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검사는 거물이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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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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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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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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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7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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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27) 솔라코인 전관 법무팀의 방어를 뚫어라

DUMMY

이 천당 신도시는 단 한 순간에 수천억 원의 부자도, 땡전 한 푼 없는 거지도 생겨나는 곳이다.


“홍시덕 씨, 맞습니까?”


홍시덕도 본래 천당에 올 때는 그런 꿈을 꾼 적이 있다.


언젠가 한 번 기회를 잡아 [로켓]을 타는 부자가 되리라.

이 로켓이란 [고글]의 최고 경영자가 한 말인데, 성공하고 싶으면 로켓에 올라타라는 실리콘벨리의 격언에서 비롯된 얘기다.

그렇지만 헬크에 입사한 후로 그 꿈은 꺾였다.


로켓에 올라타려다 죽어버린 사람을 보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에 갑자기 검찰이 꼭두새벽부터 쳐들어오는 일도 겪었다.

그러다 보니 누가 자신을 붙잡으면 깜짝 놀란다.


이번에는 웬 ‘흰머리’라 더욱 놀랐다.


“어, 흰머리? 혹시 패션인가요? 천당신도시에 이상한 사람 많긴 한데.”

“검사입니다.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이죠.”

“거, 거, 검사라구요? 아니, 제게 왜?”


홍시덕이 마른 침을 삼킬 찰나, 흰머리 검사 나유신이 싱긋 웃으며 물었다.


“최인규 씨 아시죠? 헬크 공동창업자. 2달 전 사망했죠.”


당연히 알 수밖에 없다.


홍시덕이 꿈을 꺾은 가장 큰 이유니까.

그러나 눈앞의 상대가 검사라면 더욱 말할 수 없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홍시덕은 끼어들고 싶지도 않고, 쫓겨나고 싶지도 않으며, 죽기는 더 싫다.


바삐 다시 출근길을 위해 걸음을 옮기며 홍시덕이 대꾸했다.


“누구에게 뭘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난 아무것도 모릅니다.”

“거짓말이군요.”

“아니,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압니까? 거짓말 탐지기라도 들고 다녀요?”


홍시덕이 발끈해 반문할 찰나, 나유신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응시하며 가로막았다.


“최인규 씨가 마지막으로 헬크에서 일할 때, 팀원이었다고 들었는데요.”


맞다.


헬크 공동창업자, 한국형 실리콘벨리 천당의 신화 중 하나.

그렇지만 비참하게 경영진에서 쫓겨났다가 죽은 남자.

최인규 팀장은 홍시덕의 직속 팀리더였다.


홍시덕은 이를 악물다 대꾸했다.


“그랬죠.”

“왜 최인규 씨가 갑자기 회사에서 밀려났는지, 아시는 바가 있습니까?”

“그러니까, 난 아무것도 모른다구요.”


하지만 나유신은 멈추지 않았다.


“최소한 최인규 씨와 함께 작업하던 프로젝트는 알겠죠. 뭡니까?”


갑자기 머리 끝이 쭈뼛 서는 기분이다.


이 백발머리의 이상한 검사는 뭔가를 알고 왔다.

아니, 검사가 맞긴 할까?

어쩌면 그냥 협박범이나 사기꾼일지도 모른다.


홍시덕이 나유신을 마주 노려보았다.


“영장 가져오세요.”

“협조할 생각 없습니까?”

“이런 방식으로 갑자기 찾아와서 물으면, 대답할 의무 없을 건데요?”


분명 홍시덕이 보았던 뉴스에서는 그랬다.


“난 절대로 답할 생각이 없습니다.”


영장이 있어야 압수든 수사든 할 수 있다고 보았던 기억이 난다.

아무리 상대가 검사라도 법은 지킬 게 아닌가?

그런데 백발의 검사 나유신이 차갑게 웃었다.


“홍시덕 씨, 지금 당신 앞에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 검사입니다.”

“누, 누가 뭐래요? 가짜라고 말한 적도 없는데.”

“검사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모르죠?”


나유신은 홍시덕을 말로 잡아 세운 채 차갑게 다그쳤다.


“지금부터 당신이 하는 모든 일에 태클을 걸 수 있습니다. 교통 신호를 위반하든, 세금을 체납하든, 혹은 헬크 수뇌부가 저지른 범죄가 있다면 공범으로 엮어서라도.”


기가 막힌 소리라 홍시덕은 입을 쩍 벌렸다.


“그, 그게 무슨 소리.”

“없는 죄를 만들 수는 없지만, 있는 죄를 철저하게 처벌하는 건 쉬운 일이죠.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은 없기 마련. 어디, 작정하고 털어볼까요?”

“나, 나한테 왜 이래요?”


분명 검사는 영장 없이 사람을 강제구인하거나 구속할 수 없다.


그렇지만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사법권을 가진 공무원이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단지 보통은 표적으로 삼아 공격하는 일이 없을 뿐이다.

그런데 수사에 비협조하는 사람은 표적이 되기 십상이다.


평범한 소시민 프로그래머 홍시덕이 벌벌 떨 찰나, 나유신이 다시 말했다.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최인규 씨가 부당하게 탄압받다가 자살을 강요받았다고. 난 그게 사실인지, 이유가 뭔지, 그리고 헬크가 숨기고 있는 게 뭔지 알고 싶습니다.”


홍시덕이 눈을 깜박일 순간, 나유신이 확언했다.


“말하지 않으면 당신을 표적으로 간주합니다. 이미 검찰에서 헬크 압수수색 나온 건 아시죠?”


비록 검사는 처음 보지만, 홍시덕은 알 수 있었다.


눈앞의 이 남자는 미친 놈이다.

홍시덕이 천당신도시에서 자주 보았던 미친 창업자들처럼.

미친 놈은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결국 홍시덕은 어쩔 수 없이 자백하고 말았다.


“그, 그게, 크립토 프로젝트 때문일 겁니다.”


헬크 내부의 최고 기밀을.


***


검사는 기본적으로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 공부는 분야가 한정되어 있다.

특히 IT 분야로 넘어오면 문과 출신인 검사는 거의 백지 상태가 된다.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나름 ‘수재’ 소리 들었던 염민아도 눈만 깜박였다.


“크립토? 그게 뭔데?”


어쩐지 슈퍼맨의 고향 같은 소리다.

사실 거기서 온 단어가 맞다.

나유신이 홍시덕의 진술 녹취를 틀며 대꾸했다.


“블록체인 가상화폐의 정식 명칭이에요.”

“응? 아, 그 비트코인인가 하는 거? 그거 말고 또 있어?”

“비트코인은 가장 처음 나온 가상화폐일 뿐이죠. 블록체인 기술을 응용하면 누구든 암호화폐를 만들고 발행할 수 있어요. 다만.”


문득 나유신이 녹취 시연을 멈췄다.


“그 암호화폐, 통칭 코인에 [가치]를 부여하는 건 참여자들의 신뢰죠. 최인규는 그 점을 해결하려고 했어요.”


크립토 프로젝트, 곧 암호화폐 거래는 두 가지 난점을 해결해야 한다.


하나는 블록체인을 통해 정보단위를 암호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화폐처럼 거래될 수가 없다.

중요한 것은 블록체인 암호화폐를 사고, 팔도록 만드는 신뢰 부여.


비트코인이 특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초의 암호화폐인데다 발행량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가치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한데 후발주자가 비트코인처럼 가치를 가지려면 수많은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염민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게임 유료아이템에 가치 부여하는 거랑 비슷한가? 그게 기술로 가능해?”

“어렵죠. 그래서 뭔가 다른 방식을 쓴 것 같은데, 홍시덕은 거기까진 모르더군요. 다만, 최인규가 엄청난 압박을 받았다고 했어요.”

“압박이라고? 왜?”


나유신은 헬크 내부 속사정을 떠올리며 말했다.


“최인규는 원래 공동창업자로 이사였죠. 하지만 최근 경영진에서 밀려났다가, 이 ‘헬-크립토’ 프로젝트를 통해서 복귀하려고 했던 모양이에요.”


한국 최고 IT기업이자 게임회사, 헬크.


하지만 헬크는 게임 외에도 수많은 돈 되는 프로젝트에 손을 뻗고 있다.

공동창업자 최인규는 이런 흐름에 반대했고, 경영진에서 밀려났다.

그러다 새로 맡게 된 프로젝트가 바로 [헬-크립토], 코인 생성 프로젝트다.


물론 염민아는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이 프로젝트가 경영진을 좌우할 정도로 대단한가? 게다가 우리가 지금 수사 중인 사안과 무관하잖아.”

“상관이 있을지도 몰라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문득 나유신이 염민아에게 되물었다.


“첫 번째 제보자가 누구죠?”


염민아는 다시 눈을 깜박였다.


아직 특수부장 구호승은 제보자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다.

단지 입수 정보에 따라 압수수색을 지시했을 뿐이다.

허나 아무리 특수부가 인지수사 전문 부서라도 최초 제보자의 신분은 중요하다.


정보 신뢰성을 좌우할 테니까.


“난 들은 건 없어. 아직 너나 나나 부장의 신임도가 낮잖아?”

“누군가가 애초에 횡령 문제를 제보했으니까 인지 수사가 시작됐겠죠.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습니다.”

“특수부는 나올 때까지 수사하긴 하지만, 그래도 아예 없는 걸 만들 수야 없지. 그래서?”


나유신이 염민아를 정시했다.


“이 제보를 한 사람, 혹시 최인규가 아닐까요?”


염민아는 미간을 좁혔다.


그럼 이해할 수 있다.

최인규는 죽었다.

죽은 사람이 제보자라면 부장이 숨기는 것도 이해가 간다.


게다가 최인규는 밀려나긴 했지만 공동창업자이자 전직 이사로, 헬크 고위층이다.


“회사 내부 정보를 알 수 있고, 원한을 품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희생자다?”

“모든 게 맞아 떨어지잖아요? 회사 내부 횡령 정보를 알기에도 딱 적당한 자고.”

“그럼, 뭐가 달라지지? 어차피 죽었다며.”


나유신이 다시 진솔이 녹취된 스마트폰을 가리켰다.


“이게 단순 횡령 사건이 아니라, 살인사건이 될 수도 있잖아요.”


회사 경영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일은 극히 드물다.

그렇지만 또한 살인은 1억 원 정도의 금전 다툼으로도 일어난다.

하물며 수십조 원대의 순이익을 올리는 초거대 IT 기업, 헬크의 경영권이라면 어떨까?


염민아가 책상을 톡톡 두들겼다.


“말했듯이, 난 몰라.”

“선배.”

“하지만, 알만한 사람은 있지.”


문득 염민아가 입가를 틀며 미소를 머금었다.


“빚을 갚으라고 해야겠어.”


현직 동료이자 전직 동기에게 채무 청구를 할 시간이다.


***


당연하게도, 사정국이다.


“아, 이제 와서 무슨 빚?”


모른 척 하려는 빚쟁이를 향해 염민아가 차갑게 물었다.


“너, 내가 왜 [노답]으로 쫓겨났는지 기억하지?”

“그야 당시 부장 들이 받아서지. 서수휘였던가?”

“그런데 그때 나만 걸려 있는 게 아니었어.”


염민아는 사정국의 볼을 톡톡 두들기며 화사하게 웃었다.


“너도 같이 엮여 있었잖아? 하지만 난 끝까지 입 뻥긋 안 했다, 사정국?”


사정국은 낯을 찌푸렸다.

물론 꼭 이런 옛날 일이 아니라도, 사정국은 염민아에게 협조할 생각이긴 하다.

그러나 이번 [제보자] 건은 부장이 신신당부한 사안이다.


눈을 굴리던 사정국이 진실을 반만 털어 놓았다.


“좋아. 말해주지. 아니야.”

“확실히 아니야? 그럼 누군데?”

“그건 말해줄 수 없어. 하지만 신뢰할 수 있는 제보자고, 또한 헬크 내부인은 아니야.”


나유신은 사정국을 살피다 실망했다.


정오판정, 진실.

그럼 최인규의 죽음은 아무 상관이 없는 별 건일까?

그런데 사정국이 고개를 다시 기울였다.


“하지만 크립토인가 뭔가 하니까 걸리는 게 있는데.”


나유신이 다급히 물었다.


“뭡니까?”

“제보 내용 중에 무슨 크립토 [백서]라는 파일이 있었어.”

“보여주실 수 있죠?”


사무실 한 구석에 쌓여 있는 문서 더미를 뒤적이다, 사정국이 문서철 하나를 꺼냈다.


“이거야.”


아직 전산화가 덜 된 시대.

사정국은 오프라인 문서를 선호하는 모양이다.

재빨리 나유신이 문서를 살피다 눈에 이채를 띠었다.


-〈가치 고정, 스테이블, 솔라. 이 크립토의 요지는 바로 고정에 달려 있습니다.〉


뚫어져라 문서를 보는 나유신 옆에서 염민아가 물었다.


“뭔지 알겠어?”


나유신은 굳은 낯으로 대꾸했다.


“이거, [솔라 프로젝트]군요.”

“응? 그게 뭔데?”

“사기극이죠.”


일순, 나유신은 10년 전, 전생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최소, 6조 달러짜리가 될 수도 있는.”


이 정도면 공동창업자를 죽일 요인이 된다.


***


특수부장 구호승은 심기가 불편하다.


“뭔 소리야, 그게? 크립토? 무슨 슈퍼맨 고향 얘기하나?”


왜냐면 수사 진척이 없기 때문이다.


일단 특수부 특유의 압수수색으로 기선제압을 하는 데는 성공했다.

허나 제보 내용과 달리 압수수색으로 나온 게 없다.

이럴 때는 보통 경영진을 잡아 족치는 식으로 들어가는 게 보통이다.


문제는 그럴 만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명분을 찾지 못해 아주 심기가 불편한 상황에서 ‘막내’가 이상한 얘기를 들고 왔다.

도대체 슈퍼맨 고향 씨나락 까먹는 소리는 왜 들고 온단 말인가?


그런데 나유신은 아주 상식인 것처럼 말했다.


“간단히 말해, 코인 프로젝트입니다.”

“코인? 그게 뭔데?”

“그러니까 블록체인이라는 게 있는데.”


그때 특수부 검사, 사정국이 끼어들어 설명했다.


“아, 기억 못하십니까? 나검이 한참 전에 무슨 환치기 건인가 해결한 거 있잖습니까. 언론보도에도 나오고, 삼합회 조폭까지 끼어서 난리 났던 사건.”


그야말로 전국적으로 기자회견을 했던 사건이다.

당시에 구호승은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말이다.

정작 나유신은 설명해주는 사정국에게 일침을 놓았다.


“그거 한참 전이 아니라 고작 두달 전입니다만.”

“기억나는군. 그 사건 때문에 윗선에서 이 친구를 당시에 주목했지?”

“아니, 그러니까 옛날 일이 아니라 얼마 전이라니까요.”


구호승은 나유신의 항변을 무시한 채 되물었다.


“하여간, 그래서?”

“헬크는 이 코인이라는 게 돈이 될 거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부적으로 중요 프로젝트로 여기고 준비 중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공동창업자에, 중요 프로젝트에 참가한 작자가 왜 죽어?”


나유신이 구호승을 보며 단언했다.


“이 프로젝트를 현 경영진, 정확히는 창업주 하태평이 장악하기 위해서죠.”


그러니까, 의도를 가진 죽음이란 얘기다.


최인규는 헬크의 공동창업자로 2달 전에 죽었다.

바로 나유신이 한창 비트코인 사건을 해결하던 무렵이다.

그 말은 비트코인이 이제 막 각광받기 시작할 순간 죽었다는 의미다.


나유신은 결코 이게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연이 아닌 죽음이란 뭘까?

수사 전 압색부터 하는 특수부장 구호승조차 이맛살을 찌푸릴 소리다.


“너무 예단하는 것 같군.”

“횡령은 예단 아닙니까?”

“그건 말했듯이 충분한 근거와 자료가 있는 제보야. 제보자는 밝힐 수 없지만.”


나유신은 구호승에게 항변했다.


“익명제보죠. 나아가, 1조 원을 해외로 빼돌렸다는 게, 이 크립토 프로젝트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보통, 이런 건방진 소리를 하는 신입은 구호승에게 호통부터 듣는다.

그렇지만 눈앞의 나유신은 지금까지 보여준 게 있다.

무리한 수사를 하는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모두 맞다.


그래서 구호승은 나유신의 말을 무시하지 못한 채 되물었다.


“왜지?”

“이 크립토라는 건 기본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금융수단을 만드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한 번 크립토 프로젝트, 곧 코인을 띄우려면 초기 거래금이 필요해요.”

“일종의 주가조작 같은 건가? 흐음.”


이건 좀 알아들을 소리라 구호승이 턱을 쓰다듬을 찰나, 나유신이 덧붙였다.


“게다가, 제 생각이 맞다면, 이건 엄청난 사기예정 코인 프로젝트입니다.”


만약 이게 정말 [솔라 코인]이 맞다면 그렇다.


물론 코인에 대해 별 관심 없는 사람에게는 사실 그게 그거다.

일단 아무런 가치도 없어 보이는 정보단위를 실물 화폐를 주고 산다는 게 이상하다.

땅에 떨어져 있는 돌덩이와 무슨 차이가 있을까?


구호승도 상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하기에 어이없는 표정이 되었다.


“무슨 소리지, 그게? 뭐, 코인이라는 게 내가 보기엔 다 사기인 거 같은데.”

“제보 파일 중에 [백서]라는 게 있었죠.”

“응? 화이트페이퍼? 그게 뭐, 특별한가?”


나유신이 제보자가 보낸 익명 제보자료 속, [백서]를 거론했다.


“코인 백서는 일종의 사업보고서 같은 겁니다. 이 프로젝트가 어떻게 가동될지 초기 기획을 하는 거죠. 그런데, 이 백서에는 [스테이블 코인]이 기재되어 있어요.”


이른바 화이트페이퍼는 사실 영국에서 공문서를 가리키는 말이다.


하지만 비트코인이 처음 세상에 나올 때, [백서] 형태로 코인 개념을 설명하면서 코인 업계에서도 일반화되었다.

백서로 이 코인이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설명함으로써 [신뢰가치]를 부여하는 전통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나유신이 본 백서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가치고정, 스테이블, 솔라.

이건 나유신의 전생에서도 꽤나 유명했던 코인 사기극의 핵심이다.

당연히 구호승은 처음 듣는 얘기라 되물었다.


“스테이블 코인이 뭔데?”

“코인 가치를 고정시키는 겁니다.”

“어떻게? 그 코인인가 비트인가는 24시간 거래소에서 거래되면서 가치가 변동한다고 하지 않았나?”


나유신은 아주 간단히 설명했다.


“막대한 달러를 보유하고, 그 달러로 코인을 교환시켜 주면 됩니다. 그러면 가치가 달러에 고정되죠.”


물론 코인이 아닌 [고정 가치 화폐]도 이보다 더 복잡하게 작동한다.


그렇지만 수사당국 입장에서는 이것만 알아도 충분하다.

어쨌든 막대한 ‘달러’가 필요하다는 것만 알면 되니까.

허나 문제는 달러가 충분히 준비되지 않을 때다.


구호승 특수부장이 눈을 굴리다 크게 떴다.


“잠깐, 그럼 1조 원을 빼돌려서 하려는 일이?”


아귀가 맞아 떨어진다.


갑자기 사라진 1조 원의 행방.

전직 경영진의 사망.

헬크에서 진행되는 긴급 프로젝트.


그때다.


-타다닥!


일순, 특수부 소속 검사, 차상진이 뛰어 들어와 외쳤다.


“지금, 뉴스 틀어보세요! 헬크 법무팀이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갑자기 엉뚱한 곳에서 반격이 들어온 것이다.


***


규모가 있는 기업에는 항상 법무팀이 있다.


“우리 헬크 법무팀은 이번 압수수색이 전부 부당함을 선언합니다!”


천당 실리콘벨리의 신화.


한국 최대 게임사이자 IT 기업.

현재 순이익만 5대 그룹 총액과 맞먹는다는 엄청난 회사.

비록 그 이익은 직원들을 헬-크런치 모드로 갈아서 만든 것이지만, 그만큼 회사의 규모는 일개 벤처기업 따위가 아니다.


가히 대기업 규모의 법무팀.

무려 변호사 숫자만 30명에 달한다.

30인 법무팀 변호사의 수장, 법무이사 박정민이 외치고 있었다.


문득 기자회견장에서 기자 하나가 손을 들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간단합니다. 노담시민뉴스 서나래 기자님. 최근에 함께 수도지검 특수부랑 협업하신 걸로 아는데요.”

“예? 제보를 받아 그냥 취재했을 뿐인데.”


서나래가 잠시 당황할 찰나, 박정민이 웃으며 소리쳤다.


“협업하셨으니 잘 아시겠죠. 검찰은, 수도중앙 특수부는 부당한 수사를 서슴없이 저지릅니다. 합법과 위법을 넘나들면서! 최근에도 압수수색을 했죠!”


박정민은 카메라를 정시하며 눈을 부릅떴다.


“그런데 압수수색 영장은 특정 범위 내에서만 사용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번 압수수색이 그런가요? 아닙니다. 자, 보시죠!”


박정민의 뒤로 영상 하나가 펼쳐졌다.


아주 뚜렷한 CCTV 화면이다.

지난 수도중앙지검 특수부의 압수수색 현장.

당시 찍힌 화면이 그대로 나온다.


무작정 쳐들어와서 모두 털어가는 광경이다.


“이처럼 수도중앙 특수부는 제멋대로 자료를 탈취해 갔습니다. 법무팀이 아직 출근하지 않은, 새벽을 노려서!”

“법무팀이 있었다면 달랐을 거라는 건가요?”

“당연하지요!”


박정민은 기자들을 향해 단언했다.


“저도 전직이 검사라서 잘 압니다. 이건 별건수사를 위한 밑밥이에요. 하지만 제가 있는 이상, 그리고 우리 헬크 법무팀이 있는 이상 이런 꼼수는 통하지 않습니다.”


순간 박정민의 검지가 카메라를 가리켰다.


“수도중앙 특수부, 각오하세요. 당신들 모두 위법수사로 옷 벗겨 줄 테니까!”


그야말로 선전포고다.


***


이 모든 것이 생중계 되었다.


또한, 수도중앙지검 특수부반 본 게 아니다.

수도중앙지검의 윗선, 지검장도 봤다.

지검장 박태곤이 만년필을 쓰다듬다 입을 열었다.


“난 자네가 아니라 백사가 사고칠 줄 알았는데.”

“죄송합니다.”

“여기서 더 문제가 커지지 않게 덮어줄 수는 있어. 하지만.”


박태곤의 시선이 구호승을 향했다.


“지금까지 압수수색한 증거 자료는 모두 폐기야. 알지?”


위법 수집 증거.


적법절차를 어기고 수집된 증거는 재판에서 사용될 수 없다.

물론 항변은 가능하다.

하지만 먼저 언론으로 헬크 법무팀이 치고 나왔다.


게다가 헬크의 박정민은 그냥 변호사가 아니다.


“지검장님, 박정민이 전관이라 봐주시는 겁니까?”


구호승도 보통 검사는 아니다.

이렇게 대놓고 묻을 정도니까.

다만 박태곤도 그냥 물로 지검장이 된 건 아니었다.


“누가 그러나? 적법하게 증거 수집해. 그럼 나도 별말 안 할 테니까.”


혹시 문제가 생기더라도 빠져나갈 수 있는 여지.

지금 박태곤이 말한 바다.

잠시 지검장을 노려보던 구호승이 돌아섰다.


“그 말씀, 지켜주셔야 합니다.”


나오는 길.

특수부 검사들과 수사관들이 이를 갈며 서 있었다.

단단히 화가 난 얼굴이다.


“그 새끼, 가만 둡니까?”

“아주 죽고 싶어 환장했나 본데요?”

“그렇지만, 우리 증거자료 하나도 못 쓰게 되는 거 아닙니까?”


그때 차가운 은테안경을 번뜩이며 구호승이 입을 열었다.


“아니, 압수수색으로 들어온 거 말고, 따로 쓸 수 있는 증거와 증언이 있지.”


순간 모두의 시선이 한 사람을 향했다.

귀신, 아니 수퍼맨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가져온 막내 검사를.

바로 나유신이다.


“이봐, 백사? 그 헬인가 크립토인가 하는 거, 칠 수 있나?”


사정국이 차갑게 묻자, 나유신이 대꾸했다.


“쳐 보겠습니다. 제대로.”


이번에는 나유신도 열받았다.

굳이 시한부 알림이 아니라도.


작가의말

* 이제 주 6일제로 연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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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58) 재벌가 상속녀도 보이스피싱을 당한다 NEW +11 14시간 전 2,349 53 9쪽
58 (57) 전시안 보유 시한부 인생은 무서울 게 없다 +10 24.09.17 3,639 84 29쪽
57 (56) 새로운 검찰총장이 백발공적을 보호한다 +10 24.09.12 4,835 107 30쪽
56 (55) 총장의 자백으로 3조 폰지 사기를 부수다 +22 24.09.09 5,143 130 28쪽
55 (54) XBC 폭로로 현직 총장 사모를 붙잡다 +18 24.09.07 5,119 121 28쪽
54 (53) 황금금강석 멤버들은 그린벨트에 3조를 투자한다 +12 24.09.04 5,448 108 28쪽
53 (52) 총장 사모님이 피라미드 거물이다 +20 24.08.30 5,787 114 28쪽
52 (51) 3조짜리 피라미드 조직을 잡아보자 +18 24.08.29 5,960 126 29쪽
51 (50) 나유신이 첫 휴가지에서 상속녀를 보다 +26 24.08.24 6,587 139 31쪽
50 (49) 초보형 전시안으로 사채왕을 발견하다 +15 24.08.22 6,536 153 30쪽
49 (48) 회장 등극식에서 대법관을 이용해 진범을 잡다 +19 24.08.20 6,660 163 21쪽
48 (47) 재벌 회장이 되게 해주세요 +25 24.08.18 6,753 154 34쪽
47 (46) 특수부 폭력이 조폭 진범보다 위다 +20 24.08.14 6,953 167 34쪽
46 (45) 강앤함과 월야 재벌가의 동상이몽을 털어라 +12 24.08.12 7,104 154 24쪽
45 (44) 월야그룹 살인사건을 만나다 +12 24.08.08 7,752 151 25쪽
44 (43) 나유신의 팀을 수도대 동문회에서 완성하다 +14 24.08.06 8,145 166 35쪽
43 (42) 백사여, 노담에서 다시 시작해라 +20 24.08.02 8,276 176 29쪽
42 (41) 시한부 연장권과 함께 중수부가 폐지되다 +20 24.07.31 8,110 193 20쪽
41 (40) 백발이가 사채왕을 잡다 +27 24.07.30 8,031 194 21쪽
40 (39) 이렇게 된 이상 선제 폭로로 중수부를 친다 +14 24.07.28 7,969 194 19쪽
39 (38) 진짜는 미래살인 배후 사채왕이다 +16 24.07.26 7,969 188 21쪽
38 (37) 금수저 비밀 정보로 스캔들 범인부터 잡다 +19 24.07.24 8,007 184 32쪽
37 (36) 이건 중수부의 운명이 걸린 사건이다 +14 24.07.19 8,127 178 30쪽
36 (35) 위치 추적 보상과 함께 서울시장 스캔들을 만나다 +22 24.07.17 8,423 186 23쪽
35 (34) 진짜 마약범을 잡고 금수저 변호사와 손잡다 +27 24.07.15 8,367 195 22쪽
34 (33) 골드스컬 클럽을 함정으로 일망타진하다 +17 24.07.14 8,306 190 23쪽
33 (32) 조기유학 금수저 학폭이 사건 진상이다 +16 24.07.10 8,383 182 23쪽
32 (31) 철벽의 성을 대규모 교사 시위로 넘어볼까 +13 24.07.08 8,321 187 22쪽
31 (30) 학교폭력 연쇄 자살사건이 터졌다 +15 24.07.05 8,709 182 22쪽
30 (29) 한국 재계를 뒤엎을 진짜 거물을 만나다 +21 24.07.03 9,008 194 24쪽
29 (28) 노동 살해 협박으로 진범을 잡다 +16 24.07.01 8,856 201 22쪽
» (27) 솔라코인 전관 법무팀의 방어를 뚫어라 +15 24.06.27 9,044 196 21쪽
27 (26) 특수부 첫 사건은 1조원 분식회계다 +17 24.06.26 9,385 198 22쪽
26 (25) 중수부장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받다 +15 24.06.24 9,590 201 35쪽
25 (24) 백발이를 죽인 자에게 진짜 복수를 해보자 +16 24.06.19 9,316 198 34쪽
24 (23) 백사가 또 검사를 잡았다 +22 24.06.18 9,397 200 22쪽
23 (22) 특수부식 예단수사로 마약통관범을 잡아라 +11 24.06.15 9,441 197 23쪽
22 (21) 이 나라에는 마약도 너무 많다 +17 24.06.13 10,215 210 24쪽
21 (20) 첫 기자회견과 함께 위수증 5백억 코인이 남다 +19 24.06.07 10,211 224 36쪽
20 (19) 5초 예지로 폭발 속 범인을 잡다 +14 24.06.06 10,104 221 24쪽
19 (18) 감옥에 보낼 놈은 내가 고른다 +14 24.06.04 10,091 218 18쪽
18 (17) 1천억 비트코인 사건을 5초 예지로 파헤치자 +14 24.05.31 11,100 219 31쪽
17 (16) 나를 건드리면 검찰총장 예정자도 가만 안 둔다 +25 24.05.29 10,979 233 26쪽
16 (15) 독사를 건드리면 제왕도 문다 +20 24.05.27 11,058 237 30쪽
15 (14) 공판부 땜방으로 백발검사를 보내라 +10 24.05.24 11,550 223 30쪽
14 (13) 언론비리 일망타진으로 신체감정 보상을 받다 +11 24.05.23 12,155 230 31쪽
13 (12) 특활비 별건수사로 무전취식 기자를 잡자 +12 24.05.21 12,246 237 21쪽
12 (11) 사고뭉치에게는 법카부터 먹여줘라 +13 24.05.20 13,452 243 21쪽
11 (10) 나유신이 주가조작 일당을 함정수사로 잡았다 +17 24.05.20 13,516 262 21쪽
10 (9) 오풍제지 그래핀 사기를 경찰공조로 잡는다 +16 24.05.18 14,349 257 25쪽
9 (8) 정오판정으로 오풍제지 주가조작을 발견하다 +16 24.05.17 14,706 276 15쪽
8 (7) 선배가 장애물이면 부수고 해결한다 +15 24.05.14 15,099 280 22쪽
7 (6) 상태창의 보상은 놓칠 수 없다 +23 24.05.12 15,957 296 27쪽
6 (5) 의원 하나 잡고 시작하자 +20 24.05.11 15,732 290 14쪽
5 (4) 신입 수석검사가 꼴통이래 +15 24.05.10 16,984 307 15쪽
4 (3) 범인을 잡으니 시한부 연장 +16 24.05.09 18,129 292 11쪽
3 (2) 우선 범인부터 잡고 죽자 +17 24.05.08 19,693 312 13쪽
2 (1) 백발 신입검사 나유신 +25 24.05.08 22,928 354 11쪽
1 프롤로그 : 시한부 상태창이 생겼다 +42 24.05.08 30,121 416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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