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 복수
98화, 영원성으로 출발
“형님! 심양에서 도망치는 관리들과 병사들을 잡아뒀으니까, 기병 1천기를 빨리 보내주세요.”
-거기가 어딘데? 치익.
“북경쪽으로 한나절 달려오면 있습니다.”
-좀 전에 여기 있더니, 언제 거기까지 갔나? 치익.
“시간 없습니다. 빨리 보내세요.”
-알았네. 치익.
박정기는 금은보화를 비행기에 가득 실었다.
밤이 되어서야 포로를 인계한 윌슨이 돌아왔다.
이 씨의 객잔에서 하루를 묵기로 하고, 좋은 음식과 좋은 술로 특공대를 배불리 먹였다.
“여기 음식도 맛있는데요?”
“너한테 맛없는 음식도 있었냐?”
“헤헤 그렇기는 해요.”
“하하하 고생했으니 많이 먹어라.”
엄청난 재물을 얻으니, 윌슨이 많이 먹는 것도 예뻐 보였다.
밤이 깊어 모두가 잠든 시각 비행기 지붕에 앉아 앞으로 계획을 구상하는 박정기다.
‘황제를 어떻게 손봐줘야 하지?’
박정기는 스마트 폰을 꺼내 예전에 본 기억이 있는 아편전쟁을 검색해 보았다.
2개의 영상이 저장되어있었다.
‘다행이 잘 저장돼 있었네.’
처음에는 동영상에 붙는 광고가 보기 싫어서 유료로 했다가 나중에는 자동으로 저장되는 기능을 알게 된 후로 여행 다니면서 보려고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것이 이렇게 도움이 되었다.
영상을 틀어보니 1차 아편전쟁의 동기부터 진행과정과 난진조약을 맺는 내용까지 상세히 나와 있었다.
다른 영상은 2차 아편전쟁에 관한 내용으로 영국군 4천과 프랑스군 8천으로 2만7천의 청나라 군대를 무찌르고 북경에 입성한다는 내용이었다.
‘뭐야? 1만2천에 북경이 함락당하고 원명원까지 싹 다 털렸다고?’
원명원은 청나라 황제에게 바친 진상품을 보관하는 보물창고다.
영국놈들은 원명원의 보물을 털어가면서 무슨 악에 바쳤는지 아름다운 건물들을 모두 불태워버렸다.
원명원의 보물을 영국 놈들에게 뺏기기 전에 먼저 털어야겠다고 판단한 박정기는 북경을 점령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 * *
심양성 남문 앞에서는 소란이 일어났다.
-성문을 열어라!
-성문을 열어라!
성문 밖에서 중국어로 큰소리가 들리자 남문을 지키는 병사들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얼핏 보기에도 청군들이 틀림없었다.
“장군! 1천여 청군이 나타나 소리를 지릅니다.”
“1천? 어디서 온 놈들이냐?”
“아마도 압록강에서 도망친 패잔병들 같았습니다.”
“너는 빨리 가서 순찰사 대감께 이 사실을 알려라.”
“넵! 알겠습니다.”
당직 장수가 성벽으로 나와 보니 1천도 넘는 청군들이 주저앉아 있고, 몇몇이 나서서 고함을 질러댔다.
말을 알아들을 수 없으니 묵묵히 지키고만 있을 뿐이다.
늦게까지 대신들과 논의를 하고 있을 때 급보를 알려왔다.
“대감! 남문에 1천여 명의 청나라 패잔병들이 몰려왔습니다.”
“그게 참이냐?”
“네, 그렇습니다.”
김좌근은 군문에 문외한이라 병마절도사를 바라봤다.
“동문과 서문으로 기병을 내보내 포위하면 간단히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나는 역관을 데리고 남문으로 갈 테니, 두 분 병마사께서 기병을 내보내 주십시오.”
“그리하겠소이다.”
김좌근이 역관과 함께 남문에 도착하니 멀리서 말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두두두
양옆에서 기병이 들이쳐 순식간에 청군을 에워싸자, 또다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무슨 짓이냐? 우리는 황제폐하의 명을 받고 온 금려팔기다. 어서 성문을 열지 못할까?”
“이보시오. 심양은 조선에 함락 됐소, 그러니 순순히 항복하시오.”
“뭐라고? 봉천이 함락됐다고?”
청군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자가 허물어졌다.
“그렇소. 그러니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시오.”
“황궁은 어떻게 되었느냐?”
“그곳에는 조선의 주상전하께서 주무시고 계시오.”
“이런 망할 놈들! 괘씸한 놈들! 황궁을 범하다니!”
픽~ 퍽!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청나라 장수의 가슴에 화살이 박혔다.
오랜 굶주림과 피로에 지친 병사들은 저항도 못해보고 그 자리에 널브러졌다.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지금 성안으로 들이면 시끄러울 테니, 그냥 저대로 두는 게 어떻겠소.”
“그리 하시지요. 날이 밝으면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청군들은 모든 걸 포기하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아침 고기를 잔뜩 넣고 끓인 죽에서 구수한 냄새가 풍겼다.
지친 몸으로 오랜만에 푹 자고 일어난 청군들은 여러 개의 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것을 보고 침을 삼켰다.
“항복하는 자들은 이쪽으로 오고, 거부하는 자들은 저쪽으로 가라!”
반대편을 돌아보니 언제 설치했는지 나무 울타리가 쳐져있다.
조선군 기병들이 삼엄하게 경계를 펼치고 있어서 달아날 생각은 아예 엄두도 못냈다.
“항복하는 자들은 이쪽으로 오고, 거부하는 자들은 저쪽으로 가라!”
처음에는 눈치를 살피던 청군들이 식사를 나눠주는 쪽으로 하나둘 발길을 돌리자, 어느 순간 너나할 것 없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줄을 서라!”
“계급은 필요 없다. 오는 순서대로 줄을 서라!”
10개의 솥 앞에는 청나라 패잔병들이 길게 줄을 섰다.
고기죽을 한 그릇씩 받아든 청군들은 뜨거운 죽을 후후 불어가며 허겁지겁 퍼먹었다.
배가 차자 다시 노곤해져 스르르 잠이 왔다.
* * *
대정전.
홍타이지가 쓰던 큰 옥좌에 작고 어린 조선 임금이 앉아 있는 모습이 이상하게 잘 어울렸다.
“전하! 지금은 지켜야할 때지 공격할 때가 아니옵니다.”
“그러하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황제가 대군을 보낸다면 감당하기 어렵사옵니다.”
대신들의 간청에 어린 임금이 난처해하고 있을 때 박정기가 들어섰다.
“어! 박 대사!”
“외신 도망치던 관리들과 병사들을 잡고 이제 돌아왔습니다.”
“모두 잡았어?”
“네, 요하를 건너기 전에 모두 잡아서 조선군에게 인계해 주었습니다.”
“박 대사가 최고야.”
포로를 인계받은 조선군은 아직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다.
뜬금없이 박정기가 어린 임금에게 폭탄 발언을 던졌다.
“전하! 기병 1만을 내어주시면 자금성을 함락시키겠습니다.”
“정말이야?”
자금성이 갖고 싶다고 떼를 쓰던 어린 임금은 기뻐서 벌떡 일어났고,
불가를 외치며 임금을 말리던 대신들은 벌레 씹은 표정으로 박정기를 노려보았다.
“대체 그게 무슨 말을 하는 것이요?”
“1만으로 자금성을 함락시킨다니 제정신이요?”
“청나라 군사가 허수아비인줄 아는 것이요?”
대신들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박정기를 몰아붙였다.
“네, 청군은 허수아비가 맞습니다. 황제를 잡아다가 전하 앞에 무릎을 꿇리겠습니다.”
“정말이야?”
“제가 언제 거짓말한적 있습니까?”
“알았어. 병사를 내어줄게.”
“순찰사 대감이 지휘하게 해주십시오.”
“알았어, 역시 박 대사 밖에 없어.”
어린 임금이 펄쩍 뛰며 좋아했다.
대신들은 임금의 뜻에 따라 항복을 권유하는 국서를 칙사와 총독에게 주어 북경으로 보내버렸다.
박정기는 태감을 데려다 심문을 했다.
비행기 출입문에 쪼그려 앉아 전깃줄을 잡고 있는 박정기, 그 앞에는 팔다리가 묶인 체 강물에 잠겨있는 태감 있었다.
박정기는 영상에서 캡쳐한 도광제의 어진을 보여줬다.
“이게 황제 맞아?”
“헙! 감히 폐하를 어찌 아아아아아아아악!”
“맞아, 안 맞아?”
“맞다. 흑흑흑 원통하구나.”
전기 충격을 당해보니, 온몸을 바늘로 찌르는 고통과 죽음에 대한 공포로 심장이 쪼여왔다.
“만약에 북경성이 함락되면 황제는 어디로 피신할까?”
“그것을 내가 어떻게 아느냐?”
“개겨 봤자 좋을 게 없는데.”
“모른다! 어서 죽여라라라라라라라라라아!”
박정기가 전깃줄을 물속에 담그자 발악하던 태감이 바들바들 떨어댔다.
“다시 말해봐. 어디로 도망갈까?”
“흑흑흑 아마도 열하로 가실 것이다.”
“열하? 황제의 여름별장?”
“그렇다.”
“으음!”
박정기는 열하로 도망가는 황제를 중간에 매복해서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김좌근을 찾아가 먼저 출발할 것을 요구했다.
“형님! 영원성까지 먼저 가 계세요.”
“자네는 어디가게?”
“저는 미국 좀 다녀와야겠어요.”
“청군과 마주치면 어떻게 하라고?”
“람보도 보낼 테니 겁먹지 마시구요.”
“큼큼, 누가 겁먹었다고.”
박정기는 통역을 위해 남자 승무원 중에 큰 귀와 바람 매를 붙여주었다.
큰 귀와 바람 매는 조선말을 제법 알아들을 수 있다.
비행기는 직항으로 피라미드 호수까지 날아갔다.
비행기가 선착장에 도착하자 제일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장 상궁님! 몸은 괜찮습니까?”
“흠! 네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저희 서방님께서는 안 오셨나요?”
“아! 윌슨 대위는 심양에 있습니다.”
“혹시 다치지는 않았나요?”
근심어린 표정으로 묻는 장 상궁의 얼굴에 진심이 엿보였다.
“다친 사람은 한사람도 없으니 안심하세요.”
“후~ 알겠습니다. 국무를 보시는데 아녀자가 나서서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저는 바쁜 일 때문에 이만.”
박정기가 연구소로 들어가 버리자, 여승무원들을 붙잡고 안부를 묻는 나인들이 십여 명이나 되었다.
박정기는 부시장실로 들어갔다.
“어! 언제 오셨습니까?”
“비행기 소리 못 들었어?”
“그게 하도 시끄러워서.”
부시장은 귀에서 솜뭉치를 빼면서 하소연했다.
연구단지 안은 대장간처럼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시청을 옮기라고 했는데 왜 안 옮겼어?”
“잘 지어야 한다고 기간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짓는데 그래?”
“석조건물을 크게 짓고 있습니다.”
“......”
‘잘 지으면 좋은 거지.’
“그건 알아서 하라고 하고 보물을 숨길만한데 없어?”
“보물이요?”
“그래 청나라 황궁에 있던 건데 양이 꽤 많아.”
“헉! 훔쳐왔어요?”
“무슨 소리야! 전리품이라고. 전쟁 배상금!”
그제야 이해한 톰이 잠깐 고민하더니, 시청에 보관하고 자신이 숙식을 하며 지키겠다고 했다.
“앞으로 더 많이 가져올 거야.”
“네? 얼마나 많이요?”
“지금 가져온 것에 몇 배는 될 걸.”
그래서 새로 짓는 시청사 지하에 커다란 금고를 만들기로 했다.
보물들은 늦은 밤에 안보이도록 자루에 담겨져 시청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연구단지의 경비원을 늘려 철저히 감시했다.
다음날 새벽부터 새로 만든 대포와 총알, 포탄 그리고 소시지와 훈제 햄을 잔뜩 싣고, 심양으로 돌아왔다.
“뭐야? 왜 아직도 출발을 안 한 거요?”
“아이고, 아니야! 출발 했어.”
“근데, 형님은 여기서 뭐하고 있어요?”
“치중대를 꾸리고 있지. 병사들도 먹어야하지 않겠는가?”
윌슨과 평안 병사, 함경 남병사는 이미 어제 출발했고, 김좌근은 식량을 수급해서 마차에 싣고 오늘 출발한다고 했다.
“형님 쌀만 비행기에 싣고 지금 빨리 갑시다.”
“어딜 가게?”
“가보면 알아요.”
박정기는 쌀을 싣고 요하의 나루터로 날아갔다.
조선기병들이 요하를 건너느라 분주했다.
박정기는 조선 기병들에게 쌀 그리고 소시지와 햄을 나눠 주도록 했다.
치중대를 따로 만들지 말고, 모든 기병이 각자 소지하도록 했다.
아침과 저녁은 밥을 지어먹고, 점심은 소시지로 때우면 5일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요하를 모두 건넌 조선군은 영원성을 향해 출발했다.
영원성은 산해관의 1차 방어를 담당하는 작은 성이지만 얕보면 큰코다친다.
누르하치가 영원성을 가볍게 보고 공격했다가 홍이포에 맞아 중상을 입었고, 급히 후퇴하였지만 결국 누르하치는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하고 만다.
조선의 장수들도 이를 모르지 않기 때문에 영원성에 대한 걱정으로 근심이 컸다.
“동생! 영원성이 만만치 않다던데.”
“걱정하지마시고 빨리 가기나 하세요.”
“뭔 대책이 있는가?”
“저 못 믿으세요?”
“크흠, 알았네.”
“가다가 적을 만나면 연락하시구요.”
“그러겠네.”
김좌근은 억지로 끌려가는 사람처럼 말에 올라 영원성으로 달려갔다.
말을 타고 며칠 동안 달려갈 것을 생각하니 막막한 김좌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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