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검사는 거물이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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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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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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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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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8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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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철벽의 성을 대규모 교사 시위로 넘어볼까

DUMMY

시한 국제중학교, 사건이 발생한 현장이다.


“이 사안은 단순 자살이에요. 그러니까 검찰에선 돌아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원래 검사는 현장에 나오는 법이 별로 없다.


혹시 현장수사를 하더라도 수사관들이 급파된다.

수사관들이 모아온 증거를 책상에서 보는 게 검사의 일이다.

그렇지만 이번 사안은 법무부장관의 특별 지시로 TF가 만들어진 사건.


꼭 그게 아니라도 나유신은 시한부 판정 때문에 직접 나오긴 해야 했다.

다만 수사관 고거경에 백희진까지 따라나온 건 역시 특별 TF인 점이 클 것이다.

그런데 [수사협조 요청]을 처음부터 막아버린 거다.


수사관 고거경이 낯을 찡그리며 물었다.


“주임교사라고 하셨죠? 한인화 선생님.”

“정확히 말하면 학생부장이죠. 학생들의 생활지도가 제 주 업무입니다.”

“학폭도 있겠죠. 맞습니까?”


학생부장 한인화는 차갑게 대꾸했다.


“심문하시는 건가요? 그럼 영장 가져오세요.”


수사는 기본적으로 사실관계 확인과 증거수집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모든 수사과정을 법원의 영장을 받아 처리할 수는 없다.

때문에 임의절차라고 해서, 관계자의 [협조]를 받는 경우가 많다.

보통은 수사당국과 마찰을 일으켜서 좋을 게 없어서 순순히 협조하곤 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일개 교사인 한인화가 비협조적으로 나오고 있다.

이건 뭔가 이상하다.

왜냐하면 학교 교사는 일반적으로 권력자도, 재력가도, 그렇다고 특별한 사회적 네트워크도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체 한인화는 뭘 믿고 있는 걸까?


“선생님, 괭장히 착각하시는 것 같은데, 당신은 자살 최초 목격자입니다.”

“그래서요?”

“그럼 참고인으로 우리 영감님들이 강제구인해도 할 말 없으시단 말이죠.”


고거경이 이를 드러내며 다그쳤다.


“이렇게 직접 나와서 현장조사로 대신해 주는 건, 이미 엄청난 특혜라고요. 모르겠습니까?”


보통 사람은 수사관이 다그치는 것만으로도 벌벌 떨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한인화는 낯은 굳혔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고거경을, 그리고 그 뒤에 있는 나유신과 백희진을 쏘아보았다.


“그럼 그렇게 해보시죠.”

“지금 뭐라고 말씀하셨죠?”

“제게 강제구인이든, 영장이든 마음대로 해요.”


한인화의 시선이 백발이라 눈에 띄는 검사, 나유신을 향했다.


“방금 말씀드렸듯, 우리 학교는 특별한 학교예요. 그곳의 교사를 검찰이 끌고 간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시겠어요? 할 수 있으면 해보세요.”


나유신이 입가를 틀었다.


물론 보통 검사라면, 한인화의 말에 겁을 먹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인화가 보통 교사가 아니듯, 시한 국제중이 보통 학교가 아니듯, 나유신도 보통 검사는 아니다.

가만히 한인화를 정시하던 나유신이 입을 열었다.


“이건 말씀해 주실 수 있겠죠. 고미래 선생이 왜 죽은 겁니까? 이유가 있을 텐데요.”

“그걸 밝히는 게 검찰의 업무 아닌가요?”

“그럼 학폭을 다루다 너무 괴로워서 죽었다고 수사 결론을 내려도 되겠습니까?”


한인화가 미처 대꾸하기도 던, 나유신이 쏘아붙였다.


“이 경우 학교 당국의 관리소홀로 인한 죽음이 되죠. 당연히 학생 폭력을 담당하는 한인화 선생, 당신의 책임이 됩니다. 그때도 학교가 당신을 보호할까요?”


학교라는 조직이 아니라 개인을 공격한다.


이 순간 사람은 취약해진다.

설사 대기업 총수나 고위 관료, 혹은 다선 의원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조직이 보호해 주지 못하는 일 개인은 현대사회에서 단 한 순간도 버티기 어렵다.


그런데 한인화는 이를 악물더니 오히려 더욱 강하게 되받아쳤다.


“나도 변호사 친구 있어요.”

“그러시군요.”

“어쨌든 형사 사건 아니란 거잖아요. 그럼 된 거 아닙니까? 이만 물러나 주시죠!”


아무래도 조직, 그러니까 학교가 보호해 줄 거라 확신하는 모양이다.

물론 참고인의 이런 태도는 수사당국을 화나게 만든다.

나유신도 눈을 부릅뜨고 화를 내려 했다.


“이 교사가 진짜 보자보자 하니까.”


그 순간 백희진이 먼저 입술을 뗐다.


“선생님, 그럼 말이죠. 학교 좀 돌아봐도 되나요?”


생글생글 웃는 백희진에게 미처 화를 내지 못한 한인화가 되물었다.


“학교를 돌아보시겠다구요?”

“저도 어렸을 때 시한중 다녔거든요. 간만에 학교 오니 기분이 새롭네요.”

“동문이세요? 어머. 혹시?”


한인화가 깜짝 놀라자 백희진이 친밀한 태도로 말했다.


“백희진이라고 해요. 53회 졸업생이랍니다. 한 번, 돌아봐도 되죠?”


그 어떤 교사도 약해질 수밖에 없는 상대가 있다.


바로 졸업생이다.

또한 사립학교 특성상 한인화도 이 학교에 오래 근무한 터다.

물론 백희진이 잘 생각나진 않지만, 모든 학생을 기억할 수야 없는 일 아닌가?


결국 한인화는 거절하지 못했다.


“그러세요, 배음탁 경비실장이 도와줄 겁니다.”


슬쩍 감시자는 붙였지만 말이다.


***


특별한 중학교는 크고, 넓고, 역사도 길다.


“이 학교는 6.25가 끝난 직후 세워져서 지금까지 이른, 아주 유서 깊은 학교지요. 흠흠!”


일반적인 학교라면 그저 경비 몇 명 있는 게 전부다.


그런데 경비실이 조직으로 따로 있고, 실장을 두고 있는 것만 봐도 기묘하다.

그만큼 학교 부지가 넓어서 경비해야 할 구역이 많다는 뜻이다.

어쨌든 나유신이 한 눈에 보기에도 가히 수도중앙지검 부지만큼이나 넓어 보였다.


드넓은 학교를 구경하다, 나유신은 슬쩍 백희진 옆에서 낮게 물었다.


“너, 정말 여기 졸업생이냐?”

“아니.”

“그런데 왜 졸업생이라고 거짓말한 거야?”


나유신은 황금문자로 [정오판정]이 가능하다.


그러니 누군가 말을 할 때 [집중]하면 그게 사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있다.

한인화 교사도 무작정 진술거부를 했으니 알 수 없었을 뿐, 거짓말을 했다면 쉽게 사안을 파악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백희진의 말은 분명 거짓이었던 것이다.


아주 뻔뻔하게 백희진이 웃으며 대꾸했다.


“친척 중에 여기 다닌 애 있어. 어떤 곳인지는 대충 알아.”


하긴 백희진 집안은 법조명문이라 했으니, 특별한 중학교와 인연이 있을 법도 했다.

그런데 시선을 돌리던 나유신의 눈에 이상한 게 들어왔다.

학생들의 교복이 일반적인 중학교 교복과 달리, 화려하고 비싸 보인다.


백희진도 관심을 보였다.


“어머, 학생 교복이 다르네요?”

“그게 미국 기숙학교를 모델로 해서 그렇다고 합디다. 예쁘다고 다들 좋아하던데요. 후후.”

“그럼 수업도 일반 학교와는 다르겠군요?”


경비실장 배음탁은 자랑스런 얼굴로 답했다.


“제가 뭐 알겠습니까? 다만 수업만 하는 게 아니라 과외 활동도 활발하다는 건 알지요. 아, 저기 보이는군요.”


문득 학교 건물과는 다른 또 다른 화려한 건물이 보였다.


“클럽룸이 따로 있습니다.”


마치 기둥이 용솟음치는 듯한 형상의 원형 건물.

한 눈에도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라 건축가를 불러 설계한 게 느껴질 정도다.

웬만한 자금력으로는 만들기 어려운 건물 쪽을 가리키며 배음탁이 설명했다.


“문화예술, 스포츠, 학술 클럽으로 나뉘지요. 저 친구들은 스포츠 계열 클럽이고, 저기 악기 들고 다니는 친구들은 예술 활동을 하는 겝니다.”


건물 앞, 넓게 펼쳐진 농구장과 축구장에서 뛰는 학생들이 보인다.

그 옆을 지나가는 악기를 든 학생들은 밴드부라도 되는 모양이다.

아무리 중학교라지만 특수목적 학교는 보통 [입시] 열풍에 시달릴 텐데, 이상한 일이다.


백희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입시 공부만 하는 게 아니란 거군요?”

“핫핫! 그럴 이유가 없지요. 여긴 국제중이고 다들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다닙니다. 왜 어려운 한국 대입에 목을 매겠습니까?”

“그럼 학생들이 학교에 참 만족하면서 다니겠네요?”


배음탁이 웃으며 답했다.


“맞습니다. 다들 얼마나 표정이 좋습니까? 하하하!”


그 순간, 백희진이 마주 웃으며 물었다.


“그런데 왜 고미래 선생님은 자살했을까요?”


갑작스런 질문에 배음탁이 눈을 깜박였다.


“예? 그, 그게, 으흠.”

“학생부장님은 우리를 감시하라고 경비실장님을 보낸 것 같아요. 하지만 경비실장님도 최초 목격자셨죠?”

“그, 그게, 어.”


백희진은 여전히 생글생글 웃으며 무시무시한 얘기를 던졋다.


“이 학교가 교사까지는 보호해 줄지도 모르죠. 하지만 경비실장님의 인생도 보장해 줄까요? 뭔가 아시는 게 있다면 지금 말하세요. 실장님.”


사람이 웃으며 협박할 때 가장 무섭다는 얘기가 있다.

게다가 백희진은 남들에게 전혀 위압감을 주는 인상이 아니라서, 더욱 방심했던 터다.

배음탁 경비실장은 새하얗게 질렸다.


“그게.”


그때 클럽 건물 앞에서 누군가 경비실장 뒤에 섰다.


-틱!


구둣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는 가운데, 여학생 한 사람이 차갑게 물었다.


“경비실장님, 우리 클럽실 문이 잠겼네요?”


아주 차가운 미모의 소녀다.

그야말로 남을 내려다보는 게 습관이 된 시선이 엿보인다.

중학생에게서 볼 수 없는 위압감에 나유신조차 움찔거릴 순간.


배음탁이 부리나케 차가운 미모의 소녀에게 달려갔다.


“예? 아, 그, 그렇군요, 유, 유현 학생. 가, 갑니다. 그럼 검사님, 저는 바쁜 일이 있어서 이만.”

“안내는 안 하십니까?”

“더, 더 이상 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 순간 나유신이 배음탁의 등 뒤에 대고 물었다.


“이것 하나만 묻죠. 죽은 장예준, 신유건, 이연준이 다니던 클럽 이름이 뭡니까?”


배음탁이 쭈삣거리며 멈출 찰나, 차가운 미모의 ‘유현’ 학생이 입술을 뗐다.


“골드 스컬.”


나유신과 백희진이 ‘유현’을 돌아보았다.

유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나유신과 백희진을 마주 보았다.

흰 머리의 나유신에게 놀랄법도 한데 시선에 동요 한 점 없다.


“예일대 진학 준비 학술 클럽이에요. 애들이, 공부가 버거웠나 보죠?”


아주 차가운 목소리로 대꾸하며 ‘유현’은 돌아섰다.


“뭐야, 저 여자애?”


고거경이 혀를 내두를 찰나 백희진이 나유신을 향해 물었다.


“확실히 이상하지?”

“너 유도심문 제법이다?”

“하지만 학생부장도 경비실장도, 그리고 문서상으로는 교감도 협조 요청에 응하지 않았어. 재단이사회라도 쳐야 하나?”


나유신은 골똘히 생각하다 말했다.


“일단, 압수수색부터 하자고. 그래야 다음 수순을 밟을 수 있어.”


이렇게 된 이상 부딪칠 수밖에 없다.

어쨌든 증거는 수집해야 수사가 시작될 수 있으니까.


***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란 사실은, 힘과 부딪칠 때 정확히 알게 된다.


“정말, 영장이 기각 됐다구요?”


물론 영장청구라는 게 자동으로 되는 일은 아니다.


일단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하는 주체는 검찰이 아니라 법원이다.

법원 판사가 검사의 청구 문서를 받아서 검토한 후 허가하는 게 압수수색의 사전 절차다.

한데 법원으로서는 검찰의 청구가 아무리 긴급해도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허가할 수 있다.


허나 이번 사건은 교사 자살로 언론에 대서특필된 바다.

법원 입장에서도 굳이 내주지 않을 이유가 없는데 왜 기각했을까?

검찰 특별 TF 임시 사무실.


팀장, 유명세 검사가 콧방귀를 뀌었다.


“그래, 내가 기각될 거라고 했잖나?”

“팀장님, 그렇게 남 말하듯 말씀하시면 어떡해요? 게다가 압수수색 없이 뭘 어떻게 수사하나요?”

“여기, 차석 검사님은 그동안 아주 편하게 수사하셨구만.”


유명세가 킬킬 웃다 눈을 번들거리며 백희진에게 으르렁댔다.


“잘 들어. 원래 대한민국에선 압수수색이 안 되는 곳이 세 군데 있어. 청와대, 메이저 언론사, 그리고 종교시설이야.”


갑자기 생뚱맞은 소리다.

본래 법적으로는 압수수색을 할 수 없는 [성역] 따위, 대한민국에 없다.

대체 무슨 소리일까?


“그렇지만 현실은 다르단 거지.”


당연히 나유신도 법과 현실이 괴리된다는 것 정도는 안다.

그러나 청와대라면 나라 최고의 권부니 그럴 수도 있지만, 다른 두 곳은 또 뭘까?

백희진 검사도 영문을 몰라 눈을 깜박이다 되물었다.


“언론사랑 종교도 안 된다구요?”

“죽고 싶으면 가도 되지. 언론사는 사회적으로, 종교 시설은 잘못 건드렸다간 광신도들에게 물리적으로 죽지.”

“그런데 그게 시한 국제중이랑 무슨 상관이죠?”


그러자 유명세가 그것도 모르냐는 듯 대꾸했다.


“시한국제중은 언론사를 낀 종교 재단 산하야. 굳이 학교에 유력자 자제들이 없어도 압수수색 영장 같은 건 안 내준다고. 물론.”


일순, 유명세는 법원 기각문서를 보다 손으로 튕겼다.


“명분이야 특별한 증거 없이, 학교 자치권을 침해하는 영장은 발부할 수 없다는 거지. 아주 스윗한 판사님이군. 크크큭!”


유명세가 말한 [삼대금지]는 아니지만 학교도 일종의 금기 대상이긴 하다.


왜냐면 교육 자치라는 법적 개념이 있기 때문이다.

주로 미국에서 건너온 이론인데, 정치와 교육을 분리하기 위해서 교육은 자율성을 지켜야 한다는 얘기다.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로 일부 구현되어 있기도 하다.


그래서 특별한 사건이 없다면 학교는 강제 수사를 하지 않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이번 일은 특별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유명세 팀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가능한 이유를 알려준 것이다.


종교재단, 언론사, 거기에 유력자 자제들이 다니는 학교.

검찰 압수수색을 막을만한 힘이 있다.

하지만 검찰이 작정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압수수색을 못할 정도는 아니다.


단지 그럴만한 의지가 검찰 수뇌부에게 없을 뿐.


“혹시 교사 자살만 보도에 나온 것도 그것 때문입니까?”

“정확히는 그동안 막아왔던 이유가 그거 때문이지. 이제는 보도는 못 막겠지만 수사는 막을 수 있겠지?”

“그럼 수사도 그냥 접어야 하는 상황인가요?”


아직 포기하지 않은 백희진이 조심스레 묻자, 유명세가 버럭 고함쳤다.


“이런 온실 속 화초 같으니! 잘 들어, 차석. 검사가 정말로 수사할 거면 압수수색 없이도 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백희진이 움찔거리며 물러날 찰나, 유명세가 나유신을 돌아보았다.


“물론, 저 백사처럼 하면 안 돼.”

“제가 뭘 어쨌단 말입니까?”

“공항 마약 밀수 사건.”


유명세는 눈을 번뜩이며 엉뚱하게도 나유신을 다그쳤다.


“그때처럼 기자 불러서 생 쇼하면 죽인다.”

“전 그때 팀장님 말씀대로 압수수색 없이 해냈습니다만.”

“여기서 그 짓 했다간 박살이야. 뭘 하든.”


유명세는 나유신과 백희진을 돌아보며 다짐했다.


“내 지시 없이 수사는 해도 돼. 하지만 선 넘지 마라. 백사. 차석. 너희 둘 다.”


시한국제중 사건.


법무부장관이 TF를 만들어 수사하라고 지시한 특별 사안이다.

그러나 실은 엄정수사를 할 마음은 수뇌부에 없다.

이 상황을 아는 유명세도 무리할 생각이 없지만, 동시에 그냥 손놓고 있을 생각도 없다.


뭔가 잡히면 수사한다.

단지 압수수색은 하지 말라는 거다.

어째 손발이 묶인 기분이라 나유신이 한마디 하려던 찰나.


창밖을 보던 박달한 검사가 휘파람을 불었다.


“다 좋은데, 우리 어떻게 나가죠?”

“응?”

“밖에, 교사들이 몰려왔는뎁쇼?”


나유신은 무슨 얘기인가 하고 창문 쪽을 보다 깜짝 놀랐다.


-와아아!


수도중앙지검 앞.

난데없이 단체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


이른바 집시법에 따르면 허가받지 않은 집회는 위법이다.


“교사 죽이는 학교 현실, 규탄한다!”


아직 집시법이 살아있는 시대.


그렇지만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가 난 직후다.

때문에 열린 집회를 강제로 때려잡지는 못하는 상황에서 단체 집회가 열렸다.

바로 교사들이 모인 집회다.


피켓을 든 교사들이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규탄한다, 규탄한다!”

“어떻게 교사가 죽을 수 있나!”

“이건 다 학부모 민원 때문이다!”


1층 로비까지 나온 유명세가 입을 쩍 벌렸다.


“이게 뭐야, 대체?”


집시법이 멀쩡하던 시절만 해도, 검찰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일 자체가 드물었다.


그러나 집시법이 헌법불합치 판결이 난 후, 세상이 뒤바뀌기 시작했다.

물론 그렇다고 교사들이 검찰 앞에 올 줄은 아무도 몰랐지만.

수도중앙지검 방호행정팀장, 김정민이 당황한 얼굴로 보고했다.


“지금 일단 서초 경찰서에 연락했습니다. 곧, 경비대가 투입될 겁니다.”

“설마 강제 진압이라도 하려는 건가?”

“그건 아닙니다만, 지검장님부터 3분 차장님과 고위 간부분들까지 전부 난리입니다. 어떻게든 해결하라고.”


김정민 팀장이 입맛을 다시다 물었다.


“일단 지하주차장으로 나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미 보았듯, 수도중앙지검 지하주차장은 특별한 구조다.

일단 정문이 아닌 뒷문이고, 철문으로 닫혀 있어 기자들도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없다.

보통 특별한 피의자가 비공개 심문을 받기 위해 이용하지만 나갈 때도 활용 가능하다.


그때 범죄정보실 파견 검사, 마주선이 입술을 뗐다.


“아마, 교사 처우 불만 문제일 겁니다.”


모두가 돌아보자, 마주선은 낯을 붉히며 더듬거렸다.


“그, 그러니까, 교, 교사들이 자, 자살하는 사건들이, 있었어요.”

“무슨 소리야. 누가 교사들을 조직적으로 협박하거나 살해하기라도 했다고?”

“아, 아뇨. 그냥 자살.”


마주선이 눈을 굴리며 설명했다.


“요, 요새, 학생 인권, 강화로 학부모 민원이, 어, 엄청나데요. 그, 그래서 교, 교사들이 견디지 못하고, 자, 자살 많이 했다고 합니다.”

“범죄정보실에서 그런 것도 조사하나? 거참, 이번 사건이 학부모 민원 탓이란 거야?”

“아, 아마, 저분들은, 그, 그리 생각하는 거, 같아요.”


문득 마주선의 시선이 정문 밖을 향했다.


“교, 교사노조에서, 왔을 겁니다.”


교사노조.


평교사들의 모임으로 교사 권익 신장을 위해 싸우는 단체다.

그런데 이 단체가 교사 자살이란 이슈에 반응한 것이다.

특히 수사를 하는 검찰에 시위를 하면서 사회에 반향을 일으키려는 모양이었다.


김정민 방호팀장이 끼어들었다.


“게다가 기자들도 잔뜩 왔지요.”


교사 시위자 숫자는 3천 명 남짓이다.


통상 대규모 시위가 수만 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적지만, 오늘이 평일 낮인데다 검찰 앞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숫자다.

이런 상황을 언론이 놓칠 리가 없다.

평소 수도중앙지검 기자실에 상주하는 기자들이 모두 몰려나와 사진을 찍는 게 보였다.


유명세 TF 팀장은 낯을 찡그리다 눈썹을 치켜떴다.


“그럴 순 없지. 난 절대 물러나는 검사가 아니야!”


다음 순간, 유명세가 누가 말리기도 전에 정문으로 나섰다.


“앗, 유명세 검사다!”


기자들이 일제히 유명세를 향해 뛰어왔다.


전생 후, 겁없이 살고 있는 나유신조차 감탄할 정도의 용기다.

3천 명의 교사들이 분노를 토로한다.

기자 한 사람에게 잘못 찍히면 인생이 나락에 떨어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유명세 검사는 오히려 정면으로 부딪친 것이다.


“오우, 기자 여러분. 간만이에요. 유명세입니다.”

“한 말씀 해주시죠, 유 검사님! 이번 사건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단서는 잡으셨습니까? 정말 단순 자살입니까?”


유명세는 빙그레 웃다 정색하며 카메라를 정시했다.


“글쎄요. 일단, 수사를 하려면.”


평소 언론플레이에 능한 유명세 검사다.

이번 사안도 언플로 넘기려는 기색이 엿보였다.

한데 교사 시위대 한 가운데서 누군가 뛰쳐나와 부르짖었다.


“억울한 죽음을 해소해 주십시오!”


새하얀 머리의 중년 남자가 눈에 핏발을 세운 채 외쳤다.


“사회 초년생 딸입니다. 내 딸이 대체 무슨 죄가 있어서 자살까지 해야 했단 말입니까! 아니, 그건 타살입니다!”


죽은 고미래 선생의 부친이었던 것이다.

유가족이 억울한 죽음을 호소하는 사안.

그것도 하필이면 기자들이 잔뜩 몰린 시위 현장, 검찰청 앞이다.


어지간한 유명세도 낯이 창백하게 변했다.

말 한 마디만 잘못 나가도 정말 큰일 날 상황이다.

그때다.


“근거가 있으십니까?”


바로 백발 검사 나유신이었다.


***


이 순간, 나유신이 나선 이유가 있다.


“이곳은 검찰입니다. 증거 없이 수사를 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자살은 형사 사건이 아닙니다.”


카메라가 모두 나유신을 향했다.

교사들이 이를 갈며 노려보는 게 보인다.

자칫하면 ‘악마’ 검사가 될지도 모를 순간.


그러나 나유신은 멈추지 않았다.


“따님은 자살했습니다. 수사보고서 저도 봤는데 완벽한 자살입니다. 타살 혐의는 없고, 제3자가 침입한 흔적도 없습니다. 왜 타살이라고 보시죠?”


뒤에서 유명세 검사가 입을 쩍 벌리고 있는 게 곁눈에 보인다.


사실 자살 사건에서 유가족을 자극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다음 시위대 앞에서 도발하는 태도도 문제다.

가장 큰 문제는 기자들이 먹이를 노리는 눈으로 지켜보는 상황이란 거다.


기겁한 유명세가 나유신을 제지하려 했다.


“아니, 유가족에게 무슨! 그런다고 뭘 말하시기라도 하겠나!”

“왜냐면, 내 딸을 교장과 교감, 그리고 학부모가 압박했기 때문이오.”

“어, 말하시네?”


머쓱한 얼굴로 유명세가 물러날 순간, 나유신이 고미래 선생의 부친을 붙들었다.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왜냐면.”


나유신의 시선이 갑자기 카메라를 향했다.


“기자 여러분, 지금 시한국제중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됐습니다.”


그 순간 기자들이 난리가 났다.


“기각!”

“압력이 있는 겁니까?”

“어느 선입니까!”


유명세도, 따라 나온 박달한도, 아직 나오지 않았던 백희진도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영장기각.

통상 있는 일이고, 검찰에서 가끔 사법부를 비난하기 위해 언플을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이런 첨예한 상황에서 언론에, 그것도 시위 현장에서 폭로하는 법은 없다.


혹시 죽고 싶은 검사라면 모를까.

물론 나유신은 죽기 싫어서 하는 것이다.

눈앞, 깜박이는 시한부 알림을 보며 나유신이 외쳤다.


“중요한 건 증거와 정황이 있다면 수사는 가능하다는 겁니다. 우리 학폭 자살 특별 TF는 절대로 멈추지 않습니다!”


이게 바로 나유신이 나선 이유다.


지금 수사는 영장기각으로 봉쇄되었다.

그럼 어떻게 뚫어야 할까?

가장 손쉬운 방법에 눈앞에 나타났다.


검찰 앞에서 3천 명 교사가 시위하는 초유의 사태.

언론이 대서특필, 현장보도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법원도 다시 판단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유신이 전혀 예상치 못한 외침이 나왔다.


“증거가, 있소!”


바로 고미래 선생의 부친 입에서.


작가의말

* 현실에서는 국제중은 유명무실하게 변하긴 했지만, 10년 전에는 현재의 국제학교만큼이나 인기였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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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검사는 거물이 되기로 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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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56) 새로운 검찰총장이 백발공적을 보호한다 +10 24.09.12 4,834 107 30쪽
56 (55) 총장의 자백으로 3조 폰지 사기를 부수다 +22 24.09.09 5,141 130 28쪽
55 (54) XBC 폭로로 현직 총장 사모를 붙잡다 +18 24.09.07 5,119 121 28쪽
54 (53) 황금금강석 멤버들은 그린벨트에 3조를 투자한다 +12 24.09.04 5,448 108 28쪽
53 (52) 총장 사모님이 피라미드 거물이다 +20 24.08.30 5,786 114 28쪽
52 (51) 3조짜리 피라미드 조직을 잡아보자 +18 24.08.29 5,959 125 29쪽
51 (50) 나유신이 첫 휴가지에서 상속녀를 보다 +26 24.08.24 6,587 139 31쪽
50 (49) 초보형 전시안으로 사채왕을 발견하다 +15 24.08.22 6,535 153 30쪽
49 (48) 회장 등극식에서 대법관을 이용해 진범을 잡다 +19 24.08.20 6,660 163 21쪽
48 (47) 재벌 회장이 되게 해주세요 +25 24.08.18 6,752 154 34쪽
47 (46) 특수부 폭력이 조폭 진범보다 위다 +20 24.08.14 6,952 167 34쪽
46 (45) 강앤함과 월야 재벌가의 동상이몽을 털어라 +12 24.08.12 7,103 154 24쪽
45 (44) 월야그룹 살인사건을 만나다 +12 24.08.08 7,752 151 25쪽
44 (43) 나유신의 팀을 수도대 동문회에서 완성하다 +14 24.08.06 8,144 166 35쪽
43 (42) 백사여, 노담에서 다시 시작해라 +20 24.08.02 8,276 176 29쪽
42 (41) 시한부 연장권과 함께 중수부가 폐지되다 +20 24.07.31 8,108 193 20쪽
41 (40) 백발이가 사채왕을 잡다 +27 24.07.30 8,031 194 21쪽
40 (39) 이렇게 된 이상 선제 폭로로 중수부를 친다 +14 24.07.28 7,969 194 19쪽
39 (38) 진짜는 미래살인 배후 사채왕이다 +16 24.07.26 7,969 188 21쪽
38 (37) 금수저 비밀 정보로 스캔들 범인부터 잡다 +19 24.07.24 8,006 184 32쪽
37 (36) 이건 중수부의 운명이 걸린 사건이다 +14 24.07.19 8,127 178 30쪽
36 (35) 위치 추적 보상과 함께 서울시장 스캔들을 만나다 +22 24.07.17 8,422 186 23쪽
35 (34) 진짜 마약범을 잡고 금수저 변호사와 손잡다 +27 24.07.15 8,367 195 22쪽
34 (33) 골드스컬 클럽을 함정으로 일망타진하다 +17 24.07.14 8,306 190 23쪽
33 (32) 조기유학 금수저 학폭이 사건 진상이다 +16 24.07.10 8,383 182 23쪽
» (31) 철벽의 성을 대규모 교사 시위로 넘어볼까 +13 24.07.08 8,321 187 22쪽
31 (30) 학교폭력 연쇄 자살사건이 터졌다 +15 24.07.05 8,708 182 22쪽
30 (29) 한국 재계를 뒤엎을 진짜 거물을 만나다 +21 24.07.03 9,008 194 24쪽
29 (28) 노동 살해 협박으로 진범을 잡다 +16 24.07.01 8,855 201 22쪽
28 (27) 솔라코인 전관 법무팀의 방어를 뚫어라 +15 24.06.27 9,043 196 21쪽
27 (26) 특수부 첫 사건은 1조원 분식회계다 +17 24.06.26 9,385 198 22쪽
26 (25) 중수부장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받다 +15 24.06.24 9,589 201 35쪽
25 (24) 백발이를 죽인 자에게 진짜 복수를 해보자 +16 24.06.19 9,315 198 34쪽
24 (23) 백사가 또 검사를 잡았다 +22 24.06.18 9,397 200 22쪽
23 (22) 특수부식 예단수사로 마약통관범을 잡아라 +11 24.06.15 9,441 197 23쪽
22 (21) 이 나라에는 마약도 너무 많다 +17 24.06.13 10,215 210 24쪽
21 (20) 첫 기자회견과 함께 위수증 5백억 코인이 남다 +19 24.06.07 10,211 224 36쪽
20 (19) 5초 예지로 폭발 속 범인을 잡다 +14 24.06.06 10,104 221 24쪽
19 (18) 감옥에 보낼 놈은 내가 고른다 +14 24.06.04 10,091 218 18쪽
18 (17) 1천억 비트코인 사건을 5초 예지로 파헤치자 +14 24.05.31 11,100 219 31쪽
17 (16) 나를 건드리면 검찰총장 예정자도 가만 안 둔다 +25 24.05.29 10,979 233 26쪽
16 (15) 독사를 건드리면 제왕도 문다 +20 24.05.27 11,055 237 30쪽
15 (14) 공판부 땜방으로 백발검사를 보내라 +10 24.05.24 11,550 223 30쪽
14 (13) 언론비리 일망타진으로 신체감정 보상을 받다 +11 24.05.23 12,155 230 31쪽
13 (12) 특활비 별건수사로 무전취식 기자를 잡자 +12 24.05.21 12,245 237 21쪽
12 (11) 사고뭉치에게는 법카부터 먹여줘라 +13 24.05.20 13,451 243 21쪽
11 (10) 나유신이 주가조작 일당을 함정수사로 잡았다 +17 24.05.20 13,516 262 21쪽
10 (9) 오풍제지 그래핀 사기를 경찰공조로 잡는다 +16 24.05.18 14,348 257 25쪽
9 (8) 정오판정으로 오풍제지 주가조작을 발견하다 +16 24.05.17 14,706 276 15쪽
8 (7) 선배가 장애물이면 부수고 해결한다 +15 24.05.14 15,099 280 22쪽
7 (6) 상태창의 보상은 놓칠 수 없다 +23 24.05.12 15,957 296 27쪽
6 (5) 의원 하나 잡고 시작하자 +20 24.05.11 15,732 290 14쪽
5 (4) 신입 수석검사가 꼴통이래 +15 24.05.10 16,983 307 15쪽
4 (3) 범인을 잡으니 시한부 연장 +16 24.05.09 18,129 292 11쪽
3 (2) 우선 범인부터 잡고 죽자 +17 24.05.08 19,693 312 13쪽
2 (1) 백발 신입검사 나유신 +25 24.05.08 22,926 354 11쪽
1 프롤로그 : 시한부 상태창이 생겼다 +42 24.05.08 30,119 416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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