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 (2)
"자리를 지켜라! 목숨을 걸고 이곳을 사수한다"
무한의 총독 을수는 노예들의 반란 소식을 듣자마자 치안부로 달여왔다. 행정부와 치안부는 바로 옆 건물이었기에 을수가 치안부 인원들을 집결시키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치안부 건물은 요새처럼 지어져 있었으며 유사시 농성을 할 수 있는 구조였다. 모서리에 위치한 탑은 주위를 살피는 것과 동시에 적들을 요격할 수 있는 장소였다.
을수는 그 탑 위에 올라 흉흉한 기세로 달려오는 노예 무리를 바라보았다.
'못해도 2만명은 되어 보인다. 2구역 노예 대부분이 가담했구나'
웨이샹이 속해 있는 2구역 노예 대부분이 반란에 가담한 상태였다. 그들을 상대할 치안부의 병력은 겨우 300명 남짓이었다. 그것도 최근 충원 받아서 300명이 된 것이었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2구역외에 다른 곳의 노예들까지 동시적으로 반란을 일으킨 것이 아니었다. 물론 자신들이 뚫린다면 다른 구역의 명나라 출신 노예들이 반란의 무리에 가담할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명령을 내리기 전까지 절대 사격 하지 마라!"
무지막지한 수의 적들이 몰려들면 공포심 때문에 저도 모르게 사격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 사격이 최대 사거리에 적들이 들어오지 않았는데도 이뤄지는 것이 문제였다.
지금은 공포심을 억누르고 사거리 안에 적이 들어 왔을 때 사격을 해야 했다. 그들에게 보급된 스페인산 머스킷은 재장전도 느렸고, 보급된 탄환도 제한적이었다.
-두두두두
"와!아아아아"
치안부 요새에서 총을 쏠 까봐 조금씩 멈칫했던 노예들은 제법 가까이 접근했는데도 총소리가 들리지 않자 속도와 기세를 올려 밀고 들어왔다.
"쏴라!"
사거리 안에 노예들이 진입하고 을수의 명령이 떨어졌다.
-탕!탕!탕!
300명의 병력이 열심히 방아쇠를 당기며 적들을 향해 총을 쐈다. 적의 사격 위협이 없었기에 병력들은 최대한 조준하여 침착하게 사격 하기 위해 노력했다.
"으아아악!"
선두에서 달려가던 노예들 대부분이 자리에 쓰러졌다. 그런 모습을 보며 뒤를 따르던 노예들이 겁에 질려 납작 엎드렸다.
"일어나! 저들의 총은 한번 쏘면 다시 쏘는데 시간이 걸린다! 달려서 요새 바로 밑으로 이동하자!"
운 좋게 1차 사격에서 살아남은 웨이샹이 겁먹은 노예들을 독려했다. 그러면서 자신 부터 앞장서서 요새로 달려가기 시작했는데 정말로 후속 사격이 없었다. 요새 안에서 병력들이 모두 재장전에 열을 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자!"
웨이샹의 돌진에 힘을 얻은 다른 노예들이 다시 일어서서 달리기 시작했다. 이제 요새까지는 200미터 이내로 진입했기에 조금만 더 달리면 간악한 조선놈들 머리통을 낫으로 박살 내 줄 수 있었다.
-탕!탕!탕!
노예들이 100미터 가까이 까지 접근했을 때 재장전을 마친 병력들의 사격이 이뤄졌다. 다시금 선두 그룹의 노예들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들 바닥에 엎드리는 것이 아니라 더 열심히 앞으로 달렸다.
"거의 다 왔다!"
총알을 귀신같이 피해 달리는 웨이샹은 거듭 노예들을 격려했다. 두 번의 사격으로 상당수의 노예들이 쓰러지긴 했지만 그들의 전체 숫자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았다. 결국 거의 대부분의 노예들이 50미터 까지 접근해 왔고 세번째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제 코 앞이다!"
거듭된 사격에도 전진해왔던 웨이샹의 눈 앞에 치안부 정문이 보였다. 현재 무장 수준으로 문을 박살 내긴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기에 건물 외벽을 기어올라 내부에 병력들을 정리하고 무기를 탈취할 생각이었다.
웨이샹이 문이 아닌 외벽쪽으로 방향을 트는 순간, 치안부의 정문이 활짝 열렸다. 깜짝 놀란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플레이트 갑옷을 갖춰 입은 소수의 기병대였다.
"돌진하라!"
선봉에 을수를 세운 30명의 소수 기병대가 치안부의 문을 열고 노예들을 향해 돌진했다. 기세 좋게 말을 몰아 선두에 있는 노예들의 목을 쳐 버리기 시작했다.
탕!탕!탕!
그에 맞춰서 치안부 남은 병력들은 먼 거리에 있는 노예들을 향해 사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저 놈들을 먼저 처리하자!"
외벽을 기어오르려 했던 웨이샹은 기병대로 몸을 돌렸다. 그의 목소리에 따라 다른 노예들도 기병에게 달려들었다. 낫과 몽둥이가 그들에게 날아들었다.
-챙! 챙!
그러나 노예들의 수준 낮은 무기는 기마병의 갑옷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고 그들이 휘두르는 장창에 우수수 목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들은 명나라 출신이었기에 플레이트 갑옷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다. 그저 조금 튼튼한 갑옷이라 생각했지만 어지간한 냉병기는 다 막아주는 갑옷의 힘은 생각보다 대단했다.
"말을 공략해!"
웨이샹은 그나마 무장이 약한 말을 보며 소리쳤다. 그의 말을 들은 노예들이 낫과 호미를 말에게 투척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하고 복귀한다! 어서! 말머리를 돌려라!"
노예들이 말을 노리는 전략으로 나서자 을수는 후퇴 명령을 내렸다. 말이 상처를 입고 자신들이 낙마하게 되면 높이의 우위가 사라져 그저 몸으로만 밀어 붙이는 상대에게도 제압 될 가능성이 컸다.
노예들이 치안부 내부로 진입 한다 하더라도 시가전으로 전투를 바꿔 끊임없이 싸워야 했기에 희생은 줄여야 했다.
"도망간다! 잡아라!"
기마병들이 후퇴를 시작하자 웨이샹은 악다구니를 쓰며 추격을 독려했지만 장창으로 주변을 정리한 다음 말을 타고 요새 안으로 들어가는 그들을 막기는 쉽지 않았다.
"문을 닫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기마병들이 추격을 뿌리치고 돌아가기 시작하자 웨이샹은 아직 열려있는 요새 문을 바라보았다. 저 문을 닫기 전에 노예들을 진입 시킨다면 외벽을 넘는 고생을 하지 않고서도 안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노예들은 기병대의 방해에도 끈질기게 따라 붙어 문 앞까지 다가왔다.
"문을 닫아라!"
아직 요새 안으로 진입하지 못한 을수이지만 노예들이 요새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막아야 했기에 문지기들에게 소리쳤다.
"총독님! 여긴 제가 막겠습니다. 어서 들어가십시오"
"아니다! 이곳은 내가 막는다! 모두 들어가라. 명령이다!"
육중한 철문 이기에 닫히기 까지 시간이 필요했고 그 시간은 을수가 직접 벌기로 마음 먹었다. 그가 단호한 말투로 명령이라 말하자 망설이던 기병대 모두 말을 몰아 요새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아무도 못 지나간다!"
노예들을 향해 방향을 바꿔선 을수는 크게 소리치며 창을 휘둘렀다. 그의 강맹한 기세에 노예들이 잠시 밀렸지만 그것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히이이잉
을수의 말 허벅지에 둔기가 꽂히고 말의 무게 중심이 무너지고 말았다. 이에 을수가 낙마했고 바닥을 굴렀다.
"이 개새끼 죽여!"
노예들의 분노한 공격이 을수에게 쏟아졌다. 아무리 플레이트 갑옷이라 하더라도 노출된 부분도 있었기에 을수는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죽는구나...'
점점 의식이 흐려지는 을수의 뇌리에 주마등이 스쳐지나갔다. 함양에서 목화를 재배하며 살았던 시절의 추억과 미국에 넘어와서 감투를 쓰고 열심히 해보려 했던 오느날까지의 삶이 떠올랐다.
"죽은놈 그만 패고 어서 문으로 달려!"
을수에게 분풀이를 하고 있는 노예들에게 웨이샹이 소리쳤다. 지금 문은 거의 다 닫힌 상태였다. 아직 약간의 틈이 있었는데 그곳에 뭐라고 끼워 넣어 문을 닫지 못하게 해야 했다.
-쿠웅!
그러나 웨이샹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노예들이 진입하기 직전에 문이 닫히고 말았다. 을수의 시간 끌기가 성공한 것이다.
-탕!탕!탕!
"이런 씨발!"
문 바로 앞에 서 있던 웨이샹의 머리 위로 총탄이 쏟아 부어졌다. 웨이샹은 급히 문 쪽으로 바짝 붙어 총탄을 피했다. 그러나 총탄을 피하지 못한 상당수의 노예들이 바닥에 쓰러졌다.
다시 총소리가 잠잠해지고 웨이샹이 기어오를 만한 외벽을 찾기 위해 움직일 때, 죽은 줄 알았던 을수가 몸을 일으키는 모습이 보였다.
'뭐야 저거? 아직 살아있어?'
온 몸에 호미와 낫이 박혀 피를 뿜어내던 을수였기에 분명 죽었으리라 생각했지만 그가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리고 언제 다쳤냐는 듯 전혀 피를 흘리지 않고 있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전하!"
시체인 줄 알았던 을수가 일어자 마자 하늘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미국어를 모르는 명나라 노예들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의 말을 알아들은 치안부 요새의 병력들의 사기가 크게 올라 엄청난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전하께서 오셨다!"
"와아아아!"
치안부 병력들이 갑자기 크게 소리치며 사기가 오르자 웨이샹의 등꼴이 오싹해졌다.
'설마.... 그가.... 그 악마가...?'
웨이샹을 포함한 노예들이 주변을 살피며 건흥을 찾았다. 그 때 한 명의 노예가 하늘을 가리키며 크게 소리쳤는데 그곳에 팔짱을 끼고 아래를 오연하게 내려다 보고 있는 건흥이 있었다.
'아....... 시발..... .'
그를 보는 순간 웨이샹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그냥 끝났다는 생각 외에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피슈슈
건흥의 손에서 뻣어 나가는 검은색 기운들이 노예들을 마비 시키기 시작했다. 웨이샹도 예외일 순 없었다. 검은 기운에 머리가 직격 되는 순간부터 팔다리가 움직여 지지 않아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러나 정신과 머리는 그대로였다. 눈으로 앞을 볼 수도 있었고 숨도 쉴 수 있었다. 그런 그의 곁으로 하늘에서 건흥이 천천히 내려와 바로 앞에 섰다.
"끄윽...끄윽..."
건흥을 보고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려 안간힘을 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웨이샹은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차마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아버렸다. 그때 소름 끼치는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놈이 주동자인가 보군"
".......!?"
"왜 지금 죽이지 않는지는 알고 있겠지?"
그의 말을 듣는 순간 공포심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자신을 살려 두는 이유는 뻔했다. 죽지 못하고 고통만 받는 상태로 노예들 숙소에 전시해 본보기로 삼으려는 것이었다.
소문에 듣자 하니 서울에서는 팔다리가 잘린 채로 무려 5년 동안 본보기 상태로 생존해 있는 자가 있다고 들었다. 무한에도 1년 동안 묶여있는 자가 있었다. 자신도 그 꼴이 나기 직전이었다.
웨이샹은 그렇게 될 순 없다고 생각하고 과감하게 결단했다. 아직 마비 되지 않은 자자신의 치아 사이에 혀를 넣었다.
'빨리 죽어야 한다!'
-콰직!
온 힘을 다해 혀를 씹었으나 완전히 혀가 잘리지 않았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두 세번 더 씹어 혀에서 피가 철철 흘려 나오기 시작했다.
'죽을 수 있다!'
이 정도 출혈이면 충분히 죽을 수 있다고 판단한 웨이샹의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삶을 여기서 마감하지만 그것이 지금 이 순간에선 최선이었다.
"깡다구가 제법 있구나"
하지만 상대는 건흥이었다. 잘렸던 웨이샹의 혀가 거짓말처럼 다시 붙고 더 이상 피가 흘러내리지 않았다.
-두두두둑
그와 동시에 웨이샹의 치아가 모두 뽑혀서 사방으로 날아갔다.
"넌 죽지 못한다. 오늘부터 너 같은 중국 놈들을 교육 시킬 훌륭한 교보재가 되어야 하니 말이다"
말을 마친 건흥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 * *
"왜 문을 열고 나가서 적들과 교전 했나?"
"플레이트 갑옷을 믿고, 적들의 기세를 꺾어 보려 했습니다"
"내가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죽었다. 그리고 자네가 죽고 치안부도 뚫렸겠지"
"죄송합니다"
"항상 최우선은 시간 끌기다. 언제까지?"
"전하께서 오실 때까지 입니다"
"앞으로 또 반란이 일어나거나, 인디언이 침공하거나, 유럽인들이 공격해 올 수 있다. 그럴 때도 항상 똑같은 방침이야 무조건 시간 끌기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반란이 진압되고 건흥은 을수에게 교육을 하고 있었다. 건흥은 미국의 주요 거점에 모두 알람 마법을 걸어둔 상태였다. 덕분의 건흥이 기거하는 백악관에는 알람 마법용 구슬이 수백 개 있었다.
때문에 상황이 발생하면 건흥이 순식간에 나타나 진압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도착이 조금 늦었는데 식사 중이었기에 식사를 마치고 가려는 생각 때문이었다. 건흥의 생각으로 식사하는 시간까지는 충분히 버티겠지 싶었던 것이다.
아직 스스로의 국토를 지킬 힘도, 반란을 막을 힘도 부족한 신생아 수준의 국가였기에 건흥은 매 순간 직접 움직이며 국가를 보호할 수 밖에 없었다.
"그놈들은 잘 처리했나?"
"예. 말씀 하신 대로 사지를 자르고 목줄을 채운 뒤 노예 숙소에 본보기로 전시했습니다."
"잘했다."
웨이샹을 포함해 전투에서 살아남은 노예 1만 3천명은 모두 본보기가 되었다. 건흥은 그들을 분산 시켜 각 도시에 보냈다.
반란을 일으킨 자들의 최후라는 팻말을 걸고 각 도시의 노예 숙소 앞에 전시되었다.
'누가 이기나 보자'
무한에는 웨이샹의 난 이전에도 반란을 일으킨 자들에게 이러한 처분을 내린 적이 있었다. 웨이샹도 그것을 다 목격하기도 했었지만 기어이 반란을 또 일으켰다.
이에 건흥은 승부욕이 생겼다. 반란을 일으키려는 생각을 가진 자들을 없앨 수 있을 만큼 더 혹독하게 본보기들을 다루려 했다. 단지 묶어 두는 것에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그들을 고문하는 방법을 생각하는 건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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