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검사는 거물이 되기로 했다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공모전참가작 새글

기신
그림/삽화
야근의신
작품등록일 :
2024.05.08 10:01
최근연재일 :
2024.09.18 21:50
연재수 :
59 회
조회수 :
596,353
추천수 :
11,940
글자수 :
656,739

작성
24.07.05 21:50
조회
8,708
추천
182
글자
22쪽

(30) 학교폭력 연쇄 자살사건이 터졌다

DUMMY

하필 그날, 교사 한인화는 일찍 출근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눈이 일찍 떠지는지. 늙어서 그런가? 휴.”


물론 한인화도 알고 있다.


시한국제중, 한인화가 재직 중인 특별한 사립 중학교.

이곳에 요 근래 사건 사고가 너무 많다.

특히 학생부장을 맡게 된 해에 이런 일이 벌어져서 한인화는 매일 골치다.


커다란 교문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다 한인화가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학교가 뒤숭숭하니 참, 걱정이야.”


겉으로 보기에 시한국제중은 참 좋은 학교다.


일단 건물은 연전에 새롭게 지어 모든 기물이 새 거다.

급여 수준은 일반 중학교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학생 실력도 뛰어나 특목고와 외국 조기유학, 올림피아드 준비생이 부지기수다.


그렇지만 속은 곪아 있다.

한인화가 그렇듯이 말이다.

속쓰림이 갑자기 치미는 걸 느끼며 한인화가 살짝 눈살을 찌푸릴 찰나.


제복을 입은 경비가 다가와 인사했다.


“아이고, 부장 선생님, 벌써 오셨습니까?”

“별일 없었죠? 야간 순찰하시느라 늘 고생이 많으세요.”

“휴, 학생들이 함부로 못 들어오게 하느라, 그게 신경 쓰이는 일이죠.”


선임 경비 배음탁이 의미심장한 말을 하다 어깨를 움츠렸다.


“그래도 숙직 담당 선생님들이 애써주셔서 이제는 [사고]가 없는 것 같습니다. 휴.”


한인화는 다시 한 번 한숨을 토할 뻔했다.


중학교는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학생들이 다니는 곳이다.

갑자기 신체적, 정신적 변화를 겪으며 초등학교 때는 없었던 사고도 빈발한다.

그러니까 중학교 교사는 늘 학생들이 사고를 일으킬 상황을 염두에 두며 근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한국제중에서 최근 반년 간 벌어진 사건들은 [선]을 넘었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사고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출근해야 할 정도다.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한인화가 애써 웃었다.


“그래요. 오늘 숙직 담당이 누구였죠?”

“고미래 선생님입니다.”

“응? 신입이잖아요? 이럴 때 숙직 맡겨도 되나?”


한인화가 당황할 찰나, 배음탁이 혀를 찼다.


“어쩔 수 있나요. 숙직이란 게 돌아가면서 하는 거니. 그래도 어제 봤을 땐 열의가 넘치던데요?”


실은 숙직 당번도 학생부장이 최종 전결해야 하는 일이다.

너무 정신이 없어 놓친 모양이다.

잠시 속으로 반성하던 한인화가 걸음을 옮겼다.


“이따 밥이라도 사줘야겠네요. 숙직실에 있겠죠?”


물론 보통 밤샘 숙직은 힘든 일이고, 신입에게 맡겨지는 경우도 다반사다.

그렇지만 요새 시한중에서 일하는 게 보통 일인가?

게다가 고미래 선생이라면, 어쩐지 사건 사고에서 이름을 들었던 기억도 난다.


한인화는 배음탁과 함께 숙직실로 향했다.


“이봐, 고 선생. 안에 있지? 응?”


그런데 숙직실에 노크를 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뭔가, 이상하다.

한인화와 배음탁이 서로 돌아보았다.


“고 선생?”


조심스레 부를 찰나, 불길한 기분에 한인화가 재빨리 문을 열었다.


-덜컹!


그때 한인화는 온몸이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괜히 열었다는 생각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전율로 적셔진다.

눈을 다시 한 번 질끈 감았다 뜨지만 보이는 광경은 똑같다.


“꺄아아아악!”


결국 비명을 터뜨리며 한인화가 주저앉을 때, 배음탁이 고함쳤다.


“사람이, 죽었어! 119!”


고미래 선생이었던 시체가 숙직실, 천장에 걸려 흔들렸다.


***


특별 TF 파견 수사관, 고거경이 프리젠테이션이 비춰진 슬라이드를 톡톡 두들겼다.


“이게, 언론에 곧 브리핑 될 사건 개요입니다.”


나유신은 고개를 기울였다.


교사 자살사건.

분명 충격적인 일이긴 하지만, 이게 검찰에서 특별 TF를 만들 일은 아니다.

일단 형사사건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혹시 살인이라는 확실한 반증이 있으면 몰라도.

그렇기에 자살이 벌어지면 경찰이 잠깐 와서 조사만 하고, 의사의 사망 판정으로 끝나는 게 대부분이다.

도대체 이 사건 뒤에 뭐가 있는 걸까?


“그럼, 드러나지 않은 것도 있습니까, 고거경 수사관?”

“있습니다. 이곳 [시한국제중]에서는 교사만 죽은 게 아닙니다.”

“무슨 소리죠, 그게?”


고거경이 히죽 웃으며 PPT를 다음 화면으로 넘겼다.


“교사 자살 전에, 학생들의 연쇄 자살이 있었습니다.”


나유신은 눈을 크게 떴다.

학생 자살현장 사진이 갑자기 드러났다.

아직은 형사 사건이라고 하긴 어렵다.


그럼에도 연쇄 자살은 분명 이상하다.


“무슨 학교가 학생이고 교사고 다 자살해요?”

“그러니까 법무부장관 특별 지시가 내려온 거죠. TF를 구성해서 조사하라고.”

“하지만 애초에 이런 사건은 원래 경찰 소관 아니에요?”


물론 지금은 2010년대, 경찰도, 검찰도 모두 수사권을 가진 시대다.


그러나 검사는 이른바 [중대사건]에 관심을 두는 것도 사실이다.

공직선거, 정부 부패, 경제 사범, 마약, 엄청난 흉악 범죄.

이건 검사의 관심사는 아니다.


학생 자살이든, 교사 자살이든, 혹은 학교에서 [살인]이 벌어졌다 해도.


“그런 식으로 따지면 모든 수사는 경찰 소관이기도 합니다. 검찰이 직접 개입하는 건 보통 중대수사죠. 그런데 이 학교는 중대수사를 할 만합니다.”


그럼에도 고거경은 단호히 말했다.


나유신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이런 얘기, 전생에서도 들었던 기억이 난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건 사고와 다른 이면의 이해관계가 있다는 뜻이다.


누군가 유력자가 이 학교에 엮여 있기라도 한 걸까?


“연쇄 자살사건이 일어나서? 기본적으로 자살은 형사 범죄가 아니잖아요.”

“만약 폭력이 개입되었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무슨 소립니까, 폭력이라니?”


고거경이 PPT 화면을 넘겼다.


“자살시도를 한 학생의 숫자는 총 3명. 그리고 그 중 둘이 죽었고, 하나는 살았죠. 그런데 자살 시도 직전에, [학폭신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학폭 사안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기 전.”


문득 고거경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죽어 버린 거죠, 다들. 연쇄적으로.”


형사사건을 오래 다루다 보면 직업병이 생긴다.


사람이 죽어도 그 자체에 감정을 갖지 않게 되는 거다.

고거경 수사관도 특별히 사람이 나쁘거나 무슨 사이코패스라서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다.

사건을 생명이 죽은 엄청난 일이 아니라, 단순히 [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쩐지 나유신은 씁쓸한 기분을 느꼈다.

다만 수상쩍다는 건 확실히 알겠다.

학폭신고가 이뤄진 후 살인이 벌어졌다.


그럼 최소한 폭행, 상해, 그리고 살인 예비가 엮여 있을 가능성이 발생한다.

물론 중학생이 저질러봐야 얼마나 심하겠냐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화면 위로 떠오른 숫자를 보다 나유신이 물었다.


“이 학폭 고발과, 연쇄자살, 그리고 교사의 자살이 모두 연계가 있다는 겁니까?”

“그건 아무도 모르죠. 아직. 그저 우연일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게 곧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될 거란 겁니다.”

“법무부장관님이 특별히 관심을 둔 이유고 말이죠?”


고거경이 킬킬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검찰 본청에서 특별 TF를 구성하라는 지시가 내려온 이유기도 하죠. 나 검사님.”


그러니까 사건이 아닌 외부가 문제란 얘기다.


교사가 학교에서 죽었다.

그런데 그 교사는 학폭 신고가 일어나고, 그 직후 학생이 자살한 학교의 교사였다.

당연히 언론에서 난리가 날 거고, 여론은 악화될 것이며, 세상이 떠들썩해질 것이다.


그러니 진상조사를 해야 한다.

하지만 누가 진상을 정확히 밝힐 수 있을까?

교육부, 감사원, 혹은 학교 재단?


누구보다 진실의 이면을 밝히는 데 최적화된 집단이 바로 수사기관이다.

그중 정점에 있는 조직이 현재로서는 검찰.

때문에 법무부 장관이 총대를 매고 나선 모양이다.


물론 나유신 입장에선 별로 달갑잖은 사건이지만.

시한부 알림이 뜬 이상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나유신이 미간을 좁히다 물었다.


“TF 구성 멤버는 어떻게 되죠?”


그러자 고거경이 휘파람을 불며 대꾸했다.


“일단, 1차 멤버가 곧 온답니다.”

“누굽니까?”

“가서 보시죠. 지하 주차장에 도착했다던데.”


문득 고거경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었다.


“아시는 얼굴일 겁니다.”


어째, 불안하다.


***


요새 나유신의 불안한 예감은 늘 맞는 편이다.


-탁!


수도중앙지검 지하주차장은 특별한 점이 있다.


정문이 아니라 별도의 통로가 있고, 철제 덧문이 존재한다.

차량이 오갈 때만 문이 열리는데 내부는 아주 캄캄하다.

출입을 하는 피의자나 관계자, 실은 검사가 외부에 드러나지 않기 위해서다.


새카만 통로를 지나, 차가 멈추고 한 사람이 내렸다.

나유신은 내리는 사람을 보다 굳어졌다.

문득 생기 넘치는 [새하얀] 옷차림의 미녀가 내려, 경쾌하게 외쳤다.


“와, 여기가 수도중앙지검이군요? 짐 가져오느라 고생했는데, 좀 도와주세요! 응?”

“뭐야, 네가 왜 여기 와?”

“유신아! 잘 됐다!”


백색 미녀 백희진이 백색 머리 검사 나유신에게 달려와 짐을 내밀었다.


“짐 좀 들어줘.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로스쿨 후배, 검사 동기, 그리고 전생에서 죽음을 막지 못했던 여자.


차석 검사, 백희진이다.

분명 남부지검에 있을 백희진이 왜 이곳에 왔을까?

눈을 깜박이던 나유신이 당황한 채 말했다.


“그러니까, 백희진 네가 왜 여기 왔냐고.”

“아직 못 들었어? 나, 학폭 특별 TF 파견됐잖아.”

“뭐?”


백희진은 키득 웃으며 나유신이 짐을 들게 만들었다.


“드디어 함께 일하게 됐네. 앞으로 잘 부탁해. 사고뭉치 하얀뱀?”


아주 무거운 짐이다.

요새 헬스를 열심히 하며 근력을 키우는 중이긴 하지만, 아직 허약한 나유신에게는 버겁다.

순간, 나유신의 낯이 일그러졌다.


“이런, 망할!”


짐을 떠넘긴 주제에 해맑은 백희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너 나 그렇게 싫어?”

“그런 문제가 아니야!”

“그럼 왜 그러는데?”


물론 짐도 무겁지만 나유신은 다른 점에 꽂혔다.


“이건, 함정일지도, 몰라.”


10년, 전생에서 겪었던 일이 떠올랐으니까.

바로 백희진이 죽었던 사건이.


***


특별 테스크포스, 곧 TF는 임시 사건수사팀을 말한다.


“보통은 대선자금쯤 되어야 만들어지는 건데, 고작 학폭이라니. 쯧!”


아직 [함정]이 발동된 것 같지는 않다.


나유신은 투덜대는 [팀장]을 보다 확신했다.

왜냐면 전생에서 겪었던 10년, 검찰 내부의 함정은 인사로 발동됐기 때문이다.

눈앞, 아주 의욕 없어 보이는 검사는 결코 함정 같은 걸 팔 인사는 아니다.


또한 함정에 빠질 만큼 만만한 사람도 아니고 말이다.

조금 나유신이 안심할 찰나.

불평 많은 TF 팀장이 황량한 임시 사무실 중심에서 외쳤다.


“그래서, 소개부터 하지. 난 유명세다. 다들 알고 있겠지? 검찰이 자랑하는 스타 검사, 재벌가 저승사자, 그리고 차기 중수부장 후보 1순위!”

“풉!”

“뭐야, 어떤 놈이 감히 내 지엄한 말씀 중에 웃음을 터뜨리는 거냐!”


유명세 검사가 눈을 부라릴 찰나, 백색 옷의 미녀가 키득대며 손을 들었다.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그만.”


보통은 눈치 없는 짓이라고 불호령을 들을 일이다.

그러나 묘하게도 백색 옷의 미녀, 백희진을 보면 화를 내다가도 내기 어렵다.

검사로 대성하긴 어렵겠지만, 묘하게 호감을 일으키는 인상이랄까.


그럼에도 유명세 팀장은 콧방귀를 뀌며 애써 으르렁댔다.


“흥, 백찬석 법원장 딸내미라고 내가 봐줄 줄 알아? 너, 내게 찍힌 줄 알아. 하나만 잘못하면 알지?”

“아이, 당연히 알죠. 남부지검 잠깐 계시다 가셨잖아요. 그때도 명성이 자자하셨구요.”

“풋내기 주제에 기억력은 좋군. 다른 부서였는데. 흥.”


칭찬에 약한 검사 유명세가 검사와 수사관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다들 알겠지만, 여기 백희진 검사는 차석으로 들어온 신입이다. 잘 챙겨주도록!”


꼭 놀리는 소리 같지만, 사실 칭찬이다.


어쨌거나 검사도 시험으로 등용되는 자들.

아직 수사실적을 판가름할 수 없는 신입 시기에는 당연히 성적이 사람의 인상을 좌우한다.

그러니 유명세는 자기 방식대로 백희진을 띄워준 셈이다.


다른 검사 2명이 감탄할 찰나, 백희진이 나유신을 가리켰다.


“저기 수석도 있는데요?”

“뭐, 백사? 저놈은 그냥 사고뭉치지.”

“아니, 그래도, 유신이, 아니 나 검사가 사건 해결한 게 벌써.”


그러나 유명세는 나유신을 이미 아는지, 비웃음을 머금은 채 대꾸했다.


“이런 놈이 이 TF에 온 것만 봐도, 장관이 제정신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지. 아니면 이 사건이 실은 중요하지 않은 사건이든가!”


유명세, 본인 말대로 스타 검사다.


사실 중수부장 후보 1순위라는 건 본인의 ‘개뻥’이다.

허나 이슈메이킹에 강하고 언론 플레이에도 능숙하며 재벌 범죄를 시끄럽게 잡아 [유명]해진 검사다.

특히 시끄럽다는 점이 윗선에 찍혀서 내부에서는 사고검사로 불린다.


나유신에게 사고뭉치니 어쩌니 떠들 신세가 아닌 셈이랄까.

물론 나유신처럼 검사를 공격하는 일은 없었지만.

전생에서 딱히 접점은 없었지만 유명한만큼 어떤 사람인지는 안다.


나유신이 가볍게 백발을 숙였다.


“주의하겠습니다.”

“자, 말 꺼낸 김에 저놈 소개하지. 우리 내부의 적! 절대로 주의해야 할 놈이야. 백사 나유신, 다들 알지?”

“그 정도는 아닙니다만.”


그러자 유명세가 나유신을 보며 다시 코웃음을 쳤다.


“부임하자마자 부장부터 잡아먹은 뱀새끼를 곱게 볼 검사는 아무도 없어! 명심해, 네가 검찰에 얼마나 붙어 있을진 몰라도, 회사 생활 내내 다들 주시할 테니!”


검찰은 딱히 회사가 아니지만, 검사들은 자주 자기네 조직을 회사라 부른다.


조직이라고 부르면 폭력조직이 생각나는 탓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정말 회사였다면 나유신은 1순위 해고감인 것은 사실이긴 하다.

그렇지만 이렇게 대놓고 앞에서 말하는 상관은 또 간만이다.


나유신이 쓴웃음을 머금을 찰나, 건장한 남자 검사가 불쑥 끼어들었다.


“제 소개는 제가 하죠. 부산지검 특수부에서 왔습니다. 박달한입니다.”


다들 수도지검에서 차출됐다더니 부산에서 온 사람도 있었던 모양이다.

또한 특수부는 수도중앙지검에만 있는 게 아니고, 중요 도시에도 있다.

한데 부산에서 말하는 특수사건은 서울과는 좀 다르다.


유명세가 자못 감탄하며 그 점을 지적했다.


“오, 자네 조폭 수사 전문 아냐? 거, 야쿠자 연계 폭력조직 하나 박살냈잖아.”

“별거 아닙니다. 게다가 언론에 나오는 최고 조폭 일성회 놈들은 잡지도 못했죠.”

“그놈들이야 원체 꼬리 자르기에 능하니 어쩔 수 없지. 인재가 왔군. 흐흐.”


백희진이나 나유신과 달리 유명세는 박달한은 인정하는 모양이었다.

하긴 실적으로 직접 보여준 게 있는 검사니 당연한 얘기다.

마지막 검사, 구석에 앉아 있던 여자 검사가 머뭇거리며 입술을 뗐다.


“어, 저, 저는.”

“내가 소개하리? 백사 취급 받고 싶나? 말더듬지 말고 똑바로 말해!”

“아, 아, 아닙니다. 마주선이라고 합니다. 버, 범죄정보실에서 근무하다, 왔습니다.”


범죄정보실.


나유신이 장사성 고검장에게 스카웃 제의를 받았던 바로 그곳이다.

이름과 달리 범죄정보만 수집하는 게 아니라, 중대 사안에 대한 정보를 모두 수집해 분석하는 부서.

그러니까 마주선은 기획 정보통에서 키우고 있는 인재란 얘기다.


겉보기에는 그냥 수줍음 많은 검사처럼 보이지만.

그런데 소개를 들은 순간, 나유신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게 뭔지 생각할 때 유명세가 말했다.


“자, 그러니까 우리 [시한국제중] 특별 사건 담당 TF는 이렇단 말이지. 부장 잡아먹는 뱀 새끼, 판사 딸내미, 조폭 저승사자, 정보관, 그리고, 나. 스타검사 유명세.”


나유신이 어깨를 으쓱였다.


“대단한 면면이군요.”

“야, 이 뱀대가리야.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여기 단 하나라도 여성청소년부 출신 검사 있나?”

“예?”


나유신이 눈썹을 치뜰 찰나, 유명세가 이죽댔다.


“학폭 전문가가 단 하나도 없어! 한 마디로 언론에 보여주기식으로 만든 수사팀이란 말이야. 시작부터 아주 망조로군!”


바로 이게 나유신도 생각한 문제다.


처음 백희진이 온다고 했을 때 함정이라고 생각했던 이유기도 하다.

일단 신입인 나유신이나 백희진은 둘째 치더라도, 다른 선배들도 학폭 전문가가 없다.

한데 나유신은 서수휘가 벼르고 있고, 백희진도 서수휘의 감시 범위 안에 있었다.


그러나 유명세를 보낸 걸 보면 제대로 수사하려는 모양이라 생각했다.

정작 유명세 본인이 한탄하고 있긴 했지만.

그런데 박달한이 슬쩍 손을 들었다.


“저, 초년 때 여성청소년부 지나쳤습니다만.”


건장한 체구와 안 어울리는 소개에 유명세가 입맛을 다시다 윽박질렀다.


“하여간! 전문가는 아니잖아! 설마 학폭 잘 알아? 해봤어?”

“음, 완전 소년원 보낼 애들만 처리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그러니까 하는 말이야!”


문득 유명세가 사건 파일을 가리켰다.


“국제중이 뭐 하는 곳인지 알지? 돈 많고, 특목고나 유학 준비 중인 애들이 가는 곳이야. 거기 애들은 다들 모, 범, 생이라고. 이런 놈들이 학폭에 연루됐다?”


일순, 유명세는 이를 드러내며 소리쳤다.


“보나마나 뻔해. 뒤에 배경이 있어. 이건, 못 밝혀!”


역시 이면의 이해관계가 있다는 얘기다.


***


국제중, 비평준화 학교의 하나로 [영어교육]과 [유학]에 특화된 학교다.


“유명세 팀장님 말씀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닐 거야.”


검사는 기본적으로 서류로 일한다.


나유신처럼 발로 뛰는 게 이상한 일이다.

백희진은 차석, 실은 나유신이 없었다면 수석이었을 모범생답게 자료를 잘 정리해왔다.

또한 분석도 이미 끝낸 듯, 차분히 설명하는 중이다.


나유신이 백희진 앞에 앉아 볼멘소리로 대꾸했다.


“뭐, 내가 뱀대가리라는 거?”

“풉! 차라리 그랬음 좋겠네. 사고는 덜 칠 테니까.”

“너까지 왜 이러냐? 아직도 내가 너 이용한 거 마음에 품었냐?”


그러자 백희진이 나유신을 보며 웃었다.


“당연하지. 너 죽을 때까지 나한테 갚아야 할 건데?”


순간, 나유신은 백희진의 이마에서 색을 보았다.


진홍색.

이건, 어떤 의미일까?

지금까지 분홍색과 청색, 보라색을 보았던 나유신이 고개를 갸웃거리다 미간을 찡그렸다.


정말 백희진이 죽었던 모습이 떠올랐으니까.


“죽는다는 말 그렇게 쉽게 하는 거 아니다.”

“됐거든? 농담도 못 하나. 하여간, 죽은 교사부터 보자구. 고미래 선생님. 3년 차 교사, 나이 25세, 시한국제중이 첫 사회생활이야.”

“사회초년생이 업무 부담을 못 이겨 죽는 건, 흔히 있는 일 아닌가?”


나유신은 냉정하게 대꾸했다.


물론 사람이 죽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그렇지만 형사사건을 다루는 검사들에게 살인은 그저 서류상 일일 뿐.

게다가 자살은 애초에 형사사건도 아니지 않는가?


비록 고거경이 연관 관계가 있다고 했지만, 그건 수사 전 [예단]일 뿐이다.

그것도 나유신처럼 황금문자의 판정이 주어진 것도 아니다.

이 당연한 의문을 백희진은 가볍게 서류로 반박했다.


“그렇지만, 여긴 국제중이라구. 연봉은 일반 교사의 3배고, 노후 보장도 해줘. 나중에 유학 연수도 시켜주고. 1년의 어려움 정도는 참을 수도 있단 말야.”


물론 자살하는 사람은 그 1년을 견디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다만 이 정도의 사회적 보장이 있는데도 자살했다면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서류 뒤를 보다 나유신이 물었다..


“집안 형편, 가정 문제, 혹은, 연애 관계는?”

“흐응, 초기 수사 맡은 수도 남부 경찰서에서 할만한 말이네. 경찰에서 온 수사보고서에 따르면, 딱히 발견된 건 없어. 남친이랑 헤어진 건 있네. 비관할 정도는 아닌 거 같고.”

“연애 비관으로 자살하는 경우도 많잖아.”


백희진이 생긋 웃다 서류를 뒤집었다.


“그럼, 다음 사실관계를 보자구.”


역시, 백희진도 아직 서류로만 사건을 본다.

사실 그동안 남부지검에서 금융수사만 했으니 당연할지 모른다.

과연, 온실 속의 화초나 마찬가지인 백희진이 실제 사건과 마주해도 괜찮을까?


이래저래 나유신이 걱정일 때 백희진이 다음 서류를 내밀었다.


-틱!


아주 잘 정리된 사건파일이 눈에 들어온다.


“1월, 2학년 진학 전, 방학 기간에 학생 하나가 죽었어. 이게 시작이지. 이름은 장예준, 이때까지만 해도 그냥 단순 자살로 보였지.”


고거경 수사관이 사전 설명한 학생 연쇄 자살 건이다.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나?”

“글쎄? 다음, 2월, 또 다른 학생이 봄의 예비 준비기간에 학교에서 자살했어. 이름은 신유건. 장예준과 1학년 때 동급생이었지.”

“공통 원인이 있다?”


장예준과 신유건.


하나만 자살했다면 그저 성적이나 학교생활 비관일 수 있다.

그러나 둘이 죽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런데 이 사건은 외부에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여기서부터 고미래 선생과 엮이는 문제야. 고미래 선생이 맡은 반은 2학년 4반. 3월, 이연준 학생 자살 시도. 죽지는 않았지만 의식 불명이래. 하지만 이전 사건과 공통점이 있었어.”

“뭔데?”

“장예준, 신유건과 같은 [클럽]이었다는 거야. 다만 다른 점도 있었지.”


이연준의 사진을 보여주며 백희진이 눈을 빛냈다.


“장예준, 신유건과 달리 이연준 학생은 [학폭신고]를 했어.”

“응? 우리 수사관이 말하기로는 앞서 두 학생도 학폭 신고를.”

“정식으로 들어온 게 아니야. 두 학생은 학생부장 선생님에게만 말했어. 학폭위가 열리기 전에 취소되었고.”


마지막 사진, 고미래를 백희진이 가리켰다.


“그리고, 고미래 선생이 죽었어.”


학생 셋이 죽었다.

그 학생들은 동일한 [클럽] 멤버다.

이후, 2명의 학생을 맡았던 담임 고미래가 자살했다.


“이 사건들이 과연 연관성이 없을까? 난 있다고 봐.”

“예단이군.”

“너야말로 예단 좋아하잖아. 어때?”


나유신은 뚫어져라 사진을 보았다.

물론, 황금문자가 판정했으니 관계는 있을 테니까.


***


시한국제중 부장교사, 한인화는 단호했다.


“협조할 수 없습니다.”


학생부장실에서 나유신이 미간을 좁혔다.


“뭡니까, 영장 받아오란 얘기입니까?”

“그렇게 하시죠. 하지만 영장은 안 나올 겁니다.”

“어째서 그렇게 확신하시죠?”


한인화는 뚫어져라 나유신을 보다 대꾸했다.


“우리 중학교가 어떤 곳인지 모르시는군요. 전직 검찰총장님, 현직 대법관님, 그리고 재벌총수의 자제들도 함께 다니는 곳입니다. 압수수색 영장은 거부될 겁니다.”


이게 바로 유명세가 말한 바다.


“아주 재미있군요.”


나유신은 피식 웃었다.

아무래도 깽판을 칠 시간인 모양이다.


작가의말

* 토요일은 하루 쉬어갑니다. 일요일에 뵙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5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신입검사는 거물이 되기로 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임시) 제목 변경(검찰청 망나니->신입검사 거물) 24.09.02 315 0 -
공지 연재시간(오후 10시, 주6일) 24.05.08 17,919 0 -
59 (58) 재벌가 상속녀도 보이스피싱을 당한다 NEW +11 14시간 전 2,345 53 9쪽
58 (57) 전시안 보유 시한부 인생은 무서울 게 없다 +10 24.09.17 3,633 84 29쪽
57 (56) 새로운 검찰총장이 백발공적을 보호한다 +10 24.09.12 4,834 107 30쪽
56 (55) 총장의 자백으로 3조 폰지 사기를 부수다 +22 24.09.09 5,141 130 28쪽
55 (54) XBC 폭로로 현직 총장 사모를 붙잡다 +18 24.09.07 5,119 121 28쪽
54 (53) 황금금강석 멤버들은 그린벨트에 3조를 투자한다 +12 24.09.04 5,448 108 28쪽
53 (52) 총장 사모님이 피라미드 거물이다 +20 24.08.30 5,786 114 28쪽
52 (51) 3조짜리 피라미드 조직을 잡아보자 +18 24.08.29 5,959 125 29쪽
51 (50) 나유신이 첫 휴가지에서 상속녀를 보다 +26 24.08.24 6,587 139 31쪽
50 (49) 초보형 전시안으로 사채왕을 발견하다 +15 24.08.22 6,535 153 30쪽
49 (48) 회장 등극식에서 대법관을 이용해 진범을 잡다 +19 24.08.20 6,660 163 21쪽
48 (47) 재벌 회장이 되게 해주세요 +25 24.08.18 6,752 154 34쪽
47 (46) 특수부 폭력이 조폭 진범보다 위다 +20 24.08.14 6,952 167 34쪽
46 (45) 강앤함과 월야 재벌가의 동상이몽을 털어라 +12 24.08.12 7,103 154 24쪽
45 (44) 월야그룹 살인사건을 만나다 +12 24.08.08 7,752 151 25쪽
44 (43) 나유신의 팀을 수도대 동문회에서 완성하다 +14 24.08.06 8,144 166 35쪽
43 (42) 백사여, 노담에서 다시 시작해라 +20 24.08.02 8,276 176 29쪽
42 (41) 시한부 연장권과 함께 중수부가 폐지되다 +20 24.07.31 8,108 193 20쪽
41 (40) 백발이가 사채왕을 잡다 +27 24.07.30 8,031 194 21쪽
40 (39) 이렇게 된 이상 선제 폭로로 중수부를 친다 +14 24.07.28 7,969 194 19쪽
39 (38) 진짜는 미래살인 배후 사채왕이다 +16 24.07.26 7,969 188 21쪽
38 (37) 금수저 비밀 정보로 스캔들 범인부터 잡다 +19 24.07.24 8,006 184 32쪽
37 (36) 이건 중수부의 운명이 걸린 사건이다 +14 24.07.19 8,127 178 30쪽
36 (35) 위치 추적 보상과 함께 서울시장 스캔들을 만나다 +22 24.07.17 8,422 186 23쪽
35 (34) 진짜 마약범을 잡고 금수저 변호사와 손잡다 +27 24.07.15 8,367 195 22쪽
34 (33) 골드스컬 클럽을 함정으로 일망타진하다 +17 24.07.14 8,306 190 23쪽
33 (32) 조기유학 금수저 학폭이 사건 진상이다 +16 24.07.10 8,383 182 23쪽
32 (31) 철벽의 성을 대규모 교사 시위로 넘어볼까 +13 24.07.08 8,321 187 22쪽
» (30) 학교폭력 연쇄 자살사건이 터졌다 +15 24.07.05 8,709 182 22쪽
30 (29) 한국 재계를 뒤엎을 진짜 거물을 만나다 +21 24.07.03 9,008 194 24쪽
29 (28) 노동 살해 협박으로 진범을 잡다 +16 24.07.01 8,855 201 22쪽
28 (27) 솔라코인 전관 법무팀의 방어를 뚫어라 +15 24.06.27 9,043 196 21쪽
27 (26) 특수부 첫 사건은 1조원 분식회계다 +17 24.06.26 9,385 198 22쪽
26 (25) 중수부장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받다 +15 24.06.24 9,589 201 35쪽
25 (24) 백발이를 죽인 자에게 진짜 복수를 해보자 +16 24.06.19 9,315 198 34쪽
24 (23) 백사가 또 검사를 잡았다 +22 24.06.18 9,397 200 22쪽
23 (22) 특수부식 예단수사로 마약통관범을 잡아라 +11 24.06.15 9,441 197 23쪽
22 (21) 이 나라에는 마약도 너무 많다 +17 24.06.13 10,215 210 24쪽
21 (20) 첫 기자회견과 함께 위수증 5백억 코인이 남다 +19 24.06.07 10,211 224 36쪽
20 (19) 5초 예지로 폭발 속 범인을 잡다 +14 24.06.06 10,104 221 24쪽
19 (18) 감옥에 보낼 놈은 내가 고른다 +14 24.06.04 10,091 218 18쪽
18 (17) 1천억 비트코인 사건을 5초 예지로 파헤치자 +14 24.05.31 11,100 219 31쪽
17 (16) 나를 건드리면 검찰총장 예정자도 가만 안 둔다 +25 24.05.29 10,979 233 26쪽
16 (15) 독사를 건드리면 제왕도 문다 +20 24.05.27 11,055 237 30쪽
15 (14) 공판부 땜방으로 백발검사를 보내라 +10 24.05.24 11,550 223 30쪽
14 (13) 언론비리 일망타진으로 신체감정 보상을 받다 +11 24.05.23 12,155 230 31쪽
13 (12) 특활비 별건수사로 무전취식 기자를 잡자 +12 24.05.21 12,245 237 21쪽
12 (11) 사고뭉치에게는 법카부터 먹여줘라 +13 24.05.20 13,451 243 21쪽
11 (10) 나유신이 주가조작 일당을 함정수사로 잡았다 +17 24.05.20 13,516 262 21쪽
10 (9) 오풍제지 그래핀 사기를 경찰공조로 잡는다 +16 24.05.18 14,348 257 25쪽
9 (8) 정오판정으로 오풍제지 주가조작을 발견하다 +16 24.05.17 14,706 276 15쪽
8 (7) 선배가 장애물이면 부수고 해결한다 +15 24.05.14 15,099 280 22쪽
7 (6) 상태창의 보상은 놓칠 수 없다 +23 24.05.12 15,957 296 27쪽
6 (5) 의원 하나 잡고 시작하자 +20 24.05.11 15,732 290 14쪽
5 (4) 신입 수석검사가 꼴통이래 +15 24.05.10 16,983 307 15쪽
4 (3) 범인을 잡으니 시한부 연장 +16 24.05.09 18,129 292 11쪽
3 (2) 우선 범인부터 잡고 죽자 +17 24.05.08 19,693 312 13쪽
2 (1) 백발 신입검사 나유신 +25 24.05.08 22,926 354 11쪽
1 프롤로그 : 시한부 상태창이 생겼다 +42 24.05.08 30,119 416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