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 기술자들
90화, 리노의 시정을 살피다.
특공대 파병 문제는 해결이 됐고, 해결해야 할 문제 하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카를로스 중위님!”
“네 말씀하십시오.”
“세인트조지 점령은 조금 미뤄야겠습니다.”
“네, 상황을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카를로스 중위는 당연하다는 듯이 수긍했다.
“이해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이것은 계급장인데, 기수별로 진급을 시켜주시고, 연구소의 외부인 출입을 철저히 막아주십시오.”
“그럼 시청도 밖으로 옮겨야 하는 거 아닌가요?”
생각지 못한 의견에 잠시 고민하다가 시청을 옮기기로 결정했다.
“좋은 지적입니다. 시청사를 옮기도록 지시해 놓겠습니다.”
“네, 그동안 병사들에게 행군 연습을 시키고 있겠습니다.”
“역시, 알아서 잘하시는 군요.”
“병사들은 걱정하지 마시고 다녀오십시오.”
박정기는 든든한 느낌을 받았다.
윌슨은 왠지 냇가에 내놓은 어린아이 같은 반면 카를로스 중위는 믿음직스러웠다.
“데이트는 잘 했습니까?”
“대장님 말씀대로 말을 배우니까 더 친숙해지는 것 같습니다.”
“좋은 소식이네요.”
“감사할 따름입니다.”
“결혼하시면 좋은 집을 지어드리겠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기분이 좋아 보이는 카를로스 중위를 뒤로 하고, 상점이 입점한 곳을 보기 위해 나섰다.
매대가 갖추어지지 않아서 바닥에 늘어놓은 물건들을 많은 사람들이 고르고 있었다.
‘오픈도 안 했는데 벌써 다 팔리면 어쩌자는 거지?’
상인도 정신이 없는지 돈을 계산해주느라 정신이 없다.
그동안은 물건이 없어서 못 사다가, 새로운 상품을 보고 한 번에 몰려드는 것을 보니,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부와 연결되는 것은 오로지 비행기를 통해서 만 이루어지기 때문에 연구소의 보안을 지키는 데는 최고의 장소이다.
하지만 사소한 것까지 일일이 배달해야 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유럽을 더 자주 다녀야 하나. 아니지! 자급자족을 할 수 있게 만들면 되잖아.’
번뜩, 생각이 난 박정기는 생필품을 만드는 기술자를 데려오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상품으로 개량해주면, 오히려 수출 상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 얀센 사장에게 부탁해야겠다.’
길거리를 다녀보니 주막에서는 부침개와 부대찌개, 그리고 불고기를 주 메뉴로 예네버와 막걸리를 팔고 있었다.
가게 앞에 늘어놓은 평상엔 낮 시간인데도 주변 마을 인디언들이 모여 앉아 술을 기울이고 있었다.
“여기 책임자가 누구입니까?”
“아이고 대장님! 안녕하세요. 제가 여기 주모입니다.”
“반갑습니다. 그동안 인사를 못했네요.”
“늘 바쁘시니까. 그러시겠죠. 앉으세요. 식사 내어드릴까요?”
손사래를 친 박정기가 긴히 할 말이 있다고 밝혔다.
“아닙니다. 지금은 처리할 일이 있어서 다음에 먹으러 오죠. 그보다 이렇게 방문한 것은 당부할 말이 있어서 입니다.”
“네, 말씀 주시지요.”
“리노에서는 술에 취해서 추태를 부리면 절대로 안 됩니다. 그러니까 취한 사람에게는 절대로 술을 팔지 말고, 만약에 소란을 피우면 경비원을 부르세요.”
“아이고, 그것 잘됐습니다. 간혹 주사를 부리는 사람이 있어서 힘들었는데 정말 잘되었습니다.”
박정기는 적당히 마시는 것은 괜찮지만 과음을 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많은 비용이 소모된다고 생각한다.
음주 운전사고, 폭행사건, 간음사건, 살인사건, 화재사건 이런 범죄 이면에는 상당한 비율로 술 취한 사람들이 연루되어있다.
또한 숙취로 인한 결근, 근무 태만, 건강악화, 간이나 장기의 손상, 과소비, 향락 문화 등 부작용이 너무 많아서 거론하기도 힘들다.
가장 좋은 것은 금주라고 생각하겠지만, 이슬람교를 믿는 나라들은 또 그들만의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한마디로 적당한 음주는 일상의 활력과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지만, 과음했을 때 문제가 발생하니 과음만 금지하면 될 것이다.
흡연 또한 문제가 심각하기는 하다.
흡연 장소와 금연 장소를 분명하게 구분해서 서로 피해가 없게 할 생각이다.
‘금연 식당과 흡연 식당을 구분해서 입구에 표지판을 달도록 해야겠군.’
사람들 스스로 흡연 매장과 금연 매장을 선택해서 이용하게 하면 된다.
그리고 대중이 이용하는 공공장소는 금연 구역으로 정하면 될 것 같았다.
의료기관도 변변치 않은데 흡연으로 인한 질병을 예방하는 차원의 조치다.
박정기는 메신저에 메모를 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서양식 카페를 겸하는 양식당이다.
호텔에서 조리사로 근무하다 초창기에 넘어온 주방장이 오픈 한 식당이다.
“오픈하는데 인사도 못 드렸습니다.”
“해외에 다니시니 그렇죠. 부시장님께서 오셔서 축하해주셨습니다.”
“장사는 잘됩니까?”
“보시면 아시지 않습니까.”
빵과 소시지를 파는 매대 앞에는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인디언들이 많았다.
자리에 앉아서 햄버거와 핫도그를 먹는 사람도 있었고, 커피를 마시는 사람도 보였다.
“아직도 금싸라기를 받고 있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저 사람들은 어디서 나는 지 계속 가져옵니다.”
“화폐 교환소를 만들어야겠군요.”
“그럼 좋겠습니다. 이건 얼마를 받아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은화를 내는 사람, 금을 내는 사람 아주 헷갈려 죽겠습니다.”
“하하하 그렇겠군요. 금을 가져오는 사람에게 은화로 교환해주면 나아지겠죠.”
“네, 제발 빨리 만들어 주십시오.”
박정기는 다시 스마트 폰에 메모를 하고 다른 상점으로 향했다.
조선 궁녀가 운영하는 옷 가게다.
“어서 오십시오. 대장님!”
“장사는 잘됩니까?”
“너무 잘돼서 걱정입니다.”
“하하하 잘돼서 걱정이라.”
“일손이 부족해서 매일 밤샘을 해야 합니다.”
뒷방을 들여다보니 10여명이 바느질을 하느라, 박정기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재봉틀이 있으면 좋겠는데, 지금쯤 개발이 됐을까?’
“어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옵니까?”
“군인들입니다. 다들 특공대 옷을 만들어 달라고 합니다.”
“가격은 어떻게 치릅니까?”
“모두 금덩어리를 가져옵니다.”
“한번 봅시다.”
옷가게 사장이 내밀은 나무통에 손톱만한 금 조각이 잔뜩 들어있었다.
“하하하 크기가 제각각이군요.”
“저희는 이게 얼마나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잘 받으시는 겁니다. 조만간 화폐교환소를 만들 테니까, 조금만 참으십시오.”
“네, 빨리 만들어 주십시오.”
가는 곳마다 화폐 때문에 걱정이었다.
‘제일 중요한 일을 등한시 했구나.’
시청을 방문한 박정기는 부시장 톰을 찾았다.
“어서 오십시오.”
“급히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왔으니 앉아보게.”
“또, 뭡니까?”
벌써 불안한지 방어자세를 취하는 톰이다.
“너무 겁먹지 말고, 일단 야유회는 연기해야겠어.”
“듣던 중 반가운 말씀이네요.”
얼굴이 피는 부시장을 보며 피식 웃은 박정기는 줄줄이 할 일을 지시했다.
시청사를 연구 단지 밖으로 이전할 것.
화폐거래소나 은행을 만들어 인디언들에게 금을 받고 은화로 교환해줄 것.
금연, 흡연 표지판을 만들어 공공장소와 가게마다 붙여줄 것.
만취자는 구류 처분을 한다는 내용을 게시판에 홍보할 것.
그밖에 법률안을 만들어 보라는 지시를 했다.
“시장님 제 몸은 한 개밖에 안됩니다.”
“누가 뭐라고 하나? 똑똑하고 정직한 사람을 구해서 자네가 고용하라고.”
“그럼 암스테르담에서 사람 좀 데려다 주십시오.”
“누군데?”
“예전에 저와 알고 지내던 사람들입니다.”
“편지를 적어서 주게 다음에 데려올 테니까.”
“네, 감사합니다.”
감사인사를 해야 할 사람은 박정기다.
벌써 상당히 크게 성장한 도시를 관리한다는 게 보통일이 아니다.
박정기는 가끔 와서 툭툭 던지고 가면 그만이지만 실무를 처리하는 입장에서는 코피를 쏟아야 하는 일들이다.
박정기가 잠깐 쉬러 집으로 들어갔다.
계단을 올라가는 데 방안에서 승무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늦어서 나인들이 찾아갔는데, 그 집에서 비명 소리가 어찌나 크게 들리는지 출산하는 줄 알았다나봐.
-그래서 장 상궁님은 어떻게 된 거야?
-초주검이 돼서 며칠 동안 거동도 못한 거지.
-아이고 무서워라. 나는 합방을 못할 것 같다.
-괜찮아, 대장님은 작잖아.
‘으윽! 저것들이~’
조용히 발길을 돌려 연구단지로 향하는 박정기가 투덜거렸다.
“어디 주나봐라! 니들은 평생 처녀로 살다 죽을 거다.”
씩씩거리며 걷는 박정기에게 한 사람이 말을 걸었다.
“마리에트 팀장님께서 잠시 뵙자고 하십니다.”
“아! 마침 가고 있었는데 잘됐군요.”
기술자를 따라 간 공장은 이미 장비 세팅을 끝내고 작업을 하고 있었다.
“빨리 오셨네요.”
“오다가 만났습니다. 무슨 문제죠?”
“그것이 저쪽 팀은 탄피라는 것을 사용하던데. 아무래도 장전 시간이 많이 절약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탄피를 써보려고 하는데요.”
결국 일일이 장전해야 하는 불편함을 인정하고 탄피를 사용하기로 결정한 모양이었다.
그동안 탄피를 못 보다가 처음 접했으니 충격을 받을 만 했을 것이다.
“탄피 제작 공장에 같이 가시죠.”
“네! 감사합니다.”
마리에트 팀장과 기술자 두명을 데리고 화약 공장 옆에 있는 탄피 공장에 갔다.
“이 분들에게 탄피를 제공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네, 가능합니다.”
“사이즈는 이것밖에 없습니까?”
기존의 총열을 사용하다 보니, 탄환의 지름이 12mm에 육박했다.
리볼버 탄창에 넣기에는 과하게 굵은 사이즈였다.
“총열에 맞추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새로운 총열을 보여드리면 탄피를 만들어 주실 수 있나요?”
“네, 처음에는 힘들겠지만 숙련이 되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지금 탄피를 만드는 방식이 소형 선반으로 일일이 깎아서 만들어야 한다.
그러니 한 개를 만드나 백 개를 만드나 효율은 거기서 거기다.
그래도 선반 여러 개를 이용해서 분업화했기 때문에 하루에 2~300개 정도는 만들 수 있다.
나중에 금형을 만들어서 자동화 해야겠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마리에트가 제공한 총구의 크기는 8mm 정도 되는 구경이었다.
확실히 사이즈가 줄어서 탄창에 더 많은 총알을 넣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탄피의 길이가 짧아져서 성능이 떨어지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아무튼 총기제작 회사를 오랫동안 운영해오던 사람이니 생각이 있어서 그랬겠지만 말이다.
두 팀이 원만히 협조키로 했으니 그들을 남겨두고 박정기는 스티븐 팀으로 향했다.
“잘되어 갑니까?”
“우선 이것부터 보십시오.”
“어라! 개틀링을 벌써 만들었습니까?”
“하하하 잠 안자고 만들었습니다.”
“실험은 해보셨나요?”
“아직 못했습니다.”
박정기 앞에 개틀링 건이 놓여있다.
바퀴는 없이 총대만 덜렁 있었지만 확실히 개틀링 건이 맞았다.
촤르르르르르륵
박정기가 핸들을 돌리자 작동음이 들리며 술술 잘 돌아갔다.
“헉! 저걸 한손으로 들 수 있다니.”
“역시, 시장님은 마녀가 웁웁웁....”
한사람이 말을 하는데 옆 사람이 입을 틀어 막았다.
하지만 모두 들어서 알고 있는 박정기는 모르는 척 했다.
이들이 놀라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총열만 10개가 붙어있고, 뒤쪽으로 쇠뭉치가 잔뜩 붙어있어서 거의 100kg에 달하는 것을 왼손으로 들고 오른손은 핸들을 돌리고 있었다.
“이 뒤에 견착대를 만들고, 앞에는 이렇게 잡을 수 있게 손잡이를 만들 수 있을까요?”
“그거야 금방 됩니다. 자네는 개머리판을 잘라서 여기에 붙이고, 자네는 용접기로 손잡이를 붙여 보게.”
“네.”
“알았어요.”
두 사람은 바로 움직였고, 박정기는 새로 만들고 있는 리볼버를 구경했다.
확실히 탄창이 크고 총알이 5개 밖에 안 들어갔다.
약간 바보같이 생겼다고 할까? 뭔가 비율이 맞지를 않았다.
‘무식하게 생겼네, 윌슨 스타일인데.’
“만드는 데 어려움은 없습니까?”
“영상도 보여주시고 그림도 주셨는데 못 만들면 말이 됩니까?”
무언가 조잡해 보여서 궁금해졌다.
“제가 잠시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네 살펴보십시오.”
총을 잡아서 살펴보니 탄창은 총열을 여러 개 잘라서 용접해서 붙였고, 뒤의 노리쇠도 퍼커션 캡 총을 변형 시켜서 만들었다.
노리쇠를 당기면 자동으로 탄창이 회전해야 하지만, 이것은 손으로 돌려주어야 했다.
‘완성도는 확실히 떨어지네, 마리에트씨가 이길 것 같은데.’
그때 개틀링 건이 완성되었다고 알려왔다.
“다 완성됐습니다.”
“오 빠른데요. 그럼 시험 발사해볼까요?”
“저희도 보고 싶습니다.”
“가까운 데로 가봅시다.”
“네, 어서 준비들 하게!”
박정기는 개틀링 건을 들고 연병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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