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보이스피싱은 중국에 본거지를 둔다
그런데 외국인은 어디에 수감될까?
“휴, 천안까지 오는 것도 빡세군.”
일명 외국인 교도소, 실은 천안에 위치한 수감 장소가 있다.
이곳에 외국인만 수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외국 국적 범죄자가 주로 수용되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어쩐지 흉악할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보통은 한국 범죄자보다 처벌도 가볍고, 끝나고 나서 고향에 돌아갈 거라 모범적이다.
다만 언제나 예외는 있다.
천안 교도소에 들어선 직후.
바로 따라붙은 교도관이 나유신에게 경고했다.
“완자오룬은 함부로 대하시면 안 됩니다.”
“뭡니까, 갑자기? 교도관님에게 협박이라도 합니까?”
“이미 교도소 전체를 장악했습니다.”
천안 교도소 교도관, 선지국이 몸을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수감자 누구도 완자오룬에게 대항하지 못할 정도입니다. 드러난 폭력 같은 건 없었습니다만.”
중국 삼합회 조직 중 하나, 24K의 부두목급 고위 조직원 완자오룬.
나유신이 노담 비트코인 사건 때 잡아넣은 범죄자다.
이곳, 천안에 완자오룬의 인맥이나 부하들이 있을 리는 없다.
그러니 틀림없이 폭력을 행사해 장악했을 것이다.
하지만 교도관들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셈이다.
“수감자들을 교도관들이 통제하는 게 원칙 아닙니까?”
“현실은 그렇지 않죠. 수감자들이 수감자들을 [지배]해야 편하게 돌아갑니다. 물론 편법입니다.”
“그걸 제게 말하시는 이유가 있겠죠?”
선지국은 나유신을 보며 조심스레 말했다.
“남부구치소 한 번 뒤집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여기서도 그러실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직접 보시면 왜 그런지 아실 겁니다.”
바로 사채왕 오지후와 교도관 최윤수 얘기다.
하지만 나유신은 한 번 뒤집고 나서 굳이 구치소장에게 알리지 않았다.
어차피 오지후를 독방에 내내 가둘 수 있는 게 아닌 이상, 결국 누군가는 매수될 테니까.
그런데 교도관들 사이에서는 이미 소문이 돌았던 모양이다.
함부로 들쑤셔서 교도소 분위기를 망치지 마라.
선지국 교도관은 이렇게 말한 셈이다.
가만히 선지국을 응시하던 나유신이 돌아섰다.
“일단 보고, 판단하죠.”
면회실.
일반 수감자와 달리 수사기관 당국자도 활용할 수 있는 특별공간.
그곳에서 기다리던 나유신은 확실히 다르다는 걸 느꼈다.
-카드득.
일단 불타버린 흉터가 아주 눈에 띈다.
“한국, 검사인가.”
그동안 한국말을 제법 배웠는지 서툰 한국어가 들려온다.
확실히 지금껏 상대했던 범죄자와 다른 이질적인 존재다.
화상을 입고도 교도소에서 건장한 체구를 유지하는 것도 놀랍다.
완자오룬의 도드라진 화상 흉터를 나유신이 관찰할 때, 선지국이 물었다.
“통역을 붙여 드릴까요?”
“아니, 필요 없습니다. 광둥어 할 줄 아니까.”
“예?”
나유신은 차갑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네이 호우, 완자오룬.”
물론 완자오룬의 고향은 대만이고, 대만은 광둥어를 쓰지 않는다.
허나 중국 대륙에서도 완자오룬은 범죄자로 활동했을 것이다.
특히 범죄자가 활동하기 좋은 홍콩에서.
완자오룬이 빤히 나유신을 보다 자리에 앉았다.
“날 잡아넣은 검사인가. 백발이라더니, 정말이군.”
“반대지. 당신이 내게 잡히러 온 거지. 굳이 노담시까지 기어 들어왔으니까.”
“비트코인.”
문득 완자오룬이 눈을 형형히 빛내며 물었다.
“어디로 갔지?”
만약 옛날 같았다면 나유신은 기가 질려 입을 다물었을지도 모른다.
71만 개의 비트코인.
완자오룬이 노담 폭력조직 삼화회 산하, SH금융을 통해 한국에 반입했던 물건.
그러나 삼화회 고문 백재선이 음모를 꾸미고, SH금융 하진우가 가로채면서 행방이 묘연하게 되었다.
공식적으로는, 그렇다.
“애석하게도 그건 죽은 [백재선]과 함께 사라졌어. 우리에게는 미제 사건이 되어 버린 셈이지. 나야말로 묻고 싶군. 그걸 갖고 뭘 하려고 했던 거지?”
나유신은 차분하게 대꾸했다.
완자오룬이 날카롭게 쳐다보았지만, 조금도 떨지 않았다.
사실, 지금은 2010년대 초반.
아직은 비트코인이 일반인들에게, 혹은 수사당국의 관심사인 시기가 아니다.
결국 수상한 점을 찾지 못한 완자오룬이 콧방귀를 뀌었다.
“하진우가 아니라 백재선이라. 한국 검찰도 무능하군.”
“뭐?”
“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뭘 하려 했는지, 왜 말해야 하지? 어차피 난 여기서 나갈 수도 없는데.”
무능한 검사가 된 나유신에게 완자오룬이 흉터를 꿈틀대며 말했따.
“아니면, 날 [중화민국]으로 보내주기라도 할 건가.”
중화민국, 대만의 공식 국호다.
다만 중국이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보통은 다들 대만이나 타이완이라고 부를 뿐이다.
한데 국제법상 문제가 있다.
일국 원칙에 따라 한국은 중국과 수교하면서 대만과 단교했다.
그래서 범죄자를 보낼 수도 없다.
“대만은 한국과 범죄인 인도조약이 체결되어 있지 않아.”
“그럼 얘기 끝났군. 내 방으로 돌아가도 되나?”
“하지만 중화인민공화국과 한국은 조약이 체결되어 있거든.”
순간, 나유신의 말에 완자오룬이 낯을 굳혔다.
“내 생각엔 완자오룬 당신을 중국 공안들도 꼭 잡고 싶어할 것 같은데 말이야. 틀렸나?”
완자오룬이 처음으로 표정이 허물어졌다.
한국에서 수감된다?
할만하다.
대만이라도 해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중국 감옥에 간다면 완자오룬의 생명은 물론이고, [존엄]도 유지되기 어렵다.
“난, 한국에서 재판을 받았어! 형기가 끝나면 대만으로 추방하는 게!”
“그건 한국 사법당국 마음이야.”
“백발검사!”
완자오룬이 살기등등한 눈으로 노려보았지만, 나유신은 침착하게 대꾸했다.
“보복이라도 하고 싶나? 하지만, 넌 어차피 외국 감옥에 갇힌 몸이야. 네 조직이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을걸? 반면, 난 널 언제든 중국으로 보내버릴 수 있지.”
감옥에 갇힌 두목을 위해 의리를 지킨다?
멕시코 마약 카르텔에서나 있을법한 소리다.
자본이 만사에 관여하는 21세기.
범죄조직도 감옥에 갇혀 더 이상 돈을 벌어오지 못하는 부두목 따위, 관심을 끊기 마련이다.
“협력해라. 아니면, 중국행이다. 완자오룬.”
한참동안 나유신을 노려보던 완자오룬이 입을 열었다.
“대체 뭘 원하는 거지?”
여기까지 설득하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다.
반쯤 기대를, 반쯤 포기를 품은 채 나유신이 물었다.
“혹시, 보이스피싱을 기획하러 한국에 왔나?”
사실 유명세가 시켜서 온 거지, 나유신도 완자오룬이 정말 뭘 알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다.
일단 한국에서 일어나는 범죄를 완자오룬이 모두 알 리도 없다.
또한 완자오룬은 애초에 비트코인 때문에 입국했던 게 아닌가?
그럼에도 유명세가 의심하는 바를 물었을 때, 엉뚱한 답이 나왔다.
“그건 내 망할 동생이 벌이는 짓 같군.”
대만계 삼합회 조직이 정말로 관련이 있었던 거다.
***
이미 [제보]를 받았던 유명세도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완파오룬?”
나유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24K 조직 내부에도 계파 싸움이 있다는군요.”
“그런데?”“자오룬의 계파는 외환사기가 전문이고, 파오룬의 조직은 금융사기가 전문이라는 모양입니다.”
문득 나유신의 시선이 데스크 위, 24K 조직도를 향했다.
“특히 보이스피싱이 완파오룬 조직이 주업으로 삼는 사업수단이라는데요?”
대만계 폭력조직 삼합회.
사실 말이 삼합회지 하나의 조직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마치 미국의 마피아가 그런 것처럼 특정 계열의 여러 폭력조직을 통칭하는 단어다.
그중 24K는 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내려온 정통 [삼합회]임을 자부하는 조직이기도 하다.
물론 전통을 갖고 저지르는 게 범죄이긴 하다.
특히 비트코인이라면 모를까, 보이스피싱이 주업이라니 어쩐지 째째하다는 느낌까지 든다.
다만 그 째째한 범죄가 2조 원의 피해를 일으킨다는 게 문제지만.
그런데 유명세가 미간을 좁혔다.
“이걸 어떻게 잡아? 오히려 더 어려워졌잖아? 정말 대만계 조직이 가장 큰 배후라고?”
“대만 출장이라도 갈까요?”
“아니, 어차피 수사 협조 조약도 없는데, 무슨 수로? 무의미해. 수사권이 없으면.”
그때 백시혁이 입을 열었다.
“경찰 도움을 받아보시죠.”
유명세는 눈을 깜박였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백부부장?”
“저보다는 여기 박달한 검사가 더 잘 알겠죠. 이런 조직범죄는 경찰이 검사보다 더 전문가입니다. 해외 범죄조직이 엮였으면 더 그렇구요.”
“어째서 그렇지?”
그러자 부산에서 조폭을 마구 때려잡아 온 남자, 박달한 검사가 머리를 긁적였다.
“어, 그야 조폭들을 경찰이 더 많이 상대하기 때문입죠. 중국 조직이 엮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른바 범죄와의 전쟁 때문에 검찰이 조폭을 일망타진한다는 환상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폭력조직을 상시 감시하는 건 경찰의 일이다.
나아가 해외조직 연계 범죄도 역시, 경찰의 몫이다.
그러나 지금 이 사안은 검찰이 명운을 걸고 실시하는 [민생특별수사 TF]의 일이다.
굳이 경찰이 검찰 좋은 일을 도와줄 이유가 없다.
“이거 공식 협조는 어려울 것 같은데. 누구 아는 경찰 있나?”
유명세가 입맛을 다실 찰나, 나유신이 물었다.
“노담 경찰서도 괜찮습니까?”
적당한 사람이 하나 생각났다.
***
노담시는 고속성장하는 신도시답게, 범죄도 나날이 번창한다.
-쉭, 쾅!
그래서 경찰도 재빨리 움직일 필요가 있다.
철문을 부수고 뛰어들자 널찍한 폐쇄공간이 드러난다.
공간에 수화기가 마치 대열을 이루듯 책상과 함께 가득 줄세워 놓여 있다.
그런데 지금껏 전화통을 붙들고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다,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간다.
뛰쳐 나가는 사람들 뒤에서, 건장한 체구의 점퍼남이 외쳤다.
“잡아! 저놈들 잡지 못하면 모두 야근이다!”
“빌어먹을, 특진도 아니고 야근이라니!”
“죽겠습니다, 진 팀장님!”
점퍼남, 진상판이 낄낄 웃다 같이 달려나갔다.
“원래 우리 일이 다 그렇지. 어서, 달려!”
그때 진상판의 주머니 속, 스마트폰이 울렸다.
-우우웅!
별 생각없이 스마트폰을 빼내던 진상판의 낯이 묘하게 변했다.
“뭐야, 이거. 나유신 검사?”
그러니까, 나유신이 선택한 경찰이 바로 노담 남부경찰서 수사팀장, 진상판이다.
- 작가의말
* 다시, 검경합동 수사 편입니다.
* 이번 주도 일단 주말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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