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광동수사의 목은 날아가고.
117화 광동수사의 목은 날아가고.
황제가 탄 비행기가 광동함대 수영으로 입항하자 수군들이 나와 구경을 했다.
“무엄하다! 황제 폐하 납신다. 예를 갖춰라!”
“황제 폐하 납신다!”
-허억 황제 폐하시다.
-정말이야?
-곤룡포를 봐라!
-죽고 싶지 않거든 엎드려라!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겨우 정신을 차린 병사들이 엎드려 황제 폐하 만세를 외쳤다.
놀란 광동수사가 집무실에서 뛰쳐나와 비행기를 바라보니 황제가 부두에 내려 걸어오고 있었다.
기겁한 광동수사가 달려가면서 바로 부복하고 황제께 예를 올렸으나 황제는 없는 사람처럼 지나쳐 관청으로 들어갔다.
“이곳에 있는 자들을 가둬두고, 이곳을 철저히 뒤져서 뇌물이 있나 살피고, 문서를 빠짐없이 검사하라!”
“네이! 황상.”
“네이!”
황제와 함께 온 근위병이 관청에 있는 관리들을 한 창고 안에 몰아넣고, 대신들은 감사관이 되어 문서를 뒤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이상이 감지된 문서를 들고 황제에게 보고했다.
“황상! 이것은 서양 배에서 받은 금전 기록부입니다.”
“폐하! 상인들로부터 받은 뇌물장부입니다.”
“폐하! 광동수사 관사에서 대량의 은괴가 발견되었습니다.”
“황상~ 아편을 들여온 내역이 기록된 장부입니다.”
“수병들의 임금을 지급한 장부가 이상하옵니다.”
계속되는 보고에 황제의 미간이 찌그러졌다.
정상적인 장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모든 문서에는 서양 배와 상인들에게 들어온 뇌물내역으로 가득했다.
“당장 광동수사를 끌고 와라!”
“네이~”
잠시 후 세상을 포기한 듯 한 광동수사가 끌려 들어오고 관리들이 황제의 앞에 꿇려졌다.
“도적을 잡으라고 보냈더니, 도적질을 해? 어디 입이 있으면 변명해 보거라!”
“죽을죄를 지었나이다. 하지만 받지 않겠다고 하는데도 억지로 주는 것을 어찌해야합니까?”
“뇌물 바치는 자를 엄하게 처벌해야할 자가 그것을 변명이라고 하는 것이냐? 저놈을 당장 끌어내 목을 치고 재산을 몰수하라!”
“살려주십시오. 폐하! 늙은 어미를 두고 어찌 먼저가란 말입니까?”
“저런 발칙한 놈을 보았나? 네 어미도 뇌물을 함께 먹었으렷다. 저놈의 어미와 처자식도 함께 참하라!
“황상! 제발 살려주십시오. 황상~”
근위병들이 광동수사를 끌고 나가려고 하자, 처절하리 만큼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함께 끌려온 관리들은 사색이 되어 하얗게 질렸다.
“저놈들의 죄상을 철저하게 파헤쳐라!”
“네이 황상 폐하!”
황제의 친문으로 관리들 비명소리가 밤새 이어진 가운데, 끌려온 상인들이 제 살길을 찾으려고 머리를 굴렸다.
황제가 하루 동안 머물러야겠다고 해서 박정기는 제물포에 다녀왔다.
몇 대 안되지만 방적기와 방직기를 내려주고, 급히 제작된 발동기도 내려주었다.
함께 온 기술자들과 설비 갖추는 것을 도와서 교육용으로 쓸 수 있도록 준비해 주었다.
처음 보는 방직기에 조선 노비들의 눈은 휘둥그레 졌고, 이들에게 교육을 시킬 수 있도록 통역으로 정샘을 내려주었다.
울상이 된 정 샘에게 세 달만 참으라고 위로하고 다음날 광동함대로 돌아오니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장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누군데?”
“염인환 대인이 보낸 사람이랍니다.”
“염 대인이? 빨리 들여보내.”
젊은 청년이 비행기로 들어와 바닥에 넙죽 엎드려 유창한 영어로 말을 했다.
“소인은 염 인자 환자 되시는 분의 첫째 아들 장이라 하옵니다. 지금 아버님께서 광동수영으로 잡혀가셨는데, 부디 인연을 생각하여 살려주시길 간청 드립니다.”
“염 대인이 잡혀갔다고? 왜요?”
오랜만에 들은 염인환의 일에 박정기는 화들짝 놀랬다.
하와이에서 만나 암스테르담까지 함께 다녀온 모피장사꾼 염인환, 내년에 부산에서 포틀랜드까지 조선 사람을 태우고 오기로 약속한 사람이다.
‘광동에 오면 만나기로 했었는데.’
“광동수사에게 뇌물을 바쳤다고 끌려갔습니다.”
“뇌물을? 그럼 큰 처벌을 받는 건가요?”
“네, 어제 광동수사가 머리가 잘려 죽었습니다. 아마도 큰 화가 미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그래? 그럼 큰일인데. 나와 함께 황제를 만나러 갑시다.”
“제가요?”
“그래요.”
박정기는 염 장을 앞세우고 이 씨와 함께 광동함대 관청으로 향했다.
관청 앞에는 광동수사의 머리가 창에 꿰여 높이 효수되어 있었다.
“아이고, 저게 무슨 짓이야?”
“......”
박정기는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을 삼키며 시선을 피했다.
현대에 살던 박정기는 야만적이 처사에 과거로 왔다는 것을 새삼 피부로 느꼈다.
관청에 들어서자, 넓은 마당에는 죄인들이 가득했고, 높은 곳에 자리한 황제는 의자에 앉아 고문하는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형님 폐하, 상인들도 잡아오셨습니까?”
“그렇다네. 뇌물을 바쳤으니 잡아다 벌을 줘야지.”
황제의 대답을 듣고 난 박정기는 어떻게 해야지 염인환을 빼낼 수 있을까 머리를 굴렸다.
죄지은 사람인데 잘아는 사람이니까 빼달라고 하기에는 체면이 서질 않았다.
그것은 다른 죄를 또 짓는 것과 똑같기 때문이다.
‘으음! 홍콩으로 이민 오기로 한 사람이라고 할까?’
황제가 의아한 표정으로 박정기를 바라봤다.
“동생 왜 그러는가?”
“사실은 저와 거래하는 상인이 잡혀왔다고 해서 왔습니다.”
“무슨 거래?”
“저와 같이 유럽을 오가면서 모피 무역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랬군, 하지만 관리에게 뇌물을 바쳤다면 용서할 수 없네.”
“그 사람은 뇌물을 바친 것이 아닙니다.”
“뭐라? 지금 죄인을 두둔하는 것인가?”
“그게 아닙니다. 형님 폐하, 만약에 상인이 길을 가다가 산적을 만나서 돈을 빼앗겼다면 그 상인에게 산적을 도와준 죄로 벌을 내리실겁니까?”
“그게 무슨 말인가?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왜 벌을 내리는가?”
황제의 입에서 원하던 대답이 나왔다.
“당연히 피해자를 처벌하면 안 되죠. 그런데 말입니다. 염인환은 피해자입니다. 저한테 말하기를 관리들에게 빼앗기는 게 많아서 아무리 벌어도 남는 게 없다고 하소연했습니다.”
“......”
“누가 아까운 돈을 남에게 함부로 주겠습니까. 안주면 끌려가서 고초를 당하고, 상업을 못하게 하니까, 어쩔 수 없이 돈을 바치는 거죠. 그러니까 염인환은 죄인이 아니라 피해자입니다.”
“......”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것쯤은 황제도 안다.
염인환 이라는 자를 봐주고 싶어도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증명해 내야지 죄인을 풀어줄 수 있다.
‘정기적으로 상납을 했다고 했지.’
“형님 폐하! 뇌물이라는 것은 이익의 대가로 주는 게 아닙니까?”
“그렇지.”
“그런데 이익이 없는데도 항상 같은 날짜에 돈을 받아간다면 그것은 뇌물이 아니라 상납금이라고 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군, 다시 조사해 봐야겠네. 돌아가 있게나.”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도대체 언제 돌아가실 겁니까? 저도 바쁜 일이 많은데요.”
“크흠! 알았네. 얼른 끝낼 테니 잠시만 참게.”
“상인에게 벌을 내리실 때 추방 같은 건 없습니까?”
“추방?”
“네, 추방은 귀향보다 더 가혹한 형벌입니다. 자신의 형제자매와 조상이 묻혀있는 강토를 떠나서 혼자 산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자네가 추방하는 사람들을 모두 받아가겠군.”
“헤헤헤 그거야. 불쌍하니까 저라도 받아줘야지요.”
“관세가 얼마라고 했지?”
“2할입니다.”
“으음~ 그리고 아편도 막아주고, 외세 침입도 막아준다고?”
“네 맞습니다.”
“알았네. 추방에 대해 생각해 보겠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서둘러 주십시오.”
박정기는 황제에게 인사하고 비행기로 돌아왔다.
황제가 뇌물 문서를 확인해보니 정기적인 상납금도 상당히 포함되어 있었다.
‘상인들은 욕심이 많고, 선량한 백성들의 피를 빨아먹는 자들이니 죽어도 마땅하나, 홍콩으로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생각을 마친 황제는 박정기의 말대로 끌려온 상인들을 모두 홍콩으로 추방시키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죄가 중하지 않은 관리들도 홍콩으로 추방했다.
“또한 아편 중독자, 부랑아, 고아, 죄가 엄중한자는 잡히는 대로 홍콩으로 추방하라!”
“네이 알겠습니다.”
이런 황제의 어처구니없는 판결에 홍콩의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나중에는 ‘도둑질을 하고 홍콩가자.’는 속담이 생길정도로 황제의 명은 엄중했다.
오후에 도착한 황제 일행 중 몇 명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중 몇 명이 광동순무와 주요직에 황제의 임명받고 급히 현지로 떠났기 때문이다.
광동성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고 비행기는 북경으로 떠나갔다.
‘잘하겠지?’
박정기는 총독 임칙서에게 염 장을 옆에 두고 쓰라고 지시했고, 염 장에겐 무전기를 주면서 홍콩상황을 자주 보고하라고 일러두었다.
이렇듯 염 장을 빠른 시간에 중하게 쓰는 이유는 영어를 잘했기 때문이다.
이 시대는 외국어만 해도 최고의 인재로 대우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은 외국어 가능자가 워낙 희귀해서이다.
원리원칙을 중요시 여기는 임칙서에게 광동함대와 홍콩 총독을 맡기고, 염 인환과 염 장에게 무역을 총괄하게 했다.
나중에는 임칙서를 황제에게 돌려줘야 한다.
왜냐하면 임칙서가 박정기의 생각을 제대로 따라와 줄지 의문이 들었고, 황제에 대한 충심이 너무 깊었다.
비행기는 북경으로 날아와 황제를 내려주고, 천진으로 가 전리품으로 빼앗은 도자기와 비단 그리고 차를 가득 실었다.
2~3개월 지나면 유럽에 차 공급이 끊기고 차와 비단 값이 치솟을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 부지런히 유럽으로 옮겨 놓아야 한다.
다음날 새벽 준비를 마친 비행기는 천진항 앞바다를 박차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북쪽으로 가면 반대편의 암스테르담에 도착할 수 있다.
현대에서는 몽골과 러시아 영토를 지나야 하는 코스다.
“와~ 저기에 호수가 있어요.”
“응, 바이칼 호수야.”
“엄청 맑고 깨끗해요.”
바이칼 호수를 지나 우랄산맥을 넘고 상트페테르부르크 상공을 지났다.
산업혁명이 이곳까지 영향을 주었는지 수많은 굴뚝에서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이쪽으로는 처음 오는 거죠?”
“맞아, 앞으로는 이 길로 다닐 거야.”
“저는 이 길이 좋아요.”
“왜?”
“구경거리가 많잖아요.”
“맞아요. 바다위로 가면 아무것도 볼게 없어요.”
잠시 후 비행기는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다.
마치 기다렸던 것처럼 수많은 사람이 몰려와 비행기를 맞아주었다.
“어서 오십시오. 대표님!”
“잘 지내셨습니까? 부대표님!”
얀센사장은 신세계 주식회사의 부대표직도 겸하고 있기 때문에 부대표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이번에는 무엇을 가져오셨습니까?”
“중국산 비단과 차 그리고 도자기입니다. 기장님께 연락 받으셨죠?”
“네, 그래서 시장에 나오는 차와 비단은 모조리 사들이고 있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중국에 있는 영국 배는 모두 침몰했습니다. 그러니 차와 비단의 공급에 차질이 생길 것입니다.”
“헙! 그럼 우리배도 침몰했습니까?”
놀라는 얀센사장을 보고 박정기는 뜨끔했다.
“아닙니다. 다른 나라 배는 모두 무사합니다.”
“그럼 왜 영국 배만 침몰했습니까?”
“영국이 아편을 가져오는 바람에 중국 황제가 분노해서 영국 배를 모두 침몰시키라고 했습니다.”
“저희도 아편을 가져갔을 텐데요.”
“앞으로 아편을 취급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그랬다가는 미국이나 중국과 영원히 거래가 끊길 겁니다.”
“미국도요?”
“네, 아편은 사람을 망가트리는 악마의 약입니다. 만약 아편을 판매하는 자가 있다면 제가먼저 처단할겁니다.”
“아이고, 알겠습니다. 절대로 아편에 손대지 않겠습니다.”
“암스테르담 상인들에게 모두 전해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얀센사장의 확답을 듣고 북경과 광동에서 있었던 일련의 일들을 이야기 해주었다.
놀란 얀센사장이 영국과의 전쟁을 우려했다.
“이 사실이 영국에 알려진다면 영국 함대가 암스테르담으로 쳐들어올지도 모릅니다.”
“으음, 그럴 수 있겠군요. 영국의 정보를 미리 알 수 없습니까?”
“저희와 거래하는 상인이 많이 있지만 그들 또한 피해를 입었으니 정보를 줄 리가 없겠지요.”
‘그렇다면 선제공격을 해야 하나?’
박정기는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Commen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