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 이 상궁
51화, 국왕의 마음을 훔친 이 상궁
하늘을 처음 날아보는 궁녀들은 서로 밖을 내다보겠다고 창문 쟁탈전을 벌였다.
-저것 봐 구름이 발밑에 있어.
-내가 하늘을 날고 있다니 믿어지지가 않아.
-꼬집어 줄까?
-미쳤어? 내가 꼬집어 줄게.
여자들의 수다에 좋아하는 것은 인디언 승무원들이었다.
-어떻게 하나같이 다 예쁘냐?
-나는 무조건 이 사람들과 혼인할거다.
-나도.
비행기가 하와이 상공에 나타난 것은 저녁이 다 되어서다.
-와 아름답다. 이 섬나라가 하와이야?
-그래 김개똥이 그랬어, 1년 내내 여름날씨라고.
-그럼 나는 여기에 살아야겠다. 추운 건 질색이야.
비행기가 진주만 상공을 선회하고 천천히 내려앉았다.
비행기를 위해서 새로 지은 선착장에 비행기가 접안하자, 하와이 국왕과 왕자들 그리고 조선의 김진사와 최별감 그리고 수많은 주민들이 나와서 환영했다.
나뭇잎으로 만든 짧은 치마와 야자열매로 가슴을 가린 처녀들이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춤을 추고 있었다.
-에그머니, 남사스러워라.
-저 여자들 왜 저러는 거야?
-환영 의식하는 겁니다. 여기는 더워서 중요한 부위만 가립니다.
-여기에 나는 못살겠다.
주로 나이가 많은 상궁들이 기겁을 하였다.
비행기 문이 열리고 궁녀들이 하나둘씩 비행기 밖으로 나왔다. 장금이 인솔해서 김진사에게 인도하였다.
“대왕대비께서 밀명을 내려 출궁시킨 궁녀들입니다. 각별히 신경써주시기 바랍니다.”
“아! 알겠소이다. 일단 새로 완공된 토루에 모실 것이니 그리로 가시지요.”
“토루가 벌써 완공 되었습니까?”
“네, 지어놓고 보니 대장님의 혜안에 놀랐습니다. 최 별감! 궁인들이니 각별이 모시게.”
“네! 진사어르신, 저를 따라오시지요.”
최별감도 궁궐에 있었기 때문에 상당수는 최별감과 안면이 있었다.
100명의 궁녀들이 비단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하와이 국왕 앞을 가로질러 조선인 마을로 향했다.
하와이 국왕은 물론이요, 왕자들의 눈알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세상에 아름다운 여인이 저리 많다니.
-아바마마 저 여인들과 혼인하고 싶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허락해주십시오.
‘이놈들은 위아래도 없어, 이 아비가 먼저 얻어야지 감히 어디서 설래발이야.’
국왕과 왕자들이 김칫국을 마시고 있을 때 비행기 엔진이 꺼지고 박정기가 밖으로 나왔다.
하와이 국왕이 비행기에서 나오는 박정기를 격하게 끌어 앉는다.
‘이 양반 왜이래? 또 뭘 바라는 거야?’
“반갑네, 박 대사! 그대가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네.”
“네 그간 잘 계셨습니까? 이리 환대 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박 대사를 향한 내 마음이오.”
“감사합니다. 저 또한 국왕전하를 친애하고 있습니다.”
하와이 국왕의 부담스런 환대에 박정기는 도끼눈을 하고는 뭔 요구를 해올까 의심하였다.
“궁으로 갑시다. 이런 날 한잔해야지.”
“송구하옵니다만 급한 일 좀 처리하고 가면 안 되겠습니까?”
“아! 그런가? 내가 너무 서둘렀군, 어서 일을 보게.”
그렇게 말한 국왕이 물러나는 박정기를 아쉬운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진사님 비행기에서 내릴 물건이 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대장님!”
이제 모두 대장님이란 호칭에 익숙해져있다. 조선 정착민들이 비행기에서 내린 물건을 조선인 마을로 옮겼다.
“큰 귀야. 나 말고는 절대로 문을 열어주면 안 된다.”
“넵! 알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공포탄을 발사하고.”
“네, 알겠습니다.”
인디언 승무원들은 박정기의 힘과 무위를 목격했기 때문에 영웅과 같이 떠 받들고 있었다.
박정기는 여 승무원들에게도 당부를 했다.
“너희들은 조종실 안으로 어떤 누구도 들여보내지 마 알았지?”
“네 알겠습니다.”
“나는 국왕이 초대해서 갔다가 늦게 돌아올 테니까. 식사들 먼저하고.”
“네 알겠습니다.”
여 승무원들은 박정기의 여자가 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서방님 말씀처럼 따랐다.
박정기는 조선인 마을로 가서 최광용 별감과 자경단원들을 만났다.
“대장님께 대하여 경례!”
“충!”
박정기는 이런 인사가 나올 줄 모르고 있다가 당황했다.
그래도 습관이 있어서 바로 거수경례를 하면서 답했다. 특공이란 말이 튀어나올 뻔한 것을 충성으로 바꿨다.
“충! 성!”
“.......”
“구호는 충성으로 바꾸고 오른손은 쫙 펴서 눈썹 밑에 붙입니다. 알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충! 성!”
박정기가 충에 차렷하고 성에 손을 붙이자 모두 따라했다. 몇 차례 연습하자 제대로 따라했다.
“이제 소총을 지급하겠습니다. 총은 나의 분신과 같으며, 잠을 잘 때도 절대로 손에서 떼어 놓으면 안 됩니다. 알겠습니까?”
“넵! 알겠습니다.”
“한명씩 나와서 총을 받으세요.”
“네, 알겠습니다.”
최광용 별감이 앞으로 나왔다. 박정기는 총을 내밀면서 큰소리로 말했다.
“총은 나의 생명이다. 복창하세요.”
“총은 나의 생명이다.”
“다음 앞으로!”
박정기는 총기의 소중함을 알려주기 위해 복창을 시켰다.
모두 수령을 하자, 간단한 교육을 했다.
최광용 별감은 화승총을 사용해 봤기 때문에 쉽게 따라왔다.
“장전을 마치고 이 구리 모자를 요기에 씌워 주는 겁니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기면 이 안에 있는 뇌홍이 폭발하면서 총이 발사됩니다.”
박정기는 화약이 없는 빈 총에 퍼커션 캡을 씌우고 방아쇠를 당겼다.
땅!
장남감 총을 쏘는 것처럼 작은 총 소리가 들렸다.
“오~ 대단합니다. 화승이 없으니 비 오는 날에도 총을 쏠 수 있겠습니다.”
“맞습니다. 화약도 기름 종이에 이렇게 쌓여있어서 날씨와 상관없이 쓸 수 있습니다.”
박정기가 기름 종이에 쌓인 화약을 찢어서 총구에 붙고, 종이와 총알을 함께 우겨 눴다.
“이렇게 하면 됩니다. 많이 간단해 졌죠?”
“네 제가 배운 것 하고는 완전히 다릅니다. 초보자도 금방 배우겠습니다.”
“최 별감님이 이들의 교육을 맡아주십시오. 총알은 넉넉하니까 사격 연습을 많이 시키고요.”
“네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최 별감과 자경단 10명을 지도하고 토루를 향했다.
2층 높이까지 흙을 단단히 다지면서 쌓아 올리고 3층에는 작은 창문들이 뚫려있었다.
중국 여행에서 보았던 토루의 모습과 비슷했지만 지붕이 기와가 아닌 나뭇잎이었다.
‘불 화살 한방이면 불바다가 되겠구나.’
“노 팀장님! 지붕을 기와로 바꿔야 하겠습니다.”
“저희도 그것이 큰 걱정입니다. 다행인 것은 여기엔 활이 없다는 것인데. 아무래도 기와를 구워야 하겠습니다.”
마름들의 호칭을 뭐로 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팀장으로 불렀다. 어차피 외래어 사용이 많아질 것인데 아껴서 뭐하겠는가?
“그렇게 하시죠. 다음에 기와 장인들을 구해오겠습니다.”
“네 그럼 되겠군요.”
“안으로 들어가 봅시다.”
노 팀장의 안내를 받고 육중한 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중심부에 100평정도 되는 공용 마당이 있고, 우물이 있었다.
“물이 나옵니까?”
“네 잘나옵니다. 우물을 먼저 파보고 나서 집을 지은 겁니다.”
“아! 잘하셨습니다. 물이 없으면 큰일이죠. 오물은 반드시 먼 곳에 내다 버리십시오. 전염병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똥 지게에 모아서 밭에 버리겠습니다.”
“좋군요. 안에 들어가 봅시다.”
안에는 이미 궁녀들이 들어가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토루는 정사각형으로 한 면에 10집 씩 총 40가구가 살 수 있도록 지어졌다.
집안으로 들어가자 1층에는 부엌과 식당으로 돼있었다. 사다리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자 창고처럼 넓은 공간이 있고, 3층으로 올라가자 침실이 나왔다.
토루 안쪽으로는 넓게 뚫려있어서 건너편 집이 모두 보였다. 밖으로 난 창으로 밖을 내다보니 하와이 전경이 아름답게 보였다.
‘사생활 보호가 어렵겠네. 그래도 창문이 없어서 시원하고 좋구나.’
앞뒤로 창이 뚫려있어서 바람이 잘 통했다.
“이것은 뭡니까?”
“아래에서 음식이나 물건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도르래를 달았습니다.”
“아주 좋은 생각입니다. 아이들이 빠지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더 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중심부 쪽으로 복도가 있고, 옆에는 문이 달려있었다.
“이 문은 무엇인가요?”
“옆집으로 갈 수 있도록 만든 문입니다. 혹시 전쟁이 나면 자유롭게 움직여야 해서요.”
“아주 좋은 생각입니다. 노 팀장님이 고민을 많이 하셨군요.”
“마을 사람들이 좋은 의견을 많이 주었습니다.”
“하하하 그렇군요. 제가 조선에서 가져온 물건을 많이 풀어야겠습니다.”
박정기는 너무나 흡족했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잘 지어져 있었다.
‘총도 있으니 1,000 명 정도는 쉽게 막을 수 있겠어.’
“주변에 서로 호응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지어주십시오, 외곽으로 갈수록 규모도 더 키워 주시고요.”
“네 알겠습니다. 서로 30보 안쪽으로 지을 예정입니다. 그래야지 활을 쏴서 서로를 지켜줄 수 있으니까요.”
“네 그게 좋겠군요.”
박정기는 아래로 내려와 중심부에 섰다. 빙 돌아가며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것이 마치 벌집을 보는 듯했다.
“벌집 같네요.”
“네 그렇습니다.”
박정기가 큰소리로 궁녀들을 불렀다.
“여러분 이쪽을 주목해 주십시오.”
“네 대장님!”
여기저기서 궁녀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궁을 나와 주무시려면 불편한 것이 많을 겁니다. 준비가 미흡해도 서로 단합해서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틀 후에 미국으로 갈 사람들은 떠날 것이고, 몇 사람은 남을 것인데 그사이 마을을 구경하시고 마음을 정하시면 되겠습니다.”
“몇 명이 남나요?”
“그건 제가 모르죠. 대왕대비 마마께서 언질이 있지 않았나요?”
박정기는 대왕대비가 어떤 계략으로 이런 일을 벌였는지 짐작은 갔으나 그걸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때 하와이 왕궁 시종이 안으로 들어왔다.
“박 대사님 국왕 전하의 명을 전하겠습니다.”
“무엇인가요?”
“오늘 입국한 모든 분들을 만찬에 초대하셨습니다. 빠짐없이 참석해주시길 바랍니다.”
“전부요?”
“그렇습니다. 1시간 후에 시작할 예정입니다.”
“후~ 알겠습니다. 초청에 감사드립니다.”
박정기는 하와이 왕자들이 뭔 수작질을 하는 걸까? 걱정이 되었다.
‘여차하면 모두 처치하고 하와이를 접수하면 되지 뭐.’
“여러분 하와이 국왕 전하께서 여러분 모두를 저녁 만찬에 초대했답니다. 반 시진 후이니 미리 준비하시고, 대기해주십시오.”
“정말인가요? 아까 마중 나오신 분이 국왕 전하이십니까?”
“맞습니다. 화려한 옷을 입은 중년인이 국왕이고 옆에 있던 사람들이 왕자들입니다.”
궁녀들은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본 장면을 기억 되살려 보았다.
박정기는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서 권총과 단검을 상의 옆구리에 차고, 최광용 별감에게 자경단과 함께 왕궁 주변에 매복해 있다가 총 소리가 들리면 들이 치라고 말해두었다.
준비가 끝난 궁녀들이 두 패로 나뉘어졌다.
한쪽은 고운 한복으로 멋을 부리고 얼굴은 벌레 씹은 표정으로 서있고, 한쪽에서는 드레스에 왕관을 쓰거나 모자를 쓴 궁녀들이 턱을 치켜들고 한껏 뽐내고 있었다.
“장금아 어떻게 된 거냐?”
“상궁 마마님들이 빌려 달라는 데 어떻게 해요.”
“그렇군, 얼굴 펴라. 주름 생기겠다.”
“어머! 어떻게.”
호들갑을 떠는 장금이를 뒤로 하고 궁녀들에게 간단한 교육을 시켰다.
“조선과 예법이 다른 것이 있으니 몇 가지 알려주겠습니다.”
“......”
“첫째 절대로 큰절을 해서는 안 됩니다. 고개를 살짝 숙여서 인사하시면 됩니다. 알겠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두 번째 국왕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면 가볍게 마주 잡아 주시면 됩니다.”
박정기는 장금이와 시범을 보여줬다.
“세번째 왕자들이 여러분에게 추파를 던질 것입니다. 그건 여러분이 알아서 할 부분입니다. 하지만 절대로 쉽게 마음을 열지는 마시고 관계를 이어가시면 되겠습니다.”
“예 잘 알아서 하겠습니다.”
가장 나이가 많은 상궁이 전체를 대신하여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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