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검사는 거물이 되기로 했다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공모전참가작 새글

기신
그림/삽화
야근의신
작품등록일 :
2024.05.08 10:01
최근연재일 :
2024.09.19 21:50
연재수 :
60 회
조회수 :
602,645
추천수 :
12,053
글자수 :
661,195

작성
24.08.20 21:50
조회
6,718
추천
164
글자
21쪽

(48) 회장 등극식에서 대법관을 이용해 진범을 잡다

DUMMY

그러니까 이 모든 사건은 결국 후계자의 죽음에서 비롯되었다.


“내 아들이 상속인이야. 법적으로 정당해, 이건.”


문펠리스, 월야그룹 산하의 6성급 호텔이다.


이곳에 한국을 대표하는 재계인사들과 월야그룹 고위 관계자, 그리고 기자들이 몰렸다.

새롭게 월야그룹의 지주사 대표이사 겸 이사회 의장이 발표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요식행위만 남았을 뿐, 누가 [회장] 자리에 오를지는 이미 정해져 있다.


윤서희는 단상 쪽을 뒤에서 응시하다 속삭였다.


“내 아이는 호적상 하경진의 친자야.”


하경진은 죽을 때까지 본인이 [불임]이란 진실을 몰랐다.


이건 하경진의 사후 의료기록을 통해 밝혀진 사실이다.

또한 자식들이 친자가 아니란 것을 법적으로 정정할 여유도 없었다.

가족 기록부 정정청구를 할 권리자들에게 시련이 계속 닥쳤기 때문이다.


하유식이 쓰러지고, 하연주는 본인도 하경진의 친자가 아닌 상태였고, 이연자가 죽었다.

실로 윤서희에게는 유리한 상황이 계속되었던 거다.

하늘의 도움일까?


그럴 리가 없다.

세상 대부분의 일은 우연이 아니다.

문득 윤서희가 눈을 가늘게 떴다.


“게다가 유전적으로도 하씨 가문의 종손이지. 살아남은 유일한 남자 후계자.”


게다가 윤서희는 양심상 거리낄 것도 없다.


하무휼은 하씨 집안의 남자 아이가 맞기 때문이다.

바로 하대진이 친부다.

그런데 하대진의 부친은 누굴까?


대외적으로는 역시 망나니였던 방계고, 모친은 [조폭] 일진회의 부두목 딸이라고 한다.

게다가 조폭항쟁 때문에 둘 다 일찍 죽었다.

한데 실제로는 그 모친을 애인으로 둔 남자가 따로 있었다.


바로 하유식 회장이다.


“그러니, 이게 맞아.”


문득 플래시가 터지는 소리가 들려 윤서희는 심호흡을 했다.

그간 장례식이 아닌 이상 대외적인 활동을 하지 않았던 윤서희다.

허나 이 순간부터 윤서희는 월야그룹의 회장이다.


아들, 하무휼을 대신해 재계 3위 그룹 총수가 되는 것이다.


-찰칵, 찰칵, 찰칵!


윤서희가 단상 뒤에서 나오려던 찰나, 누군가가 가로 막았다.


“어머! 놀랍네! 올케! 어떻게 지주사 대표 자리를 떡하니 차지했어? 응?”


하명희, 월야문화재단 이사장이자 하유식의 막내딸이다.

그 뒤로 하씨 일가들이 윤서희를 노려보는 게 보인다.

엉뚱하게도 모두를 제치고 윤서희가 월야 총수가 될 마당이니 화가 나지 않을 리가 없다.


그러나 윤서희는 하명희를 빤히 보다 배우답게 미소를 머금었다.


“제가, 손위뻘인 걸로 아는데요. 이사장님.”

“그야 우리 죽은 오라버니가 젊은 여자랑 결혼해서 그런 거지. 나보다 어리면서 윗사람 행세하려고?”

“이제부터는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문득 윤서희가 하명희에게 낮게 말했다.


“제가 월야그룹의 지배권을 쥐었으니까.”


그건 월야문화재단 이사장도 교체해 버릴 수 있단 얘기다.

하명희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명희 뒤에서 빤히 쳐다보고 있던 차녀, 하선희가 입술을 뗐다.


“아직, 안 끝났어.”

“무슨 소리지요, 선희 씨?”

“주주총회에서 뒤집을 수 있다고. 넌 아직 완전히 대주주가 아니야. 상속이 제대로 이뤄지면 주연이가 1대 주주야!”


자식이 없는 하선희에게 핏줄은 조카들 뿐이다.

그래서 큰오빠의 딸, 하주연에게 가장 큰 기대를 걸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윤서희는 여전히 매력적인 미소를 띤 채 되물었다.


“누가 입증하나요?”

“뭐?”

“회장님이 남겼다는 유서, 아직 밝혀진 것도 없잖아요? 검찰은 압수해 간 후 공개하지 않고 있고.”


일순, 윤서희는 멀리 자리에 앉아 있는 하무휼을 보다 웃었다.


“그럼 균분상속으로 무휼이도 회장님 지분을 받아요. 게다가 우리 하씨 가문은 남계 우선주의 아닌가요?”


하무휼은 아주 불안한 얼굴이다.


아직 어린 데다 아버지와 조부모가 연이어 죽는 사태를 맞이했다.

하여 평범한 아이라도 불안할 수밖에 없는데, 재벌가 상속분쟁으로 어른들은 으르렁댄다.

허나 모친인 윤서희부터 하무휼이 받게 될 [주식]이 가장 큰 관심일 뿐이다.


순간, 하선희가 소리쳤다.


“무휼이는 하씨가 아니잖아!”


내빈들이 소음에 고개를 돌릴 찰나, 윤서희가 하선희 앞에 다가섰다.


“아니, 하씨예요. 법적으로든, 유전적으로든.”


이건 용납할 수 없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한데 듣고 있던 하선희는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법적 문제야 그렇다쳐도, 유전적인 얘기는 또 뭘까?


“그게 무슨, 설마?”


그때 축하 리셉션이 펼쳐질 [홀]을 검은 양복남들이 에워쌌다.


-척, 척, 척!


평소 월야그룹의 경호를 책임지는 보안팀이 아니다.

일견 정중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문신이 언뜻 보이는 조폭들이다.

하씨 일가 여자들이 숨을 죽일 찰나.


그 선두에 하대진이 선 채 웃었다.


“아줌씨들, 닥치고 식사나 하고 가. 아니면 자리에서 완전히 쫓겨나는 수가 있어.”


모두 입을 다물었다.

장녀 하경희도, 차녀 하선희도, 삼녀 하명희도, 그리고 하경진의 아내 권주선도.

이제 도저히 힘으로는 엎을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윤서희가 단상으로 향하며 사회자를 돌아보았다.


“자, 그럼. 시작하죠.”


사회자, 월야그룹 지주사 임원 최경민이 헛기침을 했다.


“내외빈 여러분, 이제 신임 월야지주사 대표이사 겸 회장, 윤서희 여사가 들어오십니다. 모두 박수로 맞이해주시기 바랍니다.”


가장 못마땅한 얼굴은 둘이다.


월야의 주주이기도 한 시대모터스 조군명 사장.

얼마 전까지 윤서희의 변호사이기도 했던 대법관 홍복원.

윤서희는 그들을 보며 야릇한 쾌감을 느꼈다.


이겼다.

자신을 배우라고 우습게 보던 재벌가 3세들과 대법관에게 승리한 거다.

하지만 쾌감을 얼굴에 드러낼 곳은 침상 뿐이다.


좌중을 둘러보며 윤서희가 일부러 떨리는 목소리를 냈다.


“존경하는 월야그룹 임원 여러분, 그리고 내빈 여러분. 반갑습니다. 윤서희입니다. 은퇴한 후 카메라 앞에 서는 게 이런 자리일 줄은 몰랐습니다.”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어 슬피 눈물을 흘리며, 윤서희의 말이 이어졌다.


“제 남편과 시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정말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월야그룹은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이며, 단 한 시도 회장 자리를 비울 수 없는 공적조직입니다.”


하필 회장에 경영 경험이 하나도 없는 윤서희가 앉을 필연적 이유는 없다.


그렇지만 연이은 총수 일가의 죽음은 월야그룹을 공황상태로 만들었다.

법적으로 상속인이 될 가능성이 높은 하무휼의 보호자가 나서는 게 이상하진 않다.

그렇기에 윤서희가 회장 자리에 오를 명분은 있다.


이제 회장 등극 선언을 할 시간이다.


“그래서, 저는, 많은 분들의 뜻을 받들어······.”


그때, 기이한 소음이 스피커를 흘렀다.


-치이익!


윤서희는 마이크를 살폈다.

단상 위에서 흘러나온 소리가 아니다.

그 순간 묘한 목소리가 들렸다.


[사전에 약속했지 않습니까?]


바로 아래, 목소리의 주인인 하대진이 수하들과 함께 황급히 움직였다.


“이거 뭐야! 지금 당장 꺼!”

“어디서 나오는 거야! 호텔 지배인 나와!”

“시발, 관리실로 가, 당장!”


몸이 떨려 온다.

이건 녹취가 분명하다.

대체 누가 한 걸까?


[무슨 소리냐, 그게? 내가 약속한 상대는.]

[서희죠. 그런데 나오자마자 서희가 연락하더군요. ‘작은 아버님’이 약속 파기하고 이사회 자리도 하나도 안 주기로 했다죠?]

[대체 그게 무슨 말이냐? 서희가 너랑 무슨 상관이라고.]


한 순간 윤서희의 시야에 앞에 앉아있던 사람이 들어왔다.


전직 대법관 홍복원.

윤서희는 몰랐지만, 하무식과 하대진이 마주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회장실에 있던 제3자다.


홍복원이 히죽 웃었다.


[서희 자식이 내 자식입니다. 아직도 모른 척 하깁니까! 하유식 회장도, 이연자 그년도 내게 죽이라고 지시할 때는 언제고!]


그 순간 플래시가 터지며 기자들이 밀려 들었다.


“윤서희 씨, 저기 나오는 ‘서희’라는 분이 본인 맞습니까?”


기자의 이름은 서나래, XBC의 계약직 기자지만, 윤서희는 그건 모른다.


“아니,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대체 이게 뭔가요? 조작이에요!”

“그렇다면 지금 방금 들린 녹취에서 폭로하는 분은 누굽니까? 어쩐지 하무식 월야그룹 부회장님과 대화하는 것 같은데요?”

“전, 아무것도, 몰라요!”


윤서희가 비명을 지를 순간 또 다른 음성이 스피커에서 흘렀다.


[아시죠? 제 아이, 무휼이가 사실은 아버님 친손주라는 거.]


이건 윤서희의 목소리다.

윤서희는 소름이 돋는 기분을 느꼈다.

VIP 병실에 누군가 비밀 녹음기를 설치했던 걸까.


만약, 그렇다면.


[편히 가세요. 하늘로.]


하유식 회장을 죽였던 일마저 녹음되었다는 뜻이다.

온몸에 힘이 풀려 윤서희가 주저앉을 순간.

홍복원 대법관이 어깨를 으쓱였다.


썩 마음에 드는 상황은 아닌듯한 얼굴로.


“이런, 저건 내가 모르는 녹취로군.”


곧이어 리셉션 홀의 문이 열렸다.


-뚜벅, 뚜벅, 뚜벅.


이번에도 양복 차림의 남자들이지만 조폭과는 다르다.


“윤서희 씨?”


백색 머리의 검사, 나유신이 윤서희를 응시하며 말했다.


“당신을 하유식 회장 살인 [미수] 혐의로 체포합니다. 그 옆에 계신 하대진 씨도 공범으로 체포합니다. 당신들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윤서희는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아니야, 나는!”


그러나 수갑은 피할 수 없다.


-철컥!


동시에 나유신은 수갑 위로 떠오르는 황금문자를 보았다.


[사건 해결, 시한부 유예.]


월야그룹 회장 등극식,

이연자 살인사건 진범이 체포되는 순간이었다.


***


시간은 일주일 전으로 되돌아간다.


“새파란 후배가 오라가라 할 기수가 아닌데 말이야, 내가. 아, 사무관? 커피 좀 주게.”


전직 대법관 홍복원은 노담지검 나유신 검사실에 앉아 느긋하게 말했다.


검찰 사무관을 커피타는 사람으로 만드는 태도는 실로 권위적이다.

다만 상대가 전직 대법관이란 점을 감안하면 당연할 수도 있다.

법조 사회의 정점에 있는 존재가 대법관들이니까.


게다가 홍복원은 역대 최연소 대법관으로 이름 높았던 사람이다.

법복을 벗고 강앤함으로 갈 때도 무수한 화제를 뿌렸다.

이제는 재벌가 상속 사건에나 뛰어들어 협잡을 부릴 정도로 몰락하긴 했지만.


과거의 법조 거물, 홍복원을 보다 나유신이 대꾸했다.


“그건 검찰이 판단합니다. 홍복원 변호사님.”

“허, 지금 날 뭐라고 불렀나?”

“변호사 아니십니까? 혹시 제가 모르는 직책이라도 있으신지?”


홍복원은 나유신을 노려보다 홍신정이 가져온 커피잔을 잡아챘다.


“······검찰에 미친 망나니가 있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지. 직접 겪어보니 정말 죽을 줄 모르고 달려드는 불나방 같군.”


한국 사회는 이름을 부르는 게 무례가 되는 이상한 문화가 있다.


그럼 뭘 불러야 할까?

직책이나 자격증, 혹은 명예 직함을 붙여서 호칭해야 한다.

그런데 이 직함을 부를 때도 현직 직함이나 최근 직함을 부르면 실례가 되기 쉽다.


그 사람이 지냈던 가장 높은 자리를 불러야 예의에 맞는 칭호가 된다.

장관을 지내면 평생 장관이고, 사장을 역임했으면 평생 사장이며, 대법관은 어디 가서든 대법관인 거다.

물론 검찰에서는 높으신 분을 이름으로 불러서 기를 꺾는 게 수사방식이긴 하다.


그래도 전직 대법관을 참고인으로 불러서 변호사라고 부르는 건, 분명 위험한 짓이다.

나중에 대법관이 알고 지내는 [동기]들이 그 검사를 짓밟을 테니까.

시한부 황금문자 알림을 늘 보고 지내서, 다른 건 알바 아닌 나유신이라면 모를까.


나유신이 태연히 말했다.


“그럼 불나방이 지르는 불에 타죽으시겠군요.”

“무슨 소리지, 지금?”

“살인모의. 가담하셨습니까, 홍복원 변호사님?”


홍복원은 어이없는 얼굴로 나유신을 마주 노려보았다.


“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건가. 검찰이면 이렇게 선량한 법조인을 불러 아무 말이나 해도 되나!”


나유신은 홍복원을 보며 비웃었다.


선량한 법조인이 세상에 존재한다 해도 홍복원은 아닐 것이다.

홍복원 대법관이 무슨 짓을 저지르고 다니는지, 나유신도 대략은 조사했다.

강앤함 변호사가 된 후, 시대그룹과 손잡고 온갖 일을 벌였다는 것도.


그 정점에 이번 월야그룹 상속분쟁이 있다.

아마도 시대모터스가 월야그룹의 경영권을 쥐게 되면, 지분이라도 받기로 담합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게 중대범죄라고 하긴 애매하다.


과연 전직 대법관답달까.


“이곳에 그럼 왜 오신 겁니까?”

“그야 당연히 소환했으니 협조 차원에서 온 거지!”

“유언장 내용이 궁금해서 오신 거 아닙니까?”


나유신의 일침에 홍복원이 낯을 굳혔다.

유언장 때문에 온 게 맞기 때문이다.

혹시 유언장 내용이 홍복원의 예상과 다르다면, 처음부터 다시 판을 짜야 한다.


“말해줄 것처럼 얘기하는군.”

“들려드릴 수도 있죠. 하지만, 제 질문에 먼저 답하셔야겠습니다.”

“그 말 같지도 않은 질문을 던진 이유가 뭔가? 내가 누군지 정말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그 순간 나유신이 차갑게 말했다.


“홍 변호사님의 의뢰인, 하무식 씨는 이연자 씨 살해교사 혐의가 있습니다.”


홍복원의 낯이 완전히 굳어졌다.


당연히 홍복원이 살해모의에 가담할 이유는 없다.

아무리 불법을 넘나드는 변호사라도 법의 테두리를 완전히 벗어나는 경우는 드물다.

하물며 전직 대법관이자 강앤함의 파트너 변호사라면 차라리 법으로 싸우는 쪽을 택할 것이다.


다만 의뢰인이 어떤 불법을 저질렀을 때, 눈감고 넘어가는 경우는 많다.

실은 홍복원도 하무식이 뭔가 저지른 것 같아 마음에 걸리던 차다.

허나 살인, 그것도 총을 이용한 가족 살인이라니.


재벌가 부회장이 할 만한 일은 아니다.


“지금 그게 무슨 말인가? 하무식 부회장은 월야그룹의 2인자야. 아니, 총수가 쓰러진 지금은 사실상 1인자라고. 재벌그룹 총수를 그렇게 함부로 몰아가는 게 아닐세!”

“진술이 있다면 어떻습니까?”

“뭐?”


나유신은 홍복원을 주시하며 말했다.


“하대진, 일진회 산하조직인 오진회 두목. 월야그룹의 청부 해결사. 그리고.”


5초 예지, 신체 반응, 감정 상태.


“하무식과 공동모의해 하유식 씨를 의식불명 상태로 만든 장본인.”


여기에 정오판정이 떠오른다.

과연, 홍복원은 나유신의 질문에 뭐라고 답할까?

홍복원의 낯빛이 여전히 굳어진 상태지만 창백해지지는 않았다.


“지금 검사 협박으로 들어와 있는 친구입니다.”

“허, 그런 깡패가 있나? 난 모르네.”

“하무식 부회장은 알 겁니다. 왜냐하면 통신기록이 알려주고 있거든요. 그런데 이 작자가 알리바이가 없어요. 이연자 씨가 살해당한 날.”


홍복원이 기가 막히다는 듯 고함쳤다.


“알리바이가 없다고 범인이라니, 그게 무슨!”


나유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대진을 홍복원이 모른다는 건 거짓말이다.

다만 하무식의 살인교사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건 사실이다.

그렇다면 두 가지를 엮었을 때, 홍복원의 위치는 간단하다.


방조다.


“짐작하고 계셨군요.”

“무, 무슨 소리야, 그건 또? 난 모른다니까!”

“상관없습니다. 검사 폭행과 협박은 중범죄죠. 공무집행방해도. 저는 하대진이란 작자를 계속 붙잡아 두고 진술을 받아낼 때까지 족칠 수 있습니다. 조폭이니까 쉽죠.”


문득 나유신이 입가를 틀며 홍복원을 가리켰다.


“그런데 제 생각엔 그러다 보면, 전직 대법관 한 분이 공범이라는 진술이 나올 것 같다는 말이죠.”


보통 이런 걸 삿대질이라고 한다.


단연 한국사회에서는 이름 부르는 것 이상으로 무례다.

허나 홍복원은 그 점을 지적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식은 땀을 흘리며 홍복원은 눈을 굴렸다.


검찰은 거짓을 진실로 만들 수 있다.

어떻게?

관련자 진술을 이용하면 된다.


검찰의 수사는 법관의 판결처럼 법적으로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가의 판단 절차로서 검찰 수사결과는 반쯤 공인된 힘을 가진다.

그런데 전직 대법관이 살인에 연루되었다는 조폭의 진술이 나온다?


그저 헛소리라고 치부될 얘기가 검찰의 공인을 거치면 달라진다.


“협박인가?”

“제 생각엔 진실일 거 같은데요?”

“그렇게 만들겠다는 소리겠지. 허.”


홍복원이 다시 눈을 굴리며 대책을 생각할 찰나, 나유신이 문서 서류철 하나를 내밀었다.


“시대모터스 조군명 사장하고 연락하신 기록이 많더군요.”


나유신의 질문을 부정하는 대신, 홍복원은 반문했다.


“자네, 내 통신기록까지 뒤졌나?”

“용의자니까요.”

“이봐, 나유신 검사!”


찰나, 나유신이 홍복원을 정시했다.


“의뢰인인 하무식을 배신하고 시대그룹에게 월야그룹을 넘길 모의를 하셨죠?”


이건 진실이다.

또한 나유신이 을러대는 살해교사범 협박에 몰두하느라 홍복원은 심리적으로 허를 찔렸다.

미처 대답하지 못할 순간, 나유신이 홍복원의 실제 범죄를 읊었다.


“그건 중대한 배임행위입니다. 변호사 자격 박탈에 형사처벌도 가능한 사안이죠.”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나? 전직 대법관을 기소한다고? 설사 기소한다고 판결이 나올 거 같아?”

“변호사님의 명성을 망가뜨릴 수는 있죠.”


나유신이 홍복원의 통신기록을 두들기며 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협조하실 겁니까?”


한국에서 전직 대법관에게 애매한 죄책으로 판결을 내릴 수 있는 법관은 없다.


검찰 수사 결과에 약간만 빈틈이 있어도 당연히 무죄가 나온다.

허나 나유신은 유죄판결이 목적이 아니다.

당장 홍복원을 흔들어 원하는대로 움직이는 게 목표일 뿐.


게다가 재벌가 살인사건에 엮인 대법관 하나, 명성을 박살내는 건 쉽다.

그것도 자신의 욕심을 따라 대형로펌에 투신해서, 이미 한 번 명성을 더럽힌 대법관이라면.

홍복원 전 대법관이 나유신을 노려보다 되물었다.


“뭘 원하는 건가, 대체?”

“진범을 잡을 수 있는 증거죠.”

“대체, 뭘 어떻게 하려고?”


나유신이 주머니에서 물건 하나를 꺼내들었다.


-슥.


홍복원이 그 물건을 볼 찰나, 나유신이 말했다.


“곧, 하대진을 풀어줄 겁니다.”

“뭐? 지금까지 한 말은 또 뭐고?”

“조폭 하나 잡는 건 언제든지 가능하죠. 단, 그자가 월야그룹을 쥐기 전까지는.”


하대진도 이제는 깨달았을 것이다.


일개 조폭 따위는 검사에게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을.

아무리 월야그룹을 배경으로 업었더라도.

그렇기에 하대진이 살 길은 하나밖에 없다.


월야그룹 경영권을 쟁취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건 하무식 부회장에게도 위협이 되겠죠? 하대진과 하무식이 충돌할 겁니다. 그때를 위해, 이걸 가져가시죠.”


홍복원은 나유신이 책상에 놓은 부착형 녹음기를 보다 혀를 찼다.


“원격이군. 허.”


이게 바로 홍복원이 하대진과 하무식의 대화를 녹취하게 된 이유다.


***


당연히 이건 불법이다.


“이건 불법 증거야!”


굳이 법률전문가가 아닌 하대진조차 알 정도로 명백하다.


제3자의 대화 녹취.

정보통신망법에서 가장 금지하는 불법행위다.

그럼 뭔가 문제일까?


이 녹음은 법원에서 증거로 채택될 수가 없다.

아무리 명백한 사실이 녹음되었다 해도.

그렇지만 검사에게는 사실 증거의 불법성을 뛰어넘을 방법이 있다.


강앤함의 변호사가 아직 오기 전, 나유신이 심문실에서 고함치는 하대진 앞에 섰다.


“그야, 그렇지. 위수증이지. 제3자 녹취니까.”

“대체 그럼 뭘 근거로 나를, 윤서희를 잡는 건데!”

“이제부터 자백할 테니까.”


나유신이 하대진을 보며 차갑게 웃었다.


“아니면 살인미수로 끝날 것을 존속 살인교사까지 뒤집어 쓸 테니까. 어쩔래? 애 엄마를 감옥에 20년 간 집어넣을 건가?”


그러니까 이런 얘기다.


하유식 회장은 죽지 않았다.

사전에 나유신이 하유식 회장실에 녹음기를 설치했고, 또한 사전 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윤서희는 살인죄가 아니라 살인미수죄다.


하지만 시어머니 이연자를 죽게 만든 것은 명백히 존속살인의 교사다.

존속살인은 일반 살인보다 엄격하게 처벌되는 경향이 있다.

그럼 윤서희는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기약 없는 무죄 투쟁을 하거나, 하나라도 자백해서 검찰과 [딜]을 하거나.

이런 상황에서 윤서희는 하대진과 분리되었다.

과연, 누가 먼저 배신할까?


하대진이 뚫어져라 나유신을 보다 이를 갈았다.


“넌, 악마 같은 놈이군.”


나유신은 코웃음을 쳤다.


“사람을 수단으로 죽이는 자에게 들을 얘기는 아닌데. 자, 선택하라. 하대진.”


진술서가 하대진 앞에 놓였다.


“네가 20년 살 거냐, 아니면 윤서희를 20년 살게 해줄까?”


하대진은 진술서를 보다 이를 악물었다.

윤서희가 버틸 리 없다.

그렇다면, 하대진이 먼저 배신하는 것도 방법이다.


진술서를 뚫어져라 보던 하대진이 입을 열었다.


“내가 모두 저질렀다.”


최후의 순간, 하대진은 인간이 되기를 선택한 것이다.

자신을 버린 부친과 달리, [애인]을 버리지 않음으로써.


작가의말

* 이제 사건의 또 다른 숨은 배후가 드러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신입검사는 거물이 되기로 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임시) 제목 변경(검찰청 망나니->신입검사 거물) 24.09.02 323 0 -
공지 연재시간(오후 10시, 주6일) 24.05.08 18,031 0 -
60 (59) 검찰 민생 TF가 보이스피싱을 잡는다 NEW +3 4시간 전 1,230 39 10쪽
59 (58) 재벌가 상속녀도 보이스피싱을 당한다 +16 24.09.18 3,431 77 9쪽
58 (57) 전시안 보유 시한부 인생은 무서울 게 없다 +12 24.09.17 3,915 89 29쪽
57 (56) 새로운 검찰총장이 백발공적을 보호한다 +12 24.09.12 4,953 108 30쪽
56 (55) 총장의 자백으로 3조 폰지 사기를 부수다 +22 24.09.09 5,225 131 28쪽
55 (54) XBC 폭로로 현직 총장 사모를 붙잡다 +20 24.09.07 5,190 123 28쪽
54 (53) 황금금강석 멤버들은 그린벨트에 3조를 투자한다 +12 24.09.04 5,503 109 28쪽
53 (52) 총장 사모님이 피라미드 거물이다 +22 24.08.30 5,842 115 28쪽
52 (51) 3조짜리 피라미드 조직을 잡아보자 +18 24.08.29 6,014 126 29쪽
51 (50) 나유신이 첫 휴가지에서 상속녀를 보다 +26 24.08.24 6,641 140 31쪽
50 (49) 초보형 전시안으로 사채왕을 발견하다 +16 24.08.22 6,590 154 30쪽
» (48) 회장 등극식에서 대법관을 이용해 진범을 잡다 +20 24.08.20 6,719 164 21쪽
48 (47) 재벌 회장이 되게 해주세요 +26 24.08.18 6,809 156 34쪽
47 (46) 특수부 폭력이 조폭 진범보다 위다 +20 24.08.14 7,007 169 34쪽
46 (45) 강앤함과 월야 재벌가의 동상이몽을 털어라 +12 24.08.12 7,155 156 24쪽
45 (44) 월야그룹 살인사건을 만나다 +12 24.08.08 7,807 152 25쪽
44 (43) 나유신의 팀을 수도대 동문회에서 완성하다 +14 24.08.06 8,196 167 35쪽
43 (42) 백사여, 노담에서 다시 시작해라 +20 24.08.02 8,325 177 29쪽
42 (41) 시한부 연장권과 함께 중수부가 폐지되다 +20 24.07.31 8,157 194 20쪽
41 (40) 백발이가 사채왕을 잡다 +27 24.07.30 8,079 195 21쪽
40 (39) 이렇게 된 이상 선제 폭로로 중수부를 친다 +14 24.07.28 8,019 195 19쪽
39 (38) 진짜는 미래살인 배후 사채왕이다 +16 24.07.26 8,016 191 21쪽
38 (37) 금수저 비밀 정보로 스캔들 범인부터 잡다 +19 24.07.24 8,056 187 32쪽
37 (36) 이건 중수부의 운명이 걸린 사건이다 +14 24.07.19 8,182 180 30쪽
36 (35) 위치 추적 보상과 함께 서울시장 스캔들을 만나다 +22 24.07.17 8,480 187 23쪽
35 (34) 진짜 마약범을 잡고 금수저 변호사와 손잡다 +27 24.07.15 8,419 197 22쪽
34 (33) 골드스컬 클럽을 함정으로 일망타진하다 +17 24.07.14 8,355 192 23쪽
33 (32) 조기유학 금수저 학폭이 사건 진상이다 +16 24.07.10 8,432 183 23쪽
32 (31) 철벽의 성을 대규모 교사 시위로 넘어볼까 +13 24.07.08 8,370 188 22쪽
31 (30) 학교폭력 연쇄 자살사건이 터졌다 +15 24.07.05 8,764 183 22쪽
30 (29) 한국 재계를 뒤엎을 진짜 거물을 만나다 +21 24.07.03 9,056 195 24쪽
29 (28) 노동 살해 협박으로 진범을 잡다 +16 24.07.01 8,902 202 22쪽
28 (27) 솔라코인 전관 법무팀의 방어를 뚫어라 +15 24.06.27 9,092 197 21쪽
27 (26) 특수부 첫 사건은 1조원 분식회계다 +17 24.06.26 9,434 199 22쪽
26 (25) 중수부장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받다 +15 24.06.24 9,644 201 35쪽
25 (24) 백발이를 죽인 자에게 진짜 복수를 해보자 +16 24.06.19 9,368 198 34쪽
24 (23) 백사가 또 검사를 잡았다 +22 24.06.18 9,448 200 22쪽
23 (22) 특수부식 예단수사로 마약통관범을 잡아라 +11 24.06.15 9,499 197 23쪽
22 (21) 이 나라에는 마약도 너무 많다 +17 24.06.13 10,275 210 24쪽
21 (20) 첫 기자회견과 함께 위수증 5백억 코인이 남다 +19 24.06.07 10,259 224 36쪽
20 (19) 5초 예지로 폭발 속 범인을 잡다 +14 24.06.06 10,153 221 24쪽
19 (18) 감옥에 보낼 놈은 내가 고른다 +14 24.06.04 10,136 218 18쪽
18 (17) 1천억 비트코인 사건을 5초 예지로 파헤치자 +14 24.05.31 11,148 219 31쪽
17 (16) 나를 건드리면 검찰총장 예정자도 가만 안 둔다 +25 24.05.29 11,025 233 26쪽
16 (15) 독사를 건드리면 제왕도 문다 +20 24.05.27 11,101 237 30쪽
15 (14) 공판부 땜방으로 백발검사를 보내라 +10 24.05.24 11,598 224 30쪽
14 (13) 언론비리 일망타진으로 신체감정 보상을 받다 +11 24.05.23 12,217 230 31쪽
13 (12) 특활비 별건수사로 무전취식 기자를 잡자 +12 24.05.21 12,306 237 21쪽
12 (11) 사고뭉치에게는 법카부터 먹여줘라 +13 24.05.20 13,516 243 21쪽
11 (10) 나유신이 주가조작 일당을 함정수사로 잡았다 +17 24.05.20 13,586 262 21쪽
10 (9) 오풍제지 그래핀 사기를 경찰공조로 잡는다 +16 24.05.18 14,422 257 25쪽
9 (8) 정오판정으로 오풍제지 주가조작을 발견하다 +16 24.05.17 14,784 276 15쪽
8 (7) 선배가 장애물이면 부수고 해결한다 +15 24.05.14 15,181 280 22쪽
7 (6) 상태창의 보상은 놓칠 수 없다 +23 24.05.12 16,047 296 27쪽
6 (5) 의원 하나 잡고 시작하자 +20 24.05.11 15,815 290 14쪽
5 (4) 신입 수석검사가 꼴통이래 +15 24.05.10 17,084 307 15쪽
4 (3) 범인을 잡으니 시한부 연장 +16 24.05.09 18,235 293 11쪽
3 (2) 우선 범인부터 잡고 죽자 +17 24.05.08 19,823 312 13쪽
2 (1) 백발 신입검사 나유신 +25 24.05.08 23,075 354 11쪽
1 프롤로그 : 시한부 상태창이 생겼다 +42 24.05.08 30,321 417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