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 음악
37화, 노래도 저장할 수 있습니다.
극장 안은 개미가 기어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문화적인 충격이 그만큼 커서 정신을 차리는 데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은 오래 주어지지 않았다. 바로 이어서 천사와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왜 이렇게 조용한 거야? 갔나?’
아까까지만 해도 시장 통 같았던 극장 안이 노래 소리만 들리지 아주 조용했기 때문이다.
박정기는 하던 일에 다시 깊게 빠져들었다.
통역이 헐레벌떡 호텔로 뛰어들었다.
2층의 레스토랑에서 박정기의 집사가 되어버린 톰에게 재산 내역을 브리핑 받고 있는 얀센은 뛰어든 통역의 모습을 보고 무슨 사고가 터졌다고 직감했다.
“무슨 일인가? 또 결투인가?”
“그런 것이 아니고, 극장에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어허! 무슨 일인지 알아야 가던가 하지.”
“그게 말로는 못하겠고요, 천국의 노래가 나옵니다.”
“천국의 노래?”
레스토랑에 있던 다른 상인들도 흥미가 생겨 모두 따라 나서게 되었다.
호텔과 극장은 5분 거리 걸어서 도착하니 극장 앞은 인산인해였다.
경비원의 안내로 연기자들이 들어가는 쪽문으로 들어갔다.
“이 소리는 뭔가?”
“이게 그겁니다. 안으로 들어가 보시지요.”
일행은 귀빈석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극장 안을 흠뻑 적시는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애절하면서도 아름다운 멜로디가 심장을 쥐락펴락했다.
“오~ 하느님!”
작게 속삭인 얀센이 난간으로 바짝 다가섰다. 무대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여자가 노래하고 여러 악기가 반주를 했다.
이들이 연주가 얼마나 잘 어우러지느냐 하면, 오랜 기간 함께 협연한 사람들만이 낼 수 있는 하모니였다.
극장의 주인인 얀센이 전문가 입장에서 내린 평가였다.
분석은 잠깐, 바로 노래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팔뚝에 소름이 돋기 시작해서 등줄기를 타고 찌르르 전율이 흘렀다.
눈물이 나려고 해서 고개를 들었다. 자꾸 천정이 뿌옇게 흐려졌다.
그렇게 모두가 숨죽이고 눈물이 흐를 때 음악이 뚝 끊겼다.
-후~ 훌쩍.
-하~ 하~.
-휴~
여기저기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신대륙에 대한 설명을 드리고 기술자의 자질을 평가하도록 하겠습니다.”
“......”
“......”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럼 먼저 우리 미국에 대해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미국의 국토는......”
박정기는 미국 서부에 대한 위치는 빼놓은 채 면적과 자원 환경 농지의 이용과 기술자들의 우대 어린이들의 교육과 복지정책 등 대략적인 설명을 이어갔다.
물론 기장님과 상의한 것은 아니고 박정기 개인적이 바램이 많이 내포되었다.
요점만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첫째, 기술자는 100% 국가에서 고용하고, 높은 임금과 주택을 제공한다.
둘째, 의무 고용 5년 후 개인 사업체를 만든다면 국가에서 자본금을 지원해 주겠다.
셋째, 선진 과학과 지식을 아낌없이 가르쳐주겠다.
“......”
“질문 없습니까?”
“......”
‘이게 뭐야? 무슨 벽을 보고 말하는 기분이네.’
“통역 제대로 설명한 거 맞아요?”
“네 모두 제대로 통역했습니다.”
“그런데 이 반응은 뭡니까?”
“그것이 아까 그 음악 때문인 것 같습니다.”
“노래가 왜요?”
무대 뒤에서 얀센이 걸어 나오며 박정기에게 말했다.
“새로운 음악을 듣고 저 사람들이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이만 끝내고 내일 다시 모이 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 급한데, 내일이면 너무 촉박 해서요.”
“지금은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을 겁니다.”
난처해진 박정기는 얀센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괜히 노래를 틀어서 행사만 망쳤네.’
통역이 사람들에게 일정 변경을 안내해주고 있었다.
“오늘은 이만 마치고 내일 10시에 다시 모여 주십시오.”
박정기가 무대 뒤로 돌아오자, 에바가 또다시 품속으로 달려들었다.
“너무 감동적이에요. 어째서 저에게 자꾸만 감동을 주시는 거죠?”
“뭔 소리야?”
박정기가 에바를 밀어내자, 장금이가 뛰어들었다.
“장금아! 너는 또 왜 이래?”
“저도 안아주세요.”
“저도요.”
“저도.”
여자들에게 둘러싸인 박정기는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어허~ 떨어져, 어서!”
“안돼요. 저 가시나만 좋아하시고, 히잉!”
“내가 누굴 좋아해?”
“저 불여우요.”
어이가 없어서 웃음밖에 안 나오는 박정기가 말했다.
“쟤들 나라는 인사 할 때 사람을 끌어안는 게 풍습이야. 그러니까 평소에 늘 하는 행동이라고.”
“그럼 우리도 평소에 이렇게 할 거에요.”
“맞아요. 우리도 앞으로는 이렇게 인사 할 거에요.”
“아이고, 골치야!”
“어디 아프세요?”
“그래! 아프니까 떨어져!”
“히잉~ 네 알겠어요.”
여자 승무원들이 떨어지자, 박정기는 앞으로 이 여자들을 어찌해야 하나 골치 아팠다.
의자에 앉아서 머리를 꾹꾹 누르자, 전부 달라붙어 어깨를 주무르고 팔을 주무르고 난리를 쳤다.
‘아이고 팔자야. 그런데 진짜 내가 고자 인가?’
박정기는 순간 온몸이 굳어졌다. 다름이 아니라 여자들이 달라붙어 있는데도 감정의 변화나 신체적 변화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말이 씨가 된다 더니. 김좌근, 그 양반하고 만 엮이면 되는 일이 없다니까.’
박정기는 일어나 얀센의 호텔로 향했다. 병아리 새끼들 마냥 뒤를 졸졸 따라오는 승무원들이 행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동양에서는 부인을 여러 명 둔다 더니, 저 사람은 6명인가 봐요.
-아유~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요.
-다들 어려 보이는데요.
호텔 레스토랑에 도착하니 거래하는 상인들도 하나둘 모여들었다.
“미스터 팍! 아까 들었던 음악은 어디서 나오는 겁니까?”
“아! 스피커에서 나오는 겁니다. 노래를 저장할 수 있는 장치죠.”
“오! 노래도 저장할 수 있나요? 처음 들어보는군요.”
“이건 아주 특별한 기술이 들어가는 것이라 알려지지 않은 겁니다.”
박정기의 말을 듣고 한 상인이 질문을 했다.
“그거 특허가 나있나요?”
“특허요? 아직 안 냈는데요.”
“그럼 특허부터 등록하세요. 다른 사람이 만들면 어떻게 합니까.”
“에이~ 못 만들어요. 앞으로 100년은 지나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말을 뱉고 나서 아차 하는 박정기.
‘축음기! 특허부터 내야 하나? 아니야 개발부터 해야지.’
“혹시요. 노래가 나오는 기계가 있다면 사시겠어요?”
“당연하지요. 저는 얼마를 주던 꼭 사겠어요. 집안이 천국으로 변하는데 그 정도는 투자해야죠.”
박정기는 호기심이 생겨서 스피커를 꺼내 놓고 ‘한국인이 사랑하는 클래식’ 파일을 틀어주었다.
잔잔한 피아노 연주가 레스토랑 안을 찰랑찰랑 채웠다. 이어지는 바이올린의 선율이 잔잔한 물결 위로 미끄러지듯 흐르기 시작했다.
작은 새가 짝을 지어 날아다니며 지저귀고, 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왔다. 만개한 꽃에 꿀벌이 찾아 윙윙 거리고, 하얀 구름은 새털처럼 날아다녔다.
모두 눈을 감고 감상에 젖어서 온몸으로 음악을 흡수했다.
뚝!
음악을 정지 시킨 박정기가 입을 열려고 할 때 작은 불만들이 쏟아졌다.
“어허! 에휴~”
“그참! 아~”
“으윽~”
박정기는 시치미를 뚝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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