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 통일 (2)
"총독?"
"그렇습니다"
"항복 했다고?"
"감히 미국에 대항하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하지"
알메이다는 능숙한 포르투갈어로 말을 걸어오는 황제에 놀랐다.
그는 부하들과 커피 한잔을 다 즐긴 이후에 자신에게 관심을 가졌다.
"리우도 총독이 관할하고 있나?"
"그렇습니다. 리우 총독은 제가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인데 그도 미국이 왔다는 것을 알면 저와 똑같은 선택을 할 것입니다"
"너 이렇게 항복하면 포르투갈에 보복 당하지 않냐?"
"예? 보복이요?"
"그래. 네 목이 무사하냐 이 말이다"
"아..."
알메이다는 보복까지 생각 하지 못했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그는 포르투갈에서 낙하산으로 임명된 젊은 총독이었고 적당히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포르투갈로 돌아갈 생각만 하고 있는 자였다.
현재 브라질은 아직 개척 초기라 리스본에 비하면 형편없는 시골이었다.
리우는 그나마 도시의 모습을 조금 갖추고 있었지만 살바도르는 알메이다의 관점에서 보면 시골 깡촌이었다.
아름다운 여성들도 거의 없었고 오직 군인들과 상인, 그리고 흑인 노예들만이 가득한 도시였다.
"저희 아버지가 그래도 리스본에서 제법 위치가 있으십니다. 저를 죽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리우 총독은? 그도 아버지가 제법 위치가 있는 사람인가?"
"리우 총독 주앙은 왕실 가문입니다. 저보다 훨씬 더 귀한 사람이지요"
"오호... 그래?"
"예. 주앙의 아버지 페드로님은 현 국왕 아폰수 6세님의 형제입니다"
"그러니까 국왕의 조카이군 맞나?"
"그렇습니다"
알메이다와 대화를 나눈 건흥은 가만히 조금 생각을 해보다가 덕만에게 말을 걸었다.
"이번 전투에서 희생자가 있었나?"
"사망 5명 부상 12명 나왔습니다"
"그래 아무리 전력이 차이가 나도 꾸준히 죽거나 다치는 자들이 나온단 말이지"
"송구스럽습니다"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니 신경쓰지마라. 전쟁에서 희생이 없을 수 없다는 것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
이번 전투는 매우 짧았지만 그래도 사망한 인원이 나온 것이 적들의 눈 먼 총알에 당한 것도 있지만 상륙하고 움직이는 과정에서 실족사 했거나 점령하기 위해 진입했던 건물이 갑자기 무너져 내려 죽거나 다친 경우였다.
"저 놈 말을 들어보니 리우 총독이라는 놈도 결사 항전 할 것 같진 않은데...."
"항복을 권유해보실 생각이십니까?"
"그래.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 안 그러냐?"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폐하"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을 이야기 했을 때 덕만은 바로 고개 숙이며 건흥의 말에 긍정했지만 강동구는 멈칫 했고 아쉬워 하는 얼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뭐야? 너 표정이 왜 그래?"
"저 말씀이십니까?"
"그래 너 강동구 여단장. 전투가 사라져서 아쉬워 하는 사람 같은 표정은 뭐야?"
"아..아닙니다 폐하.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그렇지?"
"그렇습니다"
"덕만아 저 놈을 잡아 리우로 데려가라. 도착하면 조그만 배에 태워서 먼저 들여보내서 리우 총독을 설득하게 해봐"
"예 알겠습니다"
"야 낙하산 총독"
"예 폐하!"
"너는 우리 병력들과 함께 리우로 간다. 거기서 네 생존 가치를 증명해봐 알겠나?"
"아! 예 알겠습니다 폐하"
건흥의 말에 알메이다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주앙을 설득해야 하는 과제가 생겼지만, 그런 부담 보다 지금 당장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더 기쁜 알메이다였다.
* * *
리우 총독 관저
리우의 총독 주앙은 해변가가 내려다 보이는 관저의 발코니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해변이야'
리스본에서 리우로 넘어 올 때만 해도 이역만리 땅으로 가는 것이 불안했지만, 이곳에 머무른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리우에 많이 정이든 주앙이었다.
아버지 페드로 2세는 성불구자인 아폰수 6세가 끝내 자식을 보지 못할 것이라 판단하고 그의 아들 주앙을 후계자 수업 겸 리우로 내려보낸 것이었다.
병약한 아폰수 6세가 죽게 되면, 페드로가 왕위에 즉위 할 예정이었고 그렇게 되면 주앙은 왕세자가 되는 것이었다.
"으음?"
해변과 함께 먼 바다를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고 있던 주앙의 눈에 조그마하게 선박의 모습이 보였다.
실제로 그 선박이 작아서 그렇게 보인 것이 아니라 먼 거리에 있었기에 작게 보였는데 그 선박은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더 크게 보이기 시작했고 주앙이 이제껏 살면서 한번도 본 적 없는 크기 에다가 돛이 없는 배였다.
그것은 최항이 이끄는 미해군이었다. 그들은 살바도르에서 하루 휴식 한 다음 곧바로 리우로 내려온 것이었다.
-땅!땅!땅!땅!
주앙과 마찬가지로 미해군을 발견한 해안 요새에서 요란하게 비상 종을 울렸다. 아직 요격할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지만 조만간 적들이 들이닥칠 것 같으니 대비하라는 신호였다.
"총독 각하!"
"어찌 된 일이냐! 저들은 무엇이냐!"
"아무래도 본국에서 경고한 미국이라는 나라인 것 같습니다"
"허! 아직 본국에서 함대가 오지도 않았는데 하필 이런 타이밍에!"
주앙이 있는 발코니에 리우 식민지 내무총감이 서둘러 달려왔다. 그는 주앙의 오른팔이자 리우의 2인자로 훗날 포르투갈의 국왕이 될지도 모르는 주앙을 가르칠 겸 보필하는 자였다.
통상을 위해 서울을 방문했던 포르투갈 대표단은 협상이 실패하고 나서 두 갈래로 갈라져 이동했다.
한 팀은 바로 리스본으로 돌아가 현 상황을 알렸고 다른 팀은 리우로 내려와 미국의 침입이 있을 수 있으니 대비하라는 이야기를 전달했다.
그리고 본국으로 간 대표단이 곧바로 지원 병력을 이끌고 올 것이니 만약 침공이 시작되어도 시간을 벌어 보라고 주앙에게 말했다.
실제로 리스본에 도착한 외교 사절은 아폰수 6세를 알현하자 마자 브라질 식민지에 해군을 파견해야 함을 건의했고 갈팡질팡하는 아폰수를 대신해 주앙의 아버지 페드로가 포르투갈 해군의 거의 전 병력을 동원해 리우를 방어하라고 명령했다.
페드로 입장에서는 리우를 지키는 것도 이유였지만, 제왕 수업을 이유로 리우로 내려보낸 자신의 아들을 구하기 위한 이유도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이 직접 해군을 이끌고 리우로 가고 싶었지만,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자신의 병약한 형 아폰수 국왕 때문에 자리를 비울 수도 없었다.
리우에 경고를 하러 왔던 대표단이 리스본으로 돌아가고 있을 때 그들과 교차해 포르투갈 해군 전단이 브라질으로 오고 있었다.
"일단 해안 포대를 믿고 버텨 보시지요. 저들이 사정거리에 들어오면 그 때부터 포격을 퍼붓겠습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저들의 숫자가 많지 않습니다"
"사절단이 말하길 저들의 배는 일당백이라 하지 않았던가?"
이미 스페인과 미국의 해전 결과가 전 유럽에 퍼져 있었기에 미국 해군의 강력함은 모두가 인정하고 있었다.
"그것은 소문일 뿐입니다. 일단 싸워보기 전까지 결과는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후우.... 알겠네 일단 전시 태세로 들어가자"
"예 총독 각하"
주앙은 갑옷으로 갈아 입기 위해 발코니에서 옷방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하녀들이 이미 주앙의 갑옷을 준비해둔 상태였고 주앙은 팔 벌려 서서 그들이 갑옷을 입히길 기다렸다.
"어엇! 각하! 먼 바다에서 아군입니다! 본국에서 함대가 오고 있습니다"
"정말인가!"
갑옷을 다 갈아 입지도 않았을 때, 본국의 함대가 보인다는 내무총감의 말에 주앙은 헐레벌떡 뛰어 발코니로 나왔다.
"오오오!"
내무총감의 말처럼 먼 바다에서 포르투갈의 전열함 부대가 위풍당당하게 리우로 들어오고 있었다.
선박의 크기는 미국 함대에 비할 바가 못 되었지만, 바다를 가득 채운 엄청난 숫자의 함대는 주앙을 안심시키기 충분했다.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그래! 정말 적절한 시기에 와줬구나!"
주앙은 감격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쾅! 쾅! 쾅!쾅!
그 때 미해군의 함대가 리우로 다가오는 포르투갈 함대를 향해 일제히 포격을 퍼부었다.
"저...거리에서 쏜다고?"
거의 리우 해안에 붙어 있는 미해군과 아직 먼바다에 있는 포르투갈 함대와의 거리는 상당히 멀었다.
주앙이 가지고 있는 상식 선에서 저 정도 거리는 절대 포격으로 닿을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콰앙! 쾅! 쾅아앙! 쾅!
그러나 그의 고정관념은 산산히 부서졌다.
미해군의 포격은 포르투갈 함대 선두에 정확히 떨어졌고 바다에 빠지며 낭비되는 포탄도 없이 거의 모든 포탄이 정타로 박혔다.
"저....저게 무슨!!"
나이가 지긋한 내무총감도 이런 경우는 처음 보는지 당황해서 말을 잘 잇지 못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미해군은 아예 포르투갈 함대 쪽으로 서서히 움직이며 계속적으로 포격을 쏟아부었다.
-쾅!쾅!콰아앙! 쾅쾅!
쉬지 않고 쏟아 붓는 화력에 포르투갈 함대는 녹아내렸다.
대응 사격도 할 수 없는 먼 거리에서 포탄이 날아오자 속수무책이었는데 결국 포르투갈 함대는 키를 틀어 반대 방향으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뿌우우우우우
그러나 그들을 놓아줄 미해군이 아니었다.
추격을 알리는 뿔 나팔이 길게 울려 퍼지고 범선의 속력을 가볍게 뛰어 넘는 증기선들은 굴뚝에서 검은 연기를 뿌리며 그들을 추격하며 포격했다.
-콰앙! 쾅쾅!콰아앙!
잔인한 추격전이 1시간 정도 지속 되고, 결국 포르투갈 함대는 모두 바다에 침몰해 그 어떤 범선도 살아남지 못했다.
사냥을 마친 미해군은 다시 위풍당당하게 리우 해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이....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미국이란 나라가 강하다 강하다 소문으로는 들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저도..."
-콰아아아아앙!!!
넋이 나가버린 주앙와 내무총감이 대화를 나누는 그 순간 미해군의 포격이 리우 해안 요새를 향해 날아 들었다.
해안 포대 사거리 밖에서 날아오는 포격에 움직일 수 없는 요새는 그저 당할 수 밖에 없었다.
몇 번의 사격이 더 이어지고 해안 포대는 제 기능을 완전히 상실해 버렸다.
"총감! 어쩌면 좋겠소!"
"일단 적들의 상륙을 대비해서 시가전을.... 어엇?"
시가전을 준비하고 최후의 저항을 하자고 말하려 했던 내무총감은 미해군의 철갑함들 사이에서 천천히 리우 해안으로 백기를 꽂고 들어오고 있는 조그마한 선박을 발견했다.
"혀..협상을 하려는 것 같습니다"
"협상?"
"저기 백기를 꽂은 선박이 오고 있습니다. 저들이 보낸 사절입니다"
주앙의 눈에도 백기를 꽂은 선박이 보였다.
천만다행이었다. 협상을 할 마음이 있다면 자신들을 무참하게 다 죽일 생각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아직 젊고 어린 주앙은 죽음도 무섭고 죽음으로 가는 과정도 무서웠다.
만약 시가전 전투에서도 자신들이 패하고 모두 포로로 잡히면 자신들이 마치 흑인 노예를 다루듯 저들이 자신을 다루지 않을까 두려움이 밀려 들었었다.
'협상하자... 협상 달라는 것 모두 내준다'
너무나 무서웠기에 아직 협상이 시작되지도 않았지만 주앙은 목숨만 살려준다면 뭐든 다 내줄 마음이었다.
미해군이 포르투갈 해군을 박살내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봤기에 애꿎은 투지 같은 것은 끓어 오르지도 않았다.
"적 협상단이 상륙했습니다!"
"어서 이곳으로 데려와라!"
내무총감에게 명령한 주앙은 다시 입다만 갑옷을 마저 입기 위해 하녀들을 불렀다.
갑옷을 다 입고 긴장되는 마음을 심호흡으로 진정 시키며 관저에서 적 협상단을 기다리고 있던 그 때
"주앙!"
"어? 알메이다! 여긴 어쩐 일이오."
관저로 들어오는 것은 알메이다였다. 분명 살바도르에 있어야 할 그가 이곳에 왔다는 것은...
"알메이다! 살바도르는..."
"이미 미국의 손에 넘어 갔네."
"그럼 자네는 왜 여기에?"
"왜겠나... 자네를 설득하러 왔지"
"설득? 설마 자네가...?"
주앙의 눈에 그제서야 알메이다 뒤에 서 있는 사내에 손에 들린 백기가 보였다.
"맞네 내가 협상 사절이야. 자네를 설득하라고 황제께서 보내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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