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 김좌근
48화, 한양에 부는 서양 문화
비행기가 한양 상공에 나타나자, 사람들이 한강을 향해 몰려들었다.
-나르는 배가 돌아왔다.
-한강에 가보자.
비행기가 속도를 줄이고 낮게 날다가 수면에 미끄러지듯이 착륙했다.
-저걸 타보면 소원이 없겠다.
-나도, 하늘에 날면 무슨 기분일까?
-하늘을 나는 기분이겠지. 바보 아니냐?
비행기가 착륙해서 서빙고 나루터로 가까이 다가갔다. 지난번에는 경계심이 있어서, 동재기 나루에서 사람을 태웠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최고 권력의 동생이 타고 있는데 해코지야 하겠는가?
“형님 밤 문화를 체험하시느라 고생많이하셨습니다.”
“커흠! 이 사람이 못하는 소리가 없구먼, 내가 무엇을 했다고 그러는가?”
김좌근이 여 승무원들의 눈치를 살피며, 자신의 흉을 모면하려고 큰 기침을 했다.
“네네 그렇다고 칩시다. 아무튼 고생하셨으니 일찍 들어가 쉬십시오. 그리고 미국으로 넘어갈 사람들 빨리 데려다 주시고요.”
“알았네, 그건 걱정하지 말고, 우형 집에 가서 술이나 한잔하세나.”
“아이고 됐습니다. 조종을 오래 했더니 피곤해 죽겠습니다.”
“허긴 그렇구먼, 우리 집에 가서 쉬면 안 되겠나?”
김좌근은 자신이 미국과의 관계에 커다란 역할을 하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려는 것이다.
박정기는 비행기를 비우고 가는 것이 아직은 불안해서 나가지 않으려 하고 있다.
‘기장님도 안 계신데 아직은 안 되지.’
“안되겠습니다. 오늘은 그냥 들어가시고 내일 오세요.”
“큼, 알겠네, 잘 쉬시게.”
김좌근은 아쉬워하며 비행기를 나섰다. 구종이 팔을 못 쓰니 보따리는 김좌근의 몫이었다.
괴한들의 습격을 받을 때 김좌근을 지키려고, 몸 구종이 앞에 나섰다가 팔이 부러졌다.
김좌근이 아무리 안하무인이라고 해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막아서 다가 다친 사람에게 함부로 하겠는가?
김좌근이 나룻배를 타자, 여자 승무원들과 남자 승무원들은 선물 꾸러미를 옮겨 실었다.
“대장님, 다녀오겠습니다. 저 없어도 잘 주무시고요. 히잉!”
“뭐래? 대왕대비 마마께 잘하고 와라 알겠지?”
이젠 대왕대비가 보낸 첩자들이란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기 때문에 허물없이 말했다.
“네, 저는 대장님 편이에요. 다녀 올 테니 보고 싶어도 조금만 참으세요.”
“저도 다녀오겠습니다. 너희들이 잘 보살펴 드려, 알았지?”
“걱정하지 마! 얼른 가기나 해라.”
김혜수와 장금이 그리고 정샘이 배를 타고 한양으로 들어갔다.
이들의 행색이 어찌나 가관인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김좌근은 양복 정장에 중절모를 쓰고, 선글라스를 꼈으며, 장금이는 연녹색 드레스에 깃털 장식이 달린 모자를 쓰고 있었다.
김혜수는 노란색, 정샘은 우유 빛깔 드레스를 입고 넓은 챙의 모자를 썼다.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왔다.
-와~ 공작새 같다.
-저 남자는 장님인가?
이들의 행차에 구경 나온 사람들로 한양의 길거리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짐을 가득 실은 수레들이 일행의 뒤를 따랐다.
한 시진에 걸쳐 거리 패션쇼를 한 일행은 창덕궁 대왕대비 거처에 들었다.
“오~ 이렇게 어여쁠 수가 있나? 한번 돌아 보거라.”
“네, 황송하옵니다. 마마”
나인들이 빙그르 한 바퀴 돌았다. 화려한 드레스가 펼쳐졌다가 몸에 감겼다.
“아름답구나. 그것이 무엇이냐?”
“서양 여인들이 입는 드레스라는 것이 옵니다.”
“드레스라? 귀해 보이는 구나.”
대왕대비가 부러워하는 눈빛을 읽은 김좌근이 선수를 쳤다.
“마마의 드레스도 많이 사왔습니다. 한번 입어보시지요.”
“정말인가? 어디 구경이나 해볼까?”
“네, 마마 선물을 들이라 이르겠습니다.”
박정기가 대왕 대비전을 물러 나와 선물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선물이 너무 많아서 넓은 대비전이 좁아 보일 지경이었다.
대왕대비는 김혜수가 입혀주는 드레스를 하나씩 입어보았다.
“너무 아름다우십니다. 마마.”
“그러하냐. 감촉도 부드럽고 좋구나.”
“다른 것도 입어보시지요.”
“그러자 구나, 이번에는 저것이 좋겠구나.”
대왕대비는 드레스와 모자, 각종 장신구를 착용해보며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만하고 너희들도 곤할 터이니 물러가 쉬어라.”
“네, 마마 침수 드시옵소서.”
나인들이 대비전에서 나온 시간은 자정이 넘을 때였다.
밖으로 나와 보니 상궁과 나인, 수십 명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수라 상궁은 장금이를 끌고 갔고, 침방과 생과방도 각자 김혜수와 정샘을 끌고 갔다.
수라간 처소에서는 난리가 났다. 장금이의 변한 모습에 다들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어머머, 네가 개똥이 맞느냐? 어떻게 이럴 수가~”
“마마 저 김개똥이 맞습니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그래, 그래 네가 이억만리 타국에 다녀오느라 고생이 많았겠구나. 그런데 고생한 것 같지는 않고, 왜 호강을 하고 온 것 같으냐.”
수라간 최고 상궁이 부러움 반, 시샘 반으로 노고를 치하 했다.
“어여삐 봐주셔서 감사하옵니다.”
“그래 서양은 어떻더냐?”
“네 저희가 간 곳은 암스테르담이라는 곳입니다. 집은 모두 대궐처럼 높았고, 수많은 배가 끝도 없이 물건을 싣고, 내렸습니다. 사람들은 키가 크고 사납게 생겼으며 상점에는 처음 보는......”
장금이의 암스테르담 체험담은 날이 새도록 끝나지 않았다. 그건 생과방과 침방도 마찬가지였다.
급기야, 드레스를 벗겨서 돌아가면서 입어보고 써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궁궐의 밤은 그렇게 새워 버리고 날이 밝았다.
“상의원 첨정께서 들었사옵니다.”
“들라 하라.”
김좌근이 대비전에 들어 절을 올렸다.
“여독은 풀었는가?”
“네 마마, 어찌 안색이 안 좋아 보이십니까?”
“호호호 그럴 일이 있었네.”
“그래 갔던 일은 어떻던가?”
김좌근은 거짓말을 조금도 보태지 않고 봤던 것을 아뢰었다.
“미국으로 가는 길에 하와이라는 나라를 들렀는데, 큰 풀을 쥐어 짜면 꿀 물이 나오고, 온갖 맛난 과일이 일 년 내내 자라서 농사를 안 지어도 먹고 마실게 넘치도록 많았습니다. 날씨는 상쾌하고 바다는 투명해서 천국이 따로 없었습니다.”
마치 눈앞에 그림이 그려지듯이 상상을 하던 대왕대비가 과장이 심하다 느껴서 되물었다.
“그런 낙원이 실제로 있더란 말이냐?”
“네 정말이 옵니다. 거기에 저희 백성을 내려서 설탕을 만들게 시켰습니다. 이따가 설탕을 올릴 테니 한번 드셔 보십시오.”
“그래? 그 귀한 설탕을 가져왔다? 그리고, 미국이라는 나라는 어떠 하더냐?”
김좌근은 미국 하늘을 날며 본 것을 설명했다.
“미국이라는 곳은 끝이 없이 넓었으며, 조선 땅만큼 넓은 곳이 논과 밭이었습니다. 하늘에서 볍씨를 뿌리면 벼가 자라고 나중에 추수만 하면 됩니다. 들소들은 이루 헤아리지 못할 만큼 많아서 십년이 아니라 백년을 잡아먹어도 다 먹지 못할 것 같았사옵니다.”
대왕대비는 입이 쩍 벌어진 것도 잊은 채 김좌근의 이야기에 심취했다.
김좌근의 암스테르담 방문 다녀온 얘기까지 꼼꼼히 챙겨 드리고 있었다.
한편, 김좌근이 보낸 하인들은 비행기에서 소시지와 훈제 고기를 내리고 있었다.
비행기 하부 창고에 가득 싣고, 그것도 모자라 기내를 꽉 채운 고기를 보고 기가 질려서 마름이 물었다.
“아니 이게 다 고기란 말입니까?”
“그렇소. 배와 사람을 더 불러와서 빨리 내리시오.”
하인은 나루터로 돌아가서 사람과 배를 더 많이 데려왔다.
배에서 내려지는 고기와 소시지는 수레에 실려 창덕궁으로 들어갔다.
-저게 다 소고기라고 하던데.
-살다 살다 고기를 저만큼 본 것은 처음일세.
-안 먹어도 배가 부르네 그려.
끝없이 이어지는 수레 행렬은 한양에 또 다른 구경거리가 되었다.
남여 승무원들과 박정기까지 동원해서 고기를 모두 내리고 청소를 마쳤다.
“저건 뭔데 안 내렸어?”
“설탕인데요.”
“그것도 줘야지. 빨리 가져가라고 해.”
이 샘이 소리치자 돌아가던 배가 돌아와 설탕 포대 8개를 실었다.
“이건 설탕이라고 전해주게.”
“알겠습니다요. 나리!”
박정기가 손을 딱딱 털고는 고생한 승무원들에게 말했다.
“고생했으니 점심 먹을 때까지 푹 쉬자.”
“저희도 나가고 싶은데요.”
“진즉에 말했어야지 배를 타고 나가지?”
“이 꼴로 어떻게 나가요. 옷을 갈아입고 가야죠.”
“알았어, 이따가 점심 싣고 오는 배타고 나가면 되겠네.”
“어머 그럼 서둘러야 하겠네.”
아직도 한참이나 남았는데, 서두른다는 말에 고개를 내젓는 박정기다.
‘도대체 옷을 몇 번이나 갈아입는 거야. 100번도 더 되겠다.’
유럽에 다녀온 후로는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옷 바꿔 입기 경쟁이라도 하는 듯했다.
덕분에 호강하는 것은 인디언 청년들이었다. 턱이 마르지 않을 만큼 침을 흘려 댔다.
박정기는 조종실로 들어와 싣고 갈 목록을 정리해서 종이에 적었다.
주로 인디언에게 팔아 금과 교환할 칼과 낫, 도끼, 가마솥, 항아리, 옹기그릇, 도자기, 면포 등 생활용품과 볍씨, 밀, 콩, 감자, 고구마, 배추, 상추, 무, 마늘, 도라지 등 농작물 씨앗들이었다.
수없이 많은 목록을 살피고 빼진 게 없는지 여러 번 체크했다.
“하옥 대감이 탄 배가 옵니다.”
“그래 알았다.”
김좌근이 온다는 말에 문을 열고 마중을 했다.
“형님, 어서 오십시오.”
“그래 동생도 잘 쉬었는가?”
“네 방해하는 사람이 없어서 편히 잤습니다.”
“누가 방해를 한단 말인가?”
“그런 게 있습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만취해서 호텔방에 잠든 사건 이후로 여자들이 노골적으로 들이대는 바람에 밤마다 곤혹을 치르는 박정기였다.
“들어갈 것 없이 자네는 나와 함께 궁으로 들어 가세.”
“궁궐에는 왜요?”
“누님께서 보자고 하시네.”
김좌근은 귓속말로 대왕대비의 의중을 전했다.
“제가 여기를 비워 놓고 어떻게 나갑니까. 안돼요.”
“어허! 이 사람아 대왕대비 마마의 지엄한 명을 거역할 셈인가?”
“내가 조선 사람도 아닌데 어기긴 뭘 어깁니까, 보려면 직접 오라고 하세요.”
“커흠! 흐음~ 아무리 그래도 마마께 어찌 오라 가라 하겠는가? 자네가 잠깐 다녀오면 안 되겠는가?”
김좌근은 대왕대비를 등에 업고 큰소리를 쳤지만, 박정기에게 씨알도 안 먹히자 바로 꼬리를 내리고 사정하며 부탁했다.
“기장님도 없는데 어쩌라고요. 안됩니다.”
“크음~ 알겠네, 하여튼 사람이 융통성이 없어서. 에잉!”
“빨리 사람이나 모아오세요. 내일 새벽에 출발 할 겁니다.”
“뭐가 바쁘다고 벌써 가는가? 좀 머물 면서 좋은 구경도 하고 가지.”
“할일이 많습니다. 형님처럼 밤 문화를 즐길 틈이 없어요.”
은근히 기생집을 언급하자, 곧바로 김좌근의 아픈 곳을 찌르는 박정기.
“이사람 큰일 날 사람일세, 내가 뭘 했다고 그러는가. 그냥 구경하다가 나쁜 놈들을 만난 걸 가지고.”
“뭐! 그렇다고 칩시다. 어떤 남자 둘이서 밤마다 홍등가를 쏘다닌다고 소문이 쫙 퍼졌던데.”
“헙! 아니 그걸 어떻게~ 이 보게 동생 그 얘기는 제발 잊어주시게, 내 자네에게 잘 하겠네.”
김좌근이 얼굴이 붉어져서 굽실거렸다.
“알겠어요. 그러니 사람이나 빨리 알아보세요.”
“그래! 그래! 급하지, 사람이 급하니까 내 얼른 가보겠네.”
김좌근이 도망치듯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형님 이것도 가져가셔야죠.”
“이건 뭔가?”
“준비할 물품들입니다. 형님께 꿔준 돈 이걸로 퉁 칩시다.”
“아니 이렇게 많이?”
놀라는 김좌근에게 박정기가 꼼꼼히 따져준다.
“무슨 말씀입니까? 형님이 강도에게 빼앗긴 게 1만 냥하고, 선물 산다고 빌려준 것이 5만 냥입니다. 도합 6만 냥이면 한양 땅 절반은 사겠습니다.”
환율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조선과 유럽의 화폐는 단위도 다르고, 가치도 달라서 대충 얼버무렸다.
암스테르담과 조선의 물가차이가 너무 심해서 김좌근의 입이 쩍 벌어졌다.
목록을 자세히 살펴보니 1만 냥만 있으면 마련할 정도가 되었다. 1만 냥이면 벼가 2,000 섬이다.
“알겠네, 서둘러 준비하겠네.”
“일 잘하는 사람들로 부탁합니다.”
대답도 안하고 멀어지는 김좌근이다.
대왕대비전을 다시 찾은 김좌근은 박정기의 사정에 대해 아뢰었다.
“마마, 미국에서 온 사신은 비행기에서 내릴 수 없다하옵니다.”
“어째서 그러는가?”
“함께 다니는 자가 있어야 하는데, 그 기장이라는 자가 남만국에 머무는 바람에 혼자 왔습니다. 그래서 비행기를 비울 수 없는 사정이 있나이다.”
“음~ 그럼 내가 가면 만날 수 있는 것인가?”
“누가 감히 거역하겠나이까.”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대왕대비가 상궁을 불렀다.
“그렇다는 말이지, 여봐라 최 상궁!”
“네! 마마.”
“가서 주상을 모셔 오게, 그리고 출타 할 것이니 채비를 서두르라 전하 거라.”
“네 마마 명을 받들겠나이다.”
대왕대비가 비행기를 방문하기 위해 준비하라 일렀다.
Commen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