다. 그러면 분명 이상한 점을 느끼는 사람이 나오기 마련이었고 이런 방식은 매우 높은 확률로 소득을 속이는 자들을 잡아 낼 수 있게 했다.
'어차피 개인정보 보호는 먼 훗날의 일이다'
국민을 통제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대한민국의 주민번호까지 도입한 건흥이었기에 개인정보보호는 크게 상관하는 일이 아니었다.
어차피 17세기 세상에서 신분 없이 능력대로 살아갈 수 있는 제국이 가장 진보적인 국가였다.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비난 받을 일은 없었다.
"좋아 진행해."
"예 알겠습니다 폐하"
건흥의 허락이 떨어지자 월이엄은 세부사항을 점검했고 6개월의 준비 기간을 거친 뒤 전국의 각 도시에 세금 납부 순위 명단을 내려보냈다.
명단은 모든 국민을 다 기록하지는 않았고 도시별 상위 5천명 까지 기록되었다. 어차피 자유민이 된지 얼마 안된 저소득층은 세금 납부 금액이 크지 않았고 그들까지 모두 명단에 넣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무엇보다 윌이엄이 목표로 하는 것은 고액탈세자였다.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고 재산을 축적하는 자들이 몰락하는 모습을 전국민에게 똑똑히 보이는 것이 제일 급한 과제였다.
윌이엄은 전국의 명단이 완성되자 그것을 지방 총독들에게 전달했다.
이번 명단 공개는 제국 헌법의 최고 우선순위인 황제의 명령으로 이뤄졌기에 총독들은 서둘러 지역 인쇄소를 징발했고 곧 대규모 인쇄 작업에 들어갔다.
* * *
서울 납세 순위
1위 제국은행 피셜록 88만 7530원
2위 신림농협 김익상 67만 1140원
3위 서울상회 에릭슨 52만 6520원
4위 과학자 뉴턴 21만 5240원
황제의 명령으로 인쇄되어 뿌려진 납세 명단을 보고 있는 조선공 김만배는 순위권에 있는 서울 대표 부자들의 업청난 납세 금액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여보 이것 좀 봐봐"
"잠시만요 다섯째가 똥을 쌌네요"
김만배는 조선공으로 취직한 뒤, 안정적인 월급을 바탕으로 가정을 이뤘다. 그의 12살 연하 아내는 미국에서 태어난 여성이었다.
그녀는 애초에 고향이 서울이었고 한번도 조선땅을 밟아 본 적 없는 진정한 미국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모셨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텅 빈 만배의 옆자리를 채워준 고마운 사람이었다.
"휴.. 다 정리했고... 어디 봐요"
"서울에서 세금을 많이 내는 순위라는데... 세금을 이 정도 낸다면 돈을 얼마나 번다는 것일까?"
"어머머... 이게 벌어 들인 돈이 아니라 세금이라구요? 정말... 대단하네"
"그렇지? 그래도 듣자 하니 수입이 많아질 수록 세금의 비율이 올라간다고 하더라고"
"서방님은 얼마나 내요?"
"나? 나는 수입의 1할을 내지"
"그러면... 칠백원?"
"맞아"
칠천원을 벌고 있는 김만배는 순위에 있는 사람들에 비하면 매우 적은 금액이지만 서울에서 한가정 꾸리는 데는 충분한 금액이었다.
만배는 아내와 알콩달콩 대화를 나누며 순위를 쭉 살펴봤다. 그러면서 자신이 직접 알고 있는 가장 부자의 이름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왜 없지?'
만배가 찾는 인물은 조선상회의 회장 조후연이었다. 그는 에릭슨이 운송업을 시작해 대박을 치고, 이어 서울상회를 설립해 돈을 쓸어 담자 그의 후발 주자로 상회를 설립한 인물이었다.
에릭슨이 어느 정도 장악한 시장을 조후연이 뚫는 방법은 조선인 출신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것 이었다.
동포끼리 돕고 살자
엄한 코쟁이 상회 이용하지 말고 동포가 운영하는 상회에 물건과 서비스를 이용하자는 홍보 문구는 조선에 향수가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덕분에 빠른 성장을 거듭한 조선상회는 서울상회의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니... 함양에 땅도 엄청 사고.. 운송용 선박도 3척이나 발주한 조후연이 이 명단에 없다는 게 말이 되나?'
김만배는 조선공으로 일하고 있었기에 선박을 발주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다 알고있었다. 조후연은 에릭센다음으로 많은 선박을 구입하는 사람이었는데 세금 납부 명단에는 그의 이름이 없었다.
탈세자 신고 제도
탈세를 한 것으로 확신이 드는 사람을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신고한 사람이 탈세를 한 것으로 확인되면 몰수 될 그의 재산의 2할을 신고자에게 포상으로 지급합니다.
신고한 사람이 탈세를 하지 않은 경우에는 벌금 1만원이 부과됩니다. 신고는 각 행정구역의 국세청 지부에서 받고있습니다.
여러분의 소중한 제보가 국가의 법을 제대로 세우는 데 큰 힘이 됩니다.
배포자료를 쭉 읽어가던 김만배의 눈에 탈세자 신고 제도 안내가 들어왔다.
'몰수 될 재산의 2할을 준다고?'
포상 부분을 읽던 만배의 눈이 매우 커졌다. 그리고 벌금도 읽어 봤는데 신고 당한 사람이 결백했다면 자신은 1년하고 3개월치의 급여를 벌금으로 내야 했다.
포상도 상당했지만, 벌금도 제법 중하여 장난으로 신고할 수는 없는 제도였다.
'그런데 이건 너무 확실한데....?'
만배는 다시 한번 명단에서 조후연을 찾았다. 몇 번을 다시 찾아도 조후연이 없었다.
"으아아아앙"
생각에 잠겨있는 만배의 귀에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똥을 싸지른 다섯째가 무엇이 또 불만인지 울음을 터트렸다. 아내가 다가가 아이를 달랬는데 그녀의 볼록한 배가 눈에 들어왔다.
'여섯째인가?'
다섯째가 태어난 뒤로 밤이면 밤마다 사랑을 나눴으니 그럴만했다. 먹여 살려야 하는 자식들이 늘어나고.. 그가 살고 있는 집은 점점 좁아졌다.
앞으로 처자식 먹여 살리려면 얼마나 돈이 더 필요할까? 그냥 평범하게 살려면 지금 급여로도 충분하지만 만배는 자신의 가족들을 부족함 없이 살게 해주고 싶었다.
"여보! 나 밖에 좀 나갔다 올게"
결심이 선 만배는 집에서 나가 국세청 서울지부로 달려갔다.
Comment '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