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검사는 거물이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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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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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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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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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9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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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34쪽

(24) 백발이를 죽인 자에게 진짜 복수를 해보자

DUMMY

원래 검찰수사의 시작은 피의자를 구속시키는 것부터 시작된다.


“잡지마! 난 검사야! 너희들 나중에 내가 무죄 나오면 멀쩡할 줄 알아? 엉?”


수도중앙지검 조사실 안, 아주 당당한 피의자의 외침이 울린다.


이른바 매직 미러라는 게 있다.

반대편 쪽은 거울처럼 비치고 이쪽에서는 유리창처럼 보이는 창이다.

조사실 창문은 항상 이런 매직 미러로 만들어져 있는데, 검사쯤 되면 당연히 조사실이 그렇다는 걸 안다.


그러니 고함치는 탁도진은 일부러 소리 지르는 게 확실하다.

일단 가둬서 기선제압을 하는 게 검찰의 수사 방식이다.

탁도진은 자신이 그런 기선제압에 휘말리지 않은 것임을 온몸으로 웅변하는 셈이다.


조사실 너머, 창밖에서 보던 특수부 검사 사정국이 어깨를 으쓱였다.


“저렇게 난리인데, 무슨 자백을 받을 수 있나 모르겠어.”

“다른 사람들은 어떤데요?”

“뻔하지. 서로 떠넘기기야. 공무원들은 모두 탁도진 검사가 시켰다는 거야.”


사정국은 나유신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무리 봐도 그건 좀 아닌 거 같지 않아? 탁도진이 아무리 비리를 저질렀어도 마약조직과 검사가 직접 결탁한다는 건 좀.”


나유신은 탁도진과 공무원 일당을 잡은 직후, 수사에서 배제되었다.


당연히 특수부장 구호승의 지시 탓이다.

사실은 나유신도 탁도진을 잡은 시점에서 손을 떼려 했다.

하지만 황금문자 판정이 나유신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시야 저편에서 깜박이는 시한부 판정을 보다, 나유신이 물었다.


“김시관은? 어떻게 됐죠?”

“역시, 입 닥치고 있지. 왜 나검이 조사해 보게? 관둬. 부장님이 백사랑 명품녀, 이크, 염검은 제외하랬어.”

“누가 명품녀란 거지? 돌팔이 사정국?”


문득 옆에서 [명품녀], 염민아가 새하얗게 웃으며 묻자 사정국이 헛기침을 했다.


“큼, 내가 왜 돌팔이냐? 명품녀 소리 듣기 싫으면 비싼 거 들고 다니지 말라고.”

“맞지도 않는데 예단을 맨날 내놓으니까 돌팔이지. 탁도진이 마약조직과 결탁할 리가 없다니. 그런 식이면 검사가 마약 통관을 돕는 건 말이 돼?”

“정도라는 게 있잖아, 정도가. 야, 염 프로. 검사는 아무리 그래도 법조인이야.”


염민아는 코웃음을 쳤다.


“법조인이 뭐 어쨌는데. 법률가면 부패 안 한다는 거야?”


이미 잡혀 있는 탁도진만 봐도 그런 말은 하지 못할 것이다.

당장 마약 밀수는 무조건 실형이 나오는 엄청난 범죄다.

한데 탁도진은 겁도 없이 밀수에 적극 동참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사정국은 고집스레 외쳤다.


“그게 아니라! 머릿속에 선이란 게 있다고. 그 선 넘기 쉽지 않아! 게다가 관세청 파견 가기 전에는 특수부에서 잘 나가던 녀석이라고. 지금이야.”


사정국의 시선이 조사실 안을 향했따.


“저 꼴이지만.”


완전히 틀린 얘기는 아니다.


물론 아무렇지도 않게 범죄를 저지르는 유형의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보통 사람은 자신이 배워온 사회적 규범에 종속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나유신도 탁도진에 대해 모르는 게 아니다.


전생에서 나유신을 방해했던 탁도진이지만, 마약 범죄 같은 중범죄를 적극적으로 저질렀다고 보긴 어렵다.

그러니까 황금문자도 진범이 잡히지 않았다고 판정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유신이 뚫어져라 매직 미러를 보다 말했다.


“제가 조사해 보죠.”

“어이, 나검. 우리 부장 말 전해줬잖아? 요약해 줘? 일절수사배제.”

“꼭 두문자 같군요. 그럼 저도 답해드리죠. 조사하면 다 나온다.”


순간, 나유신이 시선을 돌려 사정국을 정시했다.


“어차피 특수부 방식이란 게 나올 때까지 터는 거 아닙니까? 저 작자도 그렇게 해서 저 자리까지 간 거고. 뭐든 알고 있을 테니까 입을 열게 만들어야죠!”


설사 탁도진이 주범이 아니라도 아는 게 있을 가능성은 높다.


그동안 세관에서 마약 밀수가 잡히지 않았던 것은 탁도진의 영향력 때문이다.

그런데 영향력 행사란 밖과 안에 동시에 작용하기 마련이다.

밖으로 범죄를 숨기는 영향력도 행사되겠지만, 안으로 범죄자들을 압박하는 수단으로도 이용될 수 있다.


게다가 탁도진이 아무것도 모른 채 돈만 받았을 가능성은 극히 낮다.

뭐라도 쥐고 있어야 범죄자들을 협박할 수 있다는 걸 가장 잘 아는 게 검사다.

나아가 특수부 검사 생활을 하며 범죄자들을 윽박지르던 탁도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사정국은 망설였다.


“그러니까 그건 우리 특수부 일인데.”

“저도 지금은 특수부입니다.”

“어, 우리 부장은 그렇게 생각 안 하는 거 같은데?”


그 순간 나유신이 사정국에게 다그쳤다.


“그럼 선배님이 함께 동석해 주시죠. 지금 탁도진의 입을 열지 못하면 진짜 범인도 못 잡습니다.”


어차피 나유신은 이대로 가다간 죽을지도 모른다.

따지고 보면 직속상관도 아닌 구호승이 뭐라고 하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입맛을 다시던 사정국이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범? 누구?”


나유신은 당연하다는 듯 단언했다.


“저 마약을 통관시키려고 사주하고, 다시 마약을 강남 클럽까지 운송한 작자죠.”


왜냐면 황금문자가 판정한 사건 해결 조건이 [운반범] 체포기 때문이다.


***


물론 황금문자가 아니라도 마약범죄의 가장 큰 수괴는 단연 유통범이다.


“어떤 증거도 없어. 그냥, 난 창고에 들어갔을 뿐이야. 언론플레이에 휘말려 희생당한 사람이야. 그래, 서 차장이 날 내버려 둘 리 없지.”


탁도진은 아주 낮게, 아무도 들을 수 없게 되뇌였다.


조사실은 탁도진에게 익숙한 전장이다.

이 전장에서 몇 번이나 이겼고 범죄자의 자백을 받아내 기소해 왔다.

물론 항상 공격자의 입장이었고, 방어자는 처음이긴 하다.


그러나 공방이 어떻게 오갈지 탁도진도 안다.

때문에 마음의 대비를 하기 위해 되뇌이고 있는 것이다.

절대로 전장에서 지지 않기 위해서.


그때다.


-철컥.


조사실 문이 열리자 탁도진은 애써 여유롭게 웃으며 시선을 돌렸다.


“이제 들어오시나? 후후. 응?”


하지만 들어오는 자를 본 순간, 탁도진의 낯이 굳어졌다.

저 머리카락은 도저히 언제든 잊을 수가 없다.

문득 사정국 검사가 손을 내저으며 인사했다.


“여, 탁검, 오랜만이야.”

“왜 저놈이 들어오는 거지? 요즘 수도지검에선 1년차 풋내기에게 참고인 신문을 맡기나?”

“누가 참고인이란 거야? 자넨 피의자야, 어디까지나. 게다가.”


사정국은 슬쩍 옆을 돌아보며 말했다.


“나유신 검사는 이번 사건 주임이나 마찬가지라고. 피의자들을 몽땅 다 잡아들였으니.”


물론 그 주임검사를 배제하라는 게 부장 지시긴 하다.

그렇지만 특수부도 검찰이고 검찰은 기본적으로 과도한 수사 업무를 부과받고 있다.

이 사건에만 구호승이 신경 쓸 수 없으니, 그 틈을 이용해 나유신을 데려온 거였다.


탁도진이 이를 갈며 백발 검사 나유신을 노려보았다.


“그래, 저 풋내기가 날 누명을 씌웠단 말이지?”


그런데 나유신이 자리에 앉자마자 탁도진을 향해 대뜸 말했다.


“탁도진 씨, 경험 많으시니까 잘 알겠죠? 혐의 부인하면 형량만 세집니다.”

“뭐? 씨? 검사라고 불러!”

“이제 곧 파면될 텐데 굳이 그럴 이유가 없죠. 자백해요.”


탁도진이 비웃음을 터뜨리려는 찰나, 놀라운 협박이 들어왔다.


“아니면 당신 와이프가 감옥 갈 테니까.”


협박할 거라고 예상은 했다.


특히 검찰이 가장 자주 쓰는 협박 방식이 형량거래다.

허나 탁도진은 절대로 넘어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한데 아내를 공격하다니.


이건 [상도의] 위반이다.

웬만하면 가족은 건드리지 않는 게 한국 사회의 암묵적 규범 아닌가?

옆에서 보던 사정국조차 입을 쩍 벌렸다.


“어이, 나검. 지금.”

“무슨 헛소리야! 내 아내가 무슨 상관인데! 게다가 난 무죄야!”

“탁도진 당신이 마약사범이 아닐 가능성은 없지만, 그렇다고 치죠. 그런데 그 건과 별개로 당신네 부인이 금융실명제 위반한 건 백프로거든.”


사정국이 미처 말리기도 전에 탁도진이 먼저 화를 냈지만, 나유신은 차갑게 대꾸했다.


“알죠? 대부분 벌금형이지만, 검사 성질 건드리면 징역형인 거.”


분명 금융실명제 위반은 피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탁도진이 받은 [뇌물]은 출처를 확실히 하기 어렵다.

그러니 어떻게 설명하든 타인의 돈이고, 타인의 자금을 자기 이름으로 예금하면 금융실명제 위반이 된다.

물론 탁도진의 부인은 대부분의 자산을 부동산으로 사들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금융 거래를 할 수밖에 없었고, 금융실명제 위반은 차곡차곡 정립된 상태다.

보통은 그저 벌금형으로 끝날 사안이다.

그러나 검사가 작정한다면 어떨까?


나유신이 눈을 번뜩이며 다그쳤다.


“여기까지 온 이상, 난 그냥 못 물러나요. 어떡할 겁니까? 와이프 하나로 부족합니까? 그럼 형제, 자매, 부모, 사촌, 친구 모두 갑니다.”

“이, 이, 이 개 같은 놈이.”

“뭘 새삼 그러십니까.”


문득 나유신은 비웃음을 머금었다.


“어차피 당신이 다 쓰던 방식인데.”


바로 이게 전생에서 나유신에게 탁도진이 행했던 방해 공작이다.


나유신이 수사하려 하자 탁도진은 오히려 나유신을 압박했다.

주변 인물과 친구, 심지어 가족까지 검찰 조사 소환장을 받아야 했다.

탁도진 입장에선 윗선에서 요구하니 그저 수행했던 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유신에게는 생존의 위기를 느끼게 만드는 압박이었다.


“너, 이거 드러나도 상관없냐?”


눈에 핏발을 새운 채 탁도진이 물었다.

탁도진의 시선은 조사실 CCTV를 향하고 있었따.

당연하게도 녹화는 이뤄지고 있지 않다.


“그 전에 당신 와이프가 감옥 가겠죠. 탁도진 씨. 어쩔 겁니까?”


그러나 사실 녹화되었어도 나유신은 별로 상관없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뭐든 질러보는 게 나을 테니까.

온몸을 부들부들 떨던 탁도진이 고개를 숙였다.


“김시관, 그놈이 모두 저질렀어. 그 빌어먹을 [해골문신]을 끌어들여서!”


처음으로 자백이 나왔다.


***


제2조사실, 12시간 동안 대기만 하던 김시관 앞에 백말머리가 섰다.


“탁도진이 자백했다, 김시관.”


김시관은 눈을 게슴츠레 뜨다 기계적으로 대꾸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검사님.”

“진범을 대. 그럼, 집행유예로 나올 수 있게 해주지.”

“난 무죄입니다. 혹시 죄가 있더라도 탁도진이 시킨 걸 부하로서 이행했을 뿐.”


그 순간 나유신이 낯을 들이대며 말했다.


“마약수출입 공범으로 처넣어줄까? 그건 무조건 5년 이상이야. 집행유예고 뭐고 없어. 참고로, 이미 탁도진은 다 불고 있다.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나?”


나유신은 김시관을 정시하며 다그쳤다.


“가장 신뢰성 있는 증인, 검사의 자백이 나왔다고. 일개 공무원이 따를 수 없는 신빙성이지.”


물론 탁도진의 입에서 나온 건 전부 진실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김시관이 [범인]이라고 말한 것 하나로 족하다.

김시관 쪽에서 이제 자백해야 할 이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보통은 서로 나눠놓고 상대가 자백했다고 거짓을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유신은 한 가지 결정적 단서를 잡았다.


“해골문신, 알지?”


김시관이 결국 동요하다 입을 뗐다.


“형량거래는 위법 아닙니까?”

“검사에겐 기소 재량이란 게 있지.”

“뭘 원합니까?”


나유신은 김시관을 뚫어져라 보았다.


“네게 마약 밀수를 사주하고, 직접 받아간 장본인, 그러니까 진짜 범인.”


그자가 누구든 잡아야 한다.

그래야 이 모든 사건이 해결되고, 또한 황금문자의 시한부 판정이 끝나다.

가만히 나유신을 보던 김시관이 손을 내밀었다.


“스마트폰 좀 주시죠.”

“삭제하려고 하면 가중처벌이야.”

“그런 뻔한 짓 안합니다. 포렌식 다 해둔 거 아닙니까? 단지 정리를 못 했을 텐데.”


민혁기 수사관이 증거자료로 가져온 스마트폰을 내밀자, 김시관이 사진첩을 뒤지다 다시 되돌렸다.


“이 자입니다.”


그 순간, 나유신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이 자, 아는 얼굴이다.


***


심장이 멈추지 않고 뛴다.


-쿵, 쿵, 쿵!


조사실에서 어떻게 나왔는지 기억나지도 않는다.


하지만 심장 소리는 귀에 들릴 정도다.

왜 아는 얼굴일까?

사실 죽기 전, 전생에서 딱 한 번 보았을 뿐이다.


문득 옆에서 염민아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검, 왜 그래?”


하지만 그보다 더 크게 들리는 것은 소음이다.


-끼이익!


인생의 마지막 순간.

강제로 들어야만 했던 소리.

트럭이 차를 들이받기 위해 달려오던 찰나의 타이어 마찰음.


바로 트럭살인마, 운전수의 얼굴이 눈앞에 또렷하게 떠오른다.


“나검, 정신 차려!”


그때서야 비로소 나유신은 정신을 차렸다.


염민아가 쉴 새 없이 나유신을 흔들고 있었다.

여기, 이 순간은 10년 전 수도중앙지검 특수부 파견 임시 사무실.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을 때다.


심지어 트럭살인의 원인이 된 [태양그룹] 3세 사건조차도.


“예, 정신 차렸습니다. 선배.”

“범인을 잡으려니 흥분해서 그래? 첫 사건도 아닌데 너무 긴장했네.”

“아직, 저도 미숙하긴 한 거죠.”


나유신이 낮게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진범을 앞두니 흥분되는군요.”


그렇지만 옆에서 지켜보던 또 다른 검사, 사정국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범인 건 확실한 건가? 이름도 모르고, 정체도 모르고, 뭐? [스컬]이라고 부른다고?”

“김시관 입장에서는 상관없었겠지. [물건]이 통관되도록 내버려 뒀다가, 자기들이 알아서 가져가면 돈이 들어오는 시스템이었다고 하니까.”

“오히려 그게 더 수상한데, 염검. 보통은 상대방 약점 쥐기 위해서라도 캐지 않아?”


그러니까 문제가 있다.


피의자이자 중요 참고인, 김시관은 [진범]의 이름을 모른다.

단지 얼굴과 돈을 알 뿐이다.

사진을 찍어둔 건 만일을 대비해서지만, 그것도 흐릿해 명확하지 않다.


해골 문신이 도드라지긴 하지만, 그런 문신도 따지고 보면 흔하지 않은가.


“김시관 본인 자백으로는, 관행이었다고 했잖아? 전임자에게서 넘겨 받은 [사업] 같은 거래. 단지 탁도진이 오면서 물량이 커진 거고.”


염민아가 대신 사정국에게 답했다.


물론 김시관도 전부 자백한 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다만 전임자에게 넘겨 받았다는 건 특기할만한 요소다.

이번 밀수가 비단 탁도진 검사가 오기 전부터 암암리에 계속되어 왔다는 거니까 말이다.


사정국 검사도 그 점을 알아채고는 혀를 내둘렀다.


“이거, 캐면 캘수록 가관이군. 세관 전체를 뒤집어야겠어.”

“부장에게 보고할 거야?”

“응? 그거야 김시관 자백은 보고해야지. 하지만.”


문득 사정국이 김시관에게서 재압수한 스마트폰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이건 누군지도 모르고, 사진도 흐릿한데 보고할 가치도 없어 보이는데? 차라리 강남 클럽 쪽을 파는 게 낫겠어.”


수사는 보통 양방향에서 이뤄진다.


사건이 일어난 쪽, 다른 경우는 범인이 있는 쪽.

이번 마약 사건은 강남 대형클럽 10곳에서 마약이 대량으로 적발되며 시작되었다.

그렇기에 강남 클럽 업주들을 족쳐야 한다는 특수부장 구호승의 판단은 일리가 있다.


만약 나유신이 [황금문자]를 보지 않았다면 그렇다는 소리다.


“여문식.”


일순, 사정국과 염민아가 시선을 돌렸다.

허나 나유신은 사정국에게서 스마트폰을 빼앗아 든 채, 멈추지 않았다.

눈앞, 흐릿한 사진 위로 떠오르는 선명한 문자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이 35세, 직업 택시 운전사, 진짜 직업.”


10년 뒤에는 직업을 바꾸는 게 확실한 해골문신을 보다, 나유신이 눈을 번뜩였다.


“콜뛰기 드라이버.”


콜뛰기, 이른바 불법 고속택시 영업자를 말한다.


보통 한밤중에 멀리 움직여야 하는 사람들이 이용하는데, 주된 이용고객은 유흥업소 관계자다.

마약 유통이 유흥업소를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점을 감안할 때, 묘한 직업군인 셈이다.

만일 손님을 운송하면서 동시에 마약을 운반하면 드러나지도 않을 테니까.


그렇지만 나유신의 정보 취득에는 문제가 있다.


“나검, 그거 어떻게 알아? 진술서에 따르면 김시관이 말한 건 없어 보이는데? 다른 공무원, 나 몰래 심문했어?”


사정국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분명 김시관을 심문할 때 사정국은 옆에 없었다.

그렇지만 모든 심문은 진술서라는 결과물을 남기기 마련이다.

아무리 정제된 형태로 남긴다 해도 필요 정보는 다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나유신은 진술서에는 없는 프로필을 읊어버린 거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나유신이 고개를 저었다.

설명은 어렵지만 이 정보는 진짜다.


“이 정도 정보면 추적 가능하겠죠? 경찰 [심스]로 협조 요청하면.”


심스, 경찰 범죄정보관리시스템의 약자다.


검찰이 자랑하는 이프로스와 다른 점은, 경찰은 꼭 범죄자가 아니라도 사람 찾기가 가능하단 거다.

주민번호만 알면 그 사람을 추적할 수 있는 게 경찰이다.

이론상으로는 분명 나유신의 말이 맞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아무런 근거도 없이 민간인을 추적하는 게 가능할까?


“일단, 협조 요청 해보지.”


그럼에도 사정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필사적인 나유신에게 전염이라도 된 것처럼.


***


당연히 구호승 특수부장은 나유신에게 전혀 전염되지 않았다.


“안돼. 누구 멋대로 그걸 경찰에 흘려? 자네도 백사 닮아가나?”


검찰은 조직사회고 검사 혼자서 멋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적다.


특히 타기관 협조요청 같은 일은 부장검사의 허가가 필요하다.

물론 나유신이야 그냥 아는 경찰, 강시영에게 전화하겠지만 사정국은 절차를 지킬 줄 아는 검사다.

단연 부장에게 거부당하자 사정국이 입맛을 다시며 설명했다.


“일단, 우리 쪽에 잡힌 적이 없는 용의자라, 정보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냥 민간인이란 거 아냐. 그런데 영장도 없이, 증거도 없이 조사해? 그런 걸 뭐라고 하는 줄 알아? 민간인 사찰이라고 하는 거야.”

“명백한 피의자인 김시관이 자백했습니다. 부장님.”


사정국이 다급히 부장에게 말했다.


“이 정도면 잡는 게 맞습니다. 오히려 놓치면 그게 더 큰일이 될 겁니다.”


현직검사 탁도진이 마약 통관으로 붙잡혔다.


이 사건은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있는 상태다.

그런데 언론보도를 보는 건 일반 국민만이 아니라 [관계자]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면 마약 유통책, 판매책, 혹은 고객들이라든가.


모두 달아날 준비를 했거나 이미 달아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하루빨리 움직여야만 잡을 수 있다.

비록 출처가 불분명한 정보라도 일단 확인부터 해야 하는 이유다.


구호승 특수부장이 빤히 사정국을 보다, 은테안경을 벗었다.


“정국아, 너 나랑 몇 년 일했지?”

“예? 그야 초임 검사때부터 치면 대충 10년쯤.”

“10년을 내 밑에서 배웠는데도 아직도 모르는 거냐?”


순간, 구호승이 한 대 칠 기세로 사정국을 노려보았다.


“풋내기가 설칠 때 따라 들어가다간 작살나는 거야. 일단 이 사진의 인물이 여문식인지 콜뛰기인지도 모르겠지만, 그 작자가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이면 어쩔 거야. 이게 언론에 나가면?”


문제는 구호승은 가끔 정말 때린다는 거다.

어쩐지 위축되는 기분으로 사정국이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특수부장 구호승은 때리는 대신 말로 사정국을 후려쳤다.


“이미 백사가 언플을 한 탓에, 이 사건은 언론 관심이 집중되어 있어. 오늘도 내게 전화온 기자가 몇 명인 줄 알아? 그런데 민간인 아무개를 찝어서 표적 수사한다고? 증거도 없이?”

“자백이 있습니다, 부장님.”

“그러니까! 그 자백은 스컬인지 해골바가지인지 하는 거고!”


결국 구호승은 손으로 사정국을 갈기며 호통쳤다.


“설사, 이 콜뛰기 새끼가 스컬 문신을 했어도! 그게 범인이란 증거는 안 돼! 이건, 이렇게 손댈 일이 아니야! 차라리 강남 클럽 대표들을 잡아 와!”


사정국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부장님.”


옛날처럼 담배를 실내에서 필 수 있는 시대였다면, 재떨이가 날아갔을 것이다.

덕분에 머리에 피가 흐르지는 않는 사정국이 머리를 매만지며 나왔다.

한데 나오자마자 백발 머리 검사가 보인다.


사정국이 겸연쩍게 물었다.


“들었냐?”

“방음이 별로 안 좋더군요.”

“하여간, 이 상태로는 안 되겠다. 일단 강남 클럽부터 파보자. 내가 책임지고 수사 참여하게 해줄게.”


이것만으로도 사정국은 엄청난 결단을 내린 셈이다.


부장 구호승이 수사 참여를 거부했다.

그렇지만 이 명령을 어기고 나유신에게 수사에 참여할 수 있게 해준다?

나유신 검사를 아주 높게 평가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나유신은 고마워하는 대신, 차갑게 툭 쏘았다.


“너무 늦어요, 그럼.”


왜냐면 나유신에게 지금 시한부 기한이 딱 6일 남았기 때문이다.


***


아무리 황금문자의 정보가 있어도, 나유신 혼자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저 따돌리실 땐 언제고, 제 도움이 필요하시다구요?”


수도중앙지검 특수부 수사관, 고거경은 쳐다보지도 않고 되물었다.


본래 고거경은 구호승 부장의 지시로 나유신 팀의 스파이 노릇을 했다.

허나 나유신이 워낙 빠르게, 그것도 비상식적으로 움직인 탓에 놓쳐 버렸다.

하여 현직검사 긴급 체포라는 엄청난 사태가 벌어졌음에도 미처 사전보고를 하지 못했다.


이후로 특수부장의 엄청난 진노와 함께 [대기발령]이 난 상태다.

이제는 출세고 나발이고 목이 잘리게 생겼으니 고거경이 심술이 난 것도 당연하다.

따지고 보면 애초에 나유신에게 말도 않고 감시했던 대가를 치르는 셈이지만 말이다.


겸연쩍은 얼굴로 고거경의 선배, 민혁기가 달랬다.


“어쩔 수 없지. 여긴 서울이고, 나 아는 경찰들은 다 전근갔어. 경찰 협조든, 수사든 고 수사관 도움 없이는 뭘 못하니까.”“민 선배, 여기 영감님이 알아서 하실 아닙니까, 그건? 이미 피의자도 떡 하니 10명 가까이 잡아들이셨는데.”

“진범은 유통책이란 걸 알잖아.”


그러나 고거경은 코웃음을 치며 민혁기 옆, 나유신을 게슴츠레 응시했다.


“그래서, 백사 영감님은 무슨 생각이신 겁니까? 직접 말해 보시죠.”


나유신은 화내거나 달래는 대신 직설적으로 말했다.


“도움이 필요해요. 아주 특별한 도움이.”

“왜죠?”

“증거가 없어요. 게다가 통관 협조자가 잡혔으니 곧 잠적할 겁니다.”


고거경은 물끄러미 나유신을 보았지만, 나유신은 멈추지 않았다.


“그 전에 잡으려면 아주 특별한 방법을 써야 해요.”


정말 독특한 성격이다.


보통 이럴 때는 구슬리거나, 이익을 제시하거나, 압박을 가한다.

허나 나유신은 본인이 필요한 것만 말하고 있다.

일견 무례한 태도지만 어쩐지 고거경에게는 신선했다.


수사만 아는 검사를 보는 느낌이랄까.

별의별 괴짜들이 모이는 검찰청에서도 이런 자는 정말 드물다.

어쩐지 마음이 묘하게 움직이는 순간.


가만히 나유신을 보던 고거경이 물었다.


“무슨 방법을 쓰려고 이러십니까?”


그 순간, 고거경은 확실히 나유신이 미쳤다는 걸 깨달았다.


“살인누명.”


아주, 반해버릴 정도로.


***


경제가 불황이란 건 암흑가도 역시 불황이란 뜻이다.


-부우웅!


불황에는 보스도 직접 뛰어야 한다.


물론 애초에 여문식의 [조직]은 그리 크지 않다.

이건 마약조직이 원래 가진 특성인데, 거물 마약밀매꾼일수록 직계 조직원은 단촐하게 둔다.

만약 조직이 방대해지면 수사당국에 잡히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10년 뒤에는 주로 텔레그램 점조직 판매가 성행하는 이유다.

아직 스마트폰이 이제 막 도입되던 시절인 지금은 다르지만.

문득 휘황한 뒷골목, 룸살롱이 즐비한 거리에서 여문식의 차가 멈췄다.


“여, 콜뛰기 부르셨죠?”


술에 거나하게 취한 청년이 차문을 붙잡고 들어서다 불쑥 말했다.


“이 콜뛰기는 아주 특별하다던데.”

“맞습니다. 원하시는 시간, 원하시는 장소, 원하시는 사람에게 딱 맞춰 모셔다 드리죠!”

“아니, 아주 특별한 걸 거래한다고 들어서.”


문득 청년이 이를 드러내며 물었다.


“아이스, 있어?”


그때까지 영업용 미소를 짓고 있던 여문식의 낯이 일그러졌다.


요새는 참 어린 것들이 버릇이 없다.

버릇만 없으면 참겠는데 머리도 없는 모양이다.

도대체 불법택시를 불러서 마약을 내놓으라니 이런 미친 소리가 어디 있을까?


여문식이 손을 휘저었다.


“내려.”

“어이, 나 콜뛰기 부른 손님인데, 뭘 내려?”

“닥쳐, 내려. 아니, 말이 안 통하나?”


다음 순간, 여문식의 주먹이 청년의 턱을 쳤다.


-쉬익, 퍽!


한 방에 나가 떨어져 청년이 땅 위에 나뒹군다.

그러나 여문식은 멈추지 않고 차에서 내려 쏜살처럼 청년에게 다가섰다.

이런 멍청하면서 위험한 정보를 가진 자는 짓밟아 놔야 한다.


청년이 두들겨 맞다가 비명을 질렀다.


“으으으, 사, 살려줘!”

“젊은 친구가 마약이나 탐하고 말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꺼져.”

“아, 알겠습니다. 비, 빌어먹을. 소개받고 온 건데!”


끝까지 군소리를 하는 게 나중에 사고칠 놈이 확실하다.

간신히 일어나 도망치는 청년을 보다, 여문식은 혀를 찼다.

어디서 듣고 왔는지 모르겠지만 여문식은 [소매]는 안 한다.


“이거, 꼬리가 너무 길었나. 후.”


마약 거래에도 소매와 도매가 있다.


대규모 물량을 들여와 ‘중간상’들에게 넘기는 게 도매다.

반면에 직접 주문을 받아 넘기는 게 소매다.

당연히 소매가 도매보다 쉽지만 이익 총량에서는 도매를 넘어설 수가 없다.


그중에서도 여문식은 해외 [밀수]에서 국내 손꼽히는 도매상이다.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공항에 협력자가 있었을 때 이야기다.

가볍게 대포폰을 들어 올리며 여문식이 담배를 한 대 입에 물었다.


“일단, 김시관 그 새끼 말고는 내 얼굴 본 놈이 없긴 할 텐데. 그놈까지 잡혔는지, 그걸 모르겠단 말이야.”


정상적인 차주라면 가솔린 자동차 옆에서 담배를 피는 일은 조심하기 마련.

그러나 여문식은 인생을 내놓고 사는 남자답게 담배도 대범하게 피워댔다.

사실 요 근래 일어난 사건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너무 받은 탓도 있다.


-〈현직검사, 공항세관 마약 밀수 관여! 한국도 더 이상 마약청정국이 아니다!〉


마치 충격적이라는 듯 대서특필되는 언론보도.

그렇지만 마약 밀수를 이미 수년 간 해온 여문식에게는 웃기는 소리일 뿐이다.

문제는 이 웃기는 소리가 현실적인 압박이 되고 있다는 거다.


언론보도상 잡힌 것은 [협력자]였던 검사 탁도진이다.

탁도진 검사는 직접 대면한 적은 한 번도 없고, 그저 돈만 줬을 뿐이다.

그렇지만 탁도진이 잡혔다면 김시관도 엮였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김시관은 여문식의 얼굴을 조금이나마 본 적이 있다는 거다.


“여기서 잠수 타기는 너무 아까운데.”


지금껏 7년 가까이 만들어 온 [유통망]이 있다.


게다가 다른 도매상들이 관광객을 이용해 밀수할 때 김시관은 대담하게 세관을 통하는 길을 개척했다.

만약에 이번에 잡히지만 않았다면 지속적으로 유통 시장을 확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작게는 수백 억, 크게는 수천 억원이 순식간에 왔다갔다 하는 막대한 마약 유통시장.


남들의 눈에 띄지 않게 콜뛰기를 하고 있을 뿐.

여문식은 이미 엄청난 부자다.

허나 여기서 만족하고 쉽게 포기할 거였다면 애초에 마약상이 되지도 않았다.


담배를 10대쯤 피운 뒤에야 여문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안전이 중요하지, 돈은 다음이지. 일단, 잠수 탔다가 분위기 봐서.”


그때다.


-우우웅.


대포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 번호를 아는 자는 한정되어 있다.

중간상, 소매상 중 고위급, 그리고 협력자.


여문식이 번호를 보다 미간을 찌푸린 채 대포폰을 들었다.


[스컬?]


역시, 아는 목소리다.


협력자, 세관 공무원 김시관이다.

그런데 이 작자가 어떻게 전화를 했을까?

탁도진 검사가 잡혀 들어갈 때 함께 엮인 게 아니었단 말인가?


여문식은 눈을 가늘게 뜨다 말했다.


“여, 탐관오리. 오랜만이오. 잡힌 줄 알았는데.”

[일단 탁 검사에게 다 뒤집어 씌웠습니다. 본인은 발악하고 있지만.]

“그래서, 왜 전화했지? 이럴 때는 상호 간에 연락 않는 게 룰 아닌가?”


그런데 ‘탐관오리’ 김시관이 기묘한 질문을 던졌다.


[내 전임자들, 당신이 죽였습니까?]


문득 여문식은 미간을 좁혔다.


김시관의 전임자들, 그러니까 여문식의 과거 세관 협력자들이다.

공무원은 순환 인사배치를 하기 마련이고 공항 세관도 담당자가 늘 바뀌곤 했다.

그렇기에 바뀔 때마다 새로운 루트를 뚫느라 여문식은 고생했다.


그런데 일단 뚫게 되면 비밀을 공유하게 된다.

이론상 순환배치가 이뤄질 때마다 마약 통관을 아는 자가 늘어나게 된다는 소리다.

때문에 여문식은 시일을 두었다가 [처리]하곤 했다.


그 사실을 김시관이 눈치 챘다면, 거래를 끊는 게 맞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끊습니다.”

[거래합시다. 난 죽기 싫으니까.]

“무슨, 거래?”


순간, 김시관이 놀라운 얘기를 던졌다.


[압수당하지 않은 밀수 물량이 있습니다. 압수당한 양의 2배. 다른 조직 걸로 보이는데, 이걸 드리지.]


2배라면, 최소 1천억 단위의 물량이다.


***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막대한 돈이다.


“개소리가 지나치군, 김시관.”


인천 세관 창고 앞, 검게 도색된 [개조차량] 안에서 여문식이 이를 갈았다.

분명 달콤한 유혹이지만 뭔가 수상쩍은 얘기다.

허나 도저히 넘기고 무시할 수 없었다.


문득 여문식 옆에서 험악하게 생긴 조직원, [로뽕]이 입을 열었다.


“이거, 십중팔구 함정일 겁니다. [스컬].”

“누가 몰라? 하지만 김시관 입을 닥치게 만들면 상황이 달라지지.”

“설마, 죽일 겁니까?”


통칭 스컬로 불리는 두목, 여문식이 차갑게 대꾸했다.


“검찰이 주목하는 놈을 왜 죽여? 하지만 위협은 해줘야 하지 않겠어?”


사람을 죽이는 일도 때와 장소가 있다.


남들의 주목을 받고 있을 상황에서 죽여버리면 당연히 수사망이 더욱 거세진다.

강남의 클럽에 공급을 전담하는 중간상들이 스컬에 대해 불 수도 있다.

지금은 스컬의 보복과 막대한 이익을 고려해 입을 다물고 있지만, 살인이 벌어지면 이익이 문제가 아니게 될 테니까.


그때 저 멀리 차가 멈추는 게 보였다.


-부르릉.


차에서 낯익은 얼굴이 내린다.


“저기, 김시관이 오는군.”

“도주하실 차는 준비됐습니다.”“한 번에 밀어붙이고, 바로 이탈한다. 그러면 없던 마약도 술술 토해내게 될 거다.”


여문식이 고개를 끄덕이다 차를 거세게 밟았다.


“시작.”


차에서 내린 김시관을 향해 여문식의 흑색 개조차량이 달렸다.


-쐐애액!


이건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위협이다.

만일 허튼 소리를 하거나, 거짓된 정보를 준 거라면 죽여버리겠다는 경고.

단지 딱 경고가 될 만큼만 차로 위협한다.


그 다음, 문제가 생기면 바로 이탈할 생각이다.

그래서 일부러 조직원까지 불러온 것이기도 했다.

한데 돌발상황이 생겼다.


김시관이 이쪽을 보더니 눈을 질끈 감고는 달려든 것이다.


“이런, 지랄! 미친놈이!”


미처 브레이크를 밟기도 전, 김시관이 차에 충돌했다.


-쾅!


여문식은 차를 멈춰 세웠다.


물론 충돌할 수도 있다고 생각은 했다.

그렇지만 오랜 콜뛰기와 마약 운반 경력을 통해 여문식은 뛰어난 운전 숙련도를 갖췄다.

자유자재로 속도를 조절하거나 상대방의 부상 강도를 제어하는 건 일도 아니다.


만약 상대방이 작정하고 달려드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뭐, 뭐야!”

“교통사고다! 사람이 치였어!”

“으아아! 사망 사건이다!”


일순, 어디서 나타났는지 사람들이 창고 앞에 나타나 외쳤다.


“아니야, 내가 안 치었어! 지가 달려들어 온 거야! 이거 보라고!”


여문식은 자신도 모르게 창문을 열고 부르짖었다.

너무 당황해 미처 빠져나갈 생각도 하지 못할 순간.

갑자기 여문식의 팔에 수갑이 채워졌다.


-철컥!


유들유들한 인상의 남자, 고거경이 씩 웃고 있었다.


“여문식 씨?”


여문식이 눈을 깜박일 찰나, 그 뒤에서 나유신이 말했다.


“당신을 불법 택시영업 및 교통사고 과실치사 혐의로 긴급 체포합니다.”

“잠깐! 누, 누군데, 당신!”

“검사다. 여문식.”


나유신은 여문식을 노려보며 다그쳤다.


“지금은 과실치사지만, 살인 혐의로 바꿔주지. 미필적 고의가 있으면 살인으로 바꾸는 건 일도 아니야. 그런데 넌 멈추지 않고 그냥 차를 밟았단 말이야.”


동시에 민혁기가 반대쪽 차문을 강제로 열었다.

너무 빨라 조직원 [로뽕]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단숨에 민혁기가 로뽕을 제압하는 모습을 무력하게 보다, 스컬 여문식이 입을 쩍 벌렸다.


지금, 들다보니 이상하다.

살인?

물론 사람을 죽인 적은 있지만 이번은 아니다.


절대로 여문식이 죽일 작정으로 달려온 게 아니었다.


“그게 무슨!”

“통신기록이 남아있어. 넌 저기 죽은 김시관 주무관과 통화했고, 불법 개조한 차로 들이받았어. 처음부터 살인의 고의로 교통사고를 낸 거지.”

“아니야!”


여문식은 자신도 모르게 부르짖었다.


“난, 그냥 저놈에게 마지막 물량, 마약 받으러 온 거야! 그게 전부라고!”


그 순간, 여문식은 스스로 아차 싶었다.

하지만 한 번 나온 말은 되돌릴 수 없다.

무엇보다 나유신이 고거경을 향해 먼저 물었다.


“녹취했죠?”


고거경이 품속에서 초소형 녹음펜을 들어보이다 피식 웃었다.


“이야, 진짜 강압 함정수사 달인이시군요. 감탄했습니다. 백사 영감님.”


멀리, 튕겨 나간 김시관이 꿈틀대는 게 보일 순간이었다.


***


당연하게도, 이건 수사 상식을 벗어난 짓이다.


“맙소사, 나검. 진짜 미쳤어? 잘못하면 피의자가 죽을 뻔했어!”


BMW 7으로 돌아왔을 때, 대기하고 있던 염민아가 비명을 질렀다.


일단 허가 없이 마약사범과 마주친 것부터 사실은 문제다.

마약사범들은 대다수가 마약 중독자라 지극히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유신은 그 이상의 짓을 저질렀다.


피의자 김시관을 풀어서, 여문식을 끌어낸 후, 스스로 차에 격돌하게 만들었으니까.


“김시관은 입 다물 거예요. 집행유예로 빼주기로 했거든요.”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아니, 문제가 된다면 그것뿐이에요.”


나유신은 눈을 번뜩이며 대꾸했다.


“어차피 김시관은 우리가 하기에 따라선 20년 형도 먹일 수 있어요. 그걸 집행유예로 바꿔주는 건데 마다할 이유가 없죠.”


요컨대 형량거래, 곧 플리바게닝을 이용한 거다.

아무리 부패했어도 김시관은 공무원, 감옥이 무섭다.

그러니 집행유예로 빼주겠다는 나유신의 유혹에 넘어간 거였다.


이 모든 과정에서 고거경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이다.

피의자 긴급 방면, 감시, 그리고 육체적인 범인 제압까지.

그렇지만 특수부라고 해도 이런 식으로는 수사하지 않는다.


염민아는 창백해진 얼굴로 물었다.


“나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대체 뭐야?”


나유신은 뚫어져라 잡혀가는 여문식을 보다 말했다.


“저놈 뒤에 뭐가 있는지 알아야겠어요.”


시한부 판정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여문식 배후다.

향후, 태양그룹 사건 때 여문식을 움직인 자가 누군지, 나유신은 정말 궁금하니까.


작가의말

* 플리바게닝(형량거래)은 당연히 위법입니다. 하지만 실무에선 없다고 말하기 어렵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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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46) 특수부 폭력이 조폭 진범보다 위다 +20 24.08.14 6,953 167 34쪽
46 (45) 강앤함과 월야 재벌가의 동상이몽을 털어라 +12 24.08.12 7,103 154 24쪽
45 (44) 월야그룹 살인사건을 만나다 +12 24.08.08 7,752 151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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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36) 이건 중수부의 운명이 걸린 사건이다 +14 24.07.19 8,127 178 30쪽
36 (35) 위치 추적 보상과 함께 서울시장 스캔들을 만나다 +22 24.07.17 8,422 186 23쪽
35 (34) 진짜 마약범을 잡고 금수저 변호사와 손잡다 +27 24.07.15 8,367 195 22쪽
34 (33) 골드스컬 클럽을 함정으로 일망타진하다 +17 24.07.14 8,306 190 23쪽
33 (32) 조기유학 금수저 학폭이 사건 진상이다 +16 24.07.10 8,383 182 23쪽
32 (31) 철벽의 성을 대규모 교사 시위로 넘어볼까 +13 24.07.08 8,321 187 22쪽
31 (30) 학교폭력 연쇄 자살사건이 터졌다 +15 24.07.05 8,709 182 22쪽
30 (29) 한국 재계를 뒤엎을 진짜 거물을 만나다 +21 24.07.03 9,008 194 24쪽
29 (28) 노동 살해 협박으로 진범을 잡다 +16 24.07.01 8,856 201 22쪽
28 (27) 솔라코인 전관 법무팀의 방어를 뚫어라 +15 24.06.27 9,043 196 21쪽
27 (26) 특수부 첫 사건은 1조원 분식회계다 +17 24.06.26 9,385 198 22쪽
26 (25) 중수부장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받다 +15 24.06.24 9,590 201 35쪽
» (24) 백발이를 죽인 자에게 진짜 복수를 해보자 +16 24.06.19 9,315 198 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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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19) 5초 예지로 폭발 속 범인을 잡다 +14 24.06.06 10,104 221 24쪽
19 (18) 감옥에 보낼 놈은 내가 고른다 +14 24.06.04 10,091 218 18쪽
18 (17) 1천억 비트코인 사건을 5초 예지로 파헤치자 +14 24.05.31 11,100 219 31쪽
17 (16) 나를 건드리면 검찰총장 예정자도 가만 안 둔다 +25 24.05.29 10,979 233 26쪽
16 (15) 독사를 건드리면 제왕도 문다 +20 24.05.27 11,055 237 30쪽
15 (14) 공판부 땜방으로 백발검사를 보내라 +10 24.05.24 11,550 223 30쪽
14 (13) 언론비리 일망타진으로 신체감정 보상을 받다 +11 24.05.23 12,155 230 31쪽
13 (12) 특활비 별건수사로 무전취식 기자를 잡자 +12 24.05.21 12,245 237 21쪽
12 (11) 사고뭉치에게는 법카부터 먹여줘라 +13 24.05.20 13,451 243 21쪽
11 (10) 나유신이 주가조작 일당을 함정수사로 잡았다 +17 24.05.20 13,516 262 21쪽
10 (9) 오풍제지 그래핀 사기를 경찰공조로 잡는다 +16 24.05.18 14,348 257 25쪽
9 (8) 정오판정으로 오풍제지 주가조작을 발견하다 +16 24.05.17 14,706 276 15쪽
8 (7) 선배가 장애물이면 부수고 해결한다 +15 24.05.14 15,099 280 22쪽
7 (6) 상태창의 보상은 놓칠 수 없다 +23 24.05.12 15,957 296 27쪽
6 (5) 의원 하나 잡고 시작하자 +20 24.05.11 15,732 290 14쪽
5 (4) 신입 수석검사가 꼴통이래 +15 24.05.10 16,983 307 15쪽
4 (3) 범인을 잡으니 시한부 연장 +16 24.05.09 18,129 292 11쪽
3 (2) 우선 범인부터 잡고 죽자 +17 24.05.08 19,693 312 13쪽
2 (1) 백발 신입검사 나유신 +25 24.05.08 22,926 354 11쪽
1 프롤로그 : 시한부 상태창이 생겼다 +42 24.05.08 30,120 416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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