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검사는 거물이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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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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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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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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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7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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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첫 기자회견과 함께 위수증 5백억 코인이 남다

DUMMY

경기남부 노담지검, 검사들의 무덤으로 불리던 곳이다.


“이곳에서 전국 단위 기자회견을 벌일 날이 오다니! 이건, 꿈이야!”


노담지검장 강유중은 간만에 전혀 다른 의미로 펄쩍펄쩍 뛰었다.


물론 모든 게 완벽하게 깔끔하지는 않다.

참고인 폭발 사망, 무리한 함정수사, 여기에 피의자 중 실종까지 발생했다.

그럼에도 분명 이 사건은 [전국단위]의 관심을 불러모을 대형사건이다.


2천억 원, 21세기형 신종 금융 사기, 여기에 해외 조직폭력까지.

지금껏 골치 아픈 하극상, 정치인 공격, 주가조작과는 전혀 다르다.

완벽히 검찰 내부에서든 대국민 여론이든 좋아할 수밖에 없다.


물론 정작 사건을 보고하러 온 부장대행, 신수겸은 마땅찮은 얼굴이다.


“지검장님, 기자회견문 정확히 숙지해 주십시오.”

“이 사람이! 신 부장, 내가 기자회견이 처음인 줄 아나? 여기로 밀려오기 전엔 서울에서 제법 했다고!”

“저 아직 부장대행입니다. 게다가 이번 사건 설명, 정말 어렵지 않습니까?”


신수겸은 머리를 긁적이며 보고서를 다시 훑어보았다.


“일단, 그 코인인가 뭔가 전 아직도 이해가 안 가는데요.”


차라리 수사보고서가 엉망이라면 나유신을 질책하면 그뿐이다.

그러나 나유신은 수사는 무리하게 했어도 보고서 하나는 정말 깔끔했다.

수석은 원래 시험만 잘 친다고 되는 게 아니라, 리포트를 완벽하게 써야 가능하니 당연한 일이긴 하다.


그럼에도 비트코인이니 환치기니 전혀 처음 보는 얘기에 신수겸은 보고서 그 자체로 돌 지경이었다.


“그게 중요한가, 신 부장?”

“부장대행이라니까요.”

“이젠 진짜 부장이야. 서울에서 싸인 왔어!”


반면 강유중 지검장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왜?

실은 이해할 필요가 없으니까.

중요한 것은 아주 센세이셔널한 사건을 해결했다는 것, 그 자체다.


“자네와 난 국제 범죄조직이 한국에 침투하려는 대형 사건을, 막아낸 거야. 무슨 소리인지 알겠어?”


물론 신수겸은 생뚱맞은 얘기를 들은 표정으로 반문했다.


“아니, 그게 왜 그렇게 되는 거죠? 저는 어디까지나 코인인가 비트인가 하는 걸 밀수하던 자들을 잡은 건데요?”

“그게 아니지! 자네도 모르는 걸 기자들은 알 거 같아? 아웃월드 도토리나 [로니지] 아덴을 압수했다고 윗선에서 알아주겠어?”

“어째 뭔가 능통하시군요. 다만 문제가 있습니다.”


신수겸이 아까부터 걸리던 점을 입에 올렸다.


“그 비트코인이란 걸 압수하지 못했습니다.”


이게 이번 사건의 가장 큰 문제다.


본래 살인사건의 발단은 비트코인을 둘러싼 삼화회 내부의 암투다.

한데 정작 코인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과연 사건을 해결했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강유중 지검장이 코웃음을 쳤다.


“큭! 상관없어.”

“예?”

“어차피 존재 여부는 잡혀들어온 놈들 진술로 확보했잖아. 중요한 건 삼합회 두목급 놈을 우리가 잡아들였다는 거야. 거기에 20년 묵은 기업 조폭조직까지 일망타진했고!”


사건 증빙은 물증이 아니라 [증언]으로도 가능하다.


특히 전혀 다른 경로의 복수 자백이 있다면, 그 자체로 신빙성을 가진다.

이 사건의 경우 죽은 백재선의 진술서, 그리고 잡혀온 24K 부두목 완자오룬의 자백이 존재한다.

그러니 비트코인의 존재는 증명되었다.


여기에 삼합회 부두목과 노담시의 골칫거리 삼화회까지 잡았다.


“그런 마당에 정체도 모를 데이터 쪼가리가 있든 없든 무슨 상관이야? 응?”


물론 만약 10년 뒤라면 강유중 지검장도 이런 말을 할 수가 없다.


비트코인의 존재 자체가 초대형 관심사가 되어 버릴 테니까.

10년 후라면, 71만개의 비트코인은 정말 어마어마한 금액이 된다.

가격 등락에 따라 다르지만 수십 조 단위가 될 테니까.


그러나 현 시점에선 거래 자체가 한정되어 있는 데다 거래소에서도 가격이 폭락 중이다.

당연히 강유중 입장에서든, 아니 한국 사회 어디서나 무관심할 것이다.

오히려 삼합회 부두목 체포라면 모를까.


신수겸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지만, 뭔가 걸리는데요.”

“됐어. 하여간, 기자회견 대본 줘봐. 자, 우리 노담지검은 해외 범죄조직이 연루된, 21세기 첨단 범죄를 막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캬, 라임 좋고!”

“이 사건, 아시죠? 백발독사가 해결한 겁니다.”


보통 나유신의 별명을 들으면 기겁하는 강유중이 껄껄 웃었다.


“그래, 이젠 [독사]말고 그냥 [백사]라고 부르자고. 눈에 띄니까 좋겠지? 백사도 불러! 기자회견장에서 자리 하나 정도는 줘야지. 하하하!”


검사가 일개 조직원이 아니라 [별]을 다는 순간이 있다.


바로 전국단위 사건을 해결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다.

나유신은 따지고 보면 이제 막 1년 차인 초임검사다.

그런데 물 먹고 내려온 노담지검에서 이런 기회를 잡은 셈이다.


물론 여전히 신수겸은 입맛을 다실 뿐이었다.


“아, 이거 걸리는데. 참.”


분명 뭔가 걸리는 게 있는데, 그게 뭔지를 정확히 모르겠다.


***


사실, 나유신이 보고서에서 슬쩍 뭉갠 게 있다.


“남춘식은 도주했어요. 잡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정말 아쉽네요.”


노담지검 앞 커피체인점.


이곳은 보통 검찰 옆 법원에 가야 하는 사람들이 사전점검을 하는 장소다.

대부분 지방 검찰지청은 법원과 쌍둥이처럼 붙어 있기 때문이다.

분주히 사건서류를 점검하는 이들이 커피체인점 안에 가득하다.


나유신은 그 모습을 구경하다 강시영 경감에게 대꾸했다.


“뭐, 남춘식은 실행범이지 진범이라고 하기 어려우니까요.”

“그건 검찰 입장이죠. 우리 경찰 입장에선 살인사건이 주된 행위니까, 남춘식을 잡아야 사건이 해결된단 말이에요.”

“대신에 살인교사범인 노지심은 넘겨줬잖아요.”


그러니까 신수겸이 너무 정신이 없어 지적하지 못한 점이 이거다.


본래 이 사건의 시작점은 SH금융서비스 집단 살인사건이었다.

흉기로 범죄조직원들이 난입해 전직 조폭들을 살해한 사건.

그 자체로 흉악하기 그지없는 [인명경시] 살인사건이다.


잡히면 최소 20년의 중형을 받을 일.

그런데 정작 이 살인사건의 실행범, 남춘식이 도망간 거다.

하지만 시한부 판정을 무사히 넘긴 나유신은 태연했다.


살인범을 잡지 못한 강시영은 낯을 찌푸렸지만 말이다.


“결국 따지고 보면 그쪽 공적 아닌가요? 노지심도 코인을 밀수하려다 그꼴이 된 셈이니까. 게다가 우리는 지금 참고인인 백재선 씨 죽음을 책임져야 할 상황이라구요.”


참고인 사망, 곧 백재선 얘기다.


삼화회 고문이었던 백재선은 비트코인 밀수 교사범이다.

하지만 비트코인이 법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은 시점.

백재선 본인은 명시적인 죄를 범했다고 입증하기 어렵다.


그런데 함정수사에 나섰다가 죽었으니, 이 책임은 누가 질까?


“걱정 말아요. 유족이 문제 삼지 않을 겁니다.”

“그걸 누가 장담해요?”

“시신을 인수할 자가 없더군요.”


나유신이 어깨를 으쓱였다.


“국과수에서 연락왔다구요. 시신 어떻게 할 거냐고.”


결국 사람이 죽었을 때 문제를 삼을 수 있는 것은 [유족]이다.


하지만 조폭은 가족과 사이가 나쁜 경우가 태반이다.

게다가 백재선은 단순 사망이 아니라 사실상 [조직]이 살해한 상태다.

자연히 삼화회 잔존 세력의 보복을 두려워하는 유족들은 백재선과 멀어지고 싶은 것이다.


강시영은 미간을 좁혔다.


“그렇다면, 또 한 가지 문제. 도대체 비트코인이란 그 물건, 누가 가져간 거죠?”

“글쎄요. 아마도 폐기된 것 같은데. 사실 없어진 건 아닙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폐기되면 데이터는 없어지는 거 아니에요?”


나유신이 고개를 저었다.


“비트코인 그 자체는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여전히 기록되어 있어요. 다만 그 네트워크에 접속할 [주소]와 [암호]가 없어진 거죠.”


이게 비트코인이 아무런 쓸모가 없음에도 거래 수단이 된 진짜 이유다.


블록체인 네트워크가 살아있는 이상, 비트코인은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그 코인이 담긴 [지갑]에 접속할 수 있는 주소와 암호가 문제일 뿐이다.

당연히 이 주소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는 잃어버린 거나 마찬가지긴 하지만.


강시영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아쉽네요. 2천억 짜리가 날아가다니. 물론 몰수했어도 국고행이겠지만요.”

“지금은 5백억이에요.”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1주일밖에 안 된 데다 분할해서 사라진 것도 아닌데?”


여전히 비트코인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는 강시영에게 나유신이 친절히 설명했다.


“그 사이 비트코인 가격이 급락했거든요. 뭐, 다시 급등할 수도 있지만.”


고작 1주일.


그렇지만 코인 거래의 세계는 24시간 돌아간다.

주식시장이 보통 대낮 8시간만 운영되는 것과 비교하면 3배.

여기에 시세가 안정된 시기가 아니니 그야말로 추락해 버린 셈이다.


갑자기 코인이 4분의 1토막 났다는 얘기에 강시영이 흥미를 보였다.


“그럼 싸졌다는 소리 아니에요? 나도 그 코인이란 거나 살까? 어떻게 생각해요?”

“사놓고 안 볼 강심장이면 그렇게 하시죠.”

“무슨 소리예요?”


나유신은 가볍게 백발 머리를 손가락으로 긁적이며 답했다.


“반드시 오르겠지만, 그게 10년 뒤가 될 수도 있단 말이죠.”


사람이 10년 간 어떤 자산을 산 후, 내버려 두기는 쉽지 않다.


집이라면 모를까.

괜히 부동산 투자가 한국의 가장 유력한 투자수단이 된 게 아니다.

그런데 비트코인쯤 되면 10년까지 갈 것도 없이 1주일 사이에도 수직상승과 수직하강을 거듭한다.


나유신이 보기에 강시영은 그 정도로 인내심이 많아 보이진 않았다.

그때 스마트폰이 울렸다.

형사 제3부 윗 선임, 채승배 검사다.


[야! 어디야, 백발이! 지금 지검장님이 찾으셔!]

“기자회견에는 늦지 않게 갈 테니 걱정 말라고 하세요. 내일 오후 아니에요? 지금은 리허셜일 거고.”

[너 어딘데!]


나유신은 스마트폰 너머, 채승배에게 간단히 대꾸했다.


“국과수 갑니다. 인수해야 할 시체가 있어서.”


어쨌든 사건 해결 뒷마무리는 해야 하니까.


***


유족이 인수를 거부한 시신은 하나 더 있다.


“이 시신, 연고자 없음으로 처리하려고 했는데, 인수하실 겁니까?”


바로 SH금융서비스 대표, 전직 삼화회 조폭 하진우다.


하진우의 시신이 연고자가 없어진 이유는 백재선과 동일하다.

조직의 보복 가능성, 그리고 평소 하진우의 행실 문제다.

하긴 밀수 심부름 하나에 욕심 부리다 죽은 사람이니 당연한 얘기일지도 모른다.


나유신은 국과수 시체처리소 담당관에게 어깨를 으쓱였다.


“뭐, 화장 정도야 해줘야 할 거 같아서요.”

“음, 그럼 이거 가져가시죠.”

“뭡니까?”


담당관은 상당히 부식된 금속성 물체를 꺼내 들었다.


“부검하다가 나온 겁니다. 아무래도 삼켰던 거 같은데, 사건 관련성은 없어 보여서 폐기 처분 예정이었습니다.”


나유신은 눈을 크게 떴다.


“이건.”


간신히 내색하지 않고 받아들었을 때, 황금문자가 나유신의 [예감]을 확인했다.


[비트코인 71만 개 지갑 주소 USB, 획득.]


눈을 깜박이던 나유신은 간신히 떨지 않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을 나섰다.

몸이 떨린다.

다시 보니 정확하다.


뚫어져라 부식된 USB를 보던 나유신이 중얼거렸다.


“뭐야, 이거. 코인 숫자가 보여?”


아무래도, 새로운 보상인 것 같다.


***


그러나 난데없는 [코인]이 손에 들어와도 검사는 직무를 피할 수 없다.


-찰칵, 찰칵, 찰칵!


노담지검 기자실에 임시 기자회견장이 차려졌다.


모인 기자는 수십 명.

생중계 카메라도 10대가 넘는다.

실로 수도중앙지검에서나 볼 법한 광경이랄까.


제법 경력이 있는 염민아 검사도 혀를 내둘렀다.


“와, 이렇게 기자들 많이 온 건 처음 봐.”


그만큼 이번 사건이 센세이셔널 하단 얘기다.


살인사건, 삼합회, 여기에 2천억 원이라는 범죄 연루 금액 단위까지.

모든 게 언론의 흥미를 끌었다.

게다가 이번 사건을 이용하려는 노담지검장 강유중도 적극 언론사 간부들에게 떠들어댔다.


그러다 보니 노담지검에 유례없는 기자들의 관심이 집중된 것이다.

아직은 SNS나 마이튜브가 미디어를 지배하지 않는 2010년대.

언론이 보도하는 내용은 곧 국민적 관심사가 된다.


아예 기자회견 자체가 인생에서 처음인 밥총무 채승배 검사도 입을 쩍 벌렸다.


“아무래도 오늘 실수하면 방송 화면에 박히겠는데요?”

“지상파 방송에 종편 뉴스에 중앙 5대 일간지 다 온 것 같지? 후후.”

“음, 한 가지 문제가 있군. 내가 깜박했는데 말이야, 염민아 검사.”


문득 채승배와 염민아를 향해 부장대행, 혹은 부장검사 내정자 신수겸이 낮게 말했다.


“참고로 우리 [백사]가 기자들을 대거 처넣은 덕분에, 지역 뉴스 기자들과 언론사에서는 아주 벼르고 있어. 눈빛 보이지?”


그때서야 들떠 있던 염민아과 채승배도 발견했다.


물론 기자들은 언제든 인터뷰 대상자의 허점을 노린다.

다만 단순한 호기심과 [악의]는 완전히 다르다.

한데 기자들 중 절반은 그야말로 눈을 부라리고 있다.


신수겸은 그중에서도 가장 혈안이 된 쪽을 보다 입맛을 다셨다.


“노담일보 쪽 기자들이 험악한 표정인 게 보이는군. 크.”


이른바 비리언론 수사 때, 나유신이 집중적으로 잡아넣은 지역언론사다.

당연히 본인들이 금품 향응을 받은데다 룸살롱 무전취식까지 했으니, 법적으로는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사람 생각은 그렇지 않기 마련이다.


그때 기자들의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지검장 강유중이 회견장 복도에 다다랐다.


“큼! 내 넥타이 어떤가? 후후.”

“지검장님. 괜찮으시겠습니까? 이거, 기자들 눈빛이 심상찮은데요.”

“훗, 신수겸 부장. 자네는 내가 그저 놀면서 이 자리 온 것처럼 보이지?”


강유중 지검장이 킬킬 웃으며 대꾸했다.


“하지만 나도 지검장까지 오면서 산전수전 다 겪었어. 물론 [백사] 녀석이 오면서 20년 간 당한 일보다 더 많이 당하고 있긴 하지만.”


신수겸은 할 말이 없어 다시 입맛을 다셨다.


“통제 못 해서 죄송합니다.”

“됐거든? 전임 부장도 잡아먹는 백사 놈을 어떻게 처리하나? 하지만 말야. 자네도 알아둬야 할 게 있어.”

“뭡니까?”


문득 강유중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기자들을 훑어보며 일렀다.


“기자들은 아무리 검사에게 원한을 품어도, 선을 넘지 못해. 왜? 법조계 기자라면, 특종은 검사만 줄 수 있다는 걸 알거든.”


기자는 특별한 뉴스 가치가 있는 건수, 곧 [특종]에 목을 맨다.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는 2010년대 초반은 더욱 그렇다.

그런데 법조계를 방문하는 기자들에게 특종이란 뭘까?

자극적인 사건이다.


그런 사건의 내밀한 정보를 보내줄 수 있는 이들은 두 종류다.

경찰, 혹은 검찰.

그렇기에 법조계 출입 기자는 검사와 정면대결하지 못한다.


만약 정면대결하면 그날로 검찰발 특종은 물 건너 가는 셈이니까.

어째 언론유착 같은 소리라 신수겸은 또 다시 쓴 입맛을 다셨다.

물론 닳고 닳은 강유중은 신경 쓰지 않고 단상에 올라섰지만 말이다.


“자, 기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노담지검장 강유중입니다. 오늘 여러분께 발표 드릴 사건은, 21세기 신종 금융범죄입니다!”


강유중의 당당한 기자회견에 신수겸이 염민아를 돌아보았다.


“와, 우리 지검장이 이렇게 든든해 보이는 건 처음일세.”

“꽁으로 지검장 된 건 아니겠죠. 당연히. 형사부에선 꽤 잔뼈 굵으신 분이잖아요?”

“그거야 형사사건을 많이 다뤄본 거지, 이런 난장판은 아닐걸?”


이번 사건은 객관적으로 훑어보면 총체적 난장판 그 자체다.

단지 [범인]을 잡아서 다행일 뿐, 만약 완자오룬이나 노지심까지 놓쳤다면 형사 3부가 공중분해 됐을지도 모른다.

어째 목이 달아났다 붙은 것 같아 신수겸이 슬쩍 목을 만질 때였다.


“바로, 국제 범죄조직이 국내에 침투하려고 했던 이 사건을! 우리 노담지검이 막아낸 것입니다!”


아주 신나게 사건 개요를 연설하는 강유중 앞에서 누군가 팔을 들었다.


“질문 있습니다.”


아직 질문 시간은 아니다.

허나 이건 사죄회견도 아니고 사건 성공을 보고하는 기자회견이다.

괜히 기자와 싸워 분위기를 나쁘게 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질문을 던진 기자를 돌아보다 신수겸이 눈을 크게 떴다.


“어, 잠깐. 저 사람, 노담일보 조보승 아냐?”

“지난번에 잡지 않았어요?”

“어디 보자, 이런.”


잠시 검찰 정보시스템, [이프로스]를 스마트폰으로 보다 신수겸이 낯을 찌푸렸다.


“집행유예로 풀려났네? 그런데 아직도 기자 노릇을 해?”


조보승, 그러니까 나유신이 잡아 넣었던 언론사 기자다.


무전취식, 금품향응, 여기에 협박보도까지 삼종 세트로 걸려 기소되었다.

그러나 초범인 점과 언론사 특수성을 감안해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한데 놀랍게도 아직도 기자 노릇을 하고 있는 거였다.


물론 이곳에는 노담일보를 비롯한 지역 언론 기자들만 있는 게 아니다.


“아직 발표 안 끝났는데, 왜 끼어들어?”

“이거 매너 없네. 좀 듣고 합시다!”

“질의 순서는 사전에 기자실에서 정한 대로 해야죠!”


지상파 뉴스, 속보 통신사, 여기에 중앙일간지 법조팀 기자들이 일제히 반발했다.

하지만 조보승은 활활 타오르는 눈으로 강유중, 그리고 그 ‘옆’을 노려볼 뿐.

절대로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강유중이 유들유들하게 웃었다.


“자자, 진정들 하시고. 발표가 끝나면 여러분께 사건 주임검사가 상세한 질의응답 시간을 가질 겁니다.”


그러자 중앙일간지 기자 하나가 흥미롭다는 듯 물었다.


“주임검사라면, 누구죠?”


신수겸은 눈을 깜박였다.


사건 주임검사, 이건 사실 그 사건을 조사해 [기소]를 하는 검사를 말한다.

형사 제3부는 보통 신수겸이나 염민아가 공소장을 써왔다.

다만 이 상황에서 주임검사라고 하면, 수사 담당자를 말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파헤친 검사가 누굴까?


“어, 지검장님. 잠깐.”


하지만 신수겸이 말리기도 전, 강유중이 자신의 옆을 돌아보며 호탕하게 웃었다.


“우리 노담지검의 에이스! [백사] 나유신 검사입니다! 핫하하!”


플래시가 터지고 카메라가 돌려졌다.

백발의 청년 검사.

그 자체로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순간.


신수겸은 이를 갈았다.


“시발, 누가 지검장이 든든하대?”


물론 그 말은 본인이 한 얘기다.


***


요컨대 강유중은 나유신에게 기자들의 공격을 떠넘긴 것이다.


“비트코인 환치기 살인사건, 주임 검사 나유신입니다.”


일단 나유신은 모습 자체로 눈에 확연히 띈다.

백발 머리칼은 아주 이색적이다.

이번 비트코인 살인사건 자체가 주목 받을 수밖에 없다는 건 덤이다.


여기에 원한을 품고 있는 기자, 조보승이 이를 갈며 외쳤다.


“아직 초임으로 알고 있는데, 사건 주임검사가 된 배경이 있습니까?”


나유신은 조보승을 정시하며 대꾸했다.


“배경 같은 건 없습니다. 제가 이 사건의 현장을 목격했고, 그때부터 관심을 갖고 [인지수사]에 착수하게 되었습니다.”

“인지수사? 그럼 아무도 고발하거나 고소하지 않았는데, 독단적으로 사건을 시작했다는 건가요?”

“살인사건입니다. 시작점은.”


조보승은 일부러 함정을 팠다.


본래 검찰에서 사건 수사란 피해자의 고소나 제3자의 고발이 있을 때 시작된다.

다만 아무런 고소고발 없이도 사건을 수사할 때가 있다.

이를 알아서 수사하게 되었다는 뜻으로 [인지수사]라고 한다.


그런데 인지수사는 무리한 수사와 맞닿아 있다.

예컨대 기자들에 대한 비리 [인지수사]라든가.

하지만 나유신은 냉정히 되받아쳤다.


“기자님께선 살인을 현장에서 목격하고도 취재하지 않으실 수 있습니까? 검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접 목격한 사건은 수사할 수밖에 없죠.”


찰나, 이번에는 다른 기자들이 일제히 뛰어들었다.


“그거 이상하군요. 살인 같은 강력 사건은 기본적으로 경찰에서 먼저 수사하지 않나요?”

“오, 수사권 분쟁인가? 수사지휘권 행사입니까?”

“경찰에서 반대하는 목소리는 없었나요?”


[먹이감]이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온 것이다.


물론 살인도 검찰이 수사할 수 있다.

그렇지만 보통 강력사건은 경찰이 먼저 수사하고, 검찰은 서류만 보거나 2차로 수사지휘를 하는 게 실무관행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살인사건에 검사가 직접 뛰어들었다.


검찰과 경찰이 수사권 문제로 다투기 시작한 게 벌써 수십 년.

이건 기사가 나오는 방향에 따라 수사권 갈등 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유신은 넘어가지 않았다.


“여러분, 이 사건은 2천억에 상당하는 신종 금융상품의 외환 밀수 사건입니다. 또한 삼합회라는 거대 외국 조직과 한국 현지 조폭이 연계된 사안이기도 합니다.”


2천억, 삼합회, 외국 조직과 한국 조폭의 결탁.

이건 수사권 갈등이니 어쩌니 하는 것보다 훨씬 센 기사감이다.

다시 기자들이 입을 다물 찰나, 나유신이 빠르게 덧붙였다.


“사건 착수 시점부터 이 사건의 전모가 이렇게 드러났습니다. 그 어떤 검사라도, 설사 수사권 중복의 문제가 있다 해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왜죠? 수사권 남용 아닌가요?”

“죄는 처벌되어야 합니다. 또한 범죄혐의가 있다면 수사해야만 하죠.”


문득 기자회견 구석, 한 기자가 손을 들었다.


“혹시 강압수사를 한 건 아닙니까? 예를 들면 기자들에게 검사님이 그랬던 것처럼?”


아주 의외의 인물이다.


왜냐하면 조보승이 아니라, 노담시민뉴스 기자 서나래였으니까.

오히려 조보승이 순서를 빼앗긴 얼굴로 돌아보고 있었다.

반면 나유신은 아주 태연했다.


이유가 있다.

실은 사전에 서로 짰기 때문이다.

침착하게 나유신이 조보승을 돌아보며 말했다.


“저보고 룸살롱에 강제로 오라고 하셨던 기자님도 이곳에 계시긴 하죠.”

“뭐, 뭐라고? 무슨 음해를! 이건 언론탄압이요!”

“집행유예로 나온 걸 다행으로 여기십시오.”


조보승의 낯이 새하얗게 질릴 순간, 기자들의 카메라가 조보승을 잡았다.


“검사는 죄인이 있다면, 수사해서 반드시 처벌합니다. 여러분, 앞으로 이 비트코인과 관련된 범죄가 빈발하게 될 것입니다. 그 범죄가 일어날 때 기억해 주십시오.”


나유신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냉철하게 말했다.


“이미 처벌한 선례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 카메라가 나유신을 붙잡았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누구도 말할 수 없을 겁니다. 선례가 없어서 처벌할 수 없다는 거짓말은.”


향후 그 어떤 비트코인 사건이 벌어지더라도, 처벌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선례가 생겼으니까.


***


전국 생중계 뉴스는 가끔 엉뚱한 사람이 보기도 한다.


“뭐 보십니까, 부장님?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만.”


대검찰청, 이른바 검사들의 [성지]다.


지어진 지 30년이 다 되어 가는 건물이라 설비는 날다.

하지만 절대다수의 검사들은 대검찰청에 오고 싶어 난리다.

승진을 거듭하다 올라갈 곳이 없어진 퇴임 직전의 고위 검사라면 얘기가 다르지만.


문득 대검찰청의 낡은 에어컨을 쐬던 뾰족하게 생긴 검사가 대꾸했다.


“글쎄, 저 친구 기자회견 좀 보고.”


뾰족한 검사가 보는 TV를 돌아본 부하, 백경석 검사는 눈썹을 치떴다.


“노담지검요? 이번에 강유중 지검장이 이상한 건 하나 물어서 신났더군요.”

“흥미로워.”

“예, 코인이라는 거, 제법 신기하더군요. 요 근래 범죄조직이 탈세나 돈세탁 용도로 자주 쓴다고 합니다.”


그런데 뾰족한 검사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 로니지 아덴 같은 거 말고. 저 친구 말이야.”


바로 새하얀 머리칼의 검사, 나유신이다.

백경석은 나유신을 보다, 다시 [부장]을 응시했다.

아무래도 인재 수집욕이 넘치는 부장이 꽂힌 모양이다.


“누군지 알아볼까요?”


뾰족한 부장, 이주혁이 눈을 번뜩였다.


“그래. 우리 [철검회] 막내로 들일 수 있을지, 한 번 보자고.”


백경석은 고개를 숙인 후 나섰다.

문이 닫히자 간판이 흔들린다.

그곳에는 이런 명패가 붙어 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검찰총장의 칼.

특수수사의 꽃.

대한민국의 독.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특수수사의 정점, 중수부에서 나유신을 주목하기 시작한 날이었다.


***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야 할 물건이 손에 들어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삑, 삑, 삑!


나유신은 기자회견이 끝나도 쉴 수가 없다.


“이거 복구가 꽤 어렵군.”


바로 SH금융서비스 대표, 하진우의 시신에서 발견된 USB 때문이다.


아마 죽기 전, 급히 삼켰다가 살해당해 미발견되었을 물건.

일단 위장에서 부식된 데다 방치된 터라 컴퓨터에 꽂는 것으로는 복구가 어렵다.

만약 나유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발견했다면 그냥 폐기되었을 물건.


괜히 국과수에서 확인하는 대신 버리려 했던 게 아니다.


“하지만 나는 볼 수 있지.”


컴퓨터에 꽂을 수도 없는 USB.

그런데 나유신이 그 USB를 보면 마치 화면을 보는 듯 황금문자가 펼쳐진다.

아주 복잡한 [주소]와 [암호]가 적혀 있는 정보 그 자체가.


일반적인 컴퓨터를 보면 이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아마 이건 블록체인 정보를 알려주는 능력 같은데.”


문제는 이게 비트코인 [지갑] 주소와 암호라는 거다.


비트코인은 본래 데이터 그 자체를 거래하기 어렵다.

너무 느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데이터가 담긴 지갑이라는 정보를 거래하는데, 문제는 이 지갑에 담길 수 있는 코인의 숫자가 정해져 있다는 점이다.


현재 나유신이 갖고 있는 비트코인의 숫자는 71만 개.

이 코인이 분산되어 지갑에 담겨 있다.

그런데 USB를 직접 꽂을 수 없으니 일일이 쳐서 기록해야 하는 거다.


한참 노트북에 주소를 치고 있던 나유신이 입맛을 다셨다.


“그런데 이걸 내가 만약 함부로 거래하면, 십중팔구 들킬 건데.”


한국은 금융거래가 [실명화]된 나라다.


그 말은 모든 금융 거래가 정부에서 추적 가능하단 얘기다.

물론 비트코인 자체는 한국의 거래 추적 시스템에서 벗어나 있다.

하지만 비트코인으로 피자만 사 먹을 수는 없는 일.


결국 일반적인 화폐로 [환전]해야 한다.

한데 이 환전 과정에서 들킬 수밖에 없다.

일단 대부분의 은행은 1억원 이상의 거래가 벌어질 경우 보고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검사들이야말로 금융 거래 내역을 자기가 보듯 수사하는 장본인들이다.


“이 지갑을 아는 놈들이 있을지도 모르고. 그게 아니라도 내가 환전을 하면, 한국 금융정보 시스템에선 추적이 쉽단 말야. 게다가.”


문득 나유신이 미간을 좁혔다.


“검사는 나름 공직자라서 재산도 공개해야 하고.”


물론 언론에 보도되는 것은 고위검사들 뿐이다.

허나 낮은 직급의 검사들도 재산등록은 해야 하고, 내부에서는 정보가 공유된다.

한데 갑자기 현금이 늘어났다고 치자.


누구든 수상하게 여기지 않을까?


“그냥 잊어버리면 그뿐이지만.”


따지고 보면 불법수사증거.


사실은 상부에 보고하고 증거자료로 제출해야 마땅하다.

그러니 아예 없었던 것으로 치고 잊고 살아도 그뿐이다.

지금도 용돈벌이라면 5초 예지와 정오판정을 이용해 주식단타로 쏠쏠히 버는 중이다.


그럼에도 나유신이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10년 후를 생각하면, 이걸 이용해야만 해.”


10년 후, 전생에서 나유신이 맞이했던 사건.


태양그룹 재벌 4세 살인사건이다.

물론 그 사건, 잊고 살 수도 있다.

하지만 나유신은 그 사건에 휘말려 죽은 백희진을 기억한다.


만약 자신만 죽었다면, 원한을 삭히면 그뿐.

허나 동기가 사망했던 그 참혹한 일은 잊을 수가 없다.

한데 눈앞에 정말 막대한 돈이, 그것도 하기에 따라선 추적 불가능한 자금이 있다.


이용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아, 이거. 아버지에게 부탁하고 싶지 않은데.”


문득 나유신이 혀를 찼다.


“할 수 없지. 언제가 깨어 있으실 시간이지?”


아무래도 전생에도 연락하지 않았던 ‘아버지’에게 연락해야 할 모양이다.


***


문득 스마트폰 너머, 낯선 목소리가 들린다.


[여, 아들. 네가 먼저 전화란 걸 하다니 해가 서쪽에서 뜨겠구나. 무슨 일이지?]


얼마 전, 강앤함의 함규형과 헬스클럽에서 마주했을 때.


함규형은 나유신도 잊고 있던 기억을 끄집어냈다.

부친, 나재천.

나유신도 스스로 수재 중의 수재라고 자부하지만, 부친은 그 정도가 아니다.


아무런 배경도 없이 미국에서 [펀드매니저]로 성공한 국제 금융가다.

하지만 나유신과는 그리 사이가 좋지 않았다.

어쨌든 어렸을 때부터 해외출장만 다니다, 아예 미국으로 넘어간 남자와 아들이 사이가 좋기는 어렵다.


나유신은 정말 낯선 목소리에 낯선 기분으로 답했다.


“안부 전화를 했다고 말하면 안 믿으시겠죠?”

[당연하지. 헛소리 말고 본론부터 말해라. 너도 알겠지만, 난 시간이 금인 사람이다. 게다가 넌 내가 행한 제안을 완전히 거부했어.]

“로스쿨 합격했는데 유학 오라니, 그런 제안을 누가 받아요?”


스마트폰 너머, 나재천이 소리쳤다.


[하, 검사 따위가 뭐라고! 검사란 건 고작해야 법률로 사람을 옭아매는 게 전부다. 그것도 한국에서만! 반면, 글로벌 펀드 매니저는 세계를 쥐락펴락할 수 있지!]


바로 이게 나유신이 나재천을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다.


결국 나유신은 검사.

검사란 법으로 죄를 심판하는 자다.

나재천은 그 근본 원리를 [돈]으로 부정하니 사이가 나쁠 수밖에.


어쨌든 지금은 도움이 필요하다.


“됐구요. [비트코인] 아시죠?”


그런데 갑자기 엉뚱한 반응이 돌아왔다.


[전화 끊어라.]

“예? 아니, 저기, 갑자기 왜.”

[끊어. 내가 링크 하나 보내줄 테니.]


나유신이 눈을 깜박이다 전화를 끊자, 이상한 링크가 왔다.


-<톨로그람 접속〉


어쩐지 악성 클릭을 유도하는 스미싱 문자 같은 링크다.

그런데 부친이라면 충분히 스미싱 문자로 나유신을 골탕 막이고도 남는다.

지극히 마뜩찮게 노려보다 나유신은 링크를 눌렀다.


[메이데이, 메이데이. 접속했나?]


어이없는 메시지가 뜬다.

바로 비밀 소통이 가능한 메신저.

나유신은 낯을 찌푸리다 스마트폰을 눌러 물었다.


[갑자기 왜 이런 걸 깔라고 하신 거예요?]

[한국 통신은 못 믿는다. 누가 도청하고 있을지 몰라.]

[아버지, 지금 90년대도 아니고 21세기가 된 지도 한참이에요. 무슨 도청이에요?]


그러나 법률 불신자, 나재천은 단호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니? 이스라엘에서 개발한 도청 장비를 이용하면, 무선 전화도 도청할 수 있어. 넌 검사면서 그런 것도 모르냐?]


물론 나재천의 말은 사실이다.


보통 유선통신과 달리 무선통신은 도청이 불가능하다고 착각하기 쉽다.

허나 한국의 무선통신은 위성 방식도 아니고 기지국에서 쏘고 받는 방식이다.

해서 전파를 중간에 가로채면 충분히 도청이 가능하다.


다만 그건 막대한 비용이 수반된다.


“그거야 돈도 많이 드는데, 주목 받을 때 얘기지. 나 원.”


나유신이 콧방귀를 뀔 찰나, 나재천이 물었다.


[하여간, 갑자기 왜 비트코인을 거론한 거냐?]


나유신은 망설이다 답했다.


[간단히 말해서, 제 손에 비트코인이 들어왔어요.]

[얼마나?]

[어떻게 입수했는지는 물어보지 않으시나 봐요?]


나재천은 당연하다는 듯 답해왔다.


[돈은 돈일 뿐이야. 코인도 코인일 뿐이지. 입수경로는 둘째 문제다. 중요한 건, 네가 코인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야. 특히 비트코인의 세계는 보유물량이 전부다.]


이게 나유신이 나재천을 싫어하는 또 다른 이유다.


선악불문.

오직 돈만 되면 무엇이든 한다.

아마도 월 스트리트에서 불법 거래도 태연히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지금은 나재천의 능력이 필수적이다.


[이 코인이라는 것의 가치를 알긴 하시나 보군요.]

[21세기의 튤립이지. 단지, 튤립과 달리 시들지 않을 뿐. 얼마나 꽃송이를 갖고 있나?]

[10만 개요.]


진실을 쓰려다, 나유신은 일단 고쳐썼다.


나재천에게 모든 정보를 공개할 필요는 없다.

일단 기초 자금이 마련되면 나유신 스스로도 환전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게다가 나재천이 아들이라고 속이지 말라는 법이 어디있을까?


그런데 한참 동안 나재천이 답이 없다.


[아버지?]


순간, 나재천의 메시지가 빠르게 떴다.


[내가 [고래]들 영업한다고 그렇게 고생했는데, 내 아들놈이 고래였군.]

[고래요?]

[코인을 많이 가진 자들을 말하지. 블록체인의 바다를 유영하는 거대한 고래들. 환전할 수단을 찾고 있냐?]


아무래도 나재천은 이미 비트코인에 눈을 뜨고 거래를 시도하는 중인 모양이다.

조금 불안한 눈으로 나유신은 톨로그램 화면을 보았다.

혹시나, 나재천에게 코인을 빼앗기는 건 아닐까?


[예, 수사활동 [비자금]이 필요해요.]


그럼에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10년 후, 벌어질 사건을 막아야 한다.

그래야 나유신도, 그리고 백희진도 살 수 있다.

무엇보다도 [복수]가 가능해진다.


그러자면 아무도 모르는 수사용 비자금이 필요하다.


[좋아, 그럼 내가 보내주는 링크로 1천 개만 보내라.]


나유신은 미심쩍은 눈으로 다시 [스미싱]처럼 보이는 링크를 누르다, 급히 물었다.


[이게 뭐예요?]

[내 명의의 블록체인 지갑 계좌다.]

[아니, 아버지! 지금 제 코인 먹으신 거예요?]


물론 비트코인은 그 자체를 전송하면 초고속 인터넷으로도 48시간쯤 걸린다.

그렇기에 나유신이 보낸 건 엄밀히 말하면 [지갑] 계좌다.

하지만 나재천 같은 전문가는 그런 계좌만 알아도 [털] 수가 있다.


그런데 나재천이 천연덕스럽게 회신했다.


[그게 아니지, 아들아. 코인을 그냥 환전해 주면 취득 경로가 문제가 되지만, 내가 네게 [증여]를 하면 문제가 안 되지 않느냐? 증여세는 내야겠지만.]


이건 확실히 납득할 수밖에 없다.


나유신이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거액이 생길 수 있는 방법.

특수관계자의 증여다.

그런데 나재천은 미국에서 활동 중인 금융가니 아주 설명이 쉽다.


문득 나재천이 다시 보내오는 [송금액]을 보다 나유신이 물었다.


[그런데, 왜 12억이 아니라 10억이죠?]


비트코인의 현재 시가, 환율, 내역을 생각했을 때 환전금액은 총 12억원이어야 한다.

물론 외환거래 신고, 증여세 납부 절차를 당장은 무시한 상태긴 하다.

하지만 그거야 나유신이 신경쓰면 될 문제.


왜 10억일까?


[그야, 환전 수수료지.]


아무래도 나재천은 악덕 고리대금업자가 확실하다.


***


결국 나유신은 20프로나 뜯겼다.


“역시나, 이래서 내가 아버지와 거래하기 싫었는데.”


게다가 사실 비트코인의 향후 가치를 생각하면, 나유신은 무척 손해본 거다.

하지만 당장 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어쨌든 비트코인이 상승하기를 기다리려면 최소한 5년은 걸릴 테니까.


공원에서 2억원, 혹은 비트코인 시세로 9백억 원이 날아간 쓰린 마음을 달랠 때였다.


-툭.


문득 노담시민 공원 벤치, 옆자리에 후드를 쓴 남자가 앉았다.


“담배 피우쇼?”


나유신은 힐끗 후드남을 보다 대꾸했다.


“아니, 전 안 피우는데요.”

“그럼 나만 피워야겠군. 검사님.”

“예?”


순간 후드남이 후드를 들어 올리며 웃었다.


“덕분에, 죽을뻔 했수다.”


나유신은 선뜩한 기분을 느꼈다.


남춘식.

흑강파 두목, SH금융서비스 살인사건의 용의자, 그리고 마지막 폭발 현장에서 달아난 남자.

손목에 화상을 입은 흔적이 엿보인다.


혹시, 나유신을 죽이러 온 걸까?


“걱정마쇼. 대낮에 공원에서 검사님을 죽일 생각은 없으니까.”

“내 앞에 나타난 이유는?”

“굳이 말하자면, 협상 제안이오.”


남춘식이 공원을 보며 나유신에게 말했다.


“날 쫓지 마쇼. 그럼 나도 검사님 안 죽일 테니까.”


말이 협상이지, 이건 협박이다.

하지만 나유신은 눈을 가늘게 떴다.

왜냐하면 황금문자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5초 예지, 신체 반응, 그리고 정오판정.

그 어느 것으로 봐도, 나유신은 안전하다.

그렇다면 배짱을 부릴만 하다.


나유신이 남춘식을 노려보았다.


“너, 어차피 현상수배범이야.”

“검사가 표적으로 잡으려 드는 것과 아닌 건 차이가 크지. 약속할 거요, 하지 않을 거요?”

“다음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면.”


나유신은 눈을 번뜩였다.


“하지만 다음에, 다시 네가 살인을 저지르면, 난 반드시 잡는다.”


남춘식은 피식 웃다 일어났다.


“대담하시군. 그럼, 협상 성립으로 알겠소.”


한참 동안 나유신은 일어나지 못했다.

안전할 것을 알았어도 식은땀이 흐른다.

사람 목숨을 함부로 여기는 살인마와 직접 대면한 것은 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휴, 죽을뻔했군. 응?”


그 순간 황금문자가 떴다.


[1천억 코인 환치기 사건 종료. 시한부 다음 사건까지 유예.]


생각해 보면 나유신의 목숨을 노리는 건, 이쪽이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

나유신이 코인 환가방법을 찾은 날의 일이었다.


아주, 비싼 방법이었지만.


작가의말

* 물론 1개 당 50-60달러 시절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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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56) 새로운 검찰총장이 백발공적을 보호한다 +10 24.09.12 4,833 107 30쪽
56 (55) 총장의 자백으로 3조 폰지 사기를 부수다 +22 24.09.09 5,140 130 28쪽
55 (54) XBC 폭로로 현직 총장 사모를 붙잡다 +18 24.09.07 5,118 121 28쪽
54 (53) 황금금강석 멤버들은 그린벨트에 3조를 투자한다 +12 24.09.04 5,445 108 28쪽
53 (52) 총장 사모님이 피라미드 거물이다 +20 24.08.30 5,786 114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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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48) 회장 등극식에서 대법관을 이용해 진범을 잡다 +19 24.08.20 6,659 163 21쪽
48 (47) 재벌 회장이 되게 해주세요 +25 24.08.18 6,752 154 34쪽
47 (46) 특수부 폭력이 조폭 진범보다 위다 +20 24.08.14 6,952 167 34쪽
46 (45) 강앤함과 월야 재벌가의 동상이몽을 털어라 +12 24.08.12 7,103 154 24쪽
45 (44) 월야그룹 살인사건을 만나다 +12 24.08.08 7,751 151 25쪽
44 (43) 나유신의 팀을 수도대 동문회에서 완성하다 +14 24.08.06 8,143 166 35쪽
43 (42) 백사여, 노담에서 다시 시작해라 +20 24.08.02 8,276 176 29쪽
42 (41) 시한부 연장권과 함께 중수부가 폐지되다 +20 24.07.31 8,107 193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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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35) 위치 추적 보상과 함께 서울시장 스캔들을 만나다 +22 24.07.17 8,422 186 23쪽
35 (34) 진짜 마약범을 잡고 금수저 변호사와 손잡다 +27 24.07.15 8,367 195 22쪽
34 (33) 골드스컬 클럽을 함정으로 일망타진하다 +17 24.07.14 8,304 190 23쪽
33 (32) 조기유학 금수저 학폭이 사건 진상이다 +16 24.07.10 8,383 182 23쪽
32 (31) 철벽의 성을 대규모 교사 시위로 넘어볼까 +13 24.07.08 8,319 187 22쪽
31 (30) 학교폭력 연쇄 자살사건이 터졌다 +15 24.07.05 8,707 182 22쪽
30 (29) 한국 재계를 뒤엎을 진짜 거물을 만나다 +21 24.07.03 9,007 194 24쪽
29 (28) 노동 살해 협박으로 진범을 잡다 +16 24.07.01 8,855 201 22쪽
28 (27) 솔라코인 전관 법무팀의 방어를 뚫어라 +15 24.06.27 9,042 196 21쪽
27 (26) 특수부 첫 사건은 1조원 분식회계다 +17 24.06.26 9,384 198 22쪽
26 (25) 중수부장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받다 +15 24.06.24 9,589 201 35쪽
25 (24) 백발이를 죽인 자에게 진짜 복수를 해보자 +16 24.06.19 9,314 198 34쪽
24 (23) 백사가 또 검사를 잡았다 +22 24.06.18 9,397 200 22쪽
23 (22) 특수부식 예단수사로 마약통관범을 잡아라 +11 24.06.15 9,441 197 23쪽
22 (21) 이 나라에는 마약도 너무 많다 +17 24.06.13 10,214 210 24쪽
» (20) 첫 기자회견과 함께 위수증 5백억 코인이 남다 +19 24.06.07 10,211 224 36쪽
20 (19) 5초 예지로 폭발 속 범인을 잡다 +14 24.06.06 10,102 221 24쪽
19 (18) 감옥에 보낼 놈은 내가 고른다 +14 24.06.04 10,090 218 18쪽
18 (17) 1천억 비트코인 사건을 5초 예지로 파헤치자 +14 24.05.31 11,097 219 31쪽
17 (16) 나를 건드리면 검찰총장 예정자도 가만 안 둔다 +25 24.05.29 10,979 233 26쪽
16 (15) 독사를 건드리면 제왕도 문다 +20 24.05.27 11,054 237 30쪽
15 (14) 공판부 땜방으로 백발검사를 보내라 +10 24.05.24 11,548 223 30쪽
14 (13) 언론비리 일망타진으로 신체감정 보상을 받다 +11 24.05.23 12,155 230 31쪽
13 (12) 특활비 별건수사로 무전취식 기자를 잡자 +12 24.05.21 12,245 237 21쪽
12 (11) 사고뭉치에게는 법카부터 먹여줘라 +13 24.05.20 13,451 243 21쪽
11 (10) 나유신이 주가조작 일당을 함정수사로 잡았다 +17 24.05.20 13,516 262 21쪽
10 (9) 오풍제지 그래핀 사기를 경찰공조로 잡는다 +16 24.05.18 14,346 257 25쪽
9 (8) 정오판정으로 오풍제지 주가조작을 발견하다 +16 24.05.17 14,705 276 15쪽
8 (7) 선배가 장애물이면 부수고 해결한다 +15 24.05.14 15,097 280 22쪽
7 (6) 상태창의 보상은 놓칠 수 없다 +23 24.05.12 15,956 296 27쪽
6 (5) 의원 하나 잡고 시작하자 +20 24.05.11 15,732 290 14쪽
5 (4) 신입 수석검사가 꼴통이래 +15 24.05.10 16,983 307 15쪽
4 (3) 범인을 잡으니 시한부 연장 +16 24.05.09 18,128 292 11쪽
3 (2) 우선 범인부터 잡고 죽자 +17 24.05.08 19,689 312 13쪽
2 (1) 백발 신입검사 나유신 +25 24.05.08 22,924 354 11쪽
1 프롤로그 : 시한부 상태창이 생겼다 +42 24.05.08 30,114 416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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