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검찰 민생 TF가 보이스피싱을 잡는다
그런데 민생이란 무엇인가?
“국민의 안전과 행복, 그리고 평안을 지키는 게 곧 민생이지!”
검찰 민생 수사 TF의 특별 팀장, 유명세가 거드름을 피우며 외쳤다.
보통 특별 TF는 간부급 검사들에게 기피 대상이다.
나유신처럼 평검사야 까라면 까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가야하지만.
그런데 유명세는 전에 없이 적극적인 얼굴이었다.
나유신이 유명세를 빤히 보다 물었다.
“부장님이 민생에 관심 있는 분인 줄은 처음 알았군요.”
“난 관심 없지만, 신임 총장이 관심이 넘친 데잖아? 게다가 청와대도 관심 많다는군.”
“그래서 재벌회장이 보이스피싱 당한 게 민생입니까?”
나유신이 낯을 찌푸리다 대꾸했다.
“고작 3천만 원 당했다는데.”
아무래도 하주연이 꽤 고위층에 전화한 모양이다.
사실 하주연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일단 동생이 무사하다는 데 안도하고, 다시 3천만 원이 범죄에 이용되었다고 하니 놀랐고, 해서 나유신에게 전화했을 게 뻔하다.
한데 나유신이 전화를 받지 않으니, 다른 ‘아는’ 검사에게 전화를 한 모양이다.
그게 하필이면 검찰 최고위자, 장사성이라는 게 문제였지만.
이후 장사성은 노담지검장에게 연락했고, 나유신은 졸지에 전화를 안 받은 대가로 민생 TF로 불려왔다.
무려 재벌회장조차 당한다면, 얼마나 광범위하게 보이스피싱이 이뤄지는 거냐는 이유로.
유명세가 뜨악한 얼굴로 되물었다.
“너, 돈 많냐? 3천만 원이 애 이름이야? 그거 9급 공무원 연봉보다 많아!”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요. 하주연 씨는 입고 다니는 옷만 해도 3천만 원이 넘을 텐데요.”
“나검!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군!”
유명세가 민생 TF 검사들과 수사관들을 돌아보며 웅장하게 외쳤다.
“재벌이든 서민이든, 아니 노숙자라도!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있어! 또한, 검찰은 그 모든 시민을 동등하게 보호해야 하는 걸세!”
아마도 이건 장사성에게 들리라고 하는 소리가 확실하다.
당연히 특별 TF는 수도중앙지검에 설치되었으니, 물리적으로 장사성 총장 귀에 들어갈 리는 없다.
하지만 누구든 유명세의 [충정]을 전하는 사람은 있을 것이다.
아주 눈꼴시게 볼만한 광경이라, 구경 왔던 특수 1부장 구호승이 혀를 찼다.
“아주 신났군. 월야그룹에 잘 보일 수 있을 것 같아 좋은가 보지?”
“오, 이런. 민생에 관심 없는 정통 특수부장님이 아니신가? 당연한 얘기지만 난 월야그룹에 잘 보이는 일 따윈 관심 없거든?”
“그럼 왜 이렇게 오버하는 거야?”
그러자 유명세가 히죽 웃으며 창밖을 가리켰다.
“저 아래 와 있는 카메라가 안 보이나?”
수도중앙지검 건물 앞, 수많은 기자들이 셔터를 누르는 게 보인다.
-찰칵, 찰칵, 찰칵!
여기에 방송용 카메라까지 합하면 그야말로 50대가 넘는 카메라가 장사진을 치고 있다.
이전에 검찰총장이 사임할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만큼 비운의 [상속녀]가 갖는 파급효과가 크다는 뜻이다.
창밖을 내려다보던 구호승이 혀를 찼다.
“또 연예인 병이 도졌군. 유명세 부장.”
“멍청한 소리! 이건 검찰을 위해서야. 전임 총장이 비리로 낙마했어. 중수부가 사라지고 검찰 조직 전체가 위기지! 이럴 때 뭐가 필요할 것 같나?”
“최소한 재벌에 꼬리치는 개가 필요하진 않을 것 같네만.”
유명세는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국민을 납득시킬 실적이야! 그런데 재벌가 회장조차 보이스피싱에 당했다? 이건 엄청난 대형 사건이라고!”
분명 보이스피싱은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주로 서민들이 당하는 사건인 것도 맞다.
한데 재벌회장, 그것도 살인사건이 연이어 일어났던 비극의 재벌가 상속녀도 당했다?
만인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건 사실이다.
“하여간, 원래 특수부 업무는 제대로 처리하길 바라네.”
“방해나 하지 말게나. 후후후!”
“참, 2부에서도 파견 인력 갈 거야.”
그러자 처음으로 유명세가 뜨악한 표정이 되었다.
“흥, 역시 방해나 안 됐으면 좋겠군.”
왜냐면 고지식한 1부와 달리 특수 2부는 꽤 유명세 같은 사람들이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
그런데 가장 당황한 특수 3부 검사는 따로 있었다.
“오빠가 여기 왔어?”
백희진이 깜짝 놀라 묻자, 사촌 검사 백시혁이 대꾸했다.
“왜, 불만이냐? 게다가 여긴 엄연히 [회사]인데 직급 안 불러?”
“아, 네 특수2부 백시혁 부부장 검사님. 대체 왜 오신 거예요? 부부장님이면 선택할 수도 있잖아요.”
“음, 나도 민생에 관심이 많아서 말이지.”
수도중앙지검 특수 2부, 부부장 백시혁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게다가 이번 사건, 단순 보이스피싱 같지 않거든.”
사실 민생 TF에는 여러 검사들이 와 있지만 주력은 단연 특수 3부다.
팀장이 특수 3부 부장이니 당연한 일이다.
여기에 이전에 학폭 TF에서 도왔던 부산 특수부 박달한이나 범죄정보실 마주선도 온 상태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특수 2부의 2인자, 부부장 백시혁도 온 것이다.
특수 3부 부장이 총괄하는 TF라 여러모로 불편할 텐데도 말이다.
허나 유명세는 눈썹을 치뜰 뿐, 별다른 말이 없었다.
이번 사건이 단순 민생이 아니란 걸 이미 안다는 것처럼.
“자, 브리핑이나 시작하지. 백희진 검사.”
백희진이 가볍게 입술을 삐죽이다 PPT 앞에 섰다.
“예, 전기통신금융사기. 통칭 보이스피싱이라고 불리는 사안입니다. 2006년, 최초의 보이스피싱이 발생한 이래, 연간 2만 건 내외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PPT 화면이 지나가는 가운데, 사건 그래프가 나타났다.
처음 보이스피싱이 시작된 것은 2006년.
정확히 말하면 신고가 들어온 첫 해다.
그전까지는 보이스피싱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이 보이스피싱이란 범죄는 사실 일본이나 대만에서 먼저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일본이나 대만에서 규제를 받자, 관련 범죄 조직들이 한국으로 침투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단순히 개인 사기범이 저지르기 시작한 범죄가 아니다.
범죄조직이 처음부터 붙어 있던 범죄다.
“보통, 금융회사를 사칭하는 대출사기나 우리 검찰을 사칭하는 기관사칭형으로 나뉩니다.”
“아주 기분나쁜 일이지. 그럼에도 우리 검찰이 지금까지 신경 쓰지 못한 건 큰일이야!”
“현재까지 경찰 쪽에 신고 접수된 금액은 연간 2천억 원에 달합니다.”
너스레를 떨던 유명세가 이번에는 놀랐다.
“2천억?”
그저 단순한 사기 범죄로 여겼던 모양이다.
허나 보이스피싱은 해가 지날수록 횟수도, 규모도 날로 커져만 가는 범죄다.
특히 외국 조직과 연계된 터라 본체를 잡기 어렵다는 게 한 몫한다.
반면 10년의 미래를 이미 살아본 나유신은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준수하네. 1조원에 달하지 않는 걸 보니.”
“나검, 본인 일 아니라고 너무 한가하게 말하는 거 아냐? 하주연 회장도 걸렸다구.”
“내 일이 아니니까 객관적으로 말하는 거야. 엄밀히 말해서 금융사기나 전세사기로 발생하는 피해금액보다 적어, 백검.”
나유신이 백희진을 향해, 실은 민생 TF에 온 검사들 모두를 향해 말했다.
“게다가 원래는 경찰 일 아닌가? 어차피 군소 해외 조직들이 엮여 있을 텐데. 애초에 시작도 대만 조직이 들여온 범죄고.”
검찰의 전문 영역이라고 하긴 어렵단 뜻이다.
사실 검찰이 무소불위로 설치고 다녀도 절대 넘을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국경선이다.
한국 검찰의 전능한 소환권은 모두 국내에서만 강하게 발휘된다.
일단 피의자가 출국해 버리면 그때부터 검찰은 국내로 들어올 때까지 손을 못 쓴다.
반면 경찰은 인터폴을 비롯해 다양한 수단을 검찰보다는 활발히 사용할 수 있다.
그때 백시혁이 입을 열었다.
“바로 그거야. 대만 조직.”
“예?”
“이거, 대만과 중국의 흑사회가 엮여 있다는 첩보가 있다.”
TF 검사들이 깜짝 놀랐다.
흑사회, 곧 중국의 조폭을 말하는 용어다.
그러니까 특수 2부 부부장인 백시혁이 그냥 온 게 아니었던 거다.
일순, 유명세도 일어나 TF 검사들을 돌아보며 일렀다.
“나검 말대로, 단순 보이스피싱을 추적하는 건 경찰의 일이지. 사실 검찰 인력으로 일일이 잡아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무려 2만 건 범죄를 어떻게 잡아? 하지만.”
문득 유명세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작게 끝날 수 있는 사안을 크게 뻥튀기하는 해외 범죄조직이 있다면 어떨까? 그건 우리 검찰의 일 아닌가?”
해외 범죄조직이 엮인 [대형사건]이라면, 확실히 검찰이 나설만하다.
일단 명분은 민생으로 세웠으니 국민 여론도 아주 좋을 것이다.
잠시 눈을 깜박이던 나유신이 물었다.
“부장님이 관심 가지신 진짜 이유가 이겁니까?”
유명세가 히죽 웃으며 일렀다.
“널 부른 이유기도 하지. 백사.”
아무래도 따로 시킬 일이 있는 게 확실하다.
***
잘 드는 칼은 가장 어려운 곳에 쓰는 게 검찰의 방식이다.
“삼합회가 있다구요? 뒤에?”
나유신은 유명세와 [독대]하다 깜짝 놀라 물었다.
“정확히 말하면, 24K조직이지. 자네가 잡아 처넣은 완자오룬이 부두목으로 있던.”
“아직 한국에 있습니까?”
“대만은 우리랑 범죄인 인도조약이 없는 거 모르냐? 완자오룬은 대륙에서 활동하긴 하지만, 사실 대만인이야.”
문득 유명세가 나유신을 보며 물었다.
“나검, 너, 심문 잘하지?”
원래는 나유신이 가장 못 하는 게 피의자 심문이었다.
그러나 황금문자의 공능을 얻은 지금.
검찰의 누구라도 나유신의 심문 실력을 따를 자가 없을 것이다.
나유신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일단 캐보죠.”
이게 단순한 보이스피싱이 아니란 직감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황금문자가 사건 해결을 요구한 이유도.
바로 비트코인 71만 개의 원주인, 완자오룬이 엮여 있었으니까.
- 작가의말
* 다음은 외국인 교도소에서 비트코인의 원주인을 나유신이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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