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시한부 상태창이 생겼다
공부가 제일 쉬웠다.
그리고, 공부만 제일 쉬웠다.
[아인슈타인이 천재냐. 아니면, 고시수석이 더 천재냐?]
이런 얘기가 고시생 사이에는 있다.
병신 같은 소리다.
말할 것도 없이 당연히 아인슈타인이지.
하지만 법을 공부하는 고시생들은 이렇게 헛소리를 한다.
어처구니 없게도.
[당연히 고시수석, 대법관이 천재 아니에요?]
이런 사람들 사이에서, 대한민국을 이끄는 법조계 인사들이 나온다는 게 기적이다.
그 기준대로라면 나는 아인슈타인보다 위대한 [천재]다.
왜?
수도대 로스쿨 수석, 변호사시험 수석, 그리고 검사 시험 수석.
만약 사시가 남아 있었다면 내가 단연 수석이었을 거다.
[10대의 나이로 최연소 수석 로스쿨 입학!]
[단번에 검사시험 패스! 군법무관 종료 후 당당히 합격하다!]
[천재검사, 나유신을 만나다!]
아, 나유신이 누구냐고?
내 이름이야.
그러니까 공부는 내게 별로 어려운 게 아니었다.
한 번 보면 스크린하듯 모든 걸 다 외웠다.
남들이 눈치 못 채는 것들을 한 눈에 알아보고 간파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지.
매번 1등, 수석, 그리고 월반이 내 학교 커리어 내내 따라다녔다.
남들이 대학까지 12년쯤 걸리나?
나는 6년 만에 월반을 거듭해 대학까지 다다라 버렸다.
고시가 어려운 시험이라고?
그건 어차피 정해진 문제를 푸는 것 뿐이야.
진짜 어려운 것은 따로 있지.
[네가 그 잘나신 천재 수석이냐?]
인간관계.
사건 이면에 숨은 더러운 권력의 거래.
그리고, 내 판단을 믿는 거.
그래.
내 판단을 믿었어야 했다.
이번 사건에서는 꼭.
***
선배들의 말 따위, 믿는 게 아니었어.
“예단했어야 했어, 빌어먹을!”
나는 달리는 차의 엑셀을 밟으며 이를 갈았다.
예단을 했어야 하는데, 그 사건.
그게, 예단이란 게 뭐냐고?
미리 판단해 버린다고.
누굴?
범인을.
[예단하지마!]
검사도 잡을 수 없는 상대라는 게 있다.
이 나라 최고 재력가?
혹은 대한민국 최고 권력?
천만에!
선배검사다.
그것도 검사들의 우두머리, 검찰총장이라면 더욱 그렇다.
최고 재력가의 아들이 얽힌 살인사건, 최고 권력이 협력했다는 의혹,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자기가 쥐고 오히려 키우려던 검찰총장.
모든 게 그저 예단일 뿐이다.
직속 선배 검사가 내게 아주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절대 예측해서 판단 내리지 말라고.
그야말로 공자 말씀이다.
[검사는 예단하는 거 아니야. 오로지 증거! 확실한 증거만이 답이다!]
그래.
고시 공부한 녀석들은 전부 아인슈타인보다 시험 수석이 위대하다고 믿는다.
그러니까, 먼저 시험에 합격한 선배 말씀은 그야말로 진리지.
특히 그 선배는 아예 사법고시 수석합격자니까!
게다가 증거에 의해 판단하라는 거, 맞는 얘기잖아.
나는 참지 못하고 비웃음을 터뜨렸다.
“헛소리!”
증거?
그건 전부 취사선택하는 거다.
수사당국이 증거로 채택하지 않으면, 그냥 무의미한 참고자료일 뿐이지.
잘나신 수석 선배께서 그렇게 처리했다.
유력한 증거는 폐기하고, 불리한 증거는 미뤄두고, 이상한 증거는 사라지고.
덕분에 재력가 아드님은 풀려나고, 최고권력은 의혹에서 벗어나고, 검찰총장께서는 이제 기회를 잡을 것이다.
나라를 검찰의 손에 휘어잡을 최고의 기회를.
하지만 덕분에 난 범인을 놓쳤다.
예단을, 나 스스로 무시한 대가로.
“내 예단이 맞았어. 그놈이, 진범이 맞다고!”
검찰이 나라를 휘어잡든, 최고권력이 어떻게 엮여 있든, 재력가가 배경으로 있든 상관없다.
그놈이 범인이다.
처음부터 그놈을, 조주원을 잡아 처넣고, 범인으로 찍어서 수사했어야 했어.
하지만 내가 어떻게 확신하지?
시험은 손에 찍히는 게 전부 정답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단 말이야.
그래도, 이제라도 알았으니.
“오늘, 반드시 잡는다!”
당장, 엑셀을 밟아 달리자!
그놈이 있는 곳으로.
그때다.
“응?”
문득 내 차 앞에서 거대한 트럭이 밀어닥친다.
어?
잠깐만.
설마 저 트럭은 누구든 죽여버린다는 대한민국 최고의 필살기.
트럭살인마?
-부우웅!
그 순간, 나는 차를 꺾으려 했다.
하지만 내 신경 속도가 그렇게 빠르지는 못했다.
순간적으로 후회가 된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공부할 시간에 운동할걸!
-쾅!
트럭에 처박혀 나는 튕겨 나갔다.
“억!”
온몸이 바스라진 것 같다.
격통이 두뇌 전체를 적시고, 아파서 도저히 아무것도 생각 못 하겠다.
눈앞이 새빨갛게 변한다.
그놈, 못 잡았는데.
예단했어야 했어.
아무리, 선입견이라도.
***
그 순간, 나는 눈을 떴다.
“헉, 헉, 헉!”
뭐야, 이거.
눈을 깜박이자, 침대 그리고 방이 보인다.
방금 전 난 분명히 차로 달리다 트럭과 충돌했다.
아마도 온몸이 박살 났을 텐데 왜 이렇게 멀쩡하지?
그 순간, 내 눈앞에 아주 낯선, 혹은 본 적 있는 얼굴이 보였다.
“어이, ‘백발’이. 너 뭐 하는 새끼야?”
나는 눈을 깜박였다.
이 사람이 왜 내 눈앞에 있지?
주시평.
수도지검의 꼴통 선배 아냐?
꼴통 직속 선배, 주시평이 내 눈앞에서 눈을 부라렸다.
“검사 임관식에서 기절해 버리다니. 너, 미쳤어?”
“어? 주 검사? 당신, 분명히.”
“뭐? 야. 이 새끼가 진짜 미쳤나? 내가 네 친구냐?”
다만 주시평을 눈앞에서 보는 것보다 더 이상한 게 있다.
머리 위에 뭐가 있어.
나는 손을 내저었다.
“아니, 저기, 머리 위에······.”
“머리 위가 뭐!”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두 손을 내저으며 가만히 주시평을 보았다.
분명, 이 자와 내가 마주했던 적이 있지.
문제는 그게 10년 전, 내가 초임 검사로 임용될 때라는 거다.
게다가 더 큰 문제가 있다.
내가 미쳤는지 이상한 게 보인다.
주시평 머리 위에 황금빛의 [문자]가 보이고 있단 말야.
[주시평.]
나는 두려움에 떨며, 그 문자를 다시 보았다.
다시 볼 수밖에 없는 게, 10년 전 내가 처음 [예단]했던 사건이기 때문이다.
진범을 끝내 밝히지 못했던 사건.
[검찰연수원 성추행 사건. 진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게다가 지금이 설마 10년 전이라도 된다는 거야?
그런데 갑자기 새로운 문자가 떴다.
[사건을 해결하라. 아니면, 죽음.]
뭐야, 이거?
누가 날 협박하나?
이거 몰래카메라라면 협박죄로 다 처넣어 버리겠어!
그때 거울을 본 순간, 나는 눈을 부릅떴다.
희다.
머리 색깔이.
아, 그래.
나는 선천적 백발이다.
그래서 늘 염색을 하고 다녔어.
하지만 10년 전, 검찰연수원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그때 거울 위로 다시 황금문자가 떠올랐다.
[시간은 3일.]
이거 설마.
3일 내에 사건 해결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거야?
- 작가의말
검사가 망하기 전에, 검사물을 써야 할 것 같아서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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