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 전리품
101화, 황제의 항복을 받아내다.
포로를 분리하도록 지시를 하고 있던 박정기의 예민한 귀에 황상이라 단어가 박혔다.
‘황상? 혹시 이중에 황제가 있나?’
공터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훑어보다가 얼굴이 하얗고 비쩍 마른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에는 수염 없는 늙은이 하나와 수염 없는 젊은이 하나가 딱 붙어있고, 그 주변으로 4명의 건장한 청년들이 에워 쌓고 있었다.
1차 아편전쟁 영상을 보다가 도광제 어진이 나와서 캡쳐해 뒀던 사진을 꺼내서 비교해 보았더니,
“어진하고 똑같이 생겼네.”
“뭐가요?”
윌슨이 다가와 사진을 보며 물어왔다.
황제는 박정기와 눈이 마주치자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저자가 왜 나를 쳐다보는 것이냐?
-걱정 마소서 아무도 몰라 볼 것이옵니다.
-그것이 정말이냐?
-네이~
박정기는 황제를 중심으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한 겹씩 걷어냈다.
“저 사람들 빼내.”
“네.”
전방에 있던 사람들을 빼내고 좌측에 있던 사람, 후방의 사람, 우측의 사람들을 제외시켜 나가자, 황제 주변으로 30여명만 남게 되었다.
“하하하 황제 폐하 이제 나오시지요.”
“황제 폐하?”
통역하던 이씨가 기겁을 했다.
그 순간이었다.
-잡아라!
무관들이 주변 사람들을 인질로 잡고 단도를 목에 들이댔다.
“모두 황제 폐하를 옹호하라!”
“가까이 붙어라!”
몇몇은 바닥에 머리를 박았고, 몇몇은 끌려가 황제의 방패막이가 되었다.
황제를 중심으로 4명의 호위 무관과 20여명의 백성들이 둘러서서 황제를 감쌌다.
포로로 잡혀있던 병사들이 동요하기 시작했고, 관리들도 황제 쪽으로 가려했다.
“막아! 사살해도 좋다.”
“네.”
탕!
윌슨이 공포탄을 쏘자 잠시 진정이 됐다.
특공대원들도 사태를 인지했는지 경계태세를 강화했다.
그 순간.
휙!
단도 한 자루가 빠르게 날아왔다.
척!
박정기가 날아오는 단도를 가볍게 잡아냈다.
“이런 쌍놈이!”
탕!탕!탕!탕!
박정기가 말릴 사이도 없이 윌슨의 리볼버 소총이 불을 뿜었다.
황제의 호위 무관 4명의 머리에 구멍이 뚫렸고,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황제의 얼굴에 뜨겁고 검붉은 피가 뛰었다.
“으악! 피다.”
“황상! 진정하소서.”
황제가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리자, 핏물이 얼굴전체로 번지며 흉신악살처럼 피 칠갑을 했다.
“황상!”
“폐하!”
지켜보던 백성들과 병사들은 황제가 다친 줄 알고 바닥에 엎드려 통곡을 했다.
수많은 사람 중에 서있는 자는 황제와 태감 둘 뿐이다.
“잘했어, 윌슨.”
“헤헤, 제가 명사수예요.”
“그래 맞다. 최고 특등사수다.”
기분이 좋아진 윌슨은 싱글벙글했고, 황제는 절망했다.
* * *
비행기 기내에는 급히 조달한 테이블과 의자가 설치되었다.
의관을 갈아입은 황제가 앉아있고, 반대편에는 박정기가 앉았다.
“윌슨 사진 좀 찍어봐.”
“알았어요. 그런데 왜 좋은데 놔두고 여기서 이래요?”
“일본도 항복할 때 미주리호에서 서명했잖아.”
“아! 그렇구나.”
윌슨이 돌아가며 스마트 폰으로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다.
황제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미청 조약문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 청나라를 위해서 이러는 겁니다. 언제까지 아편에 병들어가는 백성들을 보고만 있을 겁니까? 그리고 한해에 수천만 냥씩 은자가 유출되고 있지 않습니까.”
“정말 영국이 아편을 팔지 못하게 해줄 것이요?”
“물론입니다. 그리고 산속에서 재배하는 양귀비도 모두 찾아내서 알려드리겠소이다.”
“으음, 그래도 국가의 땅을 달라고 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소.”
“누가 그냥 달라고 합니까? 돈을 주고 사는 겁니다. 청나라 사람도 돈 주면 땅을 살 수 있지 않습니까? 제 2조항에 미국 시민도 청나라 사람과 동일한 대우를 해준다는 내용이 있으니, 당연히 땅을 살 권리도 있는 것입니다.”
“끄응 알겠소.”
“자! 이제 옥새를 찍으시지요.”
“청나라가 위험에 처하면 도와준다는 말 잊지 마시오.”
“물론입니다. 조선과 싸우지만 않는다면 무조건 도와 줄 겁니다.”
“조선과 전쟁이 나면 어떻게 되는 거요?”
“우리는 당연히 조선 편에서 싸울 겁니다.”
“끄응!”
황제는 미청 조약문에 묵직한 옥새를 찍었다.
그 순간 윌슨이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박정기는 만년필을 꺼내 미국 전권대사 박정기라고 쓰고 서명을 했다.
“귀국은 옥새를 찍지 않소?”
“미국은 서명이 옥새나 똑같이 효력이 있습니다. 서명은 남들이 따라 하기 힘드니까 오히려 더 낫죠.”
“으음! 안 그래도 가짜 옥새를 찍은 문서가 발견되고 있소.”
“그렇다면 종이를 따로 만들어야 합니다. 아무도 모방할 수 없는 종이를 사용하면 허위 문서를 막을 수 있습니다.”
황제는 고개를 끄떡였고, 서로 문서를 교환해서 한부 더 서명 날인했다.
조약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조, 미청 양국은 영원한 화친을 맺는다.
2조, 양국의 국민은 생명, 재산, 이동, 자유, 법적으로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보장한다.
3조, 청국의 외교와 통상은 미국의 보호 아래 이루어진다.
5조, 미청 양국은 상호보호를 원칙으로 방위조약을 별도로 체결한다.
4조, 국제무역은 특구로 지정된 북경, 홍콩, 상하이, 청도, 천진 5개 특구에서만 허용된다.
5조, 국제통화는 미국의 화폐를 기준으로 사용한다.
6조, 발명품의 특허와 국가 전략 기술과 물자에 관한 권리와 의무는 미국의 법률에 따른다.
7조, 청국은 미 대사를 공격함으로 인해 발생한 전쟁배상금으로 1억 냥을 현물과 토지로 배상한다.
이와는 별도로 박정기의 생명을 위험에 빠트리고 공격한 대가로 청의원(이화원)과 원명원을 포함한 주변 땅을 개인적인 보상으로 박정기에게 영구히 양도한다.
8조, 청국은 대만을 미국에 1천만 냥에 매각한다.
9조, 양국 국민은 법적 절차에 따라 상대방의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
10조, 양국은 범죄인의 인도와 수사에 적극 협력한다.
11조, 미국의 기업은 청나라의 지하자원을 개발하고 이익금의 3할을 청 황실에 제공한다.
12조, 미국정부와 청 황실은 복권과 경마, 카지노를 50:50 공동으로 투자하고 운영은 미국이 맡는다.
박정기는 위와 같이 미청 화친 조약을 체결하고 서명했다.
앞날까지 내다보고 만든 조항이기 때문에 청나라는 영구적으로 미국의 식민지나 다름없다.
전쟁배상금으로 받은 무역특구의 운영은 미국이 갖게 된다.
중국에서 생산된 모든 물건은 미국의 중개로 수출되고, 모든 수입품은 미국의 중개로 수입되니 사실상 중국의 세관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수입되는 물건의 가격을 마음껏 조정할 수 있고, 수출되는 상품의 가격도 마음대로 정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발생하는 이익은 황실과 잘 나누어야 불만이 없어지는 법이다.
박정기는 곳 바로 청의원(이화원)과 원명원에 대한 압류를 진행했다.
박정기가 해당지역에 머물던 사람들에게 모두 미국의 국적을 주겠다고 했지만 절반 넘는 사람들이 떠나겠다고 했다.
“형님! 청의원으로 군대를 이끌고 오세요.”
-갑자기 무슨 일이야? 치익,
“황제를 잡아서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그러니 포위망을 풀고 빨리 이쪽으로 오세요.”
-하하하 자네는 정말 신출귀몰하군, 그새 황제를 잡았단 말인가. 치익.
1시간 후 조선의 기병대가 이화원에 도착했다.
“오셨습니까?”
“황제는 어디 있나?”
“비행기에 있습니다.”
“한번 봐야지.”
“그 전에, 이 지역을 전체를 철저히 경계해주세요.”
“왜 그러나?”
“황제가 여기에 잡혀있는걸 알면 청군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아 그렇군, 걱정 말게.”
김좌근이 조선군을 배치하는 동안 박정기는 원명원을 둘러봤다.
“히야! 너무 멋져요.”
“저는 여기에 살고 싶어요.”
김혜수가 말했다.
“그래? 그럼 살아!”
“정말요?”
“그래.”
“야! 신난다. 나는 여기에 산다.”
“우리는요?”
다른 승무원들이 황당하다는 듯이 묻는다.
“니들은 비행기 타야지.”
“엥? 그럼 저는 비행기에 못 타요?”
“너는 여기를 지켜야지.”
“으앙~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뭐가 어디 있어? 지가 원해서 해줬더니.”
김혜수는 입이 삐쭉 나와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일행은 놀이공원을 산책하는 기분으로 원명원 구석구석을 살폈다.
“여기가 정말 우리 거예요?”
“무슨 말이야? 내거지.”
“비행기에 대포를 쏴서 보상금 받은 거라면서요.”
“그래.”
“그럼 우리도 비행기에 있었는데. 우리한테는 뭐 줄 거예요?”
“으음~그건~”
이 샘의 질문에 박정기는 할 말이 없어서 망설이고 있었다.
“빨리 말해보세요?”
“그건 네가 황제한테 받아! 왜 나한테 달라고 하는 거야?”
박정기가 화를 버럭 내자, 이 샘은 찍소리도 못하고 입을 닫았다.
박정기가 씩씩거리면서 앞서나가자, 다른 승무원들이 이 샘을 한대씩 쥐어 박았다.
“아야! 악! 아야! 나한테 왜 이래?”
“하여튼 이년이 분위기 다 망친다니까?”
“웬수가 따로 없어, 에잉~”
“분위기 좋았는데 이게 뭐야?”
승무원들은 박정기의 기분을 살피며 뒤를 졸졸 따라 다녔다.
건물마다 살펴보니 정말 보물급의 물건들이 잔뜩 들어있었다.
“햐~ 이것만 해도 나라를 사고도 남겠다.”
“와~ 이게 다 우리 거예요?”
“아이고 저년이 또?”
“입을 꿰매 버려야겠어.”
“맞아.”
입만 열면 사고를 치는 이 샘에 대한 성토가 이루어졌다.
박정기는 스마트 폰으로 보물 창고의 사진을 모두 찍었다.
분실물이 생길 경우 사진과 비교해 보면 무엇이 없어졌는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비행기에서 가져온 케이블 타이로 문과 창문을 모두 잠그면서 건물마다 특공대원들을 배치했다.
“당분간 여기를 철저히 지켜라! 도둑놈이 들어오면 즉시 사살해버리고.”
“넵, 알겠습니다.”
양명원의 내부는 특공대에게 맡기고, 담장 밖의 경비는 조선군이 맡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서양식 궁전은 외관 뿐만 아니라 실내도 유럽의 어느 궁전 못지않게 화려했다.
“저 진짜 여기에 살아요?”
“그렇다니까 몇 번을 말해.”
“정말이죠? 와 신난다.”
서양식 궁전을 보고서야 마음을 굳힌 김혜수는 펄쩍펄쩍 뛰면서 좋아했다.
다른 승무원들은 살짝 후회하는 듯했다.
“잘 지키고 있어라!”
“가시게요?”
“그래. 조선왕 좀 만나고 와야겠다.”
“저 혼자 있어요?”
“그럼 누가 있어?”
“아앙~ 무서워요.”
결국 일행을 따라나서는 김혜수다.
비행기는 황제를 태우고 김좌근과 함께 심양으로 향했다.
황제의 표정은 미묘했다.
납치당하는 두려움과 하늘을 난다는 기대감이 섞여서 그 속을 알 수 없었다.
“하늘을 날아보니 어떻습니까?”
“하~ 마음이 심란해서 무슨 기분인지 모르겠군.”
“어디 가보고 싶은 곳이 있습니까?”
“영국 놈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광동에 가보고 싶군.”
황제라고 그래도 나라걱정은 하고 있는 도광제다.
“가보죠. 기분 푸시고 구경 잘하세요.”
박정기는 천진항부터 구경시켜주었다.
“여기가 천진입니다. 어떠세요?”
“이렇게 금방 올 줄은 몰랐군.”
“광동까지도 한시진이면 갈 수 있습니다. 오늘은 구경하면서 가야하니까 조금 더 걸릴 겁니다.”
“정말 대단하군.”
비행기는 방향을 남으로 돌려 내려갔다.
“여기가 태산입니다. 진시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고 하지요.”
“짐은 하늘을 바라볼 수가 없다네.”
도광제는 자신의 처지가 한탄스러워 하늘을 볼 수가 없다고 했다.
“너무 자책하지 마십시오. 이제 미국과 친선을 맸었으니 좋은 일만 있을 겁니다.”
“그랬으면 좋겠네.”
다음으로 남경을 거쳐 소주와 항저우 상공을 날았다.
박정기는 항저우 하늘을 선회하며 서호를 구경시켜주었다.
“여기가 서호입니다. 어떻습니까?”
“하늘에서 보니 작고 초라해 보이는 군.”
“다음으로는 황산으로 가겠습니다.”
비행기는 황산을 몇 바퀴 선회하고 광주로 향했다.
5대 명산 중 두 군데나 보여주니 황제의 마음이 조금 풀어지는 듯했다.
“저거 양이 놈들이 아닌가?”
“맞습니다. 어째 서로 다투고 있는 것 같은데요.”
“저런 쳐 죽일 놈들이 감히 짐의 백성을 핍박하다니.”
영국 동인도회사 소속의 범선이 대포를 발사하는 지 연기가 자욱했고, 해적으로 보이는 정크선은 대포에 맞아 거의 침몰 직전이었다.
그런 상황이 황제의 눈에는 영국 놈들이 자신의 선량한 백성을 공격하는 것으로 보였는가보다.
‘에고, 아무리 팔이 안으로 굽는다 해도?’
"박 대사 저놈들을 물리치고, 우리 백성을 구해주시오.”
“예 알겠습니다.”
영국 놈들도 나쁜 짓을 많이 하고 다니기 때문에 죄책감 없이 공격 명령을 내렸다.
[목표는 영국 범선, 발사!]
쾅!
펑~ 화악
비행기가 최적의 코스로 선회하자 대포가 불을 뿜었다.
초탄에 정확히 갑판을 명중했고, 포탄이 갑판을 뚫고 들어가 안에서 폭발했다.
다음 탄도 선체 측면을 뚫고 들어가 안에서 폭발했다.
세발 째 포탄이 안에서 터지자 갑자기 거대한 폭발과 함께 큰 배가 두 동강이 나고 연기가 하늘높이 솟았다.
콰쾅! 쩌저적!
범선 안에 있던 화약통을 명중해서 대량의 화약이 유폭을 일으킨 것이다.
순식간에 두 동강이나 가라앉는 배를 보면서 황제가 탄성을 토했다.
“와! 굉장하군.”
“이제 속이 후련하십니까?”
“후련하고 말고, 짐이 즉위한 이후로 외세에 시달리지 아니한 적이 없었다네.”
“앞으로 미국이 지켜드리겠습니다.”
비행기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어서 박정기도 흡족했다.
박정기는 홍콩 하늘을 돌면서 무역특구와 관리에 대해 정확히 황제에게 각인시켜주었다.
비행기는 다시 북쪽으로 방향을 돌려 심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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