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검사는 거물이 되기로 했다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공모전참가작 새글

기신
그림/삽화
야근의신
작품등록일 :
2024.05.08 10:01
최근연재일 :
2024.09.18 21:50
연재수 :
59 회
조회수 :
596,330
추천수 :
11,940
글자수 :
656,739

작성
24.07.26 21:50
조회
7,968
추천
188
글자
21쪽

(38) 진짜는 미래살인 배후 사채왕이다

DUMMY

모든 의혹은 확정되기 전까지는 진실이 아니다.


“이번 선거는 우리가, 반드시 이길 겁니다!”


특히 선거에서는 더욱 그렇다.


서울시장 선거 유력 후보, 조영란 캠프는 아주 열띤 분위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영란은 ‘아들뻘’ 스타 연예인과의 스캔들로 망할 뻔했다.

검찰에 고발하긴 했지만, 야당 후보라 검찰에서 불리하게 수사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갑자기 수사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더니, 경쟁 후보 김익천이 방조범으로 지목되었다.

이렇게 되면 여론은 자연스럽게 조영란을 동정하게 된다.

캠프의 사무원들이 저마다 신나게 외쳤다.


“경쟁 후보가 퇴출당했고, 스캔들 문제도 묻혔습니다. 우세합니다!”

“다른 사고만 벌어지지 않는다면, 후보님이 승리합니다!”

“모든 대세가 후보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하나도 해결된 것은 없다.


일단 조영란이 장우찬과 왜 모나코에서 사진이 찍혔는지는 명확히 해명되지 않았다.

그저 우연이라는 게 조영란과 장우찬의 주장인데, 미심쩍다.

또한 김익천이 방조범이라는 것도 검찰에서 발표했을 뿐, 판결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정치가 늘 그렇듯, 아니 세상 만사가 대부분 그렇듯, 중요한 것은 어떻게 알려지느냐다.

지금 이 시점에선 조영란에게 상황이 아주 유리하다.

조영란 후보는 고개를 끄덕이며 캠프원들을 격려했다.


“좋아요. 그럼 다음 회의 순서로 넘어가죠. 응?”


그때 캠프 사무실 밖에서 이상한 청년이 어물쩡거리는 게 보였다.

그저 지지자나 기자나 혹은 스파이라고 하기엔 너무 눈에 띈다.

머리 색깔이 백색이기 때문이다.


백색 머리칼의 청년이 조영란과 눈이 마주쳤다.


“안녕하십니까, 후보님.”

“아주 눈에 띄는 머리색깔이군요. 나유신 검사, 맞죠?”

“어떻게 아십니까? 제가 의원님을 직접 조사하러 온 적은 없었습니다만.”


조영란은 빤히 백색머리 청년, 나유신을 보며 대꾸했다.


“그야 엄상전 의원을 지옥으로 보낸 저승사자니까요. 정치권에선 아는 사람은 나 검사 이름을 압니다.”


물론 정치권 인사들이 대부분인 캠프원들도 다들, 나유신의 [악명]을 안다.


검사 부임 첫 사건으로 3선 의원 엄상전을 날려버린 저승사자.

그것도 단순 비리나 정치자금 건이 아니라 [살인사건]으로 아예 사회적인 말살을 해버린 장본인.

엄상전이야 열심히 항소 중이긴 하지만, 1심 판결만으로도 끝장난 상태다.


캠프원들이 잔뜩 긴장한 가운데, 나유신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빠르겠군요.”

“무슨 말이죠?”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조영란은 빤히 나유신을 보다 답했다.


“얘기하세요. 이미 특수부에서 발표한 걸로 알지만요.”

“주위를 물려 주십시오.”

“내가 왜 그래야 하죠?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내 사람들이고, 비밀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순간 나유신이 차갑게 물었다.


“자식 분 얘기가 나와도 상관없습니까?”


캠프원들은 저마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왜 조영란의 ‘자식’ 얘기가 나올까?

당연히 조영란은 불륜이 거론되었던만큼, 기혼자고 자녀도 있다.

정당한 혼인관계에서 출생된 자녀다.


그렇지만 조영란만은 나유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았다.


“대체 그게 무슨 소리요?”

“심 변호사만 남고 다 나가.”

“의원님! 검사와 독대하는 건 위험합니다! 게다가 여기 나 검사는 사고 검사로 유명한데.”


수석 보좌관 김인화가 반발하며 나섰지만 조영란은 단호했다.


“모두 나가라고 했어.”


결국 후보 말대로 모두가 캠프 사무실 밖, 정확히는 건물 밖으로 쫓겨났다.

남은 것은 나유신, 조영란, 그리고 캠프에 와 있던 심정지 변호사다.

문득 심정지 변호사를 향해 조영란이 시선을 돌렸다.


“어떻게 된 거지, 심 변호사? 내게 보고하지 않은 게 있나?”


심정지 변호사는 창백하게 변했다.


분명히 장우찬의 변호사로 왔던 자다.

게다가 소속사의 고문 변호사기도 하다.

그런데 실제로는 조영란의 캠프에 깊게 관여하는 내부 인사였던 것이다.


잠시 머뭇거리던 심정지가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결과를 말해. 죄송하다고 말하지 말고.”

“그, 장우찬 군과 의원님의 관계를, 나유신 검사가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조영란의 낯이 창백하게 변했다.

물론 나유신이 ‘자식’ 운운할 때 예감은 했다.

하지만 이렇게 귀로 들으니 마음이 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여기까지 와서, 그것도 현직 검사에게 거짓말을 해봐야 소용 없다.

또한 폭로할 거라면 캠프원들이 있는 곳에서 떠들었을 것이다.

조영란의 시선이 나유신을 향했다.


이 백발머리 검사가 원하는 게 뭘까?


“우찬이가 말했나 보군요. 내 슬하에서 자랐으면 훈련이 되었을 것을.”

“글쎄요. 미혼의 몸으로 아이를 버리고, 모른 척하신 상태로 혼인해서 잘 사신 분이 하실 말씀 같진 않군요.”

“누구나 사정이 있기 마련이죠.”


조영란이 굳은 낯으로 답할 찰나, 나유신이 입가를 틀었다.


“그럼, 장우찬 씨의 모나코 계좌에 있는 돈, 주인이 누군지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심정지는 또 다시 심장이 멎을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한 마디로 흙빛이 되었다는 얘기다.

반면 조영란은 오히려 침착한 얼굴로 되물었다.


“우찬이가 거기까지 말했나요? 하지만 그건 증거가 없을 텐데요?”


물론 계좌명은 장우찬의 명의다.

또한 조영란이 시켜서 만들었다는 증거 따위는 없을 것이다.

허나 나유신은 태연하게 대꾸했다.


“본인이 직접, 계좌를 확인했습니다. 너무 금액이 크더군요. 3천만 유로였으니까.”


한화로 최소 4백억 원이다.


***


모나코는 예로부터 유명한 비자금 세탁 장소다.


“대체, 어디까지 알고 오신 겁니까?”


그러니까 나유신이 조영란 캠프를 방문하기 하루 전.

장우찬은 자신의 집으로 나유신을 들여왔다.

나유신이 장우찬의 화려한 집을 구경하다 대꾸했다.


“미안하지만 난 남자 연예인에겐 별로 관심 없어요. 그냥 사건 수사 때문에 알게 된 거죠.”

“하지만 검사님은 내가 조영란 의원의 아들이란 걸 알고 있었잖습니까.”

“그건 생각보다 꽤 알려진 사실이던데요.”


인테리어만 해도 수억원 대에 달할 고급 주택에 감탄하는 얼굴로 나유신이 말했다.


“재계 쪽에서 들은 얘기니까 말이죠.”


애초에 이 정보는 한강민 변호사에게서 들은 얘기다.


한강민 변호사는 10대그룹 중 하나, 화성그룹의 3세다.

요컨대 화성그룹 비서실은 장우찬과 조영란의 관계에 대해 안다는 얘기다.

그러면 그 이상의 정보력을 가졌다는 일성그룹이나 시대그룹, 혹은 태양그룹도 알만큼 알 가능성이 높다.


장우찬도 나유신의 말에서 그 점을 짐작했는지 혀를 찼다.


“이러다 정말 세상 사람들이 다 알겠군요.”

“의외로 이런 중대한 사실은 숨겨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비밀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거래 요소가 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아니겠죠.”


장우찬이 나유신을 죽일 것 같은 눈으로 노려보았다.


“검사님은 나보고 어머니를 배신하라고 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어쩌면 집 안에 들인 이유는 밀실 살인이라도 하기 위해서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유신은 잠시 신체판정과 5초 예지를 동원해보다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장우찬이 살인을 저지를 것 같지는 않다.


“사실이군요, 역시.”

“어머니가 모나코에 제 명의로 계좌를 만들어달라고 한 건 맞습니다. 그 계좌로 뭘 하시는지는 전 모르죠.”

“계좌 추적을 할 수 있도록, 동의해 주시죠.”


장우찬이 눈썹을 치떴다.


“제 동의 없이도 범죄혐의가 있다면 추적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모나코는 그렇지 않죠. 한국과 협정이 체결되어 있지도 않고. 하지만 본인이 동의하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하긴, 그 은행에서 정보를 알려주겠군요.”


문득 장우찬이 나유신 앞에 섰다.


“그렇지만 왜 내가 어머니를, 그것도 26년 만에 만난 어머니를 배신해야 합니까?”


이번에는 신체판정이 묘하다.


심장이 거세게 뛰는 게 아니라 차분히 가라앉는 정보가 뜬다.

아마도 뭔가를 결심한 사람의 모습이다.

하지만 나유신도 여기까지 혼자 올 때 각오 정도는 했다.


이번 사건은 최대한 빨리 풀어야 한다.

시한이 벌써 10일 안팎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당사자에게 직접 부딪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장우찬이 고백하지 않으면, 조영란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이다.


“아니면, 당신 모친이 죽을 겁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인지 장우찬이 입을 쩍 벌렸다.


“왜죠?”


다시, 장우찬의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이제 차분히 계획살인을 할 가능성은 없어졌다.

잠시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다, 나유신은 어깨를 으쓱였다.


“내 예상이 맞다면, 그 돈의 주인은 범죄자가 확실하니까요.”


전생에서 조영란은 결국 서울시장이 된다.

다만, 자살한다.


비자금 사건이 터져서.


***


문제는 전생에서도 그 비자금의 주인은 결국 밝혀지지 않았다는 거다.


“의원님, 서울시장 선거에 이 정도 돈이, 4백억 원의 비자금이 필요하진 않을 겁니다.”


나유신이 조영란을 뚫어져라 보며 물었다.


10년, 아무것도 모른 채 보냈던 전생이다.

그때 얼마나 많은 사건들이 나유신의 눈앞에서 비밀에 묻힌 채 사라졌을까.

혹시 태양그룹 살인사건도 그 중 하나는 아니었을까?


조영란은 나유신의 시선을 피했다.


“잘 모르시는군요. 서울시장 선거에는 그보다 더 많이 들어요.”

“공식적으로는 34억원 쯤인 걸로 아는데요.”

“누가 공식적인 비용만 쓰나요? 당연히 뒤로 더 많이 쓰죠.”


그러나 나유신은 물러나지 않고 질문했다.


“설사 그렇다 해도 국외 비자금 계정을 써서 자금을 수급하진 않겠죠. 누굽니까, 그 계좌 진짜 주인?”


아주 간단히 사건을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


비자금 계좌를 장우찬에게 온갖 압박을 가해 증언시킨다.

그러면 야당 후보를 낙마시키고 싶은 법무부장관과 서수휘 차장은 좋다고 압수수색을 가할 것이다.

해외에 있는 계좌니 내역을 조사할 수야 없지만 조영란 하나는 박살낼 수 있다.


그러나 나유신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정답이 아닌 것 같았다.

뭔가, 밝혀지지 않은 비밀이 아직 숨어 있다.

조영란은 입술을 깨물다 한숨을 내쉬었다.


“오지후 회장이에요. 감당할 수 있겠어요?”


그 순간 나유신의 낯빛이 처음으로 창백해졌다.


“장관과 총장이 나선 이유가 있었군요.”


바로 사채업계의 거물, 오 회장이다.


***


전생, 사실 따지고 보면 10년 후 미래는 나유신에게 악몽이다.


「예단하지마!」


특수부 사수, 주시평만 외쳤던 얘기는 아니다.


그렇지만 눈앞에 아직 선한 것은 주시평의 지시다.

모범생은 정답이 있다고 믿는다.

나유신은 천재로 불리긴 했지만 실은 시험을 잘하는 우등생이었을 뿐.


그래서 선배 말이 이상해도 따랐다.

정답이 맞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동기, 백희진은 묘하게 달랐다.


「조영란 ‘시장’이 뭔가 이상해.」

「그래서 네가 수사할 이유가 있어? 정치인은 함부로 건드리는 거 아니라고 했어. 정확한 물증이 나오기 전까진.」

「증거는 수사를 해야 나오는 거야. 나검.」


그때는 나유신을 이름으로 부르지 않던 백희진이 심각하게 말하던 기억이 난다.


「게다가 이건 조영란 시장도 협박을 받고 있는 것 같단 말야? 뭔가 제3의 범죄가 숨어 있어.」


따지고 보면 남의 사건.


그것도 나유신은 버림받은 또 다른 특수부 라인을 따라가던 백희진이다.

질투가 진실을 가렸던 걸까.

때문에 백희진이 그 말을 할 때는 그저 넘겼다.


그런데 주시평이 엉뚱한 지시를 하러 불렀다.


「태양그룹에서 사고를 쳤어.」


나유신은 처음으로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예단은 하지 마라.」

「사고를 쳤다면서 왜 예단하지 말라고 하시는 겁니까?」

「신고는 됐지만 단순 폭행 사건일 수 있다는 거지. 물론.」


주시평은 이미 결과를 예측함에도, 예단하지 말라는 이상한 얘기를 했다.


「사람이 죽어 나가기도 했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고일 수도 있으니까. 응? 예단은 금물이야. 나 프로.」


사건의 진실과 수사 결과, 그리고 공소장이 모두 다르다는 소리다.


납득할 수 없었다.

정답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으로 선배의 지시를 어기고 사건을 파기 시작했다.


백희진이 다시 연락이 온 건 그 무렵이었다.


「나검, 이거 태양그룹 4세 사건하고 연결된 거 같아.」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들어봐. 태양그룹 4세가 참가했던 그 파티, 누가 개최했는지 알아?“


처음, 이름을 들었다.


「실버머니 오지후 회장이래. 들어봤어? 사채업계의 숨겨진 거물, 아니.」


실버머니 오지후 회장.


나유신은 그때까지 주로 특수 사건의 처리를 담당해 왔다.

어쨌든 수석 입사는 어떤 조직에서든 특별 취급을 받기 머련이다.

특수 사건이란 쉽게 말해 언론에 회자되는 사건들이다.


사채는 보통 서민 사건인데다 거물 사채업자면 범죄를 저지르기 전까지는 눈에 안 띄기 마련이다.


「사채왕.」


반면에 백희진은 같은 특별 취급을 받는 ‘차석’이라도 조금 다른 길을 걸었다.

금융합수단을 시작으로 금융 사건을 전문적으로 다뤄왔던 것이다.

보통 금융 사기 뒤에는 사채업자가 ‘전주’로 숨어 있다.


그래서 나유신은 처음 듣던 그 이름을 백희진은 알고 있었다.


「그게 대체 왜 조영란 시장하고 관계가 있는 거야?」


하지만 사채업자가 정치권과 무슨 상관일까?

백희진은 웃을 뿐 그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그때 들었어야 했다.


「야, 백 검사가 살해당했어!」

「그게 무슨 소리야? 살해라니? 백희진이 왜 죽어?」

「몰라. 집에 가는 길에 강도에게 살해당했대. 이게 대체 뭔. 대한민국 검사가 길거리에서 죽어? 나라가 미쳤구만?」


동기 지상균 검사가 지나가는 말로 얘기했다.

백희진이 살해당했다.

단순강도라고 발표되었지만 나유신은 직감했다.


이건 계획 살인이다.

만약 나유신이 조금만 더 신경을 썼다면.

혹시 백희진은 죽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죽은 사람은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뉴스 봤나! 속보야! 조영란 시장이 자살했네!」


아무리 정해진 길만 따라가는 모범생이라도 인생에서 참을 수 없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이 나유신에게는 속보를 들은 날이었다.

하지만 검찰은 나유신을 가로 막았다.


「예단하지마.」

「아무리 그래도 이건 뭔가 이상합니다. 압수수색이라도 해야.」

「나 프로! 프로답지 않게 왜 이래. 증거를 가져와. 그 다음에 이야기하자고!」


주시평도, 배지밀도, 똑같은 소리를 했다.


「너무 나서면 모난돌이 정 맞는 걸세. 나 검사.」


그 순간 나유신이 떨어졌다.


-쿵!


침대 아래 바닥은 꽤 아프다.

몸은 식은땀으로 젖어 있다.

그렇지만 정신은 멀쩡하다.


나유신이 어둠을 노려보다 중얼거렸다.


“그래, 왜 사건해결을 못 하면 백희진이 죽는지, 알겠군.”


이 사건이 백희진의 죽음과 관련된, 사채왕이 범인이기 때문이다.


***


하지만 10년 전, 사채왕은 썩 유명한 사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사채왕? 그게 뭐야? 사채업계에 4대 노인 말고 또 거물이 있었어?”


일단 경험 많은 팀장, 유명세 검사가 전혀 모르는 얼굴인 걸 보면 확실하다.


“4대 노인은 또 뭡니까?”

“재벌 총수들도 두려워한다는 현금부자들이지. 한때는 온갖 땅투기에 채권투기, 달러 투기까지 휩쓸었다던데.”

“그 사람들 다 늙어 죽은 거 아니에요?”


유명세가 코웃음을 쳤다.


“바로 그거야. 사채라는 게 세상을 좌우하던 건 옛날 일이라고. 그런데 또 사채왕이란 자가 따로 있나?”


4대 사채업자, 곧 명동을 쥐락펴락하던 전설의 현금 부자들이다.


아직 한국의 금융이 미발달했던 시대, 급전은 사금융기관이 대신했다.

그때 작게는 명동 시장 상인들을, 때로는 강남 복부인들을, 심지어 재벌 회장들까지 상대하던 큰 손들이 있었다.

실로 1조 원의 현금을 유통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외환위기와 금융위기가 한국을 덮쳤다.

이 과정에서 금융기관의 규모도 커졌고 한국 경제 규모도 달라졌다.

사채 규모로 경제를 좌우할 수 있는 시대가 지난 것이다.


그런데 21세기에도 사채왕이란 존재가 있는 걸까?

백희진도 아직 모르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

아주 가볍게 나유신은 자료를 건네며 설명했다.


“오지후, 실버머니 회장입니다.”

“대부업체 사장이잖아? 사채왕이니 어쩌니 하는 건.”

“그건 허울이죠. 실제로는 불법적으로 움직이는 자금이 훨씬 많습니다. 특히.”


나유신이 눈을 번뜩였다.


“기업사냥꾼의 [전주]로 활동하고 있죠. 자금 회수는 모두 [LBO]로 처리하구요.”


시대가 바뀌고 사채도 진화했다.


여전히 서민을 대상으로 사채를 굴리고 조폭을 통해 받아내는 고리대금업자들도 있다.

그러나 규모가 커지면 범죄도 달라지는 법이다.

막대한 자금을 굴리는 대규모 사채업자들은 ‘기업’을 사냥감으로 삼는다.


백희진이 감탄하며 말했다.


“와, 유신이 너, 아니 나검, 공부 많이 했구나? LBO도 알고.”

“그건 그냥 상식이거든?”

“그렇지만 우리 팀장님은 모르는 거 같은데?”


유명세가 낯을 찌푸렸다.


“설명해 봐.”


나유신이 가볍게 헛기침을 하며 전생에서 배운 바를 읊었다.


“레버리지 바이 아웃. 그러니까 차입 매수입니다. 기업을 인수할 때, 그 회사에서 돈을 빌려서 인수를 한 후, 회사 주식발행으로 빌린 돈을 갚는 거죠.”

“뭐야? 그런 이상한 짓을 회사가 왜 해주는데?”

“기존 대주주를 협박하거나, 혹은 대주주에게 막대한 돈을 주고 나가게 하는 겁니다. 어쨌든 대주주 입장에서도 회사돈이 본인 개인 자금은 아니니까요.”


보통 업력이 길고 현금은 많고 성장성은 꺾인 기업이 타깃이다.


이런 기업은 내부 자금은 많지만 더 이상 발전할 여지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때 사채업자가 자금을 댄 기업사냥꾼들이 달라붙는다.

특히 대주주와 결탁해 해당 회사로부터 돈을 끌어내서 자금을 충당하는 방식이다.


놀랍게도 이건 배임이 아니라 경영 판단으로 취급받는다.

왜냐하면 메이저 금융 업계, 특히 사모펀드에서도 같은 방식을 자주 쓰기 때문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사기 기업사냥꾼은 기업을 부도내고, 사모펀드는 팔아치운다는 점일까.


“그런데 이 과정에선 단기적으로 막대한 자금이 필요합니다.”

“어, 재벌 회장들이 아파트 지을 때 그랬지. 4대 노인도 그때 명동에서 돈 빌려주면서 컸는데.”

“그건 또 뭡니까?”


유명세가 어깨를 으쓱였다.


“아파트가 다 선분양이라도 초기엔 돈이 모자라. 그래서 그 초기 자금을 끌고 와야 하는데 옛날엔 은행이 돈이 없었거든. 그래서 사채업자들이 재벌 총수들에게 돈을 빌려줬지.”


검사 초년생 때 유명세가 다뤄본 사건인 모양이다.

확실히 기업사냥꾼들이 현금 흐름이 막혔을 때 사채를 쓰는 것과 유사한 점이 있다.

이 과정에서 사채업자는 불법은 저지르지 않고 막대한 이익을 취득한다.


그저 공사판에 현금을 빌려주던 명동 사채업자와 다르다.

뭐가?

현금 운용 규모가.


그때 박달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그 현대판 사채왕이란 오 회장이 왜 이 사건과 관련이 있는 거지?”

“정치권에 자금을 대는 큰 손입니다.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규모는?”


나유신이 심호흡을 하다 입을 열었다.


“일단 이번에 드러난 모나코 계좌만 4백억 원.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겠죠.”


미국 대통령 선거에 드는 자금이 보통 2천억 원 내외라고 한다.


4백억 원.

결코 서울시장 선거에서만 쓰여질 금액이 아니다.

그런데 사채왕이 조영란 의원의 차명계좌만 썼을까?


유명세는 눈을 가늘게 뜨다 일어났다.


“나 검사, 나 좀 보지.”


아무래도 유명세도 각오를 해야 할 상황인 것 같다.


***


담배를 꼻아 물던 유명세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설마 김익천도 오지후인가 하는 자와 관련이 있나?”

“예단입니다.”

“이상한 일 아닌가. 여당 라인에 선 특수부는 사건을 적당히 덮고, 야당 라인을 슬쩍 엿보는 중수부는 눈치를 살피고.”


문득 유명세가 날카로운 눈으로 나유신을 보았다.


“양쪽 다 자금을 퍼붓지 않았다면, 혹은 압력을 가하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안 그래?”


나유신도 똑같은 생각이다.

그게 아니면 사건 스텝이 꼬인 게 설명이 안 된다.

최소한 조영란 의원 하나는 벌써 날려 버렸어야 마땅한데도 질질 끌고 있다.


“아무것도 드러난 건 없습니다. 다만, 전 파보고 싶습니다.”


나유신을 뚫어져라 보던 유명세가 담배를 땅에 버렸다.

경범죄 처벌법에 따르면 무단투기다.

검사 주제에 벌금형이 내려질 범죄를 저지른 유명세가 툭 쏘았다.


“좋아. 압수수색 영장 신청해 보자고. 다만, 이러면 위에서 다 알게 돼.”


나유신은 싱긋 웃었다.


“문제가 생기면, 제가 뒤집어쓰죠.”


어차피 사건이 해결되지 못하면 백희진이 죽을 판이다.

전생처럼, 또 다시.


그건 나유신이 풀지 못했던 숙원이기도 했다.


작가의말

* 이번 주에도 연재 진행상 부득불 토요일 연재합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6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신입검사는 거물이 되기로 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임시) 제목 변경(검찰청 망나니->신입검사 거물) 24.09.02 315 0 -
공지 연재시간(오후 10시, 주6일) 24.05.08 17,919 0 -
59 (58) 재벌가 상속녀도 보이스피싱을 당한다 NEW +11 14시간 전 2,344 53 9쪽
58 (57) 전시안 보유 시한부 인생은 무서울 게 없다 +10 24.09.17 3,631 84 29쪽
57 (56) 새로운 검찰총장이 백발공적을 보호한다 +10 24.09.12 4,834 107 30쪽
56 (55) 총장의 자백으로 3조 폰지 사기를 부수다 +22 24.09.09 5,141 130 28쪽
55 (54) XBC 폭로로 현직 총장 사모를 붙잡다 +18 24.09.07 5,118 121 28쪽
54 (53) 황금금강석 멤버들은 그린벨트에 3조를 투자한다 +12 24.09.04 5,447 108 28쪽
53 (52) 총장 사모님이 피라미드 거물이다 +20 24.08.30 5,786 114 28쪽
52 (51) 3조짜리 피라미드 조직을 잡아보자 +18 24.08.29 5,957 125 29쪽
51 (50) 나유신이 첫 휴가지에서 상속녀를 보다 +26 24.08.24 6,587 139 31쪽
50 (49) 초보형 전시안으로 사채왕을 발견하다 +15 24.08.22 6,535 153 30쪽
49 (48) 회장 등극식에서 대법관을 이용해 진범을 잡다 +19 24.08.20 6,660 163 21쪽
48 (47) 재벌 회장이 되게 해주세요 +25 24.08.18 6,752 154 34쪽
47 (46) 특수부 폭력이 조폭 진범보다 위다 +20 24.08.14 6,952 167 34쪽
46 (45) 강앤함과 월야 재벌가의 동상이몽을 털어라 +12 24.08.12 7,103 154 24쪽
45 (44) 월야그룹 살인사건을 만나다 +12 24.08.08 7,751 151 25쪽
44 (43) 나유신의 팀을 수도대 동문회에서 완성하다 +14 24.08.06 8,144 166 35쪽
43 (42) 백사여, 노담에서 다시 시작해라 +20 24.08.02 8,276 176 29쪽
42 (41) 시한부 연장권과 함께 중수부가 폐지되다 +20 24.07.31 8,107 193 20쪽
41 (40) 백발이가 사채왕을 잡다 +27 24.07.30 8,030 194 21쪽
40 (39) 이렇게 된 이상 선제 폭로로 중수부를 친다 +14 24.07.28 7,969 194 19쪽
» (38) 진짜는 미래살인 배후 사채왕이다 +16 24.07.26 7,969 188 21쪽
38 (37) 금수저 비밀 정보로 스캔들 범인부터 잡다 +19 24.07.24 8,006 184 32쪽
37 (36) 이건 중수부의 운명이 걸린 사건이다 +14 24.07.19 8,127 178 30쪽
36 (35) 위치 추적 보상과 함께 서울시장 스캔들을 만나다 +22 24.07.17 8,422 186 23쪽
35 (34) 진짜 마약범을 잡고 금수저 변호사와 손잡다 +27 24.07.15 8,367 195 22쪽
34 (33) 골드스컬 클럽을 함정으로 일망타진하다 +17 24.07.14 8,305 190 23쪽
33 (32) 조기유학 금수저 학폭이 사건 진상이다 +16 24.07.10 8,383 182 23쪽
32 (31) 철벽의 성을 대규모 교사 시위로 넘어볼까 +13 24.07.08 8,319 187 22쪽
31 (30) 학교폭력 연쇄 자살사건이 터졌다 +15 24.07.05 8,708 182 22쪽
30 (29) 한국 재계를 뒤엎을 진짜 거물을 만나다 +21 24.07.03 9,007 194 24쪽
29 (28) 노동 살해 협박으로 진범을 잡다 +16 24.07.01 8,855 201 22쪽
28 (27) 솔라코인 전관 법무팀의 방어를 뚫어라 +15 24.06.27 9,043 196 21쪽
27 (26) 특수부 첫 사건은 1조원 분식회계다 +17 24.06.26 9,384 198 22쪽
26 (25) 중수부장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받다 +15 24.06.24 9,589 201 35쪽
25 (24) 백발이를 죽인 자에게 진짜 복수를 해보자 +16 24.06.19 9,315 198 34쪽
24 (23) 백사가 또 검사를 잡았다 +22 24.06.18 9,397 200 22쪽
23 (22) 특수부식 예단수사로 마약통관범을 잡아라 +11 24.06.15 9,441 197 23쪽
22 (21) 이 나라에는 마약도 너무 많다 +17 24.06.13 10,215 210 24쪽
21 (20) 첫 기자회견과 함께 위수증 5백억 코인이 남다 +19 24.06.07 10,211 224 36쪽
20 (19) 5초 예지로 폭발 속 범인을 잡다 +14 24.06.06 10,103 221 24쪽
19 (18) 감옥에 보낼 놈은 내가 고른다 +14 24.06.04 10,091 218 18쪽
18 (17) 1천억 비트코인 사건을 5초 예지로 파헤치자 +14 24.05.31 11,099 219 31쪽
17 (16) 나를 건드리면 검찰총장 예정자도 가만 안 둔다 +25 24.05.29 10,979 233 26쪽
16 (15) 독사를 건드리면 제왕도 문다 +20 24.05.27 11,055 237 30쪽
15 (14) 공판부 땜방으로 백발검사를 보내라 +10 24.05.24 11,550 223 30쪽
14 (13) 언론비리 일망타진으로 신체감정 보상을 받다 +11 24.05.23 12,155 230 31쪽
13 (12) 특활비 별건수사로 무전취식 기자를 잡자 +12 24.05.21 12,245 237 21쪽
12 (11) 사고뭉치에게는 법카부터 먹여줘라 +13 24.05.20 13,451 243 21쪽
11 (10) 나유신이 주가조작 일당을 함정수사로 잡았다 +17 24.05.20 13,516 262 21쪽
10 (9) 오풍제지 그래핀 사기를 경찰공조로 잡는다 +16 24.05.18 14,348 257 25쪽
9 (8) 정오판정으로 오풍제지 주가조작을 발견하다 +16 24.05.17 14,706 276 15쪽
8 (7) 선배가 장애물이면 부수고 해결한다 +15 24.05.14 15,098 280 22쪽
7 (6) 상태창의 보상은 놓칠 수 없다 +23 24.05.12 15,957 296 27쪽
6 (5) 의원 하나 잡고 시작하자 +20 24.05.11 15,732 290 14쪽
5 (4) 신입 수석검사가 꼴통이래 +15 24.05.10 16,983 307 15쪽
4 (3) 범인을 잡으니 시한부 연장 +16 24.05.09 18,128 292 11쪽
3 (2) 우선 범인부터 잡고 죽자 +17 24.05.08 19,692 312 13쪽
2 (1) 백발 신입검사 나유신 +25 24.05.08 22,926 354 11쪽
1 프롤로그 : 시한부 상태창이 생겼다 +42 24.05.08 30,117 416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