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검사는 거물이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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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의신
작품등록일 :
2024.05.08 10:01
최근연재일 :
2024.09.18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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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8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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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쪽

(47) 재벌 회장이 되게 해주세요

DUMMY

사실, 검사보다 미친 사람은 생각보다 적다.


“야! 이 미친 새끼들아! 당장, 나 안 내보네? 변호사 불러, 시발!”


수도중앙지검 특수부 심문실 안에서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다.


-쿠당탕!


사정국은 그 소리를 듣다 메모장에 적었다.


“손괴죄 추가.”


세상 온갖 범죄자와 충돌하는 게 검사다.


범죄란 사회가 정한 규칙을 어기는 행위다.

보통은 미치지 않고서야 범죄를 태연히 저지르긴 어렵다.

그러니 실로 온갖 미친 사람과 충돌하는 게 검사란 뜻이다.


나유신처럼 공부만 하는 검사도 있지만, 그런 검사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아주 대가 세고 독기가 있는 사람이 검찰에서 오래 일하며 승승장구하기 마련이다.

평소에 물로 보이는 사정국도 나름 독기 있는 특수부 검사다.


문득 사정국에게 꼭 조폭처럼 생긴 수사관이 다가와 물었다.


“사정국 검사님, 이렇게 무작정 집어넣어도 되는 겁니까?”

“왜, 우리 특수부 후배에게 벌어진 일이잖나.”

“아무리 그래도 특별한 사건도 없는데, 무작정 처넣는 건, 좀.”


사정국은 자신의 2배쯤 될 수사관을 향해 을러댔다.


“이봐, 손영표 계장. 검사가 조폭 하나 집어넣지 못하면 그게 칼잡이야? 그냥 펜대만 놀리는 새끼들하고 뭐가 달라?”


특수 1부 검사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물론 검사가 칼잡이란 한자는 아니지만, 다들 그렇게 부르곤 한다.

한데 칼잡이가 일반적인 법률가와 다른 게 뭘까?

결국 법이라는 칼을 범죄자에게 휘둘러야 그 면모가 드러난다.


그때 뒤에서 구경하던 염민아가 호들갑을 떨며 손뼉을 쳤다.


“와, 갑자기 용감하네? 정치인 앞에선 설설 기더니.”

“쯧! 후배들 앞에서 내 용맹함을 보여주려고 했더니, 동기가 초를 치는구만. 뭐, 좀 나온 거 있어?”

“나오긴 뭐가 나와. 나검이 잡아달라고 해서 그냥 처넣은 건데. 참.”


염민아가 콧방귀를 뀌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2부의 백시혁이 월야그룹 사건 조사하고 다니던데, 그건 또 왜 그런지 혹시 알아?”


중수부가 사라지면서 수도중앙지검에는 특수부가 늘었다.


숫자는 셋.

3부가 바로 유명세와 박달한, 백희진이 포진한 옛 특별TF 검사팀이다.

그런데 부서가 3개면 당연히 2부도 존재한다.


아직 특별한 사건을 맡지 않아, 존재감이 없는 2부가 갑자기 월야에 관심을 갖는다?

이건 뭔가 이상하다.

1부 소속 검사, 김명주가 깜짝 놀라 물었다.


“백시혁, 검사님이요? 월야 사건은 우리 특수부하고 아무 상관도 없는 일 아닌가요?”


사정국은 콧방귀를 뀌며 외쳤다.


“우리는 무슨, 2부랑 우리 1부는 엄연한 차이가 있지. 정통 특수부는 오직 1부뿐!”

“저렇게 헛소리하는 선배가 되면 안 되겠지? 어쨌든 그래서 내가 물어보는 거야. 백시혁이 월야랑 무슨 관계라도 있나?”

“진짜라고, 염 검사! 다른 특수부는 조직 개편 때 언제든 없어질 수 있어! 하지만 특수 1부는 앞으로도 유구하게 남을 정통 조직이야!”


염민아가 비웃었지만 사실 사정국 말이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다.


특수부라는 개념이 존재하는 한, 수도중앙지검에 특수1부는 존속할 수밖에 없다.

어쨌든 수도는 모든 사건의 중심지니까.

허나 검찰의 수사권이 축소된다면 특수 2부나 3부는 자연히 폐지수순을 밟게 된다.


그때 또다시 심문실 안에서 굉음이 났다.


-쿠당탕!


잡혀 있는 남자, 하대진의 고성이 울려 퍼졌다.


“당장 내보내라고! 이 [검새] 새끼들아! 아무 죄도 없는 시민을 이렇게 무작정 붙잡다니! 직권남용이다! 전부 고소하겠어!”


검찰에 잡혀 와도 전혀 기가 꺾이지 않는 조폭.

하대진의 기세 등등한 외침을 듣다 사정국이 혀를 찼다.

확실히 보통 상대는 아니다.


“저놈이 진범이든 아니든 고생깨나 하겠군.”

“진짜 고생은 따로 있지.”

“뭔데, 염검?”


염민아가 턱짓하며 대꾸했다.


“저기, 강앤함 변호사 군단이 오는데?”


어느새 수도중앙지검 복도에 양복쟁이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보통 검사들이 입는 기성 양복이 아니다.

수제로 만들어진 고급 양복.


선두에 선 전직 검사, 유검성을 보다 사정국이 낯을 찡그렸다.


“유 선배잖아? 빌어먹을, 백사가 우리를 시킨 이유가 있군!”


어쨌든 전관은 어떤 검사에게든 가장 까다로운 상대다.

강앤함에 월야그룹까지 뒤에 있다면 더욱 그렇다.


***


이 모든 일을 전화 하나로 사실상 지시한 장본인은 한가하게 커피를 마시는 중이다.


“원하는 대로 사정국 들쑤셔서 잡았는데, 그 다음엔 어쩔 거냐?”


특수 3부 부장, 유명세가 물었다.


유명세는 이런 사건을 좋아하면서도 피한다.

언론 타기 좋은 사건이란 점에서 아주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월야그룹 상속분쟁이라는 위험한 사안에 직접 손대기는 싫어한다.


그래서 나유신이 이 사건에 뛰어들었다는 걸 알자, 관심을 갖고 보던 중이다.

그런데 나유신이 SOS를 쳐왔다.

조폭이 협박을 했는데 바로 쳐부술 수단과 방법이 부족하다고.


특수부에서는 쉬운 상대다.

일단 대형조직 중간 두목은 검찰정보실에서 관리한다.

사건이 터지면 바로 잡아들여 조직을 해체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사무실 위치나 동선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게다가 검사를 협박했다니.

특수부 수사관들을 파견하기도 딱 좋은 명분이다.


문제는 구속영장이 발부되지 못하면 48시간 이내에 풀어줘야 한다는 거다.


“타초경사라고 아시죠?”

“뭐냐, 고사성어? 그 풀을 건드리면 너 같은 놈이 튀어나온다는 거?”

“뱀이 기어 나오죠. 그거 아세요? 아직도 한강에선 수풀 속에 뱀이 있습니다. 옛날 일이 아니란 거죠.”


나유신은 커피를 홀짝이다 눈을 빛냈다.


“하대진을 치면, 그 뒤에 있는 [진짜] 배후들이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빠르게.”


이미 나유신은 알고 있다.


살해교사범이 하무식이란 사실을.

하무식은 쓰러진 하유식의 이복동생으로 경영권에서 밀려나 있던 자다.

경영권 외곽에 있던 부회장이 회장의 사모를 죽이라고 교사했다?


이건 경영권 분쟁이 확실하다.

한데 하대진이 검찰의 가시권 안에 들었다는 게 알려지면, 교사범은 불안해질 것이다.

당장 자백하지야 않겠지만 언제 검찰이 증거를 찾아낼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 하무식도 움직이게 될 게 뻔하다.


“잠깐, 배후들이라니? 복수형으로 말하는군?”


문득 나유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유명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범인 하나가 아닐 수도 있잖아요?”

“단지 그 이유냐? 아니면, 뭔가 쥔 카드가 있나? 좀 펴봐. 너 혼자 처리하는 게 아니잖아?”

“드러나면 범인은 쥐어드릴게요. 아직은 확실하지 않아요.”


나유신이 종이로 된 커피잔을 구기며 말했다.


“그러자면 [함정]에 배후들이 걸려들어야 해요.”


그러니까 함정 수사다.


***


그런데 이 사건에 관계된 [플레이어]는 검찰과 월야그룹만이 아니다.


“어때, 수사는 잘 되어 가나?”


바로 변호사들도 있다.


나유신은 검사실 안에서 한강민을 발견하고 멈췄다.

마치 제집처럼 편안하게 쉬는 중이다.

홍신정 쪽을 돌아보니 무표정한 얼굴로 답할 뿐이다.


“사전에 약속되어 있다고 하시던데요? 쫓아낼까요?”


나유신은 미간을 찌푸리다 고개를 저었다.


“됐어요. 뭣 때문에 왔지, 한강민? 유언장이라면 못 내줘. 혹시 정보를 제공한다면 모를까.”


한강민이 어깨를 으쓱였다.


“의뢰인 문제야. 내 의뢰인이 하주연인 건 알지? 그런데, 숙부뻘 되는 분이 행패를 부리다가 잡혔다고 하던데?”

“하대진? 조폭 말하는 건가? 혹시 그 작자가 문제를 일으킨 거라면 경찰에 연락해. 아니면 경호원을 구하든가.”

“벌써 그렇게 하고 있어. 일진회에서 한 번 기습하는 사건이 있었거든.”


자리에 앉던 나유신이 멈췄다.


“뭐? 재벌가 아가씨를 조폭이 습격했다고?”


고거경도, 홍신정도 놀라 돌아보았다.


하주연은 월야그룹의 장손녀다.

상속의 핵심이 굳이 아니라도 평소에 늘 운전기사와 함께 다닐 것이다.

한데 재벌가에서 운전기사란 경호원을 겸하는 존재다.


그럼에도 조폭이 습격했다면, 이건 치안 문제기도 하다.


“왜? 이건 170조원이 걸린 사안이야. 조폭이든 뭐든 수단을 가릴 때가 아닌 거지.”


한강민이 아주 당연하다는 듯 대꾸했다.


170조 원, 이건 월야그룹의 시가총액을 의미한다.

이게 전부 월야그룹의 돈은 아니지만, 월야그룹이 한국에 갖고 있는 영향력을 상징하는 금액인 것은 맞다.

누군가 월야그룹의 키를 쥔다면, 170조 원을 움직일 수 있다.


나유신은 빤히 한강민을 보다 대꾸했다.


“하대진은 곧 풀려날 거야. 48시간 내에.”

“추가 영장청구 안 하나?”

“굳이 그럴 이유가 없지. 이제 화가 난 뱀이 온 사방을 들쑤시고 다닐 텐데.”


한강민이 고개를 주억거리다 되물었다.


“너부터 조심해야겠군. 화성 시큐리티, 붙여줄까?”


이래저래 한강민은 나유신 옆에 사람 붙이기를 즐기는 모양이다.

벌써 조사원 채용 명목으로 설장수를 붙여놓고도 부족한 걸까?

아니면, 정말 신변을 걱정해서일까?


나유신은 냉소하며 대꾸했다.


“대한민국 검찰 우습게 보지 마. 이미 수사관들 준비되어 있어. 노담남부 경찰서에서도 협조하기로 했고.”

“그 정도로는 부족할 텐데.”

“표적이 정해져 있을 때는 달라.”


만약 살해 표적이 광범위하다면 수사기관이 보호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위협을 받는 존재가 검사 하나라면, 보호 난이도는 굉장히 낮아진다.

아무리 조폭이 날고 기는 폭력의 스페셜리스트라도 국가기관의 방어를 뚫기는 어렵다.

또한 나유신은 사실 전직 킬러를 부하로 두고 있기도 하다.


그때 한강민이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진범은 하무식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나유신은 잠시, 한 박자 생각하다 답했다.


“아니, 하대진.”

“무슨 소리야? 나검도 이젠 대충 사건 윤곽을 알 텐데. 이건 상속 사건이고, 또.”

“살인사건에서 정범은 교사범이 아니야. 그 배후에 있을 누군가는 더욱 아니지. 오직, 정범이 진범이다. 도구로 쓰인 게 아닌 이상.”


이게 상속분쟁이라면 사건의 배후자가 중요하다.


하지만 나유신에게 이 사건은 살인사건이다.

혹시 순수하지 못했을지 몰라도, 죽어야 할 이유는 없었던 한 노인이 죽은 사건.

그 사건의 진범은 나유신에게 하대진이다.


한강민은 눈을 깜박이다 물었다.


“그럼, 대체 왜 풀어주는 건데?”


진범을 잡았는데 굳이 풀어줄 이유가 뭘까?

용의자를 구속수사하는 게 불구속보다 훨씬 쉽다는 건 상식이다.

순간 나유신이 이를 갈며 대꾸했다.


“증거가 없으니까.”

“뭐?”

“이연자를 살해한 증거가 없어. 그러니 처벌하려면.”


일순, 나유신이 한강민을 정시했다.


“제 입으로 자백하게 만들어야 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뚫어져라 나유신을 보던 한강민이 입가를 틀어 웃었다.


“흥미롭군. 그럼, 나도 정보 하나를 주지.”


나유신이 그리고 있는 그림이 마음에 든 모양이다.


사실 나유신은 꼭 증거가 없어서 이러는 건 아니다.

황금문자의 [시한부 기간], 44일이 이제 10일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아주 무모하고, 대담한 승부수일 것이다.


재벌가 금수저 변호사, 한강민이 나유신을 보며 말했다.


“하무식이 곧 움직일 거야.”

“뭐?”

“네가 그 살인 용의자를 잡은 것 때문에 마음이 급해졌겠지? 뭐, 그거랑 상관없이 열리는 걸수도 있지만.”


한강민이 묘하게 웃었다.


“월야 지주사 이사회 개최가 발표되었어. 안건은 대표이사 해임과 새로운 대표 선임. 누가 대표가 될지는 잘 알겠지?”


나유신은 미간을 좁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하대진을 더욱 풀어줘야겠군.”


왜냐면 범죄자들은 위기에 몰리면 서로 협력하는 대신 싸우니까.


***


법치주의 사회에서 폭력은 당연히 불법이다.


“대체 이 머저리가 뭘 하고 다니는 거야! 이 중차대한 시기에!”


고급형 테블릿에 떠오른 기사를 보며, 하무식 월야그룹 부회장이 분노하는 이유다.


-〈속보, 검사 협박 조폭 긴급 체포, 월야그룹 관계자로 알려져〉


재계 3위, 시가총액 170조원의 월야그룹.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대기업집단.

이 거대한 재벌은 현재 두뇌가 없다.

최고결정권자인 총수가 식물인간이 되었고, 후계자는 둘 다 죽었다.


심지어 총수 부인이 총격으로 죽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대혼돈 그 자체다.

하지만 그동안 그룹 경영에서 한 발짝 밀려나 있던 이들에게는 혼돈이야말로 기회다.


이런 [사고]는 어떤 의미에서는 혼돈을 더욱 부추길 수도 있다.

그룹 총수가 새롭게 탄생해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논리도 성립하니까.

앞에 선 채 보고를 기다리던 [이사진]들이 신나게 떠드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부회장님, ‘그런’ 작자가 어떻게 되든 무슨 상관입니까?”

“이렇게 된 이상 연을 끊으시지요! 잘 됐습니다!”

“아니, 검사를 협박하다니. 미친 거 아닙니까?”


그러나 하무식은 이사들을 노려보며 오히려 호통쳤다.


“모르면 가만있어! 하대진이가 쥐고 있는 게 뭔지나 알아!”


월야그룹 이사들이 눈치를 살피며 입을 다물었다.


기회를 노리는 자에게 혼돈은 좋은 일이다.

그 혼돈이 본인과 관련이 없다면.

문제는 하대진은 하무식이 아주 유용하게 쓰던 [칼]이란 점이다.


이런 문제를 대놓고 얘기할 수 없으니, 하무식은 화만 내고 이사들은 영문을 몰라 서로 쳐다볼 뿐이었다.

하무식은 넥타이를 잡아 뜯으며 이를 갈았다.

일단 하무식이 잡혔으니 언제 어떤 진술이 나갈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 전에 확고히 자리를 빨리 잡아야 한다.


“하여간, 이사회 준비는 어떻게 되어 가지?”

“예, 월야 지주회사의 대표이사 해임, 신규 대표 선임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내일입니다.”

“지금 대표가 원래 죽은 성진이 쪽 사람이었지?”


이사들 중 가장 선임인 월야지주사 이사, 최경민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맞습니다. 부회장님께서 직접 지주회사 대표로 앉으실 때가 됐죠.”


다른 이사들은 엄밀히 말해 계열사의 임원들이다.


사실 하무식은 이름만 부회장이라 자기 사람이랄 게 별로 없었다.

만약 후계자가 연이어 죽고, 총수가 쓰러지는 연쇄사태가 벌어지지 않았다면 하무식 라인에 설 이사 자체가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허나 총수와 직계 둘이 죽자, 엉뚱하게도 허수아비였던 부회장이 최선임 임원이 되었다.


최경민을 비롯한 이사들이 달려와 하무식 라인에 급히 서게 된 연유다.

하무식은 보고서를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주사만 장악하면 일단 경영권은 하무식 손에 들어온다.


그 다음, 주주 구성을 바꿔야 한다.


“일단 지주회사 대표만 되면, 신주 발행부터 시작하지.”

“상속절차를 기다리시지 않구요?”

“그 상속, 유언장이 어떻게 되든 누구에게 가겠나? 다 형님 자식과 손자들에게 가지 않겠나?”


문득 하무식이 최경민을 힐끗 보며 대꾸했다.


“우리 쪽에 하나도 유리할 게 없어.”


당연히 현 상황에서 대주주는 식물인간 하유식이다.


한데 이연자가 가졌던 지주회사 지분이 있다.

먼저 죽은 두 아들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인데, 이 지분을 이연자가 상속받은 것이다.

생전 어떻게 유언장을 써놨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연자의 지분이 시동생 하무식에게 올 일은 당연히 없다.


그렇다면 하무식이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두 가지다.

경영권을 잡은 기회에 주주구성을 바꿔버리거나, 아니면 또 다른 대주주와 연대하거나.

최경민이 눈을 굴리다 [후자]의 방법을 거론했다.


“부회장님, 그럼 [작은 사모님]과 연대하시는 건은 어찌 하실지?”


그때다.


-딸랑.


부회장실 문앞에 달린 종소리가 울렸다.

본래 비서가 먼저 출입을 통제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던 모양이다.

구둣소리가 요란하게 바닥을 울린다.


-또각, 또각, 또각.


비서조차 막을 수 없는 자.

로열패밀리.

죽은 후계자 하경진의 부인이며 한때 탑스타였던 윤서희가 부회장 앞에 섰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작은 아버님.”


하무식은 윤서희에게 시아버지의 이복동생이니 작은 아버님이라 부르는 것이다.

이사들이 서로 쳐다보며 어찌할 바를 모를 찰나.

부회장이 입을 열었다.


“나가 있어.”

“예? 부회장님, 아직 보고가 덜 끝났습니다만.”

“닥치고, 나가!”


최경민을 비롯한 이사들은 쩔쩔매며 밖으로 나섰다.


아무리 날고 기는 대기업의 임원들이라도, 오너 일가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가 되어 버린다.

왜?

오너 일가는 절대 지분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이 거대한 월야그룹을 좌우할 수 있는 경영권을 말이다.

다만 윤서희는 엄밀히 말하면 본인 명의로는 1주도 없다.

아들인 하무휼의 명의로 된 주식이 있을 뿐이다.


윤서희가 하무식을 빤히 보다 말했다.


“최경민 이사는 충직한 사람이에요. 작은 아버님.”

“여기에 온 이유가 뭐냐?”

“홍복원 대법관님이 이상한 말씀을 하셔서요.”


문득 윤서희가 아직도 매력적인 눈으로 하무식을 정시했다.


“작은 아버님이 저를 일절 배제하고, 월야 지주사의 이사회를 교체하려고 한다더군요.”


홍복원, 전직 대법관으로 강앤함의 변호사.


현재 이번 상속분쟁에서 하무식의 대리인이기도 하다.

한데 윤서희가 왜 홍복원의 이름을 거론할까?

그건 홍복원이 대리하는 사람이 하무식만이 아니란 뜻이다.


하무식은 낯을 찌푸렸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나. 애초에 네 [부정]을 유야무야 덮는 조건으로, 내가 월야 대표가 되기로 하지 않았느냐?”

“저를 이사로 선임하겠다는 약속도 해주셨죠.”

“아니, 그건 형수님이 돌아가시기 전 얘기고.”


그 순간 윤서희가 아주 정확한 [딕션]으로 대사를 읊듯 말했다.


“시어머니 명의의 월야 주식 22프로, 그중 절반은 원래 내 남편 것이라는 거 잊으셨나요? 생전증여를 약속한 계약서도 있죠. 홍복원 대법관님이 공증해 주신 거예요.”


그러니까 윤서희와 하무식은 서로 손을 잡았다.

월야그룹 경영권을 잡기 위해서.

그렇지만 하무식은 갑자기 빨리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엄연히 동맹인 윤서희와 아무런 논의도 없이.


“죽으면 상속이 우선이야.”

“유언장이 있나요?”

“글쎄, 그건 검사 놈들이 알지 않을까? 하긴, 그놈들이 가져간 건 아직 돌아가시지는 않은 형님 거지.”


하무식이 너스레를 떨 때, 윤서희가 눈을 가늘게 떴다.


“작은 아버님, 지금 ‘대진 씨’가 잡혀갔다고, 저를 배신할 셈인가요?”


대진 씨.

꼭 하대진을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런데 어째서 하씨 가문의 방계인 하대진을 윤서희가 친숙하게 부르는 걸까?


하무식의 낯이 굳어졌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나.”

“지금까지 우리 약속의 보증인은 대진 씨였죠. 그런데 검찰이 대진 씨를 잡아갔어요. 그래서 절 배제하시려는 거 아닌가요?”

“허, 일단 난 그런 망나니는 모른다. 크흠!”


하무식이 고개를 돌리며 헛기침을 하자 윤서희가 차갑게 물었다.


“그 말씀, 대진 씨에게 전해도 되죠?”


이건 하무식이 수인할 수 있는 한도를 넘어섰다.


상대는 조카 며느리다.

경영에 대해 뭘 아는 것도 없고, 또한 하무식이 지금껏 해온 노고와 비교도 할 수 없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아들인 하무휼이 법적으로 하씨 일가 상속인이라는 것만 믿고 설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하무휼은 정당한 상속자도 아니지 않은가?


“위협하는 거냐? 너, 지금!”


하무식이 격분해 일어설 순간 윤서희가 업무용 책상 위, 유리잔을 잡아 던졌다.


-쨍그랑!


화를 내려다 하무식이 입을 쩍 벌렸다.


“이, 이게 무슨 무례한 짓이냐!”

“이사회에서 저를 배제하려 든다면, 후회하실 거예요.”

“감히 지금 월야그룹의 부회장이자 집안 어른인 내게 무슨 짓이야! 부정이나 저질러서 형님도 쓰러지게 만든 주제에!”


순간 윤서희의 눈에서 불꽃이 튕겼다.


“내 아이는 하씨 집안 자손이에요. 부회장님이 뭐라고 하든! 정당한 승계를 할 권리가 있어요! 난 그걸 지켜줄 거구요!”


아주 묘한 얘기다.


윤서희는 부정을 저질러 하무휼을 낳았다.

그건 하경진의 아들이 아니란 얘기다.

그런데 정작 윤서희는 하무휼이 하씨 집안 자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무식은 윤서희의 말에 비웃는 대신, 이를 갈며 마주 노려보았다.


“그럼 예의를 갖춰라. 또한, 이번 이사회에서 네 자리는 없다.”

“작은 아버님!”

“무휼이 상속지분을 건드리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겨라. 법이 어찌 됐든, 너나 무휼이에겐 본래 아무 권리도 없어!”


윤서희가 미처 답하기도 전에 하무식이 밖을 가리켰다.


“나가!”


파르르 입술을 떨던 윤서희가 돌아섰다.

지금은 하무식이 압도적 우위에 있다.

왜냐면 검찰이 하대진을 체포해 버렸기 때문이다.


하무식은 윤서희가 나가는 뒷모습을 보다 툭 뱉었다.


“사생아의 뷸륜 자식을 낳은 주제에, 어이가 없군!”


배우의 귀는 예민하다.

윤서희도 그 말을 들었다.

밖으로 나설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윤서희는 아주 낮게 뇌까렸다.


“후회하게 될 거예요. 작은 아버님.”


이제 동맹은 파기다.


***


엄밀히 말해 현재 하대진은 긴급체포 상태다.


-덜컹!


거울과 기물이 파손된 심문실이 열렸다.


“뭐야?”


하대진은 누가 들어오든 한 대 때려줄 기세로 벌떡 일어났다.

그런데 하대진을 처넣은 사정국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박달한이 들어섰다.

일단 자신보다 더 큰 거구에 하대진이 머뭇거릴 찰나, 호쾌하게 웃으며 박달한이 말했다.


“48시간이 지났거든. 하대진.”

“하! 변호사들이 그렇게 쳐들어와도 안 풀어주더니. 당신들, 직권남용으로 전부 고소할 거야!”

“그러든가 말든가. 아, 그런데 이 소식 들었나?”


박달한은 머리를 긁적이나 나유신에게 들은 바를 읊었다.


“월야그룹이 이사회를 연다던데. 지금 대표를 자르고 부회장이 대표이사가 된다더군. 아주 급하게 진행할 모양이야. 내일이라던가?”


이게 무슨 의미인지 박달한은 모른다.

단지 전해달라고 요청받았을 뿐이다.

한데 하대진의 낯빛이 바뀌었다.


“내일?”


박달한은 바삐 뛰쳐나가는 하대진의 등 뒤에 대고 말했다.


“그래. 하여간, 자네도 월야그룹 집안 사람이니까 알아둬야 할 거 같아서. 참, 검사 협박하거나 위해라도 정말 가하면, 너 그때는 끝장이다?”


그러나 하대진은 더 이상 박달한의 말을 들을 시간이 없었다.


“내일이라니, 이건, 말도 안 돼! 변호사, 내 스마트폰!”


지금, 뭔가 틀어졌기 때문이다.


***


긴급체포가 구속과 다른 점은 48시간 내에 풀어줘야 한다는 점이다.


“아주 급하게 가는군요.”


오풍쉐어링 보안팀장, 설장수가 나유신에게 말했다.


이곳은 오풍쉐어링 공실.

설장수가 보고 있는 것은 [추적기]를 달아놓은 자동차의 발신 표시다.

그 추적기는 당연히 하대진의 차에 붙어 있다.


나유신이 설장수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는지 추적됩니까?”

“제 조사 도와주는 친구들 몇 명 붙여놨습니다. 옛날에 보험사 있을 때부터 함께 했던 직원들이지요.”

“유능합니까?”


설장수가 웃음기 하나 없는 진지한 얼굴로 답했다.


“보험사기 조사에서 단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는 조사원들입니다. 흥분한 조폭 하나 추적하는 거야 일도 아니죠. 어디.”


GPS를 보던 설장수가 미간을 좁혔다.


“이런, 엉뚱한 곳으로 갔군요.”


이게 나유신이 위험하기 그지없는 하대진을 풀어준 이유다.


사실 검찰이 원한다면 구속영장을 받아 20일 정도 가두는 건 일도 아니다.

또한 협박과 손괴를 결합하면 구속수사도 불가능하지 않다.

허나 나유신은 긴급체포 요건만 일부러 갖췄고, 자연스럽게 풀려나게 만들었다.


아주 간단한 이유다.

월야그룹이 하대진의 해방을 예측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나아가 하대진의 동선을 파악하고자 함이다.


나유신이 GPS를 옆에서 보다 물었다.


“누구 집이죠?”


턱을 쓰다듬던 설장수가 답했다.


“죽은 하경진 월야지주사 사장의 아내, 윤서희 씨입니다. 유명 배우였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왜 둘이 만났을까요?”


나유신은 눈을 크게 떴다.


하선희의 진술.

하대진의 움직임.

황금문자의 교사범과 살인범 판정.


여기에 한강민의 정보까지 합쳐지자 사건의 그림이 완전히 보인다.


“살인교사범이 한 명 더 있었군요. 그게 이 사건의 본질이었어요.”


그러니까 윤서희가 바로 또 다른 살인교사범인 것이다.


***


재계 3위, 월야그룹을 지배하는 정점은 법적으로는 지주회사다.


“이게 대표님 혼자 잘해서 된 게 아니란 건 잘 아시죠? 후후후.”


월야그룹 부회장실은 지주사 최고층, 바로 아래에 있다.


물론 가장 높은 곳은 회장실이다.

한데 부회장 하무식은 회장실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중이다.

이제 월야그룹의 [키]가 누구에게 쥐어질 지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그러나 차기 월야그룹 회장을 눈앞에 둔 지금.

하무식 부회장은 아주 난처한 얼굴이다.

손님이 그저 힘으로 짓누를 수 있는 상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손님, 전직 대법관 홍복원을 향해 하무식이 대꾸했다.


“잘 알고 있습니다. 대법관님.”

“시대모터스 조군명 사장님이 전하신 말씀입니다. 본인은 이번에 이사진에 들어가는 것만으로 만족하신다구요.”

“나중에 월야그룹이 자동차 사업에서 완전히 손 떼고, [빅딜]하는 조건이지요? 기억하고 있습니다.”


시대모터스 조군명 사장, 한국 최대 자동차 회사 사장인 동시에 시대그룹 3세다.


거대한 월야그룹을 집어 삼키는 일.

홀대받아 왔던 회장의 이복동생 혼자서 하기는 어렵다.

당장 자본부터 너무 모자란다.


부족한 자금을 채워줄 외부 스폰서가 필요했는데, 그게 시대모터스였다.

마침 시대그룹 승계 때문에 역시 업적이 필요했던 조군명은 아주 손쉽게 나섰다.

그 가교를 맡았던 게 시대그룹 자문변호사인 홍복원 전 대법관이다.


그런데 홍복원을 돌아보며 하무식이 무뚝뚝하게 물었다.


“그런데 왜 서희에게 이사회 문제를 거론하셨습니까?”


얼마 전 죽은 하경진의 부인, 윤서희가 찾아왔다.

그때 윤서희는 월야의 새 이사회 구성에 대해 홍복원 변호사에게 들었다고 말했다.

이건 하무식 입장에서는 성가신 집안 개입이다.


홍복원은 입가를 틀며 책상을 두들겼다.


“그야 부회장님께 제 존재를 인식시키기 위해서지요.”

“대법관님. 굳이 그러지 않으셔도, 제가 알아서 챙겨드립니다.”

“이런, 정말 그렇습니까? 하대진인가 하는 건달이 잡혀들어간 후, 부회장님의 마음이 완전히 달라졌다던데요.”


문득 홍복원이 눈을 번들거리며 되물었다.


“이사회 소집부터 제게도, 조군명 사장에게도 전혀 통지하지 않고 시작하셨다지요?”


이번 월야지주사 이사회 소집은 갑작스러운 일이다.


사실 시대그룹이나 홍복원 입장에서, 경영권 교체 작업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총수 하유식 회장이 쓰러진 시점부터 시작된 일이다.

비록 갑자기 이연자 여사가 죽는 사태가 벌어지긴 했지만, 경영권 교체 자체는 차질없이 진행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전 논의도 없이 하무식이 이사회 개최를 공표해 버린 것이다.

거래가 틀어질 위험을 느꼈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

당사자 중 하나, 윤서희에게 홍복원이 이사회 정보를 슬쩍 흘린 것도 그 떄문이다.


하무식이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


“대법관님, 그건 어디까지나 긴급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서.”

“건달 하나 잡혀간 게 뭐가 대수인 겁니까? 무슨 일을 시키셨는지 모르겠지만, 그저 깡패 새끼 아닙니까? 반면에 우리가 진행하는 일은 [대업] 아니겠습니까.”

“잘 알죠. 170조짜리 비즈니스. 게다가 계열사 빅딜까지 고려하면 그 2배가 될 수도 있는 거래지요. 하지만.”


문득 하무식은 고뇌에 찬 얼굴로 일렀다.


“만사불여는 튼튼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 조심하지 않을 수 없지요. 특히 집안에 초상이 난 상황에선.”


형수, 이연자가 죽은 게 이유라는 얘기다.

물론 상속 관계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긴 하다.

허나 살아있는 이연자가 더 위험한 존재였음은 상호간에 뻔한 소리다.


문득 홍복원이 하무식을 물끄러미 보다 책상을 다시 두들겼다.


“혹시 말입니다. 그 초상, 또 날 수도 있습니까?”

“무, 무슨 말씀입니까?”

“아니, 듣기로 건달이 검찰에서 어제 나왔다던데요.”


홍복원은 묘하게 웃으며 일렀다.


“부회장님도 아시나 해서.”


이건 하무식이 미처 몰랐던 정보다.


월야그룹의 실권을 쥐기 시작했다 해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동안 그룹 경영에서 소외되어 왔던 하무식은 검찰에 아무런 네트워크가 없다.

결국 갑작스런 체포도, 또한 해방도 사전에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때 회장실 문밖에서 충돌하는 소음이 들렸다.


-쿠당탕!


문이 벌컥 열리고 보안요원들이 애써 막는 소란이 일어났다.


“안 됩니다. 지금 부회장님, 회의 중이십니다! 사전에 약속하고 오셔야!”

“내가 언제부터 [어르신]과 사전 예약제로 회의를 했지? 비켜!”

“물러나십시오, 억!”


그 순간 보안요원을 주먹으로 두들겨 패며 한 남자가 뛰어들어왔다.


-퍽!


보안요원들이 널부러진 모습이 보인다.

남자는 문신이 그려진 팔로 머리를 쓸어올리며 숨을 골랐다.

일순, 남자의 시선이 홍복원을 향했다.


“여, 대법관님도 계셨네? 어르신, 제가 [빵살이] 잠시 하고 나오니 갑자기 세상이 뒤집어지네요? 대화 좀 해도 되겠습니까?”


남자는, 그러니까 하대진은 구치소조차 간 적이 없다.


그러니 ‘빵’에서 살았다는 과장 그 자체다.

하지만 고작 48시간 사이 정말 많은 급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섣불리 검찰 체포가 오래 갈 거라 생각했던 하무식이 조급하게 움직여버린 거다.


가만히 상황을 살피던 홍복원이 양복을 고쳐 입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씀 나누시지요.”

“아, 대법관님. 이게 말입니다.”

“내가 낄 자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


홍복원은 하무식을 냉정하게 응시하다 툭 쏘았다.


“약속은 지키셔야 합니다. 부회장님.”


물론 그 약속을 지킬 힘이 부회장 하무식에게 남아 있을 때 얘기지만 말이다.


***


회장실, 아주 방음이 잘 되는 공간에 단 둘만이 남았다.


“이게 무슨 짓이냐, 대진아?”


하무식은 초조한 얼굴로 물었다.

그 모습을 보다 하대진은 입가를 틀며 잔에 물을 따랐다.

항상 우위에 서서 지시하던 부회장이 떠는 모습을 보니 어쩐지 쾌감이 돈다.


진작 이렇게 할 걸 잘못했다.


“사전에 약속했지 않습니까.”

“뭘 약속했다는 게야? 너는 내 지시만 잘 따르면 돼. 그럼, 네 조직도 잘 나갈 거다. 앞으로도!”

“아니, 그딴 거 말고.”


하대진은 물을 들이키며 반문했다.


“내 [자식]이 월야그룹의 절반을 갖게 해준다고, 약속했지 않습니까?”


실로 영문 모르는 얼굴로 하무식이 눈을 깜박였다.

저 뻔뻔한 표정이라니.

모든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체 수십 년 간 월야그룹에서 버텨온 너구리답다.


“무슨 소리냐, 그게? 내가 약속한 상대는.”

“서희죠. 그런데 나오자마자 서희가 연락하더군요. ‘작은 아버님’이 약속 파기하고 이사회 자리도 하나도 안 주기로 했다죠?”

“대체 그게 무슨 말이냐? 서희가 너랑 무슨 상관이라고.”


하대진이 결국 참지 못하고 잔을 던지며 고함쳤다.


“서희 자식이 내 자식입니다. 아직도 모른 척 하깁니까! 하유식 회장도, 이연자 그년도 내게 죽이라고 지시할 때는 언제고!”


유리잔이 벽에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다.


-쨍그랑!


하무식은 흠칫 떨다 호통쳤다.


“조용히 해라! 여기가 방음이 잘 되긴 하지만, 회사야!”

“어르신이야말로 조용히 하시죠. 내가 수틀리면 다 터뜨립니다.”

“넌 무사할 거 같으냐? 형님에게 쓰러지도록 약을 준비하고, 형수님을 총으로 쏴 죽인 건 너잖아!”


그간 조심하던 하무식도 궁지에 몰리니 막 나가는 모양이다.

하대진은 입가를 틀었다.

살짝 오해는 있는 진술이다.


“내가 직접 먹인 건 아니죠. 뭐, 하여간 약속을 어겼으니 대가를 치르셔야겠습니다.”


하대진이 일어나자, 부회장 하무식은 자리에서 일어나 물러나려 했다.


“무, 무, 무슨 소리냐?”

“우리 애들이 모실 겁니다.”

“아니, 어, 언제 들어온 거야?”


어느새 방음 잘 되는 회장실 안에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들어섰다.


은밀한 발걸음으로 들어온 터라 미처 몰랐던 모양이다.

보통은 감히 재벌그룹 부회장의 그림자도 밟을 수 없는 폭력세계의 남자들.

그러나 이 밀실에서 폭력은 압도적 우위를 지닌다.


순간, 하대진이 주머니에서 사전에 준비한 위임장을 꺼내 사무용 탁자 위에 놓았다.


“위임장입니다. 내일 이사회, 그리고 주총 모두 서희가 대신 의결합니다. 지장 찍으시죠.”


하무식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저항한다면 아예 손을 잘라 지장을 찍게 만들 자들이다.

찰나, 하무식이 하대진을 노려보았다.


“너, 이건 시대그룹도 엮인 딜이야. 170조짜리 빅딜! 네가 이따위로 하면, 시대그룹이 가만 안 있어!”

“그럴지도 모르죠, 어르신. 하지만 어르신 목숨은 어떨까요?”

“뭐?”


이제 하대진은 웃지 않고 이를 드러냈다.


“날 거둬준 은혜 때문에 참고 있는 거요. 내가 어르신까지 죽이게 만들지 마쇼.”


조폭으로서, 상대를 짓밟을 때 그런 것처럼.


***


월야그룹이 출자해 만들어진 달빛 병원에는 24시간 운영되는 VIP 룸이 있다.


-삑, 삑, 삑.


하루종일 생명 유지장치가 돌아가야 살 수 있는 귀빈이 있기 때문이다.

전자음이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우아한 미녀가 앞에 섰다.

침상에는 숨조차 인공호흡기로 쉬고 있는 노인이 누워 있다.


한때, 저 노인이 너무 무서웠던 시절을 미녀는 기억한다.


“아버님, 제게 말하셨죠. 넌 부정한 년이니 나가라고.”


미녀가 노인을 내려다보다 웃었다.


“하지만 그건 아버님도 마찬가지잖아요?”


그 미소는 아주 찬란해 남자라면 누구나 반할 정도다.

하지만 나오는 이야기는 으스스한 분위기를 띠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 노인을 이 자리에 쓰러뜨린 장본인이 미녀니까.


“아시죠? 제 아이, 무휼이가 사실은 아버님 친손주라는 거.”


아주 묘한 얘기를 던지자 일순, 노인의 숨이 거칠어진다.


-쌕, 쌕, 쌕.


꼭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의식불명의 노인에게 미녀가 말을 걸었다.


“이제 진짜 손자를 회장에 올려드리죠. 그러니.”


미녀의 손이 생명유지장치를 향한다.


“편히 가세요. 하늘로.”


원래 이 자리에는 간호사가 상주해야 한다.

그렇지만 압도적인 힘이 배경에 있을 경우 규정은 쉽게 어긋나기 마련이다.

단 둘 만이 존재하는 병실.


유지장치가 끊겼다.


-삐이익!


미녀는 돌아서 병실 밖으로 나왔다.


“잘 끝냈나?”


팔에 도드라진 문신이 눈에 띄는 남자, 하대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응, 당신은?”

“약속 받아왔어.”

“아버지, 보러 가지 않아도 돼? 마지막일 텐데.”


하대진이 이를 드러내며 코웃음을 쳤다.


“저 인간은 날 아들로 생각한 적이 없어. 나도 역시 부친으로 생각한 적이 없지.”


미녀, 윤서희는 생긋 웃었다.


“그래, 이제 당신이 월야의 [사실상] 주인이 될 시간이야.”


물론 진짜 주인은 윤서희가 될 것이다.


작가의말

* 이제 결전의 날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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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55) 총장의 자백으로 3조 폰지 사기를 부수다 +22 24.09.09 5,142 130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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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52) 총장 사모님이 피라미드 거물이다 +20 24.08.30 5,787 114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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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49) 초보형 전시안으로 사채왕을 발견하다 +15 24.08.22 6,536 153 30쪽
49 (48) 회장 등극식에서 대법관을 이용해 진범을 잡다 +19 24.08.20 6,660 163 21쪽
» (47) 재벌 회장이 되게 해주세요 +25 24.08.18 6,753 154 34쪽
47 (46) 특수부 폭력이 조폭 진범보다 위다 +20 24.08.14 6,953 167 34쪽
46 (45) 강앤함과 월야 재벌가의 동상이몽을 털어라 +12 24.08.12 7,103 154 24쪽
45 (44) 월야그룹 살인사건을 만나다 +12 24.08.08 7,752 151 25쪽
44 (43) 나유신의 팀을 수도대 동문회에서 완성하다 +14 24.08.06 8,144 166 35쪽
43 (42) 백사여, 노담에서 다시 시작해라 +20 24.08.02 8,276 176 29쪽
42 (41) 시한부 연장권과 함께 중수부가 폐지되다 +20 24.07.31 8,110 193 20쪽
41 (40) 백발이가 사채왕을 잡다 +27 24.07.30 8,031 194 21쪽
40 (39) 이렇게 된 이상 선제 폭로로 중수부를 친다 +14 24.07.28 7,969 194 19쪽
39 (38) 진짜는 미래살인 배후 사채왕이다 +16 24.07.26 7,969 188 21쪽
38 (37) 금수저 비밀 정보로 스캔들 범인부터 잡다 +19 24.07.24 8,006 184 32쪽
37 (36) 이건 중수부의 운명이 걸린 사건이다 +14 24.07.19 8,127 178 30쪽
36 (35) 위치 추적 보상과 함께 서울시장 스캔들을 만나다 +22 24.07.17 8,422 186 23쪽
35 (34) 진짜 마약범을 잡고 금수저 변호사와 손잡다 +27 24.07.15 8,367 195 22쪽
34 (33) 골드스컬 클럽을 함정으로 일망타진하다 +17 24.07.14 8,306 190 23쪽
33 (32) 조기유학 금수저 학폭이 사건 진상이다 +16 24.07.10 8,383 182 23쪽
32 (31) 철벽의 성을 대규모 교사 시위로 넘어볼까 +13 24.07.08 8,321 187 22쪽
31 (30) 학교폭력 연쇄 자살사건이 터졌다 +15 24.07.05 8,709 182 22쪽
30 (29) 한국 재계를 뒤엎을 진짜 거물을 만나다 +21 24.07.03 9,008 194 24쪽
29 (28) 노동 살해 협박으로 진범을 잡다 +16 24.07.01 8,856 201 22쪽
28 (27) 솔라코인 전관 법무팀의 방어를 뚫어라 +15 24.06.27 9,043 196 21쪽
27 (26) 특수부 첫 사건은 1조원 분식회계다 +17 24.06.26 9,385 198 22쪽
26 (25) 중수부장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받다 +15 24.06.24 9,590 201 35쪽
25 (24) 백발이를 죽인 자에게 진짜 복수를 해보자 +16 24.06.19 9,316 198 34쪽
24 (23) 백사가 또 검사를 잡았다 +22 24.06.18 9,397 200 22쪽
23 (22) 특수부식 예단수사로 마약통관범을 잡아라 +11 24.06.15 9,441 197 23쪽
22 (21) 이 나라에는 마약도 너무 많다 +17 24.06.13 10,215 210 24쪽
21 (20) 첫 기자회견과 함께 위수증 5백억 코인이 남다 +19 24.06.07 10,211 224 36쪽
20 (19) 5초 예지로 폭발 속 범인을 잡다 +14 24.06.06 10,104 221 24쪽
19 (18) 감옥에 보낼 놈은 내가 고른다 +14 24.06.04 10,091 218 18쪽
18 (17) 1천억 비트코인 사건을 5초 예지로 파헤치자 +14 24.05.31 11,100 219 31쪽
17 (16) 나를 건드리면 검찰총장 예정자도 가만 안 둔다 +25 24.05.29 10,979 233 26쪽
16 (15) 독사를 건드리면 제왕도 문다 +20 24.05.27 11,055 237 30쪽
15 (14) 공판부 땜방으로 백발검사를 보내라 +10 24.05.24 11,550 223 30쪽
14 (13) 언론비리 일망타진으로 신체감정 보상을 받다 +11 24.05.23 12,155 230 31쪽
13 (12) 특활비 별건수사로 무전취식 기자를 잡자 +12 24.05.21 12,245 237 21쪽
12 (11) 사고뭉치에게는 법카부터 먹여줘라 +13 24.05.20 13,451 243 21쪽
11 (10) 나유신이 주가조작 일당을 함정수사로 잡았다 +17 24.05.20 13,516 262 21쪽
10 (9) 오풍제지 그래핀 사기를 경찰공조로 잡는다 +16 24.05.18 14,348 257 25쪽
9 (8) 정오판정으로 오풍제지 주가조작을 발견하다 +16 24.05.17 14,706 276 15쪽
8 (7) 선배가 장애물이면 부수고 해결한다 +15 24.05.14 15,099 280 22쪽
7 (6) 상태창의 보상은 놓칠 수 없다 +23 24.05.12 15,957 296 27쪽
6 (5) 의원 하나 잡고 시작하자 +20 24.05.11 15,732 290 14쪽
5 (4) 신입 수석검사가 꼴통이래 +15 24.05.10 16,983 307 15쪽
4 (3) 범인을 잡으니 시한부 연장 +16 24.05.09 18,129 292 11쪽
3 (2) 우선 범인부터 잡고 죽자 +17 24.05.08 19,693 312 13쪽
2 (1) 백발 신입검사 나유신 +25 24.05.08 22,926 354 11쪽
1 프롤로그 : 시한부 상태창이 생겼다 +42 24.05.08 30,120 416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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