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경 (2)
"입항을 준비하라!"
서울로 향하는 보급선은 입항을 앞두고 분주해졌다. 배에 있는 동안 잘 대접 받았던 앨런 일행은 도착이 멀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갑판으로 올라왔다.
"으응?"
그들은 바다 건너 보이는 서울의 모습에 놀랐다. 빈틈없이 들어선 건물들의 모습이 마치 런던이나 암스테르담을 연상시켰기 때문이었다.
"개척촌 수준은 확실히 아닌 것 같습니다 남작님"
"놀랍군... 분명 신대륙은 무주공산의 땅이었을 텐데"
보급선이 항구에 접안하고 닻을 내리자 알버든이 그들을 인솔하여 가장 먼저 하선했다.
"일단 피곤하실 테니 오늘은 숙소로 바로 가시죠"
"알겠소"
알버든은 그들을 숙소로 데려다 주기 위해 서울항역으로 이동했다. 이 시점에 기차는 발전소와 비료공장, 서울항을 거쳐 베니스 지구와 신림을 잇고 있었다.
"마차를 기다리는 것이오?"
"아닙니다. 기차라는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차?"
"말로 듣는 것 보다. 직접 보시는 게 나을 겁니다"
서울항역에 도착한 앨런 일행은 웅장한 기차역과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많은 사람들, 그리고 쭉 이어진 철길을 신기하게 둘러보며 주위를 돌아다녔다.
-뿌우우우우
기차를 기다린 지 10여분이 지났을 때 발전소 방향에서 기차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거대한 철제 기차가 수증기를 뿜어내며 기차역으로 미끄러져 들어왔고 속력을 줄이며 천천히 멈춰 섰다.
"오오!"
"이게... 무슨!"
"표는 제가 다 구입해 뒀으니 따라 들어오시면 됩니다"
알버든의 안내에 따라 기차에 올라탄 일행의 좌석은 1등석이었는데 제국 최초의 외국인 여행객을 위한 행정부의 배려였다.
"앉으시지오"
"허허... 이런 곳에 테이블이 있다니"
양쪽으로 마주 보는 형태의 1등석 테이블에 그들이 앉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차는 출발했다. 출발을 하며 창 밖으로 보이는 서울의 모습에 그들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 기차라는 것 말이오"
"예. 말씀하시지요"
"말이 끄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무슨 힘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오?"
"증기기관입니다"
"증기?"
"저도 자세히는 모르고 그 정도로만 알고 있습니다"
원래 역사대로 라면 기차는 1800년대에 가서 등장한다. 때문에 앨런 일행들이 기차를 보고 그 원리에 대해 신기해 할 수 밖에 없었다.
거기다 유럽이 아직 증기기관을 본격적으로 활용하기도 전이었기에 증기기관 자체도 그들에게 익숙한 기계장치는 아니었다. 여러모로 그들이 기차를 이해하는 것은 어려웠고 그저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었다.
"차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깔끔한 유니폼을 입고 있는 여성 승무원이 일행이 앉아있는 테이블에 방문하여 차를 건넸다. 차는 함양에서 생산되고 있는 녹차였다.
"혹시 커피는 없소?"
"아직 제국에서 커피가 재배되지 않습니다. 커피는 드리기 힘들 것 같군요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이 차도 향이 나쁘지 않습니다"
눈치 없는 일행이 커피를 찾자 알버든이 곤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에 앨런이 얼른 녹차를 한 모금 마시며 맛이 나쁘지 않다고 칭찬을 했다.
"유럽에선 커피를 많이 드십니까?"
"요즘엔 커피가 대세이지요. 런던에는 커피하우스가 널렸습니다."
이 시기 유럽은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많은 커피를 수입하고 있었다. 영국은 홍차의 나라이긴 하지만 이 시기에는 커피를 더 많이 마시고 있었다.
런던의 노동자들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커피하우스에서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했는데, 이 때 여성 손님과 남성 손님의 커피 품질에 차이를 두는 가게들이 많아 런던 여성 단체가 탄원서를 내 이를 금지할 정도로 커피는 대중들에게 인기가 있는 음료였다.
"지금 창밖에 보이는 지역은 베니스 지구라고 합니다. 제국의 기술자와 각종 공업 공방이 모여 있는 곳이지요"
"베니스? 혹시...."
"맞습니다. 베네치아에서 넘어온 자들이 정착한 도시입니다"
"설마.... 베네치아 실종 사건의 원흉이...읍읍!"
이번에도 눈치 없게 베네치아 실종 사건을 언급하는 일행의 입을 앨런이 급하게 틀어 막았다.
건흥이 베네치아에서 대규모 징발을 행사한 이후, 이 사건이 유럽 전체에 쫙 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베네치아가 워낙 상공업의 중심지이기도 했고, 사람과 건물이 모두 사라지는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났기에 전 유럽이 관심을 가지고 진상을 조사했었다.
물론 제대로 된 진상 조사의 결과가 나올 리가 없었다. 범인은 대서양을 넘어 미국에 있었고, 증인과 증거 역시 모두 미국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중이 떠중이 탐정들이 떠드는 허황된 소리가 퍼지거나, 이단 종교 단체가 퍼트리는 종말론이 득세하기도 했다.
결국 교황청 수준에서 지령이 내려와 베네치아 실종 사건에 대하여 언급을 금지하기에 이르렀다. 말을 지어내면 지어내어 질 수록 이 사건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교황청의 권위가 떨어질 것이라 판단해서였다.
"도시의 외관이 멋스럽습니다"
"모두 계획하여 지어진 도시이기에 구획 정리나, 건축 자재 통일 등의 규제가 효과를 발휘한 덕분이지요"
베니스 지구의 외형은 베네치아 건축물의 외형을 그대로 살리며, 주변 건물로 벽돌로 건축하고 지붕 색깔을 맞추는 등 도시의 미관을 조성하기 위해 힘쓴 모습이 보였다.
그로 인해 이 지역은 마치 유럽의 도시를 그대로 옮겨 온 것 같은 고풍스러움이 있었다.
기차는 베니스 지구를 지나 중앙공원 방향으로 향했다. 중앙공원은 이들 일행의 숙소가 위치한 곳이었다.
"이제 내리시지요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중앙공원에 내린 그들은 베니스 지구보다 훨씬 층수가 높은 건물들을 보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최소 5층은 넘어 보이는 높은 건물들은 가운데 중앙공원을 향해 모두 정렬해 있었다.
서울 호텔
민간 사업자가 설립한 서울의 대표 숙박 시설인 서울 호텔은 지방에서 사업차 서울로 올라오는 자들을 위한 숙소였다.
6층 벽돌 건물로 지어진 호텔의 내부로 들어선 일행은 엽사에서 넘어온 동물 가죽과 순록뿔 박제로 장식된 로비를 보며 연신 감탄했다.
"객실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알버든이 그들을 대신해 확인 절차를 모두 마쳤고, 호텔 관계자가 5층에 위치한 그들의 객실으로 안내해줬다. 객실은 거실과 방 4개로 이뤄진 대형 숙소였으며 거실에서 중앙공원의 경치가 한 눈에 내려다 보였다.
"저녁 때까지 휴식 하시고, 식사시간 즈음해서 찾아오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알버든경"
"경이라니요.. 저는 그저 일개 병사일 뿐입니다"
앨런의 추켜세움에 겸손을 보인 알버든이 떠나고, 숙소 침대에 널부러진 일행들은 저마다 서울에 대한 감상을 쏟아냈다.
"개척촌을 모아 놓고 왕이니 황제니 떠든다고 했던 말 취소요"
"허허 그러게 말이오. 이 도시의 규모나 수준을 보아하니 런던에 전혀 밀리지 않습니다"
"런던? 규모는 런던에 비교할 만 하나... 우리가 타고 온 그 기차라는 물건. 그것 하나만으로 이곳은 유럽의 그 어떤 도시보다 진보 되어 있소"
"지금 생각해도 꿈을 꾼 것 같군... 그나저나.. 그 베니스지구라는 곳 말이오"
"확실합니다. 베네치아를 그대로 옮겨온 곳입니다. 제가 젊은 시절 베네치아 잉글랜드 공관에 근무했던 것 아시지요? 똑같았습니다"
"아니... 그러면 도대체 어떤 수로 수십 일을 항해해야 올 수 있는 이곳에 베네치아가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남작님 이게 말이 됩니까?"
"말이 되지 않지. 그렇게 따지면 움직이는 금속덩어리는 말이 되나? 이 서울이란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우리의 상식 밖에서 움직이고 있다"
앨런은 창밖으로 보이는 중앙공원과 공원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왜 황제가 우리를 이곳에 초대했는지 알겠다.'
앨런이 생각하기에 황제가 자신을 초대한 이유는 자신감이었다. 미국이란 나라를 직접 겪어 본다면, 잉글랜드가 미국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 호의적으로 판단할 수 밖에 없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지금까지 황제의 의도는 정확히 적중했다. 물론 서울을 보기 전, 그들의 개인화기인 뇌우의 위력을 확인 하는 순간에도 그랬긴 하지만, 확실히 서울을 보고 나서 그들이 쉽게 생각할 수 없는 강력한 국가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몇 시간 숙소에서 여독을 풀며 휴식을 취하던 그들을 데리러 알버든이 왔다. 저녁식사를 위해서였다.
"나가시지요. 특별한 손님들을 위해 훌륭한 식당을 알아두었습니다"
알버든을 따라 나선 그들은 노을 지는 중앙공원을 가로 질러 식당으로 걸어갔다. 공원에는 오늘 하루 일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러 나온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었다.
'동양인이 다수인데... 서양인들도 제법 있다.'
확실히 서울은 동양인이 주류였고 서양인은 소수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서양인들도 제법 많이 있었기에 앨런 일행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다양한 인종이 함께 사는 상황에 매우 익숙한 듯 보였다.
공원을 가로 질러 그들이 도착한 식당은 '미카엘의 부엌'이라는 식당이었다.
식료품 가공 판매에서 시작한 이 가게는 미카엘의 부단한 노력과 베네치아에서 식당을 하던 그의 요리 솜씨가 만나 중앙공원 근방에서 가장 예약하기 어려운 식당이 되었다.
미국어를 전혀 모르는 앨런 일행이기에 알버든이 메뉴를 모두 통역해 줬고 가장 기본적인 피자와 파스타, 스테이크를 주문 하였다.
"서울의 역사가 궁금합니다 알버든 경"
"역사는 매우 짧습니다. 제가 알기로 30년 내외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30년? 아... 그러면 30년 전 이곳은 허허벌판 이었단 말이오?"
"뉴암스테르담이라는 네덜란드 개척촌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불과 30년 만에 이런 대도시가 만들어 진다는 것에 헛웃음이 나온 앨런이었지만 알버든의 말을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식사 나왔습니다"
담소를 나누고 있던 일행에게 음식이 나왔다. 피자와 파스타는 모두 신선한 식재료를 사용해 만들어서 인지 맛이 매우 좋았다.
하지만 스테이크는 아주 중요한 식재료 하나가 빠져서 일행들 모두 아쉬워 했다.
"스테이크에 후추는 뿌려주지 않는 겁니까?"
"커피와 마찬가지로 후추도 제국에서는 매우 귀한 식재료 입니다."
"미국은 다른 나라와 무역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이오? 기후 때문에 재배가 어렵다는 것은 알지만, 무역을 한다면 충분히 구할 수 있을텐데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조만간 나라의 문을 열고 교류를 시작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 첫 번째 발걸음이 바로 앨런님이시지요"
앨런의 물음에 알버든이 웃으며 대답했다. 앨런은 알버든의 웃음이 상당히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마치 자신에게 조건을 걸었던 황제의 모습을 다시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하긴 세상에 공짜는 없지'
앨런은 지금 자신의 일행들을 향한 이 환대가 결코 공짜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리고 알버든이 그저 평범한 길 안내 병사가 아니라는 것에 내기를 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눈치가 빠르고 감이 좋은 앨런의 촉에 알버든이 풍기는 묘한 분위기가 황제 앞에 섰을 때 느꼈던 기분과 매우 유사했기 때문이었다.
-지이잉
".....!!"
식사를 하는 도중 날이 어두워 지고 이제 등불을 밝히겠지? 싶었던 일행을 기겁하게 만드는 일이 벌어졌다.
바로 식당 천장에 설치된 전구에서 불이 들어오는 것이었다. 등불의 몇 배나 환하게 식당을 비춰주는 전구를 보며 일행은 모두 말문이 막히고 얼어붙었다.
"저....저건 대체 무엇이오...?"
"전구입니다. 전기라는 힘으로 돌아가지요"
"전기?"
"저도 자세히는 잘 모릅니다."
알버든은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앨런에게 말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미소였지만 왠지 앨런은 그 미소가 점점 불편해졌고, 황제와 알버든의 손에 놀아 나고 있다는 기분이 강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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