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 발전의 토대
58화, 헛 살았구먼, 헛 살았어.
전기톱 때문에 망신당한 박정기는 비행기로 돌아가 연료통과 오일을 찾아왔다.
“지금부터 설명을 잘 듣고,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세요. 알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예, 말씀해 보십시오.”
박정기는 게이지가 그려진 통에 오일을 부었다.
“이게 오일 그러니까, 기름입니다. 이 선이 있는 곳까지 부으면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휘발유인데 이것도 기름입니다. 이걸 이 끝까지 부어주면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노변근 팀장이 자신 있게 나서서 설명을 해나갔다.
“그니까 빨간 고추기름은 요 만큼 넣고, 노란 들기름을 이 끝까지 채우라는 말씀이시죠?”
어안이 벙벙해진 박정기, 뭐가 고추기름이고 뭐가 들기름인가?
“이게 기름은 맞는데, 고추기름이 아니고 윤활유라고 하는 겁니다. 먹으면 죽어요. 그러니까 절대로 먹지 말고, 이 기계에만 쓰는 겁니다. 알겠습니까?”
“아! 그렇구나.”
“알겠구먼요.”
이제 좀 알아듣는 것 같아서 다음으로 넘어갔다.
“이렇게 혼합한 기름을 잘 흔들어서 여기 이 구멍으로 넣어주는 겁니다.”
박정기가 뚜껑을 열고 혼합유를 부었다.
“질문 있는데요. 왜 기름 두 개를 섞어주는 겁니까?”
“오~ 좋은 질문입니다. 이 노란 기름은 태워서 힘을 내는 것이고, 이 빨간 기름은 쇠끼리 갈려서 마모되지 말라고 섞어주는 겁니다. 이해가 됐습니까?”
안정호 팀장이 큰 발견을 한 것처럼 기뻐서 말했다.
“아! 그럼 이 빨간 기름을 마차 바퀴에 칠해도 되겠네요?”
“그렇지요. 좋은 생각입니다. 그래서 윤활유라고 하는 겁니다.”
“잘 만들었구먼.”
“신기하네. 누가 만들었어요?”
“그건 모르겠습니다. 다음으로 넘어가죠.”
박정기는 다른 기름을 가져와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 기름은 체인 오일이라고 하는 건데, 이 체인이 부드럽게 움직이라고 넣어주는 겁니다.”
노변근 팀장이 나서서 아는 체를 했다.
“그건 요 구멍에 넣는 거죠?”
“네 잘 아시네요. 이 구멍에는 이걸 넣어주는 겁니다.”
“그림이 그려져 있어서 금방 알겠구먼.”
“그러게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앞으로 우리도 이렇게 그림을 그려보자고.”
“그거 좋은 생각이여.”
하나를 알려주면 둘을 깨우치는 기술자들이다.
“자 그럼 준비는 됐으니까 뒤로 물러나 보세요. 이제 시범을 보이겠습니다.”
“또 방구 뀌시는 겁니까?”
“하하하”
“허허허”
“크크크”
박정기는 얼굴이 확 뜨거워 졌다.
“크음, 이번에는 진짜 기대해도 좋습니다. 이 스위치를 켜고 이 줄을 당기면 됩니다.”
박정기가 줄을 힘차게 당기자, 한방에 시동이 걸렸다.
프륵! 애앵 앵앵~ 앵 앵앵~
“이게 시동이 걸린 겁니다. 이제 나무를 베어보겠습니다.”
박정기는 주변에 있는 나무에 대고 액셀을 올렸다.
애애앵~~~~~~~~~~~
“넘어간다. 어어어!”
“비켜!”
“으악!”
순식간에 베어진 나무가 보트에서 내리던 사람들을 덮쳤다.
“크악 악~”
“어이쿠!”
“괜찮습니까?”
“아이고 죽겠네.”
다행이 굵지 않은 나무였고, 나뭇가지에 맞아서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다.
노예들이 작은 상처에 꾀병을 떨어 댔다.
“미안합니다. 크게 다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이게 안 다쳤다고요? 일주일은 일을 못하겠는데요.”
“뭐? 일주일이나 일을 못합니까?”
“아이고 뼈가 이상한 것 같은데?”
박정기는 부화가 치밀었다.
어떻게 하든 일을 피하려는 노예 근성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럼 같은 조원들이 일주일 굶어야겠네요. 식량을 아껴서 좋긴 한데.”
“아이고 무슨 말씀을 당장 일할 수 있습니다. 아파도 참고 해야죠.”
“아니 아프면 일주일 푹 쉬라니까.”
박정기가 막 나가자, 노예는 몸을 턱턱 치면서 아무렇지 않다고 했다.
“이것 보십시오. 멀쩡합니다. 바로 일할 수 있습니다.”
“큼! 그럼 다쳤으니까 소세지 하나씩 더 주라고 하겠습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다시 기술자들에게 돌아오니 전기톱을 붙잡고 난상 토론을 하고 있었다.
“보게 이게 돌아가면서 나무를 자르는 거라니까.”
“그려 그런데, 이걸 어떻게 돌리느냐, 그걸 모르겠다 니까?”
“기름은 어디서 태우는 거여? 아무리 봐도 아궁이가 안 보이는데.”
“맞아, 굴뚝은 여기 있는데 아궁이가 없어야.”
박정기가 무슨 얘기를 하나 지켜보다가 웃음이 나와 키득 거렸다.
“크크크윽.”
“워째, 웃는 거요?”
“이건 내연기관이라고 하는 겁니다. 속에 가두고 태운다고 내,연,기관입니다.”
“그러니까. ‘안 내’자에 ‘탈 연’자를 쓰는 구나.”
“네 맞습니다.”
박정기는 전기톱을 보여주며 사용법을 설명했다.
“이 전기톱은 이렇게 잡고 써야지 다치지 않습니다. 잘못하면 크게 다치니까 꼭 주의를 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전기가 뭐요?”
“전기는.... 그것이? 갑자기 전기는 왜 물어 본 겁니까?”
박정기는 설명을 하는데 갑자기 다른 애기를 해서 당황스러웠다.
“금방 전기톱이라고 했잖아요?”
“제가 전기톱이라고 했다고요?”
“맞아요. 여기 다 들었지?”
“맞어, 나도 들었구먼.”
“나도 전기톱이라고 분명히 들었는디.”
박정기는 그제 서야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인지했다.
“아! 제가 습관이 들어서 전기톱이라고 한 겁니다. 엄밀히 말하면 엔진톱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럼 엔진은 뭔가요?”
“그게 영국말로 엔진이고 조선말로는 내연기관이라고 하는 겁니다.”
“아 내연기관이 엔진이구먼.”
“그렇죠. 엔진.”
다시 박정기의 엔진톱 강의는 시작되었다.
기술자들이라 하나를 알려주면 여러 가지로 응용해서 사용했다.
“이것 봐 이렇게 하니까 판자를 금방 만들잖아.”
“그러게 판자를 만들려면 둘이서 하루 종일 톱 질을 해야 하는데. 이거로 하니까 순식간이 구먼.”
“봐 이렇게 하면 끌로 팔 필요도 없어.”
자르고, 켜고, 구멍 뚫고, 파내고 엔진톱을 가지고 나무를 조각 하듯이 마음껏 다루고 있었다.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기본만 알려주면 알아서 사용했다.
엔진톰을 가지고 한참 연구하는 기술자들을 보고 있자니, 뭔가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저런 건 어디서 나는 거요?”
“아! 시몬스씨 우리나라에는 없는 게 없습니다. 하하하.”
“그 나라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요?”
순간 눈앞이 깜깜해지는 박정기.
“여기가 우리나라 아닙니까. 하하하”
“그런데 왜 큰 배도 없고, 도시도 없는 겁니까?”
“아 그거야 이제 만들어야죠.”
“그럼 아까 보여준 건 어디에 있는 거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말문이 막혔다.
“그것이~ 뭐라고 해야 할까? 으음.”
“나는 죽기 전에 그곳을 꼭 가보고 싶소. 보여주겠소?”
“그럼요. 꼭 보여 드릴 테니 오래오래 사세요.”
“별 낙이 없었는데, 다시 여기가 뜨거워졌소. 고맙소.”
처음 본 영화에 열정이 생겼는지 시몬스씨가 가슴을 쓰다듬었다.
박정기는 주머니에서 사진을 꺼내 시몬스에게 주었다.
“이걸 보면 만들 수 있겠습니까?”
“겉모양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지만, 속은 알 수 없군요.”
“배가 침몰하지 않으려면, 내부에 격실을 만들어야 합니다.”
시몬스가 다가서며 큰 소리로 반문했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침몰하지 않는 배가 있다고요?”
“네 침몰하지 않도록 만들면 됩니다.”
“하~ 침몰하지 않도록 만든다? 내가 헛 살았구먼, 헛 살았어.”
그동안 자신이 만든 배를 타다가 죽은 사람이 얼마인가?
침몰하지 않게 만들었다면 수많은 생명을 살렸을 것이다.
상상하지도 못했다. 배는 으레 침몰하는 것인 줄 알았다.
요행이 있으면 오래 살아남고, 재수가 없으면 일찍 죽는 것이 뱃사람들의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침몰하지 않는 배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어떻게 만드는 것이요. 어서 말해보시오.”
“배를 만들 때 격실 여러 개를 만드는 겁니다. 그럼 한 곳이 물에 잠겨도 나머지 격실이 받쳐주니까, 침몰하지 않는 겁니다.”
“허~ 이렇게 간단히 만들 수 있다니.”
박정기가 바닥에 그림을 그려가며 시몬스씨와 심각한 얘기를 하자, 조선 기술자들이 몰려와 함께 들었다.
“이렇게 만들면 훨씬 튼튼하겠는 걸.”
“그러게 안쪽에서 격실이 힘을 받쳐주니까, 더 크게 만들 수 있겠어.”
“맞아, 이렇게 만들면 용골이 필요 없잖아?”
“용골은 있어야겠지, 그래도 연결해서 더 길게 만들 수 있겠는데.”
조선인 기술자들은 목선의 한계를 뛰어넘는 배가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용골의 길이가 목제 선박의 한계이다. 용골을 이어 붙이면 배가 반으로 갈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제 용골을 쓰는 경우도 있지만 어려움이 많다.
“짐은 많이 못 실어도 안전은 하겠네.”
“명줄보다 중헌게 어딨어?”
“그럼! 살고 봐야지.”
“함 만들어 보세, 가라앉지 않는 배!”
“그래 한번 만들어 보자고.”
기술자들의 얼굴에 희망과 열정이 가득했다.
“그런데 그 큰 배는 왜 가라앉은 거여?”
“그러게, 그 배에도 격실이 있었어! 사람들이 갇혀서 못나왔잖아.”
“아 그건 빠른 속도로 빙하에 부딪히는 바람에 여러 객실에 물이 차서 그런 겁니다. 그래도 가라앉을 때까지 오랫동안 떠있을 수 있었잖아요.”
박정기가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길게 갈라진 것을 표현해 주었다.
“아 그렇구나. 그럼 앞에는 격실을 쫌쫌히 넣고 중간은 넓게 하면 어떨까?”
“양쪽으로 두칸을 만드는 것보다 가운데 한 줄을 더 넣어 세칸을 만들면 어뗘? 그럼 절대로 가라앉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럼 짐을 실을 공간이 너무 적지 않나? 그리고 무거워질 것 같은데.”
열정적이 토론이 계속되자 박정기가 중재를 해야 했다.
이미 답은 모두 나와 있는데, 소모적인 논쟁만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안 팀장님 말씀처럼 격실을 세 칸으로 넣는 것은 군함을 만들 때 하면 됩니다.”
“아! 그렇구나. 포탄을 맞아도 끄떡없겠네.”
“네 그리고 선체를 이중벽을 만드는 방법도 있지만, 지금 사용할 기술은 아닙니다. 나중에 철로 만들 때 쓰시면 됩니다.”
“쇠로 배를 만든다고요?”
“네 쇠로 만들어야 진정한 배라고 할 수 있죠?”
사람들의 입으로 파리가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한결같이 입을 쩌억 벌리고 있는 모습이 너무 웃겼다.
“하하하 뭐가 그리 놀랍습니까? 쇠로 만든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데.”
“허허허 나는 여태 뭐하고 산 거냐?”
“그러게 군기시에서 내가 최고인 줄 알았는데, 여기 서는 바보가 된 기분이라니까.”
“맞어, 죄다 다시 배워야겠구먼.”
“새로 시작해 보자고, 좋은 선상님 계시니 께~”
급 겸손해지는 기술자들을 보면서, 박정기는 어쩌면 더 좋은 결과가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그럼 이제 다른 장비도 사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예! 많이 가르쳐 주십시오.”
“맞어. 다 풀어보쇼.”
발전기 사용법과 주의 사항, 그리고 전동 윈치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워매! 이게 뭐 다냐?”
“황소 한 마리도 매달겠구먼.”
“황소가 뭐여? 배도 한척 매달겠구먼.”
큰 나무에 윈치를 매달아 놓고 스위치를 켜니 아름드리 나무가 통째로 끌려 올라갔다.
“이건 윈치라는 건데, 무거운 물건을 옮길 때 유용한 겁니다.”
“거중기와 비슷한 거군요.”
“네! 맞습니다. 하지만 이건 전기로 작동되는 거니까. 저 발전기가 꼭 있어야 합니다.”
“아! 전기톱! 그 전기가 저거군요.”
“하하하 맞아요. 그 전기가 바로 저겁니다.”
사람들이 발전기와 전선을 만지작거렸다.
“어! 잠깐만요. 이건 손으로 만지면 죽습니다. 특히 젖은 손으로 만지면 안돼요.”
“아무것도 없는데 왜 죽습니까?”
“이 전선 속으로 눈에는 보이지 않는 전기가 흐릅니다. 그게 몸에 닿는 순간 사람이 죽을 수 있으니까 조심하세요.”
“워매, 무서운 거, 그럼 독 아녀?”
박정기는 독이라는 소리에 빵 터질 뻔했다.
“큼! 번개 아시죠. 이 속으로 약한 번개가 흐르는 겁니다. 번개에 맞으면 사람이 죽죠? 같은 원리입니다. 아시겠죠?”
“아! 번개가 전기구나.”
“정답, 그러니까 특히 주의하세요.”
“애고, 나는 무서워서 못쓰겠다.”
박정기는 전동 드릴로 시범을 보여줬다.
“이것도 전기로 하는 겁니다. 드릴을 끼우면 구멍을 팔 수 있고, 드라이버를 끼우면 나사못을 박을 수 있습니다.”
박정기가 차례로 시범을 보여주자 다시 입이 함박 만하게 벌어졌다.
“이틀이면 배한 척 만들겠구먼.”
“에이! 그건 힘들고 닷새면 한 척 만들겠네.”
그들이 말하는 건 나룻배 같았다.
나머지 자잘한 공구들까지 설명을 마치자, 기술자들은 더욱 의욕에 불타올라 당장 배를 만들자고 해서 박정기가 극구 말릴 수 밖에 없었다.
박정기는 러시아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어떻게 필요한 것들만 제대로 챙겨 놓았는지 미리 예측한 것 같았다.
사실 박정기를 위해서 준비한 건 아니고, 모든 것이 인명 구조 활동에 필요한 장비로 매뉴얼에 있는 품목들이었다.
그렇게 장비 다루는 법과 배의 구조를 설명하다 보니 하루 해가 저물었다.
승무원들이 준비한 음식으로 간단히 저녁을 마친 노예와 경비원들이 선착장으로 몰려들었다.
“저 사람들 왜 저기에 있어?”
“비행기로 간다는 데요.”
“왜?”
“영화 본다고.....”
말하는 장금이도 영화가 보고 싶은 모양이다.
‘내가 원죄지. 내가 죄인이야, 그때 왜 영화를 보여줬을까?’
“그냥 여기서 보여준다고 해.”
“여기서 볼 수 있어요?”
“그래 TV를 가져오면 되니까, 여기서 볼 수 있어.”
“그런데, 왜 진작 안 보여 줬어요?”
“뭐를?”
“그동안 한번도 영화를 안 보여 줬잖아요.”
“그건......”
‘내가 죄인이지, 내가 잘못한 거야. 앞으로 매일 틀어 달라고 할텐데, 걱정이다 걱정.’
박정기는 비행기에서 영화만 보고 있을 승무원을 생각하니 한숨이 나왔다.
‘어디 다 죽어봐라, 뭐로 틀어줄까? 스타워즈? 아니지, 주라기 공원이 좋겠네. 흐흐흐’
Comment '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