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검사는 거물이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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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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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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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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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4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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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중수부장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받다

DUMMY

검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힘을 고려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게 [언론]이지.”


수도중앙지검 특수부 사무실.


나유신은 특수부 파견 검사지만 정작 이 사무실에 들어와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창밖, 기자들이 잔뜩 몰려온 걸 위에서 내려다보는 기분이 묘하다.

본래는 창고나 마찬가지인 구석방이라 밖이 보이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잔뜩 모인 기자들을 내려다보다, 특수부장 구호승이 읊조렸다.


“함부로 이용해도 안 되고, 또한 함부로 무시해도 안 되고.”

“알고 있습니다. 부장님.”

“그런데, 자네는 아주 위험하게 사용했어. 나유신 검사.”


일순, 구호승이 은테 안경을 빛내며 나유신을 응시했다.


“물론, 그 덕분에 이번에 기자들이 제대로 달려들고 있지만.”


마약이 공항으로 밀수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스캔들이다.


여기에 검사가 범인이라는 보도는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다.

하지만 그보다 놀라운 것은 강남 클럽, 서울 중심가에 마약이 대량으로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

생활과 거리가 멀다고 여겨졌던 마약이 바로 옆에 있다?


이 상황을 경찰도, 검찰 마약부도, 국정원도 아닌 검찰 특수부가 잡았다.

검찰청 차원에서 자랑할 만한 엄청난 성과다.

비록 중간에 검사가 범인으로 엮여 있긴 하지만, 그거야 개인의 일탈로 묻어버릴 수 있을 정도다.


나유신이 빤히 구호승을 보며 되물었다.


“마음에 드십니까?”


구호승은 은테 안경을 벗으며 닦았다.


“나유신 검사. 사건을 해결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아나?”

“범인을 잡아서 기소한 후 처벌받게 만드는 거 아닙니까?”

“아니야.”


다시, 은테안경을 고쳐쓰며 구호승이 차갑게, 그러나 화내지 않고 일렀다.


“거대한 범죄의 그물을 잘라서, 한 조각 도려내는 게 사건을 해결한다는 거야. 범죄는 끝이 없고, 죄인들은 영원히 나올 테니 말이지.”


어쩐지 민혁기에게 들었던 얘기 같다.


사건을 구분 짓는 것.

유능한 수사관이 꼭 해야 할 일이라던가.

10년을 검사로 살았던 전생에서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다.


구호승이 책상 위 수사보고서를 가리켰다.


“이번 건도 그래. 자네는 두 가지 큰 건을 잡았어. 마약 불법 통관, 그리고 운반범이지.”

“투약자나 클럽 연관자들을 못 잡은 건 유감입니다.”

“그 말을 하는 게 아니야. 그놈들을 도려낸다고 해도, 또 다시 똑같은 놈들이 나온다는 거야. 그래서 끝이 없다고 말하는 거고.”


정작 본인은 강남 클럽을 쫓고 있었지만, 구호승도 안다.

결국 마약 사건 자체는 끝이 없다.

그럼 특수부 입장에서는 선을 긋고 일정 테두리 내에서 사건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범죄를 내버려 둘 수는 없지. 그래서 검사는 사건을 [구획]하고 [기획]해서 [확정]지어야 하네. 우리 특수부는 그중에서도 가장 정밀하고 신속한 확정을 짓는 곳이고.”


나유신은 구호승을 정시하며 되물었다.


“그래서, 제가 잘못 구획했습니까?”


만약 처음 왔을 때 이런 질문을 했다면 구호승은 분노했을 것이다.

사실 탁도진을 잡은 직후에도 격노했다.

허나 콜뛰기 위장 대형 마약유통범, [스컬]을 잡은 순간부터, 구호승은 나유신에게 화내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유신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완벽하게 정확히 구획했네. 그래서 문제야.”

“그게 왜 문제죠?”

“정식 특수부도 아니고, 파견이 한 일이란 말이지. 그저 좋다고 박수만 칠 수는 없는 노릇이야. 나로서는.”


그럼에도 여전히 문제가 있다.


사건을 해결한 게 실은 특수부가 아니란 거다.

억지로 엮으면 파견검사도 특수부라고 우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걸 누가 납득할까?


놀랍게도 나유신이 납득하는 투로 말했다.


“운반책 체포는 특수부에서 전부 해결한 걸로 하시죠. 검사 잡아먹은 건 제가 감당하겠습니다.”


구호승은 눈썹을 치떴다.


사실 이 얘기를 하려고 하긴 했다.

검사 잡아 넣은 건 나유신이 뒤집어 쓰고, 유통책 체포는 특수부가 공적을 가져간다.

아주 구호승이 원하던 바다.


그렇지만 이렇게 되면 나유신이 손해를 본다.

왜?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나유신은 공적을 세웠다.


어쨌든 통관범을 잡았으니까.

하지만 기록에 남지 않는 검사들의 [인식] 속에서는 나유신은 이렇게 남을 거다.

검사를 잡아먹는 백사라고.


잠시 눈을 굴리다 구호승이 물었다.


“상관없나?”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뭐지? 특수부 정식 발령인가? 그건 내 손에서 처리할 수 있는 일은 아닐세.”


나유신은 구호승을 향해 단호히 대꾸했다.


“아뇨. 완전히 구치소 넘어가기 전에 그 망할 운반책 놈, 일대일 대면조사를 원합니다. 비공개로.”


그거라면, 구호승 선에서 해줄 수 있는 일이다.


***


어두운 조사실, 완전히 박살 난 얼굴로 해골문신남이 하얀 머리를 보았다.


“후, 엿 같군. 내 사업을 완전히 박살 낸 장본인이신가.”


통칭 스컬, 강남 클럽에 마약을 수년 간 대량 유통해온 유통책.


연간 공급 물량은 무려 2천억원 대.

그간 수많은 중독자를 양산해왔고 본인은 콜뛰기 운전기사로 위장했던 남자.

또한 원래는 절대로 잡히지 않았을 자다.


나유신이 뚫어져라 스컬을 보다 물었다.


“여문식?”

“뭐, 다 아는 사이끼리 뭘 물으쇼? 그건 그렇고 하나 물읍시다. 백발 영감님, 대체 어떻게 김시관을 잡은 거요? 이거, 그렇게 쉽게 드러날 구조가 아닌데.”

“김시관의 뒷배 격인 탁도진 검사를 잡았지. 뉴스도 안 봤나?”


스컬이 비웃음을 머금은 채 툭 쏘았다.


“그게 참 대단하단 말야. 뒷일 생각 안 하쇼? 검사를 검사가 잡다니. 나도 나지만, 당신도 이제 출세하긴 글른 것 같은데?”


그 순간 나유신이 스컬의 멱살을 잡고 밀어붙였다.


-홱!


두 손이 수갑에 채워진 터라, 스컬은 미처 반항하지 못했다.


“그래서, 네 뒷배는 누구지?”

“이거, 왜, 이러쇼? 무, 묵비권 행사하겠소. 거, 검사가 용의자 때려도 되나?”

“넌 그냥 용의자가 아니라 현행범이야. 살인미수에 마약유통, 밀수, 뇌물, 공무집행방해, 무수한 범죄를 저질렀지. 우리 형법이 병과주의가 아닌 걸 다행으로 알아.”


영미권에서는 죄를 저지를 때마다 그 죄책을 합산해서 형벌을 매긴다.

그러나 한국은 독일을 비롯한 이른바 유럽대륙계 법률을 이어받았다.

이른바 행위주의라고 해서 가장 높은 처벌을 골라서 형벌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그건 중범죄자 입장에선 유리한 일이라 스컬이 이죽댔다.


“하, 그거야 그렇겠지. 게다가, 전관 변호사 쓰면 난 금방 나올 거요. 그거 생각하면 내게 적당히 하는 게 좋을 텐데? 언제까지고 검사 지내실 수도 없을 거고.”

“다시 묻는다, 네 뒷배 누구야.”

“아까부터 자꾸 뒷배 거리는 데 그런 거 없어!”


찰나, 나유신은 그대로 벽까지 스컬을 밀어붙였다.


-쾅!


숨통이 막힌 스컬이 비명을 질렀다.


“악! 거, 검사가 사람 잡는다!”

“넌 잡아도 돼. 왜냐면 너 때문에 현직 검사가 날아갔거든.”

“그, 그게 왜 내 탓이야! 잡은 건 너고, 탁도진, 그놈이 뇌물 받아 처먹은 탓이지!”


하지만 나유신은 멈추지 않았다.


“검사들 생각은 달라. 너 같은 쓰레기가 없었으면 여전히 잘 나갔을 엘리트 검사라고 생각하거든. 그게 무슨 말인 줄 알아? 넌, [검찰]에 찍힌 거야. 스컬 여문식.”


여문식은 숨이 막히는 가운데 눈을 부릅떴다.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얘기다.

아무리 거물 범죄자라도 한 개인이 검찰 조직과 맞설 수는 없다.

그런데 세상에 범죄가 얼마나 많은데 일개 마약사범을 검찰이 찍는단 말인가?


가능하다.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유신은 지금 자신이 그렇게 만들어 주겠다고 말하는 거다.


“네가 무슨 전관을 쓰든, 넌 무조건 법정최고형이야. 판사를 구워삶아서 나와? 그럼 그 다음에 널 기억하는 특수부에서 널 집요하게 처넣어 줄 거야.”

“자, 잠깐만.”

“어떤 인생을 살든 간에 엿 되게 만들 거고, 죽을 때까지 나락으로 처박아 줄 거다. 왜? 내가 항상 상기시켜 줄 거거든. 널 지켜보면서.”


온몸이 떨려 온다.


사실 중국처럼 마약사범을 사형에 처하는 나라가 아닌 이상, 마약 자체는 중범죄로 처리되지 않는다.

또한 여문식도 변호사를 쓰기에 따라서는 5년 정도면 빠져나올 수도 있다.

허나 인생 전체가 검찰의 표적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 누구라도 인생이 박살날 수밖에 없다.

검찰은 충분히 그럴 힘이 있다.

여문식이 부들부들 떨 찰나, 나유신이 노려보며 물었다.


“그러니까 내가 널 제대로 죽여버리겠다고 생각하기 전에 말해. 네 뒷배가 누구야. 태양그룹 양진호냐?”


태양그룹 재벌 4세, 양진호.


전생, 백면서생 검사 나유신이 추적하다 틀어졌던 범인.

비록 10년 전인 시점이지만 여문식과 양진호가 어떤 관계가 있지는 않을까?

살인 지시는 아무에게나 내릴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때 여문식이 해골 문신을 비틀며 울부짖었다.


“모, 몰라! 그런 놈! 태양그룹인지 월야그룹인지, 그런, 재벌이 나랑 무슨 상관이야! 이, 이거 놓고 얘기하자고!”


동시에 황금문자의 정오판정이 떴다.


[진실.]


나유신은 이를 악물다 여문식을 던져 버렸다.


“빌어먹을!”


여문식이 콜록대다 나유신을 쳐다보았다.


“마, 말로 하자구요, 검사님.”


하지만 나유신은 이미 여문식을 심문할 이유가 없어진 뒤다.


***


회귀역행,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왜, 원하던 거 못 얻었어?”


그러나 나유신은 이미 겪고 있다.


죽음을 대가로, 혹은 죽었기 때문에 겪는 현상일까?

문제는 회귀역행의 결과, 나유신이 죽은 사건도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는 거다.

그러니 여문식이, 스컬이, 트럭살인마가 아무것도 모르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나유신은 염민아가 던진 질문에 엉뚱한 답을 내놓았다.


“저놈도 결국 수많은 하수인 중 하나일 뿐이겠죠.”

“응? 뒤에 누가 있대?”

“결국 필요할 때 쓰고 버리는, 그런 하수인.”


아니, 당연하지 않다.


분명 살인 지시는 특별한 일이다.

아무리 재벌이고, 검찰 수뇌부고, 권력자 집단이라고 해도.

여문식은 하수인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그 지시를 내린 장본인은 분명 엄청난 힘을 가졌을 것이다.


동시에 나유신은 그 장본인의 비위를 거슬렸다.

10년이 지난 후, 전생에서.

그러니 찾아야 한다.


“진짜는 항상 따로 있죠. 정말 거대한 배후는.”


염민아는 나유신을 뚫어져라 보다 묘하게 웃었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 어쨌든 사건 해결했으니, 한 잔 할래?”

“아뇨. 전 술 마실 틈 같은 거 없어요. 선배.”

“비싸게 구네. 언제쯤 마시려구?”


어쩐지 아쉬워 보이는 염민아의 표정을 못 본 채, 나유신은 차갑게 말했다.


“제가 진짜 거물을 잡는 그 순간요.”


어쩌면 아주 좋은 일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저녁.

시한부 인생 나유신이 미처 알지 못한 채 수도지검을 나섰다.

기자들이 특수부장 구호승에게 달려드는 광경을 뒤로 한 채로.


[사건 해결. 다시 시한부 유예. 보상 예정.]


황금문자의 알림이 사건 해결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


모든 검사들이 피하고 싶어하는 곳은 엉뚱하게도 검찰의 총본부다.


-뚜벅, 뚜벅, 뚜벅.


복도에 구둣발 소리가 요란하다.


오가는 이들이 입고 있는 옷은 모조리 정장.

한국에서 가장 엄숙한 권위가 지배하는 검사들의 성지.

대검찰청, 수도중앙지검보다는 나중에 지어져 좀 더 새 것처럼 보이는 건물.


그곳에 이색적인 백발머리 검사가 비서를 따라 걷고 있다.


“신입 검사시라고 들었는데, 벌써 이곳에 불려 오시는군요.”

“좋은 뜻으로 말씀하시는 것 같지는 않네요.”

“그야 여기 오는 건 둘 중 하나인 경우니 그렇죠.”


수도고검 비서, 장아영이 생긋 웃으며 일렀다.


“영전하거나, 아니면 사고를 제대로 쳤거나.”


대검찰청에는 검찰총장이나 대검 본부만 있는 게 아니다.


별도 건물이 없는 수도고등검찰청도 함께 입주해 있다.

바로 이곳이 나유신을 오늘 부른 장본인이 있는 장소다.

문득 장아영이 노크하자 문이 열렸다.


문 안에는 낯익은 얼굴히 유들유들하게 웃고 있었다.


“여, 오랜만이군. 나검.”

“3달밖에 안 됐습니다. 배지밀 차장님.”

“정 없는 소리 하긴. 이제는 대검 기획조정부장이니까 그렇게 불러 달라구. 후후.”


3달 만에 그야말로 기획통 요직에 간 남자, 배지밀이 히죽댈 때였다.


“농담 따먹기 할 시간이 남나 보군. 배 부장.”


아주 철두철미한 느낌이 목소리에 묻어 나오는 남자가 함께 앉아 있다.


나유신은 그쪽을 보다 눈에 이채를 띠었다.

유세풍, 수도고검 차장이다.

한때 나유신의 상관이었던 적도 있는 검사기도 했다.


물론 거의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긴 했지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차장님.”

“배 부장, 자네도 들어올 건가? 옛 상관으로서 인사시키고 싶으면 하고.”

“나 검사도 어른인데 알아서 해야죠. 그런 건.”


배지밀은 무책임한 태도로 웃다, 나유신에게 낮게 속삭였다.


“예의 바르게 잘하게. 알고 보면 엄한 분이거든.”


유세풍 얘기는 아닐 것이다.

사실 유세풍은 겉보기에도 엄해서 모를 수가 없다.

그러니까 후일 검찰총장 후보까지 올라가겠지만.


그러고 보니 나유신도 전생에서 참 어지간했다는 생각이, 스스로 들었다.

총장이 되었거나, 혹은 총장 후보였던 인물 아래서 일했음에도 제대로 출세하지 못했다.

확실히 전생은 잘못 살긴 했던 모양이다.


남들이 보기엔 지금이 더 엉망인 것처럼 보이겠지만 말이다.


“뭐가 마음에 드신다는 건지 모르겠군. 들어오게.”


문득 유세풍이 나유신에게 손짓하자, 나유신이 따라가며 물었다.


“유세풍 고검 차장님이시죠?”

“날 아나?”

“그야 유명하시잖습니까. 예전에 옷 로비 사건 주무 검사로 활약하셨던 걸로.”


한때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만들었던 로비 사건.

그 사건의 주무 검사였던 것이다.

하지만 유세풍은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흥, 옛날 얘기지. 게다가 그 사건, 결국 진짜는 못 잡았어.”


물론 아쉬워 하는 얼굴은 아니다.


어쨌거나 기획통들은 그림을 중시할 뿐, 집요하게 범인을 잡아야 한다는 집착이 적다.

유세풍도 마찬가지인지 옛날 처리 사건은 그저 그림 중 하나처럼 여기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지금 나유신이 만날 사람도 그럴까?


복도를 지나, 대기실에 들어와, 다시 사무실로 들어섰다.


-딸칵!


수도고검장의 방문이 열리자 사람 좋아 보이는 남자가 손짓했다.


“하하하! 우리 검찰을 들썩이는 신입이 오셨구만. 앉아.”


나유신은 중년 남자 앞에 앉자, 남자가 물었다.


“나 누군지 알지?”

“수도고검장님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 보통 이 자리는 곧 은퇴할 퇴물 자리라고 불리지. 일선에서 밀려나 재기수사 명령 같은 거나 결재하거든.”


수도고검장, 기획통의 정점인 장사성 검사다.


물론 장사성은 단순히 은퇴 예정자는 아니다.

현재 법무부 자리가 비지 않아 고검장으로 왔을 뿐, 언제든 총장이나 그 이상도 노릴 수 있는 고위검사다.

다만 나유신은 알고 있다.


장사성이 결국 총장이나 최고위에 오르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때다.

뭔가, 나유신 앞에서 반짝이기 시작했다.


나유신이 그게 뭔지 정확히 보지 못했을 때, 장사성이 말했다.


“하지만 우리 신입 하나 추천하는 건 가능하지. 어때, 배지밀 부장에게 얘기는 좀 들었나? 아니면 유세풍 차장에게?”

“직접적으로 들은 건 없습니다.”

“이런, 요즘 세대는 이렇게 직설적이라니까.”


일순, 장사성이 쓴웃음을 짓다 나유신을 응시했다.


“대검 [범정실]로 불러주지. 어떤가?”


그러니까, 지금 나유신은 검찰 내부 [기획통] 라인에게 정식 스카웃 제의를 받은 것이다.


범정실은 범죄정보관실의 준말이다.

경찰로 치면 경찰청 정보과의 업무를 하는 곳.

일견 범죄정보를 수집하는 부서처럼 들리지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국정원 정보판단실, 보안사 정보처, 경찰 국내정보과, 그리고 검찰 범정실.

이른바 한국의 사대 정보 수집처로 불리는 장소다.

정보란 곧 힘이고, 나아가 권력과 재력의 약점을 쥘 수 있는 원천이 된다.


특히 [민심 동향]까지 살핀다는 점에서 정치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곳에 부른다는 건 기획통의 엘리트 코스를 밟게 해준다는 뜻이다.

나유신은 미간을 좁히다 입을 열었다.


“전 아직 1년 차 검사입니다. 고검장님.”

“그래, 거기에 파견 신세로 특수부에 불려 와 있고. 젊을 때 고생은 사서 한다지만 이런 건 좋지 않아. 커리어를 잘 쌓아야 조직 생활이 쉬운 거야.”

“범죄정보실에 가면 사건 수사는 할 수 없습니다.”


나유신이 장사성을 정시하며 답했다.


“전 범죄를 직접 처단하고 싶습니다. 고검장님.”


이건 나유신이 무슨 엄청난 사명감이 있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나유신은 엘리트 코스를 밟다가 밀려났고, 죽었다.

전생의 죽음에 뒤얽힌 음모를 파헤치고, 복수를 하는 게 무의미하다고 치자.

허나 눈앞에서 쉴 새 없이 깜박이는 황금문자는 알린다.


달리지 않으면, 어차피 죽는다고.

그러니 범정실 같은 곳에 가서 정보수집이나 한가하게 할 시간이 없다.

장사성 고검장이 입맛을 다셨다.


“이거 아쉽군. 자네는 완전히 수재라 우리 과인 줄 알았는데.”

“죄송합니다.”

“아냐, 검사가 범죄 처단하고 싶다는데, 그게 뭐가 문제인가. 권력을 탐하거나 재물을 탐하는 게 문제지. 흐음, 일단 벌써 서수휘에게 찍힌 건 문제겠지만.”


장사성은 어깨를 으쓱이다 나유신에게 일렀다.


“충고 하나 하지. 기왕 강직하게 살 거면 라인 함부로 타지 마. 대신, 힘들어지면 나나 여기 유세풍 차장에게 연락하게. 한 번은 도와줄 수 있을 테니.”


나유신은 잠시 울컥하는 기분을 느꼈다.


분명 이런 제안을 거절하는 건 장사성에게도 기분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장사성은 충고와 함께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제안을 해준 거다.

아무리 나유신이 장사성의 미래가 썩 밝지 않음을 알아도, 이건 분명 호의다.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다 나유신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실로 간만에 진심을 담아서 한 말이었다.


***


하지만 진심이란 꼭 호의에 대해서만 튀어나오는 건 아니다.


“여기 무슨 낯짝으로 온 거지?”


대검찰청은 검찰의 총본산이다.


그러니 검찰 고위 간부가 대검에 들른다고 이상할 건 없다.

반대로 나유신처럼 눈에 잘 띄는 백발 애송이가 나타난 건 기묘한 일이다.

당연히 죽일 듯 쳐다보는 남자, 서수휘가 그냥 나유신이 눈에 띄어서 부른 건 아니다.


나유신은 고검 계단 앞, 마주친 서수휘를 향해 대꾸했다.


“장사성 고검장님이 부르셔서 고검에 다녀오는 길입니다.”

“너 같은 놈을 검사랍시고 부르다니 그 노친네가 미쳤군.”

“아직 50대이신 걸로 아는데요.”


사실 늙은이니 퇴물이니 하지만, 애초에 검찰 정년은 63세다.


또한 일반적으로 검사는 후배가 위로 치고 올라가면 퇴직하는 게 관례다.

하여 60대까지 근무하는 검사가 거의 없으니, 장사성도 당연히 50대일 수밖에 없다.

물론 나유신이 말대답을 했다는 것 자체가 서수휘에게는 분노할 일이다.


서수휘가 나유신에게 다가서 눈을 번뜩였다.


“내가 그 이상 나서면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했을 텐데. 우습게 들렸나? 나유신?”


나유신은 서수휘가 아닌 그 뒤를 살폈다.


서수휘의 참모, 진우량 검사가 비웃음을 머금은 게 보인다.

아마 탁도진을 날려버린 것 때문에 서수휘가 진노한 모양이다.

하지만 진우량 입장에서는 서수휘 아래서 경쟁하던 사람이 날아가, 기분이 좋아 보인다.


찰나, 뭔가 또 다시 반짝인다.

아까 장사성과 마주쳤을 때 반짝인 것과 흡사하다.

일순, 나유신은 서수휘를 노려보며 대꾸했다.


“차장님, 착각하지 마시죠.”

“뭐?”

“저는 표적수사를 한 게 아닙니다. 명령을 받고, 수사를 했더니, 범인이 검사였던 거죠.”


나유신은 그야말로 진심을 담아 서수휘를 향해 이를 갈았다.


“그게 서수휘 당신이나 진우량 검사가 아끼는 후배였든 아니든, 내가 알 바 아니란 말입니다. 애초에 후배 관리 잘하지 그랬습니까?”


서수휘는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이건 정론이다.

게다가 1년 차 검사에게 이런 모욕적인 말을 들을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온몸을 부들부들 떨던 서수휘가 나유신을 향해 짓씹듯 말했다.


“나유신, 넌 반드시 내가 끝장내 주마. 이 검찰에서 네가 뭘 하든 박살 내주겠다. 이 서수휘의 이름을 걸고.”


보통은 부들부들 떨겠지만 나유신은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어차피 검찰 내에서 박살 낸다고 해봐야, 인사발령 말고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그런데 서수휘가 사라지기 직전, 진우량이 나유신을 돌아보다 툭 쏘았다.


“죽을 길을 택했군. 백사.”


서수휘의 진노보다도 더욱 선뜩한 느낌이었다.

나유신은 잠시 소름이 돋는 기분을 느끼다 식은 땀을 닦았다.

전생에서 직속 상관은 주시평이었지만, 그 위에서 항상 무시무시한 존재감을 내뿜던 진우량이 기억난 탓이다.


잠시 서수휘와 진우량이 사라진 복도를 쳐다보고 있을 때였다.


“여, 거기. 백사인가?”


나유신은 시선을 돌리다 깜짝 놀랐다.


“좀 보자고. 기왕 대검 온 김에.”


대검 중수부 검사, 백경석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


대검 중수부는 대검찰청이 유일하게 갖고 있는 수사부서다.


-주르륵.


그렇기에 중수부장은 검찰총장의 칼이자, 검찰 최고의 검객이라 불린다.

조선제일검이라는 살짝 농담성 짙은 별명이 붙을 정도랄까.

하지만 정작 나유신 눈앞에 있는 중수부장은 난초를 닦을 뿐, 칼잡이처럼 보이진 않았다.


“흐음, 난이란 게 참 다루기가 어렵단 말이야. 승진할 때마다 받았더니, 너무 많기도 하고.”


중수부장, 이주혁이 난초를 닦아내다 고개도 돌리지 않고 물었다.


“구호승에게 얘기 들었나?”

“파견 발령의 원인 제공을 하셨다는 말씀, 들었습니다.”

“이런, 백 검사. 구 부장에게 설마 그렇게 말한 거야?”


중수부 백경석 검사가 우람한 어깨를 으쓱였다.


“구 부장 아시잖습니까. 보나마나 우리 철검회가 마음에 안 든 거겠죠.”

“우리가 맞긴 해? 정작 서수휘는 이 친구 죽이겠다고 난리인데.”

“아까도 같은 말을 하더군요. 하필 나검이 대검에 왔을 때 총장에게 불려온 모양입니다.”


그러자 이주혁이 흐릿한 웃음을 머금었다.


“그건 진짜 철검회가 아니지. 철검회면 철검회답게 수사만 알아야지. 하긴, 그 친구는 재벌은 피하고, 권력자는 넘기고, 언론인은 봐주며 살아왔으니.”


철검회.


철저히 수사만 하는 검사들의 모임.

검찰의 내부 사조직 중 가장 철두철미한 검사들로 모인 집단.

눈앞의 이주혁은 바로 철검회의 최고위 멤버 중 하나다.


문득 이주혁이 나유신에게 물었다.


“난 달라. 어때, 내 손 잡아보겠나?”


나유신은 미간을 좁혔다.


전생에서, 나유신이 부딪쳤던 철검회 멤버는 서수휘 하나다.

그런데 아무런 인연이 없었던 이주혁과 연결점이 생겼다.

뭔가 바뀐 게 확실하다.


이게, 어떤 작용을 할까?


“그럼, 중수부로 제가 가는 겁니까?”

“아니, 사실 자네는 아직 중수부 오기엔 깜이 모자라. 다만 자네 생각이 있다면 단계를 밟게 해줄 수 있지.”

“어떤 단계죠?”


이주혁 중수부장이 말했다.


“우선 특수부 정식 발령이지. 어떤가?”


그 순간 지금껏 반짝이던 것들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보상. 검찰조직 예측 정보. 중수부]


이것은, 조직도다.


검찰 내부의 조직이 일목요연하게 사다리표로 눈앞에 보인다.

오로지 표라면 사실 검찰 홈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겠지만 황금문자가 보여주는 것은 조금 다르다.

조직이 끊임없이 꿈틀대며, 과거와 미래 예측이 보인다.


한 순간, 또 다른 정보가 떴다.


[중수부, 폐지 예측.]


나유신은 동시에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어차피 사라질 조직이라면, 손을 잡아도 상관없으니까.


***


검찰조직도, 이것 자체는 엄밀히 말해 국민에게 공개되어 있다.


“하지만 고위급이 아닌 내부 인사 정보는 대외비지.”


나유신은 눈앞에 반짝이는 검찰 조직도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


수많은 인사 정보가 집중할 때마다 나타난다.

검찰인사.

물론 이프로스에 접속하면 현황 정도는 나유신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예측]은 불가능하다.


[검사 백희진, 수도남부지검 금융합수단 소속]

[검사 유태우, 수원지검 형사부장 발령 예정]

[검사 주필승, 부산지검 내부 이동 예정]


동기 백희진이나 주필승, 법무연수원 교수였던 유태우의 향후 인사 전망이다.

굳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도 조직도의 부분에 집중하면 보인다.

그때 나유신의 눈에 이색적인 정보가 떠올랐다.


[검사 이승은, 삼천포지청 발령]


주시평에게 성추행을 당했던 피해자, 이승은의 현황이다.


“역시나, 남쪽 끝으로 보내 버렸군. 잘 버틸지 모르겠는데.”


나유신은 혀를 찼다.


이승은은 엄연히 피해자다.

굳이 주시평을 날려버린 게 문제라면 나유신이나 백희진이 피해를 보는 게 맞다.

실제로 나유신은 검찰 내부에서 ‘노답’으로 불리는 [노담지검]에 부임하기도 했다.


하지만 주시평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다는 이유로 이승은도 찍힌 것이다.

시골도 검사가 필요하긴 하지만, 이건 노골적인 인사 불이익 처사다.

일종의 치욕을 당한 이승은이 과연 버틸까?


나유신이 고개를 젓다 다른 쪽을 보았다.


[대검 범죄정보실, 조직개편 가능성. 확대 예측]


기획통의 수장, 장사성이 나유신에게 권유했던 곳, 범정실.


괜히 장사성이 권했던 게 아닌 모양이다.

아마 조직 개편 후 확대를 한다는 내부 정보를 듣고 알려줬던 게 아닐까?

결국 눈앞에 보이는 정보는 [미래정보]인 셈이다.


“그래, 이게 진짜 대단한 거야. 조직개편 예측.”


나유신이 뚫어져라 조직도를 살피며 중얼거렸다.


“결국 검찰도 조직사회, 어떤 권한을 갖고 어떤 예산을 받고 어떤 사람을 모을 수 있는지가 관건이지. 그 모든 게 조직 구성에 달려 있어.”


모든 검사는 승진에 목을 맨다.


허나 단순히 직급이 높아지는 건, 검사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설사 높은 지위에 가더라도 자리만 차지하는 건 검사들에게 나가란 소리나 마찬가지다.

실권.


급여는 대형로펌보다 못하고, 사회적 명예는 법원보다 못하고, 워라밸은 기업 사내변보다 못한 신세.

그런 검찰에서 검사들이 미친 듯이 일하는 진짜 이유.

권력이다.


그런데 권력은 어디서 나올까?

법률이 부여하고 조직이 허락한 수사권과 기소권에서 나온다.

때문에 검찰 조직에 대해 예측한다는 건, 권력의 향배를 미리 알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조직이 변화할 걸 모두 안다? 이건.”


문득 나유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깐, 난 회귀역행을 했잖아. 그럼, 내가 대강 아는 것과 일치해야 하는데.”


사실 10년을 살았던 전생에서 나유신은 조직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눈앞에 밀어닥치는 일처리와 상사들의 눈치를 살피는 데 바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아주 큰 틀 정도는 기억한다.


그런데 어째 뭔가 다른 게 있다.


“조금, 다르군. 확정미래가 아니란 건가?”


나유신이 면밀히 어딘가 이상해 보이는 조직도를 살폈다.


“내가 회귀해서 [사고]를 치면서 바뀐 게 있다면, 주시평을 날려버린 것 정도일 텐데. 아!”


순간, 나유신은 눈을 크게 떴다.


“그래, 원래는 주시평이 서수휘와 함께 중앙지검으로 오지. 구호승 위로 서수휘가 오게 되고. 진우량이 특수 2부 부장이 되면서, 특수부가 3개 부서로 늘어나.”


결국 조직개편의 핵심은 두 곳이다.


대검찰청, 그리고 수도중앙지검.

이곳, 두 개의 기관에 검찰 핵심 부서가 몰려 있다.

나아가 조직개편이 이뤄질 경우 초점이 맞춰지는 장소기도 하다.


여기를 제외하면 고검을 새로 설치하거나, 혹은 남부지검의 합수단이 개편되는 정도다.

그런데 수도중앙지검이 달랐다.

분명히 특수부가 이 무렵 많아져야 하는데, 적다.


나유신이 주시평을 날려버린 나비효과가 일으킨 결과일까?


“그런데, 이게 중지된 거군. 그렇다면.”


뚫어져라 조직도를 보던 나유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래가, 바뀔 수 있다는 거야.”


혹은 애초에 지금 살고 있는 시간이 나유신의 현실일지도 모른다.

다만 나유신이 겪었던 [전생]과 알고 있는 미래가 일치하는 것도 있다.

문득 조직도를 보다 나유신이 입맛을 다셨다.


“그런데, 문제는 저건데.”


하필 나유신에게 손을 뻗은 곳이 흐릿하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 예측.]


당장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깜박이면서.


***


간만에 나유신이 저녁식사를 맞이했다.


“원래 사고뭉치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던데, 그 말이 나검만큼 들어맞는 친구도 없군. 참.”


전생이든 현생이든, 나유신은 자발적으로 식사 대접을 해본 적이 별로 없다.


원체 공부만 하는 인생이었고, 특히 전생에서는 회식에 끌려다녔을 뿐이다.

반면 현재는 워낙 사고를 많이 친 탓에, 감히 회식에 부르는 사람이 없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번 저녁식사가 나유신이 가진 첫 회식일지도 모른다.


나유신은 눈앞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중년 검사를 향해 웃으며 물었다.


“될성부른 나무 아닙니까, 원래는?”

“거울 좀 보지? 자네가 어딜 봐서 멀쩡한 나무인가? 굳이 비유하자면 아마존의 사람 잡아먹는 식인나무 같군.”

“제가 검사들 많이 잡아먹긴 했죠.”


잠시 백발을 긁적이다 나유신이 고개를 숙였다.


“수원지검 가시기 전에 인사나 할까 해서 들렀습니다.”


바로 유태우 검사, 법무연수원에서 ‘신세’를 졌던 남자다.


지극히 한정된 인간관계를 가진 나유신에게 유태우 검사는 일종의 스승이다.

심지어 로스쿨 지도교수조차도 스승이라 생각않는 나유신이니 더욱 그렇다.

그런데 유태우 검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 알았나? 아직 발령 전인데? 설마 나검 자네가 검찰 내부에 소식통이 있을 것 같진 않고.”

“저도 나름 동기들이 있습니다만.”

“하! 법무연수원에서 교수였던 날 너무 무시하는군. 자네와 친한 동기래 봐야 백희진 검사말고 또 있나? 백 검사는 입이 그리 가볍지 않을 텐데?”


어째 잘 아는 것처럼 말하는 게 이상해 나유신이 되물었다.


“잘 아시는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그야 백 검사 부친을 아니까.”

“부친이시라면.”


그러자 유태우가 눈썹을 치뜨며 대꾸했다.


“백찬석 수원법원장 아닌가? 설마 자네 백 검사 집안 모르나? 나름 5대 법조 명문가인데.”


실은 처음 안 얘기다.


일단 명문이니 집안 배경이니 하는 건, 나유신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또한 백희진과 다른 얘기는 해도 집안 얘기를 한 기억은 없기도 하다.

한데 법조명문 가문이었다니.


주시평을 날려버리고도 남부지검에 안착한 게 어쩐지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그랬던 것 같기도 하군요.”

“이러니까 자네가 친구가 없는 거야. 그건 그렇고 굳이 인사까지 올 건 없었을 텐데. 수원이면 노담이랑 가깝기도 하고.”

“제안을 하나 받았습니다.”


나유신은 호흡을 가다듬다 본론을 꺼냈다.


“이주혁 중수부장이 특수부에 꽂아 주겠다고 하더군요.”


유태우는 눈을 가늘게 떴다.


“철검회가 손을 뻗었다? 놀랍군. 하긴 꼴통 새끼들, 자네랑 비슷한 점이 있긴 해.”

“검사를 치진 않겠죠.”

“뭐, 수틀리면 들이받긴 많이 들이받는 놈들이야. 그거 아나? 철검회 멤버들이 작당해서 총장에게 사퇴 요구했던 거?”


문득 유태우가 입가를 비틀며 일렀다.


“중수부장도 그때 총장 밀어낸 공적으로 된 거야. 보통 놈은 아니지. 라인 탈 거면 조심해라.”


현시점에서도 과거에 일어났던 검찰 내부 대형 사건 중 하나다.


검찰총장이 사건 때문에 문제를 일으켰을 때다.

보통 검찰은 검사동일체 원칙에 따라 똘똘 뭉쳐 외부 압력에 저항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당시에는 기이하게도 주요 보직 검사들이 뭉쳐 총장을 공격했다.


왜?

여러 설이 있다.

당시 총장이 수도법대가 아니라 고신법대라 그랬다는 게 대표적인 추측 중 하나다.


어느 쪽이든 결국 총장은 사퇴했다.

아마 그 당시 검찰 내부 권력이 격변했던 모양이다.

잠시 어렴풋이 아는 그 사실을 떠올리던 나유신이 다시 물었다.


“중수부가 없어질 가능성은 없을까요?”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대검에 수사부서는 하나 밖에 없고, 언제든 없어질 수 있는 조직 아닙니까?”


사실 나유신은 왜 중수부가 전생에서 없어졌는지 모른다.


죽어라 일하다 보니 갑자기 어느 날 폐지 발표가 났다.

어차피 중수부에 간 적도 없었기 때문에 나유신 입장에선 별 상관 없는 일이기도 했다.

검찰의 내부 분위기는 그야말로 난리 그 자체였지만.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없어졌다는 거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유태우 검사가 빤히 나유신을 보다 헛웃음을 터뜨렸다.


“아주 신선한 관점이군. 보통은 하나밖에 없으니, 더욱 총장이 애지중지할 거라 여길 텐데.”

“틀렸습니까?”

“놀랍게도 과정은 틀리지만 결과는 맞을 수도 있겠어.”


유태우는 혀를 차다 차분히 설명했다.


“정치권에서 중수부를 아주 불편해하거든. 아직은 정권을 들이받진 않았으니 내버려 두는 것 같지만. 이주혁이라면, 흐음, 들이받을 수도 있지.”


그러니까 정치적 사건에 휘말렸단 얘기다.

만약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음식에 젓가락 한 점 안 댄 채로, 나유신이 다급히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만약 살릴 수 있다면 살려야 할까요?”


유태우가 눈썹을 치떴다.


“그걸 왜 자네가 걱정해?”

“중수부장이 절 찍었으니까요.”

“역시나 사고뭉치 같은 생각이군. 자네 같은 피래미가 윗선 하나 날아갔다고 밀릴 거 같나? 하긴 자네는 그냥 피래미가 아니라 검사 잡아먹은 백사지?”


유태우는 놀리듯 말하다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글쎄, 검찰 조직만 생각하면 중수부가 있는 게 낫지. 하지만 사건에 따라 틀리지 않겠나?”


나유신은 눈을 깜박이다 물었다.


“사건이라구요?”

“나검, 세상에 그냥 일어나는 일은 없어. 누군가 결단을 내리든, 사고가 발생하든, 혹은 뭔가 엄청난 스캔들이 있든. 중수부가 날아간다면 그런 사건의 여파야.”

“그 사건이 어떤 종류인가에 따라 다를 거란 겁니까?”


다시, 술잔을 들이키며 유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만일 용서받을 수 없는 사건이라면, 아무리 중수부라도 폐지되는 게 맞지!”


순간, 술잔이 내리치는 소리가 명징하게 울렸다.


-딱!


판결이라도 내리는 것처럼.


***


원룸으로 돌아오는 길, 나유신은 거리를 걷다 중얼거렸다.


“그래, 결국 사건이다.”


이유, 모른다.

결과, 안다.

그럼 그 과정을 보아야 결정할 수 있다.


“이 예측 정보가 있다면, 미리 대비할 수 있지. 반면에.”


나유신은 [의식]하자 떠오른 황금문자의 조직도를 응시했다.


“폐지를 가속화 시킬 수도 있고.”


지금껏 나유신은 특별한 의도를 품고 사건을 해결하지 않았다.

시한부 판정이 내려지고, 닥치니, 부딪쳤을 뿐이다.

중수부 폐지라 해도 다를 바 없다.


그러니, 일단 부딪쳐봐야 알 수 있다.


“어디, 중수부장이 만든 판에 올라가 볼까?”


순간 황금문자가 다시 떴다.


[나유신, 수도중앙지검 특수부 발령 예정.]


이 순간, 나유신의 특수부 정식 발령이 결정된 것이다.


작가의말

* 이제 나유신의 특수부 정식 발령 차례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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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56) 새로운 검찰총장이 백발공적을 보호한다 +10 24.09.12 4,834 107 30쪽
56 (55) 총장의 자백으로 3조 폰지 사기를 부수다 +22 24.09.09 5,142 130 28쪽
55 (54) XBC 폭로로 현직 총장 사모를 붙잡다 +18 24.09.07 5,119 121 28쪽
54 (53) 황금금강석 멤버들은 그린벨트에 3조를 투자한다 +12 24.09.04 5,448 108 28쪽
53 (52) 총장 사모님이 피라미드 거물이다 +20 24.08.30 5,787 114 28쪽
52 (51) 3조짜리 피라미드 조직을 잡아보자 +18 24.08.29 5,959 126 29쪽
51 (50) 나유신이 첫 휴가지에서 상속녀를 보다 +26 24.08.24 6,587 139 31쪽
50 (49) 초보형 전시안으로 사채왕을 발견하다 +15 24.08.22 6,535 153 30쪽
49 (48) 회장 등극식에서 대법관을 이용해 진범을 잡다 +19 24.08.20 6,660 163 21쪽
48 (47) 재벌 회장이 되게 해주세요 +25 24.08.18 6,752 154 34쪽
47 (46) 특수부 폭력이 조폭 진범보다 위다 +20 24.08.14 6,953 167 34쪽
46 (45) 강앤함과 월야 재벌가의 동상이몽을 털어라 +12 24.08.12 7,103 154 24쪽
45 (44) 월야그룹 살인사건을 만나다 +12 24.08.08 7,752 151 25쪽
44 (43) 나유신의 팀을 수도대 동문회에서 완성하다 +14 24.08.06 8,144 166 35쪽
43 (42) 백사여, 노담에서 다시 시작해라 +20 24.08.02 8,276 176 29쪽
42 (41) 시한부 연장권과 함께 중수부가 폐지되다 +20 24.07.31 8,109 193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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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8) 진짜는 미래살인 배후 사채왕이다 +16 24.07.26 7,969 188 21쪽
38 (37) 금수저 비밀 정보로 스캔들 범인부터 잡다 +19 24.07.24 8,006 184 32쪽
37 (36) 이건 중수부의 운명이 걸린 사건이다 +14 24.07.19 8,127 178 30쪽
36 (35) 위치 추적 보상과 함께 서울시장 스캔들을 만나다 +22 24.07.17 8,422 186 23쪽
35 (34) 진짜 마약범을 잡고 금수저 변호사와 손잡다 +27 24.07.15 8,367 195 22쪽
34 (33) 골드스컬 클럽을 함정으로 일망타진하다 +17 24.07.14 8,306 190 23쪽
33 (32) 조기유학 금수저 학폭이 사건 진상이다 +16 24.07.10 8,383 182 23쪽
32 (31) 철벽의 성을 대규모 교사 시위로 넘어볼까 +13 24.07.08 8,321 187 22쪽
31 (30) 학교폭력 연쇄 자살사건이 터졌다 +15 24.07.05 8,709 182 22쪽
30 (29) 한국 재계를 뒤엎을 진짜 거물을 만나다 +21 24.07.03 9,008 194 24쪽
29 (28) 노동 살해 협박으로 진범을 잡다 +16 24.07.01 8,856 201 22쪽
28 (27) 솔라코인 전관 법무팀의 방어를 뚫어라 +15 24.06.27 9,043 196 21쪽
27 (26) 특수부 첫 사건은 1조원 분식회계다 +17 24.06.26 9,385 198 22쪽
» (25) 중수부장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받다 +15 24.06.24 9,590 201 35쪽
25 (24) 백발이를 죽인 자에게 진짜 복수를 해보자 +16 24.06.19 9,315 198 34쪽
24 (23) 백사가 또 검사를 잡았다 +22 24.06.18 9,397 200 22쪽
23 (22) 특수부식 예단수사로 마약통관범을 잡아라 +11 24.06.15 9,441 197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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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0) 첫 기자회견과 함께 위수증 5백억 코인이 남다 +19 24.06.07 10,211 224 36쪽
20 (19) 5초 예지로 폭발 속 범인을 잡다 +14 24.06.06 10,104 221 24쪽
19 (18) 감옥에 보낼 놈은 내가 고른다 +14 24.06.04 10,091 218 18쪽
18 (17) 1천억 비트코인 사건을 5초 예지로 파헤치자 +14 24.05.31 11,100 219 31쪽
17 (16) 나를 건드리면 검찰총장 예정자도 가만 안 둔다 +25 24.05.29 10,979 233 26쪽
16 (15) 독사를 건드리면 제왕도 문다 +20 24.05.27 11,055 237 30쪽
15 (14) 공판부 땜방으로 백발검사를 보내라 +10 24.05.24 11,550 223 30쪽
14 (13) 언론비리 일망타진으로 신체감정 보상을 받다 +11 24.05.23 12,155 230 31쪽
13 (12) 특활비 별건수사로 무전취식 기자를 잡자 +12 24.05.21 12,245 237 21쪽
12 (11) 사고뭉치에게는 법카부터 먹여줘라 +13 24.05.20 13,451 243 21쪽
11 (10) 나유신이 주가조작 일당을 함정수사로 잡았다 +17 24.05.20 13,516 262 21쪽
10 (9) 오풍제지 그래핀 사기를 경찰공조로 잡는다 +16 24.05.18 14,348 257 25쪽
9 (8) 정오판정으로 오풍제지 주가조작을 발견하다 +16 24.05.17 14,706 276 15쪽
8 (7) 선배가 장애물이면 부수고 해결한다 +15 24.05.14 15,099 280 22쪽
7 (6) 상태창의 보상은 놓칠 수 없다 +23 24.05.12 15,957 296 27쪽
6 (5) 의원 하나 잡고 시작하자 +20 24.05.11 15,732 290 14쪽
5 (4) 신입 수석검사가 꼴통이래 +15 24.05.10 16,983 307 15쪽
4 (3) 범인을 잡으니 시한부 연장 +16 24.05.09 18,129 292 11쪽
3 (2) 우선 범인부터 잡고 죽자 +17 24.05.08 19,693 312 13쪽
2 (1) 백발 신입검사 나유신 +25 24.05.08 22,926 354 11쪽
1 프롤로그 : 시한부 상태창이 생겼다 +42 24.05.08 30,120 416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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