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 봉황
71화, 잃은 게 아니고 얻은 것입니다.
순간의 기지를 발휘해 람보를 보내겠다고 안심을 시킨 후 박정기는 절반의 백성을 받아내기 위해 확답을 받아냈다.
수렴 뒤에 앉아 대신들을 내려다보는 대왕대비의 얼굴에 침통함이 가득했다.
“이런 일은 없습니다. 어떻게 백성을 내어준단 말입니까?”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안동김씨를 주축으로 하는 시파와 풍양조씨를 따르는 벽파가 서로 주장을 펴고 있었다.
“그럼 어찌하자는 게요? 당장 100만 청군이 쳐들어오면 강토에 풀 한포기 남아있을 것 같소?”
“그러기에 오랑캐와 애초에 어울리지를 말았어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저 요망한 것을 잡아다가, 황제폐하께 바치고 죄를 빌어야 합니다.”
“참으로 답답한 소리 하시오. 미국이 상국보다 더 강하다고 하지 않았소.”
“......”
당하관들의 입에 발린 말에 대신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현장을 보지 못했으니 저런 소리를 하는 것이지, 미국의 무력을 눈으로 확인한 대신들은 치기어린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침묵이 흐르던 그때 묵직한 음성이 모두를 집중시켰다.
“소신 조인영 아뢰옵니다. 백성이 사는 곳이 조선 아니겠습니까?”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미국에 조선 백성을 보내서 살게 되면, 그곳이 조선이지 무엇이겠나이까?”
“......”
안동김씨의 반대 세력에서 갑자기 찬성하는 발언이 나오자, 모두가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허면 백성을 보내자는 말씀입니까?”
“조선의 백성은 어디에 있든, 주상전하를 어버이처럼 따를 것이옵니다.”
“그것이야 당연하오, 하지만......”
모두 생각에 잠겨 말이 없었다.
“백성을 잃는다고 생각치 마시고, 강토를 얻었다고 생각하시면 되옵니다.”
“오호, 역시! 운석 대감의 말씀은 일리가 있소이다.”
대왕대비가 무릎을 쳤다.
“그럼 당장 백성이 줄어든 조선 땅은 누가 지킨단 말이오?”
“영아가 사망하지 않게 하는 비책도 알려준다 하였으니, 10년이면 벌충이 될 것이요.”
“그 말을 어찌 믿습니까?”
“못 믿어서 생긴 일이 아니요? 이제는 믿어야 합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시파의 주장을 반대하고 나섰던 벽파의 신료들, 자신들의 우두머리가 찬성하고 나오자 논의는 해보나 마나가 되었다.
“그럼 한두 명도 아니고 옮겨 가는데 몇 년이 걸리겠소?”
“맹선 수백 척을 동원해도 10년 이상 걸릴 것입니다.”
“그럼 시간은 충분하니 영아가 죽지 않는 비법부터 받는 것이 어떻겠소,”
“바른 말씀이십니다. 내의원에 일러 비책을 받아 바로 시행하라 이르겠습니다.”
조선시대 영유아 사망률이 50%에 달한다.
현대 세계평균이 5%가량 되니, 영유아 사망률만 줄여도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좋소, 군정을 개혁하는 일은 어찌해야 좋을지 논해 보세요.”
대전에서 이렇게 생산적인 논의가 언제 있었던가?
한민족 특유의 생존 본능이 다시 한 번 발휘되는 순간이다.
* * *
“야! 니들 뒈질래? 빨리빨리 안 움직여?”
날카로운 음성이 박정기의 귀를 파고든다.
“재는 또 왜 저러냐?”
“모르겠어요. 맨날 못 잡아먹어서 난리에요.”
“가서 불러와봐!”
“네!”
앞에 나타난 이 샘이 고개를 바짝 들고 박정기를 응시한다.
“너! 말이 왜 이렇게 거칠어?”
“제가 뭘요?”
“남자 애들한테 뒈질래가 뭐냐?”
“대장님도 맨 날 뒈질래! 이러잖아요?”
“얘 웃기네.~ 내가 언제 그랬어?”
여자 승무원들이 고개를 돌린다.
“우리한테도 맨 날 죽을래. 뒈질래. 이러면서~”
“내가 그랬다고? 장금아 내가 그랬어?”
“.....네~”
“허~ 니들 짰냐? 지금 짜고 그러는 거지?”
“아니에요. 맨 날 그렇게 말했어요.”
박정기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자기 딴에는 신경 써서 대우 해주고, 엄청 챙겨 줬는데, 욕을 했다고 하니 배신감이 느껴졌다.
‘이래서 잘해줘 봤자 소용없다는 거야. 내가 지들을 얼마나 챙겨줬는데.’
박정기는 분한 마음에 폭탄 발언을 하고 말았다.
“앞으로 쟤들이랑 똑같이 대해 줄 테니까. 그런 줄 알아.”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뭐? 왜 없어? 쟤들은 나이도 더 많은데 고분고분하잖아! 니들은 뭔데?”
“쟤들은 자기 나이를 모른다는 데요?”
“나이를 모른다고? 딱 보면 몰라? 얼굴만 봐도.....”
박정기가 소시지를 내리고 있는 인디언 승무원들을 쳐다봤다.
얼굴은 30대 인데, 해맑은 표정은 10대 같고, 하는 행동은 20대 같았다.
‘몇 살이나 먹은 거지? 졸라 헷갈리네?’
“됐고, 니들도 짐 내려! 어디서 감독 질이야? 뒈질... 크흠~”
“거봐요? 또 할라고 했잖아요?”
“안했어! 안했다고? 빨리 일 안해? 날밤 새울 거야?”
“히잉~알겠어요.”
“흥~”
여자 승무원들도 소시지와 햄 내리는 것을 도왔다.
-나는 대장님이 화낼 때 심장이 두근거리더라. 너무 멋있지 않니?
-나는 무섭던데, 자꾸 화장실 가고 싶어져.
-야! 웃을 때 진짜 귀엽지 않냐?
-그래 눈 꼬리라 살짝 내려가면서 웃으면, 내 여기가 살살 녹는 다니까~
-기집애! 너는 앞판이나 뒷판이나 똑같은데, 녹을게 어디 있냐?
-이년 보게~ 내가 왜 없어? 보여줘? 어!
-아이고 저것들은 만나기만 하면 싸워요.
여자 승무원들이 투닥 거리고 있을 때, 박정기는 기장님께 메시지를 보냈다.
-기장님! 뭐하세요?
-부기장 제발 이 시간에 문자 좀 자제하게
-몇 신데요?
-새벽 3시야.
-죄송합니다.
무안해진 박정기는 윌슨에게 문자를 보냈다.
-윌슨 대위! 뭐하냐?
-......
-바쁘냐?
-......
할 일이 없어진 박정기는 ‘일하면서 듣기 좋은 노래’라는 영상파일을 클릭했다.
임영웅의 ‘사랑은 늘 도망가’ 노래가 첫 곡으로 나왔다.
소시지를 내리고, 쌀을 싣고, 여러 가지 품목들을 옮기느라 분주하게 보낸 하루가 저물 때쯤 내의원 어의가 나타났다.
“대장님 손님이 오셨는데요.”
“들어오시라고 해.”
어의는 신기한 눈으로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면서 기내로 들어왔다.
“어서 오십시오. 어의님.”
“네네, 도제조께서 영유아 사망률을 낮추는 비책을 받아오라고 해서 왔습니다.”
‘못 말리겠군, 조선은 자꾸 순서가 거꾸로 간단 말이야?’
“사람을 보낸다는 말은 못 들으셨나요?”
“다른 건 못 듣고 어린 아이들 살리는 비법을 알아 오라고 만 들었습니다.”
“흐음 오셨으니 앉으시죠.”
박정기는 비누와 알코올, 붕대, 등을 주섬주섬 꺼내 놓았다.
“이게 어제 쓰던 물건들입니다.”
“네 그렇군요.”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균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정말입니까?”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물어봤다.
“네, 맞습니다. 그래서 감기 걸린 사람과 가까이 있으면, 감기 균이 숨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염 시키는 것입니다.”
“어허~ 그럼 마마도 그렇게 옮겨지는 겁니까?”
“맞습니다. 그러니까 격리 시키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박정기는 3가지를 강조했다.
.첫째 위생, 아이와 부모의 손 자주 씻기와 집안 환경 개선.
.두 번째 영양, 아이는 다양한 영양소를 섭취하고 잘 익혀서 먹어야 한다.
“세 번째로는 두창입니다. 우두라고 아시죠? 소에 걸리는 두창 말입니다?”
“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서양에서 목동들은 두창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래서 조사를 해보았더니 소두창에 한번 옮았던 사람은 두창에도 걸리지 않는 다는 것을 발견했죠.”
김진철 어의가 눈이 동그래져서 물어왔다.
“정말입니까?”
“맞습니다. 그래서 소두창을 일부러 사람에게 옮겨 봤더니 더 이상 두창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기막히군요.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그래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소두창을 시술했죠. 그러고 나서 그 나라에는 두창이 사라졌습니다.”
“허허허 어찌 그것을 몰랐을까. 조금만 관심을 가졌더라면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이라도 알았으면 됐죠. 그런데 주의할게 있습니다. 절대로 소두창이라고 소문이 나면 안 됩니다.”
“왜 그러죠?”
“그 나라 귀족들이 소두창을 맞으면 소가 된다는 헛소문을 퍼트려서 사람들이 협조를 안 해서 애를 먹었습니다.”
잠시 후 어의가 물었다.
“그 귀족이라는 것이 양반 같은 겁니까?”
“맞습니다. 아주 고리타분하고 머리에 똥만 차서 사리분간을 못합니다.”
“그건 조선과 비슷하군요. 하하하”
내의원의 어의라도 양반은 아니다.
양반에 대한 반감이 있었는지 아주 좋아했다.
김진철 어의는 깨달음을 얻었는지 멍하니 앉아 있다가 발길을 돌려 돌아갔다.
비누를 조선에 들여와 팔 생각을 한 박정기는 피라미드 호수에서 들소를 가공하고 나오는 지방을 이용하기로 했다.
양잿물의 원료인 수산화나트륨은 유럽에 생산 과잉이 될 정도로 많이 생산되고 있다.
“그래 수산화나트륨을 사다가 비누를 만들어 보자고, 부산물로 나오는 글리세린도 다이너마이트로 만들 수도 있고, 화장품도 되니까 일석 3조네.”
“화장품이요?”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박정기는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아이구 깜짝이야! 노크 좀 하고 다녀~ 노크!”
“히히히 한번만 더 화를 내주세요.~ 네~에?”
“이게 미쳤나? 너 뭐야?”
“한 번 더 화를 내줘 봐요~~~”
‘일을 너무 많이 시켰나? 이 샘이 이상해졌네.’
* * *
“그래 알아 봤는가?”
“네, 사복시 첨정과 안기가 살펴본 바에 따르면 한 필당 5,000냥 이상은 될 것 같다. 하옵니다.”
“그럼 비싼 것 아니요?”
“네 상등마가 500냥 정도 하니까 상당히 비싼 편입니다.”
“왜 그렇게 비싸게 매긴 것이요?”
“사실 가격을 매길 수 없이 좋은 말이라고 하옵니다. 워낙 우수한 말들이라 종마로 쓰면 좋겠다고 하옵니다.”
“허 그 정도요? 그 돈을 어떻게 마련한다.”
“......”
밤에 김좌근이 술병을 가지고 나타났다.
“웬일이요? 한밤중에.”
“자네와 한잔 하러 왔네.”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은데요.”
“사람 참! 나를 뭐로 보고.”
“뭐긴 뭐요? 배신자지!”
김좌근의 얼굴이 달아올라 헛기침을 해댔다.
“허흡! 큼큼! 면목이 없네.”
“술에 약탄거 아니요?”
“허~~”
김좌근은 신뢰 관계를 회복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수도 없이 많겠구나 생각했다.
“시원하게 말해보시오. 왜 왔어요?”
“그것이 그 군마들 말일세. 그거 당장 사야 하는가?”
“그럼 여기에 싣고 갈까요?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정말로.”
그 말은 진심이다.
말이 너무 탐이 나서 미국으로 모두 싣고 가고 싶었다.
“지금부터 150만 냥을 마련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걸세.”
“얼마요? 150만 냥? 왜 그렇게 되는 거죠?”
“진짜 이건 오해하지 말게, 사복시에서 잘 살펴보고 판단한 걸세.”
“150만 냥?”
‘허허, 허허허, 허허허허, 이게 웬 횡재냐? 말이 그렇게 비싼 거야?’
“그럼 장부에 달아 놓으시죠. 연이자는 10% 요.”
“프로가 뭔가?”
“1할이란 소리요.”
“싸긴 싼데, 1년에 이자 15만 냥을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뭐가 이렇게 가난해요? 진짜로 너무하네.”
‘조선의 재정이 아무리 검소하다고 해도, 이래서는 국방이고 뭐고 제대로 되겠어?’
박정기는 조선의 산업부터 일으켜야지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가셔서 누님께 그 돈 대신 땅과 사람으로 달라고 해주세요. 이게 뭡니까? 도둑놈이 들어왔다가 적선하고 가겠습니다.”
면박을 당했지만 김좌근은 할 말이 없었다.
“뭘 하려고 그러는가?”
“제가 산업단지를 만들어서 물건을 만들어 중국에 팔려고 합니다.”
“뭘 만들 것인가?”
“여러 가지 만들어야죠?”
“나도 같이하면 안 되겠나?”
‘또 시작됐군, 하여튼 돈 냄새는 기막히게 맡는 다니까?’
박정기는 제물포 인근의 땅, 100만 평과 공노비 3,000명을 받기로 했다.
혈통 좋은 말들은 철원으로 보내져 종마로 쓰기로 했다.
이때부터 조선의 군마는 우수한 품종으로 개량이 되었고, 동북아 최강의 기병 전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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