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왕 말론 생텀
야생왕 말론 생텀
그 친구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허리를 숙인 상태에서 허리 아래로 양단되어 서로 반대 방향으로 나뒹굴었다.
"지금이닷."
복면인도 각성자다. 오감이 극도로 발달한 이들은 야생왕이 휘두른 무기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각자 반대 방향으로 뿔뿔이 흩어져 몸을 날렸다. 아무리 무기의 위력이 뛰어나더라도 사거리가 있게 마련이다. 그걸 노린 것일 테지.
"큭."
"크악."
두 명의 단말마가 들렸다. 하지만 세 명은 용케 어둠 속으로 숨어들었다.
야생왕이 어깨를 툭 치자 날개 속에 고개를 묻고 있던 쿠로가 벌떡 고개를 세웠다. 일명 검은 남작이라고 불리는 쿠로. 그의 특기는 야생왕의 또 다른 눈이다.
녀석은 힘차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검은 독수리의 시력은 밤낮을 구분하지 않는다. 이 짐승 또한 성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수억 마리의 독수리가 희생되었고 그중에 유일하게 성력을 몸에 받고 살아남은 녀석이다. 짐승에게 남작의 칭호가 붙은 이유이기도 했다.
잠시 뒤 쿠로는 양발에 하나씩 두 개의 머리를 붙잡아 왔다.
"전하 구경은 여기까지입니다. 제가 더는 무례를 범하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아. 진짜 귀찮은 놈이로구나."
어둠 속에서 테츠가 날아내렸다.
야생왕은 즉시 말에서 내려 무릎을 꿇고 그를 맞이했다.
"칠무신 셋째 말론 생텀이 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야, 넌 뭔데 찰거머리같이 날 따라다니는 거야? 귀찮지도 않아?"
그때 쿠로가 테츠 머리 위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저놈 내려오라 해. 여기 있다고 인사라도 할 참 모양인 거야? 그놈은 네 존재를 인식하고 벌써 도망갔나. 네가 놓친 한 명은 내가 처리했으니 찾을 필요 없고···."
-삐이이익
야생왕의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에 쿠로는 수직으로 바닥을 향해 내려오다가 땅바닥에 부딪히기 직전 큰 날개를 활짝 펴고 딱 멈춰서더니 가뿐하게 바닥에 착지했다.
그 몸놀림이 어찌나 정확하고 우아한지 아름답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였다.
테츠는 탈로스의 형상을 벗고 원래 테츠의 외형으로 돌아와 있었다. 탈로스는 마교 인물 소수만 아는 변신한 모습이었기에 굳이 칠무신에 탈로스의 형상을 보여줄 이유가 없었다.
특히 다른 칠무신에 비해 야생왕이 귀찮은 것운 무이와 쿠로는 오직 성력만을 찾기에 테츠가 외모를 바꾸는 것과 상관없이 테츠를 찾아낼 수 있었다.
물론 충분히 도망갈 수도 있었지만, 야생왕이 이곳까지 찾아온 것을 보면 이미 자신을 감지한 뒤라는 것이다. 당연히 감지한 것은 야생왕이 아닌 바로 흑마 무이였다.
이 검은 말은 개와는 비교조차 할수 없을 정도로 냄새와 소리에 민감한 녀석이다. 아마도 녀석이 흡수한 성력의 힘 때문이겠지. 특히 성력의 기운을 찾아내는 데 특화된 녀석이다.
달리 야생왕이 황태자의 뒤를 쫓는 것이 아니다. 단지 테츠가 포탈을 사용하여 지역 간 이동을 하였기에 사실상 그를 추적하는 것은 힘들었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보고 아칸에 잠복하고 있으면 언젠가 테츠가 나타날 거라는 걸 알고 아칸으로 넘어 온 것이다.
"이놈아. 네가 무슨 수로 나를 잡겠다는 거냐? 그걸 알면서 나를 찾아다니는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른 사람을 거쳐도 될 텐데 네가 직접 나를 찾아온 이유나 들어 보자."
"제가 무슨 능력으로 태자 전하를 붙잡겠습니까? 단지 태자 전하를 뵙고자 한 것은 성황의 명을 전하기 위해섭니다."
"그러니까 다. 그런 정보는 메흘린을 통하면 되지 않느냐? 난 아버지와 더는 할 말이 없으니 괜히 방해하지 말고 그냥 돌아가."
"그래도 명령받았으니 맡은 바 임무는 하고 가야지 않겠습니까?"
"좋아! 말해봐 영감이 뭐라고 하든?"
"요즘 가슴 부위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테츠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말했다.
"그래 심장 박동이 조금 불규칙하게 뛴 적이 있어서 조금 의아해하고 있던 참이었어."
"그건 바로 성력 때문입니다. 성력은 살아 있는 생명체의 심장에 기생합니다."
"그래서?"
"성력을 제어하지 않으면 심장이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뭐더라? 시련의 장이던가?"
"정확히 알고 계십니다. 시련의 장은 심장에 모인 성력을 온몸으로 올바르게 이끌도록 해 주는 것입니다. 원래 성황께서 이 땅에 처음 오셨을 때 인간의 몸이 버틸 수 없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기껏 해봐야 일 년을 넘기기 힘들었습니다. 인간의 심장이 성력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든 것이 시련의 장이라는 거냐?"
"그렇습니다. 성황께서는 몸에 적합한 인간을 찾는 것 보다 수련을 통해 성력을 완벽히 인간의 몸과 일체 시키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봤자. 인간의 몸은 필멸의 길을 가는 거지. 영원히 살 수 없겠지?"
"당장 죽음을 맞이하는 그것보다야 낫지 않습니까?"
"1년? 그럼 난 왜 죽지 않는 거지? 성력이 발현된 지 7년은 더 넘은 것 같은데?"
"황태자님은 특별한 분이십니다. 인간과 이브리엄의 결합체이기 때문에 평범한 신체가 아니십니다. 하지만 그래도 완전한 성체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련을 장을 거치셔야 합니다. 만약 성력을 계속 사용하신다면 결국 심장에 무리가 가실 겁니다."
"후후, 그렇게 나를 유도하려 잡으시려고?"
"아닙니다. 성황께서는 태자 전하가 시련의 장을 거치는 동안 마교에 볼모로 잡혀 있겠다고 하셨습니다."
"후후, 영감이 머리를 쓰는구먼.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을까? 자기가 써야 할 몸이니까 챙겨야 한다는 거지?"
"우매한 저는 그것에 대한 답은 해 드릴 수 없습니다."
"야. 고상한 척하지 말자. 내 몸에 흠집 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소리 아니냐?"
"시련을 장을 넘기시면 상상할 수 없는 이브리엄의 힘을 얻게 됩니다. 어쩌면···."
"어쩌면?"
"지금 태자 전하의 무력을 봤을 때 어쩌면 성황님의 힘을 능가하실 수도 있습니다."
"으하하. 이놈 보게 듣기 좋은 소리로 나를 유혹하려 하는 모양인데 가서 전해라. 시련의 장인지 뭔지 필요 없다고. 심장이 터져 죽든 말든 그건 내 인생이니 간섭할 생각은 하지 말라고 말이다."
"이런 말을 드리기 어려우나···."
"헛소리 늘어놓을 생각 말고 간단하게 말해. 내가 말을 안 들으면 협박할 생각인 거지?"
"태자 전하가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을 부숴 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 그렇지, 협박은 그렇게 하는 것이다."
"먼저 어반마르스에 있는 마교 관련 인물은 모두 체포될 것이며 그들에게 씌워질 누명은 반역죄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모건이 지휘하는 성군은 맨시티의 살아 있는 생명체는 모두 죽여 없앨 것입니다."
"쉽게 안 될 거다. 맨시티의 마교는 성군의 전투력을 앞지른다. 만약 맨시티의 주요 인물의 인질에 위해를 가하면 그들은 황제와 적대관계가 될 것이고 마교는 총력을 다 해 성군과 싸울 것이다. 성군은 마교의 상대가 안 돼."
"물론 말씀 하신 부분까지 예상합니다. 성군이 힘들면 성황께서 직접 황제 직속 부대를 동원하실 것이며 칠무신 전원이 소집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운명이라면 끝까지 싸울 것이다."
야생왕은 무릎을 꿇은 자세로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 누가 칠무신이 이런 행동을 한다고 믿겠는가?
"제 개인적인 생각을 말씀드려도 됩니까?"
"말이라고! 어서 해봐."
"사실 저희 칠무신은 성황이 아닌 황태자 전하를 보필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만들어졌다니 듣기 거북해. 너희도 너희를 낳아준 부모가 있을 것이 아니냐?"
"칠무신 중 그 누구도 자기 부모를 아는 이는 없습니다. 저희는 세상에서 버려진 아이들이었습니다. 저희를 거둔 것이 성황이었을 뿐입니다."
"그렇다 치고 그래서?"
"저희는 절 때 그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황태자 전하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으며 명령에 불복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저희 목숨보다 황태자 전하의 목숨이 위이며 저희가 존재하는 목적 또한 황태자 전하를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하긴 자신이 쓸 몸이니 최대한 알뜰살뜰 지켜야겠지."
"지금부터는 황제의 명이 아닌 제 개인적인 사견을 말씀드린다고 했습니다."
"그래, 알고 있어. 난 귀먹지 않았다고."
"성황께서는 태자 전하의 몸을 빌려 다시 환생하려 한다는 소문은 생각해 볼 가치도 없는 허구입니다."
"그게 네 개인적인 생각이라고?"
"그렇습니다. 적어도 황제 전하는 그럴 생각이 없으십니다."
"그럼 왜 나를 그따위로 만들었지?"
"저는 정확히 모르지만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빼앗기지 않아? 누구로부터?"
"그건 저도 모릅니다. 성황께서는 단지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영감은 능구렁이야. 너희를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서일지도 모르지."
"저는 속일 수 있어도 쿠로와 무이는 절대 속일 수 없습니다. 태자 전하의 몸은 제국의 안녕을 위해 반드시 지켜져야 할 존재임을 명심해 주십시오. 제국 인류의 생사여탈이 바로 태자 전하의 몸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황은 이 몸이 어떻게 되면 인간을 몰살하겠다는 거잖아?"
"아닙니다. 만약 성황께서 인간을 몰살하려 했다면 신성불가침 조약이 체결 되기 전 마녀 엘자임을 먼저 죽이셨을 겁니다. 성황께서는 제국의 모든 인간을 몰살시킬 능력이 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성황의 힘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라? 그럼 내가 한 번 막아 볼까?"
"성황께서는 본인의 신체가 부서지는 것이 두려워 진정한 힘은 사용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악룡 데블 와이어를 쓰러트릴 때도 자신의 본 능력은 거의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만약 정식으로 힘을 개방하시면 도시 하나는 손짓 한 번에 잿가루가 될 것입니다. 성황의 그런 능력은 저희 칠무신을 제외하고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것 또한 사실입니다. 지금 태자 전하가 이룩해 놓은 업적은 실로 대단하다 할수 있으나 성황께서 마음을 바꾸신다면 태자 전하가 수년에 걸쳐 쌓아 놓은 것을 손짓 한 번에 모두 파괴 할수 있는 능력이 있으십니다."
"···. 성력이 그 정도냐?"
"저희가 받은 힘은 성황의 가지신 힘에 비하면 아예 비교조차 되지 않습니다. 그건 저희 몸이 인간의 몸이라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태자 전하는 평범한 인간과 다르십니다. 태자 전하의 피를 나눠 받은 윌리엄과 케이사르의 능력이 한계를 모르고 치솟고 있습니다. 윌리엄이 오비디언스 샤우트에 지배받지 않는 것도 태자 전하의 피를 마셨기 때문입니다."
"그건 우리 마교의 장로도 다 같아."
"후후, 그들이 아무리 강해도 결국 인간의 한계는 벗어날 수 없습니다."
"황제는 무엇을 두려워하는 거지? 필멸자로서의 죽음인가? 그렇게도 불멸자가 되고 싶은 건가?"
"아닙니다. 인간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늙은 몸으로는 이제 버틸 수 있는 한계가 얼만 남지 않았습니다."
"다른 몸으로 들어가면 되지 그 정도 능력을 있을 것 아니야?"
"성황께서는 너무 많은 성력을 개방하셨고 이제 그 성력을 견딜 수 있는 인간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없긴 내가 있잖아. 그런데도 내 몸을 원치 않는다고? 아니 이제 제국에는 인간의 적수가 없을 텐데 무슨 걱정이야? 그냥 집에서 쉬면서 천수나 누리라고 해. 마족이든 케이사르든 내가 알아서 다 정리해 주면 될 것 아니야."
"성황께서는 두려워하십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뭐가 두렵다는 거지? 아. 죽을 때가 다 되어서 아쉽다는 소리군."
"그렇지 않습니다. 제국의 인간이 모두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 하십니다."
"뭔, 소리야? 좀 알게 쉽게 말해."
"불행히도 저 또한 자세한 내용은 모릅니다. 다만 성황께서 두려워하는 존재가 있으며 성황께서 불사의 몸을 얻으시려 하는 것도 그 두려운 존재와 맞서기 위해서란 것을. 그간 태자 전하를 지켜본 바로 성황께서는 제국의 미래를 어쩌면 태자 전하께 양도하시려 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올바른 성력의 편재가 중요합니다. 반드시 시련의 장을 거쳐야 합니다."
"그 존재가 무엇이냐?"
"저는 모릅니다. 단지 성황께서는 그 두려움을 정말 두려워서 하십니다. 그리고 성력의 힘은 신의 힘입니다. 아무리 태자 전하라 해도 정상적인 방법이 아닌 방법으로 성력을 계속 사용하면 심장에 큰 부하가 걸리게 됩니다."
"그건 내 운명이니 너도 성황도 신경 쓸 필요가 없어. 운명이라면 말이야."
"누가 죽음을 운명이라고 믿고 받아 당당히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운명은 얼마든지 개척할 수 있습니다 태자 전하의 운명은 개척이 아니라 단지 태자 전하의 결심에 달린 것입니다."
"영감이 왜 금서에 그렇게 목을 매달고 있는 것이지?"
"두려운 존재는 말라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두려움의 근원을 해결할 방법이 일곱 권의 금서에 기록돼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브리엄을 이 세상으로 부른 것도 말라키입니다. 당시 말라키가 사용하던 기술은 인간의 기술이 아닌 태초의 신 니알라 토텝의 힘입니다. 그 힘은 이브리엄의 능력조차 뛰어넘은 인간이 손대서는 안 되는 힘이었습니다."
"그래서 말라키는 모두 사라졌어. 그들의 피도 희석되었고. 그것이 니알라토텝이 의도한 바였는지도 모르지."
"그럼 마지막으로 성황의 말씀을 전해 드리고 전 물러가겠습니다. 마지막 말씀은 명령이 아니라 아비로서 아들에게 부탁한다고 하셨습니다."
"아비로서 아들에게 부탁한다라···."
Comment ' 2