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 결투
33화, 결투를 하러 떠나다.
‘씨발~ X됐다. 진짜로 결투를 하게 된 거야? 크윽! 이놈의 팔자가 왜 이렇게 기구하냐?’
“좋소! 약속 장소를 정하고, 나의 입회인은 누가 할 건지 알아봐 주시오.”
“네 알겠습니다.”
밖에서 다툼이 일어나자 여자들이 우르르 몰려 나왔다.
“어머! 왜 그러세요.”
“별거 아니요. 오늘은 여기까지 합시다. 산 옷은 모두 가지고 나오세요.”
“싸우는 거 아니에요?”
“그냥 말다툼 한 거예요. 빨리 갑시다.”
“네 알겠습니다.”
일행은 쇼핑을 마치고 비행기로 돌아왔다.
“사격 연습할만한 장소를 알고 있소?”
“네 적당한곳이 있습니다.”
“나를 거기까지 데려다 주겠소?”
“네, 모시겠습니다.”
박정기는 에바의 아버지 권총을 빌렸다.
“저도 따라가겠어요.”
“뭐 그러죠.”
‘얘는 말릴 생각은 안하고 구경이나 하겠다는 거야? 완전히 나만 X되는 구나.’
에바와 박정기는 외진 호숫가에 내려졌다.
사방은 탁 트이고 갈대밭이 끝없이 펼쳐져서 사진 찍기 좋은 장소였다. 어느덧 해는 뉘엿뉘엿 서쪽 하늘로 넘어가고 있었다.
장전을 마친 박정기가 10m 거리에 미리 세워 놓은 돌을 겨냥했다.
“오~ 안돼요. 두 손으로 쏘는 것은 비신사적인 행동이에요.”
“한 손으로 쏘라고? 우리나라는 두 손으로 잡는 게 정석인데.”
“결투는 상대를 꼭 죽이는 게 아니고요. 서로의 명예를 회복하고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는 의미가 커요.”
“그게 무슨 결투야. 그냥 주먹질이나 하지.”
“귀족들이 주먹질을 할 수 없으니까, 결투를 하는 거예요.”
에바의 말에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체면이 있으니까 개 싸움은 못하겠고, 남들 앞에서 멋있어 보이게 총으로 결투를 한다는 것이다.
“그럼 총알을 피해도 안 되는 거야?”
“그건 명예를 더럽히는 비열한 행동이에요. 명예를 지키려면 당당하게 서있어야 해요.”
‘니미럴~ 총알에 맞는 걸 뻔히 보면서도 피하지 말라고! 아주 엿 같은 룰이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대게는 못 맞추니까요.”
“못 맞춘다고?”
“맞아요. 20보 거리에서 쏘는데 어떻게 맞추겠어요.”
“맞출 것 같은데.”
박정기는 사격장에서 쏴본 경험으로 충분히 맞출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못 맞춘다고 하니 궁금했다.
‘총이 구려서 못 맞추나?’
박정기가 한 손으로 권총을 들고 10m 거리에 세워 놓은 돌을 향해 발사했다.
탕! 티용~ 털썩!
“어!......”
“잘 맞는데.”
“이럴 리가? 다시 한번 해보세요.”
통역이 돌을 세우고 돌아왔다.
장전을 마친 박정기는 윌슨이 했듯이 총을 단단히 고쳐 잡았다.
‘윌슨은 총이 발사돼도 흔들림이 전혀 없던데, 나는 왜 흔들리지?’
사실 윌슨이 쏜 총은 소총이라 어깨에 견착하고 쏜 것이고, 박정기가 쏜 것은 권총이다. 권총을 이 정도의 사격을 했다는 것은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도 어려운 것이었다.
탕~ 티용~ 털썩
결과는 똑같았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총알 맞은 자리가 하나라는 것이다. 똑같은 자리에 두발을 맞춘 것이다.
“와! 천재예요. 제가 본 사람 중에 제일 잘 쏘는 천재라고요.”
“그래?”
에바의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졌다. 박정기는 다른 사람은 어떤가 싶어서 에바에게 총을 넘겼다.
“에바도 한번 쏴봐.”
“네? 저는 자신이 없는데요.”
에바가 권총을 받아 들고 조준을 했다. 그런데 총구가 흔들렸다.
“숨을 참아야 해.”
“네, 알겠어요.”
다시 조준하는데 많이 좋아졌다. 탕! 돌 1m 앞에서 먼지가 풀썩 일었다.
“방아쇠를 당길 때, 힘을 빼고 살며시 당겨야지 흔들리지 않는 거야.”
“네, 다시 해볼게요.”
다시 사격을 하자 돌 옆에 먼지가 일었다. 이만해도 굉장히 잘 쏘는 편이었다.
정작 박정기는 연습을 안 하고, 에바만 계속 지도해주고 있었다.
“이제 돌아가셔야 합니다.”
“아! 늦었군요, 돌아갑시다.”
통역의 말에 하늘을 보니 이미 해가 넘어갔다.
돌아가는 길에 에바가 박정기의 곁에 찰싹 붙어서 수다 떠느라 여념이 없었다.
‘갑자기 왜? 친한 척을 하지.’
에바가 해주는 말을 묵묵히 듣고 있는 박정기.
“결투는 원래 불법이지만 모두 모르는 척해요. 그렇지만 아무데 서나 하면 안 되고, 외진 곳에서 주로 하는데 교회가 보이면 안 되고요.”
“......”
“입회인들이 규칙을 정하는데, 처음에는 화해를 시키려고 할 거에요. 대부분은 형식적이죠. 넙죽 화해를 해버리면 결투를 무서워하는 비겁한 겁쟁이라고 사람 취급을 못 받을 거예요.”
“음......”
“반칙을 해도 마찬가지에요, 손수건이 떨어지기 전에 먼저 쏘거나, 총을 피하면 사회적으로 매장된다고 보면 돼요.”
“......”
“일반적으로 3발씩 쏘고 아무도 안 죽으면, 하늘의 뜻으로 여기고 화해를 하죠. 어때요, 멋지죠?”
“......”
‘멋져? 내가 총에 맞을 수도 있는데? 그리고 이게 그렇게 좋아할 일이야?’
에바는 군인의 자식으로써, 여자로 태어난 것을 천추의 한으로 여기고 있었다.
아버지처럼 멋진 군인이 되고 싶었지만,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았다.
이 시대는 결투의 전성시대나 마찬가지로 수많은 결투가 이루어졌다. 여자는 참관이 안 되니, 결투가 일어나면 소문으로만 접하게 되었다.
늘 그렇듯이 소문은 극적으로 과장되었고, 특히, 귀족들의 체면이 걸려있는 문제라 온갖 미사여구가 동원되어 히어로 영화처럼 포장되었다.
상류층 집안의 처녀들에게는 결투에서 이긴 남자의 멋진 환상이 있었고, 인기 스타처럼 열광했다.
“상상만 해도 가슴이 뛰어요.”
“......”
에바가 양손으로 가슴을 눌렀다. 파인 옷 사이로 풍만한 가슴골이 보였다.
“커음! 내가 죽을 수도 있는데 그렇게 좋아?”
“죽는 사람은 극히 드물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에바의 말이 맞았다. 미국 대통령인 앤드류 잭슨이 무려 100번 이상 결투를 하고도 살아남은 이유가 상대를 꼭 죽인다기 보다는 서로의 명예를 회복하는 차원이었기 때문이다.
‘아까 그 자식은 나를 꼭 죽일 것 같던데.’
잠 못 이룬 밤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박정기를 태우러 온 배가 새벽에 도착했다.
“무슨 일인가? 동생.”
“제가 결투 신청을 받아서 가봐야 합니다.”
“결투? 목숨 걸고 싸우는 거?”
“네 맞아요. 다녀오겠습니다.”
“어! 잠깐 나도 함께 가세.”
김좌근은 푹 쉬고 컨디션이 회복되었는지 또다시 오지랖을 떨어 댔다.
박정기는 비행기를 지킬 큰 귀와 독수리 눈을 남겨 놓고, 바람 매와 들소 바위, 수다 개구리를 참관인으로 데리고 나섰다.
“얀센 사장님도 가시는 겁니까?”
“그럼 요, 저희 중요한 거래처인데 제가 빠질 수 있나요?”
‘어째, 중요한 구경거리로 들리는 거지? 나만의 착각인가?’
아무튼, 얀센의 배를 타고 외진 곳에 있는 결투 장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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