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검사는 거물이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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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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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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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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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6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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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쪽

(43) 나유신의 팀을 수도대 동문회에서 완성하다

DUMMY

세상 모든 일은 예산이 지배한다는 금언이 있다.


“그거 대체 어디서 나온 말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진리로군. 밥부터 못 먹겠네. 아이고!”


이제 막 청소를 마친 수사관, 고거경이 탄식했다.


검사 업무도 결국 사무처리다.

한데 사무처리를 하기 위해서는 의식주가 공급되어야 한다.

옷과 집은 스스로 알아서 할 일이지만 [식]은 조금 다르다.


왜냐하면 업무 시간 중에 [점심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검찰은 워낙 야근이 많아서 저녁식사도 일터에서 처리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식비를 일일이 사비로 처리하다 보면, 알량한 공무원 지갑은 텅 빈다.


그래서 주어지는 게 업무추진비, 실은 회식비다.

하지만 나유신 검사실에는 업무추진비가 0원이었다.

사무관 홍신정이 검은 뿔테 안경을 고쳐 쓰며 답했다.


“법카 예산이 없습니다.”

“어째서 그런 거죠, 홍신정 사무관님? 일반적으로 검사실에는 할당된 업무추진비가 있을 텐데요. 굳이 특수활동비가 아니라도.”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검사실 배정이니까요.”


홍신정은 아주 냉정하게 나유신을 향해 보고했다.


“모두 알아서 개인 사비로 식사하고 사무용품을 구매하며, 또한 검사실을 운영해야 합니다.”


당연히 일반적인 사무처리 상황이라고 할 수는 없다.


우선 검찰 사무실의 비품은 모두 공무집행용이다.

그런데 이 비품을 사비로 구해야 한다?

만약 개인이 집에 들고 가도 할 말이 없어지는 상황이 된다.


나유신은 확인차 다시 물었다.


“형사 3부 예산도 못 씁니까?”

“신수겸 부장님이 웬만해선 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3부 기존 예산도 모자란다구요.”

“견제입니까?”


홍신정은 전혀 동요하는 기색 없이 냉정하게 대꾸했다.


“굳이 나 검사님의 업무를 방해할 건 없지만, 열심히 돕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지검장님께서.”


확실히 민혁기가 노담지검 [에이스]라고 한 데는 이유가 있는 모양이다.


나유신은 [심문]의 스페셜리스트다.

겉으로 보기에는 고작 2년차지만 실은 10년의 검사 경험이 있다.

또한 황금문자의 정오판정과 신체감정, 여기에 불완전하지만 감정반응까지 볼 수 있으니 상대방이 거짓을 말하는지 금방 알아챈다.


이건 단순히 심문을 잘한다는 뜻이 아니다.

보통 사람들, 심지어 검사들이라 해도 할 수 없을만큼 사람을 몰아붙일 수 있다는 뜻이다.

한데 태연한 기색인 걸 보면 홍신정도 보통 간담이 아닌 셈이다.


그때 고거경이 먼저 비명을 질렀다.


“세상에, 그럼 전부 사비로 처리하란 겁니까? 아니, 원래 수사에 비용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몰라요?”

“잘 알죠. 원래 행정사무관이 하는 일 중 회계처리도 있으니까요.”

“그럼 보통 수사비 때문에 월급 이상으로 소모된다는 것도 알 거 아닙니까!”


고거경도 역시 보통 사람이 아니다.


수도중앙의 스페셜리스트로 불리던 수사관이다.

그건 온갖 특수 범죄자들과 맞대면 해서 제압했다는 뜻이다.

때문에 눈빛부터 보통 사람과는 확연히 다르고, 몸은 근육질이라 여자가 마주하면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홍신정은 여전히 냉철한 태도로 대꾸했다.


“여긴 수도중앙지검이 아닙니다. 애초에 업추비 예산이 적어요. 게다가 신규 편성할 예산은 거의 없는 게 현실입니다.”


한국 어디나 서울에 모든 자원이 집중되는 것은 똑같다.

이건 검찰도 마찬가지라서, 모든 예산의 우선순위는 서울에 있는 수도지검들이다.

해서 노담지검에는 예산 배정이 적을 수밖에 없다.


하물며 나유신은 갑자기 중앙 사정 때문에 내려온 일종의 [낙하산]이다.

그러니 특별히 배려해서 예산을 배정하는 일 따위 있을 리가 없다.

그래도 뭔가 묘한 지점이 있어, 나유신은 다시 질문했다.


“한 가지 묻죠. 홍 사무관님.”

“말씀하십시오.”

“만약에 내가 개인 카드로 지출한다면, 그때 문제 삼으실 겁니까?”


홍신정은 여전히 흐트러짐 하나 없는 태도로 대답했다.


“검찰 복무규정에 어긋나지만 않으신다면, 아무 문제 없지 않을까요? 다만, 그 카드는 검사님 본인 카드여야 할 겁니다. [스폰서]가 아니라.”


검사가 본인 카드가 아닌 남의 카드를 쓰는 일은 왕왕 있다.

그게 법인카드의 일종이라면 문제가 금액과 용처가 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다른 개인의 카드라면 그때부터는 뇌물 여부가 관건이 된다.


나유신은 묘하게 웃었다.


“아직도 스폰서 카드 받는 검사가 있나요, 노담지검에? 제가 전임 부장 날리면서 청소 됐을 줄 알았는데.”

“제 임무는 감사가 아닙니다. 검사님.”

“그럼 적당히 융통성 있게 처리해 줄 거라 믿어도 되겠습니까?”


아무리 본인 카드를 쓴다 해도, 수사는 온갖 일에 돈을 쓰는 작업이다.

때로는 그 용처가 상부에 보고되지 말아야 할 때도 있다.

그런데 나유신의 개인 카드를 쓸 때, 홍신정은 어떻게 업무를 처리할까?


“애초에 예산이 배정되지 않은 건, 통제가 없다는 뜻입니다. 검사님.”


나유신은 홍신정의 대답을 듣다, 싱긋 웃었다.


“그럼, 내 마음대로 해도 되겠군요.”


왜 민혁기가 [에이스]라고 장담했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


하지만 개인 자산을 쓴다 해도 문제는 있다.


“와, 노담에 돌아왔네요? 왔으면 신고식부터 해야죠!”


강시 경감 강시영이 여전히 퀭한 눈으로 나유신을 반갑게 맞이했다.

아무래도 나유신이 떠난 뒤에도 여전히 일거리는 줄어들지 않은 모양이다.

확실히 노담은 노답이라 불릴 정도로 사건 사고는 많다.


나유신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 피식 웃었다.


“고작 반년쯤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사이 내가 인사할 사람이 많아졌군요.”

“뭐래요? 나름 생사를 같이 한 사이끼리?”

“내가? 경감님이랑? 그 정도로 거창한 관계였습니까?”


그러자 강시영이 낯을 붉히며 화를 냈다.


“맞잖아요! 삼합회 사건 때 불타 죽을 뻔했잖아요! 본인이 위험했으면서 벌써 잊었어요?”


항상 창백한 강시영의 뺨에 홍조가 도는 모습은 꽤 이채롭다.

어째 조금 예뻐보인다는 생각을 하다 나유신이 고개를 홱홱 저었다.

지금, 미모에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리면 곤란하다.


“그건 내가 죽을뻔한거지, 경감님이 위험했던 건 아니죠.”

“흥, 그럼 주가조작 정보, 대충 눈 감고 넘어가 준 건요?”

“피해자 보상용으로 다 쓴 거 알잖아요? 뭐, 그보다.”


문득 나유신이 강시영을 빤히 보며 물었다.


“돈 될 만한 정보 같은 건 없어요? 혹시 개발 소식이라든가.”


강시영은 눈을 깜박이다 시선을 피했다.

어째 낯을 붉히는 게 아무래도 아직 화가 덜 풀린 모양이다.

나유신이 어떻게 화를 풀어줘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강시영이 입술을 뗐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요?”

“경찰에게는 이런저런 정보가 자주 들어오잖습니까. 게다가 노담에선 난 사실상 외지인이기도 하니, 정보가 어두워서 말이죠.”

“그런 걸 떠나서, 주식으로 꽤 벌지 않았어요? 왜 갑자기 부동산 투기에 관심을 갖고 그래요?”


나유신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예산이 없어요. 아마 억 단위로 들어갈 것 같은데, 수사자금을 조달할 창구가 필요합니다. 합법적으로.”


물론 나유신은 알고 보면 부자다.


그렇지만 자산 대부분이 [코인]인데다 해외에서 환금해야 해서 운용이 쉽지 않다.

때문에 한국에서 투자하는 주식으로 자금을 충당해야 한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기도 하지만, 일정하지가 않다.


강시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흠, 수익률은 딱히 상관없나요?”

“있기야 하지만, 일단은 일정한 현금이 나오는 자산을 사는 게 급선무죠. 주식투자란 건 원래 수익이 일정하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부동산이 필요한 건데.”

“오풍제지는 어때요?”


전혀 예상치 못한 답에 나유신이 눈을 크게 떴다.


“거기, 망하지 않았습니까?”


오풍제지.


바로 나유신과 강시영이 처음 만났던 사건.

그 회사에 얽혀 사람이 죽었고 살인사건을 수사하던 강시영과 나유신이 부딪쳤다.

문제는 주가조작에 휘말려 망한 회사란 거다.


하지만 강시영은 나유신이 미처 몰랐던 바를 알려주었다.


“대표랑 주식사기꾼들이 잡혀간 뒤로, 아직 회사는 남아 있어요. 다만 사실상 폐업 상태지만요.”

“그런데 거기서 무슨 수익을 냅니까?”

“건물과 공장 부지는 남아 있으니까요.”


강시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물론 노담시 남부 외곽이긴 하지만, 일정한 수입은 나오지 않을까요? 나야 부동산 따위는 잘 모르지만.”


분명 오풍제지는 전통 있는 회사였다.


비록 주가조작으로 망했지만 사옥과 공장부지는 멀쩡히 남아 있다.

또한 상장 폐지되긴 했어도 주식회사라는 건 여전하다.

아마 파산 재산을 관리하는 기업이나 법원에서 매각 공고도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범죄에 연루되었던 장소란 이유로 아직 팔리지 않은 모양이다.


“아니, 아주 적합하군요.”


그렇다면 [돈세탁]에 아주 적합하다는 얘기다.


***


물론 나유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측근도 있다.


“뭐가 그리 걱정이쇼? 코인 좀 털면 되는 거 아뇨? 미국에서 환전해야 하니 좀 번거롭긴 하겠지만.”


여전히 후드를 좋아하는 [히트맨], ‘블랙리버 남’이 물었다.

본명은 남춘식,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면서 새로운 이름을 얻은 남자다.

하지만 전직 흑강파 히트맨, [블랙리버 남]은 나유신이 이상하다.


“외환관리법도 문제고, 추적도 문제지. 게다가 세탁은 꽤 까다로워.”

“흐음, 그래서, 이 폐공장을 쓴다는 거요?”

“리모델링을 해야겠어. 내 기억, 아니 예상이 맞다면.”


나유신은 주인 없는 오풍제지의 옛 폐공장을 보며 눈을 번뜩였다.


“곧 스타트업 붐이 오거든. 이 일대도 공유오피스로 개발될 수 있지.”


세계 최고 부자, [에드워드 뷔페]도 첫 시작은 망해가는 의류공장이었다고 한다.


그 공장을 인수해 투자회사로 바꾼 게 뷔페의 시작점이다.

물론 나유신이 뷔페처럼 되려는 건 아니지만, 망해버린 법인을 탈바꿈시켜 부를 창출하는 건 성공의 방정식 중 하나다.

게다가 나유신에게는 엄청난 초기자본금도 있다.


그러나 블랙리버가 보기에는 그게 납득이 안 되는 점이다.


“궁금한 게 있는데 말요.”

“뭔데?”

“대체 왜 수사에 집착하는 거요?”


나유신이 돌아보자 블랙리버가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 당장 그때 가져간 코인만 해도, 내 예상이 맞다면 곧 수천억 원 대일 거요.”

“그래서?”

“나 같으면 골치 아픈 검사 따위는 집어치우고, 미국 가서 부자로 펑펑 돈 쓰면서 잘 살 것 같소만.”


꼭 시체처리하면 좋을 것 같은 폐공장을 둘러보다, 블랙리버가 물었다.


“왜, 이렇게 번거롭게 돈도 안 주는 검사질을 하는 거요?”


그 순간 블랙리버는 멈칫거렸다.

흰 머리의 나유신은 그냥 봐도 가끔 섬뜩할 때가 있다.

그런데 지금, 나유신의 눈빛은 킬러 출신인 블랙리버도 잠시 떨 정도다.


“부와 명예, 권력. 이런 것 따위는 한 번도 원해본 적 없어.”

“뭐요?”

“나는, 단지 한 가지만 원했을 뿐이야.”


백발의 검사, 나유신이 머리를 쓸어넘기며 말했다.


“세상에 정답이 있다고 믿어. 권선징악.”


나유신은 월반을 거듭해 온 우등생이다.

그런데 우등생이 하나의 진리로 믿는 게 있다.

정답.


이 세상이 아무리 잘못되어 있다고 해도, 단 하나의 옳음이 있음을 믿는다.

나유신에게 그건 권선징악이다.

또한 죽어버렸던 전생의 원한을 푸는 궁극의 길이다.


나유신이 단언했다.


“나쁜 놈은 잡는다, 그뿐이야.”

“아니, 범죄자 앞에서 그런 말 하시면 좀.”

“그러니까, 속죄하라고. 내 밑에서 일하면서.”


블랙리버가 머리를 긁적이는 모습을 보다, 나유신이 돌아섰다.


“나도, 속죄하고 있으니까. 나 때문에 죽은 사람을 위해서.”


이를테면 백희진 혹은 전생의 나유신처럼.


***


돈을 버는 가장 쉬운 방법이 뭘까?


“투자를 하라고? 이 망해버린 공장에? 너무한 거 아닙니까?”


답은 돈을 많이 가진 사람과 같이 일하는 거다.


아무리 나유신이 비트코인 수천억 원을 가졌어도, 환가하는 데 많은 장애물이 있다.

그런데 수사비용을 사적으로 조달하려면 그저 용돈벌이 주식 정도로는 곤란하다.

때문에 일정 수익이 확실히 나오는 부동산 투자를 하려 했다.


하지만 비어 버린 오풍제지 사옥과 공장을 본 순간, 나유신은 다른 발상을 떠올렸다.

이곳에 그저 임차인을 채우는 것 이상의 사업을.

그래서 불러온 게 RN의 창업주 구삼진과 2인자 정주범이다.


물론 비서실장격인 정주범은 어이가 없는 얼굴로 묻는 중이었다.


“그저 단순한 공장이 아닙니다. 또한 사옥은 조금만 단장하면 바로 쓸 수 있구요.”

“대체 무슨 용도로? 검사님, 우리는 자선사업가가 아닙니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스타트업 공유 오피스.”


정주범이 흠칫 놀랄 찰나, 나유신이 싱긋 웃었다.


“RN이 초기에 도약할 때 시작했던 사업이죠.”


RN이 초기에 도약할 때, 혼자 비상한 게 아니다.


공유오피스를 차리고, 그곳에 이제 막 시작하는 모바일 스타트업을 모았다.

그중 유망한 기업들을 RN은 선별해 투자했고, 투자한 기업이 성공할 때마다 막대한 수익을 획득했다.

수성그룹 인수전을 벌이고 있는 지금은 벌써 오래 전 이야기긴 하지만.


구삼진이 물끄러미 이쪽을 볼 사이, 정주범이 먼저 말했다.


“우리에 대해 많이 공부하셨나 보군요. 검사님.”

“그야 손잡자고 하셨으니까, 상대가 어떤 회사인지는 알아야 할 거 아닙니까? 정주범 전략기획실장님.”

“하지만 그렇다면 우리가 이젠 공유 오피스 사업은 사실상 손떼고 있다는 거, 아실 텐데요?”


한때 유행처럼 돌던 공유오피스 사업은 망했다.

RN이 망했다는 게 아니라 공유경제라는 유행 자체가 끝나버린 것이다.

해서, RN이 투자한 기업들은 망하지 않았지만, 공유오피스 사업은 철수한 상태다.


RN의 그룹 운영 실무를 총괄하는 전략기획실장, 정주범이 고개를 저었다.


“구 수성물산을 중심으로 패션 SNS 페블, 투자 기업 RN홀딩스로 사업 영역을 확장, 변경 중입니다. 사실상 공유오피스 RN 쉐어링은 초기 투자했던 회사들 사무실 용도로만 쓰죠.”


여기에 수성그룹 전체를 얻기 위한 적대적 인수합병전도 진행 중이란 점은 빼먹었다.

하지만 나유신만이 아니라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기다.

어쨌든 그러다 보니 RN은 쓸데없는 투자는 줄이고 핵심 사업에 집중하는 중이다.


그런데 나유신이 엉뚱한 얘기를 꺼냈다.


“곧 2차 유니콘 붐이 올 텐데도 말입니까?”


그때까지 한 마디 말 없이 부지만 둘러보던 구삼진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확실히 구삼진이 이 말에는 관심을 가질 줄 알았다.


이건 미래를 아는 사람만이 정확히 얘기할 수 있는 정보는 아니다.

투자 사이클이나 기술 발전을 예측하면 충분히 거론할 수 있다.

다만 검사 입에서 나올만한 얘기라고 할 수는 없다.


나유신이 침착하게 10년 간 전생에서 보았던 바를 읊었다.


“스마트폰이 만들어지고 나서, 1차 붐이 있었죠.”

“뭐, 그때 우리 RN도 창업하고 대박쳤죠. 하하! 연애 앱으로 성공했는데.”

“당시 우후죽순처럼 창업이 일어났다가 붐이 꺼지면서 버블 논란이 있었던 걸로 압니다, 정주범 실장님. 하지만 아직 진짜 [버블]은 오지 않았습니다.”


문득 나유신이 눈을 번뜩였다.


“진짜는 비트코인, 그리고 AI 붐입니다. 향후 1, 2년 내 도래할 겁니다.”


이게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나유신도 정확히 모른다.

나유신처럼 업계 관계자가 아닌 사람이 알았을 때는 이미 [붐]이 오르다 못해 버블이 터지기 직전이었으니까.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붐]이 일어나면서 엄청난 자금이 쏟아져 들어오고, 수많은 성공 사례가 탄생한다.

유니콘, 곧 10억 달러짜리 초고속 성장 신생 기업들도.

구삼진은 빤히 나유신을 보다 물었다.


“그건 [체이스 나] 펀드매니저의 판단입니까?”


나유신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냥 제 판단이라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탁월한 검사님이라고 생각하긴 합니다만, 투자자로서는 어떨지 모르겠군요.”

“아버지의 판단이라고 해두죠. 제 판단과 일치하시니까.”


확실히 이럴 때는 나유신의 말이 먹히지 않는다.

반면에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이제는 나유신의 비트코인 때문에 더욱 성공하고 있는 체이스 나, 그러니까 나재천의 말이라면 다르다.

재계의 젊은 실력자로 부상 중인 구삼진이 신뢰할 정도로.


구삼진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좋습니다. 그럼 왜 하필 여기입니까? 강남이나 용산, 여의도도 있는데.”

“이곳이 옛날 벤처붐의 시발점이란 건 아시죠?”

“여기가 아니라 천당 중심구역 같긴 합니다만, 알긴 알죠.”


아주 미심쩍은 눈이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일단 이곳은 버려진 폐공장이고, 도시 외곽에서도 벗어난 상태다.

또한 2000년대 초반에 천당 신도시가 벤처 붐을 맞이하긴 했지만, 그건 신도시 중심가다.


그럼에도 나유신은 확언했다.


“다시, 천당의 시대가 옵니다. 2차 유니콘 붐과 함께.”


딱히 IT 전문가도, 부동산 투자가도 아닌 나유신이지만 확신할 수 있다.

왜냐하면 유니콘 붐이 왔을 때, 벤처붐 당시 성공한 기업들이 천당 외곽에 투자금을 뿌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중에는 실은 1차 유니콘 붐, 곧 모바일 열풍을 타고 성장했던 RN도 있었다.


그 순간 나유신을 향해 구삼진이 뚫어져라 응시하며 말했다.


“아무래도 단순한 투자를 원하는 게 아니군요. 나 검사님.”


분명 이 재계의 젊은 거물은 보통 사람은 아니다.


“제 외곽 지원조직을 원합니다. 대표님.”


나유신의 본심을 단숨에 꿰뚫어 볼 정도로.


***


그러니까 나유신이 만들려는 것은 구 오풍제지 건물을 [공유오피스]로 운영할, [법인]이다.


“날, 영입하고 싶다고? 왜?”


강앤함의 변호사이자 나유신의 로스쿨 동기, 도진창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법인, 보통 주식회사 형태로 만들어지는 이 조직에는 대표이사가 필요하다.

한데 애석하게도 나유신은 월반 인생에 공부만 하고 살아온 터라 측근이랄 게 없다.

일가 친척도 모두 미국에 가 있으니, 더욱 그렇다.


그러니까 사람이 없어서 도진창에게 연락한 셈이다.

다만 그냥 아무나 고른 것은 아니다.

나유신이 강앤함 사옥 1층 커피샵의 커피를 홀짝이다 대꾸했다.


“그야 여기 강앤함에서 재미 없어 하는 게 보였거든.”

“아니, 누가 일을 재미로 하냐? 게다가 국내 최고 로펌에서 나와서 정체도 모를 회사에 오라니. 그것도 검사가 만드는 유령회사에?”

“유령회사 아니야. RN의 구삼진과 정주범이 투자하는 공유오피스 회사지.”


그 순간 시큰둥하던 도진창의 낯빛이 달라졌다.


“수성그룹 먹고 있는 구삼진? 일성에서 사윗감으로 눈여겨 본다던데.”


구삼진은 본래 수성그룹의 혼외자식이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비밀이긴 하지만, 재계의 뒷정보에 밝은 이들은 대략 안다.

일성그룹 장씨 일가에서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단순한 혼외자가 아니라 아예 수성그룹을 먹을 기세로 급성장하는 중이다.


그래서 나유신이 알기로도 전생에서 구삼진은 일성그룹 사위가 된다.

하지만 아직은 가시화된 상태는 아닌데, 도진창은 어떻게 안 모양이다.

그런데 나유신은 도진창의 정보력에 놀라는 대신 콧방귀를 뀌었다.


“도진창 변호사, 아직도 시각이 좁군. 구 재벌 따위가 문제가 아니야. RN은 엄청난 기업이 될 거라고.”

“뭐, 재벌그룹 해치우고 있는 거 보면 엄청난 게 맞긴 하지.”

“실리콘밸리의 거인들과 맞먹는 초거대기업이 될 거야.”


나유신이 커피잔을 놓으며 단언했다.


“지금 난 조 단위 비즈니스에 끼어들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거라고.”


물론 한국에서는 이른바 10대 재벌로 대표되는 대기업 오너 일가가 최상위 지배집단이다.


그러나 한국 국내의 경제규모에서나 그럴 뿐.

해외로 나가면 그보다 큰 부호들을 중국이나 일본, 동남아에서도 가끔 볼 수 있다.

게다가 구삼진은 2차 유니콘 붐을 타고 실리콘벨리 최정상급 회사들을 사냥하는 초거대 투자자가 될 자다.


그 미래를 몰라도 구삼진이 수성그룹을 먹고 있는 건, 도진창도 안다.

도진창이 눈을 가늘게 떴다.

강앤함, 분명 한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로펌이다.


하지만 RN이라는 신흥 재벌과 엮일 수 있는 기회는, 강앤함에서도 얻기 어렵다.


“그럼 왜 나 검사님께서 직접 하지 않고, 내게 맡기는 거지?”

“나야 수사를 해야 하니까.”

“지금 조 단위 운운했으면서, 그걸 벌 수 있는 기회를 놓고 검사질을 한다는 걸 믿으란 거야?”


일순, 나유신이 차갑게 대꾸했다.


“애초에 내가 돈벌이를 하고 싶었으면, 아버지 따라서 미국 갔어. 도 변호사.”


도진창도 나유신이 제법 부잣집 아들이란 건 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말하는 걸 보니 뭔가 있는 모양이다.

눈을 굴리던 도진창이 다시 물었다.


“그럼, 그 회사를 만들어서, 돈벌이를 하면서, 내가 뭘 해줘야 하지?”

“비용지원. 수사에 필요한 만큼.”

“회사도 법인이야. 법인 자금을 유용하면 다 범죄라고. 검사님.”


나유신은 다시 코웃음을 쳤다.


“내게 배당으로 주면 되지. 안 그래?”


검사가 회사를 만들어서 [겸직]하는 건 당연히 공무원 복무규정 위반이다.


그렇지만 투자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지자체장쯤 되지 않는 한, 주식 백지신탁의 의무도 없다.

그러니 나유신이 투자 배당을 받는 건, 결코 문제될 일이 아니다.


가만히 나유신을 보던 도진창이 어깨를 으쓱였다.


“뭐, 좋아. 실패하더라도 RN과 네트워킹이 생긴단 말이지?”

“확실히 그런 후각은 좋군.”

“한 가지 더 물을 게 있어. 날 뭘 믿고 사업을 맡기는 거야? 솔직히 로스쿨 시절에 나랑 친했던 것도 아니고.”


나유신은 눈썹을 치뜨다 대꾸했다.


“의외로 도변이 양심적이란 걸 알거든.”


전생, 도진창은 놀랍게도 [양심선언]이란 걸 한다.

맡고 있던 사건이 엄청난 비리에 엮여 있다는 걸 알고, 견디지 못한 것이다.

물론 아직은 그런 사건을 맡아본 적 없는 도진창이 기겁하며 소리쳤다.


“뭐라는 거야, 난 양심에 털 난 걸 자랑으로 여기는 변호사야!”


사실 변호사에게 양심적이란 건, 돈 벌기 어렵다는 소리긴 하다.


***


물론 이건 [표면]적인 조직이 될 것이다.


“좋아. 이제 하나만 더 세팅하면 되겠군.”


이번에는 텅 빈 오풍제지 사옥을 돌아보며 나유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뭘 세팅해야 한단 말요?”

“흥신소. 뭐, 요새는 탐정 사무소라고 슬슬 붙이고 다니던데.”

“엥? 아니, 검사님이 그런 게 왜 필요합니까?”


뒤에 서 있던 남춘식, 아니 블랙리버 남이 묻자 나유신이 피식 웃었다.


“아니면, 블랙리버 네가 정보 수집할 거야? 공식 정보 라인에서 안 되는 게 있기 마련이라고.”


할 말이 없어진 블랙리버가 입맛을 다시 찰나, 스마트폰이 울렸다.


-우우웅.


나유신은 스마트폰에 뜬 의외의 이름에 고개를 갸웃거리다 받았다.


“갑자기 무슨 일이지, 한강민?”

[너, 수도대 법조동문회 모임 안 오냐? 이경하 교수님이 너 이번에는 꼭 부르라고 하던데.]

“교수님? 날 왜? 난 그런 거 원래 안 나가.”


그런데 화성그룹 금수저, 한강민이 스마트폰 너머에서 웃었다.


[너 사조직 만든다던데, 혹시 인재 필요하지 않냐?]


순간, 나유신의 낯이 굳어졌다.


“그걸 또 어떻게 알았지?”

[RN 구삼진하고 만났다며. 그럼 내게도 정보가 들어오지. 수성그룹 먹을 때, 화성도 협조했었거든.]

“정말 한국이 좁긴 하군. 그래서?”


나유신이 입맛을 다실 찰나,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 왔다.


[내 생각엔, 너 정보 전문가가 필요할 거 같은데. 그날, 한 사람 소개시켜 주지.]


아무래도 이번에는 간만에 동문회에 가봐야 할 모양이다.


***


수도대 법조동문회.


한국을 움직이는 이른바 [파워 엘리트]가 있다면 넷을 꼽을 수 있다.

정치 지도자, 재벌가 오너, 언론사 사주, 그리고 법조 엘리트.

그런데 다른 이들과 달리 오로지 [시험성적]에 의해서만 초기 위계가 만들어지는 집단이 있다.


그게 바로 법조 엘리트다.

한때 시험 성적이야말로 공정하다던 시절의 유산이다.

물론 성적만 좋다고 일을 잘하는 것은 아니며, 또한 공정한 판결과 수사, 변호를 한다는 보장은 당연히 없다.


나유신만 해도 성적 하나만은 최상위권이었지만, 전생에서 실패한 바 있다.

어쨌든 그 성적의 정점은 뭐니뭐니 해도 결국 학벌이다.

학벌 사회의 최고를 달리는 자들.


수도대 법대와 로스쿨 출신이 모여서 자기들이 잘났다고 떠드는 자리.

그게 바로 이곳, 수도대 법조동문회다.

서울의 중심부, 한국 최고 호텔 [아사달]의 홀을 빌려 온갖 법조인들이 들어섰다.


그러나 사실 나유신이 동문회에 가지 않은 이유는 따로 있다.


“이게 누구야! 검찰을 말아먹은 스타 검사, 백사 아닌가!”


이렇게 달갑지 않은 얼굴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자마자 다른 이들과 인사하기도 전에 마주쳤다.

바로, 나유신이 현생을 재시작하자 싸워야 했던 전직 상사를.


“주시평, 검사?”


주시평이 나유신 앞에 다가와 이를 드러냈다.


“덕분에 이제는 검사가 아니지. 변호사지. 하긴, 곧 복귀할 예정이지만!”


일순, 모두가 이쪽을 본다.


나유신은 미간을 찌푸렸다.

정작 한강민은 어디로 갔는지 찾을 길이 없다.

어쨌든 주시평을 상대해줘야 하는데 꽤 피곤한 일이다.


그때 나유신 뒤에서 누군가 웃음 섞인 대꾸를 대신했다.


“그게 무슨 소리신지 모르겠네요, 교수님? 징계로 나가시지 않았어요?”


나유신은 돌아보다 깜짝 놀랐다.


드레스 차림의 백희진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어째 평소에 보던 것보다 훨씬 몸이 도드라져서 눈 둘 데가 없다.

그거야 그렇다쳐도 이 자리가 드레스를 입고 오는 자리였던가?


그러고 보니 여자들은 하나 같이 한국에선 낯선 드레스 차림인 게 보인다.

어쩐지 보통 양복을 입고 온 나유신이 위축될 정도다.

반면에 완전히 파티복장을 하고 온 남자, 주시평은 백희진을 보다 눈을 부라렸다.


“역시나, 같이 다니는군. 백 검사님. 후후후.”

“설마요. 중앙지검에서 유신이가 쫓겨난 후에는 처음 보는 거예요. 저도 엄청 바빴거든요.”

“네년이 저놈과 작당해서 날 음모에 빠뜨린 게 분명해. 안 그래?”


주시평과 백희진이 서로 쏘아보았다.

뭔가 일촉즉발의 순간.

이번에는 반대편에서 시큰둥한 목소리가 들렸다.


“와, 살벌하네. 이쪽은?”


부스스한 머리가 어째 파티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그런데 어쩐지 백희진과 좀 닮은 얼굴이었다.

나유신이 고개를 갸웃거릴 찰나, 백희진을 닮은 부스스한 남자가 주시평에게 말했다.


“적당히 하고 꺼지시죠? 아니면 다시 복귀하기도 힘들 텐데.”


그런데 주시평은 아는 얼굴인 듯, 낯이 일그러졌다.


“백시혁? 너 이 새끼, 내가 얼마나 하늘 같은 선배인데. 감히 내게!”

“그럼 다른 선배들 데리고 와줘요? 복귀하고 싶은 거 아니었습니까?”

“뭐라고? 너, 이렇게 건방지게 굴어도 무사할 거 같냐?”


문득 백시혁이라는 남자가 차갑게 물었다.


“서수휘 지검장님께 직접 보고드려줘요? 적당히 합시다, 우리.”


일순 주시평이 이를 갈다 돌아섰다.

서수휘라는 이름은 도저히 어떻게 건드릴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다만 나유신과 백희진을 보며 한 마디 남기는 것은 잊지 않았다.


“복귀 후에 두고 보자, 너희들.”


백희진은 하나도 질리지 않은 얼굴로 킥킥거렸다.


“와, 완전히 악당이네?”

“그럼, 난 악당을 몰아낸 용사냐?”

“오빠, 헛소리 그만해. 참, 유신이는 처음 보지? 우리 사촌 오빠.”


백희진이 소개하자, 백시혁이 손을 내밀었다.


“동부지검에서 일하는 백시혁이다. 명성은 들었지. 입사하자마자 남부지검 에이스를 날리고 시작한 최고의 독뱀.”


그러니까 이 작자도 검사란 얘기다.

게다가 백희진의 사촌이기까지 하다.

물론 백희진이 법조 명문이란 소리는 들었지만, 사촌이 검사일 줄은 나유신도 몰랐다.


무엇보다도 나유신이 알 정도로 꽤 유명한 이름이다.


“다단계 피라미드, 킹스주 그룹을 때려잡은, 백시혁?”

“오, 나 알아? 그건 그렇고 말이 짧다? 학번도 그렇고, 나이는 나보다 한참 아래일 텐데.”

“죄송합니다. 그런데 희진이, 아니 백검 사촌 오빠시라구요?”


백시혁 검사가 음흉한 얼굴로 히죽 웃었다.


“뭐야, 이름 부르는 사이였냐? 흐음, 이 녀석 괜찮은 녀석인가?”


나유신은 당황해 뭐라 말해야 할지 놓쳐 버렸다.

사실 백희진은 전생에서 나유신과 그렇게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그런데 현생에서는 어째 자주 엮이다보니 서로 이름을 부르는 사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일순, 백희진이 백시혁의 등짝을 쳤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친구들에게나 가봐. 유신이는 나랑 놀아야 해서 바빠.”

“여긴 사교 목적 동문회인데, 뭘 놀아? 그보다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오히려 나야말로 묻고 싶네. 주시평이 검찰에 돌아와?”


그러자 백시혁이 입맛을 다시며 답했다.


“아, 몰랐나? 경력검사 시험이 곧 있어. 사실상 주시평이 내정자야. 설사 다른 후보가 유력하다 해도 주시평만큼 면접을 잘 볼 것 같지도 않고.”


경력 검사시험.


명목상 경험 있는 법조인을 끌어들이는 절차다.

그러나 실은 일찍 나간 검사를 재채용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내부에서 사람을 찍어서 복귀시킬 때 쓰는 방식이다.


아마도 서수휘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을 게 뻔해, 나유신이 냉소했다.


“어이가 없군요. 성추행 범죄자를 복귀시키다니.”

“그거야 경남에 가 있는 이승은 검사만 입 다물면 상관없는 일이지. 검찰에서는.”

“백검도 피해자입니다.”


그런데 정작 백희진의 사촌 오빠 백시혁은 입가를 틀며 되물었다.


“그렇게 말하기엔, 너무 유도한 정황이 짙지. 선수끼리 왜 그래?”


나유신은 섬뜩한 기분에 입을 다물었다.

분명 함정수사를 한 것은 맞으니까.

백희진도 살짝 찔리는지 눈치를 살피는 게 보인다.


하지만 그건 딱히 관심사가 아니었는지, 백시혁은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건 그렇고 앞으로의 계획이 뭐야?”

“계획이라뇨?”

“백사가 쫓겨났으니 가만있지 않을 거라는 소문이 파다하던데. 특히 중수부 출신들이 주목하고 있다고. 아, 전우석 알지? 걔가 내 동기야. 수도대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나유신을 지켜보는 자가 윗선만 있는 건 아닌 모양이다.

그러나 나유신은 딱히 면말한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니었다.

지금 당장은 황금문자의 미션과 밀어닥치는 수사에 대처할 뿐이다.


“전 수사에 집중할 뿐입니다.”


물론 백시혁은 전혀 믿지 않는 얼굴로 손을 휘저으며 사라졌다.


“글쎄, 과연 다음 타깃이 누가 될까?”


그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때, 꽤 오래 듣지 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 나유신 학생. 아니, 나유신 검사. 드디어 이렇게 재회하는군.”


바로 나유신을 이 자리에 부른 장본인, 수도대 로스쿨 이경하 교수다.

나유신은 심호흡을 했다.

왜냐면, 이경하는 후일 엄청난 거물이 되기 때문이다.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검사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내 예상을 빗나가게 했군. 잘 했어.”

“무슨, 말씀이십니까?”


미래의 거물, 이경하가 빙그레 웃으며 나유신의 어깨를 두들겼다.


“주어진 건 완벽하게 해내지만, 창의적인 발상이나, 변칙은 잘 못한다고 생각했거든. 너무 월반한 탓에 적응하느라 고생하는 것도 안쓰러웠고. 그런데, 상상 외의 활약이야.”


예상치 못한 칭찬에 나유신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아마도 이런 격려를 위해 불렀던 모양이다.

어쩐지 지금껏 정신없이 지나쳐 온 시간이 보상받는 느낌이기도 했다.


그때 이경하 교수 뒤에 있던 이들이 웃으며 말했다.


“낄낄! 그게 아니라 초토화 방식 수사 아닙니까?”

“정의구현이에요, 선배.”

“변호사가 정의구현하는 걸 동경하면 어떡해? 우리는 나쁜 놈도 변호해 줘야 한다고.”


남자, 그리고 여자.

분명 기억에 있는 얼굴들이다.

역시 백희진만큼은 아니지만 도드라진 몸매가 돋보이는 미녀가 나유신에게 말을 걸었다.


“간만이야, 나유신. 활약상은 잘 듣고 있어.”


나유신은 눈을 깜박이다 미간을 좁혔다.


“류서진 변호사, 그리고 천호신 선배군요. 한강민과 함께 왔나요?”


미녀의 이름은 류서진, 나유신의 동기다.

그 뒤에서 호탕하게 웃고 있는 남자는 천호신이라고 하는데, 굳이 따지자면 수도대 로스쿨 선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수도대 로스쿨 시절 딱히 접점은 없었다.


다만 이 둘을 기억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리걸팩토리.

한강민 변호사의 로펌을 함께 만든 변호사들인 탓이다.


그러자 천호신이 휘파람을 불며 나유신을 놀려댔다.


“뭐야. 서진이처럼 미녀를 앞두고 강민이부터 찾다니! 너 취향이 수상쩍은데?”

“멍청한 소리 하지 말아요, 선배. 지금 옆에 백희진 검사 있는 거 안 보여요?”

“오호라, 그랬군! 내가 실례했는데?”


두 변호사의 정신없는 공격에 백희진이 낯을 붉히다 외쳤다.


“저기, 그런 사이 아니거든요?”


아무래도 동문회는 역시 너무 정신없다는 생각을 할 찰나, 나유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여, 나유신.”


나유신은 그쪽을 돌아보다 재빨리 움직였다.

오늘 이 자리에 나유신이 나온 목적.

사람을 소개시켜 주겠다던 한강민 변호사가 호텔 홀의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설마 주시평 보라고 부른 건 아니겠지?”

“물론 아니지. 우리 보험회사 다니시다가 은퇴하신 분인데, 전직 경찰이야.”

“잠깐, 은퇴한 노인을 소개시켜 준다는 거야?”


나유신이 질색하자 한강민이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게 뭐가 이상해? 정보 수집은 힘쓰는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구. 뭐, 그리고 너 정도는 10명이 달려들어도 넘기실걸?”


물론 나유신은 아직도 약골이긴 하다.

할 말이 없어 나유신이 입맛을 다실 찰나.

어둠 속에서 기둥 사이로 중년 남자 한 사람이 걸어왔다.


“설장수라고 합니다. 정보탐색 실무자를 찾으신다고 들었습니다. 전직 보험조사원입니다.”


나유신은 남자를 보다 백발을 긁적였다.


처음 보는 얼굴이다.

그 말은 나유신이 아무런 정보 없이 확인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정오판정이나 신체감정, 감정반응 정도야 알 수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상대방의 능력을 확인할 수는 없다.


아주 조심스럽게 나유신이 임시 면접을 시작했다.


“경찰이셨다구요?”

“옛날 얘기죠.”

“어떤 사건을 처리하셨습니까?”


설장수는 무뚝뚝하게 신중한 답을 내놓았다.


“주로 정보과에 있었죠. 일반 형사사건도 하긴 했습니다만.”


경찰 정보과, 보험사 조사원.

어느 쪽이든 정보수집의 전문가다.

과연, 한강민은 적당한 커리어의 남자를 소개시켜 준 셈이다.

물론 그냥 소개시켜 줬을 리는 없다.


나유신이 사람 좋게 웃고 있는 한강민을 슬쩍 돌아보았다.


‘일종의 스파이겠군.’


한강민은 악인은 아니지만, 아무 이익 없이 움직일 자선가는 아니다.

그런데 사람을 소개시켜 준다?

아마 나유신의 행보를 정탐할 사람이기도 할 것이다.


이걸 어떻게 할지 고심할 순간.


“야, 뉴스 켜봐!”


문득 홀로 백시혁이 뛰어 들어오며 외쳐, 백희진이 묻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야, 오빠?”

“살인사건이 터졌어! 맙소사!”

“응? 물론 살인이 엄청난 일이긴 하지만, 그건 하루에도 한 두건 정도는 터지잖아?”


그러나 백시혁의 외침에 수도대 법조동문회는 얼어붙었다.


“월야그룹에서 살인사건이 났어!”


찰나, 나유신의 눈앞에도 갑자기 황금문자가 떴다.


[사건 발생. 월야그룹 상속 살인사건. 시한부 기간, 44일.]


나유신은 뚫어져라 정면을 보다, 설장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무래도, 시험을 해야겠군요. 첫 사건입니다. 설장수 씨.”


이건, 나유신의 새로운 임무다.


작가의말

* 이제 팀빌딩을 끝내고 새로운 사건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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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57) 전시안 보유 시한부 인생은 무서울 게 없다 +10 24.09.17 3,629 84 29쪽
57 (56) 새로운 검찰총장이 백발공적을 보호한다 +10 24.09.12 4,833 107 30쪽
56 (55) 총장의 자백으로 3조 폰지 사기를 부수다 +22 24.09.09 5,141 130 28쪽
55 (54) XBC 폭로로 현직 총장 사모를 붙잡다 +18 24.09.07 5,118 121 28쪽
54 (53) 황금금강석 멤버들은 그린벨트에 3조를 투자한다 +12 24.09.04 5,445 108 28쪽
53 (52) 총장 사모님이 피라미드 거물이다 +20 24.08.30 5,786 114 28쪽
52 (51) 3조짜리 피라미드 조직을 잡아보자 +18 24.08.29 5,957 125 29쪽
51 (50) 나유신이 첫 휴가지에서 상속녀를 보다 +26 24.08.24 6,587 139 31쪽
50 (49) 초보형 전시안으로 사채왕을 발견하다 +15 24.08.22 6,532 153 30쪽
49 (48) 회장 등극식에서 대법관을 이용해 진범을 잡다 +19 24.08.20 6,659 163 21쪽
48 (47) 재벌 회장이 되게 해주세요 +25 24.08.18 6,752 154 34쪽
47 (46) 특수부 폭력이 조폭 진범보다 위다 +20 24.08.14 6,952 167 34쪽
46 (45) 강앤함과 월야 재벌가의 동상이몽을 털어라 +12 24.08.12 7,103 154 24쪽
45 (44) 월야그룹 살인사건을 만나다 +12 24.08.08 7,751 151 25쪽
» (43) 나유신의 팀을 수도대 동문회에서 완성하다 +14 24.08.06 8,144 166 35쪽
43 (42) 백사여, 노담에서 다시 시작해라 +20 24.08.02 8,276 176 29쪽
42 (41) 시한부 연장권과 함께 중수부가 폐지되다 +20 24.07.31 8,107 193 20쪽
41 (40) 백발이가 사채왕을 잡다 +27 24.07.30 8,029 194 21쪽
40 (39) 이렇게 된 이상 선제 폭로로 중수부를 친다 +14 24.07.28 7,969 194 19쪽
39 (38) 진짜는 미래살인 배후 사채왕이다 +16 24.07.26 7,968 188 21쪽
38 (37) 금수저 비밀 정보로 스캔들 범인부터 잡다 +19 24.07.24 8,005 184 32쪽
37 (36) 이건 중수부의 운명이 걸린 사건이다 +14 24.07.19 8,126 178 30쪽
36 (35) 위치 추적 보상과 함께 서울시장 스캔들을 만나다 +22 24.07.17 8,422 186 23쪽
35 (34) 진짜 마약범을 잡고 금수저 변호사와 손잡다 +27 24.07.15 8,367 195 22쪽
34 (33) 골드스컬 클럽을 함정으로 일망타진하다 +17 24.07.14 8,304 190 23쪽
33 (32) 조기유학 금수저 학폭이 사건 진상이다 +16 24.07.10 8,383 182 23쪽
32 (31) 철벽의 성을 대규모 교사 시위로 넘어볼까 +13 24.07.08 8,319 187 22쪽
31 (30) 학교폭력 연쇄 자살사건이 터졌다 +15 24.07.05 8,707 182 22쪽
30 (29) 한국 재계를 뒤엎을 진짜 거물을 만나다 +21 24.07.03 9,007 194 24쪽
29 (28) 노동 살해 협박으로 진범을 잡다 +16 24.07.01 8,855 201 22쪽
28 (27) 솔라코인 전관 법무팀의 방어를 뚫어라 +15 24.06.27 9,042 196 21쪽
27 (26) 특수부 첫 사건은 1조원 분식회계다 +17 24.06.26 9,384 198 22쪽
26 (25) 중수부장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받다 +15 24.06.24 9,589 201 35쪽
25 (24) 백발이를 죽인 자에게 진짜 복수를 해보자 +16 24.06.19 9,314 198 34쪽
24 (23) 백사가 또 검사를 잡았다 +22 24.06.18 9,397 200 22쪽
23 (22) 특수부식 예단수사로 마약통관범을 잡아라 +11 24.06.15 9,441 197 23쪽
22 (21) 이 나라에는 마약도 너무 많다 +17 24.06.13 10,214 210 24쪽
21 (20) 첫 기자회견과 함께 위수증 5백억 코인이 남다 +19 24.06.07 10,211 224 36쪽
20 (19) 5초 예지로 폭발 속 범인을 잡다 +14 24.06.06 10,103 221 24쪽
19 (18) 감옥에 보낼 놈은 내가 고른다 +14 24.06.04 10,090 218 18쪽
18 (17) 1천억 비트코인 사건을 5초 예지로 파헤치자 +14 24.05.31 11,097 219 31쪽
17 (16) 나를 건드리면 검찰총장 예정자도 가만 안 둔다 +25 24.05.29 10,979 233 26쪽
16 (15) 독사를 건드리면 제왕도 문다 +20 24.05.27 11,054 237 30쪽
15 (14) 공판부 땜방으로 백발검사를 보내라 +10 24.05.24 11,548 223 30쪽
14 (13) 언론비리 일망타진으로 신체감정 보상을 받다 +11 24.05.23 12,155 230 31쪽
13 (12) 특활비 별건수사로 무전취식 기자를 잡자 +12 24.05.21 12,245 237 21쪽
12 (11) 사고뭉치에게는 법카부터 먹여줘라 +13 24.05.20 13,451 243 21쪽
11 (10) 나유신이 주가조작 일당을 함정수사로 잡았다 +17 24.05.20 13,516 262 21쪽
10 (9) 오풍제지 그래핀 사기를 경찰공조로 잡는다 +16 24.05.18 14,346 257 25쪽
9 (8) 정오판정으로 오풍제지 주가조작을 발견하다 +16 24.05.17 14,705 276 15쪽
8 (7) 선배가 장애물이면 부수고 해결한다 +15 24.05.14 15,097 280 22쪽
7 (6) 상태창의 보상은 놓칠 수 없다 +23 24.05.12 15,957 296 27쪽
6 (5) 의원 하나 잡고 시작하자 +20 24.05.11 15,732 290 14쪽
5 (4) 신입 수석검사가 꼴통이래 +15 24.05.10 16,983 307 15쪽
4 (3) 범인을 잡으니 시한부 연장 +16 24.05.09 18,128 292 11쪽
3 (2) 우선 범인부터 잡고 죽자 +17 24.05.08 19,689 312 13쪽
2 (1) 백발 신입검사 나유신 +25 24.05.08 22,924 354 11쪽
1 프롤로그 : 시한부 상태창이 생겼다 +42 24.05.08 30,116 416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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