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 음악
41화, 돈 벌기 너무 쉬운데
10시에 극장에서 기술자들을 모이라고 해놓고 깜빡 잊어버린 박정기는 마음이 급했다.
“갑시다. 빨리!”
“뭔 일인데? 그래!”
“큰일 났습니다. 10시에 사람들을 모이라고 해 놓고 깜빡했습니다.”
“지금이 1시인데 돌아 갔겠지.”
“아닙니다. 빨리 가봐야 합니다.”
박정기가 뛰어나가자 기장님도 따라나섰다.
극장 앞은 인산인해였다. 박정기가 군중을 뚫고 간신히 극장으로 들어섰다.
“여러분 죄송합니다. 제가 일이 있어서 늦었습니다. 빨리 브리핑을 해드리겠습니다.”
“브리핑은 됐고! 음악을 들려주시오.”
“음악은 끝나고 들려드리겠습니다.”
“그냥 음악만 들으면 돼요. 다른 건 필요 없어.”
“아니 그래도 신대륙에 갈려면.....”
박정기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음악을 틀어달라고 항의가 빗발쳤기 때문이다.
“음악을 들려주시오.”
“음악을 들려줘.”
“음악! 음악! 음악!.......”
‘뭔 놈의 음악에 미쳐가지고, 어제 괜히 들려줬어, 내가 미쳤지.’
박정기는 하는 수 없이 단상위에 스피커를 올려놓고 노래를 틀어줬다.
‘진정시키는 의미에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클래식‘이게 좋겠군.’
가늘게 떨리는 바이올린소리가 극장 안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이어서 피아노의 연주가 부드럽게 흘러나오자 마치 바이올린 공주를 피아노 왕자가 따라다니며 구애를 하는 것 같았다.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달콤하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손을 잡고 거닐기도 했다.
다른 악기들이 여백을 채우며 마치 흥겨운 무도회장에서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았다.
소란했던 극장은 숨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기장님도 눈을 감고 음악에 취해들었다. 멀쩡한 것은 박정기 밖에 없었다.
‘나만 이상한 놈인가? 감정이 메말라서?’
박정기는 자신만 감동을 못 느끼고 있다고 생각하니 뭔가 고장이 난 것처럼 불안했다.
오리들 사이에 있는 백조가 스스로를 못났다고 생각하는 게 인지상정.
이런 저런 고민으로 괴로워하던 차에 음악이 끝났다. 1시간 짜리 파일이 끝났는데도 조용하기만 했다.
그리고,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하나둘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아니~ 면접은~ 에이 모르겠다.”
오늘도 허탕만 치고 만 것이 너무 속상했으나 3시간이나 기다리게 한 것이 미안해 아무 말도 못하고 쳐다 만 봤다.
“대표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뭐요?”
“밖에 있는 사람들이 들여보내 달라고 아우성입니다.”
“왜요?”
“자기들도 음악을 듣고 싶다고....”
“뭐? 내가 자선 사업가도 아니고 여기서 음악이나 틀어주라고요?”
박정기는 기술자들 면접을 못 봐서 속상한 마음을 통역에게 화풀이 했다. 통역은 쩔쩔매며 한마디 했다.
“돈을 주고서라도 들어온다고 합니다.”
“돈을 준대요? 정말?”
“네! 정말로 준대요. 극장이잖아요.”
“아 극장이었지. 얼마를 받는데요?”
“가수공연은 3실버, 악단은 5실버, 연극은 10실버입니다. 오페라는 30실버에서 50실버도 합니다.”
박정기가 스마트 폰으로 계산을 했다. 30X500=15,000
‘1시간 틀어주고, 1만 5,000실버라, 오! 이거 돈 되겠는 걸.’
“난 30실버 아니면 안 하겠습니다. 푼돈 벌어서 뭐하겠어요.”
“그럼 가서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해 놓고 불안했다. 아무도 안 들어오면 어떡하지? 차라리 박리다매가 낮지 않나?
‘그래 30실버에 100명보다, 10실버에 500명이 더 이득이잖아.’
박정기는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해보았다. 3실버로 하루 12시간을 돌리는 것과 30실버 받고 1시간 돌이는 것, 확실히 12시간을 돌리는 것이 더 벌 수 있다.
하지만 뭐든 많이 듣고 익숙해질수록 가치는 떨어지는 법이다. 나중에는 3실버도 아깝다고 할 것이다.
-웅성웅성
-앞자리로 가자.
-밀지 마세요. 천천히 천천히
-알겠습니다. 모두 들어갈 수 있으니까. 진정하세요.
-경비 여기 포대자루 가져와. 빨리
밖이 소란스러워 지더니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앞자리부터 채우기 시작하더니 뒷자리까지 차고 계단과 벽에 사람들이 붙어 섰다. 그야말로 만석이다.
2층의 귀빈석도 빠짐없이 사람들로 꽉 찼다.
‘2층은 얼마를 받는 거지?’
“대표님 이제 시작하시죠!”
“알겠네!”
‘한국인이 좋아하는 클래식 이게 좋겠지?’
박정기가 플레이를 누르자, 페르귄트 중 '아침 기분'이 흘러나왔다. 이곡을 작곡한 헨리크 요한 입센이 아직 7살밖에 안되었는데, 그가 40살에 작곡한 음악이 벌써 나오고 있는 것이다.
기장님이 저택을 팔지 못하게 돈벌이만 집착하는 박정기에게 순리든 권리든 저작권이든 관심이 없었다.
후담이지만 헨리크 요한 입센은 음반으로 발매된 자신의 음악을 듣고 영감을 얻어 더 훌륭한 음악을 많이 만들어 후세에 이름을 떨친다.
될 놈은 되는 게 세상의 이치인가보다.
무대뒤 대기실로 들어온 박정기가 통역에게 물었다.
“몇 명 들어온 겁니까?”
“712명입니다.”
“2층은 얼마 받는 거요?”
“50실버입니다.”
박정기의 입 꼬리가 씰룩씰룩 거렸다.
“부기장, 저 스피커 나 주고가게.”
“기장님 같이 안가세요?”
“내가 가서 할일도 없는데 뭐, 여기 남아서 할일이 더 있으니까, 나중에 가겠네.”
“쇼핑이요? 많이 샀잖아요?”
“아직 멀었네. 지금 안사면 세계대전 때 모두 불타 없어지게 될 거야. 그러니까 더 빨리 모아야 하네.”
기장님의 설득력 있는 말에 박정기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그렇죠. 세계 대전이 일어나면 모두 폐허가 되니까. 알겠어요. 대신 약속하나 해주세요. 절대로 저택을 팔지 않는 다고요.”
“알았네, 나도 잘 때가 있어야 하는데 왜 팔겠나.”
“알겠어요, 메이드들도 잘 대해 주시고요. 불쌍한 사람들이니까요.”
“걱정하지 말게, 음악 파일이나 넘겨주게.”
“네!”
이 돈벌이가 세계적인 음악가들을 암스테담으로 끌어들였다. 그중에는 쇼팽도 끼어있었다.
박정기는 스피커를 잃어버리면 안 되기 때문에 대형 울림통을 구상했다.
금고처럼 튼튼하고 앞쪽으로 나팔처럼 벌어져서 소리가 잘 들리게 만드는 구조였다.
뒤쪽은 철제 문을 달아 스피커를 넣고 잠기게 했다. 그럼 스피커에서 나온 소리가 울림통 안에서 한번 증폭되어 더 크고 웅장한 소리로 변한다.
큰 나팔같이 생긴 입구를 통해 관중석에서는 더 큰 소리로 감상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생긴 것을 당장 만들어 주세요.”
“알겠습니다.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통역이 설계도가 그려진 종이를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박정기는 생각했다.
'돈 벌기 너무 쉬운데.'
나중에 무대 위에 설치할 확성기의 모습 (AI 생성 이미지)
Commen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