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 쇼팽
62화, 이 샘이 후보에서 탈락하다.
쇼팽에게 술잔을 건네다가 기장님이 낚아 채자 당황한 박정기가 물었다.
“왜 그러시죠?”
“잠깐 나와 이야기하세나.”
“네 알겠습니다.”
구석으로 가서 심각하게 얘기하는 두 사람에게 이목이 집중되었다.
“쇼팽은 지금 폐 결핵을 앓고 있어서 건강을 잘 챙겨야 한다네.”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지난밤에 쇼팽과 술을 마시고 다음날 기침을 심하게 하더군, 휴지통을 살펴보니 각혈을 했네.”
쇼팽이 20대 때 폐 결핵에 걸려 젊은 나이에 일찍 죽었다는 내용은 유명한 일화이다. 박정기도 얼핏 기억이 났다.
“전염되지 않나요? 에바가 위험한 데요.”
“그래서 보내려고 했는데 한사코 거절하고 쇼팽과 하루 종일 붙어있지 않은가. 내 속이 썩어서 문드러지겠네.”
박정기는 그제야 기장님의 행동이 이해가 갔다.
폐 결핵에 걸려 평생을 고통 속에 살다가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는 쇼팽.
그에 대한 애잔한 마음과 손녀 같은 에바를 잃을 까봐, 노심초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구급약 중에 결핵약이 없을까요?”
“나도 생각해봤었네. 그런 전문 의약품이 있을 리가 없지 않는가?”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요. 저희와 넘어온 물건들은 성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어요. 어쩌면 약도 효과가 좋아졌을지 모르잖아요.”
곰곰이 생각하던 기장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항생제가 있었는가?”
“모르겠어요. 매뉴얼을 찾아봐야 알겠습니다.”
“그럼 찾아보고 알려주게. 그리고 에바는 격리를 시켜야 하니까, 자네가 데리고 있게.”
박정기는 수긍하면서도 섭섭했다.
“네 알겠습니다. 진작 알려주시지요.”
“쇼팽도 자기병을 잘 모르는 것 같네, 프라이버시가 있는데 함부로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알겠습니다. 저는 비행기에 가보겠습니다.”
“내일 찾아도 되는데.”
“아닙니다. 이미 흥이 깨져서 더 있어봐야 무의미 합니다.”
기장님은 잔잔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박정기를 바라봤다.
“미안하네. 그리고 고맙네.”
“기장님을 오해했던 것 제가 죄송합니다.”
“나도 심정이 복잡해 자네에게 무심 했네, 자네가 용서하게.”
“그런 말씀하지 마십시오. 저는 아버지처럼 따르고 있습니다.”
기장님이 박정기를 안아주며 등을 두드려주었다.
박정기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심키며, 기장님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그 길로 박정기가 비행기로 향하자, 모든 승무원들이 따라 나섰다.
꽝! 꽝! 꽝!
“문 열어라! 뭐 하는 거냐?”
-자~ 자~ 잠시만요.
“빨리 안 열어?”
-어떻게 하냐?
-이거부터 치워!
“당장 안 열면 다 죽는다. 하나 둘 셋”
철컥 지잉~ 척!
비행기 문이 열렸다.
박정기가 들어가서 보니 얼굴이 벌게져서 다들 어쩔 줄 몰라 했다.
“술 마셨냐?”
“아주 조금 확인 좀 하느라고요.”
“확인? 마시면 죽는지, 아니면 병신 되는지 확인하려고?”
박정기 눈이 뒤집혀서 낮게 으르렁거리며 말하자 다리가 풀렸는지 털썩 무릎을 굽혔다.
“사~살려 주십시오. 수다 개구리가 먼저 마시자고 했습니다.”
“아니에요! 아까 배달 왔을 때 큰 귀가 뭔지 확인해봐야 한다고 했어요.”
“야! 네가 술인 것 같다고 했잖아.”
“맞아요, 수다 개구리가 술 같다고 했어요.”
변명하기 바쁜 인디언 승무원들을 지켜보니 더 화가 났다.
‘경비는 안 서고 술을 마셔? 내가 안 왔으면 밤새 마셨을 거 아니냐고.’
“들소 바위 너는 술이라는 것을 알고 마신 거지?”
“아~ 아닌데요. 확인만 해보려고 한 건 데요.”
“이것들이 다 죽었어, 전부 대가리 박아!”
화들짝 놀란 인디언 승무원들이 대가리를 바닥에 박았다.
“엉덩이 내려오는 놈은 몽둥이로 열대야! 알겠어?”
“네 알겠습니다.”
“넵 알겠습니다.”
이 샘이 나서서 말했다.
“제가 지켜보고 있을까요?”
“그래! 잘 지켜보고 있다가 나한테 말해.”
“네 알겠어요.”
이 샘이 허리에 양손을 올리고, 다리를 적당히 벌려 자세를 잡았다.
‘애는 또 왜 이래? 하여튼 완장 채워주면 기고만장 하겠구나. 너는 탈락이다.’
박정기의 예비 신부 중에 첫 번째 탈락자가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찾아볼게 있으니까, 조용히 들 있어.”
“제가 도와드릴까요?”
재미를 붙인 장금이가 도와준다고 나섰다.
“아니야, 이건 내가 해야 해,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야.”
“히잉~ 나도 같이하고 싶은데.”
“너도 간당간당 한다. 조심해.”
“어머? 뭐가요?”
“됐어, 그런 게 있어.”
장금이는 왠지, 낌새가 이상해서 조용히 찌그러졌다.
박정기가 캐비넷에서 구급상자를 꺼내어 물품 목록을 잃어 내려갔다.
심폐 소생술 때 쓰는 약.
비 마약성 진통제.
항 히스타민제.
니트로 글리세린
기관지 확장제
생리 식염수, 하트만 용액
알코올, 과산화수소
포비돈 액
정말 딱 응급 약품들이었다.
진통제나 위급한 상황에 쓸 수 있는 약이 전부였다.
‘하긴 항생제는 아무데나 안 두지. 꼭 의사 처방이 있어야 하는 거니까.’
박정기는 백팩에서 종합 영양제를 꺼내서 영양성분 표시를 읽어보았다.
여러 종의 비타민, 무기물들이 함유되어 있다고 쓰여 있었다.
그중에서 섭취 대상 안내가 눈길을 끌었다.
*영양소를 종합적으로 섭취하고자 하는 분
*평소 불규칙한 식습관으로 영양 균형을 원하는 분
*쉽게 지쳐 활력이 필요한 분
*정상적인 면역 기능을 원하는 분
‘정상적인 면역 기능을 원하는 분이라, 면역력이 올라가면 자연 치유도 가능하지 않을까?’
잠복 결핵이라는 것이 있다.
면역력이 좋은 사람은 결핵균을 가지고 있어도 발병 하지 않는 상태다.
치료를 해서 균을 없애는 것이 제일 좋지만 살아가는 데는 지장이 없다.
대신 면역력이 떨어지면 언제나 발병할 수 있어서 시한폭탄을 품고 사는 것과 같다.
박정기는 새벽마다 리셋이 되니까. 영양제가 없어도 컨디션이 너무 좋았다.
‘아직 병증이 심하지 않으니까, 이거라도 먹어보라고 해야겠네, 안되면 말고.’
박정기는 자신이 먹고 있던 영양제를 챙겨서 호텔로 가려했다.
“대장님! 들소 바위가 자꾸 엉덩이를 흔들어요.”
“왜?”
“말을 안 해요.”
박정기는 의아해서 들소 바위에게 물었다.
“너 왜 엉덩이를 흔드는 거야?”
“저 그게 그러니까....”
“대답 빨리 안 해!”
“소변이 마려워서요.”
어처구니가 없어진 박정기는 모두 기상을 시켰다.
“일어나! 그리고 이제부터는 너희들 팀장은 여기 이 샘이다. 알겠나?”
“이 샘이 저희 팀장이라 구요?”
“그래!”
“그럼 큰 귀는 요?”
“큰 귀는 너희들이 술을 마셨는데도 말리지는 못할망정 함께 마셨다. 그 죄로 팀장 자격을 박탈한다.”
큰 귀가 고개를 푹 숙이고 말을 하지 못했다.
“이 샘 말에 무조건 복종해라. 안 그럼 하늘에서 던져버릴 거니까.”
“눼~ 알겠습니다.”
“네에~”
“이 샘이 호텔로 가면 누구 말을 들어야 하나요?”
“이 샘은 여기에 있을 거다.”
이 샘의 눈이 동그랗게 커져서 박정기를 바라봤다.
“하기 싫어?”
“아니 그런 게 아니고요. 쟤들은 호텔로 가나요?”
“아니! 여기에 다 있어!”
“야! 이 샘 너 죽을래?”
“저년이 죽으려고 용을 쓰네.”
험악한 말이 오고 가자 박정기는 고개를 내젓고는 배에 올랐다.
“진짜 혼자 갈 거예요?”
“그래 한 놈이라도 딴 짓 했다가는 모두 버리고 갈 테니까 각오해!”
“네에~”
“혹시 에바와 자는 거 아니죠?”
이 샘이 한마디 더했다.
“안자! 이 자식아! 아휴~ 이놈의 팔자야, 대왕대비한테 모두 데려가라고 해야지 안 되겠다.”
“어머 안돼요.”
“잘못했어요. 이젠 안 할게요.”
“저도요. 쟤들 관리 열심히 할게요.”
“히잉~ 죄송해요,”
박정기가 화를 내고 떠나자, 모두 이 샘에게 달려들어 머리털을 뽑았다.
인디언 승무원들은 자신들의 팀장이 쥐어 터지는데도 보고만 있었다.
이 샘의 분풀이를 어떻게 감당할지 모를 일이다.
호텔로 돌아오니 쇼팽은 아직도 피아노 앞에 있었고, 기장님은 동영상을 찍고 있었다.
“뭐하세요?”
“영감이 터졌어, 계속 연주하고 있잖아.”
쇼팽은 감성이 폭발했는지 피아노를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피아노의 시인이라는 말이 허언이 아니었다.
“이걸 먹여보세요. 면역력을 높여준 데요.”
“건강식품이군, 알았네, 수고했어.”
“저는 올라가 볼게요.”
“연주는 안 듣고?”
“머리가 복잡해서 아무것도 안 들어와요.”
“그래 올라가게.”
박정기는 연주에 방해가 되지 않게 조용히 방으로 올라갔다.
“너 뭐하냐?”
“기다리고 있었어요.”
“다 귀찮으니까. 집으로 돌아가.”
“싫어요. 오는 첫 공연이에요. 축하해주세요.
박정기는 참으로 난감했다. 축하해 달라는 데, 축객령을 내리기도 부담스러웠다.
“그럼 와인이나 한잔하자.”
“좋아요. 제가 가져올게요.”
둘이서 오붓하게 와인을 마시니 묻어두었던 감정들이 슬금슬금 기어 나왔다.
한병이 두병이 되고, 두병이 세병될 때 이야기 취하는지 술에 취하는지 몰랐다.
다음날 새벽 눈을 뜬 박정기는 다시 눈을 감았다.
‘거기는 왜 만져~ 또~ 오.’
조금 늦게 잠에서 깬 박정기는 서둘러 비행기로 갔다.
이미 기술자들은 탑승을 끝냈고, 기장님과 김대건 그리고 김희선이 기다리고 있었다.
“뭐 하는데 이렇게 늦었나?”
“어제 술을 많이 해서요.”
“에바도 안 들어 왔던데.”
‘아니, 그걸 이 자리에서 말씀하시면 어떻게 해요.’
“으~ 그게 같이 마셨습니다.”
“알겠네. 갔다가 언제 오나?”
“열흘 쯤 걸릴 겁니다. 조선에 다녀와야 해서요.”
박정기는 말을 돌리려고 김희선에게 말했다.
“기장님 따라가서 그 집에서 지내, 에바 공연도 도와주고.”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중 나와서 고맙다. 그리고 이것 받아둬라.”
박정기가 1,000실버 짜리 수표를 내주자 김대건이 받아 든다.
“감사합니다. 잘 쓰겠습니다.”
“그래 희선이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고.”
김대건은 대답 대신 얼굴을 붉혔다.
마중 나온 사람들이 돌아가고, 기내에 탄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집사 톰의 누이 동생 소피아가 자리에 앉아있었다.
“오래 살던 곳인데 떠나는 느낌이 어때?”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거 떨어지진 않겠죠?”
“하하하 그건 걱정 하지마, 내가 안전하게 모실 테니까.”
말이 씨가 되었다. 이륙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대서양 한가운데에서 대기가 불안정해 비행기가 출렁이기 시작했다.
-어머 왜 이래
-떨어지는 거 아니야?
-아악! 이렇게 죽다니.
[안내 말씀 드리겠습니다. 현재 대서양의 기상 상태가 좋지 않아 대기가 불안정합니다. 안전벨트를 풀지 마시고 이동을 자재 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안전벨트가 없잖아.
-그럼 저 사람들은 살고 우리는 죽는 거야?
-내가 다시는 이걸 타나 봐라.
-나도 절대로 안 탄다.
비행기는 다소 소란이 있었지만 무사히 피라미드 호수에 도착했다.
“윌슨, 네 CD플레이어 에바에게 빌려줬다. 괜찮겠어?”
“네 괜찮아요. 저는 영화가 더 좋아요.”
“다행이다. 이거 케이크하고 초콜릿이다.”
1828년 네덜란드의 판 후텐은 카카오 매스를 압착 해서 지방을 추출하고 카카오 버터를 만들었다.
“암스테르담에 초콜릿이 있어서 사왔다. 많으니까 나눠 먹어.”
“헤헤헤 감사합니다. 그리고 순찰을 다녀오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어디로?”
“북쪽에서 백인들을 봤다는 애기가 계속 들리고 있어요.”
오리건 주에 백인들이 이주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 다녀 와봐. 카를로스 중위님은 여기를 지키시고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람보 특공대만 데리고 다녀올게요.”
“그래. 오래있지 말고.”
“네, 프로젝터는 가져가도 되지요?”
‘그거 없으면 사람들을 통제하기 힘들텐데.’
톰이 걱정되는 박정기다.
“네 스마트 폰 있잖아. 거기에 영화 다운 받아 줄 테니까 그걸로 봐.”
“화면이 작잖아요.”
“돌아가면서 여러 번 보면 되지.”
“아! 그러면 되겠네요.”
윌슨과 간단하게 합의를 끝내고, 요새로 들어갔다.
기술자들은 승무원들이 인솔해서 요새로 안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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