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 암스테르담
24화, 대건이가 없어졌다.
얀센으로부터 연락이 온 것은 두 시간이 흐른 뒤였다.
“자네가 남아주겠나?”
“네~ 알겠습니다. 표정이 밝아 보이시네요?”
“그래 보이나? 하하 나도 역사 속의 인물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대가 된다네.”
“누구를 보고 싶으세요?”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은 쇼팽이지, 슈만도 좋고, 연주하는 것을 꼭 보고 싶다네.”
“저도 조금은 알고 있는데 그분들이 이 시대에 살고 있나요?”
“아마도 지금쯤이면 20대 정도 됐을 것이네.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연락이 닿았으면 좋겠군.”
그동안 늘 비행기에 안에만 있어서 걱정을 헸는데, 저렇게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괜한 걱정을 한 것 같았다.
“유럽은 처음이지? 모두 나가서 구경하고 와!”
“저는 여기에 있겠습니다.”
“장금씨 이런 기회가 자주 없어요. 가서 구경하고 오세요.”
“괜찮습니다. 저는 여기가 좋습니다.”
장금이 박정기를 야릇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저도 여기에 있겠습니다.”
“저도요.”
궁에서 침투시킨 나인들이 모두 남겠다고 했다.
그녀들은 박정기를 장금에게 뺏길 까봐 불안해서 나가지 못하는 것이었다.
나인들이 모두 남겠다고 하니까 인디언 청년들도 남겠다고 한다.
[니들은 왜 안가?]
[저는 대장님을 보호해야 합니다.]
[저도 비행기를 지켜야 합니다.]
호기심 많을 녀석들이 나가서 구경하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고 비행기를 지키겠다고 하는 게 대견해 보였다.
하지만 인디언 청년들은 나인들에게 마음을 뺏겨서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국왕과 왕자들 그리고 수행하는 시종들과 중국 상인, 선장, 김대건까지 모두 나가자 비행기 안이 적막할 정도로 조용했다.
“우리끼리 있으니까 좋네, 모처럼 한잔 해볼까?”
“네 제가 주안상 올리겠습니다.”
박정기는 그들만의 조촐한 파티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지붕 위로 올라가자, 구경도 하면서 한잔하면 더 좋지.”
“네 좋습니다.”
문을 닫고 모두 비행기 위로 올라가서 담요를 깔고 둘러앉았다.
“모두 한 잔씩 하지.”
“네!”
[네!]
나인들이 마련한 안주와 얀센이 선물한 와인을 마시니 그런대로 궁합이 맞았다.
호수너머로 노을이 물들고 철새들이 날아가는 풍경은 그림처럼 멋졌다.
나인들은 박정기가 따라주는 술에 취하고, 인디언 청년들은 나인들이 따라주는 술에 취했다.
‘쭉쭉 잘들 마시네? 이러다가 비행기 안에서 토하는 건 아니겠지?’
한양에서 겪었던 악몽이 떠올라 몸을 부르르 떨었다.
띠링 띠링
분위기가 한창 오르는데 윌슨에게서 메신저가 왔다.
-부기장님! 말 한 마리 팔아도 될까요?
-그게 무슨 소리야?
-옆 마을 추장이 말을 사겠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알고?
-여기 추장이 말을 타고 가서 자랑 했는가 봅니다.
말을 타고 의기양양한 추장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박정기다
‘아이고! 못 말리는 양반이구만.’
-그래서 얼마를 준다는데?
-황금덩어리 두 개를 준다는 데요.
-얼마나 큰데?
-주먹만 하던데요.
-당장 팔아!
-아까운데~
-너 뉴욕가기 싫어?
-아니요. 당장 팔게요.
윌슨은 뉴욕에 가서 햄버거 사먹는 상상을 하니 입안에 침이 고였다.
이런 일이 있고난 후에 인디언 사이에 금 찾기 열풍이 불어 닥칠 거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부족마다 황금 조각들을 기본적으로 조금씩 가지고 있었다. 다만 쓸모가 별로 없어서 장난감처럼 만지작거리는 것이 전부였다.
그들 사는 곳에서 골드 러시가 시작된 아메리칸 강은 산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아메리칸 강에 가면 금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인디언들은 강 상류로 몰려들었다.
‘유럽까지 메신저가 될 줄은 몰랐네. 그럼 지구 전체가 가능하다는 것인데.’
박정기는 SNS 메신저가 유럽까지 되는 것이 불가사의 했지만, 이상한 일이 어디 한두 가지여야 놀랍기도 할 텐데, 이제는 신기하지도 않았다.
“아무튼 기장님께서 잘해주셔야 할 텐데.”
기술자를 모집하는 일이 잘 되어야 하는데, 기장님이 잘해낼지 걱정이 되는 박정기다.
‘그래도 독일어를 하실 줄 아니 그건 다행이지만.’
흥정하는 것을 보고 기장님에 대한 불안감이 더해졌다. 왠지 옆에서 잘 보살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한편 하와이에서 온 일행들은 암스테르담의 골치 거리가 되었다.
마치 동물원을 탈출한 원숭이처럼 모든 상점들을 돌아다니며 난장판을 만들어 놓았으니 반겨할 이가 어디에 있겠는가?
기장님은 호텔로 오자마자 연주회 일정을 알아보고 저녁에 시작하는 연주회에 가버렸다.
선장과 염인환은 중국으로 싣고 갈 상품을 찾아 거리를 헤매고 있었다.
김대건은 호텔 앞에 있는 큰 교회에 바라보고 있었다. 높은 건물과 화려한 장식에 압도되어 입을 벌리고 있었다.
김대건은 어려서 부터 좁은 골방에 숨어서 천주학을 배웠고, 자신의 할아버지 아버지가 천주교를 믿는 다는 이유 만으로 갖은 고초를 겪다가 죽었다.
이곳은 어떤가? 시내에서 제일 크고 멋진 건물이 교회가 아닌가?
저 안으로 들어가면 하나님이 계실 것 같았다.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김대건은 무엇 인가에 이끌려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교회 안에는 예수님의 모습이 높은 스테인드글라스 창에 그려져 있고, 밖에서 들어오는 빛에 의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김대건은 그 자리에 허물어졌다.
계속해서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늘에 계신 부모를 위해 기도했고, 조선에서 고통 받고 있는 교도들을 위해 기도했다.
그리고 감사기도를 올렸다. 격은 모든 사람과 모든 순간에 감사했고, 이곳으로 이끈 하나님께 감사했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꿇어앉은 그대로 미동조차 없는 김대건을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
밤이 깊었지만 호텔에 있는 일행들조차 김대건을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찾아온 얀센의 집사가 김대건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려왔다.
“뭐라고요? 대건이가 없어져요?”
“네! 아침식사 시간에 안보여서 방에 가봤더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럼 어제 저녁부터 없어진 겁니까?”
“분명히 호텔까지는 함께 왔습니다. 그런데 어린 아이들을 신경 쓰느라 못 챙겼더니 이런 일이 생겼습니다. 죄송합니다.”
박정기는 혹시 범죄자에게 해를 입지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다.
“이 도시는 위험하지 않습니까?”
“유럽의 대도시 중에서는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어리고 가난한 사람을 해치지는 않습니다.”
“그럼 어디로 간 거죠? 본 사람이 있을 것 아닙니까? 동양 사람이니 눈에도 잘 띄지 않겠습니까?”
“네 그래서 직원들을 풀어서 수소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날아온 배에서 내린 사람들이 저희 호텔에 묵는 다는 게 소문이 나서 금방 찾을 것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넓은 세상 구경 좀 하라고 보내 놨더니 이렇게 속을 썩이네.’
박정기는 김대건이 마음에 들어 잘 키워서 자신의 후계자로 만들 생각이었다.
그런데 사라지다니 보통 걱정이 되는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비행기를 비워 놓고 나갈 수도 없었다.
나가 봤자 말도 안 통하고 지리도 모르니, 도움은 안 되겠지만 가만히 있으려니 마음이 가시방석이었다.
“이 자식 오기만 해봐라!”
9시가 되자, 박정기는 약속된 밍크 가죽을 20장을 팔기 위해 지붕 위로 올라갔다.
배들은 어제보다 더 많이 모였다. 그런데 차이가 있다면 크고 화려한 배가 많다는 것이다.
어제 소문을 낸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 박정기는 올 사람은 다 왔으니 본격적으로 팔아보기로 결정했다.
물론 김대건에 대한 걱정으로 빨리 해치우자는 쪽이 더 설득력 있을 것이다.
“오늘도 이렇게 많이 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얀센의 집사가 통역을 했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장사가 아닙니다. 자! 오늘 모두 처분할 예정이니 물건 못 샀다고 후회하지 마시고 빨리빨리 입찰해 주십시오.”
“그럼 첫 번째로 10장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실버 5700개, 5700개 없습니까?”
“이보시오, 어제는 1장씩 팔았는데 왜 10장씩 파는 거요?”
“한 장씩 팔면 3일은 팔아야 될 거요, 어떻게 할 수가 있겠소, 오늘은 큰손도 오신 것 같은데 대량으로 팔아볼 생각이니 그럼 줄 아시오.”
박정기는 불만이 있더라도 개의치 않았다. 오로지 빨리 팔아 치우고 김대건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내가 밍크 사려고 돈을 빌려서 왔는데, 이러는 법이 어디에 있소?”
“그럼 방법을 하나 알려주겠소. 우리 일행 중에 15살 먹은 소년이 길을 잃었으니 찾아오시오, 찾아오는 사람에게 밍크를 그냥 주겠소.”
“그것이 정말이요? 인상착의를 말해보시오.”
김대건의 키와 입은 옷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말이 안 통하니까, 강제로 끌고 오지 말고 대장님이라고 말하시오. 대장님!”
“대장님? 알겠소! 대장님.”
작은 배들이 우르르 몰려나갔다.
실버 600개면 평민들이 1년을 살아갈 수 있는 돈이다. 큰 돈이라기 보다는 평민들의 생활이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부자나 귀족들은 파인애플 하나에 실버 600개를 주고 사먹으니까 말이다.
현대보다 빈부의 격차가 훨씬 심했던 시대이니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결국 부자들에게 팔아야지 서민을 상대해서는 큰돈 벌기 어렵다.
“자 다시 시작합시다. 질 좋은 모피가 10장에 5700개부터 시작합니다. 5700개”
“여기 5800.”
“여기 6000.”
“여기 6300개요.”
“......”
“6300개 업습니까? 6300 낙찰! 대건아~ 아참!”
박정기는 습관적으로 대건이를 찾았다가 급 실망을 하였다.
‘사람 난 자리는 표시가 난다더니~’
박정기는 직접 모피 10장을 가져다주었다.
“할 말이 있소, 지금 가지고 있는 모피가 몇 장이오?”
“왜 그러시오.”
“내가 다 사리다.”
“아니오! 내가 사겠소.”
“내가 가격을 잘 쳐 주겠소. 내게 파시오.”
10명 정도가 큰 사업을 하는 것 같아 보였다. 서로 자기가 사겠다고 흥정을 해왔다. 드디어 기다리던 때가 온 것이다.
“그럼 1,000개 이상 지불할 의사가 있는 사람만 이 비행기에 타시오. 입찰을 받겠소,”
“알겠소. 하지만 수량을 말해줘야 되지 않겠소?”
“500개 정도 있습니다.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은 빠지시오.”
박정기는 아래로 내려가 문을 열었다. 크고 화려한 배가 다가와 귀족 같은 사람을 내려 줬다. 이어 계속해서 사람들이 내렸다.
서로 사이가 안 좋은지 눈도 마주치지 않는 것이 경쟁 업체가 분명했다.
“이렇게 방문해주셨으니 간단한 다과를 하고 입찰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장금이 쟁반에 파인애플과 애플 바나나를 가지고 나왔다.
생과방 나인이 수정과를 가져와 도자기 잔에 따라주었다.
“얼굴들 펴시고 좀 드십시오.”
“오~ 이건 무엇이요?”
“바나나라고 하는 겁니다. 사과 맛이 난다고 해서 애플 바나나라고 하지요.”
“처음 보는데 먹어봐도 되겠소?”
“물론입니다. 드셔 보십시오.”
박정기가 직접 껍질을 벗겨서 나눠주었다.
다들 파인애플은 먹어 보았는지 바나나를 잡았다.
“오호 이거 파인애플보다 더 맛있군요.”
“맞아요. 맛으로만 따지면 이것이 훨씬 맛있습니다.”
“그렇습니까? 이번에 가져온 파인애플은 잘 익은 것으로만 따와서 맛이 다를 겁니다.”
“그래요? 어디 맛 좀 볼까요?”
상인들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파인애플을 살펴보았다.
“어허~ 그동안 먹은 파인애플은 도대체 뭐였단 말이오? 이것 완전히 다른 맛이네요.”
“맞소, 전에 먹은 것은 시고 흐물흐물 거렸는데, 이것은 달고 아삭합니다.”
“이건 이틀 전에 딴 것이라 그런 겁니다.”
“이틀 전에 땄다고요? 어디서 따온 겁니까?”
“적도 근처 더운 곳입니다.”
무역을 하는 상인들이 무역선이 어디를 다니는지 모를 수 없다.
적도라면 아프리카와 중앙아메리카 그리고 인도 등이다.
어디를 상상해도 최소가 몇 달 코스다.
그런데 어제 왔으니 적도에서 하루 만에 왔다는 말이다.
“농담 같지는 않고 정말 그렇게 빨리 올 수 있는 것이요?”
“그럼요. 아침 먹고 출발하면 저녁은 적도에서 드실 수 있습니다.”
“허억! 내 여태 헛살았네, 헛살았어.”
“그러게 풍랑에 부서진 배만 해도 수십 척인데.”
박정기는 크게 무역을 하는 사람들이란 것을 알고 정보를 얻어 보기로 했다.
“요즘 신대륙으로 가는 사람이 있습니까?”
“뭐요? 신대륙으로 가는 사람이 있냐고요?”
“하하하”
“크크크”
“핫핫핫하”
다들 웃고 있어서 당황한 박정기가 물었다.
“아니 왜들 그러시오?”
“하늘로만 다녀서 사정을 모르는 군요. 지금 배가 없어서 신대륙으로 가려는 사람들이 항구마다 몇 달씩 노숙을 하고 있소.”
“그렇게 많이요?”
“물론이요. 사람을 너무 많이 태워서 배가 뒤집어 지기도 한답니다.”
박정기는 또 다른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에 질문을 했다.
“배를 타려면 돈을 얼마나 내고 갑니까?”
“거의 전 재산을 모두 털어야지 배를 탈 수 있을 거요.”
“가난한 자들이니 전 재산이라고 해도 얼마 안 됩니다.”
서민은 안 되고 부자들만 상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비행기로 하루면 가는데 갈 사람이 있을까요?”
“허어 들으면서도 자꾸 놀란다니까요, 지금 뉴욕에 도착하려면 짧아야 40일 길면 3개월을 가야하오. 돈 있는 사람들은 무서워서 못갑니다. 가다가 죽는 사람이 1할도 넘소.”
“맞아요. 살아서 도착해도 거의 죽기 일보 직전이오.”
위험하고 힘든데 왜 신대륙으로 못 가서 아우성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왜? 다들 떠나려고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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