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 암스테르담
26화, 김좌근의 유럽 생존기
저녁 무렵이 다되어 많은 음식을 가지고 팜케 얀센이 나타났다. 파인애플을 독점하기로 하고 호텔도 빌려주어 많은 인연이 맺어진 사이다.
“부기장님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십시요. 얀센님! 매번 맛있는 음식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손님인데 대접이 소홀하지는 않았는지 걱정입니다.”
“아주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만족합니다.
모처럼 빵과 서양요리를 먹고는 상당히 만족하던 박정기였다.
“기술자를 찾는다고 하시길래, 사람을 소개시키려고 왔습니다.”
“어떤 기술을 가지고 있나요?”
“요리사입니다. 우리호텔에서 주방장으로 오래있던 친구인데, 나이가 많아서 작년에 은퇴하고 신대륙에 간다고 하더라고요. 아직 배를 못 잡고 있어서 추천을 하는 겁니다. 나이도 많은데 오랫동안 배를 타면 병이라도 걸릴까봐 걱정이 돼서요.”
“오 잘하셨습니다. 요리사는 꼭 필요한 사람이지요.”
“신대륙에서 호텔을 운영하고 싶어 해서, 제가 투자를 좀 할 겁니다.”
‘하여튼 상인들의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니까. 기술자로 포장해서 무임승차시키려는 속셈이다. 자기가 투자하는 거라고 하면 탑승료를 비싸게 받을 것 같으니까 머리를 쓰는 거지.’
호텔이 들어오면 문화 혜택을 누릴 수 있으니 박정기는 오히려 더 환영이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건축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안갑니까?”
“거기에는 없나요?”
“호텔을 지어본 사람이 없어서 제대로 안 될 겁니다.”
딱히 거짓말은 아니다. 조선에서 온 목수들이 있으니까.
“그럼 건축가를 몇 명 더 보내도 되겠습니까?”
“그래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내일 출발 전에 다시 오겠습니다.”
얀센이 돌아가자 또 다른 상인이 나타났다. 밍크 가죽을 많이 사간 사람이다.
“안녕하십니까.”
“네 어찌 또 오셨습니까?”
“기술자를 소개 시키려고 왔습니다.”
“벌써요?”
“네! 그전부터 신대륙으로 간다고 노래를 부르는 친척이 있었습니다. 이배를 타면 빠르게 갈 수 있다고 하니까, 자신을 추천해 달라고 하더군요.”
“무슨 기술이 있습니까?”
“이런 것도 기술인지 모르겠지만 정육점을 오랫동안 운영했습니다.”
“고기 파는 곳이요?”
“네 맞습니다. 고기도 팔고 소시지와 훈제고기도 만들어 팝니다.”
박정기가 원했던 기술자는 아니지만, 기장님과 윌슨을 위해서는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네 좋습니다. 또 다른 기술자는 없나요?”
“그럼 선박 기술자도 됩니까?”
“그럼요! 바로 저희가 찾던 사람입니다.”
조선에서 대량으로 이주민을 받으려면 크고 안전한 배가 필수사항이다.
“그런데 나이가 있어서 직접일은 못하고 감독만 시켜야 할 겁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가족은 나중에 가더라도 먼저 출발하면 좋겠네요.”
“음~ 갑자기 갈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은 해보겠습니다. 조선소를 만드실 거라면 제가 투자를 해도 되겠습니까?”
‘햐~ 하여튼 공짜는 없다니까.’
“네 환영합니다. 투자는 좋은 거니까요.”
“하하하 시원하시군요.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박정기는 만만한 사람들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었다.
미국 동부해안은 짧으면 2달 길어야 3개월이면 갈수가 있는 곳이다.
하지만 박정기가 차지한 미국 서부해안에 가려면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 동남아시아 그리고 태평양을 건너야 올 수 있다.
아무리 못 잡아도 1년 6개월 이상 걸리는 코스다.
다른 코스로는 남아메리카 남단의 마젤란 해협을 돌아오는 코스인데 풍랑과 바람이 심해서 모두 꺼려하는 코스다. 기간도 1년 이상 걸리는 것이 보통이다.
드레이크 해협이 조금 낮다고는 하지만, 항상 높이 10m의 파도가 치고 있어서 만만하지가 않았다.
양 대륙이 성처럼 지키고 있으니, 미국 서부지역은 가장 늦은 시기에 백인들이 발을 디디게 된 배경이 된다.
‘비행기 아니면 오도 가도 못하는데 별일 있겠어?’
박정기는 걱정을 털어버리고 저녁 식사를 했다.
“언니 이것 좀 드셔보세요. 어쩜 이런 음식이 있을까요?”
“야! 내가 왜 네 언니야? 너랑 몇 달 차이도 안 나는데.”
“몇 달이라도 언니는 언니죠?”
“그런데 왜, 대장님 앞에서만 존댓말을 하는 거니?”
승무원들의 작은 실랑이에 관심도 없는 박정기는 앞으로 어디를 개발해야하는지 고민 중이었다.
피라미드 호수는 배가 접근할 수 없어서 공업이 발전하기에 부적합한 지역이다.
샌프란시스코는 좋은 항구와 풍족한 농토를 배경으로 두고 황금이 묻혀있는 아메리칸 강과도 가까워서 입지조건은 최고라 할 수 있다.
다만 미래의 산업은 석유와 관련이 있다. 그럼 유전지대인 로스앤젤레스가 제격이다. 미래에도 샌프란시스코보다는 더 발전하는 곳이니까.
‘실리콘 밸리의 정보통신이 치고나가려면 100년 이상 걸리겠지.’
사실 실리콘 밸리가 성장하게 된 계기도 입지조건이라기보다는 스탠퍼드 대학과 같은 우수한 교육기관과 창의적인 인재라고 봐야한다.
‘샌프란시스코는 윌슨이 찜해둔 곳이니까. 안되지.’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로스앤젤레스가 선택되었다.
어스름 새벽에 비행기에 탑승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유럽의 귀족을 흉내 낸 국왕은 어울리지 않는 중절모에 망토까지 둘렀고, 왕자들은 연극 무대에 올라가도 어색하지 않을 복장들을 하고 있었다.
중국 상인 염인환도 마찬가지다. 검은 정장차림에 동그란 안경까지 착용하고 있어서 개화기 때 일본 앞잡이를 보는 것 같았다.
상인들이 소개한 기술자들은 단출한 모습으로 나왔다. 아직 가족까지 데리고 가기에는 미지의 세상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일 것이다.
얀센의 소개로 요리사와 아들, 그리고 건축기술자 5명이 탑승했다.
다른 상인이 소개한 정육점 기술자와 배 만드는 노인이 탑승했다.
“대장님 모두 탑승했습니다.”
“문도 잘 닫았지요?”
“네 몇 번 확인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박정기는 비행기 시동을 걸었다.
멀리 배에서 비행기를 바라보는 기장님과 김대건이 보였다.
박정기는 손을 흔들어 인사를 대신했다. 기장님과 김대건도 손을 흔들어 준다.
수많은 배들 사이를 천천히 빠져나가 넓은 곳으로 나아갔다.
쉬이잉~ 새에앵~~~ 후확! 쏴~~~아~~악~~
비행기가 출력을 높이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물보라를 날리며 질주하던 비행기가 기수를 들어올렸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더니 이윽고 공중에 떠올랐다.
-와~
-대단하다.
-정말로 날아가네.
-잘 봤죠?
-네, 그런데 증기기관은 아닌 것 같고, 도대체 무슨 힘이 저렇게 셀까요?
-석탄은 없었소. 아마도 다른 것을 태우는 것 같던데.
많은 사람들 사이에 선장과 조선소 기술자들이 끼어있었다.
비행기는 북서쪽으로 날아 바다를 건너갔다.
-저것 보시오. 모든 게 눈으로 덮여 있소.
-저 섬이 아이슬란드 같소만.
-나는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소이다.
-내 30년간 배를 만들었지만 하늘을 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해봤소.
-맞소, 그런데 이배는 쇠로 만든 것 같지 않소?
-나도 그것이 신기하오.
처음에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비행기 안으로 들어오고 부터는 모든 게 신기해서 걱정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눈이 휘둥그레져서 구경하기 바빴다.
-저 등불 보시오. 눈이 부셔서 쳐다볼 수가 없소.
-저 깜빡이는 불빛들 보시오, 어떻게 작은 불꽃이 꺼졌다가 켜졌다가 마음대로 하는지.
LED 불빛이 깜빡거리는 것조차 이들에게는 세상에 다시없는 구경거리였다.
“대장님 조반 드세요.”
“음 맛있어 보이네요.”
장금이 준비한 것은 샌드위치였다. 박정기는 양식에 익숙하지 않은 승무원들에게 빵과 베이컨 치즈 야채 등을 넣고 샌드위치를 만들어 주었다.
여자 승무원들은 치즈를 꺼려했고, 남자승무원인 인디언 청년들은 아무거나 잘 먹었다.
“그런데 나 혼자 먹으려니까 어색하네요?”
“국왕전하를 불러줄까요?”
“아이고 됐습니다. 정신 사나워서 먹다가 체하겠어요.”
“호호호 그럼 없는데요.”
“형님은 어디에 있습니까?”
“김좌근 대감은 안탔는데요.”
박정기는 장금이를 빤히 쳐다봤다.
“어찌 그러시는지......”
“형님이 안탔다고요?”
“네 기장님과 김대건씨 그리고 선장님과 김 대감님 일행은 타지 않았습니다.”
“형님이 정말로 안 왔어요?”
“네 아무리 찾아도 없었습니다.”
“나한테는 아무 말 없었는데.....”
박정기는 뭔가 시원섭섭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한편 호텔에서 잠을 깬 김좌근과 수행하는 구종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쌔앵~ 푸~확~악~ 꽈아~~~
“이 소리 뭔가?”
“비행기라는 것이 날아가는 소리 같습니다.”
“문을 열어보게.”
“네 마님!”
구종이 창문을 열자 멀리 하늘위로 올라가는 비행기가 보였다.
“아이쿠! 우리를 놔두고 가면 어떻게 한다는 말이냐?”
“아이고, 마님 고정 하십시오.”
김좌근이 창문에 매달리자 구종이 김좌근을 잡아 끌었다.
5층 건물의 꼭대기 층이라 전망은 좋았지만, 고소공포증이 있는 구종에게는 식은땀이 나는 방이었다.
김좌근은 매일 창문을 열고 시내 구경하는 것을 즐겼다.
암스테르담은 운하가 도로처럼 도시 전체를 가로지르고 있어서, 한양에서 온 김좌근에겐 신천지 그 자체였다.
거리엔 높은 건물들이 즐비했고, 상점마다 신기한 물건들이 넘쳐 났다.
그리고 수많은 배를 보면서 활력이 넘치는 항구와 큰 재화가 오고 가는 것에 놀랐다.
“마포나루는 비교도 안 되는구먼.”
“마님 저렇게 큰 배에 물건을 가득 실으면 도대체 얼마치나 되는 겁니까?”
“수백 만 냥은 할 것 같다. 저 배를 조선으로 가져간다면......”
김좌근은 말을 잊지 못했다. 자신은 조선에서 제일 잘나가는 사람 중에 하나다. 그런데 여기 와서 보니 자신의 처지가 너무 하찮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구경에만 몰두하다 보니 비행기에는 한 번도 들르지 못했고, 말이 통하지 않으니 일행들에게 물어보지도 못한 것이다.
먼 타국에서 국제 미아가 되어버린 두 사람, 당장에 어디 가서 누굴 붙잡고 물어봐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안았다.
그렇게 김좌근의 피 말리는 타국 생존기가 시작되었다.
암스테르담을 떠난 비행기는 피라미드 호수에 무사히 도착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 착륙하니 유럽에서 온 기술자들은 불안했다.
창밖에는 인디언 복장을 한 원주민들과 전사들이 잔뜩 모여있고, 나무로 만든 요새가 보였다.
문명의 흔적이란 것이 총밖에 없어 보였다.
비행기를 만들 정도로 선진 도시와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다.
-여기가 미국 맞소?
-야만인들만 보이는데.
-총을 든 자들은 엄청 사나워 보입니다.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는 기술자들이 떨고 있을 때, 윌슨이 열병식 준비를 마치고 박정기를 맞았다.
“부기장님 다녀오셨습니까?”
“그래 잘 있었어?”
윌슨이 반겨주었다. 붙어있을 때는 꼴도 보기 싫었는데 오랜만에 만나니 반가웠다.
윌슨이 또 열병식을 하려고 돌아섰다.
“윌슨! 오늘은 열병식은 하지 말자. 손님도 왔는데 총 쏘고 그러면 놀라잖아.”
“아니~ 연습 많이 했는데.”
“다음에 하자, 알았지?”
박정기가 강력하게 거부하자 윌슨은 도리가 없었다.
“네 알겠습니다.”
“일단 식사 좀 하게 고기 좀 가져오고.”
“네 알겠습니다.”
윌슨이 가자 독수리 발톱이 인사를 했다.
[그래, 너도 잘 지냈지?]
[애들은요?]
[안에 있으니까 들어 가봐.]
[네 알겠습니다.]
독수리 발톱이 비행기 안으로 들어섰다.
-으악! 야만인들에게 우리를 넘기려고 하나 봐요.
-오 마이 갓~ 세상에 깜빡 속았구나.
-재들도 같은 패거린가 보네.
-얀센 이놈이 끝까지 나를 팔아먹었구나.
유럽에서 온 기술자들의 자유로운 상상이 이루어질 때, 인디언 청년들과 독수리 발톱의 인사는 거칠기 그지없었다.
소리를 지르면서 격하게 몸을 부딪치고 반겨했다.
-이젠 죽는구나.
-식인종은 아닐까요?
이제 실신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식사 시간이니까, 모두 내리세요.”
“안 내리면 안 됩니까?”
“안됩니다. 문을 잠가야 하니까요.”
기장님도 없으니 박정기가 내리려면 문을 닫아야 했다. 남들이 함부로 만져서 고장 내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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