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 발전의 토대
57화, 황제가 보낸 봉황 추격대
타이타닉 영화가 끝나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어서 기장님께 문자를 보냈다.
-기장님 안녕하세요?
-무슨 일인가?
-극장은 잘되고 있어요?
-잘된다네.
기장님의 답변에 성의가 없는 것을 느낀 박정기는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했다.
-뭐하고 계세요?
-지금 쇼팽하고 술한잔하고 있다네.
-아! 위대한 음악가요?
-그렇지, 바쁜 거 없으면 다음에 연락 하세.
-네.
에바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지만, 분위기가 아닌 것 같았다.
‘장금이도 영화에 미쳐서 나한테 저리 비키라고 하고, 기장님도 냉랭하시고, 뭐가 이렇게 허전하지?’
바쁘게 지냈던 것이 그리울 지경이었다.
밖에는 영화 소리와 감탄사가 들려오는데, 소란 속에 고요랄까? 괜히 센티 해지는 박정기다.
-저거 철로 만든 거 맞지?
-맞습니다. 배가 한양 만 합니다.
-한양 사람 다 타고도 남겠다.
군기시 장인들은 비행기에 이어 정신적 충격을 제대로 받고 있었다.
타이타닉 실내의 화려함이란 비행기 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오히려 비행기가 초라해 보일 지경이었다.
-어머머 저 남자 너무 멋이지 않아?
-대장님보다 더 멋있다.
-나는 대장님이 더 좋아.
-대장님한테 저렇게 해달라고 해야지.
-나도, 그런데 비행기에서 할 수 있을까?
타이타닉의 명장면, 여주의 뒤에서 남주가 손을 마주잡고 팔을 펼지는 장면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저런 배를 어떻게 만들어
-그러게 10년 동안 만들어도 못 만들겠다.
-그런데 저런 배가 진짜 있는 거야?
-너 바보냐? 있으니까 나오지?
영화를 보면서도 궁금한 것들은 알아서 새겨듣는 사람들이다.
박정기는 기장님에게 준비해야 할 목록을 작성해서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자네 이 시간에 꼭 이런 걸 보내야 되겠는가?
-여기는 아침이라고요.
-알았네, 잘 자게.
술을 과하게 드셨는지, 아침 인사가 잘 자란다.
‘이제 끝날 시간이 됐는데.’
벌컥! 문을 열고 조종실을 나갔다.
디카프리오가 여자 주인공을 판자에 태워주고, 자신은 차디찬 얼음 물 속으로 가라앉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아이 씨 뭐야?
-대~장~님~
-엉엉엉 저리 비켜 봐요.
-흑흑흑
-들어가요~
-훌쩍훌쩍
“에이~”
꽝! 박정기는 울음 바다가 된 기내에서 벗어나 다시 조종실로 들어왔다.
‘뭔~ 영화를 보면서 통곡하고 난리들이야? 누가 보면 서방이 죽었는줄 알겠다.’
벌컥!
영화가 끝나자, 문이 열리고 승무원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대장니~임~ 흑 흑 흑”
“대장님~엉엉엉”
“대장니임~”
하나씩 박정기 품속을 파고들었다.
“어! 어어~왜 이래?”
“대장님 죽지 마세요?”
“너무 불쌍해요.”
“배 만들지 말고 비행기만 타고 다녀요, 네?”
장금이가 배를 만들지 말란다.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혔다.
“배를 만들러 와서 무슨 소리야?”
“배는 너무 위험해요.”
“......”
배를 만들러 온 사람들에게 배가 침몰하는 재난영화를 보여줬으니 당연한 결과다.
‘아씨~ 내가 등신이지~ 왜 자꾸 되는 일이 없냐?’
사람들을 진정 시키는 데 또 몇 시간이 흘렀다.
박정기는 비행기 아래 화물 창고에서 필요한 장비들을 챙기고 있었다.
앞쪽 화물칸은 넓고 길었지만 중간, 그러니까 날개 밑 부분은 양쪽으로 물 탱크들이 있어서 사람 하나 간신히 빠져나갈 정도로 아주 좁았다.
뒤쪽으로 넘어가니 화물칸 끝에 문이 있고, 잠겨있었다.
“여기가 화장실 아래인 것 같은데, 정화조가 들어있나?”
박정기는 열쇠 꾸러미를 뒤져서 열쇠를 찾았다.
“이거군.”
딸깍!
문이 열리고 예상대로 큰 탱크가 두 개 있었다. 다행이 냄새는 나지 않았다.
“여기는 처음 와보네. 이건 무슨 캐비넷이지?”
박정기가 캐비넷을 열자 공구 박스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하하하 그렇지, 이런 게 있어야지.”
비행기가 고장이 나면 수리하기 위해 공구가 있어야 한다.
자동차도 트렁크에 공구 박스가 실려 있는데 비행기에 없으면 말이 안된다.
자동차는 기본 공구 한 박스가 전부이지만 비행기의 공구는 차원이 달랐다.
“여~ 이거면 비행기도 만들 수 있겠는데?”
박정기는 해군에 다녀온 친구에게 들은 기억이 있다.
배에는 공작실이 있어서 웬만한 부속품은 자체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구박을 했더니 사진까지 보여주면서 열변을 토했다.
선반과 용접기 등 작은 공업사 수준의 장비들이 설치되어있었다.
이 비행기는 그 정도 수준은 아니어도 이동식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장비들이 상당히 많았다.
‘하긴 오지에서 고장 나면 어떻게 할 거야, 임시라도 수리를 해야지.’
“근데 이건 진짜 상상도 못했네, 전기톱까지 있어. 뭐 불시착 했을 때 나무를 베라는 건가?”
하긴 활주로가 적당하지 않을 때 나무 벨 일이 있기는 하겠다.
비상 구난 구조 활동을 하다 보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박정기는 보물 상자를 발견한 것처럼 좋아했다.
“아주 좋아! 아~주! 좋아. 하하하 이게 보물이지 뭐가 보물이야.”
하나씩 꺼내서 확인을 해보고, 목록을 만들 수 있게 사진도 찍었다.
전동 드릴세트, 드릴 날, 각종 비트 세트, 전기톱, 그냥 톱, 작은 것 큰 것 쇠 톱, 망치 펜치, 니퍼, 셀 수도 없이 계속 나왔다.
심지어 전동 윈치와 산소용접기, 유압 자키, 휴대용 발전기도 나왔다.
예비 부속품도 많았다.
봉지에 들어있는 리벳, 볼트 너트, 피스 못, 각종 고무패킹, 에어 호스, 전기선, 각종 테이프, 전구, 랜선, 케이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품목이 있었다.
비행기에 사용된 부품은 모두 들어있는 것 같았다.
“대박! 금 덩어리 수십 톤 보다 이게 더 값지겠다.”
박정기는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이것들은 얼마나 성능이 좋아졌을까? 최소한 몇 배 이상 능력을 발휘 하겠지?’
박정기는 남자 승무원을 불러서 전기톱과 소방용 도끼 5개, 일반 톱, 쇠톱, 망치와 펜치 그리고 피스 못과 전동 드릴, 전동 윈치, 휴대용 발전기를 꺼냈다.
그 자리에 암스테르담 저택에서 가져온 금화 상자와 서재에 있던 금세공품을 넣었다.
“너희들 이 문은 절대로 열지 마라 알았지!”
“네 알겠습니다.”
박정기는 열쇠로 단단히 잠그고 밖으로 나왔다.
베토벤의 피아노와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 등 기장님의 수집품은 암스테르담 저택에 옮겨 놓았기 때문에 넓은 화물칸이 텅 비어 보였다.
한쪽에 쌓여있는 바나나와 설탕 포대가 있을 뿐이었다.
기내는 영화 얘기로 왁자지껄 시끄러웠다.
“조용! 이제 내릴 거니까, 짐들 챙기세요.”
“화장실 좀 가면 안 되겠습니까?”
“빨리 갔다 오세요.”
뭘 한다고 하면 꼭 화장실 가는 놈들이 있다. 그동안은 뭐했는지...
고무보트에 탑승해서 선발대가 소선소 터로 향했다.
고무보트가 작아 겨우 5명 탈수 있다.
모두 내리려면 20번은 왕복 해야 했다.
그래도 남자 승무원들이 보트를 조종할 수 있어서 도움이 됐다.
“시몬스씨 이게 뭔지 아십니까?”
“글쎄요. 톱 같은데,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제가 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걸 보여 드리지요.”
박정기는 신이 났다.
‘전기톱을 보면 기절할 걸’
박정기가 포장을 벗기고 시동 거는 줄을 잡아 당겼다.
프르륵 프르륵 프르륵
‘어! 왜 안 되지? 기름이 없어서 안 되나?’
프르륵 프르륵 프르륵
다른 건 다 자동으로 충전이 되는데 이것만 안 될 리가 없었다.
뒤를 보니 연료통이 텅 비어있었다.
‘아이씨, 이건 원래 연료가 안 들어 있으니까, 자동충전이 안 되었구나. 그럼 연료가 어디에 있을 텐데. 사용 설명서를 찾아봐야겠네.’
“뭐 하시는 거죠?”
“크음, 그것이 이게 연료가 없어서 안 되네요.”
“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걸 보여준다고 해서 기대를 했더니.”
ㅋㅋㅋㅋ ㅎㅎㅎ ㅋㅋ
“그러니까~ 이게 원래는 진짜 기가 막히거든요. 그런데 연료가 없어서 지금은 안 되네요.”
“네~ 쩝! 그렇다고 칩시다. 괜히 헛물만 켰네.”
시몬스씨는 잔뜩 기대를 했다가 급 실망을 했는지 표정이 썩 좋지 못했다.
군기시 기술자들도 눈이 빠지게 쳐다보고 있다가 힘이 빠졌는지 툴툴 거렸다.
“뭐한 겁니까?”
“나는 뭐 대~단한걸 보여주는지 알았습니다.”
“그러게! 어린애 방구 뀌는 소리만 들리던데.”
하하하 허허허 키득키득
“나는 나무가 저절로 베어지는 줄 알았다니까.”
“이보게 그런 게 어디 있나? 자네는 쓸데없는 생각이 너무 많아!”
“헤헤헤 맞아! 지난번에는 쇠를 이어 붙이는 게 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니까.”
“하여튼 못하는 소리가 없군.”
박정기는 하도 얼척이 없어서 하늘을 쳐다보고 한숨만 내쉬었다.
‘한 사람 병신 만드는 거 금방이구나.’
* * *
의주 목사 송명경은 난데없이 들이닥친 청나라 기병들을 보고 기겁했다.
“처~청군이 무~ 무슨 일이요?”
“일전에 이쪽으로 날아온 봉황을 본적이 있소?”
“예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어디로 갔소?”
“저기 남쪽으로 날아갔소.”
갑자기 봉황 얘기가 나오자 의아해 하는 의주 목사다.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들어 봉황을 잡으러 가는 길이니 길을 여시오.”
“청의 군사가 조선으로 들어오는 건 안 될 말이오.”
의주 목사는 300여기의 청나라 기병이 조선으로 들어온다 기에 막아 섰다.
“무엇이! 조선은 대청의 신하인데 감히 길을 막겠다고?”
“일단 군사를 물리시오. 조정에 보고를 하고 답이 내려오면 알려주겠소.”
“아니! 이자가 황제 폐하의 명을 거역하겠다는 것이냐?”
“거역하겠다는 뜻이 아니지 않소. 조정의 답을 얻어야 하니 기다리시오.”
만약 허락 없이 길을 열었다가는 3대의 목이 달아날 것이다.
“저자를 끌어내 매우 쳐라!”
“넵! 당장 끌어 내거라!”
“존명!”
청나라 병사들이 달려들어 의주목사를 끌어내 자빠뜨리고 매질을 했다.
“으악! 으악! 한양으로 파발을 보내라! 어서 파발을.....”
“네 알겠습니다.”
의주 병졸들이 목사를 구하려고 했으나, 오히려 함께 얻어맞고 만신창이가 되었다.
“봉황을 잡으러 가자!”
“존명!”
두두두두두 두두두두
청나라 기병들이 남쪽으로 달려 나갔다.
* * *
조선의 대비전에서는 한바탕 패션쇼가 열리고 있었다.
“마마 이 귀한 옷을 정말 하사해 주시는 것이 옵니까?”
“마음에 드시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사옵니다.”
“선녀복 같아서 감히 입지를 못하겠습니다.”
“많이들 입으세요. 그래서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대왕대비전에는 정경부인들과 정부인들이 들어있었다.
대왕대비가 드레스 중에서 50여벌을 하사하기로 마음을 먹고, 대신들의 부인과 종친부의 외명부를 차례로 불러들인 것이다.
지금 며칠째 계속되는 이런 모임은 대왕대비의 큰 그림이 있어서이다.
첫째는 대신들의 부인을 포섭해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의도이고,
두 번째는 공범을 만들기 위한 대왕대비의 술수이다.
대왕대비는 유럽에서 가져온 드레스를 간절히 입고 싶었지만, 왕실의 큰 어른으로써 화려한 드레스를 입으면 세간의 질타를 받을게 뻔했다.
그렇다고 귀하고 아름다운 드레스를 장롱에만 모셔두기에는 너무도 아까웠다.
그래서 꾀를 낸 것이 대신들의 부인과 외명부에 드레스를 하사하는 것이었다.
감히 대왕대비가 하사한 드레스를 입지 않고 배기겠는가.
그렇다면 대왕대비를 모독한 게 되어 큰 화를 부를 수 있다.
그렇게 정경부인과 외명부가 드레스를 입어주면, 대왕대비도 슬며시 드레스를 꺼내 입을 속셈이었다.
따로 빼놓은 드레스 10여벌은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 예쁜 것 들이다.
이런 대왕대비의 속셈이 통했는지 운종가에 드레스를 입고 출타하는 부인들이 점점 많아졌다.
오늘 대전에서는 두 번째 계략이 펼쳐지고 있었다.
“요즘 양이들의 복식을 입는 자들이 있어, 세간의 풍속을 흐리고 있다 하옵니다.”
지금 말하고 있는 자는 사간원의 사간으로 정3품, 드레스를 하사 받을 신분이 안 되었다.
“서양의 복식이 잘못된 것이요?”
“잘못되었다기보다는 미풍양속을 해칠까 우려가 되옵니다.”
“그대가 입고 있는 사모관대는 옛 당나라 풍습인데 그것은 괜찮다는 말이요.”
“오랜 전통으로 내려오는 것이오라...”
“그렇다면 사관은 오래된 것만 따르겠다는 말이군, 여봐라! 저자만 빼고 사탕을 하사토록 하라!”
“네~ 마마!”
내관들이 설탕이 담긴 작은 항아리를 대신들에게 전달했다.
“이번에 미국의 박대사가 보내온 예물이요. 주상께서 하사하시는 것이니 받아두세요.”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사간원의 사간은 벌레 씹은 표정을 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이번에 사간원에서 드레스에 대한 안건이 나왔고, 서로 미루다가 자신이 총대를 메고 대전에서 고한 것인데, 다른 사람은 모두 설탕을 받고 자신만 못 받은 것이다.
이 시대 사탕 즉 설탕의 가치는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궁중과 대신들의 전유물이나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약재로 사용할 정도로 귀했으니, 항아리에 가득담긴 설탕에 욕심이 안 생긴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사간원이라고 하지만 예전처럼 고리타분하고 깐깐한 인재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괜히 나섰다가 큰 손해를 보았구나. 이래서 아버님 말씀을 잘 들었어야 하는데.’
앞으로는 절대 나서지 않겠다고 각오를 다지는 사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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