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검사는 거물이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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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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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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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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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34) 진짜 마약범을 잡고 금수저 변호사와 손잡다

DUMMY

무리한 수사는 항상, 반발을 부른다.


“정유현 학생은 형사 미성년자입니다! 절대로 처벌할 수 없습니다!”


형사 미성년자, 곧 만 14세 미만을 말한다.


원래 해방 직후 결정된 형사 미성년자 연령은 만 10세였다.

그러다가 만 14세로 상승한 후, 계속해서 유지되어 왔다.

이 연령에 해당하는 범죄자는 형사 책임능력이 없다고 판정되어 형사처벌을 할 수 없다.


그런데 정유현은 중학교 3학년이 됐는데도, 형사 미성년자다.

물론 나유신은 익숙하다.

본인부터 [월반]으로 대학에 일찍 갔으니까.


요란하게 외치는 정유현의 변호사, 구정문을 보다 나유신이 코웃음을 쳤다.


“형사처벌이 안 되는 거지, 소년법상 보호처분은 가능하죠. 뭐, 그건 그런데.”

“게다가 이건 함정수사입니다! 범의유발형이에요! 이런 건 위법!”

“내 생각엔 말이죠. 정유현 학생의 범죄가 단순 마약투여나 협박, 폭행이 아닌 것 같단 말이죠.”


나유신은 구정문이 아니라, 그 옆에 앉아 있던 남자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


“살인교사.”


분명 정유현은 조기유학과 월반 탓에, 형사 처벌 대상은 아니다.


단지 만 10세 이상이면 [보호처분]만 가능할 뿐이다.

이를테면 소년 의료 보호시설에 처넣는 식이다.

하지만 나유신은 그저 보호처분으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나유신에게는 더 큰 [카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마약 사용범은 사실 한국에서는 실제 처벌된다고 해도 그리 처벌 수위가 높지 않다.

왜?


한국, 아니 선진국의 경우 마약 복용은 처벌보다 치료대상이라고 본다.

하여, 판매책이나 유통책은 처벌이 엄격하지만 구매자는 초범인 경우 극히 처벌 수준이 낮다.

반면 중국 같은 사법제도가 가혹한 나라는 사용만으로도 처형되지만.


한데, 살인교사는 얘기가 다르다.

설사 처벌되지 않는다 해도 드러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말이다.

실로 무시무시한 얘기에 구정문 변호사가 입을 쩍 벌렸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정유현 학생의 스마트폰은 마이폰이더군요. 암호화가 아주 잘 돼서 우리 검찰도 깨기 어려워요. 협조 안 해줄 거죠?”

“당연한 거 아닙니까! 그건 피의자의 정당한 방어권 행사입니다!”


나유신은 새하얀 머리를 쓸어 넘기다 눈을 번뜩였다.


“그런데 태양그룹 4세, 양수호 학생의 폰은 마이폰이 아니라 안드로메다 폰이더군요. 태양그룹이 스마트폰 사업을 하니 어쩔 수 없었겠죠.”


마이폰은 분명 암호를 깨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본인이 직접 풀어주지 않는 한, 혹은 암호를 아주 쉽게 설정하지 않는 한.

이를테면 26자리 숫자로 암호를 만들면 도저히 풀 수가 없다.

그러나 안드로메다 폰은 다르다.


특히 2010년대 초반에는 약간의 해킹 프로그램으로도 깰 수 있다.


“안드로메다 암호는 깰 수 있습니다. 정유현 학생과 대화한 SNS 내역도 고스란히 우리 손에 들어왔죠.”


구정문 변호사가 식은땀을 흘렸다.


이건 절대적으로 검사가 유리한 상황이다.

피의자 측이 모르는 정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방어권 행사를 위해 증거 제출을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절차상 오래 걸리는 데다 당장은 어렵다.

정유현 본인의 증거가 아니라 공동 피의자, 양수호의 증거 자료니까.

게다가 자칫 잘못 대응하면 검사가 주장하는 혐의를 인정하는 상황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형사 미성년자임을 애써 강조하려 구정문이 입을 재차 열었다.


“그래도, 처벌은 못 하실 텐데.”

“폭로는 가능합니다.”

“이봐요! 그건 피의사실 공표죄입니다!”


구정문이 기겁하며 비난했다.


피의사실 공표죄.

곧, 아직 미확정된 피의사실을 수사당국이 외부에 공표할 경우 처벌하는 범죄다.

그러나 이 범죄는 제정 후 처벌 사례가 단 한 건도 없었다.


아예 기소조차 된 적이 없다.

그럼 형사사건이 어떤 확정 처분이 내려지기 전, 보도가 되는 사례가 없을까?

수도 없이 많다.


이 모순은 왜 발생할까?

아주 간단한 해법이 있기 때문이다.

나유신이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언제 폭로한다고 했습니까? 하지만 언론에서 탐문수사로 ‘알아서’ 가져가는 건 어쩔 수가 없어요. 이거, 벌써 언론에서 찍어 간 거 아시죠?”


요컨대 언론과 검찰의 [뒷거래] 때문이다.


검찰 출입 기자들은 검사와 검찰수사관을 통해 특종을 받는다.

또한 검찰은 이 기자들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나아가 수사하는 사건에 유리한 언론보도를 얻는다.

이런 거래 관계 때문에 피의사실은 늘 사실상 드러나왔고, 처벌된 자들도 없었다.


따지고 보면 검찰의 병폐랄까.

병폐를 아무렇지도 않게 언급하는 백발 검사를 보며 구정문은 질린 얼굴이 되었다.

그런데 구정문 옆에 있던 남자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뭘 원하는 거요.”


미성년자가 일을 저질렀을 때, 사안을 책임질 자는 법적 보호자다.

보통 부모를 말한다.

나유신은 남자, 정유현의 부친을 응시했다.


“정석호 씨.”


해동일보 사주 일가의 사위.

나아가 편집인을 맡고 있는 실질적 경영인.

그렇지만 굳이 나유신이 이 남자에게 주목한 이유는 따로 있다.


얼마 전, 백희진을 공격한 기사가 틀림없이 정석호의 작품일 것이기 때문이다.


“애들이 죽고, 교사가 자살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거래는 있을 수 없죠.”

“우리 애는 어차피 형사미성년자라, 처벌받지 않소.”

“그러니까 사회가 처벌하게 만들 겁니다.”


나유신은 차갑게 웃으며 정석호를 노려보았다.


“물론 당신이 대신 죄값을 치르겠다면, 얘기가 조금 달라지겠지만.”


정석호가 눈을 부릅떴다.


“무슨 소리요, 그게?”


순간, 나유신이 낮게 물었다.


“정유현 학생의 [마약 캔디], 그거 당신 거죠?”


나유신의 눈에 두 가지 정보가 보인다.


심장박동의 신체반응.

그리고, 불안함을 나타내는 노란색 감정반응.

이 두 가지 반응을 보며 나유신은 사실상 정석호가 자백했음을 확신했다.


정석호를 응시하던 나유신인 선언했다.


“자식 대신 처벌받을 시간입니다. 정석호 씨.”


이것이 바로 나유신이 사건을 해결하기로 결정한 방식이다.


***


이게 정말 사건 해결방식인지, 아직 나유신은 확신하지 못한다.


-〈해동일보 정석호 이사, 구속! 마약 혐의 부인 중. 부유층 마약, 어디까지 가나?〉


그러나 적어도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을 자를, 처벌받게 만들었다.


학생이 마약을 했고, 이 마약을 이용해 클럽을 폭력적으로 운영했다.

그런데 형사미성년자라서 처벌할 수 없다?

그러면 그 마약을 애초에 접하게 만든 자가 책임져야 한다.


문득 기사를 보던 TF 팀장, 유명세가 낯을 찌푸리다 물었다.


“너, 어떻게 이걸 짐작했냐?”

“애들이 마약을 그냥 접할 리가 있겠어요?”

“단지, 그런 이유냐?”


유명세는 의심스런 눈으로 나유신을 응시했다.


“정석호가 마약을 한다는 걸, 알고 있었던 건 아니고?”


물론 나유신도 몰랐다.


다만 나유신은 찍었을 뿐이다.

정오판정과 신체감정, 그리고 5초 예지에 힘입어서.

게다가 전생에서도 이런 사건은 없다.


아마 그때는 난리가 났어도 누구도 사건을 파헤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단순한 자살 사건으로 끝났을 테니까.

잠시 씁쓸한 기분을 느끼다 나유신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중요하지 않죠. 중요한 건, 이제부터 학폭과 자살에 얽힌 진실을 파헤치시는 거죠.”


나유신이 차갑게 눈을 번뜩였다.


“이제, 다들 자백할 테니까요.”


유명세는 빤히 나유신을 보다 혀를 찼다.


“넌 정말 무서운 놈이군. 백사.”

“진짜 무서운 건 따로 있죠.”

“뭐?”


나유신은 대답 대신 눈앞에서 반짝이는 황금문자를 보았다.


[시한부 연장.]


이번에도, 간신히 살았다.

그런데 나유신은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실상 따지고 보면 진짜 범인을 잡아넣은 것은 아니다.


대체, 황금문자의 판정 원리는 어떤 걸까?


***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이 감사 인사를 하러 왔다.


“고맙습니다.”


고찬석, 바로 고미래 선생의 부친이다.


검사는 보통 피해자가 고맙다고 말하는 경우가 없다.

사실은 검사에게 인사오는 이들은 보통, 검사에게 잘 보여서 사건을 해결하거나 수사를 무마하려는 자들이다.

오히려 피해자들은 항상 검사를 원망한다.


그 어떤 피해자도 자신이 당한 만큼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어서다.

특히 죽어버린 피해자라면 더욱 그렇다.

나유신은 고찬석 앞에서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한 채 답했다.


“사전에 막지도 못했고, 진범은 애라서 처벌하지도 못했습니다. 유감입니다.”

“아니, 우리 미래는 만족했을 겁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고찬석이 눈물 어린 눈으로 웃었다.


“연준이 학생은 학교로 돌아갈 수 있을 거 아닙니까.”


이연준, 아직 살아있는 사건 피해자다.


두 명의 학생, 한 명의 교사가 죽었다.

그렇지만 딱 한 사람, 자살시도를 했던 마지막 학생 이연준은 살아 있다.

깨어난다면 골드스컬이 존재하는 학교로 돌아가야 했을 것이다.


당연히 이번 사건으로 골드스컬은 해체다.

나아가 원흉이었던 정유현은 학교를, 아니 한국을 떠나야 할 것이다.

그러니 이연준은 무사히 학교로 귀환할 수 있다.


고찬석이 나유신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아마 그게 우리 미래가 정말 바라던 바일 겁니다. 고맙습니다, 검사님.”


그 순간 나유신은 눈을 크게 떴다.


“아.”


눈앞에 황금문자가 보인다.


[사건 해결.]


고찬석이 떠나고, 한참 동안 나유신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기소도, 처벌도 아닌 해결.

황금문자가 늘 올리던 시한부 판정의 결론은 그랬다.


“이게, 사건 해결원리구나.”


어쩐지 조금 알 것 같았다.

10년, 전생의 검사 생활 동안 나유신이 단 한 번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일.


사건 해결에 대해서.


***


대한민국의 헌법에 따르면 그 어떤 흉악 범죄자라도 변호 받을 권리가 있다.


-척, 척, 척!


지금 검찰 조사실로 위풍당당하게 변호사 배지를 단 청년이 들어서는 것도, 그 헌법적 권리 때문이다.


일견 불합리하게 생각되기 쉽다.

예를 들어 마약을 강제 복용시키고, 거부하는 학생들을 두들겨 패다, 자살하게 만든 범인이 있다.

이런 흉악범죄자가, 아무리 소년범이라도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이 근대적인 형법 체계는 사실 [악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다.

범죄를 사회적으로 처리하고 치안을 유지하여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세워진 제도다.

아무리 흉악범죄자라 해도 동등한 법적 권리를 갖도록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지만 특별 TF 수사관 고거경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뉘신지?”


이미 변호사라면 들어온 지 오래다.

대체 누군데 조사 도중에 들어오려고 하는 걸까?

문득 청년이 배지를 보란 듯이 내밀며 고거경에게 말했다.


“변호인입니다. 저희 의뢰인을 뵙고 싶은데요.”

“의뢰인이라구요? 허가 받고 들어오신 겁니까? 아직 조사가 덜 끝났는데요. 게다가, 다른 변호사도.”

“새로 선임되었습니다. 변호인 조력권은 헌법상 권리 아닙니까?”


청년은 아주 여유롭게 웃으며 손가락을 세워보였다.


“아니면, 정식으로 문제 삼아 볼까요?”


손가락이 향한 방향은 ‘위’다.


이번 시한국제중 클럽 사건은 고위층 자제가 다수 연루된 사안이다.

그건 각계각층에서 이번 사건 때문에 검찰에 전화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단순 정보획득에서 좀 더 세밀한 개입, 혹은 청탁까지도.


고거경도 알만큼 아는 수사관이라 입맛을 다시며 손짓했다.


-삐꺽!


조사실 문이 열리자, 안에서 한창 [조사] 중이던 박달한 검사가 고개를 돌렸다.


“뭐요?”

“당연히 수사관이나 관계자가 아니라면, 변호사 아니겠습니까? 지금부터 제 의뢰인, 양수호 씨는 우리 [리걸팩토리]에서 맡습니다.”

“잠깐만, 지금 진술서 다 썼는데?”


그 순간 청년, ‘리걸팩토리’의 변호사가 달려들어 박달한 검사가 확인하던 진술서를 잡아챘다.


-찍, 찍, 찍!


그야말로 신속 그 자체.

순식간에 진술서가 찢겨져 나간다.

박달한이 어안이 벙벙한 채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났다.


“이봐요!”

“제대로 된 변호인 조력 없는 진술서는 무효입니다.”

“변호인 있었다니까! 여기!”


그러나 리걸팩토리 변호사는 전혀 흔들림 없이 변호인 쪽을 돌아보았다.


“구정문 변호사님?”


구정문 변호사, 그리고 그 [의뢰인]도 놀란 얼굴로 앉아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새로운 ‘변호인’에 대한 이야기를 일절 들은 적 없다는 얼굴이다.

하기야 그 어떤 변호사라도 진술 도중에 뛰어들어 진술서를 찢는 일 따위는 없다.


“어, 그렇습니다. 제가 현재 양수호 학생을 비롯해서, 이번 사건 변호를.”

“2시간 전, 구정문 변호사님은, 정확히는 법무법인 인도양은 양수호 학생의 부친으로부터 해임되었습니다.”

“아니, 왜죠?”


대형로펌 인도양의 형사전문 변호사.

구정문이 항변하려던 찰나.

리걸팩토리의 청년 변호사가 차갑게 대꾸했다.


“그거야 제대로 사건도 막지 못하면서, 오히려 의뢰인의 법적보호자까지 끌고 들어가 버렸으니까요. 오늘 새벽 정석호 해동일보 발행인이 구속된 거 아시죠?”


이건 구정문도 할 말이 없는 얘기다.


실로 사력을 다해 막으려 했지만 결국 막지 못했다.

증거, 곧 마약이 정석호의 집에서 발견되어 버린 탓이다.

마치 어디 있는지 안다는 것처럼 백발 검사와 검찰수사관들이 집을 누볐다.


구정문은 아찔한 기억을 떠올리다 낯을 찡그리며 항변하려 했다.


“잠깐, 그건 어디까지나.”

“해임된 상태로 변호인 활동을 한 건 전부 무효입니다. 나가주십시오.”

“무례하군! 나보다 후배인 거 같은데, 이래도 되나? 한국변협에 징계신청 넣겠어!”


그러나 리걸팩토리의 청년 변호사는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그렇게 하시지. 그러면, 그 순간부터 법무법인 인도양은 화성그룹 사건에서 일절 배제될 테니까.”


그런데 답변이 엉뚱하다.


한국변협에 징계신청을 넣어도 무효라든가, 능력 부족을 탓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인도양이 사건 수임을 하지 못할 거라고 협박하고 있다.

그것도 10대 그룹에 속하는 대기업, 화성그룹을 거론하면서.


일순, 구정문이 눈을 크게 떴다.


“당신, 설마?”


청년 변호사는 구정문과 대화하는 대신, 앉아 있던 어린 의뢰인에게 인사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양수호 씨. 리걸팩토리 대표, 한강민 변호사입니다. 화성그룹의 한치호 회장님이 제 할아버지죠.”


모두가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변호사 한강민이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럼, 다시 진술 시작해 볼까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


그러니까 리걸팩토리 대표, 한강민 변호사는 화성그룹 3세다.


“오랜만이군요, 나유신 검사님. 기억하십니까?”


한강민은 조사실로 나유신이 들어서자 반갑다는 듯 인사했다.


나유신은 미간을 찡그렸다.

과거, 전생에서는 딱히 만날 일 없었던 수도대 로스쿨 동기다.

월반을 거듭했던 ‘천재’ 나유신보다는 당연히 나이는 많다.


그렇지만 재벌가 [금수저]가 로스쿨에 왔다고 떠들썩했던 기억은 난다.

게다가 한강민의 행보는 실로 화려해, 소문을 계속 들을 수밖에 없었다.

비록 화성그룹이 뒤에 있다고는 하지만 로펌 업계에서도 그야말로 승승장구.


10년 뒤에는 대형로펌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구삼진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미래의 거물.

하필 이 사건에서 변호인으로 만날 줄은 몰랐다.


그때 나유신을 따라온 백희진 검사가 호들갑을 떨었다.


“와, 금수저 선배다!”

“이런, 후배님이신가요? 처음 보는군요.”

“졸업하신 후에 입학했으니까요. 하지만 명성은 들었죠!”


사실 로스쿨 기수로는 백희진은 후배니 당연한 일이다.

그럼 왜 나유신과 검사로는 동기일까?

그야 나유신은 군대를 갔기 때문이다.


눈앞의 재벌가 금수저와 달리.


“화성그룹 금수저 3세, 미국 국적 병역 면탈자, 그리고 자금력으로 대형 로펌을 만들려 계획 중인 변호사.”


나유신은 차갑게 한강민을 쳐다보며 말했다.


“여기선, 마음대로 안 될 겁니다. 한강민 변호사님.”


한강민은 눈썹을 치뜨다 휘파람을 불었다.


사전에 나유신이 조사한 것 같아 조금 놀란 모양이다.

물론 나유신으로서는 이미 전생에서 아는 정보를 읊었을 뿐, 황금문자조차도 이용한 게 아니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당황한 것도 아닌 듯, 한강민은 아주 여유롭게 말했다.


“난 마음대로 하자고 이렇게 온 게 아닙니다. 양수호 의뢰인의 정당한 법적 조력을 위해 온 거죠.”

“이미 스마트폰을 통해 다 드러났습니다만. 살인의 미필적 고의를 갖고 학생들을 폭행한 게 말이죠.”

“선수끼리 협박은 그만하시죠.”


마치 옆에 양수호가 없기라도 한 것처럼, 한강민이 나유신을 보며 말했다.


“자살과 폭행 사이의 인과관계는 입증하기 어렵습니다. 그 어떤 재판부도 쉽게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죽은 학생들도 따지고 보면 마약 사범 아닙니까?”


양수호 얼굴에 화색이 도는 게 보인다.


그러나 이건 한강민의 말이 맞다.

어쨌든 양수호는 형사미성년자도 아니고, 마약 투약강요도 했고, 직접 폭행과 협박도 했으니 처벌할 수는 있다.

문제는 이게 학생들의 자살과 직접 연관관계가 있다는 증명이 어렵다는 거다.


게다가 한강민 말처럼 죽은 학생들과 살아있는 이연준도 마약을 투약하긴 했다.

당연히 강요였긴 했지만.

백희진 검사가 놀라 입술을 뗐다.


“잠깐만요. 그건 어디까지나 협박 때문에.”

“누가 입증하죠? 제 의뢰인도 그렇지만 누구도 자백하지 않을 겁니다. 혹시 해동일보와 태양그룹, 그 외 재벌가나 권력자의 보복을 받고 싶지 않다면.”

“이번에는 선배님이 우리를 협박하는 건가요?”


한강민은 싱글싱글 웃으며 대꾸했다.


“설마요. 사실을 얘기하는 겁니다. 백 검사님.”


나유신은 뚫어져라 한강민을 보다 불쑥 물었다.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한강민?”


그저 태양그룹 4세를 변호하기 위해 온 걸까?

허나 나유신이 기억하기로 한강민은 단기 이익을 위해 움직일 인물은 아니다.

뭔가 더욱 큰 것을 노리고 온 게 확실하다.


역시, 양수호가 없다는 듯, 한강민이 대꾸했다.


“거래.”

“검사를 상대로? 웃기는군.”

“예전 같으면 하지 않았을 거야. 넌 그냥 범생이였거든. 그런데.”


문득 한강민이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요새 하는 꼬락서니 보니까, 어쩐지 나랑 같은 [과] 같더라구. 내 생각이 틀렸나?”


나유신은 미처 답하지 못했다.


이전, 죽음을 경험하기 전, 아니 시한부 알림을 받기 전.

그저 공부만 아는 범생이였다는 지적은 틀린 게 아니다.

한데 지금은 어떻게 다른 걸까?


순간, 한강민이 나유신의 앞에 명함을 내려놓았다.


“생각 있으면 연락해. 오늘은 귀가시켜도 되겠지?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는 이미 없으니까.”


한강민이 아주 당연하다는 듯, 양수호와 함께 사라지는 모습을 보다 백희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뭘 거래하자는 걸까?”


나유신은 뚫어져라 그 모습을 보다 툭 쏘았다.


“아마도, 극비정보겠지.”


그게 뭐든 간에, 아주 가치있는 정보일 것이다.


***


한밤중, 리걸팩토리 사무실에 백발의 검사가 들어섰다.


“거래를 할 생각이 들었나?”


그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던 한강민이 손을 흔들어 보였다.

나유신은 한강민을 빤히 보았다.

재벌그룹 금수저, 미래의 대형로펌 대표, 병역 면탈기피자.


그러나 한강민이 진짜 무서운 이유는 따로 있다.

장래에 대통령을 만드는 [킹 메이커]가 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지금은 거기까지는 한강민도 미처 생각하지도 않고 있겠지만.


나유신이 불쑥 물었다.


“양수호를 놔주고, 태양그룹을 잡으라는 건가?”

“오, 그래. 내가 남긴 메시지를 읽었군. 내가 보기엔 그게 더 이익인 것 같거든.”

“왜 그런 거래를 제안했지?”


한강민은 어깨를 으쓱였다.


“직감이랄까. 나 검사는 좀 더 큰 걸 보고 있는 것 같거든. 이를테면.”


문득 한강민이 시선을 돌리자, 그 뒤로 거대한 창밖의 서초동이 펼쳐졌다.


“이 나라를 움직이는 [세력]과 연계된 검사 집단이라든가.”


대검찰청이 멀리 보인다.


나유신은 주먹을 꽉 쥐었다.

10년.

전생의 인생이 죽음으로 끝난 이유.


태양그룹, 그리고 검찰 고위층 때문이다.

분명, 나유신은 그 둘을 노리고 있다.

이 나라를 움직이는 엄청난 힘일지도 모르는 자들을.


하지만, 죽은 학생들은 어쩐단 말인가?


“거절한다.”


한강민이 눈썹을 치떴다.


“흐음, 이상하군. 너라면 나와 거래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건으로 거래하진 않아. 게다가 양수호는 반드시 처벌받아야 해. 만약 처벌받지 않는다면 10년 뒤, 혹은 20년 뒤 진짜 괴물이 생길 수도 있다.”

“꼭 본 사람처럼 얘기하는군.”


그 순간 나유신이 한강민의 책상 위를 내리쳤다.


-쾅!


나유신은 한강민을 노려보았다.


“굳이 보지 않아도 예측할 수 있지. 하지만 거래를 하지 않겠다는 건 아냐. 널 도와주지.”

“뭐?”

“화성그룹을 검찰이 [타깃]으로 삼을 때.”


한강민이 낯빛이 바뀔 찰나, 나유신이 말했다.


“그때 널 도와주지. 어때?”


이건 반드시 발생할 일이다.


모든 재벌은 한 번씩은 검찰의 타깃이 된다.

다만 화성그룹은 그 정도가 아니라 전생에서 검찰과 척을 졌다.

물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강민이 [킹 메이커]가 되긴 한다.


그렇지만 나유신은 그 상황을 알기 때문에 검찰 내부에서 조력자가 될 수 있다.

한강민이 빤히 나유신을 보았다.

흔들리는 눈빛.


문득, 한강민의 이마에 청색 빛이 보인다.


“좋아. 거래 성립이군. 앞으로 계속, 자주 거래하자고.”


한강민이 손을 내밀었다.

이 손은 재벌의 유혹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유신은 손을 잡았다.


“대가는, 정보다. 너만이 알 수 있는 재벌가의 정보.”


왜냐하면 전생에서, 트럭살인마에게 죽고 나서 알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그보다 더 한 [악]이 존재한다는 걸.


작가의말

* 금수저 변호사는 전작 <법정의 금수저 망나니>의 한강민입니다. 다만 세부 설정은 많이 다릅니다. 아무래도 평행세계니까요. 일단 회귀자가 아닙니다.


* 이제 사건 마지막, 원흉 정유현을 나유신이 징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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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검사는 거물이 되기로 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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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58) 재벌가 상속녀도 보이스피싱을 당한다 NEW +11 14시간 전 2,350 53 9쪽
58 (57) 전시안 보유 시한부 인생은 무서울 게 없다 +10 24.09.17 3,641 84 29쪽
57 (56) 새로운 검찰총장이 백발공적을 보호한다 +10 24.09.12 4,835 107 30쪽
56 (55) 총장의 자백으로 3조 폰지 사기를 부수다 +22 24.09.09 5,143 130 28쪽
55 (54) XBC 폭로로 현직 총장 사모를 붙잡다 +18 24.09.07 5,119 121 28쪽
54 (53) 황금금강석 멤버들은 그린벨트에 3조를 투자한다 +12 24.09.04 5,448 108 28쪽
53 (52) 총장 사모님이 피라미드 거물이다 +20 24.08.30 5,788 114 28쪽
52 (51) 3조짜리 피라미드 조직을 잡아보자 +18 24.08.29 5,960 126 29쪽
51 (50) 나유신이 첫 휴가지에서 상속녀를 보다 +26 24.08.24 6,587 139 31쪽
50 (49) 초보형 전시안으로 사채왕을 발견하다 +15 24.08.22 6,536 153 30쪽
49 (48) 회장 등극식에서 대법관을 이용해 진범을 잡다 +19 24.08.20 6,660 163 21쪽
48 (47) 재벌 회장이 되게 해주세요 +25 24.08.18 6,753 154 34쪽
47 (46) 특수부 폭력이 조폭 진범보다 위다 +20 24.08.14 6,953 167 34쪽
46 (45) 강앤함과 월야 재벌가의 동상이몽을 털어라 +12 24.08.12 7,104 154 24쪽
45 (44) 월야그룹 살인사건을 만나다 +12 24.08.08 7,753 151 25쪽
44 (43) 나유신의 팀을 수도대 동문회에서 완성하다 +14 24.08.06 8,145 166 35쪽
43 (42) 백사여, 노담에서 다시 시작해라 +20 24.08.02 8,276 176 29쪽
42 (41) 시한부 연장권과 함께 중수부가 폐지되다 +20 24.07.31 8,110 193 20쪽
41 (40) 백발이가 사채왕을 잡다 +27 24.07.30 8,031 194 21쪽
40 (39) 이렇게 된 이상 선제 폭로로 중수부를 친다 +14 24.07.28 7,969 194 19쪽
39 (38) 진짜는 미래살인 배후 사채왕이다 +16 24.07.26 7,969 188 21쪽
38 (37) 금수저 비밀 정보로 스캔들 범인부터 잡다 +19 24.07.24 8,007 184 32쪽
37 (36) 이건 중수부의 운명이 걸린 사건이다 +14 24.07.19 8,128 178 30쪽
36 (35) 위치 추적 보상과 함께 서울시장 스캔들을 만나다 +22 24.07.17 8,423 186 23쪽
» (34) 진짜 마약범을 잡고 금수저 변호사와 손잡다 +27 24.07.15 8,369 195 22쪽
34 (33) 골드스컬 클럽을 함정으로 일망타진하다 +17 24.07.14 8,306 190 23쪽
33 (32) 조기유학 금수저 학폭이 사건 진상이다 +16 24.07.10 8,384 182 23쪽
32 (31) 철벽의 성을 대규모 교사 시위로 넘어볼까 +13 24.07.08 8,321 187 22쪽
31 (30) 학교폭력 연쇄 자살사건이 터졌다 +15 24.07.05 8,709 182 22쪽
30 (29) 한국 재계를 뒤엎을 진짜 거물을 만나다 +21 24.07.03 9,008 194 24쪽
29 (28) 노동 살해 협박으로 진범을 잡다 +16 24.07.01 8,856 201 22쪽
28 (27) 솔라코인 전관 법무팀의 방어를 뚫어라 +15 24.06.27 9,044 196 21쪽
27 (26) 특수부 첫 사건은 1조원 분식회계다 +17 24.06.26 9,385 198 22쪽
26 (25) 중수부장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받다 +15 24.06.24 9,591 201 35쪽
25 (24) 백발이를 죽인 자에게 진짜 복수를 해보자 +16 24.06.19 9,316 198 34쪽
24 (23) 백사가 또 검사를 잡았다 +22 24.06.18 9,397 200 22쪽
23 (22) 특수부식 예단수사로 마약통관범을 잡아라 +11 24.06.15 9,443 197 23쪽
22 (21) 이 나라에는 마약도 너무 많다 +17 24.06.13 10,215 210 24쪽
21 (20) 첫 기자회견과 함께 위수증 5백억 코인이 남다 +19 24.06.07 10,211 224 36쪽
20 (19) 5초 예지로 폭발 속 범인을 잡다 +14 24.06.06 10,105 221 24쪽
19 (18) 감옥에 보낼 놈은 내가 고른다 +14 24.06.04 10,091 218 18쪽
18 (17) 1천억 비트코인 사건을 5초 예지로 파헤치자 +14 24.05.31 11,100 219 31쪽
17 (16) 나를 건드리면 검찰총장 예정자도 가만 안 둔다 +25 24.05.29 10,980 233 26쪽
16 (15) 독사를 건드리면 제왕도 문다 +20 24.05.27 11,058 237 30쪽
15 (14) 공판부 땜방으로 백발검사를 보내라 +10 24.05.24 11,550 223 30쪽
14 (13) 언론비리 일망타진으로 신체감정 보상을 받다 +11 24.05.23 12,155 230 31쪽
13 (12) 특활비 별건수사로 무전취식 기자를 잡자 +12 24.05.21 12,246 237 21쪽
12 (11) 사고뭉치에게는 법카부터 먹여줘라 +13 24.05.20 13,452 243 21쪽
11 (10) 나유신이 주가조작 일당을 함정수사로 잡았다 +17 24.05.20 13,517 262 21쪽
10 (9) 오풍제지 그래핀 사기를 경찰공조로 잡는다 +16 24.05.18 14,349 257 25쪽
9 (8) 정오판정으로 오풍제지 주가조작을 발견하다 +16 24.05.17 14,707 276 15쪽
8 (7) 선배가 장애물이면 부수고 해결한다 +15 24.05.14 15,099 280 22쪽
7 (6) 상태창의 보상은 놓칠 수 없다 +23 24.05.12 15,957 296 27쪽
6 (5) 의원 하나 잡고 시작하자 +20 24.05.11 15,733 290 14쪽
5 (4) 신입 수석검사가 꼴통이래 +15 24.05.10 16,984 307 15쪽
4 (3) 범인을 잡으니 시한부 연장 +16 24.05.09 18,129 292 11쪽
3 (2) 우선 범인부터 잡고 죽자 +17 24.05.08 19,693 312 13쪽
2 (1) 백발 신입검사 나유신 +25 24.05.08 22,928 354 11쪽
1 프롤로그 : 시한부 상태창이 생겼다 +42 24.05.08 30,121 416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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