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검경합동으로 보이스피싱 조직을 잡아볼까
본래 경찰은 보이스피싱 수사에 아주 소극적이다.
“이 진상판이를 어쩌다 귀하신 검사님이 다시 부르셨을까? 공적은 홀랑 다 처먹어놓고?”
일단 보이스피싱은 사람들 생각과 달리 사소한 사건으로 취급받는다.
물론 당하는 피해자 입장에서는 큰돈을 빼앗겼으니 큰 일처럼 보이기 쉽다.
허나 목숨을 위협받는 살인이나 신체가 파괴당하는 상해, 집 한 채가 날아가는 고액 사기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소형범죄인 것은 맞다.
또한 범죄조직도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니라서 추적이 까다롭다.
물론 진상판이 시큰둥한 이유는 따로 있다.
“억울한 말씀을. 분명 피라미드 조직 일망타진 때 노담 남부경찰서에 공문 보낸 걸로 아는데요. 진상판 팀장님과 합동 수사했다고.”
“진짜는 혼자 드셨잖소. 총장 마누라, 그리고 총장!”
“그거야 검찰 내부 일인데, 검사가 수사하는 것부터 위험했습니다. 만약 팀장님 끼웠으면 같이 죽을 수도 있었죠.”
하지만 진상판은 나유신을 보며 빈정거렸다.
“그냥 제 식구 봐주기 수사한 거 아뇨? 아주 수상쩍은데?”
그러니까 지난 주얼리 피라미드 사건 때문이다.
당시 진상판은 수사팀장으로서 피라미드 사건을 한창 추적 중이었다.
한데 윗선에 압력이 들어와 진상판은 보직 해제의 위기를 맞이했다.
그때 강력팀장 강시영이 나유신에게 연락을 취했고 [수사협조]를 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진상판은 직위 복귀에 성공했다.
주얼리 네트워크의 위법 수사에서 성과를 올렸음이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진상판 입장에서는 검찰총장까지 [사냥]한 나유신이 부러워 미칠 지경일 것이다.
노담 남부경찰서 앞 카페.
커피를 들이키다 나유신이 쓰게 웃었다.
공적이기는커녕 검찰에서 나유신은 지금 표적이 될 판이다.
“난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그보다, 이미 보이스피싱 수사를 하고 계신다구요?”
“뭐, 우리도 민생수사 운운하는 상관이 없는 게 아니라서. 검찰이 나서니까 같이 따라나서대요? 청와대 오더라도 되나, 쯧.”
“혹, 성과는 있습니까?”
아주 경계하는 눈빛으로 진상판이 되물었다.
“그저 그렇소만. 왜, 제보라도 하시게?”
나유신은 커피 한 잔 마시지 않는 진상판을 살폈다.
언뜻 거구의 몸 때문에 둔해 보이지만, 진상판은 매우 기민한 사람이다.
되려 강시처럼 마른 강시영보다 예민한 구석도 있다.
입에 발린 말로 설득해봤자,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직구다.
“같이 하시죠, 수사.”
“그러니까 그걸 내가 왜 해야 하냔 말요. 뭐, 수사지휘라도 해보시게?”
“현재 법적으로 불가능한 소리는 아니군요. 하지만 난 검경수사 분리에 찬성하거든요.”
경찰이 좋아할 만한 얘기를 꺼낸 나유신이 눈을 번뜩였다.
“각자 수사하면 성과가 더 높겠죠. 문제는 이번처럼 큰일이 터질 때가 아니겠습니까?”
검사라면 10명 중 9명이 말할 것이다.
미친 소리 하지 말라고.
경찰 통제가 검사의 핵심 존재 이유 중 하나라고 떠들 거다.
허나 나유신은 그딴 건 믿지 않는다.
경찰이 통제가 안 되는 것보다 검사가 통제가 안 되는 걸 목숨으로 겪어봤기 때문이다.
경계 가득한 눈빛이던 진상판도 조금 풀린 얼굴이 되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유신과 협력할 이유는 없다는 듯한 말투다.
“아, 대체 왜 큰일이란 거요? ‘고작’ 보이스피싱인데.”
“뉴스 보셨죠? 재벌도 보이스피싱을 당한다.”
“월야그룹 아가씨 말요? 뭐, 사진 보니 순진해 보이더만. 모르고 당했나 보지.”
시큰둥한 진상판에게 나유신이 말했다.
“재벌 3세도 보이스피싱을 당하는 세상입니다. 이건 그냥 단순히 넘길 범죄가 아니에요. 뿌리를 캐서, [거악]을 잡아야 합니다.”
항상 경찰을 무시하는 검사가 경찰을 우대하는 말을 해준다.
무엇보다 [거악]을 퇴치한다는 건, 수사관의 마음을 울리게 하는 요소가 있다.
왜?
아무리 닳고 닳은 수사관이라도 첫 시작은 결국 범죄 퇴치를 하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입을 꾹 다물었던 진상판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영감님, 그런다고 범죄가 없어집니까? 이런 건 말요. 잡초 같아서 계속 캐고 캐야 하는 거요. 그렇게 일망타진식으로 할 게 아니라.”
“대규모 범죄조직이 엮여 있다면 어떻습니까?”
“뭐라고, 했소. 지금?”
진상판의 낯빛이 변할 찰나, 나유신이 슬쩍 카드를 내놓았다.
“삼합회가 엮여 있습니다. 이번 사건.”
처음부터 삼합회 운운했다면, 오히려 진상판의 욕심만 자극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나유신이 검경수사권 분리 찬성의도를 슬쩍 비추고, 마음을 움직인 다음, 카드를 찔러넣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진상판에게 협력할 명분이 생겼기 때문이다.
“시발, 이야기를 듣지 않을 수 없게 하는구만?”
결국, 진상판은 나유신에게 반쯤 넘어오고 말았다.
***
하지만 경찰은 검사와 달리 자리에 앉아 차분히 회의를 할 시간이 별로 없다.
“원래 보이스피싱은 이렇게 구성되오. 총책, 콜센터, 관리책, 상담원, 대포통창 모집책, 그리고 현금인출과 송금책.”
철문이 열리고 다시, 지하실이 엿보인다.
콜센터.
보통은 고층 빌딩에 밀집한 시설인데, 이곳은 기이하게도 숨겨져 있다.
겁 없이 들어서는 진상판 뒤를 따르다, 나유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체계적이군요. 생각보다.”
“대출사기나 수사기관 사칭, 대포통장과 개인정보 수집하는 자들이 모두 따로 있소. 원래는 대만이나 중국에서 하던 게 수입된 거지. 요새는 이런 범죄도 국산화가 돼서 말요.”
“국내 조직들은 대규모가 아니죠?”
그러자 진상판이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다 소리쳤다.
“뭐, 대충 그렇지? 사실 구멍가게들이오. 연간 5억쯤? 피해자들에겐 거액이겠지만. 어이, 거기 똑바로 무릎 꿇어!”
형사들이 몰래 달아나려던 용의자를 거세게 붙잡아 벽에 몰아 붙였다.
일견 도드라진 문신이 근육과 함께 움직이는 게 무시무시한 거한이다.
그러나 역시 거한인 형사들은 별 무리 없이 용의자들을 거꾸러뜨렸다.
마치 감독이라도 하듯 그 모습을 보다, 진상판이 물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대규모 조직이 엮여 있다는 거요? 이런 콜센터 따위, 뜨내기들이라 생각보다 규모가 작소만.”
동시에 틈을 봐서 뛰어가던 콜센터 직원들이 굴비 엮이듯 다시 잡혔다.
-삐이익!
소란을 보다 나유신이 휘파람을 불었다.
“정말 잘 잡으시는군요.”
“이런 놈들은 잡기 쉽지. 주로 수금책과 연락책이 엮여 있는 경우라서. 하지만 조선족이 끼어들면 잡기 어렵소. 금방 출국해 버리니까.”
“중국 공안에서도 골칫거리일 텐데요?”
2010년대 초반, 보이스피싱 범죄는 본격적으로 중국과 연계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국내만 사법관할로 삼는 한국 검찰이나 경찰로서는 대응이 꽤 어려운 편이다.
다만 중국이라고 무법천지도 아니고, 사실 이런 범죄는 중국에서도 사회 치안유지 때문에 엄격히 대처하는 편이기도 하다.
진상판이 울퉁불퉁한 어깨를 으쓱였다.
“그쪽은 너무 많아서 다 못 잡는 거지. 쯧.”
중국은 아예 단위가 다르다.
한 해 발생 50만 건.
신고되지 않은 사안까지 합하면 백만 건에 육박할 거란 얘기도 있다.
그러니 전부 잡을 수가 없을 수밖에.
그때 나유신 뒤에서 툭 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삼합회가 왜 나왔죠?”
나유신은 시선을 돌려 쾡한 눈의 경감, 강시영을 보았다.
“24K 조직, 아시죠?”
“예전에 같이 잡았던 삼화회 관련 조직 말이에요?”
“맞습니다. 지금 천안에 가 있는 완자오룬의 소속 조직입니다. 그런데.”
나유신이 가볍게 지하 콜센터에 놓인 전화기를 두들겼다.
“이 24K의 완자오룬 경쟁자가 보이스피싱 총책이라는군요.”
생각보다 복잡한 설비다.
보이스피싱이란 사기 범죄가 상당한 자본력과 조직이 필요한 범죄임을 보여준다.
이 정도 준비를 할 바에는 차라리 콜센터를 차리는 게 나아 보일 정도다.
당연히 그런 성실성을 갖췄다면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겠지만.
나유신이 상념에 빠져 있을 때, 강시영이 깼다.
“어디서 입수한 정보예요?”
“완자오룬과 직접 대면해서 입수한 겁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강시영은 나유신을 쏘아보며 물었다.
“애초에 어떻게 대만계 폭력조직이 이 문제에 엮여 있다는 심증을 얻었냐구요?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할 거 같은데요?”
순간, 나유신은 당황했다.
사실 애초에 이 사건은 나유신이 기획하거나 준비해서 맞이한 게 아니다.
물론 황금문자가 시한부 알림을 띄우는 사건이 대부분 그렇긴 하지만.
해서, 심증 같은 것도 없이 윗선의 지시에 따라 움직여왔다.
그런데 그 위선이 누굴까?
“그건 우리 TF 팀장님이 말씀하신 겁니다만.”
“나 검사님, 백사라는 별명이 울겠어요. 수상한 건 다 물고 늘어지는 게 검사님 아니었어요?”
“검찰에서 뭔가 숨기고 있다는 겁니까?”
강시영이 빤히 나유신을 응시하다 일렀다.
“무슨 보이스피싱 조직과 검찰 수뇌부가 엮여 있는 건 아니겠죠. 다만, 정보는 숨기고 있는 거 같아요.”
이건 수사관으로서의 직감이다.
***
나유신은 직감은 뛰어나지 않지만, 대신 정오판정 능력이 있다.
“어, 왜, 무슨 일로 보자고 했어?”
대검찰청 앞, 뒷골목에서 마주선이 말을 더듬거리며 물었다.
현재 마주선은 유명세의 요청으로 민생 TF에 파견된 상태다.
허나 업무가 많은 탓에 본진 격인 대검찰청을 오가는 모양이다.
물론 나유신은 그 틈을 노려서 혼자만 불러낸 거였지만 말이다.
나유신이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선배, 이거 범죄정보실에서 입수한 첩보입니까?”
사진, 곧 완파오룬이다.
앞뒤 자르고 묻는 거지만 마주선은 뭐냐고 묻지 않았다.
문득 마주선이 입술을 뗐다.
“말해줄 수, 없어.”
“왜죠?”
“불법적인 경로거든. 사실은.”
나유신이 뭘 물으러 왔는지 알았다는 소리다.
바로 보이스피싱 뒤, 거대 외국 폭력조직이 있다는 정보.
단지 제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다.
잠시 멍하니 있던 나유신이 눈을 크게 떴다.
불법적인 경로인데 정확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다면, 한정되어 있다.
“설마, 이거 국정원 소스예요?”
마주선은 답을 주는 대신 엉뚱한 대답을 내놓았다.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건 하나야.”
“뭡니까?”
“월야그룹 하주연.”
다시, 돌아서서 대검찰청으로 들어가며 마주선이 말했다.
“만나봐.”
아무래도 사건 시작점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진짜 핵심을 찾기 위해서.
- 작가의말
* 이제 나유신이 정보 핵심 소스로 접근합니다. 국정원에 가끔 검사들이 파견나갈 때가 있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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