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 쇼팽
61화, 쇼팽이 초연한 이별의 왈츠
‘피아노의 시인’으로 불리는 위대한 음악가 쇼팽!
폴 헤이먼 기장의 만류와 방해가 있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두 사람은 의기투합해서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았다.
그래서 에바를 미국으로 돌려보내려고 했지만, 그마저 불가능한 상황.
“부기장~! 이것이 얼마나 무모한 짓인지, 두 사람에게 설명 좀 해주게.”
기장님의 의도는 알겠지만, 쇼팽에게 빈정이 상한 박정기는 해맑게 웃었다.
“너무 잘 어울리는 데요. 어쩜 피아노를 저리 잘 칠까? 마치 오케스트라인줄 알았다니까요.”
드디어 기장님이 폭발했다.
“으아악! 자네마저 왜 이러나? 젠장! 젠장!”
‘이렇게 화낼 일인가? 한국에서는 백댄서나 연주자로 있다가 스타가 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기장님이 화내시는 모습을 보니, 살짝 죄송한 마음이든 박정기가 대안을 제시했다.
“큼! 에바 이렇게 하는 게 어때? 연주곡을 틀어 놓고 노래하는 거야.”
“연주곡이 뭔데요?”
“잠깐 기다려봐.”
박정기는 백팩을 열어서 노트북과 외장하드를 꺼냈다.
그리고 오랜 시간 찾아서 여러곡의 연주곡을 찾았다.
다행이 유명 팝송들의 연주곡이 있었다.
특히 케니 지의 섹소폰 연주곡은 다양한 곡이 수록되어 있었다.
박정기가 좋아했기 때문에 다운받아 놓은 게 많았다.
“IOU 여기 있네, 들어봐.”
박정기가 플레이 시키자 노트북에서 아이 오 유가 흘러나왔다.
피아노로 잔잔히 시작하다가 섹소폰이 가슴을 울렸다. 그리고 후반부는 여러 악기가 나와 웅장하면서 풍성한 마무리를 하였다.
짝짝짝짝
“이거 너무 좋아요. 이걸로 할게요.”
“그래? 잘됐네. 기장님! 걱정 안 하셔도 되겠어요.”
“하하하 수고했네, 자네 때문에 내가 살았네, 살았어.”
모두 만족해 하는 와중에 죽을 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쇼팽이다.
‘저 자식, 왜 저래? 세상 잃은 표정이네. 흐흐흐’
“극장에 가서 한번 해봐야겠어요.”
“진짜로 공연을 하게?”
“그럼요, 벌써 표를 팔았는데요.”
‘으악! 추진력 하나 만큼은 대 장군감이다. 아버지를 닮았나?’
일행은 극장으로 이동해서 리허설을 했다.
“반주와 노래가 헛도는 것 같아요.”
“나는 좋기만 한데.”
“아니에요. 서로 이질적인 느낌이에요.”
절대음감을 가진 에바의 말이 정확했다.
스피커를 통해서 나오는 소리와 생목으로 부르는 소리는 엄연히 달랐다.
반주는 디지털로 변환된 게 스피커로 나오는데, 생 목소리와 같을 수 있겠는가.
“부기장! 비행기에 가서 방송 장비를 가져다주게.”
“네에~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절대 안돼요.”
“안 그러면 쇼팽이 연주를 해야 한다네, 그러니까 빨리 가져오게.”
“쇼팽이 하면 되죠, 비행기는 절대로 못 건드려요.”
기장님은 열 받았는지 억지를 썼다.
“그럼, 나는 파리로 갈 테니까, 에바와 공연을 하든 말든 마음대로 하게.”
“아휴~ 알겠습니다. 가져오면 되잖아요.”
박정기가 비행기로 돌아가서 앰프와 마이크를 챙기려다 보니 문제는 전기였다.
“아씨 이걸 어떻게 하지? 이동식 앰프가 없을까?”
“뭘 찾으시는데요.”
“소리가 나오는 앰프라는 것이 있어.”
“어떻게 생긴 건데요?”
박정기는 천정에 달려있는 스피커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렇게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거야.”
“저 기계 밑에 비슷한 게 있는 것 같던데..”
“어디?”
박정기는 윌슨의 자리인 소방 통제 장치로 갔다.
테이블 위에 각종 기계가 설치되어있고, 열상 카메라를 조작하는 조이스틱이 달려있다.
그리고 정면에는 여러 대의 모니터와 장비가 가득 있었다.
‘윌슨의 자리라 관심 있게 안 봤는데.’
“이 아래 문을 열어보세요.”
“이거?”
“네”
테이블 밑에 캐비넷처럼 생긴 문짝이 달려있었다.
“그거 아니 예요?”
“하하 이게 여기에 있네. 윌슨, 이 녀석 매일 음악만 듣더니, 이젠 영화에 푹 빠져서 이걸 여기에 내팽개쳤구나.”
안에는 꼬질꼬질한 CD플레이어가 들어있었다.
둥글둥글한 디자인에 양쪽에 스피커가 있고, 위에는 CD 플레이어 뚜껑이 달려있는 인기가 많았던 제품이다.
“그게 맞아요?”
“그래 딱 맞는 걸 찾았어.”
“어머! 저 잘했죠?”
장금이가 예뻐해 달라고 아양을 떨면서, 초롱초롱한 눈으로 박정기를 올려다보았다.
“에구, 못 말리겠군.”
“아얏! 힝~”
박정기가 뺨을 살짝 꼬집자 앙탈을 부리는 장금이.
박정기는 작동이 제대로 되는지 점검을 해봤다.
CD도 잘 돌아가고 소리도 잘 났다.
문제는 마이크와 연결이 되느냐 그것이 문제다.
마이크 잭은 굵은데, 플레이어 잭은 가늘었다.
“장금아 이번엔 이런 것 좀 찾아봐.”
“아까 거기에 있었잖아요.”
“봤어?”
“네.”
다시 가서 보니 모니터 사이 마이크 받침대에 걸려있는 작은 마이크가 있었다.
줄을 따라가 보니 컴퓨터에 연결이 되어있었다.
“됐다. 찾았어.”
“정말요?”
“그래 오늘 장금이가 큰일 했다.”
박정기는 상으로 장금의 볼에 뽀뽀를 해줬다.
쪽!
“키악~ 어머 어머 어머!”
“저도 해주세요.”
“저도요.”
여자 승무원들이 몰려들자 인디언 승무원들이 고개를 푹 숙였다.
-봐봐, 우리는 상대가 안 된다고.
-맞아, 대장님은 힘도 세고, 여자들도 좋아해.
-나도 대장님이 좋은데.
-남자는 좋아하면 안 되는 거야?
-이 바보야. 대장님은 다 좋아해.
박정기는 플레이어에 마이크를 연결하고, 스마트폰에 케이블을 연결해서 USB에 꽂았다.
‘아이고 복잡하다. 그래도 되는 게 어디야?’
스마트 폰에서 음악을 틀었더니, 소리가 잘 나왔다. 스마트폰 볼륨을 높였더니 소리가 쩌렁쩌렁했다.
이제 마이크 테스트,
박정기가 최근에 꽂혀있는 임영웅의 '사랑은 늘 도망가'를 부르면서 음향을 체크했다.
사랑아, 왜 도망가?
수줍은 아이처럼
행여 놓아버릴까 봐
꼭 움켜쥐지만
그리움이 쫓아 사랑은 늘 도망가
잠시 쉬어가면 좋을 텐데
바람이 분다 옷깃을 세워도
차가운 이별의 눈물이 차올라
잊지 못해서 가슴에 사무친
내 소중했던 사람아
‘역시 음향 성능도 좋아졌구나,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박정기가 마이크를 내려놓자, 여자 승무원들 눈이 촉촉해져있다.
“왜들 그래?”
“너무 멋있어요.”
“또 불러주세요.”
“가슴이 너무 아파요.”
아련한 눈빛으로 박정기를 바라보는 승무원들.
“그만! 쓸데없는 소리 말고 비켜봐.”
“어디 가게요?”
“에바가 공연한다고 하잖아.”
“이익!”
“안돼요.”
“못 가요.”
승무원들이 박정기의 팔을 잡고 매달렸다.
“안 비켜!”
“히잉~ 맨날 에바만 이뻐 해주고.”
“기장님이 시킨 일이야. 비켜봐.”
그제야 떨어지는 승무원들이다.
‘갈수록 더해지는데, 앞으로 어떡해야 하냐?’
박정기는 극장으로 갔다.
“전기가 없어서 이렇게 만들어 왔어요.”
“이거 작동은 되는 거야?”
“좀 닦으면 되죠, 테스트 했는데 잘 됐어요.”
기장님은 꼬질꼬질한 플레이어에 실망한 표정이었다.
“에바, 내가 음악 틀어줄 테니까, 이거 잡고 불러봐.”
“이렇게요?”
“그래 입에 가까이 대야 해. 시작한다.”
박정기가 스마트 폰에서 IOU를 플레이 하자, 전주곡이 흘러나왔다.
“하나~ 둘!.....”
You believe that I've changed your life forever
당신은 내가 당신의 삶을 영원히 바꾸었다고 믿지요
“어머! 이거 누구 목소리에요?”
“네 목소리잖아.”
“아니에요. 내 목소리 아니에요.”
누구나 처음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어보면 기겁하게 된다.
아마 형이나 아버지 목소리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누구나 마이크를 처음 쓸 때는 다 그래.”
“진짜 내 목소리 맞아요?”
“그렇다니까. 줘봐 내가 해볼게.”
박정기가 노래를 불러주자, 그제야 수긍하는 에바다.
“대장님 목소리는 똑같은데, 왜 내 목소리만 이상하게 들리죠?”
“아~ 몰라! 연습 할거야 말거야?”
“다시 틀어주세요.”
박정기가 다시 플레이 시키자 에바가 노래를 불렀다.
그냥 CD를 듣는 거와 똑같았다.
‘야~ 어떻게 똑같이 부르냐? 히든싱어 나가면 1등 하겠다.’
목소리 뿐만 아니라 바이브레이션이나 감정이입이 거의 완벽하게 일치했다.
“에바! 잘했는데, 마이크를 멀리했다, 가까이 했다, 테크닉을 써서 해봐.”
“아! 저는 소리를 작게 내려고 했는데, 마이크를 멀리하면 되겠네요.”
“그래 그걸 잘 활용하면 감정을 더 잘 살릴 수 있어.”
“알겠어요. 다시 틀어주세요.”
에바의 미친 적응 속도에 박정기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떻게 해서 똑같이 부를 수 있는 거야?”
“노래를 들었으니까. 부르는 거죠?”
“그러니까 몇 번 들었다고 부르는 게 이상하잖아.”
“노래를 들었는데도 못 부르는 사람도 있어요?”
박정기는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에바를 바라봤다.
‘그 어려운 걸 아무나 하는 게 아니란다.’
절대음감은 1,000명 중에 1명 정도 태어난다고 한다.
아주 희귀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흔한 것도 아니다.
10여곡의 리허설을 마쳤다. 그냥 한 번씩 불러봤다고 해야 하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서 저녁이 다 되어간다.
“이제 준비해야겠다.”
“네! 저는 언제나 가능해요.”
“그래 긴장하지 말고.”
“재미있는 걸요.”
타고 태어났다고 해야 하나? 현대에 태어났다면 월드스타가 되어있을 것 같았다.
‘아니지, 재능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에바도 어쩌면 빛을 못 보는 천재로 남았을지 모르지.’
스탭들이 무대를 정리하며 분주히 움직였다.
잠시 후 관객들의 입장이 시작되었다.
커텐이 가려진 무대 뒤에는 단상이 있고 그 위에 올려진 CD플레이어와 스마트폰, 마이크가 놓여있었다.
“에바 가운데 삼각형만 누르면 플레이가 되는 거야. 멈추고 싶을 때는 다시 한 번 눌러.”
“몇 번째에요? 알았다고요.”
“네가 긴장해서 실수 할 까봐 그러지.”
“그럼 뽀뽀나 해주던 가요.”
‘무슨? 여자들이 이렇게 막 들이대도 되는 거야?’
박정기가 한국에서 만난 여자들은 내숭을 떨어서 그런지, 이런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애잔한 눈으로 쳐다보는 에바를 살짝 안아주고, 등을 토닥토닥 해주었다.
“됐지?”
“넹!”
밝게 웃는 에바가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드디어 사회자가 썰을 풀기 시작했다.
“이제 네 차례다. 들어가.”
“알겠어요.”
에바가 몸매가 드러나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무대 중앙으로 가서, 살짝 무릎을 굽혀 인사를 했다.
와~ 짝짝짝짝짝!
“에바가 인사 드립니다. 즐거운 시간 되시기를 바랄게요. 첫 곡은 아이 오 유 들려드리겠습니다.”
휘익~ 짝짝짝짝짝!
에바가 스마트폰을 플레이 시키자 전주가 흘러나왔다. 장내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쟤 완전히 무대 체질 아니야? 하나도 안 떨고 그냥 즐기고 있는데.’
에바가 노래를 시작하자, 관객들의 머리가 좌우로 흔들리며 리듬을 탔다.
첫 곡은 잔잔한 감동을 주는 곡이라, 관객들의 분위기를 끌어올리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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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광하는 분위기 속에서 어느덧 마지막 곡이 시작되었다.
우먼 인 러브 (woman in love 사랑에 빠진 여인)
Life is a moment in space
인생은 우주에서 한순간과도 같아요
When the dream is gone
꿈마저 없다면
It's a lonelier place
너무나 외로운 곳이에요.
I kiss the morning goodbye
아침에 이별 키스를 하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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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stumble and fall
내가 비틀거리고 넘어져도
But I give you it all
내 모든 사랑은 당신께 드릴게요.
I am a woman in love
나는 사랑에 빠진 여인이에요.
팝의 여제라 불리는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는 미국 역사상 가장 성공한 여성 연예인 중 한 명이다.
우먼 인 러브는 1980년 발매되어, 세계적으로 2,000만장 이상의 앨범을 판매했다.
짝짝짝짝짝짝
노래가 끝나자, 기립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렇게 준비한 공연이 무사히 마치는 가 싶었는데.
앵콜! 앵콜! 앵콜! 앵콜!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어떻게 해요.”
“갑자기 내가 어떻게 하라고.”
“그럼! 쇼팽씨 연주 좀 부탁해요.”
“그건 안돼.....”
기장님이 말릴 틈도 없이, 에바가 쇼팽의 팔을 잡아 끌고, 이미 무대로 나가고 있었다.
무대 뒤에는 스탭들이 준비해 놓은 피아노가 아직 그대로 있었다.
에바가 스마트 폰 반주로 노래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쇼팽이 피아노에 앉자 에바가 노래를 시작했다.
평소에 연습을 맞춰서 인지 호흡이 잘 맞았다.
심지어 3곡이나 앵콜 곡을 부르고 나서, 관객들은 에바를 놓아주었다.
“쇼팽씨 이리 와서 함께 인사해요.”
에바가 쇼팽을 불러 손을 잡고 관객에게 인사를 했다.
“으으윽 망했다.”
“기장님 힘내세요.”
쇼팽의 경력에 확실한 낙인을 찍어버린 에바를 속으로 응원하며, 기장님의 등을 토닥여 주는 박정기다.
성공적인 공연이 끝내고, 관계자들이 호텔에서 자축 파티를 즐겼다.
기장님은 구석에 앉아 술만 마셨고, 쇼팽은 신이 나서 피아노 연주를 해 댔다.
에바와 승무원들은 박정기를 붙잡고, 춤을 추었다.
필이 받은 쇼팽은 이날 '이별의 왈츠'를 처음 연주했다.
"아니 이거 이별의 왈츠 아니야?"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하하하 쇼팽의 왈츠를 처음 듣는 영광을 누렸군."
기장님은 스마트폰으로 역사적인 순간을 녹화했다.
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
"브라보, 브라보, 브라보."
"훌륭한 곡이었습니다."
다들 축하하는 분위기 속에 박정기는 쇼팽에게 술잔을 내밀었다.
"축하합니다. 한잔하시죠."
"안돼! 절대 안돼!"
기장님이 몸을 날리면서 술잔을 낚아 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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