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검사는 거물이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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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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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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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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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4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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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선배가 장애물이면 부수고 해결한다

DUMMY

물론 본청, 그러니까 대검찰청에서 그냥 움직인 것은 아니다.


“갑자기 찾아와서, 뭐? 직속 부장을 고발하겠다고?”


5일 전, 목숨이 경각에 달린 나유신은 정말 이판사판으로 뛰었다.


어쨌든 유철우 검사를 만나러 왔으니까.

유철우 검사는 법무연수원 교수 출신이다.

원래는 법무연수원 교수는 잘 나가는 검사가 잠시 쉬어갈 자리다.


주시평이 그랬듯이.

그런데 주시평을 잡아 처넣은 순간부터 유철우는 윗선에 찍혔다.

하여 유철우는 현재 대기발령 상태로 대검찰청에 와 있다.


본청에 왔으니 좋아 보이지만, 실은 자칫 쫓겨날 위기다.

이 위기를 유발한 장본인이 바로 나유신.

한데 뻔뻔하게도 더욱 엄청난 사안을 갖고 찾아온 셈이다.


유철우가 어이가 없어 되묻자, 나유신이 태연히 끄덕였다.


“예.”

“그럼 지청 감사실로 가든가, 대검 감찰부로 연락하든가, 아니면 자네가 직접 수사해야지.”

“증거는 있습니다. 유태우 교수님.”


나유신은 유철우를 정시하며 말했다.


“다만, 대검을 움직여주실 분이 필요합니다.”


원래 나유신은 사람 눈을 잘 보는 성격이 아니다.


그러나 죽었다 살아난 후에는 서슴없이 보고 있다.

어차피 목숨을 잃는 것보다 무서울 것도 없다.

게다가 정오판정 능력을 발휘하려면, 사실 더욱 쏘아봐야 하는 것 같기도 해서다.


물론 쏘임을 당하는 상대방, 유태우에게는 불편하기 그지없는 시선이다.


“이봐, 나 검사. 데뷔 때 검사 하나 날렸으면 됐잖아? 또 이래?”

“범죄가 있으면 수사하는 게 검사라면서요? 교수님?”

“나, 이제 연수원 교수 아니거든? 그리고, 세상 모든 불의와 무턱대고 싸우란 얘긴 아니었어!”


그때 나유신이 묘한 얘기를 던졌다.


“엄상전 의원이 걸린 건입니다.”


그 말에 꺼지라고 손짓하던 유태우의 손이 멈췄다.


“노담시 3선 의원?”

“아십니까?”

“알기야 알지. 여당일 때는 마당발로, 야당일 때는 수완가로. 엄청난 권력자는 아니지만 엄청난 이권이 있을 때는 빠지지 않는 이름이지.”


정작 10년 후의 인생을 살아본 나유신은 잘 모르는 이름이다.

아마 사람들이 잘 모르는 배후에서 움직였던 인물이 아닐까?

다만 노담시 광역철도역 비리 사건만은 유명하다.


왜냐하면 이 사건이 향후 [게이트]로 번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유신은 지금 게이트가 되기 직전의 사건을 파고 있는 셈이다.

심호흡을 하던 나유신이 다시 말했다.


“그 작자가 걸린 살인사건이 있습니다.”


비리, 돈이 걸린 사건이다.

의원, 정치적 사건이다.

허나 살인이라면?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그때서야 유철우는 나유신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었다.

한참, 나유신의 설명을 들은 유철우가 불쑥 물었다.


“사촌을 죽인 거 같다? 증거는?”

“없습니다.”

“이봐, 나검! 작작 좀!”


유철우가 벌컥 화를 내려는 찰나, 나유신이 재빨리 첨언했다.


“하지만 노담역 광역급행철도역을 선정할 때,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증거는 있습니다. 제가 오기 전, 이미 수사가 되어 있더군요.”


그렇다면 검사가 수사할 가치가 생긴다.


“이건 좀 얘기가 달라지겠군. 그런데?”“부당 압력행사, 그러니까 [직권남용죄]와 [수뢰죄] 수사를 이충우 부장이 막고 있습니다.”

“부장을 날리고 엄상전을 잡겠다?”


유철우가 눈을 가늘게 떴다.


“너 같은 놈을 검찰에서 뭐라고 하는지 아냐?”


나유신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글쎄요, 꼴통?”

“아니, 독사. 주인도 못 알아보고 무는 놈이라고.”

“그거 마음에 드는군요.”


순간, 나유신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전 주인 같은 거 없거든요.”


예전 같으면 감히 하지 못했을 말이다.


아니, 애초에 유철우 같은 무시무시한 검사 앞에서 한 마디 말도 꺼내지 못했을 것이다.

허나 죽고 나서는 그런 두려움 같은 건 없다.

비록 강철검사니 어쩌니 해 봤자, [트럭살인마]보다 무서울 리가.


유철우가 어이없다는 듯 웃다 물었다.


“좋아, 백발독사 양반. 내가 어떻게 해주면 되지?”


나유신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대검 감찰부에 실명으로 넣겠습니다. 이 고발. 그 다음을 부탁드립니다.”


유철우의 마음이 [진심]으로 판정이 떴으니까.


***


부장을 날리면 지청장은 어떻게 될까?


“미, 미, 미친 놈! 자기, 부, 부, 부장을 잡아? 어떻게 우리 지청에서 이런 일이!”


답은 게거품을 물다 쓰러진다는 거다.

지청장 강유중이 외치는 소리가 비명처럼 지청 전체를 뒤흔든다.

당연하게도 아무도 굳이 지청장실로 가지는 않았다.


당사자, 형사 제3부 검사 염민아와 채승배가 서로 돌아보았다.


“한동안 지청장은 패닉이시겠군.”

“와, 백발이 정말 장난 아니네요. 잠깐, 그런데 이거 이제 막 온 백발이가 알 수가 있나?”

“글쎄.”


문득 염민아가 자기 의자에 누워 있는 수염남을 힐끗 보며 웃었다.


“누가 도와주면 가능하지? 수염 기르고 신선 노릇하는 분이라든가.”


그러자 신선 노릇하고 있던 수염검사, 신수겸이 힐끗 염민아를 보았다.


“염민아, 너 요새 선배 대하는 게 많이 건방져졌다?”

“내가 뭐랬어요? 나 선배 이름 말한 적 없는데.”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난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사람이야. 절대로 선배 치는 일은 없다고.”


그러자 염민아는 키득 웃으며 돌아섰다.


“누가 뭐래요? 난 치는 게 더 마음에 드는데.”


어쩐지 위험한 말에 신수겸이 뜨악한 얼굴이 될 찰나.


-벌컥!


더 위험한 남자, 백발 검사가 들어섰다.


“받아왔습니다. 부장대행 결재.”


아무래도 지청장이 비명을 지른 이유는 따로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백발검사 나유신이 이 결재를 받으러 갔기 때문이다.

현직 부장 유고.

제3부의 상황이다.


그러니 대행자가 필요한데, 신수겸을 대행자로 정하는 절차를 반강제로 받아온 모양이다.

당연히 지청장은 싫었겠지만 부장을 날려버린 나유신이 무서웠을 게 뻔하다.

아무리 검사라도 광인을 상대할 수야 없는 일 아닌가?


채승배는 아주 떨떠름한 눈으로 ‘광인’ 백발 검사를 보았다.


“어, 백발아. 아니, 나프로. 그래서 이거 가지고 뭘 하려고?”

“채승배 선배님이 하지 않는 일이죠.”

“뭔데, 그게?”


백발검사 나유신이 신수겸 앞에 성큼 다가섰다.


“결재해 주십시오. 엄상전 의원 소환통지서.”


신수겸은 의자를 뒤로 밀며 팔짱을 꼈다.


나유신이 얼마나 막 나가는지 똑똑히 보았다.

일반 회사라도 직속 부장을 날려 버렸다는 건, 엄청난 일이다.

하물며 상명하복이 기본인 검찰에서는 자기 미래를 부쉈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신수겸도 언제든 날려버릴 수도 있는 위험한 자다.

허나 신수겸은 흥미로운 웃음을 머금었다.

자신이 못한 일을 서슴없이 해내는 이 미친 후배.


어쩐지 마음에 든다.


“응하지 않을 건데.”상관없습니다. 명분 쌓기니까.“

”법원에서 구속영장이든 체포영장이든 안 나온다. 그건 알고 하는 말이지?“


그러자 염민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끼어들었다.


“맞아. 나프로는 이제 여기 막 와서 모르겠지만, 여긴 의외로 단단히 결합 된 곳이야. 신도시라곤 하지만 벌써 만들어진 지 20년도 넘었고.”

“대충 무슨 소리인지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소환통지에 응하지 않아야, 그 다음 수순을 밟을 수 있죠.”

“대체 뭘 하려는 거지? 범인을 너무 단정지으면서 하는데, 수사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신도시, 이름만 들으면 모든 게 새 것인 장소처럼 들리기 쉽다.


하지만 한국에서 신도시라는 게 처음 만들어진 것은 이미 1990년대다.

노담시도 신도시 개발 계획에 따라 만들어진 지 20년이 넘었다.

그쯤 되며 신도시든 뭐든 기득권이란 게 생긴다.


도시의 이권을 쥔 자들이 서로 엮여서 결탁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건 검찰이나 정치권, 개발업자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법원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나유신은 눈을 빛내며 확언했다.


“제 예단은 맞습니다. 그리고, 엄상전 의원이 부패했다면 그 아랫사람들도 부패했을 겁니다. 백프로.”


그러니까 이런 얘기다.

장수를 공격하고 싶다면 그 말을 쏴라.

의원을 공격하고 싶다?


그 아랫사람을 노려라.


***


노담시, 엄상전 의원실은 단연 서구 중심가에 있다.


“아놔, 갑자기 검찰에서 들쑤시고 난리야. 빌어먹을.”


국회의원실은 의원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일종의 중소기업과 흡사하다.


보좌관, 비서관, 비서들이 하나의 팀을 이루어 운영된다.

그중 대다수는 여의도 의원회관에 근무하지만, 지역구에도 사무실은 있기 마련.

이 사무실을 책임지는 보좌관은 보통 사무장으로 불린다.


엄상전 의원실 사무장, 하춘보는 소환통지서를 내던지며 일어났다.


“사무장님, 이제 퇴근 하십니까?”

“응, 장부 정리 이제야 끝났거든. 문단속 잘하고, 요새 분위기 안 좋으니까 조심해.”

“에이, 저희가 뭘 아나요. 걱정마십쇼. 게다가 감히 우리 의원님 건드리겠어요?”


비서들이 웃으며 말하자 하춘보가 껄껄 웃으며 사무실을 나섰다.


“그래. 풋내기 따위가 우리 의원님을 건드릴 수야 없지. 응?”


그런데 골목길로 나섰을 때 갑자기 서치라이트가 하춘보 앞을 가로막았다.


-쩡!


빛에 눈이 부셔 하춘보가 눈을 질끈 감은 순간.

갑자기 뒤에서 수갑을 채우는 소리가 들렸다.

하춘보가 깜짝 놀라 돌아보자 웬 점퍼 차림의 남자와 양복쟁이가 있다.


“뭐, 뭐야! 너희 누구야!”

“하춘보 씨? 엄상현 의원실 지역구 사무장, 맞습니까?”

“마, 맞는데? 내가 누군지 알면서 날 붙잡아? 너희 뭐야!”


양복쟁이, 백발 검사 나유신이 차갑게 말했다.


“검찰입니다. 당신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아, 이거 우리 검찰도 해야 하나?”

“해야 합니다. 아니면 나중에 독수독과론에 따라 진술 증거가 채택이 안 돼요.”

“아, 그렇죠. 당신이 한 발언은 재판에서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구요. 변호인을 선임할 권리가 있습니다. 돈이 없으면 국선변호인 선임하시든가.”


하춘보도 정치권에서 구른 지 10년이다.

이 작자들이 누군지 금방 깨달았다.

아무래도 요새 노담역 개발 사업을 들쑤시고 다닌다는 그 신출내기 검사인 모양이다.


“너, 새로 왔다는 검사 놈이구나! 인사도 안 오더니, 감히 날 붙잡아? 넌 이걸로 끝장이야!”

“글쎄, 하춘보 씨, 당신 정말 인생 끝장나고 싶나?”

“거, 검사가 협박까지 해?”


하춘보가 으르렁대려던 찰나, 나유신이 얼굴을 바싹 들이댔다.


“이봐. 검사가 의원은 못 죽여도, 의원 보좌관 따위는 그냥 죽일 수 있어. 일단 당신 사돈의 팔촌까지 털 필요도 없지. 엄하전 씨 기억하지?”


하춘보는 눈을 크게 떴다.


지금, 이 검사가 어디까지 아는 걸까?

분명 아무 증거도 없는데 을러대는 게 분명하다.

허나 갑자기 불시에 체포와 기습 조사를 당하면 누구든 당황하기 마련이다.


“아니, 그걸 왜.”

“살인사건이란 증거가 있어. 그런데, 그 살인범, 당신으로 몰 수도 있단 말이야.”

“뭐, 뭐, 뭐라고?”


새하얀 백발의 나유신이 독사처럼 무시무시한 말을 쏘았다.


“검사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보여줘? 아니면, 닥치고 순순히 와서 진술할래? 어쩔 거야?”


하춘보는 결국 검찰청으로 순순히 끌려가고 말았다.

영장 하나도 없는 채로.


***


자백은 사실 증명이 까다롭다.


“그러니까 이렇게 된 거죠? 엄상전 의원이 사촌, 엄하전을 철도역 결정위원회에 집어 넣었고, 그게 신수겸 검사에게 알려졌고, 다시 이충우 부장검사를 통해 무마시켰다.”


일단 오랫동안 피의자의 범죄인정, 곧 자백은 고문과 강압으로 탄생했다.


물론 이유는 있다.

범죄자들은 인권을 인정해 줄 이유가 없다는 게 옛 시대 정서였으니까.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억울한 범죄자들이 양산되었다는 게 드러났다.


이후 자백에는 수많은 제한이 생겼다.


“예, 그렇습니다.”


폭행이나 구속, 강압으로 받아내면 안 된다.

또한 이른바 형량거래로 받아내는 것도 위법이다.

무엇보다도 [보강증거] 없이는 자백은 아무런 증거능력이 없다.


하지만 노담지청 형사 제3부 조사실에서는 아주 ‘부드러운’ 조사가 이루어지는 중이다.


“그, 그리고 이것도 마, 맞습니다.”

“여기, 신수겸 검사가 그동안 조사했던 증거가 있고.”

“그것도 맞습니다. 엄하전 씨에게 연락했던 것도, 그리고 엄하전 씨의 동료 회계사였던 이승경 씨를 협박한 것도.”


하춘보 사무장은 술술 털어놓는 중이다.


사실 여의도에서 오랜 경험을 지닌 의원 보좌관들도 검찰 수사에는 취약하다.

혹시 경험이 있다면 모를까.

일단 조사실 자체가 사면이 막혀 있는 밀실인 데다, 공기도 답답하고, 분위기는 그 자체로 강압적이다.


게다가 사실 하춘보에 대한 [강압]은 이미 CCTV가 있는 조사실에 오기 전 이뤄졌다.

애초에 신수겸과 민혁기가 대부분 조사를 해놓았다는 게 결정적이었다.

최소한 뇌물 수뢰죄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문득 조사실 밖에서 반투명 유리, [매직미러]로 보던 신수겸이 이를 갈았다.


“빌어먹을, 그래서 이승경이 자살했던 거군. 어쩐지!”


바로 나유신이 지내던 창고방, 그곳에서 투신자살한 용의자다.


이승경, 염하전의 동료 회계사.

나아가 노담역 부지 선정 과정에 비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던 자.

그런데 검찰이 소환조사를 하자 염상전 측에서 협박을 가한 것이다.


그 협박을 너무 과도하게 두려워한 나머지, 이승경이 자살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나유신이 하춘보를 정시하며 물었다.


“그럼, 엄하전 씨가 죽은 경위는 어떻게 되죠?”


하춘보가 눈을 깜박였다.


“예? 어, 이미 아신다고.”

“아니, 지금 진술하는 중이잖아요. 뇌물죄 공범이 아니라 살인죄 공범이 되기 싫으면 제대로 진술하라구요.”

“그, 그렇군요. 저, 전 일단 사전에는 정말 몰랐습니다. 나중에 듣고 보니.”


나유신의 압박에 하춘보는 부들부들 떨다 답했다.


“그게, 의원님이 협박을 받으셨답니다. 오히려. 염하전 씨에게.”


나유신의 눈앞에 황금문자가 떠오른다.


진실.

정오판정의 결과다.

사실 나유신은 실제 사실관계나 살인과정에 대해 하나도 모른다.


그렇지만 정오판정의 능력이 있다면 가능한 게 있다.

상대의 진술에서 진실과 거짓을 판정해 압박하는 거다.

하춘보는 여기에 걸려들어 결국 모두 털어놓게 된 것이다.


나유신이 하춘보를 빤히 보다 물었다.


“그래서 자살을 위장해 죽였다?”

“예.”

“증거가 있습니까? 이건 그냥 전언일 뿐인데?”


여기서부터 검찰의 문제다.


사람이 분명 죽었다.

그런데 죽을 당시에는 살인 수사를 하지 않았다.

이제와 살인 혐의를 확증하려면 뭔가, 다른 증거가 필요하다.


사실 나유신도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다.

혹시 증거가 없다면 단서라도 있지 않을까?

만약 정 안 되면 의원실 비서들 전부를 별건 혐의로 소환조사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하춘보가 불쑥 말했다.


“의원님은 비밀을 싫어하십니다.”


뭔가 이상해 나유신이 눈썹을 치떴다.


“그게 무슨 소리죠?”

“비서들이 자기 몰래 뭔가를 하는 걸 안 좋아하십니다. 아주 강박적이시죠. 그래서.”

“감시한다?”


한참, 입을 다물고 있던 하춘보가 털어놓았다.


“예. 그래서······.”


진술을 받아낸 순간, 나유신이 조사실 밖으로 뛰쳐나왔다.

기다리고 있던 신수겸도 흥분한 얼굴이다.

증거가 손에 잡히기 직전이다.


“됐어. 압수수색 영장 밟아.”

“부장대행 선배. 그거 가지고 되겠어요?”

“무슨 소리냐? 아니, 영장 없이 입수한 증거는 법정에서 못 쓴다고.”


하지만 나유신은 고개를 저었다.


이 노담시는 기득권이 서로 단단히 결합한 상태다.

그럼 법원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받는 사이, 의원에게 알려질 우려가 있다.

하춘보가 말한 [증거]는 언제든 사라질 위험이 충분하다.


골똘히 생각하던 나유신이 눈에 이채를 띠었다.

방법이 있다.

옛날에 나유신이 한 번 당했던 수법.


폭로다.


“옛날에 당한 적이 있는데.”

“응?”

“여기 노담시는 신도시고, 언론사도 많겠죠?”


문득 나유신이 걸음을 옮기며 물었다.


“여기 지청 기자실 어딨어요?”


죽기 직전, 함정에 빠졌을 때 당했던 방식.

바로 검찰 법조팀 기자들을 이용한 [언플]이다.


***


원래 정치인은 언론을 타는 걸 참 좋아한다.


-찰칵!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노담시 3선 국회의원, 엄상전.

그동안 정치는 무난하게, 축재는 원활하게 하며, 멋진 인생을 살아왔다.

그런데 갑자기 셔터 날벼락이 떨어졌다.


무슨 영전을 하게 되어 찍는 것은 분명 아니다.


“찍지마!”


염상전이 지역 사무실 앞에서 고함쳤다.


사실 어제 하춘보가 잡혀갔다는 소식, 새벽에 들었다.

다만 하춘보처럼 10년 넘게 일한 보좌관이 벌써 자백하진 않았으리라 믿었다.

하여 일단 보좌관들과 지역에서 대책을 논의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기자들이 먼저 밀어닥친 것이다.


“의원님, 어제 재무담당 보좌관 하춘보 씨가 검찰에 체포된 게 사실입니까?”

“노담역 부지 선정 건 관련이라던데요. 하춘보 씨가 뇌물을 받았습니까?”

“한 말씀만 부탁드립니다! 의원님은 아셨습니까!”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대응하는 게 3선 의원의 자세다.


“모르오!”


엄상전 의원은 단호한 태도로 외쳤다.


“이건 음모요. 검찰의 정치 탄압이요! 내가 노담시를 위해 일해온 노고를 폄하하는 행위요!”

“저기, 의원님 검찰 출신에 여당 의원 아니셨습니까? 탄압이라뇨?”

“틀렸소!”


일순, 엄상전이 이를 드러내며 위협했다.


“검찰의 정치 탄압은 여야를 가리지 않소! 심지어 선배도 몰라보는 자들이지! 나 염상전은 이 탄압에서 절대로 벗어나고야 말겠소! 기자 여러분도 명예훼손은 삼가 주시오!”


유사시 고소 고발로 대응하겠다는 뜻이다.

기자들도 잠시 위축되었다.

그때 혼란을 틈타 사무실로 먼저 들어간 ‘기자’가 있었다.


“어이, 거기. 기자 양반. 함부로 들어가면 안 돼!”


어쩐지 가발을 쓴 듯, 어색한 [두발]의 기자가 제지하는 비서에게 물었다.


“왜죠? 여기 뭐가 있나요?”

“있긴 뭐가 있어! 당장 나와!”

“혹시.”


문득 기자, 실은 가발을 쓴 나유신이 씩 웃으며 물었다.


“몰카라도 있는 거 아닙니까?”


비서가 입을 쩍 벌리는 순간 보인다.


정오판정.

진실 혹은 거짓.

증거다.


나유신은 재빨리 사무실 안쪽, 하춘보의 자리로 뛰어들었다.


“아니!”


엄상전도 밖에서 돌아볼 찰나, 나유신은 하춘보의 캐비넷을 열었다.


평소 엄상전 의원도, 다른 비서들도 찾아보지 않는 자리.

그곳에 엄상전의 비밀을 아는 10년 차 보좌관이 들어놓은 보험이 있다.

의원님이 감시용으로 설치해 놓은 사무실용 [홈캠] 영상이다.


영상이 든 USB를 어댑터에 연결하기까지 30초, 그리고 미리 켜놓은 태블릿을 작동시키는 데 30초.

아주 까마득히 긴 1분.

그렇지만 효과는 엄청났다.


[그러니까, 내 말 잘 들어. 하 비서. 아, 비서라고 해서 마음에 안 드나? 난 비서라고 부르는 게 좋더라고.]

[아닙니다, 의원님.]

[그래. 말 잘 들어야지. 난 말이야. 날 협박하는 놈은.]


테블릿 속 영상의 소리가 낮게 울려 퍼진다.


[내 사촌 엄하전이처럼 직접 죽여버린다고. 하하하!]


황급히 사무실로 들어서던 엄상전이 멈췄다.

셔터가 번뜩이고 기자들이 엄상전의 얼굴을 찍는다.

지극히 창백한 얼굴로 엄상전 의원은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이, 이, 이건!”


기자 한 사람이 엄상전에게 물었다.


“의원님?”


그 순간 엄상전이 목놓아 부르짖었다.


“조작이다!”


물론 그 외침은 이제 힘을 잃은 뒤다.


***


노담지청장 강유중은 이제 해탈한 얼굴이다.


-〈엄상전 의원, 살인 자백 영상 독점 공개!〉


모니터에 뜬 포털 뉴스를 보다 강유중이 말했다.


“이젠, 욕도 안 나오는군. 허.”


그러자 강유중 앞에 서 있던 형사 제3부 부장대행, 신수겸 검사가 웃으며 물었다.


“지청장님, 이거야말로 기회 아니십니까?”

“뭐?”

“어차피 이번 건, 지청장님은 관련 없으시잖습니까.”


신수겸은 강유중 지청장에게 은근한 태도로 일렀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염상전 의원 하나 날려버리고 끝내시죠.”


물론 강유중도 특별히 청렴결백한 검사는 아니다.


그렇지만 대놓고 뇌물을 받거나, 토지 개발에 뛰어드는 이충우와는 다르다.

사실 강유중 처가가 부자라서 그럴 필요가 없다는 소문도 있다.

어쨌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번 노담역 개발 사건에 강유중이 직접 관련된 바는 없다는 거다.


그 점을 파고 든 신수겸을 강유중이 뚫어져라 보았다.

아직 결심이 서지 않은 모양이다.

어쨌든 노담시 기득권과 싸워서 좋을 건 또 없으니까.


그때 신수겸 뒤에서, 나유신이 말했다.


“지청장님, 이거 게이트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야, 백발이, 너.”

“제가 백발인 건 타고 난 거구요. 전 나유신 검사입니다. 그리고.”


나유신은 단 한 점 망설임 없이 단언했다.


“염상전 의원의 뇌물, 직권남용, 살인. 이거 3개로 끝내시는 게 모두에게 좋지 않을까요?”


물론 비리는 캐면 캘수록 더욱 깊게 나올지 모른다.


그렇지만 사건 초기 나유신이 민혁기에게 들은 게 있다.

수사란 [범위]를 정하는 일이다.

세상 만물을 모조리 수사해 처벌할 수는 없다.


강유중 지청장이 이를 갈며 나유신을 노려보았다.


“이 꼴통 새끼가. 진짜.”


일순, 신수겸이 빙그레 웃으며 강유중을 달랬다.


“지청장님, 검사는 그래도 범죄자 잡아넣는 [프로] 아닙니까?”


그 어떤 검사도 처음부터 타락할 리는 없다.

처음 검사 선서를 할 때 누구나 생각한다.

공익이고 정의고 인권이고 나발이고, 범죄는 반드시 잡겠다고.


강유중이 결국 결재판을 내던졌다.


“좋아! 그대로 진행해! 대신 문제 생기면 너희가 다 책임져야 할 거야!”


그때다.


[사건 해결. 다음 사건시까지 생명 연장. 보상, 정오판정 자유도 확대.]


나유신이 황금문자의 알림을 보며 환호성을 터뜨렸다.


“됐어!”


살았다.

물론 강유중과 신수겸이 미친놈처럼 보는 건 피할 수 없었지만.


작가의말

* 의원 표적 수사입니다. 어쩐지 나쁜 짓은 다 저지르는 주인공이군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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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검사는 거물이 되기로 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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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56) 새로운 검찰총장이 백발공적을 보호한다 +10 24.09.12 4,834 107 30쪽
56 (55) 총장의 자백으로 3조 폰지 사기를 부수다 +22 24.09.09 5,141 130 28쪽
55 (54) XBC 폭로로 현직 총장 사모를 붙잡다 +18 24.09.07 5,119 121 28쪽
54 (53) 황금금강석 멤버들은 그린벨트에 3조를 투자한다 +12 24.09.04 5,447 108 28쪽
53 (52) 총장 사모님이 피라미드 거물이다 +20 24.08.30 5,786 114 28쪽
52 (51) 3조짜리 피라미드 조직을 잡아보자 +18 24.08.29 5,959 125 29쪽
51 (50) 나유신이 첫 휴가지에서 상속녀를 보다 +26 24.08.24 6,587 139 31쪽
50 (49) 초보형 전시안으로 사채왕을 발견하다 +15 24.08.22 6,535 153 30쪽
49 (48) 회장 등극식에서 대법관을 이용해 진범을 잡다 +19 24.08.20 6,660 163 21쪽
48 (47) 재벌 회장이 되게 해주세요 +25 24.08.18 6,752 154 34쪽
47 (46) 특수부 폭력이 조폭 진범보다 위다 +20 24.08.14 6,952 167 34쪽
46 (45) 강앤함과 월야 재벌가의 동상이몽을 털어라 +12 24.08.12 7,103 154 24쪽
45 (44) 월야그룹 살인사건을 만나다 +12 24.08.08 7,752 151 25쪽
44 (43) 나유신의 팀을 수도대 동문회에서 완성하다 +14 24.08.06 8,144 166 35쪽
43 (42) 백사여, 노담에서 다시 시작해라 +20 24.08.02 8,276 176 29쪽
42 (41) 시한부 연장권과 함께 중수부가 폐지되다 +20 24.07.31 8,108 193 20쪽
41 (40) 백발이가 사채왕을 잡다 +27 24.07.30 8,031 194 21쪽
40 (39) 이렇게 된 이상 선제 폭로로 중수부를 친다 +14 24.07.28 7,969 194 19쪽
39 (38) 진짜는 미래살인 배후 사채왕이다 +16 24.07.26 7,969 188 21쪽
38 (37) 금수저 비밀 정보로 스캔들 범인부터 잡다 +19 24.07.24 8,006 184 32쪽
37 (36) 이건 중수부의 운명이 걸린 사건이다 +14 24.07.19 8,127 178 30쪽
36 (35) 위치 추적 보상과 함께 서울시장 스캔들을 만나다 +22 24.07.17 8,422 186 23쪽
35 (34) 진짜 마약범을 잡고 금수저 변호사와 손잡다 +27 24.07.15 8,367 195 22쪽
34 (33) 골드스컬 클럽을 함정으로 일망타진하다 +17 24.07.14 8,306 190 23쪽
33 (32) 조기유학 금수저 학폭이 사건 진상이다 +16 24.07.10 8,383 182 23쪽
32 (31) 철벽의 성을 대규모 교사 시위로 넘어볼까 +13 24.07.08 8,320 187 22쪽
31 (30) 학교폭력 연쇄 자살사건이 터졌다 +15 24.07.05 8,708 182 22쪽
30 (29) 한국 재계를 뒤엎을 진짜 거물을 만나다 +21 24.07.03 9,008 194 24쪽
29 (28) 노동 살해 협박으로 진범을 잡다 +16 24.07.01 8,855 201 22쪽
28 (27) 솔라코인 전관 법무팀의 방어를 뚫어라 +15 24.06.27 9,043 196 21쪽
27 (26) 특수부 첫 사건은 1조원 분식회계다 +17 24.06.26 9,385 198 22쪽
26 (25) 중수부장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받다 +15 24.06.24 9,589 201 35쪽
25 (24) 백발이를 죽인 자에게 진짜 복수를 해보자 +16 24.06.19 9,315 198 34쪽
24 (23) 백사가 또 검사를 잡았다 +22 24.06.18 9,397 200 22쪽
23 (22) 특수부식 예단수사로 마약통관범을 잡아라 +11 24.06.15 9,441 197 23쪽
22 (21) 이 나라에는 마약도 너무 많다 +17 24.06.13 10,215 210 24쪽
21 (20) 첫 기자회견과 함께 위수증 5백억 코인이 남다 +19 24.06.07 10,211 224 36쪽
20 (19) 5초 예지로 폭발 속 범인을 잡다 +14 24.06.06 10,104 221 24쪽
19 (18) 감옥에 보낼 놈은 내가 고른다 +14 24.06.04 10,091 218 18쪽
18 (17) 1천억 비트코인 사건을 5초 예지로 파헤치자 +14 24.05.31 11,100 219 31쪽
17 (16) 나를 건드리면 검찰총장 예정자도 가만 안 둔다 +25 24.05.29 10,979 233 26쪽
16 (15) 독사를 건드리면 제왕도 문다 +20 24.05.27 11,055 237 30쪽
15 (14) 공판부 땜방으로 백발검사를 보내라 +10 24.05.24 11,550 223 30쪽
14 (13) 언론비리 일망타진으로 신체감정 보상을 받다 +11 24.05.23 12,155 230 31쪽
13 (12) 특활비 별건수사로 무전취식 기자를 잡자 +12 24.05.21 12,245 237 21쪽
12 (11) 사고뭉치에게는 법카부터 먹여줘라 +13 24.05.20 13,451 243 21쪽
11 (10) 나유신이 주가조작 일당을 함정수사로 잡았다 +17 24.05.20 13,516 262 21쪽
10 (9) 오풍제지 그래핀 사기를 경찰공조로 잡는다 +16 24.05.18 14,348 257 25쪽
9 (8) 정오판정으로 오풍제지 주가조작을 발견하다 +16 24.05.17 14,706 276 15쪽
» (7) 선배가 장애물이면 부수고 해결한다 +15 24.05.14 15,099 280 22쪽
7 (6) 상태창의 보상은 놓칠 수 없다 +23 24.05.12 15,957 296 27쪽
6 (5) 의원 하나 잡고 시작하자 +20 24.05.11 15,732 290 14쪽
5 (4) 신입 수석검사가 꼴통이래 +15 24.05.10 16,983 307 15쪽
4 (3) 범인을 잡으니 시한부 연장 +16 24.05.09 18,128 292 11쪽
3 (2) 우선 범인부터 잡고 죽자 +17 24.05.08 19,693 312 13쪽
2 (1) 백발 신입검사 나유신 +25 24.05.08 22,926 354 11쪽
1 프롤로그 : 시한부 상태창이 생겼다 +42 24.05.08 30,118 416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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