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 에바
29화, 설탕을 만들다.
더운 지역이라 온돌이니 아궁이도 필요가 없었고, 비만 피할 수 있는 집이면 되었다.
목공 마름인 노변근이 나서서 인사를 건네 왔다.
“나리, 잘 다녀 오셨습니까요?”
“네, 모두 잘 지냈습니까?”
“네 덕분에 호사를 누리고 있습니다요.”
“집을 많이 지었군요.”
“이런 집은 하루에 한 채씩 지을 수 있습니다요.”
박정기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쪽에는 지시한 대로 토루를 짓고 있었다.
벌써 2층 높이까지 흙벽을 쌓아 올려서, 그런대로 형태가 잡히고 있었다.
서로 다른 민족이 섞여 지내다 보면, 반드시 마찰이 생기게 되고, 유혈 사태가 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명목상으로는 외부 침입에 대비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하와이 원주민을 대비하는 것이다.
이주민이 많이 올 것이기 때문에 서둘러 만들어야지 차질이 없다.
“3층까지 토벽으로 쌓아야 하니까, 아래를 튼튼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땅을 파고 돌로 가득 채웠습니다.”
“기술자니까 어련히 잘하시겠지만, 100년을 쓸 수 있게 만들어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목숨 바쳐 만들어 보겠습니다.”
‘아니! 무슨 말만하면 목숨을 건데? 그냥 열심히 하면 되지.’
사탕수수 즙을 짜는 곳으로 이동을 했다. 커다란 롤러 사이에 사탕수수가 들어가면 액체가 줄줄 흘러나왔고, 가마솥에는 액체를 졸여서 원당을 만들고 있었다.
설탕공장 담당인 정종면 마름이 따라다니면서 설명을 해주었다.
“지금까지 만든 게 얼마나 됩니까?”
“총 8포대입니다. 하루에 2포대는 만들 수 있습니다.”
작업 과정을 살펴보니 더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사탕수수를 베어서 즙을 차는데 인력이 많이 필요하고, 즙을 깨끗한 천으로 여러번 걸러서 끓이고, 조청처럼 걸쭉해지면 입자가 생길 때까지 계속 저어서 주어야 한다.
입자가 생기면 천을 깔고 햇빛에 말려서 설탕을 만드는데, 힘이 들 뿐더러 들어가는 인력이 너무 많았다.
무엇인가 동력원이 필요했다.
부산물로 나오는 수수깡을 태워서 증기기관을 돌려도 괜찮기는 한데, 만드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발동기는 말할 것도 없고.
가장 간단한 것이 풍차다. 풍차의 나라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에서 온 선박 기술자가 있으니 가능한 일이다.
하와이는 무역풍 지대에 있어서 바람은 늘 있는 편이다.
선박 기술자와 목수들, 그리고 대장장이까지 호출을 했다.
‘말이 안 통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데.’
“부르셨습니까?”
“네 다들 모여보세요.”
박정기는 선박 기술자에게 할 일을 설명해 주었다.
“미스터 당신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사비 시몬스라고 합니다.”
“네 시몬스씨 이름을 기억하기 좋습니다. 다름이 아니고 저기 있는 롤러를 돌리기 위해 풍차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가능하시겠습니까?”
선박 기술자는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가능하지만 도와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사람은 여기에 많습니다. 이 사람들은 대장장이고, 저 사람들은 목수입니다.”
“오 그렇다면 문제될게 없겠군요.”
“문제는 말이 안 통한다는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기술자들은 다 통하는 게 있습니다.”
“그럼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박정기는 조선 기술자들을 보고 설명을 해줬다.
“이분은 불랑기에서 오신 선박 기술자입니다. 인사 드리세요.”
“안녕하십니까요?”
“안녕 하시랑가요?”
“진지 잡수셨습니까?”
제각각 인사를 했다. 시몬스씨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탕수수 즙을 짜는데 힘이 많이 들어가서 풍차를 만들려고 합니다. 이분이 풍차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니까. 풍차가 완성될 수 있도록 여러분이 힘껏 도와주세요.”
“네 알겠습니다요. 그런데 토루는 어떻게 할까요?”
“풍차가 완성될 때까지 잠깐 미뤄두세요.”
“알겠습니다요. 그런데 말이 안 통해서 되겠습니까?”
“이분이 그러는데, 기술자들은 다 통하는 게 있다던데 아닌가요?”
“아! 있습죠. 있습니다요.”
그렇게 일을 맡겨 두고 김 진사를 찾아갔다.
“진사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네 어인 말씀입니까?”
“대건이가 유럽에 남겠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목사가 되려는 가봅니다.”
“목사라면?”
“신부님 같은 겁니다. 서양에서는 천주교와 개신교가 나뉘어져 있습니다. 대건이가 간 곳은 개신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건 똑같지 않습니까?”
“네 똑같습니다.”
박정기는 자세히 설명할 필요를 못 느꼈다. 나중에 만나게 된다면 스스로 풀 문제니까.
“저도 보내주세요. 아버님!”
“어허! 아녀자가 어딜 간다는 거냐?”
“주님이 함께하시는데 어디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안 된다. 더 이상 거론치 말거라!”
“흑흑흑.”
진사의 딸 김희선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에잉~ 쯕쯕! 미안합니다. 못난 모습 보여서.”
“딸 가진 부모 마음 다 똑같지요.”
대건이 문제도 해결됐고, 이제 남은 건 최광용 별감이다.
마침 사탕수수 밭에 있다가 돌아온 최별감이 들어와서 인사를 했다.
“일이 있어서 오시는데 나가보지도 못했습니다.”
“무슨 일인가요?”
“여기 주민들이 사탕수수를 못 가져가게 방해를 합니다.”
최광용 별감이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그래서요?”
“처음에는 타일러보고 했지만, 가면 갈수록 말을 안 듣습니다.”
“그 문제는 국왕전하께 말해보겠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자경단을 만들어 달라는 말씀을 드리려고 했는데 공교롭네요.”
“자경단이면 스스로 지키는 군대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경찰이라는 말은 모를 것 같고, 뭐라고 해야 할까?’
“군대보다는 포도청이 어울리겠네요. 순찰을 돌고 문제가 있으면 무력도 사용하는 그런 단체죠.”
“몇 명이나 모으면 될까요?”
“10명으로 시작하고 조선에서 사람이 올 때마다 보충을 하죠, 처음에는 일을 하면서 자경단도 겸업으로 해야 할 겁니다.”
“사람이 없으니 그리해야겠죠.”
예전의 표어가 어렴풋이 생각났다.
‘일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일하는 자경단.’
이제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하와이는 당분간 조선인들의 발판이 되어야 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선에서 사람을 더 데리고 와야 하는데 시간이 애매하다.
캘리포니아는 뿌려 놓은 벼가 잘 자라서 수확을 할 때쯤, 이주 시켜야지 1년 간 먹고살 식량을 마련할 수가 있다. 그러니 아직 봄이니까 시간이 남아있다.
피라미드 호수에서는 윌슨이 병사들을 훈련 시키고 있으니 우리를 지킬 무력은 해결된 셈이다. 그리고 금도 잘 모으고 있어서 경제적인 이익도 많이 내고 있다.
피라미드 호수로 날아온 박정기는 독수리 발톱과 윌슨을 데리고 작전을 짰다.
말은 소중한 자원이니까 최대한 포획한다.
사람을 죽이는 것 보다는 생포를 우선한다.
정보를 취득해서 다음에 대비한다.
크게 이런 기본 원칙을 세워 놓고, 세부적인 것은 상황에 맞춰서 대처하기로 했다.
기병대는 기본 무장이 잘 갖춰져 있었고, 총알과 화약이 넉넉해서 사격 훈련을 많이 시켰다.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인지, 무엇보다 사기가 높았다.
일주일이 흘러 요새의 산 너머에 백인들이 도착해서 야영을 준비했다.
마을로 통하는 계곡은 좁고 깊었다. 저녁에 통과하기에는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누구나 하루를 묵어가는 것이 예상되는 지점이었다.
“예상대로 야영을 준비하는 구나.”
“그러게요. 어떻게 아셨어요?”
군대에 다녀오지 못한 윌슨은 전술적인 지식이 많이 부족했다.
“윌슨! 새벽에 기습할 거니까, 기병대를 데리고 숲 속으로 들어가서 조용히 대기해.”
“네 알겠습니다.”
“독수리 발톱! 우리는 저기 언덕 위로 올라가서 염탐을 해보자.”
“넵!
윌슨의 부대는 언덕 뒤에 숨어서 휴식을 취하고 육포를 먹었다.
박정기는 언덕에 올라 몸을 숨기고 망원경으로 야영지를 살폈다.
추격대까지 거리가 1km 정도이기 때문에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말은 100마리나 되는 데, 사람은 30명밖에 안 되었다.
‘말을 바꿔 타면서 왔구나.’
“저거 여자 아니야?”
“네! 여자 같습니다.”
“저기가 보여?”
“네 잘 보입니다.”
망원경도 없이 1km나 떨어진 곳에서 사람 얼굴을 알아본다. 박정기는 궁금해서 망원경을 줘봤다.
“이거로 봐봐라.”
“아이구, 어지럽습니다.”
처음 보는 것이라 그럴 수 있었다. 그래도 눈이 밝다는 것은 작전 수행에 큰 도움이 된다.
‘혹시 저 여자가 편지의 주인공 아닐까?’
쉬운 것은 포위하고 기습 공격하는 거지만, 사상자 없이 사로잡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아무래도 여자가 있어서 더 그랬는지 모른다.
밤이 깊어지면서 기온이 뚝 떨어졌다. 사막 기후라 낮엔 뜨겁고 밤에는 많이 추웠다.
추격대는 불을 피우고 자지만, 기병대는 불을 피울 수 없어서 추위에 그대로 노출됐다.
다행인 것은 담요를 나눠준 덕분에 그나마 견딜 수 있었다.
‘어휴 더럽게 춥네!’
박정기는 순간 좋은 생각이 났다. 이렇게 추울 때 물 폭탄을 맞으면 전투력을 완전히 상실할 것 같았다.
‘그래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면 덜덜 떨려서 조준도 못하겠지.’
추우니까 지금 빨리 공격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야간 비행은 위험하다.
“윌슨! 작전을 변경한다.”
-어떡해요?
“내일 새벽에 비행기로 물을 뿌릴 테니까, 네가 포위하고 있다가 모두 생포해.”
-반항 하면 요?
“이렇게 추운데 물 폭탄 맞으면 총도 제대로 못 쏠 거다.”
-헤헤 맞아요. 아마도 얼어서 죽을 걸요.
“그래 항복할 때까지 기다리면 될 거야.”
-네 알겠어요.
윌슨에게 지시를 해 놓고, 호수로 돌아와 새벽이 오기를 기다렸다.
어느덧 기다리는 새벽이 다가오고 있었다.
“윌슨 들리나?”
-네 들립니다.
“30분 후에 공격할 거니까. 전부 깨워서 준비 시켜.”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여자가 포함되어 있으니까, 과격한 행동은 자제 시키고.”
-여자요? 알겠습니다.
“몰래 접근해서 포위가 됐으면 연락해라.”
-네!
윌슨이 부대원을 데리고 은밀히 접근하고, 박정기는 비행기 시동을 걸고 호수 끝 먼 곳으로 이동했다.
‘이쯤이면 소리가 안 들리겠지.’
무전기에서 윌슨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대장님 포위 끝냈습니다.
“알았다. 출발한다.”
잠시 후 멀리서 새앵~ 하는 제트엔진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소리는 점점 커졌고, 놀란 추격 대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하늘을 바라보았다.
드래곤이 지나갈 때 나던 소리였다.
“모닥불을 꺼라! 빨리 모닥불을 끄고 엎드려라!”
산 너머에서 검은 물체가 튀어 나오더니.
쏴~아!
미처 대응하기도 전에 물 폭포가 쏟아져 내렸다. 차라리 이불 속에 있었으면 조금 더 나았겠지만 급하게 대피하느라 속옷 바람으로 나와 있었다.
“잘 투하됐어?”
-정확하게 투하됐습니다. 최고입니다.
“충분히 떨도록 천천히 진행해.”
-헤헤 네, 걱정 마세요.
추격대는 완전히 초토화 되었다. 모닥불은 꺼지고, 화약과 총기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강한 물 폭탄과 함께 모포는 날아갔고, 말들은 놀라서 날뛰었다.
탕!
“손들어! 항복하라”
기병 대원들이 포위하고 사격 자세를 취했다.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라.”
“.......”
“항복하면 살려주겠다. 무기를 버려라.”
추격대가 소란스러워졌다.
장교복을 입은 사람이 흰색 천을 흔들며 걸어 나왔다.
“항복하는 거요?”
“멕시코 경비대 후안 카를로스 중위요.”
“나는 람보! 기병대 총 사령관 검은 유령이요.”
“여기는 멕시코 땅인데, 왜? 영국인이 들어와서 우리를 공격하는 것이요.”
윌슨이 영어를 사용하니까, 영국 사람으로 착각한 것이었다.
“난 영국 사람이 아니요?”
“그럼 누구요.”
“미국 사람이요. 그리고 침략한 것은 당신들이오.”
“무슨 소리요, 여기는 1821년 코르도바 조약에 의해서 멕시코 땅이 되었소.”
“그건 모르겠고, 아무튼 여기는 우리가 주인이요?”
“저 야만인들이 여기 주인이라는 소리요?”
윌슨은 욱하고 올라오는 감정을 억누르고 큰 숨을 들이마셨다.
“당신들이 더 야만인이요.”
“왜? 우리가 야만인이요?”
“우리는 하늘을 날 수 있소?”
“우리도 드레곤을 잡으면 길들일 수 있소.”
“저것은 드레곤이 아니요. 사람이 만든 것이요.”
“거짓말 마오. 사람이 어떻게 하늘을 날 수 있겠소.”
“그러니까, 당신들이 미개하다는거요.”
"우리는 대 멕시코 제국이오."
“비행기를 태워줄 테니까, 항복하시오.”
“저걸 태워준다고요?”
“그렇소.”
“으으 항복하겠소.”
대화가 너무 초딩들 같았지만, 어찌 되었든 목적은 달성하게 되었다.
윌슨은 너무 쉽게 항복해 와서 당황스러웠지만, 카를로스 중위 입장에서는 더 이상의 대화를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추워서 온몸이 덜덜 떨리다 못해, 이가 딱딱 부딪혔다, 장교로써 너무나 치욕스러웠기 때문이다.
“무기를 버리고 이쪽으로 나오라고 하시오.”
“모두 무기를 버리고 항복해라!”
중위가 추격대를 향해 소리치자. 하나 둘 손을 들고 나왔다.
모두 물에 빠진 생쥐처럼 흠뻑 졌어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윌슨은 독수리 발톱에게 지시를 해서 모닥불을 여러 개 피우게 하고 모포를 나누어 주도록 했다.
사탕수수를 롤러에 넣고 짜낸 즙을 고운 천으로 걸러 불순물을 없애고 끓인다. 주의 사항은 타지 않게 계속해서 저어주어야 한다.
충분히 끓여 수분이 날아가고 걸쭉해지면 계속 저어주면서 식힌다. 그럼 알갱이가 만들어진다.
햇빛에 건조하면서 설탕이 가루로 변하게 자주 문질러준다.
설탕 가루를 체에 쳐서 완성하면 비정제 설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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