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 김좌근
46화, 쇼핑의 귀재 에바
암스테르담에 남겠다고 한 에바가 폭 안기며 애교를 부렸다.
박정기는 에바를 볼 때마다 새벽의 흑역사가 떠올라 미칠 것 같았다. 그래서 남는다고 할 때 적극적으로 찬성한 것이다.
“대장님 저도 남으면 안 될까요?”
“혜수는 왜?”
“노래를 들을 때면 가슴이 마구 뛰어요. 도저히 떠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그래? 그럼 너도 남아있어. 또 다른 사람 없어?”
“......”
아무도 대답이 없자, 박정기가 정리를 해줬다.
“그럼 두 사람은 짐 챙겨서 기장님 따라가고, 우리는 내일 새벽에 출발한다.”
“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그래, 톰은 먼저 넘어갈 노예들을 데리고 내일 새벽까지 이쪽으로 나오고.”
“네 알겠습니다.”
박정기는 노예 중에서 손재주 좋은 사람과 힘이 센 사람으로 100명을 골라 미국으로 데려가겠다고 톰에게 말해두었다.
선발대는 나중에 올 사람들이 머무를 집과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필요한 물품들은 비행기에 모두 실어두었다.
남을 사람이 떠나가자 김좌근이 측은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대왕대비께 드릴 선물을 못 샀는데 어찌해야겠나?”
“아니, 그걸 지금 말하면 어떻게 해요?”
“바쁜 것 같아서 말을 못했네.”
바쁘긴 엄청 바빴다. 그래도 유럽에 미국까지 다녀온 사람이 선물하나 없이 맨몸으로 가게 되면 누가 욕을 먹겠는가? 바로 박정기가 욕먹는다.
“알겠어요. 준비하라고 할 테니 걱정하지마세요.”
박정기는 기장님에게 문자를 남겼다.
-기장님 조선에서 온 형님이 왕비의 선물을 못 샀다고 합니다. 왕비와 어린 왕이 좋아할만한 것 좀 사서 내일 새벽에 보내주십시오. 최대한 많이 부탁드립니다.
-알겠네, 나중에 갚아야 하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기장님의 답변에 살짝 빈정이 상하는 박정기다. 자기의 돈을 몇 십억씩 뺏어 갔으면서 그깟 선물 살돈을 달라니 이게 말이 되는가?
-기장님 제가 한국어로 문자를 보낼 테니까, 같이 간 승무원에게 보여주세요.
-알겠네.
박정기는 김혜수에게 한글로 문자를 보냈다.
-나 대장이네, 대왕대비 마마의 선물과 임금님 선물을 사서 내일 보내주게.
김혜수는 기장님이 보여주는 박정기의 문자를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대장님은 못하는 게 없으시네. 어쩌면 이렇게 작고 예쁘게 글을 쓰실까? 한석봉도 울고 가겠어.’
스마트 폰의 글씨를 박정기가 쓴 걸로 오해한 것이다.
배를 타고 호텔로 돌아가던 일행은 박정기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중심가로 향했다.
“에바 조선의 왕비와 어린 왕의 선물을 사서 보내라는군, 도와줄래?”
“좋아요. 얼마나 사야하죠?”
“많이 사라고 하던데.”
“와 신난다. 알겠어요. 좋은 걸로 많이 살게요.”
여자가 쇼핑을 마다할까. 에바는 신이 났다.
일행들은 에바의 의견에 따라 처음 갔던 가게로 향했다. 예쁜 옷이 많아서 기억에 남았던 곳이다.
안으로 들어가자 종업원이 바뀌었다. 큰 고객을 내쫒아 사장에게 해고당한 뒤였다.
“어서 오세요.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어? 사람이 바뀌었네요.”
“네! 그럴 일이 있었습니다. 어떤 것을 도와드릴까요?”
“왕비가 입을 옷인데 어떤 게 좋을 까요?”
“귀하신 분이시군요. 저쪽으로 가실까요?”
새로운 직원은 아주 상냥하고 섬세하게 일행들의 쇼핑을 도왔다. 다행히 김혜수가 대왕대비의 체격과 비슷해서 사이즈를 고를 때 편했다.
오후에 시작한 쇼핑은 저녁 늦게 끝이 났다. 돌아다닌 가게만 20군데에 달했고, 사용한 비용도 5만 실버가 넘었다.
중심가는 VIP 고객을 잡기 위해 치열한 유치경쟁을 벌였다.
중심가를 휘저었던 쇼핑은 기장님과 김대건 톰까지 가세했지만 옮길 수 없을 만큼 물건이 많았고, 호텔의 마차와 직원들까지 동원해서 실어 날랐다.
이 한 번의 쇼핑으로 에바는 미국의 공주로 소문이 났고, 김혜수는 에바의 시녀가 되었다.
다음날 새벽! 어김없이 리셋되는 비행기에서 박정기가 눈을 떴다.
비행기의 보조 동력 장치를 켜고 실내 외 등을 밝혔다.
이미 부둣가에 집결한 노예들이 배에 탑승하고 있었다. 그 옆을 얀센 사장의 배가 지나갔다.
“왜 왔어?”
“제가 돌아가야 할 것 같아서요.”
암스테르담에 남겠다고 한 김혜수가 배를 타고 돌아왔다.
“뭐 때문에?”
“대왕대비 마마의 옷을 입혀드리려면 제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선물로 옷을 산거야?”
“네! 에바가 옷하고 장신구만 자꾸 사서요.”
“혜수는 뭐 했어?”
“저는 벙어리 했어요. 흑흑흑”
이해가 되었다. 박정기와 같이 다닐 때는 아쉬운 게 없었다. 알아서 다 챙겨주니까.
하지만 홀로 떨어지니 오줌 싸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이제 말을 배우기 시작한 김대건도 소통이 안 되는 건 매한가지다.
박정기가 서럽게 우는 김혜수를 토닥여 주자, 승무원들의 눈매가 사나워졌다. 또 다른 하나 수다 개구리의 얼굴이 똥을 먹은 것처럼 일그러졌다.
“이게 다 선물이야?”
“네! 밤늦게 까지 물건을 샀어요.”
선물이 배에서 끝없이 내려졌다. 곱게 포장이 돼있어 내용물이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아이고 배야~ 이게 다 내 돈이잖아!’
박정기는 또다시 복통에 시달렸다.
물건을 모두 내리고 얀센의 배가 떠나자, 노예들이 탄 배가 도착했다.
“큰 귀야 손님들 잘 모셔라.”
“네!”
이제는 한국말을 제법 알아듣는다. 모두 여자 승무원 덕분이다. 여 승무원들과 말을 섞어 보려고 필사적으로 한국말을 배우고 있었다.
노예들은 어디로 팔려가나? 불안한 눈길로 비행기를 살폈다. 집사인 톰이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지만 속은 게 어디 한 두 번인가? 모두 좋은 곳으로 보내준다고 하고는 자신들을 팔아먹었다.
하지만 그들로써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여기서 도망쳐도 다른 곳에서 붙잡히면 또 어디론가 팔려갈 것이다. 한번 노예는 영원한 노예인 것을 그들도 잘 알고 있었다.
희망은 또 다른 고통이다. 그냥 아무생각 없이 시키는 일만 하면 몸은 힘들지만 정신적으로 편했다. 그게 익숙해져서 달리 괴롭지도 않았다.
노예들이 모두 탑승을 하고 비행기가 천천히 호수 중앙으로 이동했다. 짐과 사람을 많이 실었지만 비행기가 가벼워져서 나는 데는 지장이 없다.
새애앵~ 푸확~ 쏴아아
비행기가 물결을 가르고 달리기 시작했다. 기내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처음 타보는 비행기가 적응이 안돼서 그런 것이다.
박정기는 극장에서 경험을 되새겨 기내에 음악을 틀어줬다. 스마트 폰에 마이크를 대고 방송을 송출 한 것이다.
K팝 아이돌의 발랄한 노래가 나오자 기내는 다시금 조용해졌다.
비행기는 북극을 지나 피라미드 호수를 향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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