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검사는 거물이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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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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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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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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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6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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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26) 특수부 첫 사건은 1조원 분식회계다

DUMMY

수도 중앙지방검찰청, 검사만 230여명이 근무하는 검찰의 중핵이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2천 명 검사 중 10분의 1을 총괄하는 남자.


수도중앙지검장 박태곤은 낯을 찌푸렸다.

보통 박태곤에게 이렇게 화를 낼 수 있는 자는 상관이거나, 마누라 정도다.

그런데 눈앞의 ‘후배’는 대놓고 격노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럼에도 평소라면 발휘하지 않을 인내심을 써가며 박태곤이 차분히 답했다.


“서 차장, 일개 평검사 하나 오는 거야. 그렇게 난리 날 일이 아닐세.”

“지검장님. 향후 수도중앙지검 특수부는 제 책임하에 만들어도 좋다고 말씀하셨잖습니까!”

“아, 잘 알지. 서 차장이 곧 여기 올 거. 그렇지만 말이야.”


박태곤 지검장은 어깨를 으쓱였다.


“아직은 자네 남부에 있잖나?”


수도남부지검 차장, 서수휘는 이를 갈았다.


물론 직제상으로는 맞는 얘기다.

서수휘는 현재 중앙지검 특수부장이 아니라 남부지검의 수뇌부다.

그러나 전임 특수부장이자 향후 수도중앙의 실세로 돌아올 몸으로, 특수부 구성원은 아주 중요한 문제다.


게다가 사고검사 나유신이라니, 이건 용납이 안 된다.


“지검장님, 이건 약속 위반입니다.”

“아, 서 차장. 내가 무슨 약속을 위반했다고 그래? 애초에 인사발령은 내 권한도 아니야. 대검에서 결정한 걸 나보고 어쩌란 건가?”

“사전에 말씀 주실 수도 있었겠죠. 그게 아니면.”


서수휘가 박태곤을 노려보며 다그쳤다.


“제가 직접 청장님까지 뵈러 가야 합니까?”


그러니까 나유신의 특수부 발령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따지고 보면 박태곤 지검장 말대로 일개 평검사 발령이다.

보통은 검찰 고위직끼리 이렇게 낯을 붉힐 문제라고 할 수도 없다.

게다가 수도중앙지검장은 검찰에서 실세 중의 실세인데, 이걸 들이받는 게 서수휘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그럼에도 서수휘는 그럴 수 있고, 또 그럴 자다.

만약 필요하다면 수도중앙지검장을 끌어내릴 수도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


박태곤도 그 사실을 알기에 애써 참으며 말했다.


“서 차장, 달리 생각해 보게.”

“알겠습니다. 얘기 끝내죠.”

“서수휘!”


순간, 박태곤이 참지 못하고 고함쳤다.


“아무리 자네가 잘났어도 내 말부터 들어! 아직은 내가 상급자야!”


서수휘는 돌아서다 멈췄다.


물론 여기서 그냥 나가버린다 해도, 박태곤으로선 쓸 수 있는 수단이 없다.

현재 검찰의 권력구도든, 서수휘가 쥐고 있는 [카드]든, 모두 박태곤에게는 불리하다.

해서, 박태곤 지검장의 입에서 나온 말도 협박이 아니라 구슬리는 얘기였다.


괜히 서수휘와 싸워서 박태곤에게 좋을 게 단 하나도 없었으니까.


“애초에 그 백발인지 백사인지 하는 놈이랑 틀어진 거, 주시평 때문이잖나.”

“그놈은 떡잎부터 썩은 놈입니다.”

“주시평 얘기하는 건 아니겠지? 하여간 부하라는 건 언제든 바꿀 수 있는 거야. 나유신인가 하는 녀석을 한 번 써보고, 쓸만하다 싶으면 교체할 수 있는 거 아니겠어?”


슬쩍 주시평을 비꼬다 박태곤이 히죽 웃었다.


“게다가 정 안 되면 잡아서 물 먹이기도 부하로 두는 게 더 쉽지 않나. 사고 안 치게 감시하는 것도 말이야.”


만약 외부인이 이 대화를 듣는다면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마치 서수휘가 특수부 상관이라도 되는 것처럼 얘기하고 있으니까.

허나 지검장실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향후, 이번 정기 인사든 다음 인사든 서수휘는 반드시 중앙지검으로 온다.


나아가 특수부를 총괄하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특수부 내부 인사는 모두 서수휘 아래다.

서수휘 차장이 돌아보지도 않은 채 차갑게 대꾸했다.


“제가 중앙에 오면 바로 자릅니다.”


곧이어 서수휘가 문을 쾅 닫고 나가자, 박태곤은 혀를 찼다.


“하, 저 새끼 지가 먼저 사고 칠 판이구만. 백사가 뭐 어째?”

“정말 중앙에 부르실 겁니까?”

“이봐, 기석이. 내가 저놈 부르나? 총장이 부르는 거지. 아니.”


중앙지검 제1차장 신기석에게 박태곤이 대꾸했다.


“철검회 놈들이 부르는 거지. [스폰]도 없는 놈들이 하여간, 독기 하나로 검찰 인사를 좌우하니 원.”


사실, 나유신이 아니라도 검찰에는 사고치는 인간들 천지다.


단지 검사를 구속하는 검사가 나유신밖에 없을 뿐.

이런 부하들을 통제해야 하는 박태곤 입장에선 나유신이나 서수휘나 그게 그거다.

문득 옆에서 신기석 차장이 박태곤을 달래며 말했다.


“이번 주말에 골프나 치러 가시죠. 좋은 곳 알아놨습니다.”

“누가 예약했나?”

“화성그룹 한노진 사장입니다. 후후.”


10대그룹 중 하나, 화성의 오너 일가다.

그러자 박태곤의 잔뜩 굳어 있던 얼굴이 활짝 펴졌다.

골프도 좋지만 같이 치는 사람은 더 중요하다.


“그래. 요새 화성그룹이 잘 나가지? 한 번 봐야지. 차기는 한노진인가?”


수도중앙지검의 2인자, 신기석 차장이 빙그레 웃었다.


“검찰의 차기가 박태곤 지검장님인 것과 같지요. 후후.”


고위 검사들에게 인간 관계는 때로 수사보다 중요하다.

나유신이든 서수휘든, 사고뭉치들은 모를 일이겠지만.


***


일단 수도중앙지검이 나유신을 환영하지 않는 것은 확실하다.


-삑!


오늘도 출입키가 삑사리 소리를 내는 걸 보면 말이다.


“이거 아직도 처리가 안 됐네.”

“정식발령난 거 아니었어요? 선배?”

“게이트 기계도 텃세부리나 보지. 여기요!”


염민아가 방호경찰을 부르자, 이번에는 방호경찰이 부리나케 공손하게 달려왔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검사님. 처리한다고 했는데, 아직 오류가 있나 봅니다.”


예전 잡상인 취급하던 때와는 그래도 확연히 다르다.

어쨌거나 특수부는 특별하고, 염민아와 나유신은 대형 사건을 해결하며 들어왔다.

그것도 검사를 구속시키는 엄청난 사고와 함께 말이다.


그때 염민아 앞에서 누군가 카드키를 대신 눌렀다.


-덜컹!


게이트가 열리고, 옆에서 사정국 검사가 과장된 태도로 몸을 조아렸다.


“자, 마님. 돌쇠가 열었으니 들어가시지요.”

“오늘은 또 무슨 컨셉이야? 설마 하인?”

“낄낄! 귀한 분이 오셨으니 카펫은 못 깔아도 문은 열어드려야지.”


특수부 검사, 사정국이 나유신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중앙에 온 걸 환영한다, 백사. 앞으로 2년 동안 잘해보자고.”


처음 봤을 때 [개] 취급하던 것과는 천지차이다.


비록 검사를 잡았지만 사건 해결 과정에서 사정국이 나유신을 인정한 결과다.

잠시 나유신은 손을 보며 묘한 생각에 잠겼다.

분명, 일으킨 사건 사고를 보면 전생보다 현생이 훨씬 엄청나다.


그런데 어째서 현생에서 더욱 인정받는 걸까?

혹시나 검사란 사고를 쳐야만 주목받는 조직은 아닐까?

잡상을 떠올리던 나유신 앞에서 염민아가 콧방귀를 뀌며 물었다.


“야, 사프로, 왜 2년이야? 2년 뒤엔 쫓아낼 거야?”

“평검사 정기인사가 2년마다 한 번이니까 한 소리지. 순환근무 몰라? 하긴 백사가 그때까지 사고 안 치고 멀쩡히 있을라나 모르겠군.”

“오자마자 악담이냐?”


그러자 사정국이 낄낄 웃으며 나유신의 어깨를 툭 쳤다.


“사건 해결에 집중해 달라고 말하는 거라고. 아, 그리고 검사가 혹시 걸리면 살살 좀. 알지?”


그때서야 나유신은 정신을 차렸다.

일단 사정국이 나유신을 동료로 인정한 건 확실하다.

당연히 사고가 일어났을 때는 나몰라라 할 가능성이 높지만.


“제가 검사만 노리는 건 아닙니다만.”

“벌써 셋이나 날려놓고 무슨 소리야? 벌써부터 우리 부장은 초긴장 모드야. 언제 자기 칠지 모른다고 생각할걸.”

“아무 죄도 저지르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나유신이 반문하자 사정국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런, 우리 백사는 뭘 모르는군. 검사가 인생을 바꾸는 방법이 뭔지 알아?”


처음 듣는 얘기라 나유신은 눈을 깜박였다.


“갑자기 뭡니까, 그게?”

“줄을 잘 잡거나, 결혼을 잘 하거나, 아니면 [스폰]을 물어야 해.”

“예?”


사정국은 나유신을 끌고 중앙지검 내부로 들어서며 일렀다.


“보통은 검사의 비리는 스폰에서 비롯된다고들 하지. 하지만 알고 보면 잡은 [줄]이나 [처가]가 사고를 쳐서 생기는 비리가 더 많아. 아무리 본인이 청렴해도, 주변까지 그러긴 어렵지?”


라인, 정계든 검찰이든 또 다른 어딘가든 고위층 윗선이다.

처가, 혼사로 맺어진 재력가나 세력가, 혹은 권력가다.

스폰, 이른바 스폰서의 준말로 뒷돈을 대어주는 사업가를 말한다.


보통 검사가 사고를 치면 스폰서가 있을 때다.

그렇지만 사정국은 달리 말했다.

처가든 줄이든 남의 힘을 빌리다 보면 사고가 날 수밖에 없다고.


사정국이 낄낄 웃으며 일렀다.


“그러니까, 우리 부장처럼 고지식한 검사도, 어디서 사고가 터질지 모르는 거라고. 좀 살살해.”

“애한테 참 좋은 거 가르친다. 넌 셋 중에 뭐냐?”

“아이고, 나야 미혼에 줄 같은 건 없고, 스폰 따라다니기엔 너무 바쁘지! 염프로!”


염민아에게 대꾸하던 사정국이 멈췄다.


“자, 그럼. 특수부 검사실에 온 걸 환영한다. 염민아 검사, 그리고 나유신 검사.”


수도중앙지검 특수부 사무실.

나유신은 전생에서도 왔던 곳을 잠시 뚫어져라 보았다.

그러나 이번 생은 분명 다를 것이다.


“신세 좀 지겠습니다.”


이곳에 얽매이지 않겠다.

단지, 어떤 자리든 나유신에게는 마찬가지다.


죽음의 비밀을 파헤치고, 복수를 하기 위한 수단이다.


***


그렇지만 여전히 구호승 특수부장은 나유신의 예상범위를 뛰어넘었다.


“첫 사건은 노담이다.”


특수부 정식 발령 후 첫 회의.

구호승 부장이 나유신과 염민아에게 내린 명령이다.

염민아 검사가 어이없는 얼굴로 되물었다.


“그건 우리 관할 아니지 않습니까?”

“특수부는 관할 같은 건 신경쓰지 않는다. 또, 너희 둘 다 노담시 사건이라면 편하지 않나? 이건 배려야.”

“무슨 사건인데 특수부에서 처리하는 건가요?”


구호승은 은테안경을 들어올리며 대꾸했다.


“헬크.”


나유신이 옆에서 듣다 눈썹을 치뜰 찰나, 구호승이 첨언했다.


“국내 최대 게임사. 순이익이 5대 그룹 전체보다 높다는 초고속 성장 신화의 주역.”


노담이 자랑하는 천당 신도시.

그곳은 IT 초대형 기업들의 집결지다.

개중에 가장 큰 기업이 바로 헬크.


구호승이 특수부 검사들을 돌아보며 눈을 번뜩였다.


“특수부는 기획수사하는 거 알지? 이번엔 여길 잡는다.”


그저 단순 고소고발건은 담당 형사부가 처리한다.

특히 서울 도심의 중앙 관할이 수도중앙지검의 처리 영역이다.

허나 그곳이 어디든 간에 특수부나 중앙지검이 [인지]한 [특별]한 사건은 특수부의 관할이 된다.


나유신은 미간을 좁히다, 물었다.


“죄목은 뭡니까?”


아무리 특수부라도 없는 죄를 만들 수는 없다.

뭔가, 있으니까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틀리면 나올 때까지 묻기도 하지만.


구호승 부장이 대꾸했다.


“업무상 횡령. 단위가 1조 원대다.”


이건, 수사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 맞다.


***


이곳은 [헬-크런치] 모드 돌입 중인 공간이다.


“으하암, 아이고, 죽겠다. 도대체 언제쯤 퇴근할 수 있는 거야?”


크런치 모드, IT 업계 특유의 업무 방식이다.


프로젝트 마감을 앞두고 식사, 수면, 위생, 무엇보다 퇴근 없이 전적으로 집중업무 모드로 달린다.

시한은 결과물을 책임자에게 완전히 검수받는 그 순간까지.

가끔 주 100시간도 우습게 넘어가는 게 크런치 모드인데, 지금 여기는 그 정도가 아니다.


헬-크런치, [헬크]만의 강제 업무부과 모드.

지금 프로젝트 [헬-크립토]에 투입된 개발자, 한성현이 잡혀 있는 상태다.

간신히 하품하던 한성현이 일순, 커다란 사무실 한쪽을 보았다.


세련된 고글 스타일의 의자가 텅 빈 게 보인다.


“저긴, 아직도 비었군.”

“프로젝트 통째로 날려버린 거지? 권고사직인가?”

“아니, 그냥 해고 시켰다던데.”


바로 옆에서 동료, 홍시덕이 콧방귀를 뀌었다.


“개발자 목숨이 파리 목숨이지, 뭐.”


원래 한국은 해고가 쉽지 않은 나라다.


그렇지만 이곳 천당신도시 IT 기업들은 걸핏하면 채용과 해고를 반복한다.

프로젝트 스타일 업무 위주인 점도 있지만, 사실 실리콘밸리 문화가 깊이 침투한 탓이다.

무엇보다 기업연혁이 짧고 IT 특유의 문화 때문에 보호장치가 없다.


대기업이라면 통상 있을 수밖에 없는 [노동조합]이라든가.

그러나 한성현이 보는 장소는 특별하다.

설사 노조가 있었어도 보호받을 수 없었을 사람이 그곳에 있었다.


지금은 죽어 버렸지만.


-쿠당탕!


순간, 한성현의 상념을 소음이 깼다.


갑자기 사람들이 사무실로 밀어닥친다.

헬 크런치 모드로 매달려 있던 개발자들이 놀라 일어났다.

그렇지만 들어서는 이들은 허약한 개발자가 막을 수 있는 이들이 아니었다.


한 눈에도 거한으로 보이는 이들, 수십 명이 들어섰다.


“뭐, 뭐, 뭐야!”

“자자, 다들 비켜 주시고. 재무팀이 어디죠? 여기 17층이라고 들었는데.”

“누구세요? 지금 회사 문 닫은 시간인데?”


문득 호리호리하지만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 수사관 고거경이 신분증을 내밀었다.


“검찰에서 나왔습니다. 거기, 동작 그만. 컴퓨터 다 내놔요. 압수수색 대상입니다.”


그러니까 검찰에서 압수수색을 나왔다는 소리다.


한성현도, 홍시덕도 난생 처음 겪는 상황이라 입을 쩍 벌렸다.

대체 이곳 헬크에 왜 검찰이 밀어닥쳤을까?

한 순간 홍시덕이 눈을 굴리다 자신의 컴퓨터를 슬쩍 몰래 만졌다.


한성현은 그 모습을 보다 재빨리 고거경에게 다가섰다.

헬-크립토 프로젝트를 숨기는 게 확실하다.

그러면 일단 시선을 돌려야 한다.


“잠깐만요. 이렇게 막 가져가셔도 되는 거예요?”

“됩니다.”

“그, TV에서 보니까, 뭔가 정해진 것만 가져가야 한다고.”


고거경은 눈썹을 치뜨다 유들유들하게 웃으며 한성현에게 물었다.


“성함과 직급?”

“예? 저요? 어, 한성현이라고 하구요. 직급은 그냥 개발자인데요?”

“자, 한성현 개발자 씨. 공무집행방해로 잡혀가고 싶어요?”


그야말로 긴급 체포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모습에 한성현은 기가 질렸다.


물론 특수 범죄를 상대하는 고거경에게는 일상이다.

허나 노트북을 벗 삼아 인생을 보내는 한성현에게는 인터넷에서나 봤던 소리다.

문득 한 대 맞으면 몸이 튕겨나갈 것 같은 거한들, 그러니까 검찰 수사관들이 노려보는 게 보인다.


고거경이 한성현에게 일렀다.


“싫으면 닥치고 앉아 있어요. 어차피 이번 사건, 당신들하고 직접 관련은 없을 테니까.”


그렇지만 이제 한성현은 정말로 궁금해졌다.


홍시덕이 노트북에서 손을 뗐기 때문은 아니다.

어째 아무거나 수사관들이 가져가는 걸 보니, 뭘 알고 온 것 같지 않았다.

하기야 [헬-크립토] 같은 최신 IT 프로젝트를 검찰에서 알고 수사할 리는 없다.


그렇다면, 이 작자들은 대체 왜 헬크에 쳐들어온 걸까?


“대체, 무슨 일인데요?”


고거경은 아주 간단히 대꾸했다.


“횡령.”


한성현이 눈을 크게 뜰 찰나, 수사관들이 일제히 [청색 상자]를 펼쳤다.


-쿵, 쿵, 쿵!


그곳에 무차별로 압수한 [증거자료]들이 담기기 시작했다.


***


기습적 압수수색, 특수부가 펼치는 전가의 보도 중 하나다.


“이게 바로 특수부의 방식이지. 나검.”


또 다른 [칼]로는 불시 체포와 구속영장 청구가 있다.

다만 이런 방식은 일반적으로는 수사관들이 진행하고, 검사는 사무실에 앉아 결과만 보기 마련이다.

이렇게 사정국이 직접 나온 이유는 [신입]에게 가르치기 위해서란 뜻이다.


물론 전생에서 10년 간 검사질을 한 나유신은 시큰둥하게 되물었다.


“다짜고짜 압수수색부터 하는 거요?”

“그게 아니라, 불시 기습 말이야. 거기, 서류 제대로 들고 나와. 사진 잘 찍히나?”

“불시 기습인데 사진은 왜 찍습니까?”


헬크 사무실에서 나오는 청색 박스 대열을 보며, 사정국 검사가 말했다.


“왜냐하면 이게 전부 언론보도 되어야 하니까. 언론을 잘 활용하는 것도 특수부의 수사기법이야. 물론 나검처럼 사전 조율 없이 아무 데나 내보내면 곤란하지만.”


요컨대 [언플]도 특수부 스타일이긴 하단 뜻이다.


물론 나유신이 사전에 특수부에 조율을 시도했다면, 사건 해결 자체가 무산되었겠지만.

다만 여기서 [조율]이란 건 단순히 검찰 내부 조율을 얘기하는 건 아니다.

예전 전생에서 나유신도 본 적은 있다.


메이저 기자들과 사전에 언플 범위와 방식을 조율하는 식이다.

검언유착.

본래 독자적인 취재로 보도해야 할 언론과 법에 의해서만 수사해야 할 검찰이 유착하는 일이다.


어쩐지 씁쓸한 기분으로 예전 기억을 떠올리다, 나유신이 되물었다.


“하지만 이런다고 횡령 자료가 나오나요?”


청색 상자에는 불특정 다수 자료가 가득 실려 있다.


그렇지만 횡령 관련 증거가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특히 재무팀만이 아닌 같은 층에 있던 [프로그램] 자료까지 싹 쓸어가고 있지 않은가?

전생의 기억에서도 기습적 압수수색은 효과적인 증거 수집과는 거리가 멀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고거경이 문으로 걸어 나오다 대꾸했다.


“그건 검사님 말씀이 맞죠. 아마 압색 자체는 실속이 없을 겁니다. 혹시, 회계담당자가 띨박해서 자료를 남겨놨으면 모를까.”

“익명제보가 있었다고 했죠?”

“고발 형식은 안 갖췄지만 그랬죠. 상당히 근거가 있는 제보였고. 하지만 그걸 회사 컴퓨터나 서버에 고스란히 남겨 놓으면 바보겠죠?”


고거경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압수수색을 하면 뭐라도 나옵니다. 거기서부터 파고드는 거죠. 물론 언론을 통해 조지면서.”


결국 이건 압박을 위한 별건수사용 자료 수집이다.

그게 꼭 원래 목적했던 바와 관계가 없어도 상관없다.

타깃 지정한 용의자가 떨게 만들 수 있는 거라면.


고거경이 청색 상자가 차에 실리는 걸 감독하며 말했다.


“일단 근거를 찾고 나면, 그때부터 재무 관계자와 경영진을 족치는 겁니다. 이봐, 그건 반대쪽 차에 갖다 놔! 재무팀 자료가 아니니까!”

“그럼 자백한다는 겁니까?”

“누군가는 반드시 그렇게 되죠. 특히 저 자료에 뭔가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일순, 고거경이 업무용 차량에 올라타다 웃었다.


“혹시 압니까. 사내연애 불륜 증거라도 나올지. 으흐흐.”


이건 또 엉뚱한 소리라 나유신이 피식 웃을 찰나, 함께 온 민혁기가 말했다.


“농담 같이 들리겠지만, 압수수색하면 많이 나오는 게 사내불륜 정황입니다. 검사님.”

“컥, 진짜라구요?”

“회사에서 불륜을 저지르는 커플은 의외로 많고, 또 이렇게 야근을 많이 하는 회사는 더 그렇죠. 사실 검찰도 예외라고 할 수는 없고.”


그러고 보니 나유신도 전생에서 몇 번 들었던 기억이 난다.


검찰 내부의 불륜 스캔들.

특히 수사 때문에 많이 붙어 다니는 검사들끼리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다던가.

어째 워라밸이 없는 직장의 숙명인 것 같기도 해, 묘한 기분이 든다.


그런데 나유신의 눈에 17층 사무실 안에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뭡니까, 설마 이 시간에 근무하는 겁니까?”


아무래도 남자들만 있는 게 딱히 불륜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개발자들이 나유신을 보고 놀라다 분분히 흩어졌다.

그런데 딱 하나 나유신을 보더니 멈춰서 놀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동네에선 흔히 있는 일인데요. 어, 어디서 봤는데.”

“하얀 머리가 눈에 띄긴 하겠죠.”

“그게 아니라 예전에, 맞아. 비트코인 사건 해결했다던 그 검사 아니에요?”


나유신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이전, 비트코인 환치기 사건 해결 후 기자회견에 참여한 적이 있다.

당시 기자회견은 전국에 생중계 되었는데, 그 보도를 본 사람인 모양이다.

다만 그렇게 오래된 일은 아니다.


“2달 전 일이죠. 옛날이랄 것도 없습니다만.”


그 순간 개발자가 조심스레 물었다.


“저기, 검사시면 혹시 고발 같은 것도 가능한가요?”


물론 형사고발은 검사 개인에게 하는 게 아니다.


어디까지나 검찰 조직에 정식 절차를 밟아, 신고나 고발장 형태로 집어 넣어야 접수된다.

검찰 수사도 결국 근본적으로는 행정적인 문제니까.

하지만 특수부는 꼭, 정식 고발된 사건만 다루는 부서는 아니다.


나유신은 조금 미심쩍은 눈으로 되물었다.


“횡령 건입니까? 아무리 봐도 회계사처럼 보이시진 않는데.”

“개발자입니다.”

“어디 지재권 침해라도 했나요? 제가 그쪽 전문은 아닌데.”


그 순간, 개발자 한성현은 놀라운 얘기를 꺼냈다.


“노동법 위반인데요. 어, 해고살인요.”


잠시, 나유신이 귀를 의심할 정도로.


***


이제 해가 어슴푸레 떠오르는 새벽, 천당신도시의 24시간 카페도 한산하다.


“살인이라는 말, 그렇게 쉽게 하는 거 아닙니다. 한성현 씨.”


나유신이 차갑게 말하자 한성현은 어깨를 움츠렸다.


“아, 알아요. 검사님.”

“그런데 왜 살인이라는 말을 꺼냈죠?”

“그게, 단순히 해고가 아니라, 음.”


한성현이 머뭇거리다 털어놓았다.


“악의적으로 괴롭히면서, 사람이 박살 날 때까지, 몰아넣었어요.”


주어도, 원인도 없다.

만약 이런 식으로 고소장을 쓴다면 그 검사야말로 해고당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두서없는 말에서 나유신은 심상찮은 느낌을 받았다.


눈앞의 개발자가 그저 기분에 따라 물은 게 아니란 거다.


“그래서 누가 죽은 겁니까?”


나유신 옆에서 민혁기가 묻자, 한성현은 더욱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최인규, 우리 [헬크] 공동창업자요.”


헬크 공동창업자가 [해고살인]을 당했다?

지금, 특수부는 1조원짜리 횡령을 제보받고 쳐들어온 참이다.

아주 수상쩍은 우연의 일치다.


민혁기가 놀란 눈으로 나유신을 돌아보았다.


“이건 들을 가치가 있는 거 같은데요, 검사님.”


그렇지만 나유신은 아까부터 확신하는 중이다.


“확실히, 그렇군요.”


왜냐면 황금문자가 떴으니까.


[기업 해고살인 사건 케이스, D-30. 범인 못 잡으면 죽음.]


이번 횡령수사와 헬크 공동창업자의 죽음은 분명 연관이 있다.

그게 아니라도 이 사건은 파헤쳐야만 한다.

이미 나유신에게 시한부 퀘스트가 주어진 것 같으니 말이다.


나유신은 뚫어져라 한성현을 보며 말했다.


“지금부터 정식으로 진술 받습니다. 모두 진실만을 말하세요. 왜냐면, 난 거짓말은 다 아니까.”


특수부가 아니라 나유신 단독 수사가 개시되었다.


작가의말

* 근무하는 검사의 숫자는 항상 가감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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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검사는 거물이 되기로 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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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58) 재벌가 상속녀도 보이스피싱을 당한다 NEW +11 14시간 전 2,344 53 9쪽
58 (57) 전시안 보유 시한부 인생은 무서울 게 없다 +10 24.09.17 3,631 84 29쪽
57 (56) 새로운 검찰총장이 백발공적을 보호한다 +10 24.09.12 4,834 107 30쪽
56 (55) 총장의 자백으로 3조 폰지 사기를 부수다 +22 24.09.09 5,141 130 28쪽
55 (54) XBC 폭로로 현직 총장 사모를 붙잡다 +18 24.09.07 5,119 121 28쪽
54 (53) 황금금강석 멤버들은 그린벨트에 3조를 투자한다 +12 24.09.04 5,447 108 28쪽
53 (52) 총장 사모님이 피라미드 거물이다 +20 24.08.30 5,786 114 28쪽
52 (51) 3조짜리 피라미드 조직을 잡아보자 +18 24.08.29 5,958 125 29쪽
51 (50) 나유신이 첫 휴가지에서 상속녀를 보다 +26 24.08.24 6,587 139 31쪽
50 (49) 초보형 전시안으로 사채왕을 발견하다 +15 24.08.22 6,535 153 30쪽
49 (48) 회장 등극식에서 대법관을 이용해 진범을 잡다 +19 24.08.20 6,660 163 21쪽
48 (47) 재벌 회장이 되게 해주세요 +25 24.08.18 6,752 154 34쪽
47 (46) 특수부 폭력이 조폭 진범보다 위다 +20 24.08.14 6,952 167 34쪽
46 (45) 강앤함과 월야 재벌가의 동상이몽을 털어라 +12 24.08.12 7,103 154 24쪽
45 (44) 월야그룹 살인사건을 만나다 +12 24.08.08 7,752 151 25쪽
44 (43) 나유신의 팀을 수도대 동문회에서 완성하다 +14 24.08.06 8,144 166 35쪽
43 (42) 백사여, 노담에서 다시 시작해라 +20 24.08.02 8,276 176 29쪽
42 (41) 시한부 연장권과 함께 중수부가 폐지되다 +20 24.07.31 8,108 193 20쪽
41 (40) 백발이가 사채왕을 잡다 +27 24.07.30 8,031 194 21쪽
40 (39) 이렇게 된 이상 선제 폭로로 중수부를 친다 +14 24.07.28 7,969 194 19쪽
39 (38) 진짜는 미래살인 배후 사채왕이다 +16 24.07.26 7,969 188 21쪽
38 (37) 금수저 비밀 정보로 스캔들 범인부터 잡다 +19 24.07.24 8,006 184 32쪽
37 (36) 이건 중수부의 운명이 걸린 사건이다 +14 24.07.19 8,127 178 30쪽
36 (35) 위치 추적 보상과 함께 서울시장 스캔들을 만나다 +22 24.07.17 8,422 186 23쪽
35 (34) 진짜 마약범을 잡고 금수저 변호사와 손잡다 +27 24.07.15 8,367 195 22쪽
34 (33) 골드스컬 클럽을 함정으로 일망타진하다 +17 24.07.14 8,305 190 23쪽
33 (32) 조기유학 금수저 학폭이 사건 진상이다 +16 24.07.10 8,383 182 23쪽
32 (31) 철벽의 성을 대규모 교사 시위로 넘어볼까 +13 24.07.08 8,320 187 22쪽
31 (30) 학교폭력 연쇄 자살사건이 터졌다 +15 24.07.05 8,708 182 22쪽
30 (29) 한국 재계를 뒤엎을 진짜 거물을 만나다 +21 24.07.03 9,008 194 24쪽
29 (28) 노동 살해 협박으로 진범을 잡다 +16 24.07.01 8,855 201 22쪽
28 (27) 솔라코인 전관 법무팀의 방어를 뚫어라 +15 24.06.27 9,043 196 21쪽
» (26) 특수부 첫 사건은 1조원 분식회계다 +17 24.06.26 9,385 198 22쪽
26 (25) 중수부장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받다 +15 24.06.24 9,589 201 35쪽
25 (24) 백발이를 죽인 자에게 진짜 복수를 해보자 +16 24.06.19 9,315 198 34쪽
24 (23) 백사가 또 검사를 잡았다 +22 24.06.18 9,397 200 22쪽
23 (22) 특수부식 예단수사로 마약통관범을 잡아라 +11 24.06.15 9,441 197 23쪽
22 (21) 이 나라에는 마약도 너무 많다 +17 24.06.13 10,215 210 24쪽
21 (20) 첫 기자회견과 함께 위수증 5백억 코인이 남다 +19 24.06.07 10,211 224 36쪽
20 (19) 5초 예지로 폭발 속 범인을 잡다 +14 24.06.06 10,104 221 24쪽
19 (18) 감옥에 보낼 놈은 내가 고른다 +14 24.06.04 10,091 218 18쪽
18 (17) 1천억 비트코인 사건을 5초 예지로 파헤치자 +14 24.05.31 11,100 219 31쪽
17 (16) 나를 건드리면 검찰총장 예정자도 가만 안 둔다 +25 24.05.29 10,979 233 26쪽
16 (15) 독사를 건드리면 제왕도 문다 +20 24.05.27 11,055 237 30쪽
15 (14) 공판부 땜방으로 백발검사를 보내라 +10 24.05.24 11,550 223 30쪽
14 (13) 언론비리 일망타진으로 신체감정 보상을 받다 +11 24.05.23 12,155 230 31쪽
13 (12) 특활비 별건수사로 무전취식 기자를 잡자 +12 24.05.21 12,245 237 21쪽
12 (11) 사고뭉치에게는 법카부터 먹여줘라 +13 24.05.20 13,451 243 21쪽
11 (10) 나유신이 주가조작 일당을 함정수사로 잡았다 +17 24.05.20 13,516 262 21쪽
10 (9) 오풍제지 그래핀 사기를 경찰공조로 잡는다 +16 24.05.18 14,348 257 25쪽
9 (8) 정오판정으로 오풍제지 주가조작을 발견하다 +16 24.05.17 14,706 276 15쪽
8 (7) 선배가 장애물이면 부수고 해결한다 +15 24.05.14 15,098 280 22쪽
7 (6) 상태창의 보상은 놓칠 수 없다 +23 24.05.12 15,957 296 27쪽
6 (5) 의원 하나 잡고 시작하자 +20 24.05.11 15,732 290 14쪽
5 (4) 신입 수석검사가 꼴통이래 +15 24.05.10 16,983 307 15쪽
4 (3) 범인을 잡으니 시한부 연장 +16 24.05.09 18,128 292 11쪽
3 (2) 우선 범인부터 잡고 죽자 +17 24.05.08 19,693 312 13쪽
2 (1) 백발 신입검사 나유신 +25 24.05.08 22,926 354 11쪽
1 프롤로그 : 시한부 상태창이 생겼다 +42 24.05.08 30,118 416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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