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 기술자들
92화, 원자가 무엇입니까?
‘느려도 범선이 낫겠다, 이게 뭐야?’
이래서야, 비싼 기름 태워서 배만 왔다 갔다 하는 거지,
사람과 화물은 얼마나 태우겠는가?
“저 많은 통들은 뭡니까?”
“물통입니다.”
“물만 먹고 삽니까? 물통이 왜 이렇게 많아요?”
“증기기관에 들어가는 물입니다. 2달 이상 쓰려면 이것도 모자랄까 봐 걱정입니다.”
한마디로 증기기관이 계속 증기를 내뿜으니까, 보충해주어야 한다.
복수기를 모르기 때문에 이런 사단이 벌어진 것이다.
물통만 없애도 3분의 1은 넓어질 것 같았다.
“이제부터 제 얘기를 잘 들으십시오.”
“네. 말씀하세요.”
“예.”
박정기는 심호흡을 하고 강의를 시작했다.
“복수기라는 것이 있습니다. 기관에서 나오는 증기를 바닷물로 식혀서 다시 물로 만드는 장치입니다.”
“아하! 그럼 물을 실을 필요가 없겠네요.”
“바로 그겁니다. 먼 바다를 항해하려면 복수기가 필수입니다.”
“하하하, 시장님은 모르는 게 없으십니다.”
기술자들이라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 없이 바로 알아들었다.
“복수기를 잘 만들면 진공 상태가 되기 때문에 당기는 힘이 강해져서 성능을 향상 시킬 수 있습니다.”
“아~ 밀어주고 당겨주니까 더 강해지는군요?”
“잘 아시는군요.”
1705년 토마스 뉴커먼은 실린더 안에 증기를 넣으면 피스톤이 올라가고, 증기에 물을 뿌리면 수증기가 응결 되면서 진공 상태가 만들어져 피스톤을 당겨 내려오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방식은 초창기 탄광의 물을 퍼내면서 급속도로 상용화되었다.
현대의 증기 터빈도 고압의 증기로 터빈을 회전 시키고, 복수기로 진공 상태를 만들어 그 힘을 배가 시킨다.
기술자들은 이 원리를 금방 파악하고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박정기는 한 가지 더 알려주었다.
“뜨거운 폐열로 바닷물을 데워서 물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식수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아하! 역시 시장님 대단하십니다.”
“뭐, 제가 잘났다는 게 아니고 기본적인 상식입니다.”
“......”
마지막 말은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기술자들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래도 꿋꿋하게 할 말을 모두 하는 박정기.
“저 공간은 뭐죠?”
“석탄을 실을 곳입니다.”
“석탄은 실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 배는 기름을 사용할 거니까, 저기에 큰 통을 만들어 주세요.”
“얼마나 큰 통입니까?”
“오크통 500개 정도 들어가는 걸로 양쪽에 두 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럼 크기를 얼마로 해야 하는 건지?”
“......”
오크통이 대략 225L 내외, 배럴이 200L 정도 하니까.
500개면 10만 리터, 약 100톤이다.
스마트폰을 끄적거리던 박정기가 말했다.
“직경 4m 길이 8m 정도로 만들면 됩니다.”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반지름 X 반지름 X 3.14 X 길이 하면 원통의 부피가 나오지 않습니까?”
증기기관 기술자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조선 기술자들은 재빠르게 메모를 했다.
‘설마 이걸 몰랐을까?’
조선소 기술자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다음 내용으로 넘어갔다.
“기름통 아래에 파이프를 만들고 뜨거운 물을 순환 시켜서 기름을 데워야 합니다.”
“왜 그래야 하죠?”
“너무 끈적거려서 데우지 않으면 사용하기 어렵습니다.”
“아~ 그렇구나. 그런데 그 정도 양으로 조선이라는 곳까지 다녀올 수 있습니까?”
박정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한양까지 가려면 1만km 거리가 되고, 왕복 하려면 2만km를 항해해야 한다.
10만 리터 짜리 두통이면 20만 리터, 거리는 2만km.
결국 10리터로 1km를 주행해야 한다.
‘실험 해보면 알겠지.’
“중유의 열량이 석탄의 2배 정도 됩니다, 왕복 거리가 2만km 중유가 20만 리터 있다면 1km 가는데 10리터의 중유가 필요합니다.”
“석탄으로 20kg과 비슷하겠군요.”
“오! 역시, 석탄으로 그 정도 됩니다.”
“가능하겠는데요.”
증기선을 운영해본 경험이 있어서 인지 석탄과 비교하니까, 금방 결론이 나왔다.
“그거 잘됐군요.”
“그런데 시장님, 연료통을 4개로 만들면 안 되겠습니까? 너무 커서 들여오기가 힘듭니다.”
밖에서 제작해서 선체 내부로 가져오기에는 너무 크다는 말이다.
“되기는 하는데, 음 그냥 여기에서 만들면 안 됩니까? 꼭 원통이 아니래도 됩니다. 저 양쪽을 막아서 유류 저장고를 만들면 되겠는데요.”
“기름이 새어 나오면 어떡하죠?”
기름이 새지 않게 밀폐 시키는 좋은 재료가 있다.
“아스팔트! 아스팔트를 드릴 테니까, 나무 틈새에 바르세요.”
“그게 뭡니까?”
“검은색 타르처럼 생긴 건데 효과는 더 좋을 겁니다. 선체에도 바르면 방수가 잘 됩니다.”
그래서 기관실의 면적이 반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다시 밖으로 나온 박정기는 전체적인 구조를 여객선으로 뜯어 고치기로 했다.
“지금 이 배는 물건을 싣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을 태우는 여객선입니다. 그래서 갑판 위에 객실을 지어야겠습니다.”
“위가 무거워지면 전복 될 수 있습니다.”
“증기기관이 무겁잖아요. 그리고 화물은 선창 아래 실으면 됩니다.”
“그러면 되겠네요.”
갑판 위에 양쪽으로 객실을 만들고, 가운데 복도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2층에는 가운데 함교를 짓고 조타실과 선장실, 선원실을 배치하고,
앞뒤 2층 갑판은 장기 여행객들이 운동을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럼 돛대는 어떻게 하죠?”
“없애도 됩니다. 만약 표류하게 되면 비행기로 찾아내면 되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디 있는지 알고 찾습니까?”
“다 방법이 있습니다.”
박정기는 운항하는 배에 무전기를 지급할 생각이다.
선실 배치는 2인 귀빈실, 5인 특실, 20명 일반실을 만들고, 침대는 필요 없이 바닥에 누우면 된다고 했다.
“바닥에서 잔다고요?”
“네 원래 바닥에서 잠을 자던 사람들이라 그게 편합니다.”
“그럼 공간이 많이 줄어들겠군요.”
“작은 방에는 2층 침대를 만들어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 밖에도 고온의 스팀으로 음식을 조리 해야 한다 던가, 구명정을 많이 싣고 다녀야 한다고 조언했다.
“진수 하려고 했는데, 다시 한 달은 더 작업해야 하겠습니다.”
“미안합니다.”
“저희도 기대가 되는데요.”
아스팔트와 중유를 내려주고, 발동기 제작에 참여한 몇 사람만 태우고 피라미드 호수로 출발했다.
비행기는 이륙해서 잠시 뒤 볍씨 뿌린 논 위에 나타났다.
“우와~ 벌써 다 자랐네.”
“그러게요? 씨 뿌린지 얼마 안 되는 것 같은데요.”
“잘 자라는 구나. 지난번에 하와이에서 버린 볍씨가 너무 아깝다.”
“저것만 해도 몇 천 명은 먹겠는데요?”
“몇 만 명은 먹어야지? 지금 인구가 얼마나 많은데.”
피라미드 호수 주변에 심어 놓은 감자와 고구마도 수확할 시기가 가까워지고 있다.
그리고 그쪽에도 벼농사를 짓고 있어서, 수확을 하게 되면 박정기와 궁녀들의 밥상에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잘 자라는 벼를 보면서 흐뭇한 마음으로 피라미드 호수에 도착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싣고 온 석유는 연구소로 옮기도록 지시하고 기술자 일행들과 연구단지로 들어갔다.
“이제 오셨군요.”
“왜 그러시죠?”
“저희가 리볼버 총을 완성해서 보여드리려고 기다렸습니다.”
“스티븐 팀장님은 아직 안되었습니까?”
“모르겠습니다.”
박정기는 기술자들과 함께 스티븐 연구실로 향했다.
연구소는 손님이 온 것도 모르고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팀장님 여기는 아직 준비가 안됐나 봅니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으니 좀 더 기다렸다. 같이 평가하시죠.”
“그래야겠네요. 어차피 오늘까지로 기한을 주셨으니 저녁나절에 뵙겠습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떤 총이 만들어 졌나 궁금했지만 공정한 심사를 위해 마리에트 팀장을 보내고 연금술 연구실로 갔다.
연구원들은 무언가 열심히 토론을 하고 있었다.
“모여 주십시오. 이곳 연구실 팀장님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아니, 디아스 아론씨가 아닙니까?”
“어, 새뮤얼씨가 어떻게 여기에.....”
서로 아는 사이인지 반갑게 악수를 나누며 그동안 안부를 묻고 답하느라 시간이 흘러갔다.
다른 사람들도 건너건너 아는 사이인지, 서로 악수를 나누며 알아서 인사를 했다.
그사이 석유가 도착해 오크통을 내리게 되었다.
할 일이 없어진 박정기가 석유 내리는 일을 도와주었다.
“빈 통을 왜 가져왔습니까?”
“하하하 빈통이 아니고 석유가 꽉 차있습니다.”
“그럴리가요? 저렇게 쉽게 들고 다니는데.”
“시장님은 헤라클레스만큼 힘이 좋습니다.”
“정말입니까?”
연구원들이 오크통을 들어보려고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석유가 한통 가득 담겨서 250kg 정도 되니까, 사람이 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인사 다 끝났습니까?”
“예,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수고는요?”
“뭘 먹어야 힘이 좋아지는 겁니까?”
“먹는 건 다 똑같습니다. 일단 자리에 앉아보십시오.”
“네. 다들 앉자고.”
“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습니다. 우선 영상 한편 보고 이야기 하죠.”
노트북을 켜자 신기한 듯이 몸을 당겼다.
미리 찾아 놓은 영상은 박정기가 석유화학에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보았던 것들 중에서 그래픽 처리가 되어있어 이해하기 쉽게 만든 영상을 선택했다.
영상이 돌아가자 연구원들의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아니 저게 뭔가?
-오 세상에.
영상 속에는 땅속에서 석유가 채굴 되어 배에 실리고 정유 공장에 들어와 증류 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약간, 만화 같은 영상이지만 그래서 이해하기가 더 쉬웠다.
온도에 따라 증류된 석유가 도로에 깔리고, 선박의 연료로 쓰이고, 자동차 연료, 비행기 연료, 그리고 드디어 나프타가 나왔다.
열로 가열하고 촉매가 작용해서 수없이 많은 물질로 변화하여 섬유, 플라스틱, 비닐, 고무, 의약품, 등등으로 합성되는 과정이 알기 쉽게 그래픽으로 재현 되었다.
변형될 때마다 탄화수소의 원자 모델 고리들이 갈라지고 연결되면서 그 물질의 원자 구조를 보여주었다.
‘아씨, 원자가 나오면 안 되는데, 이걸 물어보면 일주일로도 부족한데.’
아니나 다를까.
“이게 뭡니까?”
“에휴~ 원자라는 겁니다.”
박정기는 인생 포기한 사람처럼 답했다.
“원자가 뭡니까?”
“물질을 이루는 기본 입자입니다.”
“입자가 무엇입니까?”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가장 작은 단위의 물질입니다. 잠깐만!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중요한 일정이 있어서요.”
박정기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똘망똘망 바라보는 연구원들을 뿌리치고 노트북을 챙겨 달아났다.
서둘러 연구실을 빠져나오는 박정기의 뒤에서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어딜 갑니까?”
“잡아!”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이렇게 가면 어떻게 합니까?”
박정기는 손을 내저으며 그냥 도망쳤다.
‘지금 잡히면 끝장이다.’
어쩌면 일주일 아니 힌 달이 걸려도 못 빠져 나온다.
도망치듯 빠져나온 박정기가 향한 곳은 포탄 공장.
“지금까지 몇 개나 만들었습니까?”
“1차로 100개 만들어서 화약 공장으로 보냈습니다.”
“하루에 몇 개까지 만들 수 있죠?”
“보통 30개구요. 잔업을 하면 50개 까지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럼 오늘부터 잔업 좀 해주십시오. 수당은 두 배로 쳐드리겠습니다.”
“하하 알겠습니다. 요즘 돈 쓸 일이 많았는데 잘됐군요.”
포탄 제조 공장을 나와 화약 공장으로 갔다.
“포탄에 흑색 화약을 채우지 말고 잠시 대기 해주세요.”
“어! 벌써 다 채웠는데요.”
“그럼 다음에 오는 것부터 대기해주세요.”
“왜, 그러시죠?”
“연구실에서 새로 무연 화약을 만들고 있으니, 그것을 넣어주시면 됩니다.”
“언제 나오는데요?”
다이너마이트부터 개발해 달라고 연구실을 찾아가야 하는 데, 갔다가 잡히면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아 난감해졌다.
‘어떻게 하지?’
“어디서 만드는 겁니까?”
“요 앞에 연금술사들이 있는 연구소 아시죠?”
“네, 이번에 새로 온 분들 아닙니까?”
“하하 맞아요. 거기에 가서 다이너마이트를 빨리 개발해 달라고 재촉해보세요.”
“제가 가야 합니까?”
“앞으로 계속 거래를 해야 하니까, 이참에 다녀오세요.”
“알겠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화약 공장장이 문을 나서자 마자 박정기는 얼른 빠져나와 연병장으로 몸을 피했다.
“충성!”
“충성! 잘 지냈어?”
독수리 발톱과 오랜만에 마주한다.
“넵! 잘 지내고 있습니다.”
“참! 너도 여자 소개 시켜줄까?”
“......”
“왜? 싫어?”
“아닙니다. 사실 만나고 있습니다.”
“누군데?”
“대위님 부인께서 소개 시켜주었습니다.”
“뭐?”
‘이거 냄새가 나는데. 설마 군권을 장악하려는 건 아니겠지?’
박정기의 오해로 인해, 장 상궁은 평생을 독수공방하며 지내게 된다.
“총을 가져올 때가 됐는데.”
“무슨 총입니까?”
“새로 개발된 총이야, 너도 같이 시험해 보자.”
“어제 총은 대단했습니다.”
“오늘 것도 좋아, 기대해 보라고.”
“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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