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검사는 거물이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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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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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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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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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0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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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11) 사고뭉치에게는 법카부터 먹여줘라

DUMMY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가 눈앞에 보인다.


「나검, 적당히 하게. 원래, 때로 눈 감아야 할 때도 있는 걸세. 응? 무슨 말인지 알지?」


가장 먼저 나타난 자는 다름 아닌 배지밀이다.


별로 친하지도 않았지만 어젯밤 회식에서 본 게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사실 [조언] 자체는 그리 특이한 것도 아니었다.

당시, 나유신이 궁지에 몰려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태양그룹 3세가 엮인 살인사건.

여기에, 살인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좌천성 인사를 발령하던 상부.

분명 처음에는 수사하라더니 덮으라던 직속 선배.


물론 그게 시작은 아니다.


「야, 정신 차려. 너만 잘났어? 너만 수석이야? 나도 내 때는 수석이었어.」

「이러다 잘린다? 부장도 되기 전에 옷 벗고 싶어? 너, 요새 변호사가 몇 명인 줄 아냐? 곧 3만이 넘어.」

「절대로 나대지 마라. 이건 상부지시다. 검사동일체 알지?」


그 전에도, 수많은 사건들이 있었다.


「이런 멍청한 녀석. 그러니까 [철검회]에서 잘리지! 너, 그러다 우리 쪽에서도 밀려나고 싶어? 어?」


10년, 긴 시간이다.


철검회, 철저 수사를 지향하는 검사들의 모임.

최고권력을 수사했던 특수부 팀이 모여 만든 사조직.

그 조직에 나유신도 한 발 들어간 적이 있다.


들어가기만 하면 출세할 거라고 동기와 선배들이 시샘하고 질투했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다.

철검회 멤버들은 하나 같이 출세를 거듭했으니까.


다만 [선배]의 지시를 [철저]하게 듣는 후배들만.


「이 사건 덮는다.」


주시평, 직속 선배였던 남자가 보인다.


철검회에서 밀려난 후, 한참 동안 보지 못했던 선배.

그러다 태양그룹 사건 때 다시 보게 되었다.

반가웠던 마음도 잠시.


돌아온 것은 수사중단 지시.


「절대 여기서 더 나가지 마. 그냥 잡고만 있어.」

「하지만, 정황이 너무 명백합니다. 일단 피의자 조사라도.」

「야, 백발이. 너 제정신이야? 이게 만약에 잘못된 판단이라고 나오면 너 하나로 책임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


주시평은 나유신에게 강요했다.


「나는 물론이고, 심상우 선배까지 날아가. 아니, 그 이상이 될 수도 있지. 어쩌면.」


물론 법률상 모든 검사는 독립적이다.

중단 강요 따위, 거부할 수도 있다.

허나 나유신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서수휘 총장님이 날아가실 수도 있다고. 알지? 그분, 차기 장관도, 어쩌면 그 이상도 되실 수도 있는 분인 거.」


만약 그 말을 차라리 완전히 들었다면 좋았을까?

적어도 죽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인생에서는 때로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는 순간이 있다.


「도와주세요, 검사님.」


피해자 유족의 한 마디.


어차피 사람은 죽고 피해자는 넘쳐난다.

그러니 무시하고 외면했다면 그뿐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밟혀, 결국 조사만 했다.


오로지 조금, 조사만.


「그러니까, 예단하지마! 절대로! 검사는 확실한 증거 없이는 움직여서는 안 돼! 내 말 명심해!」


그게 주시평에게 들었던 마지막 얘기다.

하지만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명백한 증거가 나왔기 때문이다.


다시, 배지밀이 보인다.


「이런, 나검. 적당히 하게. 적당히. 더 나가면, 위험해.」


그저 부드럽게 건넨 심상한 충고일 뿐이다.

사실 나유신에게 악의를 품었던 자도 아니다.

허나 그자를 본 순간 모든 게 다시 떠올랐다.


“시발, 예단할 거야. 나는!”


나유신은 눈을 떴다.


꿈이다.

지금은 그 모든 사건이 일어나기 10년 전.

그러니 나유신이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르기도 전이다.


“헉, 헉, 헉. 그래. 아직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어.”


나유신이 눈앞에 떠오르는 황금문자를 보았다.


“아무것도. 그러니까, 바꿀 수 있어.”


왜냐면 목숨을 건 시한부 인생은 못할 게 없기 때문이다.


***


그러니까 배지밀은 나유신의 상관이었던 적이 없다.


“배지밀, 대검 기조실 출신. 전형적인 기획통인데.”


검찰은 파벌이 지배한다.


물론 외부에서 검사에게 물어보면 파벌 같은 것은 없다고 정색할 것이다.

개뻥이다.

학연과 기수, 그리고 무엇보다 특별한 사건 수사 경험을 함께 한 집단이 강한 파벌을 구성한다.


당연히 일반 형사사건으로는 파벌이 형성될 수 없다.

나아가 형사부만 전전해서는 출세 자체가 어려우니 파벌이고 뭐고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검찰의 10프로.


특별한 보직과 사건을 맡아 출세하는 집단이 있다.


“이 작자 위에 누가 있었더라? 유세풍이었나? 지금 유세풍이 어디 있었지?”


나유신은 머리를 긁적이다 원룸 안, 노트북을 켰다.


-〈이프로스, 외부 접속 허가〉


이프로스, 검찰 종합정보통신망의 줄임말이다.


인터넷이 생겨날 때부터 만들어졌는데, 따지고 보면 검찰 내부의 인트라넷이다.

사건 정보, 업무 지시사항, 커뮤니티 활동처럼 군대 인트라넷과 구성은 크게 다를 것도 없다.

그런데 검사 특유의 문화가 이프로스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항명.

어이없게도 검사동일체와 계서제를 중시하는 검사들은 툭하면 윗선에 반항한다.

가끔은 검찰총장을 흔들어서 퇴직시킬 정도다.


그 항명이 여론화되는 통로가 바로 이프로스다.

물론 나유신은 여론 조성을 위해 이프로스에 접속한 것은 아니다.

직제를 보기 위해서다.


잠시 이프로스를 뒤적이던 나유신이 눈에 이채를 띠었다.


“수도 고검? 지금 고검장이 장사성이었나? 이 사람이 아직도 안 물러났어?”


어렴풋한 기억이 있다.


차기 검찰총장 물망에 오르다, 결국 오르지 못하고 떠난 남자.

역시 배지밀과 마찬가지로 기획통이다.

그럼 기획통은 뭘까?


대검 기획조정실이나 법무부 기획부서를 돌며, 행정기획을 주무로 하는 사람들이다.

보통 기업이라면 핵심 중의 핵심이겠지만, 검찰에선 꼭 그렇지는 않다.

스타 검사는 결국 사건 수사에서 탄생하기 마련이니까.


그래도 일반 형사부보다는 핵심에 더 가까운 것은 확실하다.


“설마 고검장 차원에서 날 주목하진 않았을 거고. 유세풍 차장인가.”


나유신이 유세풍의 사진을 보다 미간을 좁혔다.


“하지만 더 골치 아픈 건 역시, 배지밀이지.”


지금 당장은 장사성이나 유세풍이 높다.


하지만 10년 후까지 살아남는 쪽은 단연 배지밀이다.

단순히 연차가 낮아서가 아니라 줄을 아주 잘 서기 때문이다.

경쟁과 분쟁, 항명이 가득한 검찰 조직을 유연하게 살아남는 남자.


그런데 이 출세에도 능란할 수완가가 하필 시궁창 노담에 있다?


“아, 이 너구리가 하필 왜 여기 있는 거지? 그것도, 지금. 수도중앙지검이나 대검도 아니고.”


나유신은 미간을 좁혔다.


“서수휘나 주시평과 달리, 기획통. 특수통과 공안통, 거기에 [철검회]가 싸우는 와중에 어부지리를 노리는 쪽인데.”


특수부를 자주 드나드는 특수통.

공안부를 거친 공안통.

그렇지만 이런 단순한 분류만으로는 검찰 내 파벌을 완전 분석하긴 어렵다.


무엇보다 특수통으로도, 공안통으로도 분류하기 어려운 특수집단.

철검회가 검찰 내부 주도권을 쥘 테니까.

배지밀은 이런 혼란한 와중에도 능란하게 출세하는 자다.


“게다가 특수통 내에서도 파벌이 갈릴 때, 잽싸게 갈아타는 솜씨까지 보였지. 그런 작자가 날 주시한다?”


문득 나유신이 옛일을 떠올리며 입맛을 다셨다.


“아주 이상한 일이야.”


뭔가 나유신이 모르는 속사정이 있다.

대체 그게 뭘까?

사실 회귀 전의 [전생]에서 나유신은 파벌 활동을 제대로 한 적이 없다.


그래서 더욱 이 상황이 이해가 안갈 때다.


-〈다음 뉴스입니다. 오풍제지 주가조작 일당이 자백했습니다. 노담지검은 배후에 사채업계의 거물, 오 모 회장이 있다고 보고 수사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문득 배경음악처럼 틀어놓은 TV에서 나오는 뉴스를 듣다, 나유신이 미간을 찌푸렸다.


“오 회장이 뒤에 있다고? 저건 또 누가 말한 거람? 그건 그렇고.”


사채업자 [오회장]의 이름을 떠올리다, 나유신이 이를 갈았다.


“언젠가 잡아야 할 자가 하나 더 늘었군.”


진정한 거악은 아직 거리를 횡보한다.

주가조작으로 수많은 가정이 도탄에 빠졌어도.


***


하지만 지금 당장 거악을 때려잡으러 갈 수는 없다.


-틱!


아직 나유신은 창고방을 쓴다.


이제는 부장이 사실상 바뀌었으니 형사 3부로 가도 된다.

하지만 혼자서 일하는 게 편한 터라 이곳을 개인사무실처럼 사용하는 거다.

어차피 사람이 죽어 나간 곳이라 다른 사람들이 탐내지 않는다는 것도 주효했다.


가볍게 블랙카드를 들어보이다 나유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특활비라. 이걸 왜 줬지?”


노담지청에 출근하자 책상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배지밀이 술자리에서 농담하나 했는데 정말이었던 모양이다.

대체 왜 특활비, 그러니까 특수활동비 법인카드를 나유신에게 줬을까?

보통은 아끼는 부하에게나 수고했다고 한 턱 쏠 때 쓰는 카드다.


“설마 날 아끼는 건 아닐 텐데.”


나유신이 골똘히 생각에 잠기고 있을 때, 구형 스마트폰에 알림이 떴다.


-삑!


나유신은 깜짝 놀라 시계를 보았다.

10시.

증권거래소가 개장할 시간이다.


“아차, 주식거래 할 시간이군. 어디 보자. 초기형이라 굉장히 불편한걸.”


나유신은 스마트폰으로 증권앱을 켜며 입맛을 다셨다.


업무 시간에 주식거래를 하는 건 사실 규율 위반이다.

허나 주가조작 사건 때 주식에 눈을 뜬 후, 나유신은 자주 주식거래를 하는 중이다.

딱히 10년 전 주가 따위는 떠오르지 않지만, 나유신에게는 비장의 병기가 있다.


바로, 정오판정이다.


[RN홀딩스, 주가 상승. 화성유니온 하락 예상.]


어쩐지 기억에 있는 이름에 나유신이 휘파람을 불었다.


“RN? 이게 이 무렵에 창업했나? 나랑 크게 관련 있던 회사는 아니지만. 흐음.”


향후 초거대기업이 될 스타트업 이름이다.

반면 화성이라면 또 다른 이유로 유명하다.

잠시 10년 후, 법조계 거물이 될 [동기]를 떠올리다 나유신이 고개를 기울였다.


“화성이면 혹시 법무법인 로펙의 한강민 그룹인가? 이게 이렇게 떨어지네. 경영이 엉망인걸.”


나름 10대 그룹 주식이 나락으로 가는 꼴을 보다, 나유신의 손이 멈췄다.


급한 [용돈벌이] 거래는 끝났다.

사실 종잣돈이 소액이라 상승과 하락을 알아도 크게 벌지는 못한다.

대충 수사진행비에 보탤만큼 벌 정도랄까.


하지만 주식시장을 보다 떠오른 게 있다.

10년, 스마트폰 등장 후 격변하는 시대.

그 시대를 이미 살았다는 실감이 들었다.


RN그룹, 화성그룹, 거기에 동기생이 열었던 대형로펌 로펙까지.


“내가 모르는 사이, 세상이 정말 끊임없이 격변하고 있었군.”


아무래도 세상 일에 관심을 많이 가져야겠다 생각할 찰나.


-우우웅!


스마트폰이 울렸다.


“예, 나유신 검사입니다.”


나유신이 전화를 받자 엉뚱하게도 스마트폰 너머, 배지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배지밀 차장이네. 술은 다 깼나?]

“예, 아, 저는 원래 숙취 같은 건 없습니다.”

[다행이군. 내 방으로 오게.]


그 순간, 나유신은 어젯밤 배지밀이 했던 말을 떠올려야 했다.


[청소를 시작해 줘야겠어.]


아무래도, 정말 일을 시킬 모양이다.

부패 언론 청소를.


***


본래 특수활동비는 어떤 기관이든, 기관장 결재 사항이다.


“아니, 배 차장. 그 독사 놈한테 특활비 카드를 주면 어떡해?”


이름처럼 특활비는 주로 기밀 유지 사안에 쓰인다.


정보원의 정보 수집, 기무사의 안보 사안, 혹은 검찰의 특수 수사.

그래서 이런 특수활동비는 보통 외부에 용처가 공개가 안 된다.

아니, 규모 자체가 비밀이다.


물론 한국은 정해진 대로만 굴러가는 나라가 아니다.

또한 특활비가 있는 기관이라고 해서, 언제나 특활비를 쓸 일이 발생하지도 않는다.

한데 예산이란 쓰지 않으면 사라지기 마련.


때문에 특활비는 ‘다른’ 용도로 쓰이곤 한다.

그런데 이 중요한 돈을 나유신에게 줘버린 셈이다.

강유중 지청장이 펄펄 날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지청장님?”

“당연히 있지! 우리 지청에 내려온 특활비는 실상 명절 떡값이잖아. 누가 저걸 갖고 수사에 써? 그런데, 저놈에게 다 줘버리면 올해 떡값은!”

“지청장님, 그건 잘못된 관행입니다. 후훗.”


배지밀이 커피를 우아하게 마시며 대꾸했다.


“특활비는 어디까지나 기밀 수사를 위한 거죠. 물론 가끔 공안 문제에 쓸 때도 있고, 또 가끔은 수사관들 복지를 위해서 쓸 때도 있지만.”


그러니까 사실상 격려성 명절 상여금으로 쓰이고 있다.


물론 배지밀 말대로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다.

그렇지만 원칙대로 어떻게 조직을 굴린단 말인가?

검사의 월급은 일견 많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일단 검사는 기본적으로 수백 건의 사건을 항상 들고 있다.

이런 사건들마다 붙어 있는 서류들의 양도 장난이 아니다.

또한 조직 특성상 술자리 없이는 원활한 소통이 어려워서 회식도 일상적이다.


그래서 이래저래 밤샘 근무가 많다.

이런 노동시간을 고려하면 검사의 초봉 월 5백은 결코 많은 돈이 아니다.

아무리 다른 방식, 이를테면 권력으로 보상된다고 하지만 한계가 있다.


그래서 격려성으로 지급하는 게 명절 특활비인데, 그게 다 날아가게 생겼다.


“이런 주목할만한 신예가 왔을 때는, 당연히 수사에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자마자 벌써 3건이나 해치웠던데요.”

“3건? 뭐야, 내가 모르는 사건이 또 있었나? 일단 저놈이 엄상전 의원에 오풍제지까지 날려먹어서, 이 지역 유지들이 난리가 난 건 기억해.”

“벌써 잊으셨습니까? 이충우, 그 쓰레기도 날렸잖습니까.”


노담지청 차장, 배지밀이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만약 나검이 날리지 않았다면 제가 감찰부에 던졌을 겁니다. 헤쳐 먹어도 너무 먹었어요. 심지어 성매매업소까지 봐줄 정도였으니.”


그 말에 강유중은 낯을 찡그렸다.


부하의 비리는 곧 상관의 감독 실패다.

그래도 함께 비리를 저지른 게 아니라는 게 강유중의 숨은 자랑인데, 배지밀은 그것마저 짓밟는 셈이다.

하지만 그것도 좋다고 넘어갈 수 있다.


문제는 하필 배지밀이 법인카드를 내준 상대가 나유신이란 거다.


“그래서, 그 백발독사가 사고 더 치도록 부추기려고?”

“기대하는 겁니다. 꼭 제가 아니라도, 윗선에서도 주목하기 시작했으니까요.”

“그놈이 서수휘 남부 차장에게 찍혔단 얘기는 나도 알아. 서수휘한테 나까지 찍히란 말이야?”


강유중이 으르렁거리자 배지밀이 슬쩍 물러나며 달랬다.


“어차피 지청장님께는 후배 아닙니까. 걱정 마시지요. 유세풍 대검차장님이 잘 보고 계시니까요.”


서수휘, 특수통 선두로 향후 최고까지 올라갈 가능성이 높은 자.

유세풍, 기획통 멤버들의 좌장으로 만만치 않은 네트워크를 지닌 검사.

당연히 강유중은 어느 쪽도 아닌데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기도 싫다.


“지밀아, 나 무사히 은퇴하고 싶다?”

“누가 뭐랬습니까? 제가 언제 지청장님이 무슨 과오를 저질렀다고 했습니까? 물론 부하가 부패하긴 했지만, 전부 보살피실 수야 없는 거고.”

“부패검사 따위는 언제나 있어. 하지만 선배 잡아먹는 독사는 진짜 잘 없다고.”


강유중이 결국 다시 이를 드러냈다.


“서수휘 같은 미친놈 아니면 말야. 너, 진짜 내가 그 새끼에게 당하고 은퇴하게 하진 않을 거지?”


배지밀은 이럴 때 선배를 다그치는 검사는 아니다.


“걱정 마십시오. 이번 시험 통과 못 하면 나검이 나가리 될 겁니다.”

“뭐 때문에?”

“여기, 이거 보시죠.”


문득 배지밀이 내민 문서를 보던 강유중이 기가 막혀 소리쳤다.


“허, 벌써부터 외부에서도 찍혔어. 이 백발이 녀석?”


아무래도 나유신의 적은 검찰에만 있는 게 아닌 모양이다.


***


나유신은 차장실에 처음 온다.


“언론사를 대상으로 기획수사를 하라구요?”


넓이는 지청장실보다 조금 작다.

하지만 장식물이나 놓여 있는 기념패를 보면 지청장보다 훨씬 화려하다.

차장실 주인이 얼마나 마당발로 돌아다녔는지 알 수 있을 정도랄까.


잠시 중앙 일간지에서 받은 기념패를 곁눈질하며, 나유신이 묻자 배지밀은 어깨를 으쓱였다.


“표현이 이상하군. 어디까지나 협찬을 빌미로 기사 협박을 하는 언론인들을 잡아내자는 거야.”

“그게 그거 아닙니까? 고소나 고발 들어온 게 있나요?”

“우후후, 정말 선배든 상관이든 누구 앞에서도 거침이 없군. 듣던 대로.”


배지밀은 미소 짓다 지청장에게 보여주었던 서류를 내밀었다.


“하지만 이건 자네를 위해서기도 해. 내가 이 기사를 막아줬거든.”


별 생각 없이 서류를 받아들던 나유신이 눈을 크게 떴다.


-〈검사인가, 사냥꾼인가. 함정수사 일삼는 노담의 백사. 검사의 자격 의심?〉


일단 [백발독사]의 줄임말, 백사가 나온 것부터 나유신이 확실하다.

한데 제목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내용이다.

대체 누가 이런 기사를 썼을까?


“이게 뭡니까?”

“얼마 전, 노담시민뉴스 사회팀에서 보도하려던 기사야. 내가 막았지. 아, 참고로 노담시민뉴스는 우리 지역 인터넷 언론이라네. 꽤 열심이지.”

“제가 뭘 잘못했다고 이런 기사가 나온다는 겁니까?”


나유신이 기가 막혀 묻자 배지밀이 천연덕스레 대답했다.


“몰라서 묻나? 자네는 주가조작 수사 과정에서 선배 검사를 사칭했지. 게다가 주가조작범들 말로는 자네에게 주식도 줬다던데?”


순간 나유신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물론 안전장치는 다 해놓았다.

허나 수사보고서에 올라간 내용도 아닌데 어떻게 전후사정까지 알까?

혹시 형사 3부에서 누가 정보를 줬다면 모를까.


숨을 고르던 나유신이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대가를 지불했고 상호합의된 사건이었습니다. 게다가 주가조작은 그 단계에선 정식 수사단계가 아니었죠. 의혹만 있었을 뿐.”

“그래. 진술서에 따르면 이렇게 되어 있더군. 친분이 있는 경찰과 함께 투자 목적으로 갔고, 거기서 수상한 점을 발견했다고?”

“맞습니다. 또한 당시 받았던 주식은 제게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민원인, 김충선의 가족을 위해서 받았던 주식이다.


혹시 누군가 문제 삼을 수는 있다.

하지만 나유신은 단 한 점도 부끄러움은 없었다.

사리사욕으로 받지도 않았고, 사적으로 쓰지도 않았으니까.


가만히 나유신을 보던 배지밀이 어깨를 으쓱였다.


“좋아. 검사가 주식거래를 하는 게 불법은 아니지.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이 [부적절]했다는 건, 부정하기 어렵지?”


나유신이 차갑게 배지밀을 응시했다.


“그래서, 저보고 언론을 치라는 거군요.”

“지역 언론사는 원래 문제가 많아. 특히 기사를 대가로 뒷돈을 받는 일이 빈번하지.”

“배임수재로 전부 잡아넣으란 말입니까?”


배지밀이 킬킬 웃더니 서류를 튝튝 치며 말했다.


“그건 곤란하겠지? 하지만 기획수사란 건 적정선이 중요한 거야. 이건, 테스트라네. 나검.”


그러니까 이런 얘기다.


나유신의 사건 처리 방식은 적절하지 않다.

또한 그 방식이 언론에 새어나가서 지역 인터넷 언론이 떠들기 직전이다.

그러니 사고 터지기 전에 먼저 쳐라.


물론 그 과정에서 언론의 제물이 되어도 배지밀은 알 바 아닐 것이다.


“알겠습니다.”


결국 나유신은 일단 명령을 수용하기로 했다.


***


이 모든 일의 단초는 생각해보면 염민아의 소개에서 비롯되었다.


“차장님 눈에 들었나 보네? 우리 백발 나검?”


차장실에서 나오는 길.

복도 끝에 염민아가 기댄 채 웃으며 보고 있었다.

평소라면 서류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을 텐데 오늘은 멀쩡한 게, 일이 비는 날인 모양이다.


나유신은 염민아에게 다가가 투덜댔다.


“이게 무슨 신사예요? 협박만 하던데.”

“배워야지. 웃으면서 칼 꽂는 사람도 있다는 걸.”

“지금 내 앞에서 웃는 사람은 선배뿐인데요.”


염민아는 키득 웃다 낮게 일렀다.


“어차피 노담지검에 2년은 있을 거 아냐? 너 하는 거 봐선 더 처박혀 있을 수도 있고. 그거 생각하면 결국 차장 눈에 들어왔을 거야.”


요컨대 배지밀에게 전후사정을 [누설]한 게 염민아란 소리다.


물론 꼭 염민아가 아니라도 지청의 2인자, 배지밀이 나유신을 주목했을 가능성은 크다.

주가조작이야 둘째치더라도 엄상전 의원을 날려버린 장본인이니까.

하지만 나유신 입장에선 배지밀과 마주한 것 자체가 달갑잖다.


옛날, 혹은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뭐, 이렇게 된 거 선배가 책임 좀 지셔야겠는데요.”

“왜지?”

“제 계획보다 너무 빨리 차장과 마주친 건, 선배 탓도 있는 것 같거든요.”


염민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래? 나검은 비가 오면 일기 예보를 탓할 거야? 게다가 내가 뭘 도와줘? 나도 일 많아.”


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나유신 입장에서는 당장 도움이 필요하다.


“기자나 하나 소개시켜줘요.”

“왜? 정보 듣게?”

“아뇨.”


나유신이 문제의 서류를 내밀었다.


“이 망할 기사를 내보낼 기자가 필요해요.”


염민아는 서류를 받아들다 아까의 나유신과 똑같이 놀란 표정이 되었다.


-〈검사의 자격이 의심? 노담의 사고검사 나유신!〉


그 순간, 나유신은 검은 색 카드를 들어올렸다.


“일단, 블랙 카드를 써먹을 상대가 필요하니까.”


왜 나유신이 명령을 수용하기로 했을까?

그것도 과거를 떠올리게 만드는, 좋은 게 좋다는 썩은 선배의 명령을?

아주 간단한 이유다.


[블랙 카드를 써서 부패기자를 잡으시오. 대상 0/10. 기한은 D-30]


다시, 시한부 알림이 떴으니까.


작가의말

* 이번 에피소드는 검찰 파벌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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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검사는 거물이 되기로 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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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임시) 제목 변경(검찰청 망나니->신입검사 거물) 24.09.02 315 0 -
공지 연재시간(오후 10시, 주6일) 24.05.08 17,919 0 -
59 (58) 재벌가 상속녀도 보이스피싱을 당한다 NEW +11 14시간 전 2,346 53 9쪽
58 (57) 전시안 보유 시한부 인생은 무서울 게 없다 +10 24.09.17 3,637 84 29쪽
57 (56) 새로운 검찰총장이 백발공적을 보호한다 +10 24.09.12 4,834 107 30쪽
56 (55) 총장의 자백으로 3조 폰지 사기를 부수다 +22 24.09.09 5,143 130 28쪽
55 (54) XBC 폭로로 현직 총장 사모를 붙잡다 +18 24.09.07 5,119 121 28쪽
54 (53) 황금금강석 멤버들은 그린벨트에 3조를 투자한다 +12 24.09.04 5,448 108 28쪽
53 (52) 총장 사모님이 피라미드 거물이다 +20 24.08.30 5,787 114 28쪽
52 (51) 3조짜리 피라미드 조직을 잡아보자 +18 24.08.29 5,959 126 29쪽
51 (50) 나유신이 첫 휴가지에서 상속녀를 보다 +26 24.08.24 6,587 139 31쪽
50 (49) 초보형 전시안으로 사채왕을 발견하다 +15 24.08.22 6,536 153 30쪽
49 (48) 회장 등극식에서 대법관을 이용해 진범을 잡다 +19 24.08.20 6,660 163 21쪽
48 (47) 재벌 회장이 되게 해주세요 +25 24.08.18 6,753 154 34쪽
47 (46) 특수부 폭력이 조폭 진범보다 위다 +20 24.08.14 6,953 167 34쪽
46 (45) 강앤함과 월야 재벌가의 동상이몽을 털어라 +12 24.08.12 7,103 154 24쪽
45 (44) 월야그룹 살인사건을 만나다 +12 24.08.08 7,752 151 25쪽
44 (43) 나유신의 팀을 수도대 동문회에서 완성하다 +14 24.08.06 8,144 166 35쪽
43 (42) 백사여, 노담에서 다시 시작해라 +20 24.08.02 8,276 176 29쪽
42 (41) 시한부 연장권과 함께 중수부가 폐지되다 +20 24.07.31 8,110 193 20쪽
41 (40) 백발이가 사채왕을 잡다 +27 24.07.30 8,031 194 21쪽
40 (39) 이렇게 된 이상 선제 폭로로 중수부를 친다 +14 24.07.28 7,969 194 19쪽
39 (38) 진짜는 미래살인 배후 사채왕이다 +16 24.07.26 7,969 188 21쪽
38 (37) 금수저 비밀 정보로 스캔들 범인부터 잡다 +19 24.07.24 8,007 184 32쪽
37 (36) 이건 중수부의 운명이 걸린 사건이다 +14 24.07.19 8,127 178 30쪽
36 (35) 위치 추적 보상과 함께 서울시장 스캔들을 만나다 +22 24.07.17 8,422 186 23쪽
35 (34) 진짜 마약범을 잡고 금수저 변호사와 손잡다 +27 24.07.15 8,367 195 22쪽
34 (33) 골드스컬 클럽을 함정으로 일망타진하다 +17 24.07.14 8,306 190 23쪽
33 (32) 조기유학 금수저 학폭이 사건 진상이다 +16 24.07.10 8,383 182 23쪽
32 (31) 철벽의 성을 대규모 교사 시위로 넘어볼까 +13 24.07.08 8,321 187 22쪽
31 (30) 학교폭력 연쇄 자살사건이 터졌다 +15 24.07.05 8,709 182 22쪽
30 (29) 한국 재계를 뒤엎을 진짜 거물을 만나다 +21 24.07.03 9,008 194 24쪽
29 (28) 노동 살해 협박으로 진범을 잡다 +16 24.07.01 8,856 201 22쪽
28 (27) 솔라코인 전관 법무팀의 방어를 뚫어라 +15 24.06.27 9,043 196 21쪽
27 (26) 특수부 첫 사건은 1조원 분식회계다 +17 24.06.26 9,385 198 22쪽
26 (25) 중수부장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받다 +15 24.06.24 9,590 201 35쪽
25 (24) 백발이를 죽인 자에게 진짜 복수를 해보자 +16 24.06.19 9,316 198 34쪽
24 (23) 백사가 또 검사를 잡았다 +22 24.06.18 9,397 200 22쪽
23 (22) 특수부식 예단수사로 마약통관범을 잡아라 +11 24.06.15 9,441 197 23쪽
22 (21) 이 나라에는 마약도 너무 많다 +17 24.06.13 10,215 210 24쪽
21 (20) 첫 기자회견과 함께 위수증 5백억 코인이 남다 +19 24.06.07 10,211 224 36쪽
20 (19) 5초 예지로 폭발 속 범인을 잡다 +14 24.06.06 10,104 221 24쪽
19 (18) 감옥에 보낼 놈은 내가 고른다 +14 24.06.04 10,091 218 18쪽
18 (17) 1천억 비트코인 사건을 5초 예지로 파헤치자 +14 24.05.31 11,100 219 31쪽
17 (16) 나를 건드리면 검찰총장 예정자도 가만 안 둔다 +25 24.05.29 10,979 233 26쪽
16 (15) 독사를 건드리면 제왕도 문다 +20 24.05.27 11,057 237 30쪽
15 (14) 공판부 땜방으로 백발검사를 보내라 +10 24.05.24 11,550 223 30쪽
14 (13) 언론비리 일망타진으로 신체감정 보상을 받다 +11 24.05.23 12,155 230 31쪽
13 (12) 특활비 별건수사로 무전취식 기자를 잡자 +12 24.05.21 12,245 237 21쪽
» (11) 사고뭉치에게는 법카부터 먹여줘라 +13 24.05.20 13,452 243 21쪽
11 (10) 나유신이 주가조작 일당을 함정수사로 잡았다 +17 24.05.20 13,516 262 21쪽
10 (9) 오풍제지 그래핀 사기를 경찰공조로 잡는다 +16 24.05.18 14,348 257 25쪽
9 (8) 정오판정으로 오풍제지 주가조작을 발견하다 +16 24.05.17 14,706 276 15쪽
8 (7) 선배가 장애물이면 부수고 해결한다 +15 24.05.14 15,099 280 22쪽
7 (6) 상태창의 보상은 놓칠 수 없다 +23 24.05.12 15,957 296 27쪽
6 (5) 의원 하나 잡고 시작하자 +20 24.05.11 15,732 290 14쪽
5 (4) 신입 수석검사가 꼴통이래 +15 24.05.10 16,983 307 15쪽
4 (3) 범인을 잡으니 시한부 연장 +16 24.05.09 18,129 292 11쪽
3 (2) 우선 범인부터 잡고 죽자 +17 24.05.08 19,693 312 13쪽
2 (1) 백발 신입검사 나유신 +25 24.05.08 22,926 354 11쪽
1 프롤로그 : 시한부 상태창이 생겼다 +42 24.05.08 30,120 416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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