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 암스테르담
23화, 됐슈! 말이나 먹여야지 뭐
‘아이고! 기장님 그렇게 솔직히 말씀하시면 어떡해요.’
“음 200개나 풀리면 가격이 많이 떨어지겠군요.”
“왜 그런가요?”
“지금은 없으니까 비싸지만, 구하기 쉽다면 당연히 싸질 수밖에 없지요.”
눈앞이 캄캄한 박정기가 기장님께 귓속말을 했다.
-기장님 흥정은 제가 해보겠습니다.
-어! 그래, 그게 좋겠네.
“얀센씨 여기는 제 파트너인 박정기씨 입니다. 거래는 이 사람과 진행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갑자기......”
안센이 당황했지만 박정기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대화를 주도해 나갔다.
“안녕하세요. 박정기입니다. 일단은 좀 앉아서 천천히 대화를 나누시죠.”
“감사합니다.”
“그럼 파인애플 한 개에 얼마를 주시겠습니까?”
“양이 많으니까, 실버 50개 드리겠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600개 이상 받는 걸로 아는데요.”
“아니~ 그거야 그러니까, 물량이 없으니까 값이 오르는 거죠.”
“아! 그렇군요. 손님이 오셨는데 대접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박정기는 장금이를 불렀다.
“장금씨~”
“네 대장님”
“가서 파인애플 좀 가져오세요.”
“네 알겠습니다.”
김개똥 장금이는 눈치도 빠르게 쟁반과 과도를 함께 가져왔다.
“하나 줘 보시오.”
“네.”
박정기는 거침없이 파인애플 껍질을 벗겨버렸다.
순간 안센의 눈이 왕방울 만하게 커졌다.
“아이고 이 귀한 것을.....”
“뭐가 귀합니까? 동전 50개 밖에 안 하는데요.”
“그래도...”
쟁반에 가득 썰어 놓고 포크로 찍어서 안센에게 건넸다.
“드십시오.”
“오~ 이건 아주 맛있군요. 제가 먹었던 것은 흐물흐물 했는데.”
“당연하죠. 잘 익은 것으로만 골라서, 어제 따온 거니까요.”
“어제 따오셨다고요?”
“네 어제 땄으니까 이렇게 신선하죠.”
박정기는 다시 하나를 집어 들고 껍질을 벗겼다.
“아니 이걸로도 충분한데 뭐 하러 또 깝니까?”
“어허~ 우리만 입인가요? 저 사람들도 먹어야죠. 대건아 더 많이 가져와라!”
"네 알겠습니다."
안센은 기겁했다. 저 야만인들에게 이 귀한 걸 먹인다고? 왕도 먹기 힘든 것을?
“장금씨 이거 가져다가 나눠줘요.”
“네 알겠습니다. 대장님.”
장금이와 나인들이 쟁반을 들고 하와이 사람들과 인디언 청년들에게 나눠줬다.
얀센은 자신의 것을 뺏길 까봐 부지런히 먹고 있었다.
‘음 신선하니까 이렇게 맛있구나! 하기야 몇 달 동안 두고 감상만 하다가 썩기 직전에 먹으니 그게 무슨 맛이 있겠어.’
이 정도 품질이면 실버 600개가 아니고, 1,000개도 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 얀센이다.
‘1,000개씩 200개면 얼마야? 실버 20만개? 맞지 200,000개 어쩌다 이런 복이 굴러들어 왔을까? 하나님 감사합니다.’
얀센은 수지 타산을 계산해 보았다.
파인애플 200개를 실버 50개씩 주면 10,000 실버.
선장에게 수수료를 10% 주면 1,000 실버.
얀센의 계산은 이어지지 못했다.
“아니 왜 계속 까는 것이요? 저 사람들도 다 먹었지 않소.”
“밖에서 구경하는 사람은 입이 없습니까?”
“아니~ 밖에 있는 사람을 왜 주겠다는 거요?”
“우리를 환영해주니까, 보답을 해야지요.”
박정기는 파인애플 몇 개를 계속 깎아 대면서 김대건에게 말했다.
“문을 열고 이걸 나눠 주거라.”
“네, 대장님!”
김대건이 큰 쟁반에 가득 담긴 파인애플을 들고 문을 열었다.
“어~ 잠깐, 잠깐. 그거 내가 사겠소.”
“껍질 깐 것을 사서 뭐 하게요? 팔지도 못하는데.”
“그냥 나눠줘라.”
“네 대장님”
김대건이 문을 열고 파인애플 조각을 나눠주자 밖에서는 난리가 났다.
그걸 지켜보면서 신음을 흘리는 사람이 있었다.
‘아니 제 껄 주지 왜? 내 껄 주느냐고?’
하와이 국왕은 가격이 너무 싸서 속상했는데, 갑자기 자기 파인애플을 꺼내서 막 퍼주니까 속에서 천불이 났다.
밖이 소란스러워지자, 다급해진 얀센.
“내가 모두 사겠소, 그러니 더 이상 껍질을 벗기지 마시오.”
“얼마를 주시게요?”
“100 실버 주겠소, 그러니 모두 파시오.”
“아이고 됐습니다. 집에 있는 말이나 먹이고 말지 원......”
얀센은 파인애플을 먹고 있는 말을 상상을 하다가 화닥 놀랬다.
“아니 말에게 먹인다고요?”
“그렇소, 몇 만리를 날아서 왔는데, 그깟 돈 몇 푼 벌자고 왔겠소?”
“그럼 300 실버요, 더 이상은 안 됩니다.”
“됐소, 가다가 파리에 들러봐야겠네.. 거기도 똥 값을 쳐주면 다시는 안 오면 될 것이고.”
“아니 거래를 하다 말고 어딜 간다는 거요. 400, 나도 남아야 할 것 아니요?”
‘그랬으면 맛있다는 말은 하지 말았어야죠, 다 썩은 것도 600개라면서요.’
박정기는 얀센의 엄살에 눈도 깜빡하지 않았다.
“600개 앞으로도 계속 거래를 하고 싶으면 기회는 한번 뿐이요.”
“......”
“......”
한참 생각을 하던 얀센이 신음을 흘렸다.
“좋소. 하지만 독점권을 준다는 계약에 서명을 해주시오.”
“가격은 600개 고정으로 하면 서명하겠소, 물량은 당신이 정하시오.”
“좋소, 물량은 얼마나 가능하오?"
"한번 올 때마다 1,000개는 가져올 수 있소.”
“헉! 그렇게 많이요? 일단 팔아보고 물량을 알려주겠소.”
“그러시오.”
이후 계약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임상옥 대방 감사합니다. 아직 살아 계신다면 한번 찾아뵙겠습니다.'
드라마 상도에서 인삼을 불태우는 장면이 떠올라, 박정기는 큰 이익을 보았다.
거래를 무사히 끝마치고 얀센과 기념 촬영을 함께했다.
“허허 이건 또 뭐요? 이렇게 그릴 수 있다는 게 놀랍군요.”
“그렇습니다. 아주 귀한 재료를 써서 만드는 겁니다.”
“네 귀해 보입니다. 감사하오.”
“저도 좋은 거래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가서 좋은 숙소를 마련해 놓을 테니 일행들과 편히 쉬시오.”
“오! 그것 정말 감사합니다.”
상인이라 그런지 흥정이 끝나자 친밀 모드로 급 선회했다.
단골을 만들려고 하는 상인들의 몸에 배인 행동이었다.
하와이 국왕은 거액을 손에 쥐자 뛸 듯이 기뻐했다.
“박 대사 수완이 대단하오. 보고 있는 내내 가슴을 얼마나 졸였는지. 수고했소.”
“저도 물건을 맡길 테니 팔아주시겠소?”
국왕은 환한 얼굴로 인사를 건네왔고, 중국 상인은 가죽을 팔아 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아이씨! 내가 장사꾼도 아니고,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
“수수료는 얼마나?”
“1할을 드리겠습니다.”
“2할!”
“하~ 알겠소. 대신 비싸게 팔아주시오.”
그깟 과일을 은화 120,000냥에 팔았다는 게 믿기지 않는 염인환이다.
담비 가죽은 부의 상징과 같다.
한번 먹고 마는 것이 아니라, 평생 입을 수 있는 옷이 된다.
‘쇠 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바로 시작하지 뭐.’
박정기는 얀센이 남겨두고 간 집사에게 부탁을 했다.
“통역 좀 부탁 드려도 되겠습니까?”
“제가 영어는 조금 서투른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간단한 것이니 괜찮습니다.”
“알겠습니다. 큰 거래처이니 편의를 봐드려야겠죠.”
박정기는 집사가 빚을 지우는 말투에 살짝 기분이 상했다.
그냥 ‘알겠습니다.’ 하면 될 것을 꼭 인심을 쓰는 것처럼 말한다.
‘하여튼 상인들이란 작은 일에도 꼭 생색을 낸다니까.’
“좋은 모피 10장만 준비해주시오.”
“모두 파는 게 아니고요?”
“일단 시장 조사를 해봐야 될 것 아닙니까?”
“네 알겠습니다.”
“대건아! 저것 받아서 따라와라.”
“네 대장님.”
박정기는 지붕으로 올라가는 해치를 열고 위로 올라갔다.
김대건이 모피 10장을 들고 따라왔고, 얀센의 집사와 염인환이 따라 올라왔다.
“와! 이렇게 좋은 곳이 있었군요.”
“처음 와봅니까?”
“네 처음입니다.”
박정기가 둘러보니 수십 척의 보트들이 비행기를 에워싸고 있었다.
모피를 한 장 받아 들고 흔들며 소리쳤다.
“오늘 좋은 밍크 모피 10장을 팔려고 합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이 앞으로 오세요.”
얀센 집사가 통역을 하자 배들이 비집고 들어왔다.
박정기는 비행기 날개 위에 서서 밍크 모피 한 장을 들고 소리쳤다.
“털이 곱고 잡색이 없이 깨끗한 모피 한 장에 실버 100개부터 경매를 하겠습니다. 필요하신 분은 가격을 제시해 주시오.”
박정기가 모피를 쓰다듬으면서 골고루 보여주고, 옆에서 집사가 통역을 했다.
“여기요, 150이요.”
“여기 200이요.”
“나요. 230.
“나요. 250.
“......”
“더 없습니까?...... 낙찰! 대건아, 저기 갔다 줘.”
모피를 받은 참가자가 세세히 살펴보더니 아주 좋아했다.
사람들도 돌아가면서 구경을 해보고는 품질이 최상품이라는 것을 알았다.
박정기는 다음 모피를 들었다.
“이제 하나 더 하겠습니다. 시작가는 250부터 하겠습니다.”
“뭐요?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맞아요. 시작가가 100부터 해야지 왜 250부터 하는 거요?”
“어허! 100부터 하면 저 사람이 억울하잖아요. 참가하기 싫은 사람은 빠지시오.”
박정기의 말도 안 되는 주장에 다들 아연실색했다.
여기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경매에 대해서 닳고 닳은 사람들이다.
이런 방식의 경매는 듣도 보도 못한 방식이다.
“자! 250, 250 없어요?
경매가 시작되자 사람들이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마지막입니다 250 ...... 유찰!”
“대건아 이건 안으로 던져.”
“네 대장님!”
김대건이 모피를 비행기 속으로 던지자 남은 건 8개가 되었다.
상인들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만일 늦게 사면 무조건 앞에 산 사람보다 비싸게 사야한다.
그것은 일찍 사는 사람이 무조건 이득이다.
“자 이번에는 밍크 모피 최상급입니다. 보십시오. 빛깔이 죽이지 않습니까?”
“자! 260부터 시작 합니다. 260......”
“250부터 해야지 왜 260입니까?”
“그건 아까 거고, 이건 새것이잖아요. 260 없어요.”
“여기 260.”
“여기 270.”
“여기 280.”
“나도 300.”
.
.
“330, 더 없으면..... 330 낙찰! 저기 갔다 드려.”
김대건이 모피를 건네자 집사가 돈을 받아왔다.
“자 좋은 모피가 왔습니다. 시작가는 330, 330 없습니까?”
“여기요 340이요.”
“나도 350”
.
.
“네 420.......420 낙찰!”
경매가 이어지고 마지막 낙찰가는 실버 570개였다.
“내일 아침 9시에 모피 20장를 경매하겠습니다. 많은 참가 바랍니다.”
박정기가 돌아서 비행기 속으로 들어갔다.
밖에서는 아쉬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오늘 산 사람들은 횡재를 했구먼,”
“사다가 모피상에 바로 팔아도 몇 배는 더 받을 수 있을 텐데.”
“돈 없는 게 원수지, 에잉!”
대부분은 구경하러 왔던 사람들이라 돈이 없어서 못 샀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이 소문은 삽시간에 암스테르담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런데 울상을 짓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파인애플도 600냥을 받았는데 250냥에 팔지 않나, 비싼 것도 570냥이라니 내가 사람을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봤네 그려.’
중국 상인이 한숨을 쉬고 있을 때, 옆에서 울상을 짓고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얀센의 집사.
'큰일 났네, 사장님이 밍크를 사려고 자금을 모집하고 있는데 가격이 더 오르면 어떻게 하지?'
박정기는 얀센의 집사가 무슨 고민을 하는지 관심도 없었고, 오로지 저 발광하고 있는 왕자들을 내보낼 생각 뿐이었다.
“숙소는 아직 마련이 안 된 것입니까?”
“네 아직 연락이 없어서요. 저희가 운영하는 호텔을 내어주신다고 했는데, 아마도 손님들을 내보내느라 시간이 걸리는 것 같습니다.”
“아니 호텔은 많을 것 아니요. 꼭 거기를 가야 합니까?”
“아이고 귀한 손님을 어떻게 아무 데나 묵게 하겠습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박정기의 안테나에 촉이 왔다.
‘다른 상인들을 못 만나게 블라인드를 치시겠다는 이건데.’
“네, 그럼 숙박비는 안 받으시겠네요?”
“크흠 네! 뭐, 아마도요?”
‘무슨 대답이 저러냐? 암튼 입을 싹 닦으면 별 수 있겠어?’
박정기는 하와이 왕자들이 장난치고 떠드는 소리에 머리가 지끈했다.
'비 폭력 시위가 정말 무서운 거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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