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 산업화
65화, 현지 주민들과 조우하다.
연금술사 아론이 온도가 다 되었다고 알렸다.
“180도입니다.”
“통을 다시 바꾸세요.”
“네 알겠습니다.”
“이제부터 나오는 것이 등유입니다.”
“등유는 어디에 쓰나요?”
“당장은 고래 기름을 대체할 등불용으로 팔 겁니다.”
“아! 등불용 기름은 수요가 많을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요. 아마 제일 많이 팔릴 것입니다.”
또다시 250도가 넘었다고 알려왔다.
“통을 바꾸세요.”
“네 알겠습니다.”
“이제 불을 세게 지피세요. 화력을 올릴 겁니다.”
“몇 도까지 올립니까?”
“300도 까지 입니다.”
그렇게 경유까지 뽑아내고 나머지는 증류기 아래에 달린 밸브를 열어서 빼냈다.
‘디젤 엔진이 없으니 경유가 애물단지네, 그냥 이걸로 가열하는데 써야겠구나.’
“지금 나온 경유를 증류기 가열하는데 쓰세요. 다만 뜨겁게 가열을 해서 태워야지 그을림이 안 나옵니다.”
“알겠습니다. 중탕 시킬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기술자와 말을 하면 일이 술술 풀리는 기분이다.
하나를 얘기하면 둘 셋이 나오니 말이다.
“이 걸쭉한 기름은 무엇인가요?”
“이게 중질유 인데 당장은 쓸모가 없습니다. 모아두었다가 나중에 증기기관 연료로 사용할 겁니다.”
박정기는 중질유를 증기기관에 사용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40% 넘게 나와 가장 많았기 때문이다.
직접 증류해보니 처음 계획보다 상황이 바뀌어서 수정해야 했다.
“저 끈적거리는 찌꺼기는 무엇이죠?”
“저건 아스팔트라고 하는 건데 식으면 딱딱해지니까, 모래나 자갈과 섞어서 도로를 포장하면 아주 좋습니다.”
“하하하 버릴 게 하나도 없군요.”
“그런가요? 하하하 정말로 노다지가 따로 없군요.”
“노다지가 뭡니까?”
“값지다는 말입니다.”
연금술사와 증류 기술자들은 여러 가지 기름을 살펴보면서 들떠있었다.
그때 한 명의 병사가 달려와 급한 소식을 전했다.
“현지 주민들이 이쪽으로 다가옵니다.”
“음! 피할 수 없는 건가?”
“어떻게 하죠?”
“여러분은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제가 가서 해결을 하겠습니다.”
박정기는 비행기로 가서 권총을 장전하고 허리에 찼다.
“대장님 무슨 일 있어요?”
“아니야 현지인들이 왔다 길래 혹시나 해서 준비한 거야. 너희들은 비행기만 잘 지키고 있어.”
“네 조심하세요.”
박정기가 시그널 힐 정상으로 올라가자, 멀리 다가오는 10여명이 보였다.
“노바로 소위님 일부는 양옆에 잠복 시켜서 저격을 준비 시키고, 우리도 10명만 남아서 저들을 맞읍시다.”
“네 알겠습니다.”
노바로 소위가 경비 대원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배치하는 동안 박정기는 망원경으로 다가오는 현지인들을 살폈다.
노인과 장년인이 주축이고, 모두 백인들이다.
어린 소년은 노인 옆에서 따르는 것을 보니 아들이나 손자 같아 보였다.
20분 정도 기다리자 현지인들이 다가와 멈추고, 노인이 말에서 내렸다.
-올라 부에나스 따르데스
“스페인어군요. 뭐라고 합니까?”
“좋은 오후라고 인사합니다.”
“안녕하시냐고 인사해주십시오.”
“왜? 왔느냐고 물어봅니다.”
박정기가 노바로 소위에게 통역을 부탁했다.
“저 검은 물이 바다로 흘러가지 못하게 막기 위해 온 사람이요.”
“그것 잘됐군요. 물고기가 떼 죽음 당하는 것도 없어지겠군요.”
“네 그렇겠죠. 조개들도 되살아 날 겁니다.”
노인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성호를 그렸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배려였군요.”
“아멘.”
종교가 없는 박정기는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 대충 말했다.
“저는 신부 베드로라고 합니다. 이곳 로스앤젤레스 선교회 소속이죠.”
로스앤젤레스는 ‘천사들’이라는 뜻으로 종교적이 색채가 깊다.
“소위님의 직함과 소속을 말해주시고, 저는 이 지역 책임자라고 소개해 주세요.”
통역이 자신의 군 경력과 박정기를 캘리포니아 주 관리 책임자라고 소개했다.
“아! 그렇군요, 저희가 도울 일은 없겠습니까?”
“식자재를 공급해주시면 은화로 값을 치르겠습니다.”
“좋군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식량과 고기는 많이 있습니다.”
긴장했는데 의외로 쉽게 풀려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일할 사람이 있으면 고용하고 싶습니다. 임금은 넉넉히 드리겠습니다.”
“그 문제는 상의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하늘을 날아서 왔습니까?”
“네, 비행기를 타고 왔습니다.”
“지난번에도 여기 위를 날아가지 않았습니까?”
“두세 번 지나갔었죠.”
“저희는 드레곤이 출몰하는 줄 알고 두려움에 떨었는데, 관리자 분이었다니 천만 다행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드레곤이 나타난 줄 알고 경계를 했는데, 오해가 풀려서 금방 친화적으로 나오는 현지인들이다.
“후한 값에 말도 사고 싶은데 여유가 있습니까?”
“많이 있습니다. 몇 마리나 필요하십니까?”
“승마용으로 50마리 짐말로 20마리 정도요. 마차도 있으면 사고 싶군요.”
잠시 생각하던 베드로 신부가 긍정적인 대답을 했다.
“상당히 많군요. 이 문제도 마을 사람들과 상의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신부님을 만난 것도 다 주님의 배려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멘.”
박정기는 일이 잘 풀리자 약간의 아부를 섞어 말했다.
‘걱정을 했더니 오히려 큰 도움이 되겠는 걸.’
그렇게 그들을 보내고, 노바로 소위에게 주변을 탐색한 결과를 브리핑 받았다.
“저들이 온 곳은 북쪽으로 20km 이상 떨어진 곳인데, 아직 몇 명이나 거주하고 있는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지난번에 보니까 100여 가구쯤 되겠더군요.”
“네 참고하겠습니다.”
혹시나 해서 노파심에 주의를 주었다.
“지금은 친화적이라고 해도 언제 틀어질 줄 모릅니다. 항상 최상의 경계 태세를 유지해 주십시오. 안심하고 있을 때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입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렇게 현지인과 만남을 끝내고 증류소로 와보니 2호기와 3호기 설치로 바빴다.
“너무 서두르는 것 아닙니까?”
“더 빨리 만들고 싶어서 저러는 것 아닙니까.”
주류 증류소에서 재료가 있어야 일을 할 수 있는데, 여기는 널린 게 원유이니 욕심이 나는 것이다.
박정기는 오크통 하나에 2실버를 지불하겠다고 약속했다.
원유야 넘치게 많고, 퍼 담아서 불만 때면 되니까, 거저 먹는 거나 다름없다.
술을 증류할 때는 약간의 실수도 허용되지 않는다.
사람의 입맛이 얼마나 까다로운가? 작은 차이도 기가 막히게 찾아낸다.
하지만 원유 증류는 대충 온도에 맞춰서 통만 바꿔주면 되는 것이다.
사실 기술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노예를 시키고 자신은 불 조절과 온도만 체크하면 끝이다.
가장 흥분한 사람은 연금술사인 디아스 아론이다.
벌써 자신의 텐트로 가서 실험 도구들을 늘어놓고 있었다.
증류기 3대를 돌리는데 5명만 있어도 충분했다.
노예 20명과 증류 기술자 3명을 3개 팀으로 나누어 교대 근무를 시켰다.
증류 기술자를 팀장으로 삼고 노예 1개조 5명씩을 붙여주었다.
나머지 노예 1개 조는 식사와 보조적인 업무를 맡겼다.
“이렇게 운영이 될 겁니다. 팀장님들 모두 이해하셨죠?”
“네 아주 간단하고 좋습니다.”
“디아스 아론 소장님께서 총괄 관리를 맡아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교대 시간은 어떻게 할까요?”
박정기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후진 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뭐~ 아직은 노동법이 없으니까. 그리고 이 시대에는 다 12시간씩 노동 하지 않았어?’
“오전 오후 12시에 교대합니다. 그러니까 하루에 2팀이 근무하고 1팀은 쉬는 거죠. 어떻습니까?”
“그렇게 놀아도 되는 겁니까?”
“음~ 저희는 복지국가입니다. 쉬어야 창의적인 생각을 많이 할 수 있습니다.”
“아~ 천국이 따로 없군요. 식사도 매번 소시지와 좋은 빵을 주시고.”
“맞아, 나는 핫도그 먹는 게 제일 좋더라.”
팀장들의 반응이 좋아 한숨 내려놓는 박정기다.
해서 그날부터 24시간 풀로 증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날 현지인들이 말과 마차를 끌고 왔다.
마차에는 식량이 가득 실려 있었다.
“이야기가 잘되었나 봅니다.”
“드레곤이 아니라고 다들 좋아했습니다. 모두 협조하기로 했으니 언제나 연락을 주십시오.”
“그것 좋은 소식이군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은화를 가져오겠습니다.”
“크흠~ 저희는 가격을 몰라서 얼마나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저희 지역에서 거래되는 시세대로 쳐드리겠습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박정기도 가격을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조선의 물가를 따져서 대충 지불할 생각이다.
비행기에서 은화가 들어있는 포대를 들고 나왔다.
승마용 말이 50마리니까 200냥씩 10,000냥.
짐말은 100냥씩 2,000냥
식량은 대충 1000냥
이 정도 생각한 박정기는 은화 1만 3,000개를 세어서 주려고 했다.
‘하 이걸 언제 세느냐고? 에이씨~ 공연 한번 하면 이만큼 버니까. 그냥 다 줘버려야겠다.’
“이것 받으세요.”
“뭐가 이렇게 많습니까?”
“첫 거래고 해서 말 가격에 제 성의까지 얹어 드리는 겁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젊은 사람이 나와 은화가 들어있는 포대를 들으려고 했지만 꿈쩍도 안 했다.
“뭐하냐?”
“크응~ 이게 너무 무거운데요.”
“이 사람이 아침을 안 먹었나? 줘보게.”
뿌웅~
갑자기 힘을 쓰니 방귀가 터져 나왔다.
하하하하
허허허
크크크큭
“헙! 크흠! 자네들은 방구 안 뀌고 사나? 이 사람들이.”
“여럿이 들고 가세요.”
“이렇게 무거운 걸 어떻게 드셨습니까?”
“제가 힘 좀 씁니다.”
현지인들이 은화 포대를 서로 들어보다가 박정기를 우러러 보았다.
-와 괴물이네.
-이걸 한 손으로 들고 왔다고?
-나는 감자 포대 들고 오나 싶었네.
-허리 나간다. 그만해.
-몇 개로 나눕시다.
사실, 말 시세는 박정기 계산보다 훨씬 비쌌다.
조선에서도 상등 말 1필이면 1,000냥 정도 했고, 짐말도 500냥은 했다.
박정기가 전해준 1만 5,000개 가량의 실버는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 물물 교환하며 살았던 오지의 마을에서 그 가치를 알 수 없었다.
이제 마을에도 대량의 은화가 풀리면서 물물 교환이 사라지고 화폐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로스앤젤레스 마을과 증류소 사이에 유기적인 관계가 형성되었다.
“대장님, 오크통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얼마나요?”
“하루에 10통씩 나오니까 바로 필요합니다.”
‘어떡하지 아까워서 버릴 수도 없고,’
“일단 경질유하고 등유는 비행기 물탱크에 따로따로 옮겨 담읍시다. 그리고 계획이 바뀌었으니 휘발유를 태워서 증기를 만드세요.”
휘발유는 비행기에 실을 수가 없다. 만약 흔들리는 비행기에서 정정기 생기면 폭발해서 공중 분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어차피 모아도 쓸 수가 없으니 태워서 없애는 게 답이다.
“알겠습니다. 중유는 계속 모아 놓을까요?”
“중유는 안정적이니까 구덩이를 파서 보관합시다.”
유럽에서 오크 통을 싣고 와야 한번에 100개정도 그럼 열흘에 한 번씩 왕복 해야 한다.
그 다음은 항아리도 마찬가지로 조선을 계속 왕복 해야 한다.
생산을 멈추면 되는데, 왜 안 하는지 이상했다.
‘그때까지 놀릴 수는 없으니까, 어떻게 하든 계속 굴려야지.’
박정기는 비행기에서 삽자루 여러개를 가져와 주변의 땅을 파보게 시켰다.
습기를 잔뜩 머금고 있는 뻘 흙이라 파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오호라, 물과 기름이라! 진흙 사이로 기름이 새나가지 못하겠는데.”
“그럴 것 같습니다. 임시로 보관하기에는 적당할 것 같습니다.”
“증기기관 배 한 척에 중유 수천 통을 실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중유는 계속 생산을 해야 합니다. 오히려 생산량을 더 늘려야 합니다.”
“네 그럼 구덩이를 계속 파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자고요.”
박정기는 팔을 걷어붙이고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도 원유 증류는 계속 이루어지고 있었다.
돈이 쏟아지는 것 같아서 힘든 줄 모르고, 며칠 동안 계속 땅만 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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