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일본 교환유학일기

2012. 11. 22 목요일 유학생활 이 백 마흔 번째날

2012. 11. 22 목요일 유학생활 이 백 마흔 번째날

오전수업이 없으니 푹 자고 일어나서 여유롭게 학교갈 준비를 하였다. 드라마를 한편봐도 충분한 시간이지만 침대에 누워있다가 일부러 늦게 나갔다. 수업이 이미 시작 된 시각임을 확인하고 교실로 들어갔다.

“일부러 지각했다.”

철이 옆에 앉으며 말했다.

“왜?” “망할 용에 대한 다큐멘터리 감상문 쓰라는거 아직 안 썼는데 일찍오면 나 보자마자 내라고 할거아냐, 그래서 아예 그걸 원천차단하기 위해 수업중에 들어온거지”

그리고 지금 비교문학론 이 시간에 재빨리 그 용 다큐멘터리 감상문을 쓰는 것이다. 비교문학론시간에는 ‘설녀’에 대한 영상자료를 틀어줬는데 설녀이야기는 예전에 책으로 읽어서 잘 알고 있다. 다행이다. 안심하고 용 다큐멘터리 감상문을 썼다.

예상대로 요시마스 교수님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나에게 감상문을 내라고 요구했다.

“써 왔습니다.”

휘갈겨 쓴 감상문을 제출하고 30분동안은 일부러 지각하기위해 매점에서 천천히 사온 아몬드라떼를 마시면서 휴식을 취했다.

창작시간이 끝나고 교실을 나갈 때, 출석체크를 하러, 원고를 받으러 나가러 등등 키타다 마도카랑 몇 번이나 스쳐지나갔다.

집으로 돌아가는길에 철이가 말했다.

“야, 키타다 쨩이 너한테 말걸고싶어 하던거같은데”

“뭔 소리야”

“진짜야 느낌이 그랬어” “소설도 있을 법한 이야기를 허구로 풀어나간거다. 근데 그런일이 있을 리가 없잖아. 말도안되는 소리 하지 마라” 설령 진짜라고 해도 곧 돌아가는 판에 아무런 느낌도 나지 않을 것 같다.

집에서 좀 쉬다가 옷을 사러 G.U로 갔다. G.U는 정말 좋다. 옷들도 예쁘고 아주 싸다. 나같은 패션입문자가 트레이닝을 하기에 최적인 곳이다. 지금 시간에 가면 쿄스케가 일을 하고 있겠지.

“오오오~ 왔어? 안녕!” 쿄스케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오늘은 뭐 보러 왔어? 코트?”

“응, 이제 겨울이잖아.”

“페이스북 그거 있잖아 패션왕, 그거보고 엄청웃었다? 푸하하하하”

“그랬냐, 하하”

패션입문을 선언하면서 페이스북에 ‘누가뭐래도 난 패션왕이 될거야’라고 써 놓은게 그렇게 웃겼나보다.

“패션왕이 될 수 있게 여기 직원분이 좀 도와주시죠?”

“하하, 나도 지금 열심히 공부중이라서”

“야 근데 모바일회원 세일인가 그게 왜 하나도 안 보이냐?” “아 그거? 내일부터 시작이야”

“헉 진짜? 그럼 내일오는게 더 이득이겠네, 아 그리고 모바일회원증 이거 맞아?”

“에....조금 다르긴한데 일단 할인적용시켜주긴 할거야. 굳이 모바일회원증 없어도 내가 있을 땐 적용시켜주겠지만 히히히”

“내일 너 나오냐?”

“아니아니, 내일은 쉬는 날, 토요일날은 있을거야”

“몇 시부터?” “11시 반부터”

“일단 오늘은 옷들 구경하고 입어보고 한 다음에 토요일날 사러 와야겠다”

“그게 좋겠네 천천히 구경해 흐흐”

마네킹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연구하고, 주변 손님들이 고르는 옷, 그리고 손님들의 패션도 스캔하며 하나하나 골라봤다. 하나하나 들고가서 탈의실에서 입어보고 다시 가져다 놓고, 딱 맞는 사이즈를 찾고, 이것도 노동이었다.

“패션왕의 길은 험난하구만 돈도 들고, 옷 입어보는것도 힘들고”

“패션을 물로보면 안 돼”

“쿄스케, 스키야에서 일이랑 여기 일이랑 어디가 더 힘드냐, 여긴 마카나이 있냐”

“마카나이? 하하하하 없지, 옷 먹을순 없잖아. 음......글쎄다 여기 온지 얼마 안되서 그런지몰라도 굳이 말하자면 이 쪽이 더 힘든거같네”

오랜시간동안 옷을 이것저것 조합해보고 하나하나 입어보며 고르다가 대충 어떤걸 살지 정했다. 세일을 할리 없는 노란색 터틀넥 면 셔츠가 지금 갖고있는 야상과 잘 어울릴 것 같아서 하나 샀다.

“뭐뭐 살지 대략 정했어, 토요일날 다시 올게”

“응 그래 잘 가~”

옷을 고르는데 생각보다 엄청난 시간을 들였다. 집에오니 밤 9시였다. 늦은 저녁을 먹고

어머니랑 통화를 했다. 여느때처럼 즐겁게 통화를 하다가 갑자기 어머니가

“아들, 12월 용돈 반만 보내도 될까, 1월부턴 원래대로 넣어줄게”

“아? 뭐야 왜 그래”

“아니다 아무것도 아냐 신경쓰지마, 요새 안 추워?”

“물어봤으면 대답을 해야지, 뭔 일 있어?”

“아무일도 없어”

“그러니까 왜 그러냐고”

“화 내지 말고”

“당연히 화가 나지!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말해, 난 가족 아냐?”

난 이 나이가 되도록 우리집사정을 하나도 모른다. 아마 우리 부모님은 당신들이 굶어죽어도 끝까지 나랑 동생을 아무것도 모르게하며 키우실 것이다.

“아버지 이번달에 일하는데 돈 나갈데가 많아져서 그래” “그럼 그렇게 얘기하면 되지, 뜬금없이 용돈 반 줄인다하면 내가 쓸대없이 뭐 큰일있나 상상하게 되잖아. 나 아들이야 아들 사채를 썼어도 숨기지말고 말하라고”

“엄메, 사채쓰면 니가 갚아주려고?”

“아니, 그건아니지만...상속도 포기해야지, 아무튼 난 아무 상관없거든? 돈을 안준다고 해도, 돈을 엄마한테 보내라고 해도 아무 상관없어. 지금까지 아무 부족함없이 키워준거만 생각해도 감사한데 내 나이 24살에 뭘 더 바래, 나 아르바이트 해서 돈 받으니까 아무 걱정말아요. 왜 그런말을 눈치봐가며 어렵게하는데,”

“부모가 돼서 그런말하면 맘이 편하겠니? 그리고 돈 적게보낸다니까 네가 화를내잖아”

“어허? 엄마 진짜 실망이네 내가 돈 적게보낸다고 화낼 그릇으로 밖에 안 보여? 와, 진짜 충격이다.”

글자 그대로 정말 기분이 상했다.

“날 그런 소인배로밖에 생각안했고만”

아무튼간에 이제 아르바이트는 경험쌓기, 여행자금 마련이 아니라 진짜 생계를 위한 아르바이트가 되었다. 뭐 크게 신경쓰지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아르바이트를 안 하던 전기보다 훨씬 더 풍족하다. 그 정도로 일본의 아르바이트 시급은 세다.

오늘의 지출 – 아몬드라떼 110엔

G.U에서 면셔츠 490엔

총 600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