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 기술자들
88화, 벨기에 총기 장인을 태우다.
신세계 주식회사의 주주이기도 하다.
“주주님들 이것 좀 드셔 보십시오.”
장금이 준비한 과일들을 쟁반에 담아 대접했다.
“역시 신선하니까, 더 맛있습니다.”
“이건 잘 익은 걸 따와서 그렇고요. 바나나는 후숙 과일이라 조금 두셨다 먹어도 맛있습니다.”
“네 그렇군요.”
기내를 둘러보던 얀센 사장이 물었다.
“저 통은 무엇입니까?”
“아! 등잔에 쓰이는 등유입니다.”
“오! 잘됐군요. 요즘 고래를 잡기가 힘들어서 기름 값이 많이 올랐습니다.”
“이 등유를 고래 기름보다 3분의1 값으로 싸게 팔아주십시오.”
상인들이 의아해서 박정기에게 물었다.
고래 기름은 오랫동안 등불용 기름으로 인기가 높았다.
고래 기름을 대체할 수 있는 기름이 나온다면 상당한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아니, 비싸게 팔아도 되는데 왜 싸게 팔라는 겁니까?”
“고래를 지금처럼 잡다가는 멸종이 될 겁니다. 그러니까 싸게 팔아서 고래를 못 잡게 해야 합니다.”
“그건 이해가 가지만 마진이 줄지 않겠습니까?”
고래를 위해서 땀 좀 흘려야겠다고 작정한 박정기가 헐값을 제시했다.
항아리와 오크통을 구하기 어렵게 되자 조건을 덧붙였다.
“오크통을 제공해 주시면 한통에 10실버만 받겠습니다.”
“정말입니까?”
“제가 거짓말하는 거 봤습니까?”
증류소 직원들 수당이 한통에 2실버고, 박정기 땀과 배달료가 8실버다.
고래 기름이 안 팔리면 포경선 산업이 몰락 할 것이고, 그때 가격을 올리면 된다.
상인들이 물건을 인수해서 떠나가고, 김대건이 혼자 나타났다.
“안녕하셨습니까.”
“응? 어째 혼자 나왔어?”
“희선이는 에바를 따라갔습니다.”
“어디를 갔는데?”
“로테르담에 간다고 하더라고요.”
로테르담은 네덜란드 제 2의 항구 도시로 암스테르담 남쪽으로 50km 정도 거리에 있다.
“결국 공연을 하러 떠났구나.”
“네,”
“기장님도 같이 갔어?”
“아니요. 댁에 계세요.”
기장이 집에 있다는 말에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쇼팽의 건강 때문에 같이 갔을 거란 예상이 틀렸기 때문이다.
“으음. 이따가 들려봐야겠네. 공부는 잘하고 있고?”
“열심히 하고 있는데. 말을 배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말은 쉽게 배워지는 게 아니다. 3년 이상 꾸준히 해야 돼.”
“알겠습니다.”
박정기는 마중 나온 김대건에게 용돈을 주고 보냈다.
용돈을 매번 거절하더니 김희선이 오고는 주는 대로 받아가는 김대건이다.
“이 샘 비행기 잘 지키고 있어라.”
“저도 가고 싶은데요.”
“발목은 다쳐 가지고 어딜 돌아 다겠다는 거야?”
“힝! 알겠어요.”
오후가 되어 저택으로 가니 조용했다.
에바를 따라갔는지 메이드 몇 명이 안보였다.
“기장님은 어디 계신가요?”
“3층 방에 계십니다.”
박정기의 물음에 메이드가 대답했다.
“기장님, 어디 계세요?”
방안에 가득 찬 악기들 사이에서 기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왔는가? 악기 관리하고 있었네.”
“에바가 로테르담에 갔다면서요?”
“그래 고집을 피워서 어쩔 수 없었네.”
“왜 같이 안 가셨어요?”
“이것들을 두고 어떻게 가겠나?”
기장은 귀한 악기들과 보물급 문화재를 보면서 한탄했다.
“경비원을 더 고용하세요.”
“그래도 주기적으로 관리를 해줘야해.”
“메이드를 시키면 되죠.”
“아무나 만지면 안 돼, 잘 아는 사람이 관리해야 하는 거야.”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 기장을 딱한 눈으로 바라보던 박정기가 물었다.
“에바는 언제 돌아 온데요?”
“일주일 정도 걸릴 거야.”
“보고 갈려고 했는데 어렵겠네요.”
“뭐가 바쁘다고? 천천히 가면 되지.”
“조선에서 일이 터질 것 같아서 바로 가봐야 합니다.”
“음! 알겠네, 안부는 전해주겠네.”
“네, 저는 호텔로 가보겠습니다.”
박정기는 점점 창고로 변해가는 저택을 나와 호텔로 갔다.
저택을 박물관으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하던 박정기가 고개를 털어내며 생각을 지웠다.
호텔 로비에 들어서니 얀센사장이 손님들과 차를 마시고 있었다.
“어! 마리에트씨? 언제 오셨습니까?”
“안녕하세요, 대표님! 온지 며칠 되었습니다.”
벨기에서 총기 공장을 운영하던 마리에트 사장이 공장을 정리하고 직원들과 함께 박정기를 따라 가기로 했다.
“이 분들은 누구시죠?”
“저희 가족과 직원들입니다.”
“네 모두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박정기는 가족과 직원들에게 100실버씩 나누어주고 필요한 개인 용품을 사오라고 했다.
리노에는 상점이 없어서 개인용품을 살 곳이 없기 때문이다.
부담을 가지던 사람들이 억지로 쥐어주는 돈을 받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상점을 만들어야 하겠네. 누구에게 맡겨야 할까?’
“정직한 상인 한 사람 소개해 주십시오.”
“정직한 상인은 없습니다.”
“하하하 그렇겠군요. 그중에 적당한 사람 없을까요?”
“무슨 일인데 그러세요?”
리노시에 상점을 만들고 암스테르담에서 물건을 구입해 팔아보겠다는 생각을 밝혔다.
“그건 신세계 주식회사에서 관리하면 되지 않나요?”
“사람이 없어서 그렇죠.”
“제가 사람을 파견하겠습니다. 그리고 물건을 여기서 구매해서 보내면 되고요.”
“오! 아주 간단하군요.”
“평생을 해온 일입니다. 어려울 게 뭐가 있겠습니까?”
“하하하 맞네요. 그럼 사람과 물건도 구매 부탁 드립니다.”
“바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얀센사장은 신세계 주식회사의 2대 주주이자 부대표다.
암스테르담에서 모든 일을 총괄하고 있다.
“제가 부탁한 기술자들은 모두 준비됐나요?”
“네, 이 호텔에 머물고 있습니다.”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축음기는 지금 연구 중이니 조만간 시제품이 만들어 질 것입니다.”
“그렇게 빨리 됩니까?”
다른 일을 보느라 축음기는 만들지도 못하고 있다가 얼마 전부터 시작했다.
늦어서 미안한 마음에 변명을 했는데, 얀센사장의 반응에 박정기는 어리둥절했다.
“빠른 겁니까?”
“네, 저는 1년 정도 예상했습니다.”
“아! 그렇군요.”
얀센사장의 반응을 보고, 다시금 이 시대를 이해하게 된 박정기다.
리노에서는 발전 속도가 무척 빠른 편이라 다 그런 줄 알았다.
영화를 보고 호기심이 충만한 기술자들에게 완벽한 자료까지 제공해주었으니, 기술자들은 새로운 기술을 경험하기 위해서 몸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치익!
-동생! 큰일 났어. 청나라 놈들이 쳐들어오고 있다네. 치익!
얀센사장과 애기 중에 갑자기 울리는 무전기 소리에 박정기가 깜짝 놀랐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청나라 기병 1만기가 조선으로 향하고 있다는 급보가 올라왔네. 치익!
“어디까지 왔다는 데요?”
-지금쯤이면 요동성에 도착했을 거네. 치익!
“그럼 의주까지 얼마나 걸리는데요?”
-기병들이라 빠르면 사흘 늦어도 닷새 안으로 도착할 것 같네. 치익!
박정기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 늘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홀가분한 기분마저 들었다.
“일단, 형님이 의주로 가서 저에게 상황을 알려주시고, 무조건 압록강에서 막아보세요.”
-내가 꼭 가야 하는가? 치익!
“안 가면? 나는 누구하고 정보를 주고받습니까?”
-크응! 알겠네. 치익!
박정기는 특공대를 데려갈까 고민이 되었다.
“그리고 지난번에 노획한 말 중에서 100마리를 의주로 옮겨주세요.”
-왜 그러나? 치익!
“람보가 타고 다녀야 하니까. 좋은 말로 보내주세요.”
-아! 람보가 오는가? 치익!
김좌근의 들뜬 목소리가 들렸다.
“상황 봐서요.”
-꼭 데려오게, 누님이 불안해서 잠을 못 이루시네. 치익!
“알겠습니다. 무조건 강을 못 건너게 막아야 합니다.”
-꼭 그리하겠네. 치익!
무전기로 통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얀센사장이 신기한 듯 바라봤다.
조막만한 물건에서 못 알아들을 말이 나오고, 거기에 대답을 하는 박정기를 보면서 아마도 멀리 있는 사람과 소통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무전기입니다.”
“아마도 멀리 있는 사람과 대화할 수 있나 봅니다.”
“네, 맞습니다.”
“세상에 신기한 물건도 많군요.”
얀센은 저 물건의 효용 가치를 금방 알아챘다.
무역을 할 때 배나 해외 지점과 연락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1815년 네덜란드의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 군대가 동맹군에 의해 패배를 당했다.
승전소식은 런던의 네이선 로스차일드에 빠르게 전해졌고, 모두 패배 할 것이라고 예상해서 크게 폭락했던 영국 공채를 전 재산을 털어 사들였던 네이선 로스차일드가 유럽 제일의 금융 가문으로 성장하는 게기가 되었다.
이 소문은 상인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유명한 일화이다.
정보가 돈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얀센사장이 입을 열었다.
“그 물건을 구할 수 있을까요?”
“그건 곤란합니다. 대신 기장님께 말씀하시면 제가 바로 전달 받을 수 있습니다.”
“아! 그래서 기장님이 구매 목록을 보내오신 거군요?”
“맞습니다.”
박정기는 얀센사장에게 급한 일이 생겨서 내일 새벽에 출발해야 한다고 밝히고 구매 물품을 빨리 선적해 달라고 요청했다.
“물품은 바로 선적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기술자들은 내일 새벽에 탑승을 완료해야 합니다.”
“그리 준비를 시키겠습니다.”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한 식구 아닙니까?”
얀센사장은 비행기의 가치와 박정기가 가져오는 상품들이 특별하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소리 나는 기계와 사진기는 혁명적인 발명품이다.
무조건 맞추고 따르다 보면 언젠가는 세계에 손꼽히는 부자가 되어있을 것이다.
“대표님 아무 걱정 마시고 무슨 일이든 맡겨주십시오.”
“그리 말씀하시니 고맙습니다.”
다음날 새벽 암스테르담을 출발한 비행기는 서둘러 피라미드 호수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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