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검사는 거물이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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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의신
작품등록일 :
2024.05.0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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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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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4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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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쪽

(46) 특수부 폭력이 조폭 진범보다 위다

DUMMY

한국 사회에서 제일 무서운 일이 뭘까?


“검사에게 범인으로 찍히는 거죠.”


오풍쉐어링의 공실, 나유신의 [팀]이 모였다.


우선 검사실 소속 수사관, 고거경.

허나 고거경과 대화할 거라면 굳이 노담시 외곽 오풍쉐어링 공실까지 올 이유가 없다.

문득 나유신의 말을 듣던 경찰, 노담 남부경찰서 강력팀장, 강시영이 되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세요? 범인이 하씨 가문 중에 있다는 말인가요?”

“내가 보기엔 그래요.”

“검사님, 이건 심각한 문제라구요. 증거, 있나요?”


나유신이 탁자 위, 밀봉 봉투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유언장이 간접 증거입니다. 경감님.”


사실 밀봉된 봉투도 아니다.

왜냐면 고거경이 이미 검찰에서 뜯었기 때문이다.

정식절차를 밟긴 했지만 더 이상 유언장은 비밀이 아니게 된 셈이다.


강시영은 유언장에 적힌 어지러운 [자필]을 살폈다.


[내 재산은 모두 나의 직계 혈족에게만 상속되어야 한다. 특히 손녀 하주연에게는 장자 하경진의 상속분도 함께 주어져야만 한다.]


전문, 날짜, 주소, 성명, 서명, 날인.

자필유서의 모든 요건을 갖추고 있는 문서다.

게다가 검찰에서 정식으로 압수수색영장까지 발부해 입수했으니, 그 신빙성은 검찰이 증명한다.


그런데 내용이 심상찮다.

직계혈족을 거론하는 것은 그렇다 치자.

장손녀인 하주연에게 특별히 장자의 상속분을 주어야 한다고 언급하는 이유가 뭘까?


고거경 수사관이 고개를 모로 꼬았다.


“뭐가 이상한 겁니까? 혹시, 하주연이 범인이라는 말씀입니까?”

“그럴 리가 있겠어요? 존속살해자는 상속권 박탈입니다.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면 언젠가 다 물려받을 텐데, 하주연 씨가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죠.”

“기다리지 못하는 상속인은 세상에 얼마든지 있습니다만.”


나유신이 고개를 저었다.


“하주연 씨는 그런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습니다.”


그러자 옆에서 정보 보고차 와 있던 설장수가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전직 경찰이자 보험조사관으로서, 전문조사 생활만 해온 설장수다.

그간 단 한 번도 예감 따위에 판단을 맡긴 적이 없다.

한데 새로운 직장상사가 [예단]을 일삼는다니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고거경이 낄낄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나 검사님은 원래 쪽집게 예단을 선보이시죠. 후후.”

“글쎄, 선무당이 사람잡는다고. 썩 좋아 보이지는 않는군.”

“이런, 보안팀장 양반. 앞으로 일 계속 같이하게 될 것 같은데 익숙해지쇼. 나 검사님은 정말 잘 맞는다니까?”


강시영이 고개를 젓다 나유신에게 물었다.


“그럼 이게 왜 폭탄이죠?”


고거경이나 설장수도 궁금한 얼굴로 나유신을 돌아보았다.


왜 유언장이 [폭탄]이라고 말하는 걸까?

물론 월야그룹 하씨 일가 사이에선 민감한 내용은 맞다.

향후에 월야그룹의 경영권이 누구에게 넘어갈지 결정할 수도 있는 유언장이니까.


하지만 나유신은 상속분쟁 변호사가 아니라 검사다.

나아가 월야그룹 경영권이 누구에게 넘어가든 알 바 아니다.

진범이 누구인지 찾는 게 나유신의 목적이다.


나유신은 어깨를 으쓱였다.


“이 유언장 내용은 다들 추측만 하지 확실히 본 사람이 없어요. 심지어 원래는 공증 때문에 알아야 할 변호사들조차도.”

“어, 그러고 보니 개봉하면 안 되는 거 아뇨, 검사님?”

“난 수사 증거를 살펴야 하니까 상관없죠. 고 수사관님.”


가볍게 고거경의 의문을 누르며 나유신이 유언장을 가리켰다.


“그런데 아직 놀랍게도 유언장을 쓴 장본인, 하유식 회장은 살아있단 말이죠.”


그러니까, 이 유언장은 아직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


애초에 유언장이란 죽은 후 상속을 어떻게 분배할지 생전에 의사를 적어두는 문서다.

따라서 작성자가 죽지 않는다면, 유언장은 그저 휴지일 뿐.

오히려 내용을 언제든지 바꿀 수 있는 게 유언장이기도 하다.


지금, 이 유언장의 정확한 내용은 아무도 모른다.

쓰러져 있는 하유식 본인을 제외하면.

그런데 나유신이 유언장을 금고에서 꺼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그러니까, 하유식을 죽여야 할지, 아니면 가짜든 진짜든 살려서 유언장을 바꿔야 할지, 정하지 못했을 거예요.”

“누가요?”

“진범이요. 지금쯤 아주 미친 듯이 머리를 굴리고 있겠죠?”


나유신은 강시영에게 답하며 피식 웃었다.


“뭐, 그게 아니라도 하씨 일가가 알아서 정보를 가져오면, 그것도 좋고.”


강시영, 고거경, 그리고 설장수가 서로 돌아보았다.


그저 재벌가 사모의 총격 살인사건이라고 생각했던 일이다.

그것만으로도 물론 놀라운 일이긴 하지만, 이제는 판이 달라졌다.

월야그룹 상속이 흔들리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나유신의 압수수색 한 번으로.


“어쩐지 집안이 정말 쑥대밭이 되겠군요.”


설장수가 아주 간단히 상황을 요약했다.


***


그 증거로 나유신을 찾아온 하씨 집안 사람이 벌써 5번째다.


“그러니까 틀림없이 윤서희 짓이예요. 그년이 애초에 부정을 저질러서, 아버지가 충격받고 쓰러지신 거라구요!”


물론 이렇게 검사 앞에서 겁없이 목청을 높이는 사람은, 이쪽이 처음이다.

하명희.

월야그룹 총수 하유식의 셋째 딸로 직함은 월야문화재단 이사장.


그런데 지금 하선희가 비난하는 사람은 누굴까?

바로 시누이, 큰 오빠 하경진의 부인이었던 윤서희다.

사별이니까 전 부인이라고 할 수도 없다.


나유신은 하선희를 빤히 보다 되물었다.


“그건 또 처음 듣는 얘기군요. 에, 하명희 씨?”

“당연하죠. 집안 비사니까. 주연이가, 그러니까 하주연이 경진이 오빠 딸이 아니란 건 아시죠?”

“그랬나요? 이건 또 더욱 충격적인 얘기로군요.”


당연히 나유신이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이건 직접 소송을 진행했던 관계자들과 친족만 아는 정보다.

강앤함, 그리고 리걸팩토리, 그리고 가정법원 재판부.

지금까지 하씨 일족이 가져온 정보 중 가장 놀랍긴 했다.


심지어 고거경 수사관까지도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왜냐면 사실 윤서희는 그저 재벌가 며느리가 아니라, 10년 전에는 탑스타였기 때문이다.

월야로 시집간 뒤에는 은퇴했는데, 이런 속사정이 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정작 성북동 하씨 가문 저택에선 조용했던 하명희가 눈을 번뜩였다.


“그럼 처음부터 말씀드려야겠네요. 원래 경진이 오빠는 난봉꾼이었어요. 결혼은 두 번밖에 안 했지만, 수많은 애인이 있었죠. 그런데.”


하명희는 목소리를 낮췄다.


“놀랍게도 혼외자가 하나도 없었어요.”


나유신은 눈을 깜박였다.


그게 왜 놀라운 일일까?

애초에 결혼 후에 바람을 피는 것 자체가 문제다.

그렇지만 하명희는 아주 당연한 상식인 것처럼 얘기하고 있었다.


백발을 긁적이다 나유신이 고개를 모로 꼬았다.


“그거야 여러 이유가 있을 텐데요.”

“돌려 말하지 말죠. 불임이었다구요, 우리 오빠는.”

“자식이 둘이나 있는데요?”


하명희가 비웃음을 머금었다.


“모두 다른 남자 자식인 거죠. 놀랍게도 주연이는 성진이 오빠 딸이었던 거고!”


고거경이 마른 침을 꼴깍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그렇게 안 생겨서 재벌가 뒷소식은 참 좋아하는 모양이다.

어쩌면 전직 연예인 스캔들일 수도 있겠지만.


혼외정사.

친족상간.

어느 쪽이든 법으로 정해진 혼인을 파탄시킬만한 사유다.


그럼에도 하씨 가문에서는 며느리, 윤서희의 [부정]이 더 큰 문제였던 모양이다.


“집안 문제는 잘 알겠습니다만, 그게 살인과 무슨 상관입니까?”

“하무휼, 아니 하씨도 아니죠! 윤서희 자식인 무휼이가 상속권을 박탈당할 테니까요. 이대로 있으면. 그래서 윤서희가 움직인 게 틀림없어요!”

“아직 아닌 모양이죠?”


나유신이 냉소적으로 묻자 놀랍게도 하명희는 당연하다는 듯 되물었다.


“친생자 부인을 할 당사자가 죽었잖아요? 그걸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유족뿐이고. 법은 더 잘 아시지 않아요?”


물론 검사가 법의 전문가라는 건 편견이다.


사실은 형법을 비롯해 수사해 본 관계법만 잘 안다.

다만 나유신은 월반 수석인생답게 가족법도 다 꿰고 있긴 했다.

어디까지나 이론상으로만 말이다.


책으로만 읽어본 가족법을 떠올려 보다, 나유신이 미간을 좁혔다.


“쓰러진 하유식 회장, 죽은 이연자 여사, 그리고 하주연 씨군요.”

“맞아요. 세 사람만 가능하죠.”

“그래서 윤서희가 이연자 씨를 죽였다?”


월야문화재단 이사장, 하명희가 고개를 크게 주억거렸다.


“당장 잡아들여야 해요. 아니면, 주연이까지 죽을 거라구요. 우리 월야그룹이 하씨도 아닌 종자 손에 들어간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정리하면 이런 얘기다.


월야그룹은 콩가루 집안이었다.

특히 장자 하경진이 심각했는데 본인은 불임 외도남에 부인은 전처와 후처, 모두 다른 남자들과 놀아났다.

차이점이 있다면 전처인 조유영은 하경진의 동생 하성진과, 후처인 탑스타 윤서희는 또 다른 애인과 정사를 가졌다는 거다.


그 결과 하경진은 불임인 주제에 자식이 둘이나 생겼다.

장녀 하주연, 차남 하무휼.

만약에 하경진이 죽지 않았다면 어떻게든 이 문제가 해결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하경진은 인생을 즐기다 [복상사]했다.

그 후, 부친 하유식이 쓰러졌는데 하명희 말로는 그게 윤서희의 [부정]을 알고 충격을 받아서란다.

이 상황에서 복잡한 상속분쟁 끝에 비밀이 밝혀졌다.


하주연은 친족상간의 소생이지만 하씨 집안이다.

하무휼은 단순한 외도의 결과지만 하씨 집안은 아니다.

그렇지만 가족관계부상으로는 둘 다 하씨 집안이고, 나아가 하경진의 [친자]다.


그런데 하씨 가문은 장손이 대를 이어왔다.

지금 장손은 하무휼이다.

하유식의 친손자라고 할 수 없는 존재인 셈이다.


나유신은 빤히 하명희를 보다 코웃음을 쳤다.


“그럼 안 됩니까?”

“뭐라구요?”

“물론 하주연 씨가 죽으면 안 되겠지만, 월야그룹이 하씨 일가 개인 회사도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 하명희의 추정에는 일리가 있다.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가장 이익을 보는 자가 범인이라는 말이 있다.

당연히 모든 사건에 들어맞는 얘기는 아니다.

그렇지만 막대한 돈이 걸린 상속분쟁이라면, 이 법칙은 상당히 잘 맞는다.


윤서희는 이연자가 죽었을 때, 직접적인 이익이 있다.

그러나 나유신은 하명희의 말이 아주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문득 나유신이 하명희를 정시했다.


“아니면 하명희 씨, 당신 손에 들어가야 할까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하명희는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한 순간 입술을 뗐다.


“나도 물론 자식이 있죠.”

“그렇다고 되어 있더군요. 가족관계등록부를 살펴보니. 그러니까 당신도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카들에게 회사는 전부 갈 거라고 믿고 살아왔어요. 특히 장조카가요. 그런데 그 조카가 가짜래요.”


문득 하명희가 나유신을 노려보았다.


“내가 화가 안 나게 생겼어요? 게다가 윤서희 그년 때문에 아버지는 쓰러지고, 또 어머니를 죽인 사람이 윤서희일 수도 있는데! 우리 어머니가 죽었다구요!”


정오판정.

나유신은 상대방이 거짓말을 하는지 알 수 있다.

황금문자 판정이 떠올랐다.


진실.

물론 그건 윤서희가 범인이란 뜻이 아니라, 하명희가 거짓을 말하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이게 나유신이 일일이 하씨 가문을 만나주고 있는 이유기도 하다.


나유신이 입맛을 다셨다.


“설마 윤서희 씨가 직접 살해를 진행했다고 믿진 않으실 테고.”

“당연히 하수인이 있겠죠!”

“짐작가시는 업체나, 사람이 있습니까? 아니면 조직원이라도.”


그런데 기대하지 않았던 질문에 답이 나왔다.


“있어요.”

“예? 누굽니까?”

“하대진.”


다음 순간, 나유신은 어이가 없는 기분을 느꼈다.


“일진회 중간 보스예요.”


하씨 가문에 조폭이 있다는 얘기다.


***


같은 시각, 심문실로 가느라 자리를 비운 나유신 검사실에 불청객이 방문했다.


“오, 나유신 검사실 분, 맞습니까?”


검찰은 일반 관공서와 다르다.

방문 목적을 기재하고 해당 검사실의 허락을 받아야 출입할 수 있다.

그렇기에 나유신 검사실을 방문하러 온 사람을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사무관 홍신정은 1층 데스크로 내려와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구시죠?”

“제보를 받는다고 해서 찾아왔는데요.”

“무슨 제보, 아, 혹시?”


불청객이 웃으며 말했다.


“월야그룹 이연자 사모 살인사건, 제보를 받는다면서요? 얘기할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홍신정은 스마트폰과 전자펜을 꺼내 들었다.


“좋아요. 전 사무관 홍신정입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21세기 최신 문물을 사용하는 검찰사무관을 보다, 불청객이 히죽 웃었다.


“하대진이라고 합니다. 검사님, 안 계십니까?”


그러니까 하명희가 지목한 [범인]이다.


***


세상에는 생각보다 미친 사람이 많다.


“사건 담당 검사님이시라구요? 후후, 본가에 와서 아주 헤집어 놓고 가셨던 것 같던데.”


검사실은 이중 구성으로 되어 있다.


하나는 사무실, 또 다른 하나는 간이 심문실이다.

눈앞의 남자는 그저 사무실에서 대할 자가 아니다.

그래서 나유신은 일단 간이 심문실로 들어왔다.


한 눈에도 선뜩한 [예기]를 풍기는 남자를 응시하다, 나유신이 물었다.


“하대진 씨? 사건과 무슨 관계시죠?”

“제보자라니까요. 후후, 하씨 가문 일이라면 은밀한 일까지 꿰고 있어서.”

“질문을 바꿔보죠. 죽은 이연자 씨와 무슨 관계입니까?”


자발적 ‘제보자’, 하대진이 쪼개듯 웃으며 답했다.


“집안 어르신과 먼 친척뻘 조카 관계입니다. 공식적으로는.”


그 순간 황금문자의 정오판정이 떴다.


[진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전제조건]을 건 진실 판정이다.


공식적 관계는 머나먼 친척, 그것도 혈연 하나 섞이지 않은 사이다.

그런데 이 말은 뒤집어 보면 또 다른 관계가 숨어 있다는 뜻이다.

일부러 말한 게 확실하다.


나유신은 빤히 하대진을 보며 다시 물었다.


“그럼, 비공식적으로는 어떻게 됩니까?”

“이번 사건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일입니다만.”

“그건 내가 판단합니다. 하대진 씨.”


그 순간 나유신이 눈을 번뜩였다.


“다시, 묻죠. 이연자 씨와 어떤 사이입니까? 하대진 씨.”


실로 예기를 풀풀 뿜어내는 남자, 하대진에 밀리지 않을 눈빛이다.


10년.

전생에서 나유신이 검사로 보냈던 시간이다.

아무리 무력하게 보냈어도, 나유신은 그저 2년차 신입과는 다르다.


물론 하대진도 그 정도로 꺾일 사람은 아니라서 입가를 틀며 웃었다.


“그건 검사님이 알아내 보시죠.”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원래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시는 게 검사 업무 아닙니까? 기껏 제보를 하러 온 선량한 시민에게 이런 무례한 태도라니. 기분 잡치는걸.”


순간, 하대진이 탁자를 걷어찼다.


-쾅!


수사관 고거경이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지금 뭐하는 짓입니까! 여긴 검찰청입니다!”

“잘 알지요. 민원이라도 넣으면 난리가 나는 곳. 아무래도 오늘 검사에게 협박 받았다고 청와대 신문고에라도 올려야겠는걸?”

“이봐요, 하대진 씨! 아니, 이 조폭 새끼가!”


그러자 하대진이 고거경 앞에 선 채 삿대질을 했다.


“조폭이라니, 현명한 시민에게 지금 명예훼손 하는 거요? 공무원이? 앙?”


갑자기 눈앞에서 사람이 화를 내면 당황할 수밖에 없다.


나아가 근육질의 남자가 폭력을 행사하면 미처 냉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나유신은 아주 잠깐의 틈을 봤다.

냉정한 시선으로 보면 사안은 명료하다.


이건, 일부러 와서 깽판을 치는 거다.


“이봐, 하대진.”


당장이라도 고거경과 한 판 붙을 기세던 하대진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하대진이 잠시 멈칫거렸다.

형형한 눈빛, 새하얀 머리, 창백한 피부.


마치 유령 같은 외모의 나유신이 하대진을 정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긴 왜 왔나?”

“오, 센 척 하는군. 검사 영감님. 그래봤자 하나도 안 무서워.”

“이연자 씨 살인사건의 범인을 알고 있나?”


그 순간 하대진도 입을 다물었다.


이렇게 대놓고 질문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아마도 여기 온 진짜 이유는 둘.

하나는 월야의 본가를 때리고 유언장을 압수한 나유신이 뭔가 알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다른 하나는 나유신을 위협해 수사를 방해하기 위해서다.

폭력이 일상인 자들은 알고 있다.

절대적인 폭력 앞에서 사람은 결국 입을 다물게 된다는 것을.


하지만 하대진도 모르는 게 있다.

현대 사회에서 폭력의 정점에 있는 존재는 국가기관이다.

나아가 국가기관의 폭력을 상징하는 기관이 바로 검찰이라는 것도.


국가 폭력의 화신, 검사 나유신이 차갑게 웃었다.


“왜? 우리가 수사하는 건 다 알고 왔을 텐데.”


사적 폭력배 하대진이 나유신을 마주 보다 이를 드러냈다.


“안다면?”

“가부를 말해. 그렇게 말하지 말고.”

“말하면, 뭔가 달라지나?”


하대진이 나유신의 눈을 살피며 되물었다.


“어차피 너희는 아무런 증거도 없잖아. 안 그래?”


정오판정은 상대가 어떤 확정 사실을 말해야 판독된다.

그러나 감정반응과 신체반응은 그보다 쉽게 나타난다.

겉보기에 흥분해 보이는 하대진은 지금 극도로 냉정하다.


나유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살인범이군. 하대진.”


황금문자의 판정이 떠오른다.


[하대진, 일진회 중간 보스, 이연자 살인정범.]


일순, 하대진이 움직였다.


-쿵, 쿵, 쿵.


양아치와 조폭이 다른 점이 뭘까?


조폭은 국가 형벌권의 무서움을 안다.

일찍부터 선배든 본인이든 후배든 겪기 때문이다.

하여, 아무리 폭력적인 조직원이라도 국가기관 내부에서 검사를 폭행하진 않는다.


아주 번개처럼 움직인 하대진의 발길질에 검사실 책상이 넘어갔다.


“멀쩡한 사람 누명 뒤집어 씌우지 말고, 증거를 가져와. 아, 그리고.”


고개를 꺾으며 하대진이 말했다.


“내가 하려던 말은 이거야. 이연자는 자기 가문의 [수치]를 지우려고 했어. 물리적인 방식으로.”

“뭐?”

“그 수치가 뭔지는 알고 있겠지?”


어느새 여유로운 표정이 된 하대진이 손을 흔들며 검사실을 나섰다.


“망자라고 해서, 순백의 사람은 아니란 거야. 크크큭!”


올때도, 갈 때도 아주 제멋대로인 남자다.

월야를 뒤에 업은 조폭답게.


***


당연히 보통은 공무집행방해와 기물 파손 손괴죄로 입건이다.


“뭐, 저런 미친놈이 다 있습니까!”


하지만 나유신은 펄펄 뛰는 고거경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일단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상대가 누군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오로지 황금문자의 판정만 있으니 정보부터 캘 필요가 있었다.


나유신은 고거경을 손짓으로 제지하며 스마트폰에 대고 말했다.


“조용히 해봐요. 네, 박 선배. 조폭 잘 아시죠?”


스마트폰 너머, 검사 박달한의 호쾌한 목소리가 들렸다.


[뭐, 내가 그쪽 전문이긴 하지. 그런데 왜?]

“하대진이라고 아세요? 일진회 중간 보스라던데.”

[응? 하대진? 아, 월야그룹 해결사?]


나유신은 미간을 좁혔다.


“해결사요? 그것도 월야그룹? 조폭이요?”


일진회.


국내 대형 폭력조직 중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는 곳이다.

하선희가 일진회의 중간보스라고 지목했고, 하는 행동도 조폭과 흡사했으니 그건 맞는 정보일 거라 생각했다.

나아가 하씨니까 월야그룹 오너 일가의 친족일 수 있다고 추정했다.


그러나 재계 3위쯤 되는 월야그룹에서 해결사로 부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


[뭐, 대충 맞아. 재벌가에서 공식적으로 처리할 수 없는 일 있으면, 뒷골목 패거리에도 손 뻗을 때가 있지. 월야그룹에선 그 창구가 하대진이야.]

“성씨를 보니 월야그룹 집안 사람 같은데, 왜 조폭이 된 거죠?”

[조폭이 출신 가리나? 어쨌든 하대진은 아주 잔혹한 놈이야. 혹시 엮였으면 조심해.]


박달한이 호쾌한 목소리에 어울리지 않게 몸사리는 말을 던졌다.


[경찰을 죽였다는 얘기가 있거든.]


나유신은 눈을 크게 떴다.


사실 조폭은 [살인]을 직접 저지르는 경우가 의외로 적다.

조폭에게 폭력은 간단히 말해 사업 수단이다.

그런데 사람을 죽이면 더 이상 사업을 할 수 없으니 웬만해선 살인까지 가지 않는 게 보통이다.


게다가 수사관을 죽이다니, 그건 어떤 조직이든 피하려는 일이다.

수사관 개개인은 조폭에게 취약해도 수사기관은 다르다.

나라가 한 번 작정했을 때 작살나지 않을 조직 따위는 한국에 없다.


만약 그 조폭 뒤에 거대재벌이 있는 게 아니라면.


“경찰요? 사실입니까?”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이야. 하지만 그놈이 뒤에 월야그룹을 업고, 물불 안 가린 건 사실이지. 혹시 찾아오지 않았어?]

“족집게시군요. 점집 차리셔도 되겠습니다.”


나유신이 슬쩍 비꼬듯 답하자 박달한이 신신당부했다.


[그놈이 자주 쓰는 수법이야. 검사나 경찰을 압박하고 들어가는 거지. 하지만 단순히 말로만 협박하는 놈은 아니니까 조심해.]


그러니까 사전 경고였다는 얘기다.


다만 나유신은 생각보다 세게 부딪쳤으니 하대진도 둘 중 하나를 택할 것이다.

먼저 치거나, 두고 보거나.

한참, 스마트폰이 꺼진 뒤에도 나유신은 말없이 서 있었다.


사건의 윤곽이 잡히는 것 같다.

그러나 걸리는 게 있다.

이연자 여사에 대한 정보다.


단순히 하대진이 거짓 정보를 늘어놓았을 수도 있지만, 하필 이연자를 비방한 게 이상하다.

가문의 수치라면 아마도 하선희도 떠들어댄 ‘하무휼’을 얘기할 것이다.

그런데 하선희는 하무휼의 모친, 윤서희를 진범으로 지목했다.


여기에 뭔가 비밀이 있지 않을까?

하지만 추론을 하기에는 정보가 아직 부족하다.

그런데 고거경 수사관이 급히 나유신을 붙들었다.


“위험하단 뜻이군요. 검사님, 당분간 저랑 같이 퇴근하시는 게.”

“전 됐구요. 홍신정 사무관이나 잘 지켜요.”

“예? 저 여자, 아니, 저 사무관을 제가 왜요!”


고거경이 펄쩍 뛰었지만 나유신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목격자는 다 쓸어버리는 작자 같으니까 말이죠. 하지만 하대진이 한 가지 착각하는 게 있군요.”


문득 나유신이 차가운 미소를 머금었다.


“내 앞에 나타난 건, 실수란 겁니다.”


상대를 아예 몰랐다면 모를까.

누가 적인지 안다면 나유신은 멈추지 않는다.


***


그렇지만 유명한 말이 있다.

법은 주먹보다 멀다.


-끼이익!


BMW를 타고 집으로 가던 길.

나유신은 차를 멈췄다.

아주 순간적으로 황금문자가 떴기 때문이다.

5초 예지의 발동.


[5초 후, 트럭이 중앙선 침범 예정.]


브레이크를 밟고 핸들을 튼 순간.


-부아앙!


트럭이 거세게 지나갔다.


“야, 차 갑자기 세우면 어쩌자는 거야! 운전 똑바로 안 해? 엉!”


뒤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나유신은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등골을 식은땀이 적신다.


조직폭력.

법의 바깥에 있는 힘,

지나간 트럭은 그 힘의 테두리 안에 있는 게 분명하다.


꼭 나유신이 트럭운전사 때문에 한 번 죽어봐서가 아니다.


-쾅!


어느새 차문을 두들기고 있는 거한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내려!”


가만히 앉아 있던 나유신이 전자담배를 꼻아 물며 눈을 가늘게 떴다.


“정말 성급하고,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군.”


그러자 체육복을 입은 남자가 창문을 깨부수려 했다.

찰나, 남자의 머리가 땅에 처박혔다.

체육복 거한 넷이 정말 순식간에 창밖에서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쓰러진다.


나유신이 전자담배를 다 피웠을 때, 창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있었다.


“검사님, 차 안에선 금연 아뇨?”


창밖, [블랙리버 남] 혹은 남춘식이라 불리웠던 킬러를 향해 나유신이 대꾸했다.


“언제부터 따라붙었지?”

“나 말요? 그야 이번 사건 개시 때부터? 뭐, 보안팀장이란 양반은 검사님 경호까지 맡은 건 아닌 거 같아서.”

“앞으로는 설장수 팀장에게 경호 업무까지 맡겨야겠군. 하지만 내가 물은 건, 이 인간들이 언제부터 내 뒤에 붙었냐는 거야. 너가 내 뒤에 붙은 건 알고 있었어.”


나유신의 [칼], 블랙리가 머리를 긁적였다.


“글쎄, 그 하대진인가 하는 친구가 검찰청 나온 뒤에 잠복하던데? 그 친구 일진회 산하 두목이라던데 너무 섣불리 건드린 거 같수다?”


그 순간 나유신이 눈을 번뜩였다.


“그럼, 진짜 폭력이 뭔지 이 조폭 새끼들에게 가르쳐줘야겠군.”


현대사회에서 가장 강한 폭력은 따로 있으니까.


***


법원권근, 그러니까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이유는 시간차다.


“뭘, 움직여 달라고? 경찰기동대? 대체 왜”


노담 남부경찰서 형사과장, 천상룡은 어이없는 얼굴로 부하를 보았다.


경찰기동대.

이른바 경찰의 특수부대다.

물론 보통은 경찰서 단위로 치안 경비로 활동하는데, 특별범죄가 벌어지면 상황이 바뀐다.


무장한 상태로 1인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군대처럼 투입된다.

당연히 특별한 사건이 있는 경우에만 이런 기동이 가능하다.

그런데 강력팀장 강시영이 갑자기 결재를 요구한 거다.


“사건 담당 검사가 습격을 당했습니다. 고의 상용차 사고를 내려 한 혐의도 있습니다.”

“그럼 수사를 해서 증거를 가져와야지. 왜 기동대부터 요구해?”

“지금 검사가 조폭에게 죽을지도 모른단 말입니다! 우리 관할에서! 그걸 내버려 둬야 한단 말입니까?”


천상룡은 쾡한 눈의 숏컷 미녀, 강시영을 빤히 보다 툭 쏘았다.


“야, 너 그 백발 검사하고 뭐 있냐?”


강시영이 낯을 찡그렸다.


물론 사실 나유신에게 호감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그렇지만 지금 강시영이 나선 것은 나유신에 대한 호감과는 전혀 상관없다.

검사습격사건.


이건 공권력에 대한 도전이고 경찰 일이 아니라고 눈감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있긴 뭐가 있습니까! 업무에 충실 하려는 거 뿐입니다!”

“없으면 쓸데없이 나서지 마. 이거 하루빨리 서울로 올려보내야 하는 건이야.”

“과장님! 우리 관할에서 벌어진 사건입니다. 그것도 총격 사건! 그런데 그냥 서울로 보낸다구요?”


천상룡이 한참 강시영을 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총격 사건, 월야그룹, 거기에 일진회.”


강시영은 쾡한 눈을 번뜩이며 대꾸했다.


“정확히는 [오진회]죠. 일진회 산하 단체고, 엄밀히 말하면 하대진 개인 조직입니다.”

“그게 정말인지는 확정된 바 없어. 하대진이 감옥에 간 적도 없고. 모든 조직폭력배는 잡히기 전까진 그냥 임의단체인 거 알지?”

“범죄단체 조직죄에 걸리니까요.”


사실 한국에서 조폭은 조직결성 그 자체로 범죄다.


단지 겉으로는 사조직이나 상인회, 회사의 형태를 가장하기 때문에 잡히지 않을 뿐.

그렇기에 보통 [조직명]이라고 불리는 건, 경찰에서 붙인 이름에 가깝다.

감옥에 한 번도 가지 않은 하대진은 엄밀히 말하면 [수사대상] 조폭이 아니다.


책상 위에 놓인 커피잔이 식는 모습을 보며 천상룡이 일렀다.


“그런데 하대진 그놈을 캐던 본청 수사과장이 죽은 적이 있단 말이야. 그것도 총격사로.”


강시영은 눈을 부릅떴다.


본청, 그러니까 경찰청 수사과장이면 총경으로 경찰서장과 동급이다.

추후 청장급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높은 엘리트기도 하다.

한데 촉망받는 경찰이 수사 도중 총에 맞아 죽었다?


하대진이 무사한 게 이상하다.


“한국에서 총으로 사람이 죽었는데, 체포가 안 됐다구요?”

“증거가 없었거든. 게다가 자살한 정황이 있기도 했고.”

“수사를 해야 증거가 나오죠!”


천상룡은 혀를 찼다.


“윗선에서 시끄러워지는 걸 아주 싫어했다고. 그런데 지금도 마찬가지야. 굳이 월야그룹과 엮인 조폭을 캔다고? 집어치워. 강 팀장.”


단순히 조폭이 저지른 범죄였다면, 그 조직을 끝장내면 그뿐이다.


경찰에 그 정도 힘은 있다.

하지만 뒤에 한국 재계를 움직이는 재벌집단이 있다면 어떨까?

국가가 작정한다면 작살내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경찰 단위에선 고위층 누군가가 역시 작살난다.


굳이 무리할 필요가 없었다는 얘기다.


“그러니, 당연히 기동대 움직이는 것도 금지야. 그 백발 검사는 알아서 조심하라고 해. 검찰에 사람이 없나?”


그런데 강시영이 한숨을 쉬었다.


“과장님.”


여전히 외면하는 천상룡 과장을 향해 강시영은 진짜를 입에 올렸다.


“제가 우려하는 건, 검찰에서 윗선이 움직일 때입니다. 그럼, 우리는 손도 못 대게 됩니다.”


그러니까, 검찰이 먼저 움직일 때가 진짜 문제다.


***


남춘식, 이제 블랙리버 남(Nam)이라는 미국인이 된 흑룡강 조폭은 안다.


“일진회 새끼들, 확실히 위험한데. 쯧.”


미행용 차 안에 앉아 오피스텔을 주시하며, 블랙리버가 중얼거렸다.


“우리 검사님께서 너무 폭력을 우습게 보시는 것 같군. 응?”


검사라고 몸에 갑옷을 입고 다니는 건 아니다.


또한 블랙리버처럼 한국에서 추적이 어려운 해외 출신 킬러를 이용하는 경우는 다반사다.

지난 트럭 정도야 일종의 경고 차원일 게 뻔하다.

아마 집앞에서 또 다시 일을 벌일 거라 생각해 잠복하던 중이었는데, 이상한 움직임이 눈에 띄었다.


또다시 인상 험악한 자들이 나유신의 오피스텔 근처에 도사리는 게 보인다.


“이런, 저놈들이 또 검사님 집 앞에 왔잖아? 귀찮게시리. 응?”


차에서 내리려는 블랙리버, 그러니까 [흑강]에게 차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


흑강은 시선을 돌리다 눈썹을 치떴다.

혹시 일진회 조직원인가 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얼굴이다.

오풍쉐어링 보안팀장, 설장수가 웃고 있었다.


슬쩍 창문을 내리며 흑강이 물었다.


“왜 그러쇼?”

“자네, 저 친구들하고 한 패는 아니지?”

“당연히 아니긴 한데, 나 아쇼? 초장부터 반말이라니.”


그런데 설장수가 느긋한 태도로 창문에 기댄 채 물었다.


“우리 혹시 같은 고용주를 모시고 있지 않나? 내 추측엔 그런데.”


흑강은 미간을 좁혔다.


이건 심상치 않다.

일단 흑강과 나유신은 공식적 관계가 없다.

또한 본래는 킬러라 나유신과 접촉하는 게 드러나지 않도록 꽤 주의하며 지냈다.


그런데 경찰이나 검찰도 아니고, 전직 보험조사원인 설장수가 흑강을 눈치챈 것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난 ‘미쿡 살람’이오. 여긴 관광차 왔고. 노담시에선 관광객을 이렇게 대우하나?”

“미국인이라, 조선족 억양이 여실한데. 영어 잘하나?”

“이민 갔소. 됐소?”


설장수는 흑강을 향해 여전히 여유로운 태도로 물었다.


“너, 전직 범죄자 맞지?”


문득 흑강은 칼을 꺼내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이 들었다.

허나 몸을 움직이면 상대도 똑같이 반응할 게 분명하다.

잠시 노려보고 있을 찰나, 설장수가 창가에서 슬쩍 한 발 물러났다.


“같은 배 탄 처지에, 너무 그러지 말라구.”

“배는 무슨? 난 당신 모른다니까?”

“네가 우리 고용주와 대화하는 모습을 꽤 많이 봤거든. 제법 미행을 피한다고 했지만 전문가 눈은 못 속이지.”


다시 흑강이 살의를 느낄 때 설장수가 고개를 저었다.


“아, 오해는 하지 말라고. 난 보고차 갔다가 본 거지, 고용주를 캐려는 생각은 없었어.”


하지만 흑강의 존재를 알았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어쩌면 킬러라는 걸 알고 다른 생각을 품을지도 모른다.

흑강은 설장수를 노려보다 입을 열었다.


“무슨 속셈이지?”

“글쎄, 사실 은퇴 전에 용돈벌이나 할 생각이었는데. 검사가 날 고용할 줄은 몰랐거든. 내가 더 궁금하군. 무슨 생각일까?”

“당신, 쓸데없는 궁금증을 가지면 죽어.”


설장수가 흑강의 손을 보다 피식 웃었다.


“확실히 위험한 칼잡이를 옆에 두고 계시는군. 우리 고용주께선. 하여간 지금은 가만 있으라고.”

“저 깡패 새끼들을 냅두라고?”

“왜냐하면 말이야.”


문득 설장수가 오피스텔 쪽을 향해 턱짓했다.


“대신 처리해 줄 친구들이 있거든.”


흑강이 무슨 소리인지 몰라 눈을 깜박일 때, 요란한 사이렌이 거리를 울렸다.


-왜애앵!


그때서야 흑강은 깨달았다.

고용주, 나유신은 국가권력을 뒤에 업고 있다는 사실을.


***


조폭에게 협박은 이를테면 호흡 같은 거다.


[너, 미쳤느냐!]


그러니 스마트폰 너머 고성을 지르는 [어르신]의 고함이 하대진 귀에 들어올 리 없다.

그저 호흡했을 뿐인데, 그게 뭐가 잘못이란 말인가.

그렇지만 어르신을 적으로 돌려서야 골치 아프니, 하대진은 적당히 대꾸했다.


“아, 시끄럽습니다. 어르신. 그저 우리 방해하는 놈이 누군지 보기나 하러 갔다 온 겁니다.”

[상대방은 대한민국 검사야! 네가 상대하던 하급 경찰 나부랭이들과 틀려! 게다가 그놈은 서울시장 후보도 날려버린 놈이란 말이다!]

“그래서, 월야그룹 총수보다 대단합니까?”


어르신의 말이 없어지자 하대진은 재미있다고 생각하며 웃었다.


“크크큭! 어차피 우리의 전쟁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놈이에요. 대체 뭘 그렇게 두려워하십니까?”


깊은 한숨을 토하다, 어르신이 다시 말했다.


[명심해라. 지금 일이 성사되기 직전이다. 딱 한 발 남았다.]

“아, 알아요. 어르신.”

[이건 네가 지금까지 하던 수십억, 수백억짜리가 아니다. 170조원 짜리 [딜]이다!]


하대진은 입가를 비틀었다.


“그래요. 대한민국을 좌우할 수 있는 거대 딜이죠. 크크큭!”


170조 원.


숫자로만 들었지 실감해본 적이 없다.

이제 곧 손아귀에 들어온다.

전화를 끊고 주먹을 허공에 뻗어 쥐었다 피며 하대진은 눈을 가늘게 떴다.


진짜 복수가 바로 한 발 앞이다.

하씨 일가를 완전히 파멸시키는 작업도.

그때 하대진 옆에 서 있던 수하, 심자성이 물었다.


“형님, 그래서, 그 검사 놈, 묻어버릴까요?”

“아서라, 자성아. 혼만 내주면 되지. 출퇴근길은 제대로 알아봤지?”

“물론입니다. 동선 모두 확인했습니다. 퇴근 때 한 번 보내줬구요.”


하대진이 히죽 웃었다.


“경고 한 번 했는데도 아직 수사중이란 말이지. 그럼, 이번에는 차 한 번 뒤집어 지게 만들어줘라. 죽으면 제 운이고, 살아남으면 정신 차리겠지. 응?”


그 순간 하대진의 사무실 문을 누군가 걷어찼다.


-쿠당탕!


일진회 조직원들이 황급히 일어났다.

그런데 밖에 있던 조직원들이 어느새 무력화된 상태다.

머리도 빡빡 깎은 게 꼭, 다른 조직에서 쳐들어온 것 같은 모습이다.


하대진이 벌떡 몸을 일으키며 눈을 부라렸다.


“뭐야, 너희들?”


그때 조폭을 닮은 남자들 사이로 비리비리한 양복쟁이가 갑자기 나섰다.


“수도중앙 특수부다, 조폭 새꺄!”


특수1부 검사, 사정국이 눈을 마주 부라리며 외쳤다.


“검사실에서 검사한테 협박했다며? 너희 모두 긴급체포다!”


국가폭력의 상징.

검찰 특수부.


이게 바로 나유신의 반격이다.


작가의말

* 다음은 나유신이 함정을 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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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56) 새로운 검찰총장이 백발공적을 보호한다 +10 24.09.12 4,834 107 30쪽
56 (55) 총장의 자백으로 3조 폰지 사기를 부수다 +22 24.09.09 5,141 130 28쪽
55 (54) XBC 폭로로 현직 총장 사모를 붙잡다 +18 24.09.07 5,119 121 28쪽
54 (53) 황금금강석 멤버들은 그린벨트에 3조를 투자한다 +12 24.09.04 5,448 108 28쪽
53 (52) 총장 사모님이 피라미드 거물이다 +20 24.08.30 5,786 114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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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49) 초보형 전시안으로 사채왕을 발견하다 +15 24.08.22 6,535 153 30쪽
49 (48) 회장 등극식에서 대법관을 이용해 진범을 잡다 +19 24.08.20 6,660 163 21쪽
48 (47) 재벌 회장이 되게 해주세요 +25 24.08.18 6,752 154 34쪽
» (46) 특수부 폭력이 조폭 진범보다 위다 +20 24.08.14 6,953 167 34쪽
46 (45) 강앤함과 월야 재벌가의 동상이몽을 털어라 +12 24.08.12 7,103 154 24쪽
45 (44) 월야그룹 살인사건을 만나다 +12 24.08.08 7,752 151 25쪽
44 (43) 나유신의 팀을 수도대 동문회에서 완성하다 +14 24.08.06 8,144 166 35쪽
43 (42) 백사여, 노담에서 다시 시작해라 +20 24.08.02 8,276 176 29쪽
42 (41) 시한부 연장권과 함께 중수부가 폐지되다 +20 24.07.31 8,108 193 20쪽
41 (40) 백발이가 사채왕을 잡다 +27 24.07.30 8,031 194 21쪽
40 (39) 이렇게 된 이상 선제 폭로로 중수부를 친다 +14 24.07.28 7,969 194 19쪽
39 (38) 진짜는 미래살인 배후 사채왕이다 +16 24.07.26 7,969 188 21쪽
38 (37) 금수저 비밀 정보로 스캔들 범인부터 잡다 +19 24.07.24 8,006 184 32쪽
37 (36) 이건 중수부의 운명이 걸린 사건이다 +14 24.07.19 8,127 178 30쪽
36 (35) 위치 추적 보상과 함께 서울시장 스캔들을 만나다 +22 24.07.17 8,422 186 23쪽
35 (34) 진짜 마약범을 잡고 금수저 변호사와 손잡다 +27 24.07.15 8,367 195 22쪽
34 (33) 골드스컬 클럽을 함정으로 일망타진하다 +17 24.07.14 8,306 190 23쪽
33 (32) 조기유학 금수저 학폭이 사건 진상이다 +16 24.07.10 8,383 182 23쪽
32 (31) 철벽의 성을 대규모 교사 시위로 넘어볼까 +13 24.07.08 8,321 187 22쪽
31 (30) 학교폭력 연쇄 자살사건이 터졌다 +15 24.07.05 8,709 182 22쪽
30 (29) 한국 재계를 뒤엎을 진짜 거물을 만나다 +21 24.07.03 9,008 194 24쪽
29 (28) 노동 살해 협박으로 진범을 잡다 +16 24.07.01 8,855 201 22쪽
28 (27) 솔라코인 전관 법무팀의 방어를 뚫어라 +15 24.06.27 9,043 196 21쪽
27 (26) 특수부 첫 사건은 1조원 분식회계다 +17 24.06.26 9,385 198 22쪽
26 (25) 중수부장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받다 +15 24.06.24 9,589 201 35쪽
25 (24) 백발이를 죽인 자에게 진짜 복수를 해보자 +16 24.06.19 9,315 198 34쪽
24 (23) 백사가 또 검사를 잡았다 +22 24.06.18 9,397 200 22쪽
23 (22) 특수부식 예단수사로 마약통관범을 잡아라 +11 24.06.15 9,441 197 23쪽
22 (21) 이 나라에는 마약도 너무 많다 +17 24.06.13 10,215 210 24쪽
21 (20) 첫 기자회견과 함께 위수증 5백억 코인이 남다 +19 24.06.07 10,211 224 36쪽
20 (19) 5초 예지로 폭발 속 범인을 잡다 +14 24.06.06 10,104 221 24쪽
19 (18) 감옥에 보낼 놈은 내가 고른다 +14 24.06.04 10,091 218 18쪽
18 (17) 1천억 비트코인 사건을 5초 예지로 파헤치자 +14 24.05.31 11,100 219 31쪽
17 (16) 나를 건드리면 검찰총장 예정자도 가만 안 둔다 +25 24.05.29 10,979 233 26쪽
16 (15) 독사를 건드리면 제왕도 문다 +20 24.05.27 11,055 237 30쪽
15 (14) 공판부 땜방으로 백발검사를 보내라 +10 24.05.24 11,550 223 30쪽
14 (13) 언론비리 일망타진으로 신체감정 보상을 받다 +11 24.05.23 12,155 230 31쪽
13 (12) 특활비 별건수사로 무전취식 기자를 잡자 +12 24.05.21 12,245 237 21쪽
12 (11) 사고뭉치에게는 법카부터 먹여줘라 +13 24.05.20 13,451 243 21쪽
11 (10) 나유신이 주가조작 일당을 함정수사로 잡았다 +17 24.05.20 13,516 262 21쪽
10 (9) 오풍제지 그래핀 사기를 경찰공조로 잡는다 +16 24.05.18 14,348 257 25쪽
9 (8) 정오판정으로 오풍제지 주가조작을 발견하다 +16 24.05.17 14,706 276 15쪽
8 (7) 선배가 장애물이면 부수고 해결한다 +15 24.05.14 15,099 280 22쪽
7 (6) 상태창의 보상은 놓칠 수 없다 +23 24.05.12 15,957 296 27쪽
6 (5) 의원 하나 잡고 시작하자 +20 24.05.11 15,732 290 14쪽
5 (4) 신입 수석검사가 꼴통이래 +15 24.05.10 16,983 307 15쪽
4 (3) 범인을 잡으니 시한부 연장 +16 24.05.09 18,129 292 11쪽
3 (2) 우선 범인부터 잡고 죽자 +17 24.05.08 19,693 312 13쪽
2 (1) 백발 신입검사 나유신 +25 24.05.08 22,926 354 11쪽
1 프롤로그 : 시한부 상태창이 생겼다 +42 24.05.08 30,119 416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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