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 하와이
20화,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중국 상인이 뭔가 좋은 사업 아이템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박정기는 이참에 유럽을 가보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기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제 끝났는가? 어째 한잔했는가 본데 쉬지 않고서?”
“급히 상의 드릴 일이 있어서요.”
10시가 넘어 찾아온 박정기가 무슨 말을 할까 궁금한 기장이다.
“말해보게 무슨 일이 있었는가?”
“제가 기장님 허락도 없이 즉흥적으로 결정한 게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무슨 일인데 이렇게 밑을 까는가?”
박정기는 가감 없이 솔직하게 말을 시작했다.
파인애플이 유럽에서 고가에 판매되는 이야기, 그리고 하와이 국왕이 유럽에 가보는 게 소원이라는 이야기, 그 대가로 파인애플 농장과 사탕수수 농장을 얻었다는 이야기, 중국 상인이 10만 냥을 주고 같이 데려다 달라고 한 이야기 등이었다.
“아주 대박 났구먼, 무슨 고민이 이렇게 깊은가?”
“대박은 대박인데, 기장님도 계획이 있으실 것 아닙니까, 괜히 제가 상의도 안 드리고 결정한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반대하시면 거절할 수도 있습니다. 내일까지 결정해서 알려주겠다고 했으니까요.”
“이 사람 무슨 애기를 하는 건가? 우리가 이곳에서 살아가려면 돈도 필요하고 인맥도 필요한데, 큰 돈과 좋은 인맥을 만들어 놓고 왜 엄살 인가? 지금 칭찬해 달라고 찾아온 거 맞지? 그렇지? 내가 눈치가 없었어, 부기장! 정말 수고가 많았네. 참 잘했네!”
“어~ 아니 그런 것이.......”
박정기는 얼굴이 빨개졌다.
당황해서 말도 제대로 안 나왔다.
‘원래 이런 분이셨나? 좀 불쾌하게 생각하실 줄 알았는데 이 반응은 뭐지?’
박정기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폴 헤이먼 기장은 살림살이와 사업 수완은 제로에 가까웠다.
그래서 박정기가 모든 것을 알아서 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잘해주고 있어서 자신은 비행기 조종만 해주면 되었고, 상당히 만족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자기에게 큰 죄를 지은 것 마냥 행동하니 당황 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폴 헤이먼 기장은 요즘 무척 바쁘게 지내고 있다.
자신이 읽었던 동화책과 동요, 그리고 기억하고 있는 팝송과 컨트리 송, 수많은 책 등을 생각나는 대로 정리하고 있었다.
어쩌면 역사의 흐름이 바뀌어서 세상에 나오지 못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많이 남겨 놓으려고 하는 것이다.
희한한 것은 예전에 한번 보았던 책들도 사진처럼 선명하게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는 것이다.
노래도 모든 가사가 똑똑히 기억났다.
자신에게 이처럼 놀라운 능력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천기를 누설하자면, 기장님은 나중에 이 저작권료로 운영되는 세계 최고의 환경운동 재단을 설립하게 된다.
그 운영비가 작은 나라 국가 재정을 넘어설 정도로 규모가 컸고,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는 NGO 회원수가 100만 명도 넘는다.
그들은 유해한 공장을 찾아내고, 기업이나 정치인에게 잘못된 정책을 수정하도록 강요했다.
그리고 환경에 대한 의식을 개선하기 위해 많은 캠페인을 만들고 홍보했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는 박정기는 기장님이 지루하게 비행기 안에만 계시고 외부 활동을 전혀 안 해서 걱정이 되었다.
처음에는 사람을 가려서 그런가? 했는데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어서 기록하고 있다고 했는데, 자신이 볼 때는 아무것도 안 했다.
향수병에 걸린 것 같지도 않고, 자식들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정말로 괜찮으세요? 혹시 제가 마음대로 결정해서 화난 건 아니시죠?”
“이 사람 걱정도 팔자일세, 내가 할 말도 못하는 사람처럼 보이나? 잘하고 있는 자네한테 내가 왜 참견을 하겠는가? 지금처럼 잘하면 되는 걸세.”
박정기는 기장님의 표정에서 다른 의도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믿기로 했다.
“그럼 기장님 여기서 며칠 묵으며 사탕수수 농장과 파인애플 농장에 투입할 사람을 배치하고 난 다음 유럽 좀 다녀오시죠?”
“유럽 좋지! 어디를 갈 생각인가?”
“런던에서 파인애플을 팔고, 그 돈으로 독일에서 기술자를 모집할 생각입니다.”
“좋군, 이번엔 나도 재미 좀 봐야겠네.”
모처럼 기장님의 얼굴에서 아이 같은 기뻐하는 모습이 엿보였다.
폴 헤이먼 기장은 노래를 정리하다가 유명한 음악가를 떠올려 보았었다. 어쩌면 그들을 만날 수도 있다는 상상을 했었다.
그런데 그 상상이 현실로 이루어 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설레고 빨리 보고 싶다는 마음 뿐이었다.
어려서 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틈틈이 즐겨왔기 때문에 그 감동은 보통 사람과 다른 것이었다.
대충 생각해도 쇼팽과 슈만 그리고 베르디와 바그너, 요한 슈트라우스, 멘델스존 등등 몇 명은 현재 활동하고 있을 것이다.
얼마나 꿈 같은 일인가? 현대의 어느 예술가와는 비교 자체가 안 될 위인들이다.
“기장님 뭐 좋은 일 있으세요?”
“아~ 아닐세. 어서 가보게 조선 사람들을 자네가 보살펴야 하지 않겠는가?”
“네 알겠습니다. 다시 보고 드리겠습니다.”
“그래 어서 가시게.”
박정기가 비행기에서 나와 해변의 숙소로 이동하는데, 어디선가 클래식 음악이 들리는 듯 했다.
‘내가 잘못 들었나? 지금 축음기가 있을 때도 아니고? 맞다! 축음기! 만들면 대박 나겠는데? 에디슨은 어차피 축음기로 큰 돈도 못 벌었잖아, 그러니까 미안할 필요는 없겠지?’
박정기는 대단한 생각을 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했다.
다음날 아침 수평선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모두가 지켜봤다.
마치 자신의 미래를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와~ 장엄하구나.”
“생전 처음 봅니다. 바다에서 해뜨는거.”
“맞아! 여기가 천국이지 어디가 천국이겠는가.”
“나도 여기서 살고 싶다.”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짝! 짝! 짝!
“자 이쪽으로 모여보세요.”
박정기가 힘찬 박수를 치면서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여러분 미안하지만, 일정이 변경돼서 이곳에 더 머물러야 할 것 같습니다.”
-와 정말 잘됐다. 근데 뭐가 미안하다는 거지?
-이렇게 빨리 소원이 이루어지다니,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진짜? 여기서 사는 거야?
다들 좋아서 입이 쩍 벌어졌다.
하늘도 날아보고, 맛있는 음식과 과일들, 그리고 술안주로 고기도 배불리 먹었다.
천국이 아니면 무엇인가? 그런데 미안하다니 그 부분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부터 잘 따라주세요. 할 일을 맡길 거니까. 부르는 사람은 앞으로 나오세요.”
“네 알겠습니다요.”
“네네.”
박정기는 농사꾼과 기술자를 분리했다.
그리고 여자 중에서도 뭐를 잘하는 지 물어서 분야를 나누었다.
12세 이하 어린이들은 따로 모아 교육을 시킬 것이다.
오전 내내 면담하고 분류해서 배치한 것이 다음과 같았다.
사탕수수밭 담당, 마름 안정호와 머슴 29명
파인애플 담당, 마름 이경호와 머슴 4명
대장간 목공 담당, 마름 노변근과 기술자 4명
사탕수수 가공 담당, 마름 정종면과 머슴 6명
집안일 집사 1명, 머슴 2명
부엌과 빨래 살림을 돌보는 일은 최광용 별장의 누님이 담당하고 몸종과 여종 5명을 붙여줬다.
별장의 부인은 어린 자녀가 있었기 때문에 유모와 함께 아이들의 교육을 맡았다.
사실 가장 큰 이유는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는 것이 작용했다.
용인의 김진사가 전체적인 관리를 맡았고, 최광용 별감을 외부의 농지 관리와 규율을 담당했다.
애매한 위치의 두 사람이 남았는데, 서로 사촌지간으로 하나는 김진사의 첫째 딸 김희선과 15살 동갑내기 김대건이다.
김대건은 아버지가 천주교 박해로 순교하자, 친척인 김진사 집으로 보내져 살고 있다가, 김진사 가족이 도망 오면서 함께 비행기에 오르게 된 것이다.
‘김대건?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동명이인인가?’
박정기는 자신과의 접점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교과서에 실린 그 사람이 이 사람이라 고는 전혀 연결 짓지 못했다.
아무튼 김희선은 학문을 익혔기 때문에 선생님이 되었고, 김대건은 박정기의 조수로 발탁되었다.
“자 이제 모두 배치가 끝났으니 각자 맡은 위치에서 최선을 대해주기 바랍니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대장간과 목공은 따로 나 좀 봅시다.”
“네. 대장님!”
“대장님?”
“네! 저 야인들이 대장님이라고 부르던 데요.”
“음, 뭐 편한 대로 불러요.”
박정기는 호칭이 많아서 자신도 헷갈릴 지경이다.
“이 도면을 보시오, 사탕수수를 이틀에 넣고 이것을 돌리면 사탕수수가 눌려서 즙이 나올 겁니다.”
“네! 그래 보입니다. 힘이 많이 들어가겠군요.”
일머리를 아는 대장장이가 대답했다.
“그러니까, 이 바퀴가 큰 힘을 받을 수 있게 튼튼히 고정해야 하는 겁니다. 잘 만들 수 있겠죠?”
“한번 해보고 문제가 생기면 다시 만들겠습니다.”
“좋아요, 잘 될 때까지 개선하고 연구하면 좋은 물건이 나올 겁니다. 아무튼 사탕수수 밭을 계속 늘려갈 거니까, 쉽고 효율이 좋도록 다함께 머리를 맞대고 연구해 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도면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짜낸 즙을 졸이는 가마솥입니다. 크고 넓게 만들어야지 타지 않고 잘 될 겁니다.”
“아~ 조청이나 엿을 만드는 것이군요.”
“오! 그래요, 좋은 생각입니다. 그거와 똑같습니다.”
의외로 설명이 쉬워져서 다행이었다. 만드는 과정을 잘해야지 결과물이 좋아지는데 이미 그쪽으로는 경험이 많은 것 같았다.
“그리고 목수팀은 부족한 건물과 보관 창고, 그리고 밭에서 일하다가 쉬거나 밥을 먹을 수 있게 원두막도 여러 개 지어주세요.”
“목수팀이 뭡니까?”
“내가 그랬어요?”
“네 처음 들어 보는 말이라 이해를 못했습니다.”
“팀이란 말은 무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목수들 이라는 말입니다.”
목수들은 그제야 이해를 하고는 다음 질문을 했다.
“필요한 건물을 많이 지으라는 말씀이시죠?”
“맞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사람들이 들어올 것이니까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얼마나 더 사람들이 옵니까?”
“몇 천 명은 더 올 겁니다.”
“헙! 그렇게 많이 옵니까?”
“네 어쩌면 더올 수도 있습니다. 자 이걸 보세요.”
박정기는 노트북을 꺼내서 푸젠에 여행가서 찍은 사진들을 보여줬다.
토루라고 불리는 연립 주택 형태인데 특징은 외부의 침략을 막기 위해서 작은 성처럼 만들었다는 것이다.
안에는 수십 가구가 공동체 생활을 하고 서로 화목하게 사회를 이루며 살아간다.
하와이는 언제든 외부의 침략을 받을 수밖에 없는 지리적 여건에 처해있다.
수많은 무역선과 탐험선이 하와이를 기점으로 왕래한다.
무역선이나 탐험선은 약한 자를 보면 언제든 해적이 될 수 있는 자질을 가지고 있다.
달리 말하면 약자에겐 해적이고, 강자에겐 무역선이다.
실제 역사에서도 크고 작은 침략을 많이 겪는 하와이다.
“이제 이해가 되겠소?”
“네 그런데 이건 뭔가요?”
“노트북이라는 겁니다.”
“그 그림은 직접 그리신 건가요?”
“아니요, 그림을 그려주는 기계가 있소.”
“한번 볼 수 있을까요?”
오히려 다른 곳에 정신을 팔고 있는 목수들을 보면서 살짝 짜증이 올라오려는 순간 번뜩 생각이 났다.
‘아이고, 이런 때 사진을 찍어야지.’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는 것이다.
탄생, 결혼, 입학, 준공식 등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사진이다.
바로 시작을 기념을 하기 위해서다.
박정기는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냈다.
“모두 다시 모여보세요.”
‘하와이 1세대 이주 기념 촬영을 해야지 뭘 생각했던 거야?’
사람들이 다시 모여들었다.
박정기가 적당한 곳으로 자리를 잡았다.
“옆으로 길게 늘어서 보세요, 얼굴이 잘나와야지 좋습니다.”
박정기가 다니면서 아이들은 앞에 앉히고 부부는 같이, 남녀는 양쪽으로 흩어 놓았다.
“자 여기를 보고 가만히 있어요.”
찰칵! 찰칵!
“이제 김치~~~ 라고 해보세요, 다 같이 김치~~~~~~”
찰칵!
“자! 다 끝났으니 각자 맡은 일을 보세요. 해산!”
[출처] 푸젠 토루, 객가인이 화목하게 지내는 전통 가옥
http://kr.people.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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