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에바 에스파냐 (5)
제국군은 사우드 다 멕시코를 완전히 점령했다. 애초에 정규군이 대부분 박살 난 상태에서 봉기하는 멕시칸들 조차 제압하지 못하는 누에바 에스파냐는 그 명운이 다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것 놔라! 내가 누군지 아느냐? 책임자를 만나게 해 달라!"
제국군의 점령 지역에서 항상 진행되는 노예 분류 작업이 한창인 곳에서 한 여성이 소리치며 분류에 순응하지 않고 저항하고 있었다.
"저 여성이 뭐라고 하는 것이냐?"
"책임자를 만나게 해 달라고 소리치고 있습니다. 아마도... 스페인 고위층이었던 것 같습니다"
멕시코 지역이 완전히 제압 된 것을 확인한 건흥은 곧바로 본국으로 향했다. 알버든이 보내온 정보에 조만간 잉글랜드 사신이 서울을 방문할 것이라고 보고 했기 때문이었다.
정보부 요원들은 먼 거리에서도 마나를 주입하여 통신할 수 있는 수정구를 모두 휴대하고 있었고 그 수정구를 사용하여 언제라도 건흥과 교신할 수 있었기에 이런 빠른 정보 전달이 가능했다.
그로 인해 비서실장 반스딘이 건흥을 대신해 크게는 누에바 에스파냐 부왕령, 좁게는 멕시코 지역의 안정화를 책임지게 되었다.
"데려와라"
"예. 알겠습니다"
반스딘은 통역을 시켜 그녀를 불렀다. 딱 봐도 이곳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어 보이는 반스딘이 자신을 부르자 그제서야 그녀의 표정이 조금 풀리고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흥! 이제야 나를 알아봤나 본 데.. 좀 늦었어! 당신네 병사들이 날 얼마나 함부로 다뤘는지 알아?"
"네년은 누구냐?"
"나는 호르세 릴리아나다!"
릴리아나와 반스딘의 대화를 중간에서 전달하는 통역은 서로의 말을 의역 하여 전달했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릴리아나는 상대의 극적인 태도 변화를 기대했지만, 아예 그녀를 모르는 둘은 그저 멀뚱히 서있을 뿐이었다.
"자신은 호르세 릴리아나라고 합니다"
"그게 누군데?"
"저도...잘... 여기 출신이 아니라서"
지금 통역을 담당하고 있는 젊은 병사는 미국에서 태어난 자였다.
자신의 부모는 현재의 감주, 옛날에 세인트 오거스틴의 주민이었는데 새로 태어난 자신들의 아이들에게 미국인으로서의 의식을 주입했기에 그는 누에바 에스파냐의 대하여 아무것도 몰랐다.
"뭐하는 년인지 물어봐라"
"당신의 이름 말고, 직책이 무엇인지 말하시오"
"뭐? 직책? 하.... 나 참.. 내 남편이 안토니오 멘도사다! 네 놈들이 나를 궁전에서 잡아왔으면서도 그것 하나 알지 못했더냐?"
멘도사라는 이름이 나오자 그제서야 통역은 알겠다는 듯 그 내용을 반스딘에게 그대로 전달했다. 반스딘도 멘도사의 이름은 알고 있었다.
'흥 바다에 빠져 상어밥이 되었을 남편을 뒷 배로 믿고 있는 년이군'
베라쿠르스 앞바다 해전에서 멘도사는 시체조차 찾을 수 없었다. 아마 침몰하는 배와 함께 깊은 바다 속에 수장 되어 심해에 머무르고 있을게 분명했다.
"당신의 다른 가족들은?"
"오호! 이제야 말이 통하는 구나. 내 아들 딸들도 어서 노예 신분에서 해방하라"
릴리아나는 가족들의 위치를 묻는 물음에 더욱더 기세등등 해져 얼른 다른 고위층 가족들도 해방하라고 으름장을 놨다. 이에 반스딘은 미소 지으며 그녀의 가족들을 모두 데려오라고 지시했다.
"아주 잘한 선택이다. 스페인 정규군이 유럽에서 넘어 오면 네 놈들은 아주 개박살이 나고 말 것이다. 그때 내가 특별히 너의 목숨을 살려주도록 건의하마!"
"정규군이 넘어 온다고? 스페인에서?"
"내 남편이 데려올 것이다! 강력한 스페인의 함대를! 지금쯤이면 스페인에서 함대를 빌려와 대서양을 넘고 있을게 분명하다"
"하하하하 미친년이로구나"
세상에 사람은 다양하고 생각하는 방식도 여러가지였다. 그 중 릴리아나처럼 자기 생각하고 싶을대로 생각하고 근거도 없이 그렇게 믿는 족속들이 꼭 있었다. 그녀의 말에 반스딘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박장대소했다.
"뭐가 그렇게 우스운 것이냐!"
"네 남편이 스페인 함대를 빌려온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느냐?"
"흥! 척하면 척 아니겠느냐? 아직까지 연락이 없는 것은 필시 넓은 대양을 건너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자신의 뇌피셜을 떠벌이고 있는 동안, 반스딘의 지시로 멘도사와 릴리아나의 자녀들 그리고 그외의 고위층 자제들이 노예 분류에서 빠져나와 반스딘 앞에 모여들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다른 스페인인들과 멕시칸들은 역시 세상이 바뀌어도 높은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돌봐주며 어떻게든 대접 받는 구나 싶었다.
"어머니!"
"오오 아들아 이리와라"
인정사정 없고, 말이 통하지 않는 제국군이 데려갔던 자신의 아들 딸이 돌아오자 릴리아나는 그들을 끌어 앉고 이제 안심하라고 말했다. 자신만 믿고 있으면 알아서 다 해결해 줄 것이니 걱정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말씀하신 인원들 모두 데려왔습니다"
"수고했다"
노예 분류를 담당하고 있던 장교가 반스딘에게 오른손을 들어 경례하며 보고했고 반스딘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를 돌려보냈다.
"모두 집중하라!"
반스딘이 크게 소리치자 분류 작업을 하던 병력들이 모두 멈춰 섰고, 노예들도 반스딘의 말을 들을 수 있게 주위에 있는 스페인 통역병들이 그의 말을 통역해 크게 소리쳤다.
"너희들이 영원히 몸 담게 될 미제국이! 어떤 나라인지 알려주도록 하겠다"
반스딘은 말을 마친 뒤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릴리아노를 데려오라는 신호를 했다. 이에 반스딘을 호위하던 병력들이 성큼성큼 다가가 그녀의 팔을 우왁스럽게 잡아 끌어 반스딘 앞에 무릎 꿇렸다.
"이놈이! 말이 잘 통하는 줄 알았더니 무례하게 이게 무슨 짓이냐!"
"이 여자는 자신이 멘도사의 부인인 릴리아노라고 하는데 맞느냐?"
릴리아노의 항의는 싹 무시한 채 반스딘이 크게 소리 지르며 모두에게 물었다. 스페인인들과 멕시칸들은 그의 물음에 침묵으로 긍정했다.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고 노예로 분류되지 않겠다고 소리치는데 어림도 없는 소리! 이 년은 너희들과 똑같이 일하게 될 것이다. 데려가라"
"예!"
반스딘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녀를 나급 노예들이 모이는 곳으로 보내려고 했다. 나급은 주로 아녀자들이 소속된 급으로 식사나, 청소, 빨래등의 일을 하는 급이었다.
"이 개새끼가! 너 감당할 수 없는 짓을 하는구나! 네 놈들의 황제는 어디 갔느냐? 그 신출귀몰 한다는 황제를 불러와라! 내가 직접 그와 대화하겠다"
"멈춰라!"
끌려가면서 건흥을 언급하는 그녀의 말이 반스딘의 귀에 들렸다. 문장 전체를 들은 것은 아니었지만 황제를 뜻하는 스페인어는 반스딘도 알고 있었기에 그녀가 감히 건흥을 입에 올렸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저 년이 뭐라고 했느냐?"
반스딘의 물음에 통역은 대화를 있는 그대로 전달했다. 이에 반스딘의 얼굴이 완전히 굳고 눈빛이 살벌하게 변했다.
"감히 네년이 황제 폐하를 언급하다니! 채찍을 가져오라!"
명령이 떨어지자 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호위병들은 반스딘에게 채찍을 전달했다.
대부분의 노예들이 총을 든 제국군에게 순응적이었기에 채찍을 사용할 일이 거의 없었지만 릴리아노 같이 날뛰는 족속들에게는 매가 약이었다.
-차아아악! 짜아아아악!
"꺄아아아아악! 그만! 아아아악!"
반스딘이 휘두른 채찍은 릴리아노의 온몸을 찢어버렸다. 그녀의 피부는 다 뜯겨 나가고 피가 철철 흘렀다.
처음 채찍을 몇 대 맞았을 때는 힘이 남아있어 벌떡 일어나 도주하려 했지만, 그럴 때마다 제국군이 뛰어와 그녀의 머리끄댕이를 잡고 다시 반스딘이 채찍을 휘두르는 곳으로 던져버렸다.
"방금 전처럼 다시 말해봐라 이년아"
"으...으...."
채찍을 연신 휘둘러 숨이 찬 반스딘은 씩씩 거리며 릴리아노에게 말했다. 그녀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고 그런 그녀에게 반스딘의 채찍이 또 날아들었다.
-차아아악!
다시 날아드는 채찍에 결국 그녀가 의식을 잃었다. 그러자 반스딘은 병사들을 시켜 물을 떠오게 했고 차가운 물 세례를 받은 그녀는 다시 정신을 차릴 수 밖에 없었다.
"네년의 죄가 이것으로 다 없어졌다고 생각 하지 마라, 폐하께서 돌아오시면 네년의 죄에 대해 제대로 된 처벌이 있을 것이다"
반스딘이 말하는 제대로 된 처벌은 사지가 잘려 도시 한복판에 묶여 있는 것이었다. 지금은 건흥이 없었기에 그녀의 사지를 자르는 순간 죽어버릴 것이 분명했고 그 형벌을 내릴 수가 없었다.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반스딘은 혹시나 다른 마음을 품을 지도 모르는 점령지의 노예들에게 그녀가 벌을 받는 모습이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라 믿었다.
실제로 반스딘이 릴리아노를 죽기 직전까지 때리는 모습을 보며 스페인인과 멕시칸 모두 반항할 의사를 접었다.
"이 놈들도 모두 너희들처럼 똑같이 노예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그 누구도 특별 대우 받지 않는다!"
"엉엉.... 어머니...."
반스딘은 하염없이 울고 있는 릴리아노의 아들의 귀를 잡아 당겨 군중들 앞에 밀어 보이며 말했다. 그는 자신도 채찍을 맞을까 두려움에 바지에 오줌을 지리고 말았다.
"오줌이나 지리는 이 하잖은 모습을 봐라! 신분은 모두 허상이다. 이 놈을 노예 분류로 다시 끌고 가라"
"예!"
반스딘은 본보기로 아들놈에게 채찍 몇 대 때려주려 했었는데 그가 오줌을 지리며 벌벌 떨자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바로 보내버렸다.
"자 다시 분류 작업을 시작해라!"
릴리아노가 건방지게 말을 건네던 그때와 지금은 분위기가 완전 바뀌어 있었다.
수많은 노예들이 모두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제국군에 순응하며 노예 분류를 받았다. 그 모습에 반스딘은 매우 흡족해 했고 한편으로 까불어준 릴리아노가 고맙기도 했다.
* * *
"떡 주세요!"
"떡 주세요!"
"미연방 제국 만세!"
"황제 폐하 만세"
강동구와 마선호는 이제는 맥지로 이름이 바뀐 사우드 다 멕시코의 거리를 순찰하고 있었다.
아바나나 베라크루스는 도시의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했지만, 사우드 다 멕시코는 맥지라는 미국식 표현으로 바꿨다.
앞으로 수많은 도시를 점령 할 텐데 그 때마다 이름을 짓기 귀찮아진 건흥의 결정이었고, 사우드 다 멕시코는 너무 스페인 색채가 강하고 그들의 상징적인 도시였기에 맥지로 이름을 바꿨다. 맥지는 멕시칸인들의 땅이라는 뜻이었다.
맥지를 점령한 이후 혹시나 불안해질 도시 치안 유지의 목적으로 제국군은 병력을 따로 배치하여 거리를 순찰하게 했다.
뇌우를 메고 거리를 걷는 그들은 일반 노예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으나, 용감하게도 그들을 가로 막는 자들이 있었으니 바로 노예 분류에서 다급을 받은 아이들이었다.
제국은 12세 미만 아이들에게 일을 시키지 않았다. 그저 의무적으로 학교에 다니면서 미국어를 익히게 했고 그게 아이들이 할 유일한 의무였다.
그랬기에 학교가 끝나고 남은 시간은 아이들이 온전하게 뛰어 놀 수 있는 시간이었고, 동네에서 뛰어 놀고 있는 그들의 시야에 강동구 소대가 발견되었다.
"이 놈들 말 잘하는데?"
"크크크 그러게 말입니다"
"챙겨온 떡 좀 주고 가십니까?"
"줘야지 기특하니까"
질소비료가 보급 된 이후 급속도로 늘어난 제국의 쌀 생산량은 국민들에게 마음껏 떡을 먹을 수 있게 해줬다.
부산항에서 잔뜩 선적 된 쌀은 카비르해를 건너 베라크루스로 넘어왔고 이곳 맥주까지 운송 된 뒤, 떡으로 가공 되어 군인들에게 보급되었다.
강동구 소대는 챙겨온 떡을 바지 주머니에서 꺼냈다. 그러자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운 미국어를 쏟아내며 달라 붙었다.
"미국 인사말 할 줄 아는 사람에게 이거 준다!"
"황제 폐하 만세!"
"안녕!"
"안녕하세요!"
"오호 공손한 존댓말! 검둥이 까까머리 너에게 떡을 수여하겠다"
강동구는 여러가지 퀴즈를 내며 맞추는 아이들에게 떡을 줬다. 아이들은 기를 쓰고 문제를 맞추려고 했고 마음 속으로 내일 학교 가서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마음 먹게 되었다.
"이제 떡 없다! 다 줬어"
손바닥을 보이며 떡을 다 나눠줬다고 강동구가 말하자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리고 꼬불꼬불한 마을 길을 따라 또 다른 소대를 찾아 떠났다.
아이들이 떨어져 나가자 강동구 소대는 다시 도시를 순찰하기 시작했다. 다행이 불손한 움직임을 보이는 자들은 없었다.
제국이 들어오고 나서 일부 스페인 고위층을 제외한 대부분의 노예들의 삶은 훨씬 나아졌기 때문이다. 하루 노동 시간도 전보다 훨씬 줄었고, 식사도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한때 아즈텍의 수도였고, 누에바 에스파냐의 수도였던 맥지는 이제 새로운 주인과 함께 새로운 시작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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