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검사는 거물이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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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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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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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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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8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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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23) 백사가 또 검사를 잡았다

DUMMY

검사란 한 번 물면 놓지 않는 [사냥개]와 흡사한 점이 있다.


“그러니까, 탁도진이 범인이다?”


염민아는 그중에서도 뛰어난 사냥개가 확실하다.


아주 흥미로운 얼굴로 나유신을 불러세워 다그치는 모습만 봐도 안다.

사건 발생 자체가 재미있다는 듯한 얼굴이다.

그저 공부만 잘하면 되는 판사나 공감 능력이 가끔 필요한 변호사와 달리, 검사가 가져야 하는 재능 중 하나다.


사건 사고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일을 벌리는 데다 싸움을 주저하지 않는 성격.

이런 특징이 없다면 유능한 검사가 되기 어렵다.

일단 검사적 성격은 확실한 염민아 앞에서, 전생에선 그저 백면서생이었던 나유신이 입맛을 다셨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죠.”

“현직 검사를 범죄자 취급하다니, 너 정말 안 좋은 버릇이야.”

“그럼 그냥 입 다물어 주시든가요. 상부에 보고는 안 하실 거죠?”


나유신이 눈을 굴리며 묻자 염민아가 킥킥 웃었다.


“왜 내가 입만 다물어야 하지? 이런 재밌는 일, 그것도 책임은 나검만 지게 될 사건을 구경만 하라고?”


나유신은 눈을 크게 떴다.


지금 염민아는 두 가지 조건을 말했다.

하나, 이 사건에 끼어들게 해달라.

둘, 대신에 책임은 나유신이 혼자 져라.


어쨌든 증거도 없이 검사를 의심하는 일이다.

민혁기 말대로 나유신은 초장부터 검사 둘을 [담그고] 검찰 생활을 시작했다.

결과가 나와도 문제인데, 결과조차 나오지 않으면 그날로 목이 달아날 것이다.


물론 진짜로 [목]이 달아날지도 모를 시한부 인생, 나유신은 두렵지 않다.


“어, 물론 제가 책임지긴 하죠.”

“그럼 됐어. 하지만 증거를 못 찾을 건데. 어떻게 할 거야? 잠복수사?”

“마약이 언제 들어올 줄 알고 기다려요? 그럴 시간은 없어요.”


이미 시한부 기간은 벌써 절반이 넘어갔다.


파견 발령, 특수부 적응, 출장 탐색.

이것만으로도 2주가 넘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도과될 경우 혹시 연장 찬스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시험해 보고 싶지는 않다.


나유신의 타들어 가는 속도 모르는 염민아는 아주 여유롭게 물었다.


“그럼, 어떻게 잡을 건데? 증거도 없어. 정황도 불충분해. 통신이든 컴퓨터든 털려면 압수수색 영장이란 게 필요하단 말야. 설마, 불법으로 그냥 털려는 건 아니지?”


이게 증거가 없을 때 수사당국이 부딪치는 문제다.


증거가 없으면 영장이 나오지 않는다.

영장이 나오지 않으면 적법한 절차로 증거를 입수할 수 없다.

일종의 뫼비우스 띠 같은 상황인데, 보통은 검찰의 경우 달리 해결한다.


그냥 정황으로 상황을 재구성한 후, 법원을 압박해 영장을 받아낸다.

다음, 무차별 압색을 통해 증거를 찾아낸다.

한데 이런 통상적인 검찰 수사방식이 통하지 않을 때가 있다.


권력자, 재벌, 그리고 검사가 용의자일 때다.

어쨌든 탁도진은 관세청으로 파견 발령날 정도로 제법 잘 나가는 검사다.

그런데 이런 출세 중인 검사를 증거도 없이 압수수색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유도해야죠.”

“뭘?”

“스스로 자백하거나, 아니면 섣부르게 움직이도록.”


그러나 지금껏 나유신은 증거가 있어서 범인을 잡은 적이 없다.


따지고 보면 3선 중진 의원을 잡을 때가 더 위험했다.

그때를 생각해 보면, 현재 나유신이 가진 강점은 하나다.

상대는 나유신을 아직 모르고, 준비하기 전에 나유신이 먼저 기습할 거란 사실이다.


이를테면, [함정]으로.


“함정수사? 흐음, 생각해 놓은 건 있고?”

“아뇨. 이제부터 생각해야 하는데.”

“대책 없구나, 정말.”


염민아가 킥킥 웃다 눈을 빛냈다.


“그럼, 이건 경험많은 내가 도와주지.”


어쩐지 묘하게 사고칠 것 같은 눈빛이다.

나유신을 보는 민혁기나 강시영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아주 불안한 기분으로 나유신이 물었다.


“무슨 경험요? 설마 함정수사 경험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거 사실, 위법일 수도.”

“난 마약부에도, 특수부에도 있었어. 거기선 함정수사가 기본 수사방침이야.”

“범의유발형으로 수사하는 게 일반적이었다는 소리는 아니죠?”


그런데 염민아가 부정하지 않은 채 대꾸했다.


“기회제공과 범의유발은 종이 한 장 차이야, 나검. 그럼, 불충분한 재료로 불을 질러볼까?”


이미 나유신도 함정수사라면 주시평을 날릴 때부터 기획했다.


그렇지만 모든 형법 교과서가 지적하는 것처럼, [범의유발형] 함정수사는 위법이다.

문제는 이 [마약통관] 문제는 기회제공으로 잡기 어렵단 점이다.

일단 마약이 세관을 통과한다는 [범죄] 자체가 일종의 [천수답]이다.


마약은 한국에서 거의 생산되지 않는다.

때문에 해외에서 수입되어야 한다.

그래서 수입과정에서 공항이나 항구를 몰래 통과할 필요가 있다.


아마도 그 때문에 [세관]이 범인이라 황금문자가 지목했을 것이다.

그런데 [통과]를 하려면 마약 수입업자들이 마약을 들고 들어와야 한다.

그러니 마약 통과 기회가 언제 올지 몰라 계속 기다려야 하는 문제가 있다.


그럼 범의유발형으로 처리하는 건 뭘까?

마약 복용 범죄자나 조직을 잡는다면, 이를테면 [매수자]로 위장해 추적하는 식이다.

통관 쪽이라면 마약 밀수자로 위장해야 하는 걸까?


어쩐지 더욱 불안해진 기분으로 나유신이 다시 물었다.


“어떻게 지르실 건데요? 지금 민혁기 계장님이 조사한 것만 가지고는 불지르기 어려워요. 설마 마약 밀수범이라도 되자구요?”

“할 수 있어. 마약밀수범 따위 될 필요도 없고.”

“예?”


아주 간단하다는 듯, 염민아가 미소를 머금었다.


“기사로 터뜨리면 돼.”


일단 처음 해보는 것 같지는 않다.


***


이른바 검언유착, 그러니까 검찰과 언론의 유착은 오랜 사법비리 중 하나다.


“와, 이 언니. 진짜 대책 없네. 지금 나보고 이런 정황만 갖고 기사를 쓰라구요?”


물론 노담시민뉴스 서나래는 돈 같은 건 받지 않는다.


허나 특종을 검사에게서 받는다는 점에선, 서나래도 검언유착에서 자유롭지 않다.

다만 지역 언론 단위에서는 특종을 받아봤자 그게 그거였다.

한데 이번에는 단위가 너무 크고, 증거는 없다.


가볍게 커피를 마시며 염민아가 답했다.


“노담시민뉴스에서 처음 있는 일도 아니구. 뭘 그렇게 놀라? 서나래 기자님?”

“이보세요, 염 검사님. 그거야 소소한 일이구요. 이건 마약에, 관세청에, 검사까지 걸린 일이잖아요?”

“왜, 무서워?”


서나래는 낯을 찌푸렸다.


“아니, 그러니까 명확한 증거가 필요하다구요. 이런 정황만 갖고, 그것도 부정확한 정황으로 어떻게 기사를 터뜨려요?”


카페 안에서 주위에 듣는 사람이 있을까봐, 나유신은 벌벌 떨다 미간을 좁혔다.

지금껏 나유신에게 당했던 주변 사람들 마음이 이해가는 기분이다.

그렇지만 여기까지 와서 멈출 수는 없다.


나유신이 서나래를 향해 말했다.


“원래 날 보도할 때는 정황만으로 보도했잖아요, 서 기자님.”


서나래가 눈을 굴렸다.

바로 검사의 자격 기사 얘기다.

그때는 사실 증거 없이 정황만으로 쓰긴 했다.


“아니, 기사로 안 나갔잖아요?”

“나는 초임 검사니까 만만해서 쉽고, 탁도진 검사는 경력이 있으니까 무섭고?”

“그런 문제가 아니라구요!”


하지만 나유신은 서나래를 다그치며 슬쩍 흘렸다.


“아니, 그런 문제 맞아요. 왜냐면 우리가, 아니 내가 내달라는 기사는 어디까지나 ‘의혹보도’니까.”


물론 언론보도도 명예훼손죄 대상이다.

또한 명예훼손은 의혹을 보도할 경우 오히려 더욱 위험한 죄책이다.

허나 거기까지 굳이 설명하지 않으면,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조금 안전해 보인다.


확정보도보다 의혹 제기는 약해 보이니까.


“의혹만? 어떻게 말이죠?”

“이 보도 하나로 탁도진을 날려버릴 수는 없어요.”

“당연하죠.”


나유신은 서나래를 열띤 어조로 유혹했다.


“하지만 탁도진이 깜짝 놀라게 만들 수는 있죠. 어쨌든 검사는 공부만 하던 인간들이고, 범죄를 저지를 때도 항상 티를 내요. 망설이는 티를.”


거짓말은 90프로의 진실에 10프로의 거짓을 섞어야 한다고 한다.


검사는 사실 공부와 시험으로 고위직에 가는 인종들 중, 가장 전투적인 종자다.

때문에 백면서생처럼 보이는 인간들도 부딪쳐 보면 투쟁심이 엄청나다.

하지만 마약 밀수라는 범죄는 너무 중대해서, 탁도진도 늘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러니 조금만 눌러줘도 난리가 날 가능성은 높다.


“탁도진은 전형적인 검사죠. 흔적을 드러낼 겁니다.”


가만히 나유신을 보던 서나래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대신, 명예훼손 고소당하면 막아줘야 해요.”


나유신은 염민아를 돌아보았다.

이건, 염민아만 확답을 줄 수 있는 일이다.

왜냐면 초임 검사에 불과한 나유신이 검찰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으니까.


염민아가 어깨를 으쓱였다.


“콜.”


이제 레이스는 시작되었다.


***


본래 싸움이 시작되기 전이 가장 평화롭다고 한다.


“흐음, 커피향이 좋군. 오늘도 멋진 하루야.”


인천세관 마약조사과장 명패 앞, 탁도진이 커피를 우아하게 마셨다.


옛날 같으면 믹스 커피나 마셔야 했을 것이다.

검사월급은 뻔하고, 그나마 상당부분이 모자란 수사비를 벌충하는 데 쓰여진다.

특활비니 하는 것들은 대부분 부장급의 차지.


아무리 잘 나가는 검사 라인을 탔어도, 업무는 많고 고단하던 나날이었다.


“검찰에 있으면 꿈도 꿀 수 없는 나날이지. 맨날 야근 아니면 밤샘인데. 후후.”


문득 탁도진이 미간을 찡그렸다.


“그런데, 이 멋진 생활을 흔들려는 놈이 나타났단 말이지.”


백발 검사, 나유신.


물론 명품을 두른 염민아도 있었지만, 나유신의 인상이 워낙 강렬해 잊었다.

또한 나유신이라면 [서수휘 사단]의 일원, 주시평을 날려버린 놈이기도 하다.

아직 냄새를 맡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불안하다.


“절대 내버려 둘 수 없어. 아무래도 본청에 좀 손을 써야겠는데.”


어딘가 멀리 보낼 궁리를 하며 탁도진이 고심할 찰나.


-쾅!


사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들어온 남자는 기계적인 태도의 공무원, 김시관이다.

김시관 주무관이 달려와 기계적으로 외쳤다.


“검사님, 기사 보셨습니까?”

“깜짝이야. 김시관 주무관. 과장님이라고 불러요. 내 직책이 있는데.”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문득 김시관이 보여준 스마트폰 화면에 이색적인 글자가 보였다.


-〈단독 특종. 검사의 두 얼굴. 관세청 마약단속 검사는 뒷돈 받는 빌딩부자?〉


눈을 깜박인다.


다시, 비비고 본다.

그렇지만 글자는 달라지지 않는다.

관세청, 마약단속, 빌딩부자.


이게 누구를 의미하는 지는 아주 명확하다.


“이게 뭐야! 말도 안 되는 음해가!”


탁도진은 비명을 질렀다.


-따르릉!


그 순간 전화기가 울렸다.

반사적으로 탁도진은 전화기를 받았다.

대체 누가 이런 상황에서 탁도진에게 연락 온 걸까?


“전화 바꿨습니다.”


기자라면 작살내 주겠다고 탁도진이 벼를 순간.


[대검 감사부입니다. 관세청 파견 검사, 탁도진 검사님? 본청에 한 번 출두해 주셔야겠습니다.]


지옥 같은 경고가 다다랐다.

그간 평화롭고 풍족했던 탁도진의 시간이 끝나는 소리와 함께.


***


어두운 공항 세관 창고에 그림자가 비춘다.


-쿠르릉.


창고에는 컨베이어 밸트가 가득하다.


밤이라 움직이지 않지만 새벽이 오면 바로 움직이기 시작할 물건들.

하늘로 바다를 건너 한국 땅에 들어올 국제선 승객들의 보관물품이다.

이곳은 보안구역이라 함부로 들어오면 안 되지만, [비상키]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문득 앞서가던 남자 중 하나가 기계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검사님. 지금, 분위기도 안 좋은데, 꼭 이래야 합니까?”


바로 마약조사과 공무원, 김시관이다.

그 뒤를 따르던 이들도 움찔거렸다.

하지만 [검사님], 그러니까 탁도진은 오히려 김시관을 다그쳤다.


“내가 의심받고 있어. 절대 이런 일 없을 거라고 했잖아! 그런데 왜!”

“아무도 안 믿을 찌라시 기사입니다. 그냥 무시하시면.”

“벌써부터 법무부 감사실에서 연락이 오고 있다고. 최근 구입한 부인 명의 빌딩, 자금출처가 어디냐고.”


탁도진은 이를 갈며 단언했다.


“들키는 건 시간 문제야. 그 전에 분위기를 반전시켜야 해. 그러자면 [실적]이 필요하다고. 대형 실적이!”


그러니까, 당연히 파견 2년 차인 탁도진이 이 모든 범죄를 시작한 것은 아니다.


국제공항 마약 밀수.

첫 시작은 마약조직의 접촉이었다.

누구에게?


당연히 관세청 공무원들이다.

유혹, 협박, 그리고 회유.

꽤 오랜 과정을 거쳐 마약조직은 관세청 공무원들을 녹이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그 무렵 검찰에서 탁도진을 파견했다.

냄새를 맡은 걸까?

하지만 탁도진은 수사할 기색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뒷돈을 찾는 데 관심 있었다.


그때서야 마약조사과 공무원들은 알았다.

사실 탁도진이 인천까지 내려온 이유는 금융 사기 수사에서 뒷돈을 받다, 걸려서라는 사실을.

한 번 뇌물을 받은 사람은 다시 받기도 쉽다.


물론 탁도진도 마약 밀수라는 얘기에는 기겁했다.

그렇지만 마약 조직도, 공무원들도 아주 끈질겼다.

결국 탁도진은 넘어갔고 그 대신 [실적]으로 눈가림하게 되었다.


실질적인 밀수 통관 지휘자, 김시관이 동료들에게 지시했다.


“작업 시작해. 다들, 하던 데로, 침착하게.”


마약조사과, 통관정보과, 물류감시과에 흩어진 동료들.

각기 세관의 전문가인 공무원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아주 익숙하고 은밀하게.


-키릭, 쿵.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단연 감시체계를 무력화하는 일이다.


“CCTV 화면 정지 및 교체.”

“경보기 정지했습니다. 30분 주어집니다. 자, 빨리빨리.”

“준비된 마약은?”


결국 감시의 시작은 [눈]이다.


사람의 눈을 대신해 창고와 컨베이어 밸트를 상시 감시하는 것은 두 가지.

CCTV와 적외선 경보기다.

물론 기록이 남지만 그 기록을 담당하는 이들도 공무원들이니, 합심하면 쉽게 대처할 수 있다.


문제는 [실적]을 내기 위한 재료.

마약이다.

문득 물류감시과 소속 공무원, 안성실이 투덜대며 말했다.


“2달 전에 통과시킬 때 빼돌려 둔 물량 있어요. 크, 이거 팔면 장난 아닐 텐데.”


당연히 마약 조직이 안다면 경을 칠 일이다.

그러나 공무원들은 이미 범죄에 손을 댄 몸.

범죄자 조직의 물건을 횡령하는 일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문득 탁도진이 그 모습을 보다 닦달했다.


“닥치고, 빨리 넣어 놔. 마약탐지견들은 내일 준비시킬 수 있나?”

“그 녀석들이 너무 빨리 맡아도 문제인데, 깊게 넣어 놓을까요?”

“상관없어. 다만 너무 싸보이는 짐보다 비싼 화물이 좋아.”


탁도진은 눈을 번뜩이며 주위를 둘러 보았다.


“결국 마약 갖고 들어오는 놈들 다수는 유학파니까.”


밀수는 탁도진의 전문 분야가 아니다.


그러나 마약 상습복용자나 마약조직을 제어하는 건 탁도진이 소싯적 해본 일이다.

사실은 공무원들을 마약조직이 함부로 건드릴 수 없게 된 것도 탁도진의 영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적당한 희생자를 찾아 마약을 넣고, 다시 다음 날 적발한다.


이게 그간 탁도진과 마약조사과가 희대의 실적을 내온 비결.

현재 진행 중인 작업의 요체다.

만약 또 다시 실적을 낸다면 그것만으로도 검찰청에선 눈 감고 지나가 줄 것이다.


어쨌든 범죄 적발이야말로 검찰의 알파요 오메가니까.


“자, 됐다!”


안성실의 탄성과 함께 작업이 끝났다.


“이제 내일 제보를 받았다고 하고 들쑤시면 됩니다.”

“고생했네. 내일 [게임] 한 판 벌이고, 회식하지.”

“크크크, 간만에 회집 가는 겁니까.”


김시관과 공무원들이 떠들며 자리를 뜨려 했다.


이제 CCTV와 감시경보기를 돌려 놓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면 된다.

아무런 문제 없이 이번에도 넘어갈 것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그때다.


-딸칵!


갑자기 어두운 세관 창고가 눈부신 조명으로 가득찼다.


“으윽, 눈부셔!”

“뭐, 뭐야! 갑자기 왜 조명이!”

“어, 저거 뭡니까?”


탁도진, 김시관, 안성실이 외칠 찰나, 창고 위편 [감독실]에도 조명이 켜졌다.


-차르륵!


감독실 창문에 화려한 패션의 검사가 웃으며 서 있었다.


“어머, 이게 누구셔? 검사님이네? 어쩌다 이런 곳에서 뵙게 되죠?”


바로 염민아 검사다.


탁도진은 머리가 새하얗게 되는 기분을 느꼈다.

단순히 조사를 나온 것도 아니고, 하필 마약을 쑤셔넣는 와중에 나타났다.

이건 절대 우연이 아니다.


그럼에도 탁도진은 악을 쓰며 외쳤다.


“야, 야간에 허락받지 않은 건물에 침입하다니! 이거 건조물침입죄인 거 모르시오?”

“그러는 당신은?”

“나, 나야, 마약조사과니까 응당 합법적인 조사를!”


그러자 염민아가 옆으로 소개하듯 손을 내밀었다.


“그럼, 이 카메라에 대고도 같은 말 하실 수 있죠?”


문득 휴대용 카메라가 창문 밖에 들렸다.

카메라를 든 사람은 역시, 여자다.

노담시민뉴스 기자, 서나래가 손을 흔들며 카메라를 비춰 보였다.


“안녕하세요, 검사님? 사진으로만 뵈었는데, 실물이 더 낫네요. 감옥 머그샷 찍기에도? 참, 카메라는 여기만 있는 건 아니에요?”


대체 언제 이런 준비가 이뤄진 걸까?

그렇지만 정신없는 와중에도 탁도진은 한 가지 허점을 찾아냈다.

이 상황은 영장 없는 불법 촬영이 확실하다.


그렇다면 증거로 쓸 수 없다.


“이건, 위수증! 부, 불법이야! 영장도 없잖아!”


그 순간 탁도진의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 대신, 보도는 가능하지. 부패 검사 탁도진.”


탁도진은 멍하니 서 있다 주저앉았다.

그곳에 어둠 속 귀신 같은 분위기.


백발검사 나유신이 차갑게 탁도진을 노려 보고 있었다.


***


당연히 이런 결과는 수도중앙 특수부장, 구호승이 원했던 바가 아니다.


-〈단독, 검사의 두 얼굴 제2탄! 가짜 마약 실적 만들기!〉


모니터를 뚫어져라 보던 구호승이 책상을 내리쳤다.


-쾅!


물론 부장검사실의 책상 쯤 되면 고급품이다.

흠집 정도는 조금 날지 몰라도 손으로 내리친다고 부서지는 일은 없다.

다만 구호승이 한 대 칠 수 있다면 칠 기세인 것은 맞다.


“이게 대체 뭐지?”


실로 칼로 벨 것 같은 눈빛으로 구호승이 나유신과 염민아를 노려보았다.

물론 염민아는 자신은 모른다는 듯 시선을 돌리고 있다.

문득 나유신이 차갑게 대꾸했다.


“특수부에서 수사해야 할 대형 사건입니다.”

“누가 이런 [그림]을 그리라 했나?”

“그린 적 없습니다. 부장님.”


나유신은 구호승의 눈빛을 정면으로 받아내며 말했다.


“어디까지나 단서에 근거해, 추적하다가, 기자의 협조를 받은 것뿐입니다. 불법적인 수단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물론 이것도 10프로의 거짓이 섞인 말이다.


일단 나유신과 염민아, 서나래는 허가받지 않고 세관 창고에 침투했다.

또한 역시나 허가 없이 세관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굳이 말하자면 탐사보도 기법이라고 하겠지만, 보통은 불법 촬영으로 관련법에 따라 처벌된다.


게다가 탁도진 말처럼 위수증, 그러니까 위법으로 수집된 증거인 것도 맞다.

이런 경우 법원에서는 아무리 명백해도 증거로 채택해 주지 않는다.

그렇지만 일단 보도된 이상,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마약, 세관, 그리고 검사.

실로 누구라도 흥미를 가질 수밖에 없는 센세이셔널한 사건.

이제 이 사건을 수사하지 않으면 특수부가 매장당할 판이다.


특수부장 구호승이 이를 갈았다.


“난 분명히 말했어. 마약 유통경로, 유통 조직, 그리고 유통 방법을 [조사]하라고.”

“특수부는 정해진 결론대로만 수사합니까?”

“뭐?”


순간, 나유신이 책상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퍽!


구호승은 단 한 번도 본인 앞에서 이렇게 무례한 검사를 본 적이 없다.

당연히 지금껏 검사를 때려잡는 검사도 본 적이 없겠지만.

나유신이 구호승의 은테 안경을 노려보며 다그쳤다.


“중요한 건 마약의 공급루트를 끊는 겁니다. 우리가 태국이나 필리핀까지 갈 수 없는 이상, 가장 크게 들어오는 길목을 잡아야죠. 그게 세관이고, 여기가 지금 뚫린 겁니다.”


이 말에는 단 하나의 틀린 부분도 없다.

정론이란 뜻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유신의 행동이 검찰에서 용납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검사를 또 잡았나? 백사?”


나유신은 한 발 물러서며 답했다.


“저는 세관을 조사한 겁니다. 하필 세관에 구멍을 뚫은 자가 검사였을 뿐이죠.”


일부러 검사라서 작정하고 기획해 잡은 건 아니란 얘기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게 그거지만.

뚫어져라 나유신을 보다 구호승이 다시 말했다.


“일단, 손 떼고 덮어.”

“저야 덮고 싶지만 언론이 이미 보도를 냈죠.”

“막아.”


나유신은 단 하나의 흔들림도 없이 답했다.


“아뇨, 그건 못 막습니다. 그리고 부장님도 수사 시작하셔야 할 겁니다. 특히.”


구호승의 책상 위, 탁도진의 인사 파일이 쏟아졌다.


“이 부패검사 탁도진은 처넣으셔야죠.”


그게 특수부 선배, 서수휘의 라인이라도 말이다.


***


파견 검사실에는 이제 아무도 감히 찾아오지 못한다.


-〈비트코인 검사, 이번에는 마약 세관 적발!〉


그래서 염민아는 한가하게 기사를 살펴볼 수 있었다.

어쩐지 자기 이름이 안 나와 삐진 얼굴이다.

하지만 이런 사건에 엮여서 검사가 좋은 꼴 보지는 못할 것이다.


염민아가 호들갑을 떨며 나유신에게 말했다.


“와, 비트코인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벌써 나검에게 별명을 붙였네?”

“백사보다 낫군요.”

“이렇게 되면 우리는 사건에서 배제되는 건가?”


민혁기가 쓴웃음을 지을 찰나, 나유신이 어깨를 으쓱였다.


“어쨌든 사건 해결만 하면 되는 거 아니겠어요? 책임은 제가 지고. 응?”


민혁기는 나유신을 돌아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검사님?”


하지만 나유신은 미처 답하지 못했다.


[마약 불법유통 사건, 관세범인 체포. 사건, 미해결.]


왜냐면 황금문자가 뜨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공되는 정보가 이상하다.

아무리 눈을 씻고 다시 봐도, [해결]이란 글자가 아니다.


순간, 또 다른 메시지가 떴다.


[운반범을 잡을 때까지 사건, 미해결. 사망까지 D-12일]


나유신은 비명을 질렀다.


“이거 뭐야, 시발?”


이번 사건의 진짜 요체는 통관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작가의말

* 통관 케이스 해결. 이제 운반범을 잡으러 갑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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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검사는 거물이 되기로 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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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58) 재벌가 상속녀도 보이스피싱을 당한다 NEW +11 14시간 전 2,350 5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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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56) 새로운 검찰총장이 백발공적을 보호한다 +10 24.09.12 4,835 107 30쪽
56 (55) 총장의 자백으로 3조 폰지 사기를 부수다 +22 24.09.09 5,143 130 28쪽
55 (54) XBC 폭로로 현직 총장 사모를 붙잡다 +18 24.09.07 5,119 121 28쪽
54 (53) 황금금강석 멤버들은 그린벨트에 3조를 투자한다 +12 24.09.04 5,448 108 28쪽
53 (52) 총장 사모님이 피라미드 거물이다 +20 24.08.30 5,788 114 28쪽
52 (51) 3조짜리 피라미드 조직을 잡아보자 +18 24.08.29 5,960 126 29쪽
51 (50) 나유신이 첫 휴가지에서 상속녀를 보다 +26 24.08.24 6,587 139 31쪽
50 (49) 초보형 전시안으로 사채왕을 발견하다 +15 24.08.22 6,536 153 30쪽
49 (48) 회장 등극식에서 대법관을 이용해 진범을 잡다 +19 24.08.20 6,660 163 21쪽
48 (47) 재벌 회장이 되게 해주세요 +25 24.08.18 6,753 154 34쪽
47 (46) 특수부 폭력이 조폭 진범보다 위다 +20 24.08.14 6,953 167 34쪽
46 (45) 강앤함과 월야 재벌가의 동상이몽을 털어라 +12 24.08.12 7,104 154 24쪽
45 (44) 월야그룹 살인사건을 만나다 +12 24.08.08 7,753 151 25쪽
44 (43) 나유신의 팀을 수도대 동문회에서 완성하다 +14 24.08.06 8,145 166 35쪽
43 (42) 백사여, 노담에서 다시 시작해라 +20 24.08.02 8,276 176 29쪽
42 (41) 시한부 연장권과 함께 중수부가 폐지되다 +20 24.07.31 8,110 193 20쪽
41 (40) 백발이가 사채왕을 잡다 +27 24.07.30 8,031 194 21쪽
40 (39) 이렇게 된 이상 선제 폭로로 중수부를 친다 +14 24.07.28 7,969 194 19쪽
39 (38) 진짜는 미래살인 배후 사채왕이다 +16 24.07.26 7,969 188 21쪽
38 (37) 금수저 비밀 정보로 스캔들 범인부터 잡다 +19 24.07.24 8,007 184 32쪽
37 (36) 이건 중수부의 운명이 걸린 사건이다 +14 24.07.19 8,128 178 30쪽
36 (35) 위치 추적 보상과 함께 서울시장 스캔들을 만나다 +22 24.07.17 8,423 186 23쪽
35 (34) 진짜 마약범을 잡고 금수저 변호사와 손잡다 +27 24.07.15 8,369 195 22쪽
34 (33) 골드스컬 클럽을 함정으로 일망타진하다 +17 24.07.14 8,306 190 23쪽
33 (32) 조기유학 금수저 학폭이 사건 진상이다 +16 24.07.10 8,384 182 23쪽
32 (31) 철벽의 성을 대규모 교사 시위로 넘어볼까 +13 24.07.08 8,321 187 22쪽
31 (30) 학교폭력 연쇄 자살사건이 터졌다 +15 24.07.05 8,709 182 22쪽
30 (29) 한국 재계를 뒤엎을 진짜 거물을 만나다 +21 24.07.03 9,008 194 24쪽
29 (28) 노동 살해 협박으로 진범을 잡다 +16 24.07.01 8,856 201 22쪽
28 (27) 솔라코인 전관 법무팀의 방어를 뚫어라 +15 24.06.27 9,044 196 21쪽
27 (26) 특수부 첫 사건은 1조원 분식회계다 +17 24.06.26 9,385 198 22쪽
26 (25) 중수부장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받다 +15 24.06.24 9,591 201 35쪽
25 (24) 백발이를 죽인 자에게 진짜 복수를 해보자 +16 24.06.19 9,316 198 34쪽
» (23) 백사가 또 검사를 잡았다 +22 24.06.18 9,398 200 22쪽
23 (22) 특수부식 예단수사로 마약통관범을 잡아라 +11 24.06.15 9,443 197 23쪽
22 (21) 이 나라에는 마약도 너무 많다 +17 24.06.13 10,215 210 24쪽
21 (20) 첫 기자회견과 함께 위수증 5백억 코인이 남다 +19 24.06.07 10,211 224 36쪽
20 (19) 5초 예지로 폭발 속 범인을 잡다 +14 24.06.06 10,105 221 24쪽
19 (18) 감옥에 보낼 놈은 내가 고른다 +14 24.06.04 10,091 218 18쪽
18 (17) 1천억 비트코인 사건을 5초 예지로 파헤치자 +14 24.05.31 11,100 219 31쪽
17 (16) 나를 건드리면 검찰총장 예정자도 가만 안 둔다 +25 24.05.29 10,980 233 26쪽
16 (15) 독사를 건드리면 제왕도 문다 +20 24.05.27 11,058 237 30쪽
15 (14) 공판부 땜방으로 백발검사를 보내라 +10 24.05.24 11,550 223 30쪽
14 (13) 언론비리 일망타진으로 신체감정 보상을 받다 +11 24.05.23 12,155 230 31쪽
13 (12) 특활비 별건수사로 무전취식 기자를 잡자 +12 24.05.21 12,246 237 21쪽
12 (11) 사고뭉치에게는 법카부터 먹여줘라 +13 24.05.20 13,452 243 21쪽
11 (10) 나유신이 주가조작 일당을 함정수사로 잡았다 +17 24.05.20 13,517 262 21쪽
10 (9) 오풍제지 그래핀 사기를 경찰공조로 잡는다 +16 24.05.18 14,349 257 25쪽
9 (8) 정오판정으로 오풍제지 주가조작을 발견하다 +16 24.05.17 14,707 276 15쪽
8 (7) 선배가 장애물이면 부수고 해결한다 +15 24.05.14 15,099 280 22쪽
7 (6) 상태창의 보상은 놓칠 수 없다 +23 24.05.12 15,957 296 27쪽
6 (5) 의원 하나 잡고 시작하자 +20 24.05.11 15,733 290 14쪽
5 (4) 신입 수석검사가 꼴통이래 +15 24.05.10 16,984 307 15쪽
4 (3) 범인을 잡으니 시한부 연장 +16 24.05.09 18,129 292 11쪽
3 (2) 우선 범인부터 잡고 죽자 +17 24.05.08 19,693 312 13쪽
2 (1) 백발 신입검사 나유신 +25 24.05.08 22,928 354 11쪽
1 프롤로그 : 시한부 상태창이 생겼다 +42 24.05.08 30,121 416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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